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티요나(Nastyona) - Another Secret

EP부터 1집이 나오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2집까지는 약 1년 반만으로 단축한 네스티요나(Nastyona)의 새앨범 'Another Secret'.

2007년 발매된 데뷔앨범 '아홉 가지 기분'은 분명 그 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였지만 대중의 관심이나 한국대중음악상 등의 수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인디씬에서 '네스티요나'만큼 확신한 밴드만의 색을 갖고 꾸준히 활동하는 밴드가 드물다는 점입니다. 전작 '아홉 가지 기분'이 기대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기에, 기대보다 빨리 발매된 2집은 의문이 앞섰습니다. 인디씬의 밴드가 어느 정도 유명한 소속사를 잡고 빠르게 앨범을 발매하는 경우, 밴드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첫 곡은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제목의 intro 'Another Secret'입니다.전작과 마찬가지로 intro이지만 약 2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네스티요나'만의 색깔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밴드 사운드와 피아노(키보드)가 어우러진 '네스티요나표 사운드'의 적절한 맛보기입니다.

천연덕스러운 '요나'의 보컬이 반가운 'Rumor'는 어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댄서블한 베이스 연주가 두드러지는 트랙입니다. 가사는 세상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도는 나만 모르는 나의 이야기'같은 가사는 작금의 사태, 연예인들과 관련된 각종 소문과 잇단 연예인들의 자살을 생각하게합니다. 그럼에도 베이스와 드럼, 리듬파트의 활약으로 노래는 흥겹기만 합니다. '아하이아하'를 외치는 요나의 보컬은 너무나 육감적이구요. 모두가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바로 Rumor겠죠.

'폭설'은 타이틀 곡답게 요나의 주무기,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키보드 연주가 두드러지는 트랙입니다. '폭설', 제목 그대로 많은 눈을 의미하겠지만, 한 번 꼬아서 생각하면 '폭설'의 '설'자가 '눈 설(雪)'이 아닌 '말씀 설(說)'로 중의적인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 설'이라면 '난폭한 말, 폭언'과 같은 의미이고 가사가 상당히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니가 내게 내려와'는 마지막 말들에 대한 상처를 역설적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폭설'로 부드러워졌던 분위기는 강하게 몰아부치는 '티격'으로 긴장감이 가득 차오릅니다. '티격'의 사전적 의미처럼 보컬과 악기들이 다툴 기세로 몰아부치면서 조화를 이룹니다. 특히 네스티요나 사운드의 중심이 되는 베이스와 드럼이 이 곡에서 더욱 두드러져서 농밀한 긴장감을 연출합니다. '너도 나처럼'은 앨범 타이틀처럼 비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느슨했던 압박의 농도는 곡이 진행되면서 점점 짙어집니다. 무거운 베이스 연주는 압박을 주도합니다. 'I do'는 그루비하고 트랜디하면서도 네스티요나다운 어두움은 여전합니다.

분위기를 전환하는 'Boy Meets Girl'은 연주곡 성격의 트랙으로 제목처럼 네스티요나답지 쾌활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요나의 목소리에는 소년들을 기다리는 마녀처럼 음흉한 구석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작전'은 밴드 'Marilyn Manson'의 앨범 'Mechanical Animals'를 떠오르게 하는 트랙입니다. 퇴폐적인 보컬과 흥겨운 리듬 라인을 동시에 갖춘 면에서 말이죠. 'My September'는 의문스러운 키보드 연주로 시작하는 한 편의 스릴러물 같습니다. 흐느끼면서도 섬뜩한 '야옹'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역시 섬뜩한 가사로 끝나며 반전을 완성시킵니다. '내 곁에 있어줘'는 투명한 기타 연주와 함께하는, 퇴폐와 음침을 겉어낸 '네스티요나표 발라드'입니다.

이어지는 세 트랙은 밤의 이미지입니다. '묘아(Another Vesion)'는 원래 컴필레이션 '고양이 이야기'에 실렸던 곡으로 믹싱이 달라졌나 봅니다. 원래 버전이 '안개 속의 신비한 고양이'같은 느낌이라면 이번 버전은 '어둠 속의 거친 도둑 고양이'같은 느낌입니다. '불면증'은 잠을 방해하는, 머릿 속을 행진하는듯한 리듬라인이 두드러지는 곡입니다. '별, 열일곱의 너에게'는 보컬이 들어가는 마지막 곡답게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너에게'라고 했지만 가사는 어쩐지 요나가 과거의 열일곱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같습니다. 드럼을 대신한 퍼커션이 서글픈 마음을 토닥여줍니다.

'폭설(piano version)'은 '폭설'을 피아노로만 연주한 outro 성격의 트랙입니다. 연주는 잔잔하면서도 가슴 한 켠을 울립니다.

