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tone Project (에피톤 프로젝트)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두 번 째 정규앨범 '낯선도시에서의 하루'.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대표 아티스트이라고 할 만한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가 두 버째 정규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파스텔뮤직과 계약 이후, 2009년 기존 발표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 '긴 여행의 시작', 2010년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를 발표했고, 2011년에는 'Lucia(심규선)'과 함께 'Lucia with Epitone Project'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방'을 발표하면서 파스텔뮤직 소속의 어느 뮤지션들보다도 꾸준히 달려오고 있는데, '2012년'도 쉬어가지 않고 '대표 뮤지션'으로 쐬기를 박을 기세인지 두 번째 정규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발표했습니다.

수록곡들을 살펴보면서 눈에 띄는 것은 지난 두 장의 앨범과는 다르게 여성 보컬의 곡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여성 보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은, 이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여성형 페르소나'라고 의심할 만한 '한희정'과의 듀엣곡 뿐입니다. 'Lucia with Epitone Project'로 여성 보컬곡을 모두 소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달라진 '음악적 어조'나 또 다른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흥미롭게도 스페셜 앨범과 정규앨범 두 장의 앨범 제목들을 살펴보면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목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긴 여행 시작하고(긴 여행의 시작),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되찿아(유실물 보관소) 낯선 도시에서 경유하는(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일련의 과정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적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 끝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교통방송처럼 들리는 배경음으로 시작하는 '5122'는 제목의 의미부터 궁금해지는 인트로 곡입니다. 4자리 숫자로된 곡 제목은 'Olafur Arnalds'의 앨범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앨범의 제목을 생각한다면 '낯선 도시'로 떠나는 항공편의 번호나 철도편의 번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하게도 총 51분 20초대인 이 앨범의 재생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낯선 도시를 담은 사진들이 담겨있는 아이폰 속 사진첩의 비밀번호일까요?) 우아한 3박자의 춤곡 '미뉴에트'는 곧 도착할 '낯선 도시'에 대한 조금의 설렘과 조금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춤곡에 이어지는 '이제, 여기에는'는 리듬감과 -지난 두 앨범을 들었다면 차세정, 그의 곡들에게는 그다지 어울지 않는 단어인- 진취적인 느낌이 전해지는 보컬곡입니다. 이 앨범을 포함한 그의 세 장의 앨범 모두, 첫 두 곡 정도는 이 리듬의 도드라집니다. 공연을 염두한 의도적인 곡 배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연의 오프닝에 배치하기에는 딱 좋은 곡들이라고 생각되거든요. (그가 파스텔뮤직 소속이 되면서 그의 노래들은 계속 들어왔지만 공연을 직접 본 일은 없어 확인할 길은 없네요.)

'시차', 상당히 지리적이며 과학적인 단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인가 봅니다. 애써 담담하고 태연하려는 모습 넘어로 뭍어나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시차'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떠오르게 합니다.

"먼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곳은 새벽인데 그곳은 밤이라 합니다.
이렇듯 우리 사랑에는 시차가 있는가 봅니다.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돗한 그리움뿐,

나는 새벽인데
그대는 밤이라 합니다."

물론 이 시에는 마음의 시차를 이야기하고 노래는 실제적인 '시차'에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지만, 결국 '누구와도 같지 않으니 누구라도 다른 거니까'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닮아있지 않나요? 영어의 관용적인 표현인지 영미권 노래들에서 종종 사랑의 변화를 계절에 변화에 빗대어 표현하곤 하는데(이제는 우리나라 노래에서도 많이 이용하는), 그 만큼이나 '시차'의 문제는 생각해 볼 만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마음의 시차'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앨범에서 유일한 듀엣곡이자 유일하게 여성 보컬을 들을 수 있는 '다음날 아침'은 '한희정'과 함께한 곡입니다. 그녀의 듀엣은 '그대는 어디에'와 '이화동'에 이어 세 번째인데, 앞선 두 곡이 '절정'에 위치한 곡이었다면, 이 곡은 상당히 차분한 '전개' 정도가 되겠습니다. 또, '그대는 어디에'나 '이화동'에서 그녀는 보컬과 코러스를 오가는 피쳐링(featuring)으로 '여성보컬로서의 매력'을 들려주었다면, 이 곡에서는 차세정과 비슷한 비중의 '듀엣(duet)'으로 '한희정으로서'의 진정한 매력을 들려줍니다. 건조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매력은 그녀의 새 앨범을 더욱 기다리게 만듭니다.

