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ish trad project '바드(Bard)'의 더욱 풍성해진 두 번째 정규앨범 'Road to Road'.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즐겨들은 음반이 2장 있는데, 한 장이 이미 소개한 '에피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정규앨범이고, 다른 한 장이 바로 지금 소개할 '바드(Bard)'의 두 번째 정규앨범 'Road to Road'입니다. 2009년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긴 휴식기에 들어간 밴드 '두번째 달'의 반쪽 'Alice in Neverland'와는 다르게, 또 다른  반쪽인 '바드'는 2010년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에스닉 퓨전(Ethnic fusion) 밴드 '두번째 달'에서 갈라진 두 밴드가 바통을 넘기듯 이어서 앨범을 발표한 점은 재밌는데, 2010년 5월 1집 'Bard'에 이어 약 2년이 지난 올해 5월 2집 'Road to Road'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4인으로 활동했던 1집과는 다르게, 2인 밴드로 개편되었습니다. 남은 두 멤버는 1집에서 보컬을 나누어 담당했던 '박혜리'와 '루빈(Ruvin, 김정환)'입니다.

고대 켈트족의 음유시인을 뜻하는 이름인 'Bard라는 밴드 이름처럼', 이 밴드는 현재는 켈트족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1집에서는 자작곡과 더불어 아일랜드 민속음악들을 수록하여 소개하였습니다. 반도에 위치하여 주변 국가들에게 빈번하게 침략을 당했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수차례 외세 침탈의 역사와 그에 따른 민족갈등과 종교갈등을 겪은 아일랜드에서 나온 음악답게도 우리가 공감할 '한'과 '흥'을 들려준 1집이었지만, 밴드의 자작곡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듣는이의 아쉬움이 전해졌는지, 앨범 부클릿을 살펴보면 모든 곡이 자작곡입니다. 그리고 자작곡으로만 채워진 점은 이 앨범이 1집과는 다른 첫 번째 특징입니다.

앨범을 여는 '춤추는 바람'은 음유시인, 혹은 방랑시인을 뜻하는 밴드 이름 '바드(Bard)'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바람부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이름 모를 음유시인의 발걸음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들판의 풀들 바람을 따라 춤을 추고, 음유시인의 발걸음에는 인생의 수 많은 굴곡과 이야기가 담겨있을 법합니다. 루빈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가사는 소탈하지만 시적이며 사색적입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어떤 경지로 이끄는 느낌이랄까요? 발매 직후 앨범을 구입하여 봄부터 가을까지 200번 넘게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마력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의 여행'은 박혜리의 목소리로 이어집니다. 사색적이었던 '춤추는 바람'과는 다르게 '말괄량이 아가씨'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여행에서 느끼는 소박한 현실의 고민들을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첫곡과 확연한 대비를 이룹니다. 그렇지만, 이 곡에서 무엇보다도 귀를 잡는 것은 1집에서 너무 가늘었던 그녀의 보컬이 더 듣기 좋아졌다는 점입니다. 진일보한 보컬은 1집과는 다른 두 번째 특징입니다.

'느리게 느리게 가는 기차'로 시작했던 '오늘의 여행'과 다르게, 이어지는 'Euroline Reel'은 빠른 춤곡입니다. (Reel이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지방의 춤이나 춤곡을 의미합니다.) Euroline은 유럽 각지를 연결하는 버스들을 의미하는데, 버스를 타고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을 담았을 법합니다.

'아이시절'은 '오늘의 여행'처럼 흥겨운 기분의 보컬곡입니다. 수록곡들 가운데, 시원시원한 루빈의 보컬과 이를 바쳐주는 박혜리의 코러스가 가장 잘 어우러진 곡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디로'는 이 앨범이 봄에 나왔지만 가을에 들어도 잘 어울리게 해줍니다. 조근조근 노래하는 박혜리의 목소리를 통해 사랑의 쓸쓸함과 무상함을 담고 있는 노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기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난 1집을 소개하면서 아일랜드 민속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우리의 '한'과 '흥'에 닮아있다고 언급한 일이 있었는데, 바드의 두 사람도 역시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오래된 이야기'는 바로 퓨전국악의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 '정민아'가 함께한 곡입니다. 새ㅇ태 보호의 메시지를 민족의 역사(우리의, 오래된 이야기)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도 인상적이지만, 바드의 두 멤버와 정민아가 만드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이 곡을 이 앨범 최고의 트랙 가운데 하나로 손꼽게 합니다.