전작의 자켓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그림이었다면 이번 앨범의 자켓는 물방울이 수면으로 떨어지는 그림입니다. 'Another Secret', '또 다른 비밀'이라는 제목처럼 확연히 전작 '아홉 가지 기분'의 연장선 위에 있는 앨범입니다. 하지만 전작에 실리지 못한 곡을 모은 앨범이 아닌 '소포모어 징크스'의 우려는 불식시킬 완성도의 트랙들이 즐비합니다. 네스티요나처럼 밴드만의 색을 유지하는 밴드도 드물지만 높은 퀼리티의 음악을 유지하는 밴드는 더욱 드뭅니다. 이 정도면  지난 앨범에 이어 '연타석 만루홈런'이라고 하고 싶네요.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연타석 만루홈런에도 패색이 짙은 게임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밴드들이 대중의 관심과 합당한 대우를 받기에 한국의 음악시장은 너무 피폐해져 있습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04 17:30 2009/05/04 17:30

엑스맨 탄생 : 울버린 (X-Men Origins : Wolverine) - 2009.05.01

사실 엑스맨 시리즈는 1편과 2편의 감독이었던 '브라이언 싱어'가 손놓았을 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3편은 최악이었고,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이하 울버린)'으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까? 뭐 '조엘 슈마허'가 말아먹은 배트맨 시리즈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프리퀄답게 1800년대 중반부터 살았던 '불노불사(?)'의 '로건(울버린)'의 과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 엑스맨 시리즈가 원작 코믹스와는 같은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인지, 엑스맨 삼부작과는 스토리가 조금씩 어긋나는 느낌이다. 싸이클롭스나 세이버투스와의 관계는 삼부작과는 괘도를 다르게 나가는 것일까? 어쩌면 배트맨 시리즈처럼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낫겠다.

스토리라인은 좀 엉성하지만 액션은 볼만하다. 다니엘 헤니의 첫 활약도 멋지지만 '거기까지'였고. 마지막 보스는 프리퀄이지만 영화 엑스맨 시리즈 사상 최고처럼 보인다. 지루하지 않은 시원한 볼거리 덕에 별점은 3.5개.

*사랑했던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영문 제목이 'X-Men Origins'이고 부제가 'Wolverine'이다. 그럼 'X-Men Origins'라는 제목을 달고 다른 X-Men들의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두었다. 비, 바람, 구름을 조종하는 '스톰'의 이야기도 나오면 재밌을듯.

2009/05/03 11:45 2009/05/03 11:45

후지타 사유리 - 도키나와 코코로

인기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의 '4차원 소녀' 혹은 '엽기녀', '후지타 사유리(이사 사유리)'의 독특한 방랑기 '도키나와 코코로'.

'도키나와'는 '도쿄'와 '오키나와'의 합성어이고, '코코로'는 일본어로 마음을 뜻한다. 제목처럼 '오키나와'와 '도쿄' 두 개의 큰 장으로 나눠어져 있다. 사실 수필이라고 하기보다는 사진집, 혹은 화보집에 가까울 정도로 글 보다는 사진이 많다.

오키나와 부분에서는 오키나와의 멋진 풍경과 그나마 얌전한 사유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쓸쓸한 오키나와의 역사처럼 쓸쓸한 사유리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도쿄 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수다를 통해서 그리고 그녀의 미니홈피를 통해 알려진 사유리의 '엽기적인 행각들'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이 담겨져있는 글들은 그렇지 않다. 사유리가 그런 재밌는 사진들을 찍는 이유를 알 수도 있다. 오키나와가 그나마 먹거리에 대해 조금 자세히 나와있다면, 도쿄에는 사유리가 좋아하는 소품들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사유리가 쓴 일종의 단편 소설 같은 글들도 읽을 수 있다. 그 글들을 통해 우리에게 비춰진 엽기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깊은 생각을 갖고 있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79년 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유치하게 비출 수 있는 행동들을 보여주지만, 또 다른 깊은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그녀를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도쿄와 오키나와에 대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화보집 정도로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녀의 화보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강력 추천이다. 가볍게 읽은 수 있는 사유리라는 사람의 '일기장'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감성을 자극하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지만, '후지타 사유리'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재밌으면서도 왠지 서글픈 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아직 만나지 않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과 만난 나는 언제나 웃고 있겠죠.
그리고 당신을 언제나 웃게 해 줄게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지켜줄게요.
나는 항상 당신의 편이에요.
당신을 만난 것이 기뻐서, 내 눈은 항상 촉촉하겠죠.
촉촉한 눈동자에 당신은 어느새 그만 키스하고 싶어지겠죠.
하지만 안 돼. 조바심내면 안 돼.
성질 급한 사람은 싫어요.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니까 당신은 아마 좋은 사람일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아니더라도,
몸짱이 아니더라도,
데이트는 항상 집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하더라도,
아마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100일 기념일에는 장미 꽃다발이 아닌, 나무 한그루를 보내 주세요.
그리고 커플티를 입고, 함께 걸어 주세요.
부끄러워말고 내 손도 잡아 주세요.
그래도 약속해 주세요.
옛 여자 친구 이야기는 하지 마요. 질투 나니까.
그래도 약속해 주세요.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혼내 주세요.

