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한 조금은 시린 성장기 '한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이라니, '눈부신 경제 개발'이나 '새마을 운동'이 떠오르는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참으로 익숙하지만, 밴드의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이름입니다. 홍대 앞 '클럽 빵'의 공연 일정에서는 2008년 즈음부터 보아왔던 이름이었고, 공연 사진 속 밴드의 보컬이 밴드 이름과는 다르게 준수한 외모이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공연을 본 적은 없었네요. 어느 즈음부터 앨범 준비 소식이 들려왔었지만, 많은 인디밴드들의 앨범이 그렇듯이 작업이 지연되면서 '기대 음반'에서 사라졌죠. 조금은 독특한 이름의 '한강의 기적'의 기적을 설명에는 '형제밴드'가 따라오곤 합니다. '한강의 기적'에 '형제'라니, 어떤 형제의 '대박 성공 신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복고'를 전달하기에는 적절한 밴드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첫 곡 '신대방 삼거리로 가는 152번'은 신나는 기타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3분이 채 되지않는 비교적 짧은 곡이지만 깊은 여운을 던집는 곡으로, '날 기다리진 않을까? 날 구해주진 않을까?'라고 묻는 가사는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갈 길 잃은 청춘의 현실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내려야 할 것 닽아 다음 정거장에'는 모 CF에서 '저 지금 내려요'라고 외치던 장면과 겹쳐지면서 웃지못할 상상도 조금은 하게 되네요. 마지막 딱 10곡이 수록된 앨범이지만 대중교통과 관련된 곡들이 여러 곡 보이는데, 서울 '152번 버스'의 노선을 살펴보면 '한강대교'를 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52번을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다가 밴드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해파리'는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실로폰 연주로 시작하기에, 노골적으로 여름 시즌을 노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사가 재밌는데 잘 음미해보면 가사 속 주인공이 사람인지 해파리인지 혼동됩니다. '울고있는 나'나 '겁많은 해파리'나 거대한 바다 앞에서는 차이가 없게 들립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흥겨운 곡이기에 시원한 해수욕장에서 이 곡이기 울려퍼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상당히 긴 제목의 '그녀가 원하는 건 연예인들이 하는 그런 종류의 키스'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곡입니다. 조금 서글픈 가사와 다르게 브라스가 참여한 연주는 상당히 낭만적(로맨틱)이고 멜로디는 편안합니다. 더불어 가사가 담고 있는 많은 청춘들이 공감할 만한 소위 '낙오자의 감수성'은 공연장에서 '남녀' 모두 함께하는 '눈물의 싱얼롱'이 펼쳐지기에 적절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목만 듣는다면 '그녀'는 '된장녀'처럼 생각되지만, 가사 속에 '그녀'도 사실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그'만큼이나 외로운 존재이니까요.
묘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하는 '신촌 로터리'는 익숙하고 활기찬 신촌의 풍경 속에서 서글픈 젊음을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작은 기타'와 '나 혼자 몇 마디' 역시 이 앨범을 관통하는 '서글픈 젊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 두 곡은 각각 '정직'과 '진실'을 노래하며 '자아 성찰'을 보여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반면 다른 점이라면 '작은 기타'는 서글픈 가사와는 상반되는 흥겨운 연주로 '해학'적인 면이 있다면, '나 혼자 몇 마디'는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라는 가사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이 떠오를 만큼 시적인 면이 있습니다.
장엄한 스케일이 담겨있을 법한 제목과는 다르게 '한강의 기적'은 그리움이 물씬 느껴지는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꿈에서 영화 속 주인공도 되어 대사를 잊는 장면은 상상해보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 주인공의 입장으로는 서글픕니다. 잠깐 잠든 사이에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아직 더 자라야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어느덧 훌쩍자라서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집니다. '다른 누군가의 스무 살'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인디씬의 선배들인 '이장혁'이나 '푸른새벽'의 '스무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로켓, 글라이더, 고무동력기'와 '양화대교'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두드러진 락 넘버들입니다. '물로켓, 글라이더, 고무동력기'는 어린 시절 익숙한 소품들을 이용하여 성장기를 이어갈 법도 하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사랑에 집중한 곡입니다. '양화대교'에서 보컬 '주영찬'의 절규와 기타 리프는 왠지 코맹맹이 소리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빌리 코건'의 'Smashing Pumpkins'가 떠오르게 합니다.
