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a with Epitone Project - 자기만의 방

오랜 준비 끝에 모습을 드러낸 파스텔뮤직의 야심작,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자기만의 방'.

2010년 10월과 11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으로 앨범을 예고했었던 '심규선'이 해가 바뀐 2011년 9월 드디어 정규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약 11개월의 시간이 흘러 앨범을 발표하는 그녀의 이름은 'Lucia(그녀의 세례명)'로 바뀌었고, 'Lucia with Epitone Project'로서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한 '자기만의 방'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번 앨범 발표에 앞서 올해 5월에 공개된 디지털 싱글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까지 세 싱글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들려주면서 앨범에서는 어떤 곡들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는데 꽤 오랜 기다림이 되었군요.

고독으로 가듣찬 입김같은 허밍을 들려주는 '첫 번째, 방'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꼭 '한희정'의 허밍과 비슷하게 들리더군요.) 첫 곡은 싱글로 공개되었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입니다. 가요에는 주로 짧은(단편적이면서도 간결한) 제목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이 곡의 제목이 상당히 장황하고 마치 외국어를 번역해 놓은 제목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제목을 처음보았을 때 일본의 '나카미시 미카'의 '연분홍빛 춤출 무렵' 같은 곡이 생각나더군요. '꽃처럼 한 철'이라는 비유가 참으로 멋들어진데, 째즈풍으로 편곡된 연주는 윈드차임의 신비함과 어우러져 어련한 봄날의 싱숭생숭함과 기다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기다리는 사랑', 혹은 '사랑의 기다림'을 알린다고 할까요. 무려 Lucia의 자작곡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디'는 디지털 싱글 '두 번째, 방'로 공개되었던 곡으로 정규앨범에서는 Album version으로 재녹음되었습니다. 재녹음되면서 과도한 애드립이 줄어들면서 보컬이 싱글에서보다 부드럽게 곡에 융화되었습니다.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의 장기인 현악을 적절히 이용한 감성 발라드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보컬이 악기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본인의 앨범과는 다르게 이 앨범에서는 Lucia의 목소리가 곡의 중심에서 들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곡으로도 손색이 없어서, 앨범 공개에 앞서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이나 타이틀로 내세운 '어떤 날도, 어떤 말도'와 함께' 트리플 타이틀 전략이 아닐까 하네요. 이어지는 '고양이 왈츠'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으로 공개되었던 곡입니다. (첫 세 곡이 연속으로 싱글곡들이네요.) 가벼운 왈츠의 세박자와 함께 봄날의 설렘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앨범 공개 일주일 전에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입니다.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가사이지만 연주는 상당히 밝고 경쾌합니다. 시작부터 경쾌한 피아노 연주는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빠르게 스쳐지나며 '안녕'하는 '스무살의 어딘 가'을 표현하고 있나봅니다. 연주과 가사의 다른 분위기만큼 '웃음지은 눈물' 그려내기에 적절한 기교가 또 있을까요.

'Sue'는 Lucia의 자작곡으로 이 앨범에서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기도 합니다. 제목 다음에는 'inspired by Fingersmith'라고 적혀있는데 'Fingersmith'는 2002년에 발표된 'Sarah Waters'의 소설이자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5년에 영국 'BBC'에서 제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었지만, Lucia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를 이해할 수 없지만, 너 없이 살 수 없다'고 외치는 후렴구는, 바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에도 빠지게 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호소가 아닐까 하네요.

첫 트랙 '첫 번째, 방'이 1분이 되지 않는 트랙이었지만, 앨범의 후반을 여는 '두 번째, 방'은 2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선율은 이어지는 '어떤 날도, 어떤 말도'의 인트로인 동시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참여했다는 발자국 같은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두 트랙은 디지털 싱글의 제목이기도 한데, 디지털 싱글 수록곡들과는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싱글 '두 번째, 방'에 수록되었던 '부디'는 앨범의 전반부인 '첫 번째, 방'에 가있으니까요.

'어떤 날도, 어떤 말도'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체적으로 무난한 전개로 앞선 '부디'나 '안녕, 안녕'보다 부족한 임팩트는 아쉽습니다. 다만 간주에 등장하는, 트럼펫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가을의 공기만큼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플루겔혼' 연주는 인상적입니다.  째즈풍의 '버라이어티'는 Lucia의 뮤지컬 배우로서의 경력이 물씬 느껴지는 곡입니다. 다분히 뮤지컬 삽입곡 같은 전개와 브라스와 현악을 배치하여 반짝이는 화려함을 들려주는데, '임상아'의 '뮤지컬'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고양이 왈츠 Acoustic'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 왈츠의 어쿠스틱 버전입니다.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사랑에 대한 설렘이 느껴진다면 어쿠스틱에서는 설렘보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더 크게 들리네요. '어른이 되는 레시피'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기에 Lucia의 자작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을 뒤엎고 차세정의 곡입니다. 앞선 '고양이 왈츠'에 이어 어쿠스틱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고양이 왈츠가 제목처럼 왈츠의 세박자로 느긋하게 흘러간다면 오밀조밀한 연주로 속도와 긴장감을 조성하여 귀를 사로잡습니다.