그리고 믿어 주세요.
당신이 어떤 인종이든 나는 당신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믿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해해 주세요.
싸우고 만약 "미워"라고 말해도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아무리 "강남"이라고 발음을 해도 "한강"이라고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을.

일본에서는 운명의 사람은 빨간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 빨간 실로,
겨울이 되면 당신에게 스웨터를 짜줄게요.
그러니까, 추운 겨울날은 그 스웨터를 입고 나를 안아 주세요.
2009/05/03 00:49 2009/05/03 00:49

나의 하루

어젯밤에는 대형할인마트가 닫을 시간 즈음에 가서
할인하는 각종 먹거리와 병맥주를 잔뜩 사서
배불리 먹고 마셨다.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뱃살이 좀 늘겠군.

오늘 아침, 평일에도 힘든 6시 10분에 눈을 떠서
7시 10분 시외버스를 타고 부천에 올라갔다.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부모님께 운동화 한 켤레씩 사드렸다.
물론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운동을 위해 트레이닝 복과 운동화도 샀다.
지름신을 어쩐데.

오후 2시 30분 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
길이 너무나 막혀 5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래도 고속버스만 타면 잠이 들어서 다행...

영화 리뷰를 한 편쓰고,
책을 한 권 읽었다.
어제에 이어 블로그 포스팅은 두 개 정도 하고 자야지.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쓴 하루.
왠지 뿌듯하고 기분 좋아.

그래도,
사랑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09/05/02 23:16 2009/05/02 23:16

박쥐 (thirst) - 2009.04.30.

10년 만에 완성된 박찬욱 감독 숙원(?)의 작품 '박쥐 (thirst)'.

한국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박쥐', 제 관점에서는 'B급 판타지 로맨스물'이라고 하고 싶네요. 대부분 평생 독신으로 사는 남자 수도사에게 발생하고 흑인에게는 발병하지 않는 EV(이브) 바이러스의 특성은 크리스트교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평생 신을 섬기는 독신의 남자(아담)들에게 잘 발병하는 EV(이브)는 언어유희에 가깝습니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크리스트교와 관련된 성화(聖畵)들이 모두 백인들만 등자하는 점도 비꼬고 있는 듯합니다. 이 외에도 뱀파이어가 되길 갈구하는 노신부(박인환)의 모습도 그렇구요. 하지만 종교에 대한 풍자의 수위는 강하지 않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풍자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풍자의 강도는 상당히 약한 편입니다.

'전 이제 모든 갈망을 갈구합니다.'

인간도 짐승도 될 수 없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대변하는 의미에서 '박쥐'라는 제목을 선택하였나 봅니다. 이 영화가 공포나 액션물이었다면 적절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영어 제목인 'thirst'에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말로 '갈망'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뱀파이어로서 '피'에 대한 갈망과 사람으로서 '육체'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갈망들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구요. 그리고 '피'와 '사랑' 두 갈망이 만나면서 두 주인공 사이의 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비극적 로맨스가 완성되지요.

마지막에 '태주'가 '상현'의 헌 구두를 다시 꺼내어 신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지만, 태주가 마지막까지 그 구두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아마도 서로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증거의 의미였을까요?

송강호의 성기 노출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반드시 필요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김옥빈의 탐욕스러운 연기도 좋았고, 용감한 노출도 대단했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듯하네요. 역시 박찬욱,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02 18:37 2009/05/02 18:37

오지은 - 지은 (2집)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지은'으로 데뷔했지만, 거대 기획사에 밀려 '오지은'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두 번 째 앨범 '지은'.

앨범 타이틀이 1집과 마찬가지로 '지은'입니다. 이것도 그녀만의 identity라고 해야할까요? 앨범 자켓도 역시 본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난 '지은'과는 다르게 이번 '지은'은 컬러에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뇌쇄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그렇기에 같은 '지은'이지만 다른 '지은'입니다. 앨범 수록곡들의 방향에 대한 '복선'이랄까요? 야심차게(?) 전작과 같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2집을 살펴보죠.

