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그의 향기? 트램폴린의 두 번째 정규앨범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2008년에 발매되었고 뒤늦게 접했던 '트램폴린(Trampauline)' 첫 정규앨범 'Trampauline'은 탁월한 멜로디였지만, 들려주는 소리에서는 오르골이 들려주는 자장가만큼이나 심심함이 컸던 신스팝 앨범이었습니다. '트램폴린'은 싱어송라이터 '차효선'의 솔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지만 첫 앨범의 그런 심심함을 알아차렸는지, 현재는 앨범 작업 및 공연을 도와주는 기타리스트 '김나은'은 영입하여 '여성 듀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김나은은 'I love J.H'의 기타리스트로 앨범을 발표한 경력이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의 영입이라는 심기일전에서 드러나듯 간이 덜된 음식처럼 심심했던 소리들은 가볍게 몸을 흔들어도 좋을 만큼 생기를 찾아 돌아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앨범 'This is why are falling for each other'입니다. 이제부터 이 앨범의 살펴봅니다.
아침해가 떠오르게 나른함 속에서 기지개를 펴듯 앨범을 시작하는 'Little Animal'은 경쾌함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가 어쨌건) 제목이 의미하는 '작은 짐승'에서 연상되는 아기 사자의 경쾌한 사바나 탐험기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신디사이저의 소리는 밤하늘을 가득히 수 놓은 별들처럼 빛나고,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거친 노을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낮게 깔리는 차효선의 나레이션은 디즈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밤하늘에 주인공 '심바'가 만나는 아버지 '무파사'의 목소리 만큼이나 무게감을 담고 있습니다. (곡 제목과 마지막 나레이션 때문에 '라이온 킹'이 생각나고 말았습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Anthropology'는 독특하게도 '인류학'을 의미하는 제목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류에게 축복이라면 제목처럼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Anthropology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가사를 떠나서 무대위에서 차효선이 보여주는 제자리 걸음과 어깨춤을 따라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춤이 어울립니다. 사실 트램폴린의 노래에서 가사는 '의미 전달'의 목적보다는 '운율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Bike'는 제목만 봐서는 경쾌한 질수가 느껴질 법합니다. 하지만 연주는 왠지 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트램폴린의 노래는 전곡이 영어이기에 이 곡도 왠지 분위기있게 들리지만, 사실 이 곡은 손발이 오글오글한 유혹의 노래입니다. 사실 많은 유명 팝송들이 단순 혹은 유치하거나 별 의미없는 가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언어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사실 가요의 수 많은 사랑 노래들도 마찬가지이죠.) 장황한 제목의 'Love Me Like Nothing's Happened Before'는 맑게 개인 아침의 조깅만큼 생쾌하게 시작합니다. 앞선 'Bike'가 손발이 오글오글했다면, 이어지는 장황한 제목의 역시 너무 뻔한 수작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단어의 반복은 뻔함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절실함이 담긴 주문처럼 들립니다.
'A Rose with Thorns'는 지금까지의 트랙들과는 다르게, 서정적인 선율이 특징입니다. 신비로운 윈드차임의 소리나 멜로디를 따라 흐르는 신디사이저의 연주와 서정성을 더하는 기타 연주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Enya'의 노래에서나 들었을 법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가사에서 지난 사랑이 남긴 상처를 '가시 돋힌 장미'에 비유한 점은 참 신선합니다. 그리고 'Rose with Thorns'가 들어간 후렴구를 발음하는 자체가 어떤 운율을 만들어내어 묘한 중독성을 유발하네요. 약자의 의미가 궁금한 'D. B. R'은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가 한 마디씩 주고 받는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눈물을 뽑아낼 신파극같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법한 가사이지만 담담하면서도 댄서블한 점은 '트램폴린' 음악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History of Love'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신디사이저의 연주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서정적이고 ('블레이드 러너'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같은 과거 SF 영화 속에서 비추는 미래들을 보는 일처럼)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복고적인 느낌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신디사이저 음악'을 이야기하는데에 빼놓을 수 없는 거장 'Vangelis'의 미래적이고 서사적인 연주들과도 닮은 점이 느껴집니다. 가사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지만, 어쩐지 꽃봉우리가 활짝 피어나는 장면을 고속재생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합니다.
