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번역서로서는 단편집 '차가운 밤에'의 다음으로 나온 중단편 모음집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다 읽었다. 최근 그녀의 소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재미있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사실은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가 실려있다는 점에 더 기대되었다.

'러브 미 텐더'는 지금까지 그녀의 장편 소설들과는 다른 노부부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묘한 감동이 있다. '선잠'은 '한 여름밤의 꿈'같은 사랑이야기로 계절의 변화와 사랑의 변화를 그려낸다. 여주인공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케릭터이다. 유쾌한 세 친구들의 이야기 포물선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진득한 우정을 모임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냈다. '재난의 전말'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진드기'라는 재난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파헤쳐간다. '오지은'의 노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가 떠오르는데, 주인공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 혹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은, 작가거나 잡지사 등 출판관련업에 종사하고 목욕을 좋아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과 연애하는, 조금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느낌도 드는 케릭터이다.

'녹신녹신'은 속을 알 수 없는, 아니 어쩌면 비겁한 변명의 나쁜 여자 이야기이고,  '밤과 아내와 세제'는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짧고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례식을 좋아하는 아주 독특한 부부의 이야기 '시미즈 부부'는 시미즈 부부와의 교류를 통한 여주인공의 정신적 성숙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 가장 궁금할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충격적 결말일 수도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줄이도록 하겠다. '마지막 기묘'한 장소는 같이 늙어가는, 노년기에 있는 세 모녀, 어머니와 두 딸의 이야기로 유쾌하고 활기차다.

지난 단편집 '차가운 밤에'와 마찬가지로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던 책으로, 역시나 장편들보다 재밌고 읽기가 편했다. 사놓고 읽지 못했던 그녀의 작품들, 밀린 책들을 이제부터 열심히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