'다음날 아침'이라는 제목에서, '그럼 전날은 무슨 날이었나?' 궁금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영화나 소설에서 중대한 사건이 있고 다음날의 시작을 알릴 때 쓰이는 자막이나 문구인 '다음날 아침'에서 따온 제목이 아닐까요? '눈을 떠보면 새로운 아침이..'라는 가사가 있어서, '눈을 뜨면'이 생각나는데 가사의 내용도 적당히 개연성이 있게 들립니다.

일상의 시간 순서로는 어색하지만 '다음날 아침'의 다음 곡은 '새벽녘'입니다. 기억과 추억, 인사와 눈물이 뒤범벅이 된 가사는 '눈을 뜨면'으로 대표할 수 있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감성을 다시 한 번 들려줍니다. 유희열의 청승과 윤상의 세련미가 만난 음악이 바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매력이 아닐런지요. '초보비행'은 어찌 들으면 소박한 청혼같은 노래입니다. 감성을 울리는 슬픈 노래들이 대다수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에서 이런 따뜻한 감성의 노래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노래가 전하지 못한, 혼자만의 바람과 공허한 혼잣말처럼 들리는 사람은 저 뿐인가요?

'국경을 넘는 기차'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연주곡입니다. 앞선 두 앨범에서는 적지 않은 연주곡이 아쉬웠는데, 이 앨범에서는 intro와 outro를 제외하면 유일한 연주곡이라 오히려 반갑습니다. 듣고 있으면, 철로 위를 조급하게 달리는 기차와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치는 풍경들처럼 적당한 속도감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전해집니다. 그 여행의 감정 덕분에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곡입니다.

'떠나자'는 이 앨범의 절정이라고 할 수있는 곡입니다. 수록곡 순서대로 콘서트가 진행된다면 이 곡 즈음에서 꽃가루도 날릴 법합니다. 가사를 잘 음미하면 '낯선 도시'의 정체가 조금은 보입니다. 아마도 '낯선 도시'는 처음 가본 진짜 낯선 도시면서, 동시에 이제는 기억 속에 묻어둔, 가사를 빌리자면, '우리 함께했던, 우리 사랑했던 수많은 날'을 보낸 '다정했던 이 도시'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열어보면 잠깐 동안만 방문할 수 있는 그런 도시가 바로 '낯선 도시' 아닐까요? '긴 여행'을 떠난 그가 '유실물 보관소'에서 찾은 추억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였으리라 봅니다.

트럼펫 연주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전해지는 '우리의 음악'은 앨범이 결말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사는 앞선 노래 '떠나자'에서 했던 유추들을 확인시켜 줍니다. 마지막 가사 '오늘처럼'은 바로 추억 속 그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와 같아보입니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 낯선 도시에 도착한 설렘이 되겠고, '다음날 아침'은 그 짧은 하루를 보낸 아쉬움이 되겠구요.

잔잔하게 시작해서 점점 스케일을 키워가는 '믿을게'는 앨범과 공연의 피날레에 어울리는 곡입니다. 이별에 대한 담담하게 절제된 목소리는 처절한 감정의 표출보다 오히려 더 눈물겨울 때가 많은데, 차세정은 가창력이 출중한 보컬이라고 할 수 없어도 이런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소리내에 울지 않는 울음이나 조용히 흐르는 눈물처럼 감정을 흔들어 놓습니다.

'터미널'은 제목처럼 앨범을 닫는 곡입니다. 하지만 터미널은 모든 여정이 끝나는 동시에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기에  사랑의 여행이 끝나고 이별의 여행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 곡까지 들으면서 꿈 같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왠지 영화 '인셉션'의 림보 속 도시에서의 일상과 겹쳐졌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듯, 마지막 '미뉴에트'는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는지 '5122'과 같은 멜로디입니다. 하지만 춤곡이라고 하기에는 쓸쓸한 피아노 연주는 사랑이 남기는 슬픈 그림자 같습니다.

기대 유망주였던 에피톤 프로젝트는 이제 음반의 판매량이나 공연의 규모와 흥행에 있어서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스페셜 앨범과 첫 정규앨범, 그리고 루시아(심규선)과 함께 작업한 앨범을 거쳐 두 번째 정규앨범까지, 꾸준한 창작력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음악 활동도 보여주고 있구요. 이번 앨범에서는 자신의 보컬에 더욱 집중하면서 앨범을 관통하는 스토리텔링과 응집력을 들려주었습니다.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기다려집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2/08/23 15:49 2012/08/23 15:49

Lucia with Epitone Project - 자기만의 방

오랜 준비 끝에 모습을 드러낸 파스텔뮤직의 야심작,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자기만의 방'.

