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New York) 브루클린(brooklyn)에서 날아온 사진엽서, 'Hee Young'의 데뷔 EP 'So Sudden'.

'Hee Young', 우리말로는 '희영' 즈음이 될 이름이로, '희영'이라는 이름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이름이거나 혹은 누구나 주위에 한 사람 정도는 갖고 있을 만큼 흔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희영'이라고 발음하지만, 'Hee Young'이라고 쓰여지는 이름의 주인공은 무척이나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 대표 인디 레이블 가운데 하나이자, 해외 인디 레이블의 음반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파스텔뮤직'의 홈페이지에서도 당당히(?) 해외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그녀이기에 더욱 그렇겠습니다.

해외 뮤지션면서도 최근에 한국에 거주하면서 각종 국내 페스티벌에 등장하여 국내 뮤지션과의 경계를 무너뜨린 'Lasse Lindh'와 같이 정말 흔하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당연히 해외 뮤지션이기에 국내에서 활동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인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단지 지난 겨울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에 수록된 리메이크 곡 "I hate Christmas parties"로 국내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소개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크(chic)한 뉴요커(New Yorker)가 아닌 떠난 사랑에 마음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뉴요커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뮤지션으로서도 매우 기대되는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나고 그녀의 이름이 흐릿해질 때 즈음, '너무나 갑자기(So Sudden)' 그녀의 데뷔 EP가 발매되었습니다. 좋은 첫인상이 없지만 그녀의 곡이 아닌 리메이크였기에, 첫인상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을 또 '너무나 갑자기' 만나게 될까 조심스레 앨범을 열어봅니다.

첫곡 "Are You Still Waiting?" 꽤나 친숙한 기타 연주로 시작됩니다. 기타코드의 유사성 때문인지 'Russian Red'의 인상적인 "Cigarettes"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교태로운 코러스와 더불어 왠지 해외 뮤지션의 곡이라는 기분이 들게 하네요. 간결하지만 조밀한 진행은 활기찬 뉴욕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할까요? 빨리감기로 뉴욕 어느 거리의 인파와 교통의 흐름을 보고있는 기분입니다. 그 활기찬 거리의 분위기만큼이나 생기넘치면서도 수줍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타이틀 곡 "So Sudden"은 분위기를 달리하여 진지한 이별 노래입니다. 피아노와 기타가 함께하는 멜로디는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봤을 법한, 단풍이 아름다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의 산책을 꿈꾸게 합니다. 하지만 그 산책은 외로운 발걸음입니다. 그 쓸쓸함은 앨범 자켓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와 그,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그녀의 왼손은 그의 등을 쓰다듬고 있지만, 그의 오른손은 그녀의 등에서 어색하게 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테두리로만 그려져 있어서, '환상'이나 '유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사를 생각한다면... 네, 그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노래는 그렇게도 서글픕니다.

이어지는 "Do You Know"도 쓸쓸함이 그득합니다.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로 읊조리는 가사는 서글픔보다는 체념이 담겨있고, '-der'와 '-ders'로 맞춘 각운은 씁쓸한(bitter) 화자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듯합니다. "Solid on the Ground"는 단촐한 연주이지만 흥겨운 멜로디가 분위기를 띄우는 곡입니다. 첫 곡에서 'watet molecules', 'evaporating'이나 이 곡에서 'solid'같은 단어의 선택은 Hee Young이 물리학이나 과학 전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하게합니다.

"On the Wall"은 마지막 곡으로 3분이 되지 않는 짧은 구성으로 앨범을 닫는 역할을 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면서 그녀의 정규앨범을 기대하게 합니다. 다음으로는 "Are You Still Waiting?"는 "So Sudden"의 우리말버전이 담겨있는데 바로 한국판을 위한 특별한 선물입니다. 영어 노래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어감이나 감정 표현의 차이 때문에 어색해지기 쉬운데, 두 곡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So Sudden"의 경우에는 일부러 모든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보다는 일부는 영어로 남겨두어 완벽한 감정 전달을 들려줍니다. '바람직한 번역의 예'라고 할까요?

'Hee Young'의 그녀의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담긴, 사진엽서같은 노래들은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중복되는 곡을 제외하면 총 5곡의 짧은 EP이지만, 'Hee Young'이라는 이름을 가진 뮤지션이 탁월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여성 뮤지션이라면 'Priscilla Ahn'이 먼저 떠오르겠고, 좀 더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Susie Suh'도 떠올릴테지만, 이제 'Hee Young'이라는 이름도 기억해야겠습니다. 언제가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내한 공연과 정규앨범도 슬며시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