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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년에 발표된 '허민'의 데뷔 앨범 'Vanilla Shake'.

'허민'이라고 하면 낫선 이름이겠지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라면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일 겁니다. 바로 '허민'이 2003년 15회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타이틀이 있는 그녀을 알기에 앞서 2004년 홍대 '사운드홀릭'에서 '바닐라 쉐이크'라는 밴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밴드의 이름과 동일한 그녀의 데뷔 앨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는 기분에 짧게 소개해 봅니다.

'어처구니가 없네',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송 느낌의 키보드 연주로 시작하는 경쾌한 곡입니다. 따뜻한 느낌의 키보드 연주와  발랄한 노래의 교차가, '슬픔'을 주로 노래하는 요즘 노래들 치고는 좀 언밸런스한 느낌도 있지만, '풋풋한 젊음'이 느껴져 좋습니다.

'Shake Song', 흥거운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곡으로 그루비(groovy)한 느낌은 2004년에 보았던 그녀의 밴드, '바닐라 쉐이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강남역 6번 출구 앞', 역시 영롱한 키보드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느린 템포의 곡입니다. 강남역에서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강남역 6번 출구'를 제목으로 하고 있기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허민 스타일'을 들려주는 곡이기 때문인지, 아무튼 타이틀 곡이기도 합니다. 흐른 날, 분위기 있는 찻집의 창 밖으로 슬로우모션 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거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침이 좋아', 보컬과 피아노의 간결한 진행으로 싱그러운 아침의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Complex', 요즘은 좀처럼 듣기 힘든 전자음과 시작되는 흥겨운 곡입니다. 조금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그 전자음에서 어쩐지 90년대 가요의 느낌이 나네요. 가창력에 비중이 상당이 높은 요즘 가요보다는, 좋은 곡과 연주나 코러스에서 느껴지는 재치가 90년대 가요의 느낌으로, 특히 '윤상'의 곡에서나 들을 법한 것들입니다. 맑은 보컬과 키보드(혹은 피아노) 연주로 승부하는 '허민'의 노래들이 대부분 90년대 가요의 느낌인데, 이곡은 특히 그렇네요. '윤상'의 Best album을 통해 다시 듣게된 그의 노래는 시간이 갈 수록 빛이 나더군요. '나이듦'에 대한 조금은 진지하면서도 발랄한 고찰이 담겨있는 가사에도 공감이 갑니다.

'보석같은', 키보드 혹은 피아노가 중심이 된 '어처구니가 없네', '강남역 6번 출구'나 '아침이 좋아'가 '허민 스타일'의 곡이라면 이 곡도 그런 부류라고 하겠습니다. 그녀의 앨범을 이루고 있는 '스타일의 두 축' 중 한 축이 '허민 스타일'이라면 다른 한 축은 '밴드 바닐라 쉐이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구요. 후자에 속하는 곡은 앞서 이야기 했던 'Shake Song'이나 마지막 곡 '알면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까만 하늘 너의 눈동자는', 트랙 리스트만 봐도 두 버전으로 들어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떤 곡인지 알려주는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구요. 보컬과 피아노의 콤비와 잔잔히 바탕에 깔리는 오케스트라, 최소 투입의 최대 효과를 보여주는 '대중음악의 3대 사기'의 멋진 조합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간간히 들어간 코러스는 가사의 간절함을 더 해줍니다.

'I'm Lost', 낮게 깔리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하는 '허민'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뒤에 나올 '알면서도'보다도 마지막 곡으로 더 어울릴 법한 느낌입니다.

'알면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위기와 연주에서 밴드 '바닐라 쉐이크' 느낌의 곡입니다. 사실 '허민'과 '바닐라 쉐이크', 같은 주체들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구분하고 싶네요. 보컬의 비중이 줄어둘고 그 비중을 연주가 차지했다는 점이 '바닐라 쉐이크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허민'과 밴드 '바닐라 쉐이크'의 공연을 각각 보지 않은 청자들에게 이해가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앨범은 발매했지만 활발한 활동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그녀. 이 점은 비단 그녀의 고민만이 아닌 언더그라운드씬에서 태어나 메인스트림의 문을 두드리는 수 많은 밴드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하여 꺼지지 않은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곡들도 있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 혹은 느낌에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겨들을 만한 매력이 있는 앨범이고,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