'그대'는 앨범의 첫 곡이지만 마지막 곡이라고 해도 어울릴 분위기의 곡입니다. '그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그대'의 반복에서는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 절절함 때문에 가사에는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곡이 기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이별의 노래로 들립니다. 1집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에서 선보였던 곡으로 그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1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어필할 법합니다. '말주변'과 '요령'이 없는 '그대'가 그녀에게 한 '그런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진공의 밤'의 두드러지는 베이스와 드럼 연주의 어둡고 무거운, 퇴폐적인 분위기는 '오지은'이 아닌 '네스티요나'에게서나 들을 법한 곡입니다. 숨막히는 스릴러 영화같은 분위기는 그녀의 또 다른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약', '자빠트리면' 이런 묘한 상상을 하게 하는 단어들은 이 곡을 더 위험하게 합니다.

긴 제목의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는 경쾌한 분위기의 모던락 넘버입니다. 전작의 '부끄러워'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로 제목만으로는 다음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 니고'와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두 곡은 많이 다른 분위기이지만 가사를 살펴봐도 역시나 한 쌍 같습니다. '요즘 가끔 드는 생각'과 '잊으려했던 진실'은 바로 다음 곡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순정만화'의 수록곡 '이게 바로  사랑일까'까지 생각한다면 '사랑'에 관한 3색의 3부작이라고 하고 싶네요.

앨범 타이틀 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섬뜩한 사랑의 진실에 대해 노래합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발상을 뒤지는 충격적인 가사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가사와 더불어 짙은 호소력의 목소리는 이 곡의 흡인력을 절정에 다르게 합니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진실은 이 곡의 '잔인한 미덕'입니다. 풍성한 연주는 귀를 더욱 즐겁게 합니다. 무대에서 이 곡을 통해 본격적인 락커로서 보여줄 그녀의 모습이 기대가 되네요.

'인생론'과 '웨딩송'은 그녀의 어떤 인터뷰처럼 정말 멋대로 만들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곡입니다. '인생론'의 코믹스러운 보컬과 솔직한 가사는 앞선 트랙들에서 쌓아놓은 그녀의 분위기를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웨딩송'은 그 바톤을 이어받아 듣는 사람이 얼굴 빨개질 정도로 솔직한 가사를 들려줍니다. 또 그런 점들은 두 곡을 J-pop처럼 느껴지게도 합니다. 전작의 '그냥 그런 거에요'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의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을 듣고 있으면 그 여유로움에 빠져듭니다. 수평선 넘어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서서 우크렐레 선율에 맞춰 '훌라 춤'이라도 느릿느릿 춰야할 분위기입니다.

앨범의 '화려한 그래서 낮선(?) 전반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익숙한 후반부'를 시작하는, '푸름'은 엄숙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다른 트랙들과는 이질적이며, 피아노와 현악은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제가사는 꼭 한 편의 시조를 듣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목은 '푸름'이지만 듣고 있으면 '주름'이 생길 법도 합니다. '잊었지 뭐야'는 몽롱한 기억같은 몽환적인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후반부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이 곡도 마찬가지로, 이별 후에 깨닳음에 대해 노래합니다. 곡 분위기는 마지막 곡 같지만 아직 네 곡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익숙한 새벽 3시'는 이별의 후유증을 노래합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막연한 누군가가 무작정 그리운 새벽 3시의 감정들은, 아픈 이별들 겪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법합니다. '두려워'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합니다.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기억의 상처 때문에 사람은 복잡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더 복잡한가 봅니다. 앨범 전반부가 서로 다른 개성의 곡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면, 잔잔한 후반부는 이 곡에서 클라이막스를 들려줍니다.

'차가운 여름밤'은 앨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으로 전작의 '작은 방'같은 분위기입니다. 보컬과 연주를 한 번에 녹음했는지, 라이브를 같은 거친 느낌이 앞의 12트랙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7분에 이르는 긴 트랙인데도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보너스 트랙 '작은 자유'는 앞선 사랑 이야기들의 잔잔한 에필로그같은 곡입니다. 아픔, 두려움, 고통 모두 사라지고 모난 마음이 둥근 조약돌이 되어 평온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 너무 멀리있지만 더 큰 사랑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분한 기타 연주는 그 평온함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마지막 허밍에서 마음의 평온과 여유가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소속사가 생기고 좀 더 넉넉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지난 앨범에 비해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지난 '지은'의 성공 덕분인지 이번 '지은'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뭔가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결과물이 조금 아쉬웠던 전작과는 달리, 어깨에 힘은 빠졌지만 좀 더 자신있는 목소리는, 좀 더 '지은답게' 들립니다. 더 멋진 지은이 되어 돌아온 '지은',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01 15:03 2009/05/01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