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Mother) - 2009.05.29

이번 리뷰는 스포일러가 가득할 수 있으니, 이미 보신 분들이나 그런 것에 상관없으신 분들 혹은 볼 생각이 없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살인의 추억'의 '살인'과 '괴물'의 '가족'을 조합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Mother)'.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두 가지 코드, 바로 '우연'과 '광신(狂信)'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말한 우연한 한 마디가 우연한 사건, '살인'의 시발점이니까요. 그리고 그 우연이 맞춘 퍼즐은 우연이 아니었죠. 더불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과 영화 밖에서 '광신'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등장인물의 믿음에서 그 광신이 느껴지는데,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봉감독은 전작 '괴물'에서 관객들에게 쌓아두었던 믿음, '가족은 언제나 우리편'이라는 믿음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이자 가족인 '마더(김혜자)'와 아들 '도준(원빈)'이 사이에서도 적용되는 '가족은 언제나 우리편'은 마더와 관객을 함정에 빠뜨립니다. '우리편'이라는 모호한 선악의 경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야겠습니다. '마더'는 '살인의 추억'의 '미궁'과 '괴물'의 '괴물'을 조합한 영화입니다.

'우연'과 '광신'의 화학작용은 결국 사건의 진실을 '미궁'으로 몰아넣습니다. '가족에 대한 광신', 혹은 '가족애'라는 '괴물'이 미궁을 만들어내구요. '괴물'이 가족 밖의 재난을 통해 '가족애'를 확인하는 영화였다면, '마더'는 가족애를 통해 '괴물'을 확인하는 영화입니다. '괴물'이 우리 바깥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라면, '마더'는 우리 내면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덕적인 개인들이 모여만든 집단 '국가'가 결코 도덕적인 집합이 될 수 없듯, 선량한 개인들의 집합인 '가족'도 그럴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반대로 우리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나 '어머니'같은 정겹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제목이 아닌 차갑고 단정적인 느낌의 '마더'를 사용한 의도도 궁금합니다. 일부 종교에서 신을 '아버지', 영어로는 'father'라고 부르듯이 어머니에게 '신성성'을 부여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녀의 (아들에 대한)절대성'이 사건의 불씨가 되고, 그 절대성이 (반어적으로) 사건의 실마리가 되어버리죠. 또, '마더'의 그 이질적인 느낌의 정서적 거리감은 마더(김혜자)의 변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합니다.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는 문구처럼 '선량한 어머니'에서 '다른 존재'로 변하는 그 변화를 내포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마더,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영상이나 연기보다는 그 메시지로 기억에 남을 법한 영화입니다. 반전은 충격적이지만 이미 '올드보이'의 전율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충격은 크지 않습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30 03:28 2009/05/30 03:28

한희정 - 끈

'더더'와 '푸른새벽'의 히로인 '한희정', 솔로 1집 발표 후 약 10개월만에 EP '끈' 전격 발표.

'더더'와 '푸른새벽'이라는 경력으로 수식되었던 '한희정'은 작년 7월에 발매된 솔로 1집 '너의 다큐멘트'로 그녀의 경력들과는 다른 상큼한(?) 모습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녀의 1집이 결코 나쁘지 않은 음반이었지만, '푸른새벽'시절 공연때마다 비좁은 '빵'을 가득 메웠던 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였던 그녀에게 밴드 사운드와 샤방함은, 물론 공연장에서는 좋았지만 방에서 듣기에는, 명곡 '스무살'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이질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앨범의 키워드는 두 개입니다. 앨범의 타이틀 '끈'과 '어쿠스틱'입니다. 앨범 자켓에서 그녀가 잡고 있는 실뭉치, 바로 '끈'이며, 수록곡들을 들어보니 아마도 '인연의 끈'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쿠스틱'은 말 그대로, 기타와 함께하는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격의 앨범 '끈', 시작합니다.

'어쿠스틱'을 표방하고 나섰기에 첫 곡의 제목은 'Acoustic Breath'입니다. 환경소음이 지나간 후 시작되는 기타 연주와 그녀의 목소리, 너무나도 기다렸던 신선한 어쿠스틱의 느낌입니다. 더불어 '끈', 그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기위해 그녀의 기타와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아침 공기처럼처럼 상쾌하지만, 무거운 한숨처럼 서글픔이 묻어있습니다. 과연 그녀가 기다리는 '너'는 그곳에 있을런지요.

이어지는 '러브레터'는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역시 그녀와 기타의 조합, 거기에 새로 합류한 첼로는 서글픈 심상을 대변합니다. 조근조근 키보드 소리는 눈앞을 흐리는 눈물처럼 아롱거립니다. 앞선 Acoustic Breath의 자신의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노래라면, 러브레터는 '너에 대한 바람'을 노래합니다. 결국 보내지 못할 편지는 놓쳐버린 끈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제가 '푸른새벽'이 아닌 '한희정'으로서 그녀에게 기대하던 모습, 바로 이곡에 담겨있습니다.

'끈', 제목 그대로 인연의 끈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마지막은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만'은 1분 30초 정도의 짧은 곡으로 공허한 어리광같은 곡입니다.

'솜사탕 손에 핀 아이'는 그녀의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던 곡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천진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천진하게 부르지만 가사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놓쳐버린 끈에 대한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흐드러지게 핀 꽃들처럼 환하게 웃을 수 밖에 없겠죠.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을 수 밖에 없겠죠. 추억은 추억으로. 그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추억이 소중한 그 만큼,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추억에 대한 예의일테니까요.

'멜로디로 남아'는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번에는 밴드 'Nell'의 '김종완'과 함께합니다. 이미 놓쳐버린 끈에 이제 미련은 남아있지 않나봅니다. 미련들은 모두 눈녹듯 사라지고, 인연에 초연해진 마음은 끈의 그림자를 멜로디로 승화시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귀에 거슬립니다. 차라리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버전으로 수록되었다면 더 좋았을 법하네요. (절대 질투하는 건 아닙니다.)

'끈'에서 받침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끝'이라는 아픈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어쩌면 '끈'의 양쪽을 잡고 있는 '두 사람(二)'에게는 결국 '끝(ㄴ + 二 = 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끈이 결국 '헛된 꿈'이었다고 새침하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이제서야 어떤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로 돌아온 그녀, 게다가 그녀에게 기대하던 아름다운 곡들과 함께하는 그녀,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1집이 세련되고 멋지지만 어딘가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어색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면, 드디어 이 앨범에서 두 어깨에 힘을 빼고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편안한 옷을 찾은 느낌입니다.

Acoustic Breath는 어쩌면 그녀의 이런 모습을 기다려온 팬들을 위한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러브레터는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기타와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언제까지나 귀기울이고 있을테니까. 언제까지나 음악과의 끈을 놓지말아주세요. 반대편에서 그 끈을 꼭 잡고 있을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09/05/28 20:56 2009/05/28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