2010년 10월과 11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으로 앨범을 예고했었던 '심규선'이 해가 바뀐 2011년 9월 드디어 정규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약 11개월의 시간이 흘러 앨범을 발표하는 그녀의 이름은 'Lucia(그녀의 세례명)'로 바뀌었고, 'Lucia with Epitone Project'로서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한 '자기만의 방'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번 앨범 발표에 앞서 올해 5월에 공개된 디지털 싱글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까지 세 싱글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들려주면서 앨범에서는 어떤 곡들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는데 꽤 오랜 기다림이 되었군요.

고독으로 가듣찬 입김같은 허밍을 들려주는 '첫 번째, 방'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꼭 '한희정'의 허밍과 비슷하게 들리더군요.) 첫 곡은 싱글로 공개되었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입니다. 가요에는 주로 짧은(단편적이면서도 간결한) 제목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이 곡의 제목이 상당히 장황하고 마치 외국어를 번역해 놓은 제목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제목을 처음보았을 때 일본의 '나카미시 미카'의 '연분홍빛 춤출 무렵' 같은 곡이 생각나더군요. '꽃처럼 한 철'이라는 비유가 참으로 멋들어진데, 째즈풍으로 편곡된 연주는 윈드차임의 신비함과 어우러져 어련한 봄날의 싱숭생숭함과 기다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기다리는 사랑', 혹은 '사랑의 기다림'을 알린다고 할까요. 무려 Lucia의 자작곡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디'는 디지털 싱글 '두 번째, 방'로 공개되었던 곡으로 정규앨범에서는 Album version으로 재녹음되었습니다. 재녹음되면서 과도한 애드립이 줄어들면서 보컬이 싱글에서보다 부드럽게 곡에 융화되었습니다.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의 장기인 현악을 적절히 이용한 감성 발라드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보컬이 악기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본인의 앨범과는 다르게 이 앨범에서는 Lucia의 목소리가 곡의 중심에서 들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곡으로도 손색이 없어서, 앨범 공개에 앞서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이나 타이틀로 내세운 '어떤 날도, 어떤 말도'와 함께' 트리플 타이틀 전략이 아닐까 하네요. 이어지는 '고양이 왈츠'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으로 공개되었던 곡입니다. (첫 세 곡이 연속으로 싱글곡들이네요.) 가벼운 왈츠의 세박자와 함께 봄날의 설렘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앨범 공개 일주일 전에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입니다.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가사이지만 연주는 상당히 밝고 경쾌합니다. 시작부터 경쾌한 피아노 연주는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빠르게 스쳐지나며 '안녕'하는 '스무살의 어딘 가'을 표현하고 있나봅니다. 연주과 가사의 다른 분위기만큼 '웃음지은 눈물' 그려내기에 적절한 기교가 또 있을까요.

'Sue'는 Lucia의 자작곡으로 이 앨범에서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기도 합니다. 제목 다음에는 'inspired by Fingersmith'라고 적혀있는데 'Fingersmith'는 2002년에 발표된 'Sarah Waters'의 소설이자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5년에 영국 'BBC'에서 제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었지만, Lucia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를 이해할 수 없지만, 너 없이 살 수 없다'고 외치는 후렴구는, 바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에도 빠지게 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호소가 아닐까 하네요.

첫 트랙 '첫 번째, 방'이 1분이 되지 않는 트랙이었지만, 앨범의 후반을 여는 '두 번째, 방'은 2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선율은 이어지는 '어떤 날도, 어떤 말도'의 인트로인 동시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참여했다는 발자국 같은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두 트랙은 디지털 싱글의 제목이기도 한데, 디지털 싱글 수록곡들과는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싱글 '두 번째, 방'에 수록되었던 '부디'는 앨범의 전반부인 '첫 번째, 방'에 가있으니까요.

'어떤 날도, 어떤 말도'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체적으로 무난한 전개로 앞선 '부디'나 '안녕, 안녕'보다 부족한 임팩트는 아쉽습니다. 다만 간주에 등장하는, 트럼펫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가을의 공기만큼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플루겔혼' 연주는 인상적입니다.  째즈풍의 '버라이어티'는 Lucia의 뮤지컬 배우로서의 경력이 물씬 느껴지는 곡입니다. 다분히 뮤지컬 삽입곡 같은 전개와 브라스와 현악을 배치하여 반짝이는 화려함을 들려주는데, '임상아'의 '뮤지컬'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고양이 왈츠 Acoustic'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 왈츠의 어쿠스틱 버전입니다.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사랑에 대한 설렘이 느껴진다면 어쿠스틱에서는 설렘보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더 크게 들리네요. '어른이 되는 레시피'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기에 Lucia의 자작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을 뒤엎고 차세정의 곡입니다. 앞선 '고양이 왈츠'에 이어 어쿠스틱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고양이 왈츠가 제목처럼 왈츠의 세박자로 느긋하게 흘러간다면 오밀조밀한 연주로 속도와 긴장감을 조성하여 귀를 사로잡습니다.

