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창백하고 신비한 여인을 따라
얼음궁전에 들어가 잠이 든 이후로
얼어버린 호수와 호수 주변 마을에서
어느 누구도 소녀를 볼 수 없었어.
소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소년 조차도.

사실 아무도 알 수 없었지.
소녀가 신비한 여인을 따라서
북쪽 호수와 북쪽 나라에 사는 사람,
그 어느 누구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얼음궁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야.

소녀가 모습을 감춘 뒤로는
북쪽 호수에 내리는 눈은 그칠 줄 몰랐어.
눈발은 점점 거새지고 더욱 추워졌지.
북쪽 호수 주변은 어떤 사람도 살 수 없는
녹지 않는 눈으로 뒤덮인 하얀 황무지가 되어갔어.

숲과 호수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호수 주변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북쪽보다 따뜻하고 살기 좋은 남쪽으로
먼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었지.

소년은 호주와 호수 주변 곳곳에
사라진 소녀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어.
그리고 소년의 가족도 마찬가지로
남쪽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지.

남쪽으로 떠나기 전 날, 다른 날처럼
열음연못 주위에서 소녀를 찾던 소년은,
호수에서 본 적 없었던 하얗고 날카로운 윤곽을 보았어.
하지만 그 윤곽에 가까워질 수록
눈보라와 바람은 더욱 거세서 결코 다가갈 수 없었지.
소년은 취위 속에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지.

소년은 어렴풋한 꿈을 꾸었어.
소녀가 소년을 원망하는 꿈을 꾸었어.
소녀의 눈물이 많아질 수록
소녀의 울음소리가 커질 수록
눈발은 점점 커졌고, 바람은 점점 세졌지.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소년은 꿈을 기억하지 못했어.

눈보라의 추위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소년은
몇 일이 지나서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눈을 떴어.
소년을 찾던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
소년은 그 하얀 윤곽에 대해 야이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어.

단지 어느 노파가 한 마디를 했을 뿐이야.
"수 백년전, 아마 내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 즈음에
북쪽 산맥 마을에서 한 소년가 사라졌고,
또 누군가가 그런 윤곽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지.
하지만 이제는 확인할 수도 없는 전설일 뿐이야."

소년과 소년의 가족은 마을을 떠났어.
소년은 눈으로 덮인 얼음길을 달리는 마차위에서
예전에는 호수였던, 눈보라치는 얼음연못을 바라보았어.
눈보라는 점점 거세져서 북쪽나라를 삼키고 있었지.
이후로 누구도 소녀과 소년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고,
북쪽나라에는 언제나 눈이 내리는 긴 겨울이 시작되었지.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까?
꽁꽁 얼어버린 호수 한가운데 얼음연못은
그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얼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까?
소녀가 길고 긴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소녀는 어느덧 창백하고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