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 잔혹한 여행

'푸른새벽'의 해체 이후 꾸준한 솔로 활동을 보여주는 한희정 그녀의 새로운 EP '잔혹한 여행'.

가끔 공연하기로 유명했던(악명 높았던?), 그래서 단독 공연이 열리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푸른새벽'의 해체 이후, 듀오 때와는 전혀 다르게도 꾸준한 솔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한희정'이 새로운 EP '잔혹한 여행'을 '어느 가을'날에 발표했습니다. 2008년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2009년 EP '끈'에 이어 올해 2010년 EP '잔혹한 여행'까지 3년 연속으로 앨범을 한 장씩 발표하는 기대이상의 왕성한 모습은 팬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지난 EP '끈'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여행'도 어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법합니다. '끈'이 '인연의 끈'에 대하 노래했다면 심각한 느낌의 제목 '잔혹한 여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자, '가이드 한희정'의 안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해 봅시다.

첫 곡은 '어느 가을'입니다. 이 EP가 발매된 '어느 가을'을 의미하면서도 이 EP 속 이야기의 시점인 '어느 가을'을 알려주는 제목입니다. 어느 가을날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덕수궁 돌담길 아래서 예정된 이별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의 발거음처럼 쓸쓸합니다. 길게 '서있다', '불었다'라고 쓸쓸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리의 낙엽들도 날려버릴 만큼 쓸쓸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시작됩니다.

앞선 곡에서 기대한 쓸쓸함을 날려버리듯, 이어지는 '입맞춤, 입술의 춤'은 매우 경쾌하게 흘러가는 트랙입니다. 입맞춤을 입술의 춤으로 의인화한 그녀의 기지가 재밌습니다. 간주에서 들리는 그녀의 애드립은, 이전의 그녀의 곡들과는 다르게 키치적으로 들려오네요.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는, 두 사람의 시공간이 포개어지면서 만들어진 그 '춤'이 얼마나 격렬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춤의 현장은 과거형으로 그려지고 있어 회상의 일부분임을 암시합니다. 또, 포개어진 시공간이 다시 나뉘어지듯, 이 순간도 언젠가 나뉘어지고 우리들의 내일도 다시 흩어질 것이라는 담담하면서도 슬픈 예감이 동반됩니다. 그 짧은 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그 춤을 다시 출 수 없음을 예감하게 하네요. 참으로 역설적인 곡이 아닐까 하네요.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그녀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앨범 발매 기대곡'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에서보다 부드럽고 가볍게 '순화하여'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좀 아쉽습니다. 나쁜 여자가 되어 이별을 일방적인 통보하는 듯한 느낌의 이 곡은 더 무겁고 거친 느낌이 나게 녹음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반추' 역시 공연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트랙입니다. 상당히 잔잔한 곡이기에 앞선 곡과는 다르게 비슷한 느낌으로 녹음된 것으로 들리네요. 심오한 가사는 이별을 불러오는 오해에 대한 가사처럼 들리기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카더라 통신'에 대한 풍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은 6박자로 절제와 격렬함을 모두 갖춘 무도곡 같은 트랙입니다. '입맞춤, 입술의 춤'처럼 '한희정식 비유법(?)'이 다시 느껴지는 제목으로, 사랑을 여행, 특히 '잔혹한 여행'에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 여행같던 사람이기에 여행처럼 시작되어 또 여행처럼 떠날 수 밖에 없고, 모든 여행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이별)에 가까워지기에 사랑은 잔혹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됩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무도곡 중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절망을 향해 내딛는 무도곡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녀의 데뷔앨범 '너의 다큐멘트'에 실리기도 했던 트랙인데 EP에서는 Band version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풍성한 밴드 연주와 어우러진 맑은 피아노 연주는 이 곡에 풍부한 소리의 질감을 더합니다. 공연으로 듣다가 막상 음반으로 들으면 언제나 뭔가 빠진 느낌처럼 허전했던 원곡과는 다르게, 전신을 감싸는 느낌의 풍부함이 좋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트랙은 놀랍게도(!)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언제나 기타와 함께하는 그녀의 앨범에 피아노 연주곡이라니 의외이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연착'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과의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연착은 과연 어떤 연착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는 시작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기에 그 여행 사이에 연착은 아닐까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공항에서 사랑이라는 비행기이 뜨고 내리면서 생기는 연착...사랑과 사랑사이,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텅빈 공항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의 '가이드 한희정'이 안내하는 '잔혹한 여행' 패키지를 마치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어떠셨는지요? 지난 EP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는 더욱 좋아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러브레터'와 같이 짠하게 마음을 적시는 트랙이 없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네요. 이번 EP로 그녀의 셋리스트 선택폭은 더욱 넓어졌을테니, 그녀의 공연들도 기대해봅니다. 내년에는 2집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0/10/26 21:06 2010/10/26 21:06

스테프니 메이어 - 뉴문( New Moon)

소설과 영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사가(Twilight Saga)'의 두 번째 이야기, '뉴문(New Moon)'.

트와일라잇 사가의 본편에 해당하는 4부작('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 그리고 '브레이킹던')은 이미 작년에 한꺼번에 구입하여, 작년에 읽은 트와일라잇을 제외하고는 책장에서 독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더. 오랜만에 그 두 번째 이야기 '뉴문'을 꺼내들어 읽었다.

트와일라잇이 주인공 '벨라 스완'과 뱀파이어 남자친구 '에드워드 컬렌'의 만남부터 고난 그리고 사랑의 확인까지 서장이라면, 뉴문에서는 전작에서 쑤려두었던 떡밥들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전작에서 인디언의 후손 '제이콥 블랙'이 벨라에게 들려주었던 '늑대인간'과 '냉혈족(뱀파이어)'의 전설이 현실화 되면서 포크스에는 새로운 갈등이 생겨난다. 전설처럼, 월야환담 시리즈나 언더월드 시리즈처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과 뱀파이어라는 두 사람의 관계에는 위기가 찾아오고, 제이콥이 늑대인간이 되면서 삼각관계와 비슷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무서웠던 점은 바로 벨라라는 인간이었다. 얼마나 무모하고 대담하고 탐욕적일 수 있는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특히 불사를 얻기위해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벨라의 탐욕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어쨌든 전작의 떡밥 중 늑대인간 떡밥이 드러나지만 가장 중요한 떡밥, '앨리스'가 본 '벨라의 미래'는 '볼투리 일가'와의 불편한 조우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된다. 수 천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재미을 읽어버린 늙은 뱀파이어들조차 흥미로워하는 벨라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을까? 뉴문에서도 그 떡밥만은 확인시키지 않으면서 종결나지만, 볼투리 일가와의 약속으로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제공한다. 더불어 아직 끝나지않은, 벨라를 노리는 '빅토리아'와 벨라를 지키려는 늑대인간들과의 싸움도 남아있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시리즈'에 비교하다면, 트와일라잇이 스스로 종결할 수도 있는 1편이었다면, 여러 사건들이 미완결로 끝나는 뉴문은 3편 '레볼루션' 없이는 종결될 수 없는 '리로리드'랄까? 빨리 다음 이야기 '이클립스(Eclipse)'를 읽어야겠다.
2010/10/24 21:04 2010/10/24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