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시로 가즈키 - 연애소설

가네시로 가즈키, 제일교포 작가로서 그의 소설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로도 발표되었기에 전혀 낯선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물론, 그의 소설이 원작이 된 영화도 본 적이 없기에, 이름과 제일교포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펴보았다.

'연애소설', 다 읽고 나면 참으로 엉뚱한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연애소설'이기는 하지만 이 책 전체를 대표하는 제목으로서는 뭔가 어색하다. 알고 보니 원래 제목은 '對話篇(대화편)'이다. 원제처럼 이 책에 담겨있는 세 가지 이야기는 대부분 '대화'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상당히 신기하다. 세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유명 사립대학교 법학부' 출신들의 이야기로 일종의 '도시 전설'처럼 들린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연애소설'과 두 번째 '영원의 환'이 그렇다. 모두 '사랑 이야기'이면서, 또 모두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죽음에 관한 호기심'으로 진행된다. '죽음과 맞닿은 호기심', 신화적인 모티브라는 점도 재밌다.  '법학부' 외에도 '레코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백혈병' 등의 소재로 세 이야기들을 느슨하게 연결한 점도 흥미롭다.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의 투영이라는 말은 역시 사실인가보다. 작가가 '제일교포'이기에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역시 느껴진다. '연애소설'의 '투명인간'이나, '영원의 환'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K'의 정체, 그리고 마지막 '꽃'의 '도리고에 가의 전설'까지, 제일교포로서 그가 성장하면서 경험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앞의 두 이야기의 결말이 정말 섬뜩한 '도시 전설'같은 이야기라면, 마지막 '꽃' 제목처럼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롭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간결하고 맛깔나게 풀어나가면서도 그 안에 있어야 할 '중요한 알맹이 혹은 감동'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필력은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될 만큼 사랑 받는 작가'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2014/05/08 02:38 2014/05/08 02:38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은 '미스터 SF'라고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스타쉽 트루퍼스', '여름으로 가는 문'에 이어 세 번째인데, 제목은 '여름으로 가는 문'만큼이나 시적이지만 내용은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정치적이다. 다만 '스타쉽 트루퍼스'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SF 소설이다. 작품은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시작하여 독자적인 문화와 경제를 구축한 식민지 '달 세계'가 그들을 지배하는 지구의 '세계 연맹'과 '총독부'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SF소설들은 보통 '신화, 전설, 그리고 고전에 대한 오마주나 패러디',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의 풍자' 혹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진행된다. 그 사건은 '달 세계의 독립'과도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18세기의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실제로 작품 속 여러 고유명사들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차용했고,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여러 소재들은 가져왔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찌보면 기승전결은 뚜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진행이지만, 여기에 SF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치밀한 상상력'이 녹아들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총독부를 뒤엎고 독립을 향한 '혁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세 사람 '미구엘', '교수', '와이오밍'의 구성은 각각 '프랑스 대혁명' 정신적 이념인 '형제애, 자유, '평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젊은 남자의 행동력', '나이든 사람의 지혜', '젊은 여성의 풍요로움(수태 능력)'를 의미하는 모양새다. 이런 3인조의 구성은 후대의 SF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속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의 '삼위일체(trinity)'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지구 태생이자 온전한 지구인으로 달 세계 혁명의 끈끈한 동지가 되는 왕정주의자 '스튜어트'의 모습에서는 여러모로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한 '라파예트'가 떠오른다.

'달 세계 식민지'는 인간의 달착륙을 목격한 작가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실현 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렇기에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존재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SF적인 요소이다. 혁명을 이끄는 세 사람에게는 '신의 권능'과도 같은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도움으로 독립 혁명을 성공하는데, 약간의 제한이 있지만 달 세계에서는 거의 '전지전능'한 '마이크'가 그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지구'와의 싸움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을 넘어섰지만 인간에게 우정을 느끼고 '인간들의 놀이'에 동참하는 그의 모습은 '신'에 가까우면서도, 능력에는 확실한 제한이 있다는 점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불완전한 신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500 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이지만,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상상력과 필력은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과학기술적인 SF 요소 외에도 미래 인간 사회에 대한 작가만의 재밌는 장치들도 숨어있는데, 대표적으로, 여자가 부족한 달 세계에서 특별하게 고안된 결혼 형태인 '가계 결혼'이라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지구와는 다른 달 세계 사회까지 세밀하게 글로 풀어나가는 부분에서 그에게 '미스터 SF'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깨닿게 한다. 아마 현대 SF 마니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티브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현대 SF의 기반을 확립하고, 우리보다 수 십년 앞서 살면서 우리의 수 십 수 백 년 뒤를 꿈꾸었던 거장의 걸작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달 세계 사람들의 기본 정신이자 혁명의 밑거름이 되는 명언 '탄스타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 TANSTAAFL)'는 현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냉철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으로,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2014/04/30 01:43 2014/04/30 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