'웃음'은 이 앨범에서 Lucia의 뒤에 숨어있었던(?) 차세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Lucia와 차세정의 듀엣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에피톤 프로젝트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기도 하면서 다른 점들도 들립니다. 역시 현악의 연주는 '에피톤 프로젝트답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비극적인 씁쓸함'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웃음'은 해맑은 미소가 아닌 허탈한 쓴웃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앨범의 문을 닫는 앨범 제목과 동일한 '자기만의 방'은 Lucia가 제일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버라이어티'와 마찬가지로 째즈와 뮤지컬이 어우러진 분위기는 그녀가 지향하는 음악적 목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이 붙었겠죠.

보컬리스트와 프로듀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앨범은 요조(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타루(with Sentimental Scenery, Swinging Popsicle)에 이은 파스텔뮤직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디씬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런 조합의 시도는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인 가창력과 더불어 (홍대에서 듣기 쉽지 않은) 또박또박 아나운서같은 명료한 발음이 돋보이는 보컬리스트 Lucia와 보컬리스트들과의 협업에서 재능을 보인 물이오른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은 지난 조합들보다도 탁월한 출발을 들려줍니다. Lucia와 에피톤 프로젝트, 두 사람이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죠. 별점은 4개입니다.
2011/10/06 21:14 2011/10/06 21:14

부디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코라보레이션,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두 번째, 방'

파스텔뮤직의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두 번째, 방'이 발표되었습니다. 파스텔뮤직으로서는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이미 '요조 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로서 시도해본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하고 할 수 있겠네요. 요조의 경우 앨범 발매 전부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공연을 함께하는 전략으로 입소문을 늘려가다면, 심규선의 경우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에 참여 후 함께 심규선의 이름을 걸고 연작 싱글을 발표하고 있으니,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첫 번째, 방'이었으니, 두 번째는 거실, 부엌, 욕실(?) 등등 중에서 나올줄 알았는데 두 번째도 '방'이라니 허를 찌르고 말았습니다. 혹시 대저택에 살아서 방이 여러개인 건가요? 자는 방, 옷방, 공부방, 놀이방 등등...?

지난 싱글 수록곡 '고양이왈츠'가 방처럼 따뜻한 '왈츠'였다면, 이번 싱글 수록곡 '부디'는 '방'이라는 공간의 다분히 개인적인 느낌처럼 슬픈 '발라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오케스트라, 기타 솔로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소리들은 에피톤 프로젝트답습니다. 지난 싱글에서 꼭꼭 숨어있던 에피톤 프로젝트가 그의 진짜 모습을 활짝 드러냈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심규선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에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객원보컬들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다분히 절재된 감정을 보여주었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들과는 다르게, 심규선의 이름을 달고 나온 '부디'에서는 감정의 기복을 확연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부디(feat. 심규선)'이 아닌,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이 될 수 있겠지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발라드이면서도 심규선의 또 다른 매력도 담겨있는 곡이 바로 '부디'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감탄사(오~)를 지나치게 남용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없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3연작의 마지막 '세번째, 방'도 기대해보도록 하죠.
2010/12/01 23:33 2010/12/01 23:33

