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 커리어를 시작한 어떤 가수는 시간이 지나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도 하고, 어떤 싱어송라이터는 파격적으로 댄스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제 소개할 싱어송라이터 해오(Heo, 허준혁)는 그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까지는 아니지만, 2009년 발표했던 첫 정규앨범 "Lightgoldenrodyellow"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의 새 앨범 "Structure"을 발표했다.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 자켓부터 그런 변화를 예상하게 하는데, 해오의 지난 활동 이력을 되돌아본다면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올드피쉬(Oldfish)'의 멤버로서 본격적으로 인디씬에 뛰어든 그의 경력에서, '일렉트로닉'은 항상 함께 해온 장르였다.

솔로 뮤지션 '해오'로 활동하기 전, '올드피쉬'시절부터 그가 EP까지 발표했던 또 다른 이름 'yellowmayonaise'까지 포괄적으로 정리했던 그의 데뷔앨범은 '일렉트로닉을 살포시 머금은 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데뷔앨범이 발표된 2009년과 두 번째 앨범이 나온 2014년 사이의 5년을 살펴보면, 지난 앨범처럼 새 앨범 'Structure'도 어느 정도 '정리'의 의미를 담고 있어 보인다. 데뷔앨범이 나온 2009년에 그는 다른 이름으로 EP 하나를 발표했다. 바로 'DJ Gon'과 한 프로젝트 '스타쉽스(Starsheeps)'로 발표한 "Luna"이다. (이 프로젝트에 그는 기타리스트 'Mayo'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는데, 'yellowmaynaise'에서 가져온 별명으로 생각된다.) 이 EP는 그가 2009년 이전부터 일렉트로닉 씬에 대한 관심과 활발한 교류를 알려주는 점이다. 앨범 발매일을 보면 해오 1집의 발매일이 2009년 1월 15일이고 EP "Luna"의 발매일이 2009년 2월 16일로 고작 1개월의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실제로 2009년에 그는 인디씬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해오'로, 클럽씬에서는 기타리스트 'Mayo'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타쉽스의 작업이나 그가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던 'TV Yellow' 활동은 EDM과의 접점으로 볼 수 있는데, 새 앨범 "Structure"는 EDM뿐만 아니라 IDM과 포스트록까지 아우르는 소리들을 담고 있다. '일렉트로닉' 자체가 상당히 광범위한 장르로 볼 수 있는데, 앨범 "Stucture"도 그만큼이나 다양한 스타일의 트랙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함은 '난잡함'이 아니라 어떤 응집력을 갖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제목처럼 어떤 Stucture를 완성해가는 앨범이다.

'기초적인 소리'를 의미하는 듯한 제목의 intro인 'Sound of A'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기본인 전자음들로 풀어나간다. 이어지는 'Luna'는 앞서 언급했던 프로젝트 '스타쉽스'의 EP "Luna"에 수록되었던 트랙이기도 하다. 춤추기 좋은 EDM이었던 스타쉽스 버전과는 다르게, 느린 템포로 진행되면서 마치 '디스토피아적이고 황량한 꿈'처럼 들린다. '달' 혹은 '달의 여신'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달의 기운을 받았는지, 굉장히 섹시하게 들리는 해오의 보컬은 상당히 농밀한 섹시함을 숨기고 있다.  'Word of Silence'는 제목과는 다르게 다소 소란스러운데, 몽환적인 여성 보컬과 타격감이 살아있는 드럼 연주가 두드러지는 트랙이다. 앨범 대부분의 곡들이 앨범 자켓처럼 어두운 분위기인데, 반어적으로 제목이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Good day'도 제목과는 다르게 어둡고도 몽환적이다. 'Reckless'는 아무래도 'Moby'의 곡들이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트랙이다. 음성변조부터 군더더기 없고 경쾌한 진행 등 여러 점에서 그렇다.

지난 앨범과의 접점을 억지로라도 찾으라면 'All the things are passing by', 이 곡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전자음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기타 반주로 이끌어가는 점에서, 일렉트로닉 성향이 짙은 이번 앨범보다는 지난 앨범에 가깝게 들린다. 제목과 가사에서는 인생에 대한 소탈한 깨닮음이 느껴지는데, 1집도 그렇겠지만, 이 앨범이 발매되기까지도 순탄하지 않았음을 예상하게 한다. 'Ride the Wave'는 보컬을 거의 알아들 을 수 없기에, 연주 위주로 진행되는 드림팝 넘버라고 할 수 있겠는데, 높낮이 변화하며 반복되는 파도같이 부드러운 완급조절로 4분이 넘는 시간을 흡인력있게 이끌어 간다. 이어지는 'Hard to Keep'은 러닝 타임이 11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온라인 음원으로는 한 곡으로 판매되었지만, CD에는 3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수록되었다. 파트 1이 '차가운 일렉트로니카'라면, 파트 2의 전반부는 그의 기타와 록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파트2 후반부의 크로스오버를 지나면 파트 3는 앞의 두 파트가 만난 '정반합'의 경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매우 긴 곡이지만 다채로운 변화 속에서도 한 곡으로서 일관성을 잃지 않아서, 11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 곡처럼 들리면서 동시에 한 곡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이 점은 비단 이 곡 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닉'이라는 공통 분모로 묶이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리들이 모여서 구조(structure)를 완성해간다. outro 'in sight of light'는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의 긴 터널' 같았던 이 앨범을 갈무리하는 트랙이다. 제목처럼 다소 밝은 분위기인데, 마치 어떤 소리들을 거꾸로 재생할 때처럼 독특하게 들린다.

공감할 만한 감성적 가사와 어렵지 않은 멜로디를 들려주었던 그의 첫 정규앨범은 비교적 대중성있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일렉트로닉으로 가득한 두 번째 앨범에서는 그 대중성과는 멀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지난 앨범 "Lightgoldenrodyellow"가 '탁월한 감성'을 들려준 앨범이었던 반면, 이번 앨범은 대중성은 줄었지만 더욱 완성도 높은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했다는 그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앨범이 나온다면 ambient와 같은 장르를 들려주지 않을까?"라고 재밌는 상상해본다. 별점은 4.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