앨범 제목과 동일한 'Road to Road'는 루빈이 작곡한 쓸쓸한 느낌의 기타 연주곡입니다. 이어지는 'The Right Time'은 역시 루빈의 곡으로 도입부 기타 연주가 앞선 'Road to Road'를 긴 전주처럼 들리게도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 곡의 흥겨움은 펍에서 펼쳐지는 파티를 떠오르게 하고, 아일랜드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것, 바로 '아일랜드 맥주' 한 모금을 그립게 합니다. 이어지는 곡은 제목도 살벌한 'Terminator'입니다. 우리말로 '종결자' 정도가 되겠는데, 앨범의 마지막 곡은 아니지만 루빈의 마지막곡입니다.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이곡에서는 정글을 살금살금 가로질러 적을 뒤에서 습격하고 잼싸게 움직이는 맹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전반부에는 루빈이 부른 '춤추는 바람'이 절정이었다면, 후반부의 절정은 박혜리가 부른 '섬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춤추는 바람'처럼 가사는 일일히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듯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처럼 섬나라 아일랜드가 겪은 외세의 침략과 수탈을 역사와 꺾이지 않는 기개도 담겨있을 법합니다. 또, '섬의 노래'라는 제목과 가사를 살펴보면 켈트족의 영웅인 '아서왕'이 잠들어 있다는 섬 '아발론(Avalon)'도 떠오릅니다. 화자를 부른 '머나먼 섬'은 그 기개를 다하고 죽어서 가는 낙원, 바로 '아발론'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로 이어져'는 분위기를 누르는 아코디언으로 시작하여 아이리쉬 휘슬로 마무리하는 묘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여러모로 이 곡은 '장송곡'처럼 들립니다. 전반적인 곡의 무거운 분위기와 인연과 윤회를 떠오르게 하는 중의적인 가사, 망자를 위한 염을 하는 듯한 박혜리의 보컬에서 그렇습니다.  장송곡이라면 침울한 느낌의 아코디언 연주는 죽음을, 이와 대비되어 날아오르는 듯한 아이리쉬 휘슬 연주는 죽음 뒤의 승천을 의미하리라 생각됩니다.

방랑의 이미지로 시작했던 앨범은 역시 방랑의 이미지로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앨범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 '여행자의 마지막 걸음'은 앨범의 시작 떄보다 매우 가볍습니다. 앨범을 끝으로 방랑시인(바드)는 잠시 쉬어가겠지만, 길에서 길로 이어지듯(Road to Road) 언젠가 계속될 여행을 기다립니다.

Irish Trade Project '바드(Bard)'의 두 번째 앨범은 지난 앨범의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여, 좀 더 완벽한 아일랜드 음악 여행으로 이끕니다. 지난 앨범에 비해 들어난 보컬 곡들은, 정민아와 함께한 한 곡을 제외하고는 (혼성 듀오에서 그 흔한) 듀엣도 없이 두 멤버가 각각 보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크레딧을 살펴보면, 두 멤버가 각각 자신이 쓴 곡들은 보컬로 나섰고, 다른 멤버는 코러스로 보조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밴드 바드의 특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루빈은 '바드'로 활동하기 전에 Missing Island'로 활동했었고 박혜리는 '두번째 달'의 멤버인 점을 기억한다면, 그런 특별함은 '바드'가 그런 두 사람의 조금은 느슨한 '음악적 공동체'라는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 느슨함은 두 사람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도, 아일랜드 음악이라는 결속력 아래서 꽤나 흥겨운 월드뮤직의 향연을 만들어냈습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더불어 최근 즐거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는데 바로 '두 번째 달'의 소식입니다. 얼마전 다시 공연을 시작한 '두 번째 달'은 내년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바드의 여정이 여기서 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바드의 여성이 '두 번째 달'에 이어져 계속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