마지막 곡은 '시소'입니다. 밴드 '한강의 기적'은 앨범 전반에 걸쳐 익숙한 장소나 소재들을 이용하고 있고, 슬픔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풀어나가는데 이 곡에서도 그러합니다 연주는 '펑크락'풍으로 시작되는데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지만'의 조금 과장되고 과격한 가사는 재밌고 '펑크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신나는 연주와는 다르고 가사는 그 한 소절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최근의 '틴에이지 로맨스'물의 한 장면처럼 세련되면서도, 이제는 '성장 드라마(만화)'의 거장라고 할 수 있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속 한 장면처럼 '여백의 미'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기른 '수염'과 '머리(카락)'가 나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지 그렇게 변한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지, 궁금하네요. 고의로 중의적인 표현을 썼으려나요?
다시 언급하지만, 밴드 '한강의 기적'가 들려주는 앨범 '한강의 기적'은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이 성장기는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단편들과 자기고백과 '젊기에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란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경제 발전의 감격을 연상시킬 수도 있겠지만, 밴드 '한강의 기적'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히 버티고 성장해가는 모든 소년과 청년들, 바로 이 앨범을 듣는 모두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점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포크'와 '락'이라는 서양 음악의 형태를 빌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적인 감수성을 담아낸 앨범 '한강의 기적'은 '가장 현재의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인디적'인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내년 초에 있을 '한국대중음악상'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이 '올해의 신인'에 올라가있을 것이라고 슬며시 예상해봅니다. 그야말로 쉽지 않은 현실의 낭만과 재치를 담아낸 놀랄 만한 데뷔 앨범이 얼마나 될까요? 별점은 4.5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한강의 기적 -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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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비/캐러멜 - 다이어터 1권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절찬히 연재 중인 다이어트 만화 '다이어터'.
몇몇 다이어트 만화들이 있어왔지만 '다이어터'만큼 현실적인 만화가 또 있을까? 네오비/캐러멜 듀오의 작품은 역시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병맛의 절정'인 '셔틀맨'부터 보아왔고, 다이어터도 셔틀맨의 조연 '등맛 서찬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런 병맛의 연장선이라고 기대하고 보았지만...
만화는 '운동은 너를 속이지 않는다'는 만화 속 (이제는 어엿한 주인공인) 찬희의 말처럼 가장 현실적인 다이어트 방법인 운동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론적인 운동에 머물지 않고 작가들의 다이어트 경험이 녹아들어서, 단순히 운동 만이 아닌 적절한 식이 조절과 동기 부여를 통해 '운동할 수 있는 환경'에도 초점을 맞추어 지금까지 많은 시도만큼이나 실패했던 사람들을 배려하고, 더 나아가 결국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는 운동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뚱뚱하지만 귀여운, 독자나 독자의 누나 혹은 동생일 법한 캐릭터는 친근감을 더하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수지나라'는 흥미와 진중함을 적절히 배분하여 재미와 실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치 않는다. 실제로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대사과정을, 때에 따라 생략 및 간소화 하였지만, 일반인들에게 결국 필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보다도 실제적인 응용이기에 너그러이 봐줄 만하다.
시즌 1 총 32화의 연재분을 300페이지가 넘는 책 한권에 담았는데, 다이어터들에게는 '만화속 세상'에서 '오무라이스 잼잼'과 함께 양대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코알랄라'가 약 절반정도의 연재분을 한 권 속에 담아서 나왔던 점을 생각한다면, 감질맛을 줄였고 그 페이지 수와 분량을 생각했을 때 가격 또한 (요즘 책들 가격의 거품을 생각한다면) 역시 다이어터답게 다이어트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2가 한참 진행중인데, 작품의 완결까지 네온비/캐러멜 두 작가의 건강을 기원한다. 연재분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지만 2권도 기대한다. 더불어 네온비 작가의 '기춘씨에게도 봄은 오는가'의 출판도 기대해본다.
* 요즘 네이버와 다음의 웹툰들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작품들이 참 많다. '양영순' 작가의 대작 '덴마'와 '허영만' 작가의 대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부터, 단행본으로도 소장하고 있는 '야미' 작가의 '코알랄라!' 등등... 많은 좋은 작품들이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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