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디(Ibadi) - Story of Us

'클래지콰이 프로젝트(Clazziquai Project, 이하 클래지콰이)' 객원 보컬로 더 유명한 '호란'의 또 다른 프로젝트(?) '이바디(ibadi)'.

2008년 4월 '호란'은 '이바디'라는 밴드로 앨범을 발표합니다. 밴드 '이바디'는 호란과 기타리스트 '거정(a.k.a Enock)'과 베이시스트 '저스틴 킴'이 결성한 밴드로 두 사람은 'The A.D'라는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고 한 장의 앨범을 낸 과거가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대표주자가 된 '클래지콰이'의 보컬 호란이 이런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하여 등장한 점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 밖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호란의 음악적 근간을 살펴본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푸른새벽'이 해체한 지금 홍대 인디씬 최고의 어쿠스틱 밴드라고 할 수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대표곡 'So good-bye'의 작사가가 바로 호란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클래지콰이 합류 이전의 행적은 바로 어쿠스틱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바디의 어쿠스틱 세계로 초대하는 '오후가 흐르는 숲'은 신선함과 상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어지는 'Hello Hollow'는 특이한 제목만큼이나 호란의 개성이 드러나는 호란 작사 작곡의 곡입니다.(앨범 수록곡 모두 세 멤버가 작사 작곡을 담당했고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두 남성 멤버 거정과 저스틴 킴이 작곡하고 호란이 작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란의 목소리는 너무나 자유롭게 들립니다.

타이틀 곡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어쩐지 연륜이 느껴지는 사랑 노래입니다.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이런 가사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막 시작되는 가슴 뛰는 첫사랑이 아니라, 여러 가슴 아픈 사랑이 지난 뒤 이제는 사랑이 사랑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무감각해져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차린 사랑이야기 말이죠. 어쩌면 그게 진짜 현실의,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겠구요.

'오후가 흐르는 숲'과 마찬가지로 리듬이 두드러지는 'She'와 'Party fantasy'는 모두 '거정(a.k.a Enock)'이 작곡한 트랙들로 그의 음악적 개성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나봅니다.

'그리움'은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와 호란의 목소리만가 담백한 시작을 알립니다. 곡의 진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촐하지만 여성 보컬과 피아노라는 대중가요의 치명적인 훌륭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종 악기의 연주들로 가득 차지 않은 그 공백들은 피아노의 울림과 보컬의 탁월함으로, 텅빈 공백이 아닌 의미 있는 여백으로 만들어갑니다. 감정의 절제와 호란의 가사 전달력은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어 나른한 오후, 벤치에 앉아 아련한 상념에 빠져드는 'Bench', 꽃놀이에서 얻은 사랑에 대한 깨닳음을 노래하는 '꽃놀이', 호란의 보컬리스트의 기교가 다시 한 번 빛나는 그녀의 작사 작곡 트랙 '마리오네트'가 이어집니다.

'비로 뒤덮인 세상'은 유일하게 '저스틴 킴'이 작사 및 작곡 모두 담당한 트랙으로, 빗속을 우산없이 달리는 두 연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나올 법한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화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제 추억이고 비는 그 추억으로 이끄는 매개물인가 봅니다.

'별'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분위기의 트랙이고 '초코캣'은 마지막 트랙답게도 지금까지의 이 앨범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로 뮤지컬을 연상시킵니다. 역시 호란의 곡이기에 그녀의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클래지콰이'와 '일렉트로니카'로 한정되어있던 호란의 영역은 '이바디'로 인해 확장됩니다. 클래지콰이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이고 이 앨범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진짜 그녀의 목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Story of Us',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이 앨범에 진정으로 세 사람이 하고 싶은 음악들이 담겨있을 법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노래들이 '사랑 타령'이지만  12곡이나 담고 있는 이 앨범에서 '사랑'이나 'love'를 직접 담고 있는 곡은 마지막 두 곡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짙게 느껴지는 그 감정들과 편안함에서 '이바디'가 단순히 실험적인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깊은 내공이 있는 밴드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클래지콰이가 해체(?)하더라도 밴드 이바디는 상당히 오래 지속될 느낌도 들게 하구요. 이제 두 장의 앨범이 나왔습니다. 가벼운 음악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좋은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길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5/22 00:29 2009/05/22 00:29

이바디(Ibadi) - Songs for Ophelia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보컬로 더 유명한 '호란'이 참여한 '이바디(Ibadi)'는 1집 'Story of Us'로 어쿠스틱 음악의 충분한 가능성과 보컬리스트로서 호란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클래지콰이 활동을 병행하는 호란이기에 이바디가 새로운 앨범을 이렇게나 빨리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바디는 부지런히 EP를 준비했네요.타이틀은 'Songs for Ophelia'로 바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를 모티프로 한 'conceptual album'이랍니다.

첫곡 'love letter'는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곡입니다.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love letter와 함께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세상을 보는 눈을 흐리고 연인들을 날아가게 합니다.

이어지는 'Secret Waltz'는 '호란'과 '이승열'의 듀엣곡으로 사랑의 절정에서 연인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서로 조금씩 다른 가사를 부르지만, 그럼에도 어우러지는 하모니는 타이틀로 손색이 없습니다.

'The day after'는 절정의 내리막이 시작되는 분위기의 곡으로 도입부부터 오필리어의 수심과 불안이 느껴집니다. 불안함에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하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은 남아있기에 곡의 분위기는 아직 밝습니다.

'탄야'로 들어서면서 희망은 사라지고 수심은 깊어져만 갑니다. 기타반주만 함께하는 오필리어의 노래는 처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어지는 '오필리어'는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정성을 기울였을 법한 곡으로, 정적인 서정과 함께 시작됩니다. 사랑의 슬픔과 기쁨 모두 함께 품안에 안고가는 마지막 오필리어의 모습, 죽음에 입맞추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쓸쓸합니다.

마지막 'Curtain Call'은 클래지콰이의 앨범에서나 들어볼 법한 곡입니다. 오필리어의 비극, 인생의 비극에 대해 관조하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정말 기획의도(?)처럼 한 편의 사랑 이야기, 혹은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들을 수 있는 상당히 잘 만든 EP입니다. 한편으로는 호란의 욕심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곡의 작사를 직접하였다는데, 클래지과이에서 펼칠 수 없었던 호란의 야망(?) 혹은 로망(?)이 펼쳐진 앨범이 바로 이 EP가 아닐까요? 특히 'Secret Waltz'와 '오필리어'는 상당히 오래 즐겨듣게 될듯하네요.  호란과 이바디의 꾸준한 활동 기대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3/08 03:42 2009/03/08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