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왔습니다. '지은'으로 데뷔했지만, 거대 기획사에 밀려 '오지은'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두 번 째 앨범 '지은'.
앨범 타이틀이 1집과 마찬가지로 '지은'입니다. 이것도 그녀만의 identity라고 해야할까요? 앨범 자켓도 역시 본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난 '지은'과는 다르게 이번 '지은'은 컬러에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뇌쇄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그렇기에 같은 '지은'이지만 다른 '지은'입니다. 앨범 수록곡들의 방향에 대한 '복선'이랄까요? 야심차게(?) 전작과 같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2집을 살펴보죠.
'그대'는 앨범의 첫 곡이지만 마지막 곡이라고 해도 어울릴 분위기의 곡입니다. '그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그대'의 반복에서는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 절절함 때문에 가사에는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곡이 기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이별의 노래로 들립니다. 1집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에서 선보였던 곡으로 그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1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어필할 법합니다. '말주변'과 '요령'이 없는 '그대'가 그녀에게 한 '그런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진공의 밤'의 두드러지는 베이스와 드럼 연주의 어둡고 무거운, 퇴폐적인 분위기는 '오지은'이 아닌 '네스티요나'에게서나 들을 법한 곡입니다. 숨막히는 스릴러 영화같은 분위기는 그녀의 또 다른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약', '자빠트리면' 이런 묘한 상상을 하게 하는 단어들은 이 곡을 더 위험하게 합니다.
긴 제목의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는 경쾌한 분위기의 모던락 넘버입니다. 전작의 '부끄러워'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로 제목만으로는 다음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 니고'와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두 곡은 많이 다른 분위기이지만 가사를 살펴봐도 역시나 한 쌍 같습니다. '요즘 가끔 드는 생각'과 '잊으려했던 진실'은 바로 다음 곡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순정만화'의 수록곡 '이게 바로 사랑일까'까지 생각한다면 '사랑'에 관한 3색의 3부작이라고 하고 싶네요.
앨범 타이틀 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섬뜩한 사랑의 진실에 대해 노래합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발상을 뒤지는 충격적인 가사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가사와 더불어 짙은 호소력의 목소리는 이 곡의 흡인력을 절정에 다르게 합니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진실은 이 곡의 '잔인한 미덕'입니다. 풍성한 연주는 귀를 더욱 즐겁게 합니다. 무대에서 이 곡을 통해 본격적인 락커로서 보여줄 그녀의 모습이 기대가 되네요.
'인생론'과 '웨딩송'은 그녀의 어떤 인터뷰처럼 정말 멋대로 만들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곡입니다. '인생론'의 코믹스러운 보컬과 솔직한 가사는 앞선 트랙들에서 쌓아놓은 그녀의 분위기를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웨딩송'은 그 바톤을 이어받아 듣는 사람이 얼굴 빨개질 정도로 솔직한 가사를 들려줍니다. 또 그런 점들은 두 곡을 J-pop처럼 느껴지게도 합니다. 전작의 '그냥 그런 거에요'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의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을 듣고 있으면 그 여유로움에 빠져듭니다. 수평선 넘어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서서 우크렐레 선율에 맞춰 '훌라 춤'이라도 느릿느릿 춰야할 분위기입니다.
앨범의 '화려한 그래서 낮선(?) 전반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익숙한 후반부'를 시작하는, '푸름'은 엄숙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다른 트랙들과는 이질적이며, 피아노와 현악은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제가사는 꼭 한 편의 시조를 듣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목은 '푸름'이지만 듣고 있으면 '주름'이 생길 법도 합니다. '잊었지 뭐야'는 몽롱한 기억같은 몽환적인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후반부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이 곡도 마찬가지로, 이별 후에 깨닳음에 대해 노래합니다. 곡 분위기는 마지막 곡 같지만 아직 네 곡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익숙한 새벽 3시'는 이별의 후유증을 노래합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막연한 누군가가 무작정 그리운 새벽 3시의 감정들은, 아픈 이별들 겪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법합니다. '두려워'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합니다.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기억의 상처 때문에 사람은 복잡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더 복잡한가 봅니다. 앨범 전반부가 서로 다른 개성의 곡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면, 잔잔한 후반부는 이 곡에서 클라이막스를 들려줍니다.
