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준 2집 이후, 'Clazziquai Project(클래지콰이)'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세 번째 정규 앨범 'Love Child of the Century'.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1집 'Instant Pig'에 이어 큰 기대 속에 발표된 2집 ' Color Your Soul'의 부진은 클래지콰이에게 많은 생각을 남겼나봅니다. 1집과 2집의 간격인 16개월보다 긴, 2년에 가까운 21개월의 간격에서부터 그 절치부심이 엿볼 수도 있겠습니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던 지난 두 앨범들의 제목과는 달리 세 번째 앨범의 제목 'Love Child of the Century'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뭔가 심오할 법한 느낌입니다. 'DJ 클래지'가 직접 참여한 아트웍에서도 역시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번 앨범 아트웍에서도 역시, 이제 '클래지콰이'의 마스코트라고 돼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냥 돼지가 아니가 아닌 돼지의 탈을 뒤집어쓴 소년입니다. 앨범 제목에서 언급한 'Child'가 바로 이 아이일까요?

지난 'Color your soul'에 이어 이번에도 오프닝은 '알렉스'나 '호란'과 달리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지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가사는, '세기(century)'를 이야기하는 제목처럼 광오함이 담겨있습니다. 앨범 발매 당시 2007년으로 이미 7년이나 지났지만, '새 천년(New Millenium)'을 맞이하는 바람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타이틀 곡인 'Lover Boy'는 일렉트로니카와 팝이 버무러진 통통튀는 트랙입니다. 사실 심오하고 광오한 의미를 담았을 법한 타이틀과 그 만큼 기대를 저버리는 평범한 이 트랙이 타이틀로 선택된 점은 아쉽습니다. '생의 한가운데'는 클래지콰이의 앨범에서 흔하지 않은 한글 제목으로, 왠지 목가적인 내용이 기대되는데 내용물은 그 예상을 뒤엎는 반전입니다.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분위기를 환기시키죠.

Session 1을 여는 'All Hail'에 이어지는  'Gentle Giant'은 밝은 분위기의 팝넘버이지만 그 가사를 해석해보면 다분히 정치적인 느낌의 트랙입니다. 우리를 '네버랜드'로부터 지켜주는 'Gentle Giant'를 칭찬하는 듯한 밝은 분위기이지만, 반어적으로 꼬집고 있는 가사는 진실을 왜곡하는 어떤 것들(언론, 정부, 종교 등)에 대한 조롱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위트가 넘치는 Gentle Giant를 잇지 못하고 이어지는 곡들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Last Tango'는 슬픈 이별의 탱고 위로 흐르는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이 그나마 빛을 내지만, 진부한 사랑 노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탱고라는 소재는 이미 'Casker' 등 여러 일렉트로니카 계열 뮤지션들이 차용한 장르이기에 신선한 느낌은 부족하고,  그 이상을 들려주지도 못하네요. 스페인어로 '축제'를 의미하는 '피에스타'는 웰빙 열풍에 맞춰 웰빙 라이프를 노래합니다. 하지만 호란의 들려주는 '피에스타'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위 가진자들 만의 웰빙'을 노래할 뿐입니다.

1집의 인기곡 가운데 하나인 'After Love'가 떠오르는 제목의 'Next Love'는 시끄러운 클럽이 아닌 방에서 홀로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는 트랙으로 앞선 실망을 달래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가사를 주로 부르는 크리스티나가 한국말도 능수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하네요. 'Romeo N Juliet'은 대중들에게 인상적이지 못했던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한 마디로 이 앨범을 먹여살린 트랙입니다. 1집의 'Gentle Rain'을 뛰어넘는 사랑 노래로서  21세기의 새로운 음원 소비 수단인 '배경음악'에서 모든 클래지콰이의 노래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곡이 바로 이 곡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되어 사랑을 노래하는 알렉스와 호란의 음성은 연인들을 녹일 수 밖에 없을 만큼 탁월하네요. 호란의 나레이션이 미래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Flower Children'은 Session 1의 마지막입니다. Flower Children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레이션과 달리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곡의 혼잡한 구성은 제목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Session 2는 멋들어진 프랑스어 나레이션이 흐르는 'Confession'으로 시작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클래지콰이에게 씌여진 일렉트로니카라는 굴레를 벗고 '가요'로 듣는다면 가장 좋은 트랙들이 이 마지막에 모여있다고 생각됩니다. 'Confession'과 바로 이어지며, 고독한 도시의 밤을 머금은 '금요일의 Blues'는 클래지콰이 대표 보컬은 '호란이 아닌 알렉스'임을 확인시켜주는 트랙이라고 하겠습니다. 클래지콰이다운 아기자기한 사운드에 크리스티나의 매력적인 보컬이 녹아든 'Glory'는 지나치게 과장된 기교로 치장되거나, 혹은 대중의 기호와 동떨어진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은 절제와 중용의 미덕이 담긴 트랙입니다. 1집의 영광(glory)을 되세기며 Glory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곡에 좀 더 욕심을 냈다면 타이틀로도 손색이없었을 정도로 아쉬움이 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보컬도 탁월하지만, 즐거운 곡에서 분위기를 확실히 띄우기에는 음색적인 면에서 호란에 비해 부족하기에 'Glory'는 호란의 음성이 아쉽습니다.

마지막 트랙마저도 크리스티나의 몫입니다. 보컬 솔로가 돋보이는 마지막 세 트랙에서 각가 세 명의 보컬에게 할애되지 않고 호란이 빠진 점은 의외이기도 합니다. 혹시 이 앨범 발매후 1년이 지나 '이바디'로 다른 활동을 시작하는 호란과의 균열이 미묘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앨범을 맺으며 흐르는 엔딩 크레딧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합니다. 클래지콰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방에서 듣는 일렉트로니카'의 매력이 녹아들었네요.

좀 더 긴 준비 끝에 발매된 세 번째 정규앨범이지만 역시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지난 2집에서의 부진의 아쉬움을 생각한다면 클럽이 아닌 청취자의 방을 타켓으로한 '한국형 일렉트로니카'을 완성에 있어서는 분명 한 발자국 전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DVD가 포함된 '한정판'으로도 발매되어 3집의 새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전작들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소장하고 감상할 수있던 점은 팬으로서 점수를 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