'You are My Sunshine'는 신디팝이라기 보다는 IDM에 가까운 트랙입니다. 잔잔한 노래가 흐른 뒤 따르는 신디사이저 연주는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신디사이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우주적인 쓸쓸함은 감정을 압도합니다. 드넓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 홀로 유영하는 우주비행사의 적막함과 말로 표현할수 없는 먹먹한 기분이 바로 이런 음악이 아닐까요? ('X3'와 같은 우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비행을 하다가, 문득 행성도 다른 우주선도 보이지 않는 그저 머나먼 별들만이 반짝이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먹먹함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주비행사와 지구에 남겨진 그의 애인 사이의, 이제 서로 닿을 수 없는 마음과도 같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곡은 'Be My Mom's Lover'로 어떤 곡보다도 공연을 통해 익숙한 곡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가사는 적당히 댄서블한 리듬을 통해, 슬픔이나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 혹은 어떤 깨닳음에 닿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엄마의 애인이 되어 그리고 가족이 되어 변치 않는 사랑을 하자는 의외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애절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효선은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이 앨범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어조로요.
인디씬에서 흔하지 않은 신스팝 밴드로, 신디사이저라는 미래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트램폴린이지만, 이 여성 듀오가 들려주는 오히려 복고적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20세기 음악들, 80년 대와 90년 대 뿐만 아니라 그전 시대를 빛낸던 장르들(팝, 뉴웨이브, 블루스 등)의 향기를 머금은 신스팝의 작은 잔치가 바로 트램폴린이 지향하는 음악이 아닐까 하네요. 제가 좋아했던 여러 아티스트들의 조각들이 트램폴린의 음악에서 들리고 느껴지네요. 그윽히 깊어가는 가을밤, 서늘한 가을 바람처럼 담담하지만 그리움을 머금은 트램폴린의 앨범과 함께하면 어떨까요? 별점은 4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트램폴린 -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Song&Album
라이너스의 담요 - Show Me Love
밤으로 가는 Signal Song, '라이너스의 담요' 10년만의 첫 정규앨범 'Show Me Love'.
무렵 10년 만의 첫 정규앨범, 아니 그보다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r)'의 정규앨범이 드디어 발매된 것입니다. (혹자는 지구 멸망이 가까워졌기에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밴드 '라이너의 담요'는 2001년에 결성되어 2003년 첫 EP 'Semester'에서 들러운 상큼함으로 기대로 모았고 2005년 두 번째 EP 'Labor in Vain'로 그 기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정규앨범은 깜깜 무소식이었고 2007~2008년 경에는 정규앨범 소식이 들렸지만 그냥 풍문이었는지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드디어 기습적인 발매를 맞이하게 되네요. (2012년이 다시 지구 멸망의 해로 떠오르는데, 역시 지구 멸망의 징조일까요?)
앨범을 들어보면 전반부에는 흥겨운 째즈의 느낌이 강한데, 그런 점을 반영하듯 앨범을 여는 첫 곡의 제목은 'Rag time'입니다. Rag tme의 의미를 찾아보면 '째즈의 한 피아노 연주 스타일'이고 '술집이나 무도회장에서 연주되는 스타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작부터 펍(Pub)이나 바(Bar)의 흥겨운 파티의 느낌이 물씬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 'Show Me Love'는 귀여운 팝을 기대하게 했던 '라이너스의 담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흥겨우면서도 성숙한 느낌입니다. 흥을 돋구는데 좋은 방법인 브라스까지 등장하면서 펍의 흥겨운 파티나 50~60년 대를 배경으로한 뮤지컬의 한 장면 정도를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합니다.
'Gargle'은 최근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검정치마'와 함께한 곡으로 복고적이고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다만 조휴일의 목소리는 귀여운 연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마치 할아버지와 손녀가 부르는 곡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Misty'는 고급스러운 째즈바에서 들을 법한 곡으로, 고혹적인 연진의 보컬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욕심까지 느껴진달까요? 앨범 전반부의 복고적인 분위기는 EP 'Semester'의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던 이 밴드에게는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보컬리스트로서 의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던 '연진'을 궤적을 추척해본다면 놀랄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앨범에도 수록된) 두 번째 EP의 타이틀 'Labor in Vain'에서는 나긋나긋한 변신이 있었고, 2006년에 발표된 두 장의 앨범에서도 그런 변화를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밴드 'BMX bandits'와 함께한 'Save Our Smiles'는 원테이크로 녹음한 느낌으로 펍에서의 공연 느낌이었고, 역시 영국에서 '버트 바카락'과 함께한 'Me & My Burt'에서도 보컬리스트로서 연진의 욕심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첫 EP의 귀여웠던 'Picnic'도 앨범의 파티 분위기에 맞게 재탄생했습니다. 귀여움은 아직 남아있지만, 에그 쉐이크나 펍의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공연 같은 현장감을 주는 추임새와 배경음 덕분에 흥겨움이 더합니다. 두 번째 EP의 수록곡이기도 한 'Labor in Vain'은 보사노바풍의 곡으로 'Misty'에 이어 보컬리스트 연진의 매력을 발산하는 곡입니다. 'Misty'에서는 우수에 찬 남성(지난 사랑이었던)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아가씨였다면, 이 곡에서는 '사랑은 헛수고'라고 외치는 도도한 도시 아가씨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죠.