'차가운 여름밤'은 앨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으로 전작의 '작은 방'같은 분위기입니다. 보컬과 연주를 한 번에 녹음했는지, 라이브를 같은 거친 느낌이 앞의 12트랙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7분에 이르는 긴 트랙인데도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보너스 트랙 '작은 자유'는 앞선 사랑 이야기들의 잔잔한 에필로그같은 곡입니다. 아픔, 두려움, 고통 모두 사라지고 모난 마음이 둥근 조약돌이 되어 평온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 너무 멀리있지만 더 큰 사랑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분한 기타 연주는 그 평온함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마지막 허밍에서 마음의 평온과 여유가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소속사가 생기고 좀 더 넉넉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지난 앨범에 비해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지난 '지은'의 성공 덕분인지 이번 '지은'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뭔가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결과물이 조금 아쉬웠던 전작과는 달리, 어깨에 힘은 빠졌지만 좀 더 자신있는 목소리는, 좀 더 '지은답게' 들립니다. 더 멋진 지은이 되어 돌아온 '지은', 별점은 4.5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오지은 - 지은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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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 꽃, 다시 첫번째
6년 만에 돌아온 그녀, 박지윤의 일곱 번째 앨범 '꽃, 다시 첫번째'
저와 동갑이고 제 10대의 아이돌이었던 그녀, 제 나이를 생각하니 상당히 많네요. 그 동안 무얼하며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앨범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다시 첫번째'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겠죠?
잡음과 함께 조근조근 들려오는 목소리의 '안녕'은 이어지는 '봄, 여름 그 사이'의 intro 성격의 트랙입니다. '봄, 여름 그 사이', 박지윤의 자작곡으로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제목처럼 봄과 여름의 사이, 아마도 만물이 살아숨쉬는 오뉴월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조로운 단어들의 나열로 감정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경쾌한 기타와는 담담히 읊조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바이올린만이 그 서글픈 감정을 은은히 들려줍니다. 마지막 '안녕'은 너무나 태연합니다.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용린이 작사 작곡한 '바래진 기억에'는 앞선 '봄, 여름 그 사이'의 철저한 감정의 절제와는 상반되는 곡입니다. 현악 세션은 '타이틀곡의 기본'이고, '과잉'까지 치닿지 않는 감정 표현은 인디씬에서 나온 곡다운 '미덕'입니다.
'4월 16일'은 밴드 'Nell'의 보컬 '김종완'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요. 잔인하다는 4월, 그 중간의 16일이 이 곡의 제목입니다. Nell의 감수성서첨 가사는 매우 쓸쓸합니다. 하지만, '쿵작짝'의 세 박자로 진행되는 멜로디는 이런 가사와 곡의 심상과는 다르게 나아갑니다. 가사 및 목소리는 슬픈 빛을 내지만 멜로디는 너무나 찬란한 밝은 빛을 낸다고 할까요? 세박자로 진행되는 멜로디는 바로 '봄'과 어울리는 '왈츠'을 떠올리게 합니다. 왈츠의 기쁨 속에서 그 슬픔은 더욱 빛이나게 됩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 찬란한 슬픔의 봄, 잔인한 4월에 느껴지는 아픈 이별의 감정들을 이보다 더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요.
'그대는 나무같아'는 박지윤의 자작곡으로 화창한 날의 산책같은 잔잔한 분위기입니다. 박지윤의 자작곡들은 모두 잔잔하며 묘사적인 분위기로 한 장의 사진을 연상시킵니다.이어지는 '잠꼬대'는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작사로 참여한 곡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사는 랩으로 만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느낌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 술에 취한 진심들은 아프기만 합니다. '봄눈'은 옛 연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작사 작곡은 '루시드 폴'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쿠스틱 기타 연주만 노래와 함께 한다고 해도 잔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연출될 법합니다.
'돌아오면 돼'는 기승전결이 뚜렸한, 가장 '가요다운' 곡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 '비'와 'GOD'를 위해 여러 곡을 작곡한 경력이 있네요. 마지막 곡 '괜찮아요'는 첫 곡과 마찬가지로 박지윤의 자작곡이고 이별 노래입니다. 첫 트랙이 '안녕'이었는데 '괜찮아요'와는, 마치 '마지막(이별) 두 마디'처럼 닿아있는 느낌입니다.
실력파 뮤지션들과 조우하여 상당한 수준의 곡들을 여럿 들려주고, 자작곡의 비율 및 그 완성도도 나쁘지 않은, 박지윤의 discography에서 전환점이 될 만한 앨범입니다. intro 성격의 '안녕'과 히든 트랙을 제외하면 8곡 밖에 되는 않는 점은 온라인 음원이 아닌 CD를 구입하는 팬들에게는 이 앨범이 반가우면서도 분명 아쉬운 점이 될 것입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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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윤, 예스24 이주의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