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 2006.9.30.

정말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 '프리머스시네마'에서 '타짜'를 심야상영으로 보았습니다. 꽤 좋았던 '범죄의 재구성'의 감독 '최동훈'의 작품이고, 꽤 재밌다는 만화가 '허영만'의 '타짜'를 원작으로 했다기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뭐, 원작 만화는 아직 못 보았지만요.

역시나 참 좋았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빼고도 상영시간이 2시간 20분 정도로 짧지 않은 편이었지만 딴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짧은 컷을 사용한 빠른 전개는 내용을 적절히 전달하면서도 관객을 놓아주지 않더군요.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주었던 진행방식을 더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범죄의 재구성'이 짜임새있는 진행을 보여주었지만 흐름이에서 조금은 거친 느낌이 있었는데, '타짜'에서는 정말 '물 흐르듯'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니'역의 '조승우'는 평범한 축에 속하는 외모의 덕이 참 크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의 연기력은 좋은 편이지만 그의 '평범'에 가까운 얼굴은, '왕자'같이 특이한 역이 아닌 이상은, 무난하게 소화시키는 얼굴같습니다.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평경장'역의 '백윤식'은 이제 '숨은고수' 혹은 '기인'의 이미지로 굳어져가는 듯합니다. '범죄의 재구성', '싸움의 기술'에 이어 '타짜'에서까지 멋진 연기를 보여주지만 이미지가 굳어가는 느낌이네요.

'정 마담'역의 '김혜수' 온 몸으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나이 대비 사기 몸매를 과시하는 프랑스의 '모니카 벨루치'가 부럽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김혜수' 누님이 있으니까요. 아, 물론 연기도 좋았습니다. 뒤늦게 물오른 연기로 최근 몇년 사이 '제 2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화란'역의 '이수경'은 역시 신선한 매력을 보여주었지만 비중이 크지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아귀'역의 '김윤석'도 그전까지 보여준 이미지와는 다르게 멋졌고, '너구리'역의 '조상건'은 뭔가 충직한 역할이 역시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제 한국영화 기대작들에서 떨어지는 연기력 찾기한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주연이나 조연, 가릴 것 없이 '연기력'은 '기본장착'이네요.

너무 빠른 진행 덕분에 짧게 지나가 아쉬운 장면들(고니가 평경장의 제자가 되는 과정과 타짜수업 과정, 화란과의 연애)이 있었지만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의 제약안에 표현하려다보니 많이 축소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길어졌다면 정작 중요한 '고니'의 무용담에 비중이 줄어들어 아쉬움은 더 커졌을 수도 있구요.

오랜만에 대단한 볼거리보다는 물 샐 틈 없는 짜임새와 그에 걸맞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를 본 듯하네요. '궁' 등의 성공적인 드라마화에 이어 한국만화의 영화화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6년 한국만화가 좀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6/10/01 22:56 2006/10/01 22:56

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가 개봉한다기에 박차를 가해서 지난주에 독파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로 전에 읽은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가 좋았기에 작가 '공지영'에게 흠뻑 빠져들어 있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좋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기작가답게 문장도 편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갔다.

여자주인공 '문유정'의 이야기, 멋진 노래나 시나 글의 한 구절, 남자주인공 '정윤수'의 짧은 이야기인 '블루노트'로 이어지는 구성이 참 좋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고 사이사이에 삶과 죽음, 슬픔과 사랑에 관한 짧은 글들... 시간 상으로 나중에 발표된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의 향기를 찾을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빗방울처럼..'에서 '우행시'에 대한 것들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멜로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슬픈 거라는 예상을 하고 읽으니 초반부를 읽을 때부터 눈이 그렁그렁했다. 다른 독자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오히려 앞부분이 더 슬펐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삐뚤어진 인간인 '유정'과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윤수',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 별 슬플 것도 없을 듯한 이야기가 어쩐지 더 슬프게 느껴졌다.(아, 영화 예고편의 부작용!) 그들이 서서히 마음의 치유를 받는 과정을 지나면서 그렁그렁한 느낌은 점점 가벼워져 갔다. 결국 인간에게는 빠르건 느리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지워져있기는 하지만...

'문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참 멋진 점이 있었다. 천주교(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그리스도교(천주교과 개신교)의 위선을 조롱하는 모습이 어쩐지 멋져 보였다고 할까? (소설을 읽으면 처음에는 좀 거북해질 '광신도'가 있을지모 모르겠다.) 부유한 천주교 집안의 '유정'과는 전혀 다르게 자라왔고 모니카 수녀와 유정을 만나가면서 점차 '신'이 신도하는 길로 빠져드는 '윤수'의 모습은, '상습 자살시도자'와 '살인자'의 대비와 함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윤수'처럼 예수도 사형수 였다는 점이나 형이 집행되기 전 '유정'이 '윤수'를 부인한 점 등 성서를 염두한 작가의 배려가 눈에 띄고, 유정이 처음에 윤수를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가 예상대로 였을 때와 이어서 '윤수'와 '은수'의 중간 발음이 '운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때 부터 영화화를 고려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짜 이야기'가 오가면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다듬어가는, 인간의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찬반 논란에도 '사형제도'에 대해 중립이거나 찬성쪽에 가까웠던 나의 마음이 반대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사형'은 결국 '복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 '복수'가 과연 정말 '사회의 원한'을 산 사람에게 이루어졌는가는, 윤수의 경우처럼, 확실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살인자와 피해자 외에는 아무리 형사들이 수사를 해도, 아무리 기자들이 기사를 써도 사실을 만들 뿐 진실은 완전히 밝힐 수 없으니까. 그리고 사형수들이 법정에서 사형을 받기까지 '범죄와 수감'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데에는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2006/09/30 01:59 2006/09/30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