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zziquai project - Love Child of the Century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준 2집 이후, 'Clazziquai Project(클래지콰이)'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세 번째 정규 앨범 'Love Child of the Century'.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1집 'Instant Pig'에 이어 큰 기대 속에 발표된 2집 ' Color Your Soul'의 부진은 클래지콰이에게 많은 생각을 남겼나봅니다. 1집과 2집의 간격인 16개월보다 긴, 2년에 가까운 21개월의 간격에서부터 그 절치부심이 엿볼 수도 있겠습니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던 지난 두 앨범들의 제목과는 달리 세 번째 앨범의 제목 'Love Child of the Century'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뭔가 심오할 법한 느낌입니다. 'DJ 클래지'가 직접 참여한 아트웍에서도 역시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번 앨범 아트웍에서도 역시, 이제 '클래지콰이'의 마스코트라고 돼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냥 돼지가 아니가 아닌 돼지의 탈을 뒤집어쓴 소년입니다. 앨범 제목에서 언급한 'Child'가 바로 이 아이일까요?

지난 'Color your soul'에 이어 이번에도 오프닝은 '알렉스'나 '호란'과 달리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지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가사는, '세기(century)'를 이야기하는 제목처럼 광오함이 담겨있습니다. 앨범 발매 당시 2007년으로 이미 7년이나 지났지만, '새 천년(New Millenium)'을 맞이하는 바람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타이틀 곡인 'Lover Boy'는 일렉트로니카와 팝이 버무러진 통통튀는 트랙입니다. 사실 심오하고 광오한 의미를 담았을 법한 타이틀과 그 만큼 기대를 저버리는 평범한 이 트랙이 타이틀로 선택된 점은 아쉽습니다. '생의 한가운데'는 클래지콰이의 앨범에서 흔하지 않은 한글 제목으로, 왠지 목가적인 내용이 기대되는데 내용물은 그 예상을 뒤엎는 반전입니다.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분위기를 환기시키죠.

Session 1을 여는 'All Hail'에 이어지는  'Gentle Giant'은 밝은 분위기의 팝넘버이지만 그 가사를 해석해보면 다분히 정치적인 느낌의 트랙입니다. 우리를 '네버랜드'로부터 지켜주는 'Gentle Giant'를 칭찬하는 듯한 밝은 분위기이지만, 반어적으로 꼬집고 있는 가사는 진실을 왜곡하는 어떤 것들(언론, 정부, 종교 등)에 대한 조롱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위트가 넘치는 Gentle Giant를 잇지 못하고 이어지는 곡들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Last Tango'는 슬픈 이별의 탱고 위로 흐르는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이 그나마 빛을 내지만, 진부한 사랑 노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탱고라는 소재는 이미 'Casker' 등 여러 일렉트로니카 계열 뮤지션들이 차용한 장르이기에 신선한 느낌은 부족하고,  그 이상을 들려주지도 못하네요. 스페인어로 '축제'를 의미하는 '피에스타'는 웰빙 열풍에 맞춰 웰빙 라이프를 노래합니다. 하지만 호란의 들려주는 '피에스타'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위 가진자들 만의 웰빙'을 노래할 뿐입니다.

1집의 인기곡 가운데 하나인 'After Love'가 떠오르는 제목의 'Next Love'는 시끄러운 클럽이 아닌 방에서 홀로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는 트랙으로 앞선 실망을 달래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가사를 주로 부르는 크리스티나가 한국말도 능수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하네요. 'Romeo N Juliet'은 대중들에게 인상적이지 못했던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한 마디로 이 앨범을 먹여살린 트랙입니다. 1집의 'Gentle Rain'을 뛰어넘는 사랑 노래로서  21세기의 새로운 음원 소비 수단인 '배경음악'에서 모든 클래지콰이의 노래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곡이 바로 이 곡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되어 사랑을 노래하는 알렉스와 호란의 음성은 연인들을 녹일 수 밖에 없을 만큼 탁월하네요. 호란의 나레이션이 미래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Flower Children'은 Session 1의 마지막입니다. Flower Children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레이션과 달리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곡의 혼잡한 구성은 제목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Session 2는 멋들어진 프랑스어 나레이션이 흐르는 'Confession'으로 시작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클래지콰이에게 씌여진 일렉트로니카라는 굴레를 벗고 '가요'로 듣는다면 가장 좋은 트랙들이 이 마지막에 모여있다고 생각됩니다. 'Confession'과 바로 이어지며, 고독한 도시의 밤을 머금은 '금요일의 Blues'는 클래지콰이 대표 보컬은 '호란이 아닌 알렉스'임을 확인시켜주는 트랙이라고 하겠습니다. 클래지콰이다운 아기자기한 사운드에 크리스티나의 매력적인 보컬이 녹아든 'Glory'는 지나치게 과장된 기교로 치장되거나, 혹은 대중의 기호와 동떨어진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은 절제와 중용의 미덕이 담긴 트랙입니다. 1집의 영광(glory)을 되세기며 Glory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곡에 좀 더 욕심을 냈다면 타이틀로도 손색이없었을 정도로 아쉬움이 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보컬도 탁월하지만, 즐거운 곡에서 분위기를 확실히 띄우기에는 음색적인 면에서 호란에 비해 부족하기에 'Glory'는 호란의 음성이 아쉽습니다.

