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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작 중의 기대작 '두번째 달'의 새 앨범 'Alice in Neverland'.

타이틀 'Alice in Neverland'부터 재밌습니다. Ethnic Fusion이라는 장르를 표방했던 두번째 달이기에 제목도 이상한 나라의 'Alice'와 피터팬의 'Neverland'가 만난 퓨전입니다. 또 두번째 달 1집의 수록곡 중 'The boy from Wonderland'를 기억하는 이라면, '이상한 나라(Wonderland)'의 'Alice'가 '피터팬(the boy)'이 사는 'Neverland'에 있다는 제목은, 그 대척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앨범 표지를 보면, 외발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은 Ethnic Fusion답게 민속적 색이 짙었던 1집과도 대비됩니다. 앨범 제목에 따른 그림일 수도 있지만 이번 앨범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그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첫곡 '집으로 가는 길'은 백파이프(?)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아이리쉬 풍의 곡입니다. 긴 여행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집에 가까워질 수록, 익숙한 고향의 경치 속에서그 걸음은 가벼워지고 빨라져 어깨까지 덩실거리는 춤사위가 됩니다. 자, '두번째 달'의 세계로 다시 찾아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더불어 '프로도'의 고향 '샤이어'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이미 병자(?)입니다.

'Outlook over the ocean'은 거장 'Vangelis'의 신디사이저 음악들처럼 신비로운 분위기의 입니다. 그런 새로운 느낌 속에서도 '두번째 달' 특유의 민속 음악적 색을 녹여놓았습니다. 1집의 '바다를 꿈꾸다'와도 비교해 볼 수 있겠는데 '바다를 꿈꾸다'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바다의 기상이 느껴지는 곡이었다면, 이 곡에서는 신비롭고 고요하면서도 생명으로 가득찬 바다가 그려집니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봄이다'는 뉴에이지 음악의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우아한 현악의 참여로 상상의 나래에서 영화같은 한 장면이 그려질 만큼 -이병우 음악감독의 작품같은- 영화음악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봄(spring)처럼 통통튀는 왈츠 리듬은 '봄이다'라는 제목처럼 더욱 생기있고 따뜻하게 하네요.

'인형사'는 뜨거운 아라비아의 신비로운 밤을 느끼게 합니다. 인형사가 연주하는 현악기의 신비한 주술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의 발걸음은 타악기로 표현되는 듯합니다.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는 1집 수록곡 '어름연못'의 다른 버전 쯤 되는 곡으로 더욱 다채롭고 화려하게 연주됩니다. 원곡이 '어름연못'이 어름연못에 담긴 슬픈 전설을 이야기하는 강한 뉴에이지의 느낌이었다면, 점점 화려해지는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러서 장엄하고 화려한 서커스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커스에서 장엄하게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외눈박이 소녀의 슬픈 운명처럼 말이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일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서 가져온 제목인가봅니다. '장필순'의 음성으로 바람과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아래 파도만이 함께하는 쓸쓸한 바다의 모습을 먼 훗날의 회상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을 사용한 것처럼 여운을 남기는 엔딩 테마로 사용해도 좋을 법한 보컬곡이네요.

'신수동 우리집'은 제목으로만 보아서는 상당히 푸근한 느낌일 법하지만, 장엄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곡입니다. 앨범 표지가 외발 자전거를 타고 구름 속을 나는 그림인데 바로 이 곡이 그 그림을 위한 곡이 아닐까하네요. 흰 구름 속을 뚫고 맞이하는 새파란 하늘의 상쾌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신수동 우리집이라는 현실적 공간은 환상의 세계로 탈바꿈합니다. 새롭게 편곡된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와 더불어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하사이시 조'의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캐스커'가 참여한 '내게 말하기'에서 전자음과 아코디언 등 캐스커의 음악을 들어본 이라면 귀에 익은 소리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비장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은 '화자의 내면'을 항햐는 발걸음 같습니다. 그 발걸음에 수 많은 기억들과 상념들이 스쳐가지만 흐릇하고 몽롱하기만 합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는 1집의 '얼음연못'을 이을 애절한 '킬링 트랙'입니다. 얼음연못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설원의 바람'같은 애절함은 아니지만, 눈물이 방울방울 쏟아나는 쓸쓸한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피아노와 현악의 조화, 그 우아한 쓸쓸함에서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나비의 집'에서는 라운지 음악들에서 자주 애용되는 탱고 리듬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비의 우아한 춤은 위험하기만 합니다.

'타악기 농장'에서는 다시 장소를 아라비아의 어지럽고 뜨거운 열기 속으로 옮깁니다. 10분에 가까운 긴 곡으로, 무더위 속에 나른한 시장 속에서 타악기에 장단은 행진하는 낙타떼의 발걸음 같습니다.

무거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하는 '귀향', 역시 영화 속 한 장면과 어울릴 법한 엔딩 테마입니다. 다소 서글픈 초반부를 지나면 희망적으로 떠오르는 곡의 진행과 마지막 절정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네요. Neverland에서 머물던 Alice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피터팬의 손을 잡고 떠오르는 즐거운 상상, 그리고 날아오르는 그림자. 구름을 뚫고 밤하늘을 가로질러 별빛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하수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

'Eridanus'는 그리스 신화 속 '강의 신'이자 별자리 이름이기도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신비로운 신화 속의 도시를 탐험하는 느낌은 모 놀이동산의 '신밧드의 모험'을 연상시킵니다. 물론 더 밝고 더 찬란하고 더 신비롭습니다.

두 개의 파트로 이어지는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가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첫 번째 파트는 제목처럼, Neverland의 친구들이 느끼는 앨리스가 떠나는 뒷 모습과 그 빈 자리의 쓸쓸함을 그려내는 것만 같습니다. 점점 빠르고 긴박해지는 두 번째 파트는 Neverland를 떠난 뒤, 또 다른 어딘가에서 모험을 맞이하는 Alice의 모습 같습니다. 마치 토끼를 따라 토끼굴 속 미로를 지나는 그녀의 모습처럼 말이죠.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번쨰 달'에게도 '소포모어 징크스'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인가 봅니다. '두번째 달'이 1집에서 추구했던 '민속 음악'적 색채는 조금 옅어졌지만, 더욱 화려해졌고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서정성은 짙어졌습니다.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성공을 이룬 1집에서도 쉽게 즐겨듣기 어려운 트랙들(특히 후반부의 몇 곡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넘길 만한 트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귀를 즐겁게 합니다.

또 1집의 수록곡 한 곡 한 곡이 강렬한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Alice in Neverland'의  한 곡 한 곡은 이미지와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으로 다시 듣게 되더라도 어색함이 없을 법합니다. 어쩌면 '두번째 달'은 이 앨범의 청자들 모두 자신만의 Neverland를 찾길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2007년의 끝자락에 찾아온 '연주음악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Alice in Neverland. 별점은 4.5개입니다. 이 앨범을 듣는 여러분 모두 스스로의 Neverland를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