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전화

끊긴 전화 (도 종 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것을 눌러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 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 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2003/04/19 23:17 2003/04/19 23:17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지은이 : 도 종 환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 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2003/04/19 23:14 2003/04/19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