고양이왈츠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신예 뮤지션 '심규선'의 첫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에 객원보컬로 참여해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파스텔뮤직의 신인 '심규선'이 그녀의 첫 싱글 '첫번째,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심규선이라는 이름은 아직 귀에 익지 않은데, 그녀의 약력을 살펴보면, 밴드 '러브홀릭'이 보컬 '지선'의 탈퇴 이후 새 멤버 영입을 위해 연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뮤지컬 '마법사들'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러브홀릭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이기에 1위를 하고도 멤버로 영입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에피톤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녀와 저는 이렇게 음악으로 만나는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앨범 '유실물 보관소'에서 '선인장'과 '오늘', 두 곡으로 절제된 감성과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멋진 조합을 보여주었죠. 앨범 제목은 '첫번째, 방'이지 수록곡은 '고양이왈츠'뿐인(물론 어쿠스틱 버전이 따로 있지만) 이번 싱글에서도 탁월한 조합을 이어갑니다. 바로 크레딧을 보면 작사/작곡 및 프로듀싱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양이왈츠'는 제목처럼 왈츠의 느낌을 살린 세 박자의 곡입니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고양이의 걸음처럼, 왈츠의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스타카토의 키보드 연주는 그 사뿐함을 더하고, 퍼커션과 아코디언은 마치 놀이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아코디언의 음색은 언제나 아련한 어린시절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실물 보관소'의 두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사랑에 대한 수줍음과 설렘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역시 매력적이구요.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더욱 담백한 느낌의 그녀를 들을 수있습니다. 단촐한 기타 연주는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씨라면, 은은히 흐르는 현악은 수줍은 그녀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기타와 현악의 조합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모습도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왈츠의 세 박자에 아코디언 연주와 고양이까지, 모두 '봄'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들인데 이 싸늘한 가을에 발표된 점은 의외입니다. 의도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싱글 제목인 '방'에 있을 법하네요. 방의 아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겠죠. '첫 번째'는 이 싱글의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싱글 시리즈의 첫 번째를 의미하겠구요. 센티멘탈 시너리와 타루의 조합에 이어, 심규선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가 되네요. 더불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심규선의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하구요

2010/10/31 02:58 2010/10/31 02:58

Epitone Project - 유실물 보관소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

작년 발표된 '긴 여행의 시작'은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으로 파스텔뮤직에 합류 이후, 정규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기다림에 목이 마를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발매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정규앨범이 늦어지면서, '긴 여행의 시작'이 아닌, '긴 기다림의 시작'이 되어버렸죠.

앨범을 시작을 여는 트랙은 앨범 제목과 같은 '유실물 보관소'입니다. 신디사이저와 함께 시작되는 고요한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일렉트릭기타가 어우러지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합니다. 캐나다의 'Steve Barakatt'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진취적인 사운드와 함께 펼쳐지는 사랑의 순간 순간들. '유실물 보관소',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떠나는, 또다른 '긴 여행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유실물 보관소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억들,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살펴보죠.

"유난히 검은 밤, 그래서 유난히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 밤. 모든 이야기는 그 밤에 시작되었는지도 몰라요."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미 여러 앨범에서 피쳐링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루싸이트 토끼'의 '조예진'이 참여한 트랙입니다.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시티팝의 향기는 조예진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루싸이트 토끼의 곡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진 분위기를 들려줍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밤, 가로등 아래서 멀어지던 그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잃었을까요?

"소중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날 때, 그 순간의 감정은 한숨 섞인 미안함 뿐인 걸... 너는 알고 있니?"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유망주 '이진우'가 참여한 '한숨이 늘었어'는 전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가 떠오르는 트랙입니다. 푸르고 높은 하늘처럼 청명한 목소리가 빛나는 클라이막스는 '찬란한 슬픔의 한숨'을 표현합니다. '재밌다는 영화를 일부러 찾는' 그의 모습은 '그대는 어디에'에서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긴'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대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처럼, 사랑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 그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숨을 짖구요.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봄이 찾아오길...그대가 없는 세상이라는 사막에서 나를 지키며 선인장처럼 묵묵히 서있을테니..."

익숙한 기타 코드과 함께 시작하는 '선인장'은 여성보컬 '심규선'의 목소리로 불려집니다. 편안한 멜로디 위를 흐르는, 마치 '선인장 재배 지침서(?)' 같이 시작해서 선인장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위로하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관조하는 듯한, 정말 굿굿한 선인장같은 음색을 들려주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인상적이구요. 연가가 되어야 할 법한 기타 연주는, 아주 약간의 습기를 간직했고 적당히 건조한 보컬과 함께 평정심을 유지한 이별 노래를 완성합니다.

기억과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새, 쉽게 지날 수 없는 '좁은 문'을 지나 또다른 유실물로 시선은 옮겨갑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 하늘 아래서 느껴지는 소중했던 순간들, 그리고 찬란한 슬픔..."

'이화동'은 지난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에 이어 다시 한번 '한희정'과 호흡을 맞춘 트랙입니다. 함께 걷던 골목길과 눈이 부신 햇살과 사소한 나뭇잎에서 조차도 느껴지는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세정과 한희정의 듀엣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그 슬픔의 찬란함을 더할 나위없이 잘 표현하고 있구요.

'해열제'는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신예 'Sammi'가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에서는 '재주소년'의 '아스피린'이 떠오르더군요.)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과 함께  사랑의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열병, 그 열병을 위한 해열제는 '눈물을 쏘옥 빼는 일'일까요?