'웃음'은 이 앨범에서 Lucia의 뒤에 숨어있었던(?) 차세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Lucia와 차세정의 듀엣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에피톤 프로젝트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기도 하면서 다른 점들도 들립니다. 역시 현악의 연주는 '에피톤 프로젝트답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비극적인 씁쓸함'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웃음'은 해맑은 미소가 아닌 허탈한 쓴웃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앨범의 문을 닫는 앨범 제목과 동일한 '자기만의 방'은 Lucia가 제일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버라이어티'와 마찬가지로 째즈와 뮤지컬이 어우러진 분위기는 그녀가 지향하는 음악적 목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이 붙었겠죠.

보컬리스트와 프로듀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앨범은 요조(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타루(with Sentimental Scenery, Swinging Popsicle)에 이은 파스텔뮤직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디씬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런 조합의 시도는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인 가창력과 더불어 (홍대에서 듣기 쉽지 않은) 또박또박 아나운서같은 명료한 발음이 돋보이는 보컬리스트 Lucia와 보컬리스트들과의 협업에서 재능을 보인 물이오른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은 지난 조합들보다도 탁월한 출발을 들려줍니다. Lucia와 에피톤 프로젝트, 두 사람이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죠. 별점은 4개입니다.
2011/10/06 21:14 2011/10/06 21:14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든 경우, 파리돼지앵 '순정마초'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2년마다 홀수년에 열리는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가요제는 올해로서 3회째를 맞았습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각각 '강변북로 가요제'와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로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의 북단과 남단을 따라 달리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로 서울을 포함안 수도권을 무대로 했다면, 올해는 전국으로 무대를 넓혀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인 '서해안고속도로'(342km)에서 열렸습니다. (참고로 가장 긴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로 426km입니다. 2013년에도 열린다면 '여름의 휴가'라는 상징에 맞게 234km의 영동고속도로에서 열리지 않을까 하네요.) 2009년의 듀엣 가요제와 비슷하게 기존의 가수들을 섭외하여 팀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음원이 공개되면서 모든 곡들이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하는 '무한도전의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09년에는 어떤 곡들보다도 '박명수'와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함께한 '냉면'이 거의 압도적인 인기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는 모든 곡들이 사랑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고 최근에 많이 듣는 곡은 바로 '정재형'과 '정형돈'이 함께한 '파리돼지앵'의 '순정마초'입니다. 누구라도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정재형의 별명 파리지앵과 정형돈의 별명 돼지를 결합한, 팀이름은 조금 우습지만 이 팀이 들려주는 노래은 어떤 팀들보다도 진지합니다. 대한민국 간판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무한도전'의 이벤트답게 적당히 가볍고 신나는 가요제를 만드는 것이 격년으로 열리는 가요제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데, '파리돼지앵'이 들려주는 '순정마초'는 도입부부터 상당히 진지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작하는 웅장한 연주는 가요제에 참가한 다른 곡들과는 다른 스케일이고 청자를 압도할 만한 위력입니다. 처음 '순정마초'의 연주를 들었을 때,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는 정재형다운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과 '가요계에서 정재형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애절한 탱고의 선율을 연주하는 '반도네온'이라는 생소한 악기까지 동원하여 오페라의 한 소절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들려주는 '순정마초'의 연주는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달라집니다. '순정마초'라는 '순정'과 '마초'가 합펴진 제목 자체부터 어쩐지 우스운데 '달밤의 미스터 리옴므파탈'이라던지 '사랑의 파괴자'라는 단어는 그럴싸하게 진지하면서도 우습습니다. 그리고 '레베카'를 '내 백합'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 절정을 달립니다. 병맛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순정마초가 들려주는 웅장함 때문에 '병신같지만 어쩐지 멋있어'라는 기분입니다.

최근 예능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윤종신'에 이어 가수출신의 '예능늦둥이'의 기질이 보이는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부터 좋아하는 곡들이 많았고 솔로 앨범을 통해 저는 확실하게' 꼭 앨범을 사야하는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가수로서) 세 번째 정규앨범 '에 이어 2009년의 소품집 '정재형의 Promenade, 느리게 걷다'를 발표하였고 2010년에는 첫 피아노 연주 앨범 Le Petit Piano'를 발표하였습니다. 2011년이 다 가기전에 새로운 정규앨범을 기대해도 될까요?
2011/09/18 23:07 2011/09/18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