앨범의 전반부가 늦은 밤 펍이나 바에서 펼쳐지는 공연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밤을 향하는 음악, (보통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혹은 생각할 만한) 더 인디밴드다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앨범 전반을 감싸고 있는 복고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소리들은 2006년 발표되었던 '에레나'의 앨범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동질감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이 앨범에 믹싱 엔지니어 및 사운드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DJ soulscape'의 존재입니다. 바로 에레나의 앨범에서는 그의 또 다른 음악적 자아인 'Espionne'로서 프로듀서 및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기 때문이죠. (여러모로 유사점이 많은 두 앨범입니다. 여성보컬이라는 점, 두 앨범다 8월에 발매되었다는 점부터 음악적 스타일과 사운드가 들려주는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성까지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에레나의 앨범에 'Holidaymaker'라는 곡이 있는데 이 앨범에 참여한 조휴일의 영어식이름이 바로 'Holiday'이기도 합니다.) 복고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앨범 CD 및 디지팩의 디자인에서도 나타나는데 CD는 LP의 모습으로 프린팅이 되어있고 디지팩은 기타와 트럼펫, 피아노 그리고 마이크를 단순화해서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순간의 진실'은 잔잔한 곡이지만 재밌게도 레게 곡입니다. 흥겨울 줄만 알았던 레게가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네요. 잔잔함 속에서도 코러스는 상당히 유쾌하여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백'은 고즈넉한 밤길을 걸으며 풀어내는 절절한 고백의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Music take us to the universe'는 이전까지 '라이너스의 담요'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깜짝 놀랄 만한 일렉트로니카 트랙입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 욕심일까요? 제목부터 재밌는 '밀고 당기기'가 느껴지는 'Stop liking, start loving'은 서서히 마지막 곡을 향해는 앨범처럼, 잠을 청하는 오르골 연주 만큼이나 감미롭습니다. 마지막은 두 번째 EP에 수록되었던 'Walk'로 밝고 씩씩한 마무리를 들려줍니다.
앨범 'Show Me Love'는 적지 않은 11 트랙을 담고 있지만, 너무 오랜 기다림 속에 발매된 앨범이기에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다행히도 한 곡 한 곡, 맛깔나는 곡들로만 채워져있기에 기다림은 어느 정도 보상이 될 법합니다. 인디 뮤지션들도 오래 기다린 앨범인가 봅니다. 크레딧을 보면, '로로스'의 도재명이나 '페퍼톤스'의 이장원처럼 익숙한 이름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꾸준한 공연과 너무 늦지 않은 후속 앨범의 발표만이 오랜 기다림을 채워줄 특효약이 아닐까 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무렵 10년 만의 첫 정규앨범, 아니 그보다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r)'의 정규앨범이 드디어 발매된 것입니다. (혹자는 지구 멸망이 가까워졌기에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밴드 '라이너의 담요'는 2001년에 결성되어 2003년 첫 EP 'Semester'에서 들러운 상큼함으로 기대로 모았고 2005년 두 번째 EP 'Labor in Vain'로 그 기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정규앨범은 깜깜 무소식이었고 2007~2008년 경에는 정규앨범 소식이 들렸지만 그냥 풍문이었는지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드디어 기습적인 발매를 맞이하게 되네요. (2012년이 다시 지구 멸망의 해로 떠오르는데, 역시 지구 멸망의 징조일까요?)
앨범을 들어보면 전반부에는 흥겨운 째즈의 느낌이 강한데, 그런 점을 반영하듯 앨범을 여는 첫 곡의 제목은 'Rag time'입니다. Rag tme의 의미를 찾아보면 '째즈의 한 피아노 연주 스타일'이고 '술집이나 무도회장에서 연주되는 스타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작부터 펍(Pub)이나 바(Bar)의 흥겨운 파티의 느낌이 물씬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 'Show Me Love'는 귀여운 팝을 기대하게 했던 '라이너스의 담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흥겨우면서도 성숙한 느낌입니다. 흥을 돋구는데 좋은 방법인 브라스까지 등장하면서 펍의 흥겨운 파티나 50~60년 대를 배경으로한 뮤지컬의 한 장면 정도를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합니다.