연주곡 '시간'은 서랍속 옛 일기장처럼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버린 시간들을 담고 있을 법합니다.

"기억해. 기나긴 이별의 겨울을 지나서 다시 찾아올 우리의 봄이 있다는 걸..."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하는 '손편지'는 차세정이 부르는 트랙입니다. 비록 이별이라는 아픔의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찾아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자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진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흐르는 목소리에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와 함께 써내려가는 손편지처럼, 간절한 진솔함이 담겨있습니다.

'서랍을 열다'는 연주곡이지만 앞선 트랙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크로스오버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는 트랙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진 묵직한 비트의 그루비함은, '째즈 힙합'을 연상시킵니다. 지난 앨범의 수록곡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와도 닮아있는데, 그루비함은 간결함과 그루함은 더 합니다. 평범한 어느날 무심코 연 서랍 속에서 발견한 시간의 흔적들, 그 상황에서 밀려오는 추억의 그림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들...결국 모두 나만의 착각이었나요?"

'오늘'은 '선인장'에 이어 다시 심규선이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차분한 어조로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의 슬픔을 담아냅니다. (가사에서 Alanis Morissette의 Simple together가 떠오릅니다.) 역시 차분한 피아노 연주는  그녀가 묻는 물음들, 그 하나 하나가 마음을 아리게 하고, 마법이 되어 대답을 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네요.

'봄의 멜로디'는 연주곡으로 '손편지'에서 노래한 '봄'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하지만 그 봄의 따뜻한 느낌은 어쩐지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려옵니다.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법한 이미지(들을 법한 멜로디)라고 할까요?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닿아있다면, 어디선가 들을 수 있기를..."

마지막 트랙 '유채꽃'은 차세정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에필로그와도 같은 트랙입니다. 노래하던 봄은 결국 찾아왔고 화자는 유채꽃이 핀 제주도에 왔습니다. 하지만 슬픔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앞선 '봄의 멜로디'가 꿈 속의 멜로디로 들린 것처럼, 화자는 홀로 제주의 언덕에 서있습니다.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귀를 간지럽히는 바닷바람같습니다. 그 바람 속에 흩날리는 화자의 목소리는 건조하지만, 눈물인지 파도인지 알 수 없는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펼쳐진 그 길들을 걸으면서 화자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런지요.

기쁨과 슬픔, 웃움과 눈물이 담겨있는 추억을 보관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주인을 기다리는 기억들(혹은 유실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기억(유실물)을 발견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 그러셨다면, 오늘은 꼭 찾아가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 베갯잇에 촉촉히 이슬이 내려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9/19 21:39 2010/09/19 21:39

한희정 Dawny Room Live 3 in 12월 24일 숲의 큐브릭

2009년 연말 '숲의 큐브릭 출동' 시리즈 두 번째와 세 번째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열린 '한희정'의 'Dawny Room Live 3 - 같이 쉬자, 숨!'이었습니다. 지난 'Dawny Room Live 2'를 놓친데다가, '숲의 큐브릭'에서 열리는 그녀의 공연은 처음이있기에 이틀 모두 예매하고 말았죠. 당연히도 70명 한정의 공연은 조기매진되고 말았구요. 빨리 예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인기가 좋은 그녀의 공연이라 입장번호는 30번대였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겠도 입장해서는 비교적 앞쪽인 세 번째 줄에 앉을 수 있었죠.

공연 시작 시간이 8시가 지나 아무말 없이 무대 위로 등장한 주인공 '한희정'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유명곡 'What a wonderful world'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70명의 예매자들의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갈 곳 없는 솔로들이기에 과연 이 곡이 어울리는 곡인지 아이러니했습니다. 지난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예전 '쿨에이지' 멤버였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 그리고, 키보디스트 '진아'와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산뜻한 느낌의 '산책'은 겨울에, 더구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어 또 다른 커버곡 'Cheek to cheek'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조용한 노래만 부르던 그녀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커버곡이라죠. 째즈 곡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팬들을 위한 작은 파티같은 숲의 큐브릭 공연과 어울렸고, '뺨에 뺨을 맞대고'라는 제목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와닿는 곡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녀의 EP 수록곡이자, 제가 '올해의 곡' 가운데 하나로 꼽는 '러브레터'가 은은히 울려퍼졌습니다. 숲의 큐브릭을 찾은 수많은 솔로들을 마음을 대변하고, 그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너무나 좋은 곡이었죠. 생각해보면 영어제목이지만 영어로 적지 않고, 우리말 발음으로 적음으로서 조금은 촌스러우면서도 절절한, 그런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발랄한 '솜사탕 손에 핀 아이'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 그녀의 곡들에는 어울리지도 않지만, 율동을 은근히 중요시하는 그녀는 발구르기와 손뼉치기를 요구했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관객들은 모두 그녀의 노예(?)였기에 그 박자에 맞춰 'Acoustic Breath'가 이어졌습니다. 노예지만 반항아 기질이 있는 관객들은 박자를 조금씩 빠르게 해서 그녀의 숨통를 압박했지요. 부제가 '같이 쉬자, 숨!'이지만 그녀 혼자 숨쉬기에도 벅찼을지도 몰라요. '어쿠스틱 숨(Acoustic breath)'를 쉬느라구요.

