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



너무나 슬퍼서 심금을 울리고 눈물샘을 자극해버리고 마는, 그리고 너무나 귀에 익숙한 멜로디. 하지만 내가 'Thanksgiving'이라는 제목과 이 곡의 연주자가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얼마전이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작이라는, 사계절 연작 앨범 가운데 하나인 'December'의 수록곡으로, Thanksgiving은 수록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적인 피아노 곡의 제목이 Thanksgiving이라는 점은 어쩌면 의외라고 할 수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Thanksgiving'은 'Thanksgiving day'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 뜻은 '추수 감사절'로 우리나라의 '한가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을 '추수 감사절'이라고 부르기엔, 추수 감사절이 담고 있는 풍요로움과 즐거움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Thankgiving의 또 다른 뜻은 '감사식, 감사제'이다. 이 정도의 뜻을 갖고 마음대로 해석해보면 조금은 어울릴까? 그대를 보내며 그대에 대한 '감사식'이라고. 그래야만 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해석되지 않을까?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입가에 맴도는 단어들을 차마 말할 수 없는 슬픔...

그런데 어쩐일인지, 제목을 알기도 전부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꼭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곤 했다. 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영화에 이 곡이 나왔던가?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는 '안나 카레니나' 정도이고 그 유명한 '라붐' 등은 아주 어렸을 때 봤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이 조우한 작품(?)을.



손발이 오글오글? 지금 생각해도 한국 CF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점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 엄청난 지명도를 생각하면 CF 자체의 수준은 정말 눈물겹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뉴에이지의 대가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을 들을 수 있다. 뛰어난 여배우와 한 장르의 대가가 만났지만 그 결과물은 참담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 CF 덕분에 Thanksgiving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는 '조건 반사'가 형성되었나보다. 이제 여러분도 '파블로프의 개', 아니 '드X의 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2010/09/19 22:50 2010/09/19 22:50

수채화같은 영화가 떠오르는 음악, Olafur Arnalds의 'Eulogy for evolution'

아이슬란드의 뮤지션 'Olafur Arnalds'는 그의 국적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아이슬란드가 바로 'Sigur Ros'의 고향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조금 있겠습니다. 'Bjork'이 바로 아이슬란드 출신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겠죠. 언급한 Sigur Ros나 Bjork같은 고규의 독특한 뮤지션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슬랜드 출신답게  Olafur Arnalds도 평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특히 그는 Sigur Ros의 유럽 투어에서 오프닝 뮤지션으로도 무대에 올라선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Sigur Ros와 다른 색깔이지만 그만큼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라이센스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음반은 'Eulogy of Evolution'입니다. 우리말로는 어색하지만, '진화을 향한 찬양'정도가 되겠습니다. 또 독특한 점은 수록곡 모두가 단지 숫자로 된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련번호라고 생각하면 혹시 이 뮤지션이 작곡한 곡을 첫번째부터 숫자를 붙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곡에서 무려 3천번이 넘는 제목을 갖고 있기에, 한 음악가가 평생 작곡해도 불가능해 보일 법한 숫자를, 1987년 생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그가 그렇게 많은 곡을 작곡했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듭니다.

앨범을 들어보면 혹시 영화같은 영상물에서 쓰이는 장면의 컷 번호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피아노 연주 중심에 현악이 더해진 그의 음악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전형적인 유럽영화(특히 프랑스)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씨의, 수채화 같은 장면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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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위로 아른거리는 햇살에 눈을 뜬 주인공의 이런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야할 법합니다. "그는 이제 없다." 이별인지 사별인지 알 수 없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애써 태연하려고 하지만 쉽지않습니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그녀는 다시 음악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그 시간 속에서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어 한 곡의 음악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슬픔은 물러가고 그녀는 평온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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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이슬이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이른 새벽, 한 남자가 침엽수로 울창한 숲을 걷고 있습니다. 안개가 일어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법하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좇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이 숲과 그가 걷는 이 길에 남겨진 기억들, 그 기억들의 흔적을 좇고 있습니다.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숨도 멈춥니다. 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던 공터 한가운데 섭니다. 공허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요?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아득한 기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0952

싱그러운 아침, 두 남녀가 공원을 산책합니다. 바닥을 뒤덮은 낙엽들과 조금은 두터운 외투가 늦가을임을 알립니다. 기나긴 공원의 산책길,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강물처럼 두 사람 발걸음도 흘러갑니다.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두 사람의 시간도 영원하기를 두 사람의 각자의 마음 속에 빌어봅니다.

1440

조금씩 비가 내리는 어느 흐린 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뒤를 조심스레 쫓고 있습니다. 그는 뒤쫓는 그녀의 존재를 모른 체,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뒤를 쫓는 여자의 옛 애인으로 몇 년전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져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억을 잃었는지, 그녀가 이 추적을 시작하기전 마주쳤지만, 그저 스쳐지날 뿐이었습니다. 몇 개의 건널목들과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집, 한 여인이 마중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눕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제 그녀의 자리는 없고, 이 여인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만이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납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3055

수백년 후의 미래, 지구는 환경파괴와 여러 전쟁들로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몇몇 선택받은 인류는 지구 상의 남은 모든 종의 유전자 정보를 담은 우주선을 타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년, 망망대해보다도 더 넣은 광활한 우주를 십수년간 찾아헤맸지만 남은 인류와 생명체들이 살아갈 만한 또 다른 행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선의 모든 승무원들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끊없는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 순간 레이더가 찾아낸 몇 광년 떨어진 행성 하나. 지구와 비슷한 태양을 갖고 있고, 공기와 물, 모두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당합니다. 아직 수광년 떨어져있지만, 인류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우주선이라면 수 개월내에 도착이 가능합니다. 모든 승무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우주선은 전속력으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2010/09/19 22:45 2010/09/19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