'Gargle'은 최근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검정치마'와 함께한 곡으로 복고적이고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다만 조휴일의 목소리는 귀여운 연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마치 할아버지와 손녀가 부르는 곡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Misty'는 고급스러운 째즈바에서 들을 법한 곡으로, 고혹적인 연진의 보컬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욕심까지 느껴진달까요? 앨범 전반부의 복고적인 분위기는 EP 'Semester'의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던 이 밴드에게는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보컬리스트로서 의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던 '연진'을 궤적을 추척해본다면 놀랄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앨범에도 수록된) 두 번째 EP의 타이틀 'Labor in Vain'에서는 나긋나긋한 변신이 있었고, 2006년에 발표된 두 장의 앨범에서도 그런 변화를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밴드 'BMX bandits'와 함께한 'Save Our Smiles'는 원테이크로 녹음한 느낌으로 펍에서의 공연 느낌이었고, 역시 영국에서 '버트 바카락'과 함께한 'Me & My Burt'에서도 보컬리스트로서 연진의 욕심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첫 EP의 귀여웠던 'Picnic'도 앨범의 파티 분위기에 맞게 재탄생했습니다. 귀여움은 아직 남아있지만, 에그 쉐이크나 펍의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공연 같은 현장감을 주는 추임새와 배경음 덕분에 흥겨움이 더합니다. 두 번째 EP의 수록곡이기도 한 'Labor in Vain'은 보사노바풍의 곡으로 'Misty'에 이어 보컬리스트 연진의 매력을 발산하는 곡입니다. 'Misty'에서는 우수에 찬 남성(지난 사랑이었던)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아가씨였다면, 이 곡에서는 '사랑은 헛수고'라고 외치는 도도한 도시 아가씨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죠.
앨범의 전반부가 늦은 밤 펍이나 바에서 펼쳐지는 공연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밤을 향하는 음악, (보통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혹은 생각할 만한) 더 인디밴드다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앨범 전반을 감싸고 있는 복고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소리들은 2006년 발표되었던 '에레나'의 앨범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동질감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이 앨범에 믹싱 엔지니어 및 사운드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DJ soulscape'의 존재입니다. 바로 에레나의 앨범에서는 그의 또 다른 음악적 자아인 'Espionne'로서 프로듀서 및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기 때문이죠. (여러모로 유사점이 많은 두 앨범입니다. 여성보컬이라는 점, 두 앨범다 8월에 발매되었다는 점부터 음악적 스타일과 사운드가 들려주는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성까지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에레나의 앨범에 'Holidaymaker'라는 곡이 있는데 이 앨범에 참여한 조휴일의 영어식이름이 바로 'Holiday'이기도 합니다.) 복고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앨범 CD 및 디지팩의 디자인에서도 나타나는데 CD는 LP의 모습으로 프린팅이 되어있고 디지팩은 기타와 트럼펫, 피아노 그리고 마이크를 단순화해서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순간의 진실'은 잔잔한 곡이지만 재밌게도 레게 곡입니다. 흥겨울 줄만 알았던 레게가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네요. 잔잔함 속에서도 코러스는 상당히 유쾌하여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백'은 고즈넉한 밤길을 걸으며 풀어내는 절절한 고백의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Music take us to the universe'는 이전까지 '라이너스의 담요'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깜짝 놀랄 만한 일렉트로니카 트랙입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 욕심일까요? 제목부터 재밌는 '밀고 당기기'가 느껴지는 'Stop liking, start loving'은 서서히 마지막 곡을 향해는 앨범처럼, 잠을 청하는 오르골 연주 만큼이나 감미롭습니다. 마지막은 두 번째 EP에 수록되었던 'Walk'로 밝고 씩씩한 마무리를 들려줍니다.
앨범 'Show Me Love'는 적지 않은 11 트랙을 담고 있지만, 너무 오랜 기다림 속에 발매된 앨범이기에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다행히도 한 곡 한 곡, 맛깔나는 곡들로만 채워져있기에 기다림은 어느 정도 보상이 될 법합니다. 인디 뮤지션들도 오래 기다린 앨범인가 봅니다. 크레딧을 보면, '로로스'의 도재명이나 '페퍼톤스'의 이장원처럼 익숙한 이름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꾸준한 공연과 너무 늦지 않은 후속 앨범의 발표만이 오랜 기다림을 채워줄 특효약이 아닐까 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Song&Album
-
- Tag
- 라이너스의 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