게스트로는 이미 공지되었던 '에피톤 프로젝트'가 등장했습니다. 12월 초에 첫 단독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주옥같은 곡들로 수 많은 여심을 사로 잡은 그였기에, 공연이 참 궁금한 뮤지션이었습니다. 훈남 에피톤이 등장하자, 많지는 않은 여성 관객들의 술렁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희정'과 함께 불렀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대표곡 '그대는 어디에'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사처럼(생각이 날때, 그대 생각이 날때) 생각이 나지는 않는지, 머뭇거림은 이 공연의 소소한 추억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당연히 캐롤로 'Silver bell'을 듀엣으로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게스트 공연의 마지막은 그의 또 다른 대표곡 '눈을 뜨면'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어 특별 이벤트 '2009 더러운 어워드'가 이어졌습니다. 두 개 부분의 수상이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는 바로 '고독' 부문이었습니다.  가장 고독한 남녀, 두 사람에게 작은 선물과 함께, 그녀의 노래 선물 '우리 처음 만난 날'을 들을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바로 '닭살' 부문이었습니다. 오래된 커플들에게 그녀가 특별히(?) 준비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선물을 바로 포장된 '브로콜리'였죠. 그녀의 센스를 느낄 수 있나요? 브로콜리를 확인한 주위에 많은 관객들이 웃기시작했고, 선물을 받은 커플들도 한희정의 팬이라면 뜨끔했을 겁니다. 당연히도 그녀가 들려준 노래 선물은 바로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이었죠. 그리고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가사 중 "우리 그만 헤어져"에서 때창이 펼쳐졌습니다. 솔로들의 통쾌한(?) 한판승이었다고 할까요?

어워드가 끝나고 다시 노래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사가 공개되었던, 신곡들을 들을 수 있었죠 바로 '어느 가을'이 첫 번째였고, 익숙한 '우습겠지만 믿어야할', 두 버째 신곡은 최근에 가사가 만들어진 '잔혹한 여행'이었습니다. '어느 가을'의 시작전에는 그녀가 가사를 읊조리며 마지막에 '다 외웠다'고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잔혹한 여행'은 세박자의 춤곡같은 멜로디와 '사랑 오 사랑 잔혹했던 여행'이라는 비유가 인상적이었죠.

중간중간에 멘트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Dawny Room'이라는 공연 시리즈를 시작하게된, 그녀의 10년 전 추억들을 들을 수 있었고, 평소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사랑 이야기들도 아주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당연히도 앵콜 신청이 이어졌습니다. '휴가가 필요해'를 시작으로 신청곡들을 좀 들려주었는데, 영화 '춤추는 동물원'에 삽입된 그녀의 노래 '복숭아라도 사갈까'를 제외하면, 문제는 그녀가 신청곡의 가사를 잘 알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분부분 얼버무리거나 넘기거나 관객들이 불렀는데, 왠지 지금까지 시크했던 그녀의 노선과는 달라서 좀 의아했습니다. 긴 앵콜임에도 내용은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공연의 진행은 공연에 물이 오른 '한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25일도 당연히 기대되었죠.
2010/01/02 03:51 2010/01/02 03:51

Epitone Project - 긴 여행의 시작

파스텔뮤직의 신예이자 차세대 병기(?)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 '긴 여행의 시작'.

파스텔뮤직은 2007년 말에 발매된 5주년 기념 앨범 'We will be together'를 통해 'Sentimental Scenery(이하 SS)알렸다면, 2008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을 통해 'Epitone Project(에피톤 프로젝트 ; 이하 에피톤)'의 합류를 알렸습니다. '사랑의 단상'의 리뷰에서와 마찬가지로 SS와 에피톤을 동시에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두 뮤지션이 바로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5년을 이끌어나갈 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느낌의 피아노와 퍼커션 연주와 시작하는 '긴 여행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 '앨범'이라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트랙입니다. 도입부가 길어서 연주곡이겠거니 하고 듣다가 보컬이 등장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여행의 준비와 마음가짐을 노래하는 가사는 나름대로 비장합니다. 자, 여행의 준비는 되셨나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을 '눈을 뜨면'은 '토이(유희열)'를 연상시키는 트랙입니다. 거의 모두 '다'로 끝나는 어체는 이별 앞에 담담하려는, '입술 꼭 다문 굳은 의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베어나는 슬픔을 들려주는 감수성은, 감정이 분출하다 못해 과잉하는 2000년대가 아닌, 분명 90년대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뉴웨이브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차마 뜰 수 없어 꼭 감은 눈'과 '눈물에 젖어가는 베갯잇'은 고등학교 시절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읽었던 연애소설의 향수로 이끕니다.

그리고 '눈'과 '모습'을 통해 이별의 모순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눈을 뜨면 네 모습 사라질까봐
두 번 다시 넬 볼 수 없게 될까봐
희미하게 내 이름 부르는 너의 목소리
끝이 날까 무서워서 나 눈을 계속 감아"

꿈 속에서는 꿈이 깰까 눈을 뜨지 못하고 '너'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기에 꿈에서라도 나타난 것일까요?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사라질까봐 볼 수 없다는 상황의 모순은 어찌해야 할까요? 점점 멀어지는 모습, 언제까지라도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지만, 사라져가는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눈물로 흐려지는 눈을 감아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찌해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는 연주곡으로 앞선 두 트랙과는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에피톤의 다양한 색깔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어지는 '그대는 어디에'는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한희정'의 참여로 더욱 빛나는 트랙입니다. 이별을 고하는 가사

"눈물은 보이지 말길
그저 웃으며 작게 안녕이라고
멋있게 영화처럼 담담히
우리도 그렇게 끝내자"

는 정말 '영화처럼', 영화 '봄날은 간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가사는 '눈을 뜨면'과 시리즈물(?) 정도되는 느낌으로 '눈을 뜨면'의 앞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한희정의 목소리는 synth와 어우러져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회상을 꿈결처럼 그려냅니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는 '가장 좋았던 순간'을 한 장의 사진 처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따뜻한 '봄날', 만개(滿開)한 '벚꽃'길을 가장 사랑하는 '너'와 함께 걷는 모습은 아마도 지상의 낙원이겠죠. 하지만, 역시 아마도 추억이라는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이 되겠지만요. '잡음'은 제목 그대로 잡음으로 시작합니다. 연달아 등장하는 피아노와 비트박스는 '혼돈'을 연상시킵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기억과 감정의 혼돈'이라고 해야할까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역시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을 통해 이미 발표된 트랙입니다. 아른한 타루의 코러스를 듣고 있으면 궁금해집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들은 또 왜 헤어져야 했을까요? 걱정하는 마음, 그 마지막 배려는 정말 배려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위한 위로일까요? '희망고문',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또 다른 트랙으로,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은 절망보다 아픔을 생각하게 합니다.

'꿈에 네가 보인다'는 그 세련된 도시적 느낌이 어느 곡보다도 '윤상'을 떠올리게 하는 트랙입니다. 피아노와 synth와 전자음들의 청명한, 감성적 조화는 '뮤지션 에피톤'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해보게 합니다. '간격은 허물어졌다'는 피아노 연주만으로 진행되는 뉴에이지풍의 트랙입니다. 이 앨범 수록곡들 중 가장 밝고 희망적인, 한 편의 동화가 생각날 법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앞선 트랙의 맑은 느낌의 피아노 연주와는 달리 '편린일지라도,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긴 제목의 연주곡은 무거운 피아노 연주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고독하기만 합니다. 그 여행 끝에 기다리는 것은 과연 어떤 기억들일지요? 마지막 '환절기'는 '간격은 허물어졌다'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연주만 함께합니다. 마지막 트랙답게 느껴지는 평온함, 긴 여행 끝에 결국 마음의 평화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듯, 사람 마음의 변화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였을까요?

피아노같은 멜로디가 강한 건반악기를 기초로 한 소리와 절제가 담겨있는 서정성의 조화는 분명 요즘의 감수성보다는 '토이'와 '윤상'이 활발히 활동했던 90년대의 감수성을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90년 대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그 시절 감수성을 기억하는 저에게는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지만 에피톤은 그 시절의 향수에만 머물지 않고, 에피톤만의 감수성을 구축해 가야할 것입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앨범 '긴 여행의 시작',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4/05 22:27 2009/04/05 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