마지막 트랙마저도 크리스티나의 몫입니다. 보컬 솔로가 돋보이는 마지막 세 트랙에서 각가 세 명의 보컬에게 할애되지 않고 호란이 빠진 점은 의외이기도 합니다. 혹시 이 앨범 발매후 1년이 지나 '이바디'로 다른 활동을 시작하는 호란과의 균열이 미묘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앨범을 맺으며 흐르는 엔딩 크레딧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합니다. 클래지콰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방에서 듣는 일렉트로니카'의 매력이 녹아들었네요.

좀 더 긴 준비 끝에 발매된 세 번째 정규앨범이지만 역시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지난 2집에서의 부진의 아쉬움을 생각한다면 클럽이 아닌 청취자의 방을 타켓으로한 '한국형 일렉트로니카'을 완성에 있어서는 분명 한 발자국 전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DVD가 포함된 '한정판'으로도 발매되어 3집의 새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전작들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소장하고 감상할 수있던 점은 팬으로서 점수를 주고 싶네요.

2011/01/12 03:46 2011/01/12 03:46

오지은과 늑대들 - 오지은과 늑대들

홍대 마녀 '오지은'의 '지은' 시리즈의 스핀오프? '오지은과 늑대들'
 
2007년와 2009년에 각각 한 장씩, 두 장의 '지은'을 발표하며 홍대 앞 인디씬에서 상당한 인지도의 뮤지션으로 올라선 '오지은'이 자신의 세 번째 정규앨범이 아닌 '기타팝 프로젝트'로 찾아왔습니다. 2집을 발표하고 공연을 하면서 밴드에 대한 욕심을 간간히 보여왔던 그녀라 놀랄 일은 아니지만 단순에 앨범까지 들고 나왔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요즘 인디씬에는 복고적이 느낌이 드는 'XXX와(과) XXX' 형식의 이름을 가진 밴드들이 은근히 유행인가 봅니다. 2009년을 휩쓴 '장기하와 얼굴들(장얼)'부터 2010년에 마땅히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여준 '9와 숫자들(9숫)'에 이어, 2011년을 앞둔 2010년 12월에는 데뷔앨범을 발표한 '오지은과 늑대들(오늑)'이 등장하였으니까요. 여성 프런트에 남성 세션 4명으로 이루어진, 뭔가 일을 낼 법한 멤버 구성의 '오늑'의 1집, 살펴보죠.

힘차게 앨범을 여는 '넌 나의 귀여운!'은 여러모로 이 앨범의 컨셉을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운 면보다 좋은 면이 많고, 나이는 많지만 애 같은 귀여운 남자친구' 예찬론을 펼치는 노래는, 본 곡을 포함하여 모두 오지은이 작사/작곡한 전반부(2~5번) 트랙들의 연애 이야기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근두근한 고백송 '뜨거운 마음'은 진솔한 표현이 돋보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나비의 날개짓에 비유하고, 마음의 크기를 방석, 의자, 소파로 점층적으로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이런 비유들은 9와 숫자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사귀지 않을래'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가 외칠 법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사귀기 전에 그에게 바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긴 제목의 '너에게 그만 빠져들 방법을 이제 가르쳐 줘'는 미리듣기로 공개될 만큼 탁월한 매력의 트랙입니다. 경쾌한 리듬과 기타리프는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부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락페스티벌의 싱얼롱을 노리고 만든 곡이 아닐까하고 강력하게 의심되기도 하구요. 역시 선공개되었던 '아저씨 미워요'는 제목부터 위험한 트랙입니다. '아이유'의 '오빠팬'이나 '삼촌팬'을 넘어서 '아저씨팬'까지 노리는 야심(?) 담겨있는 가사는 아저씨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합니다.

'사실은 뭐'는 '차도녀'를 넘어서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에 가까운 오지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사가 은근히 과격한데, 크레딧을 살펴보면 앞선 곡들과 달리 이곡의 작사/작곡은 모두 기타리스트 '정중엽'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 곡을 제외하면 모든 곡의 가사는 오지은이 썼습니다.) 재밌게도 마지막 반전은 이 곡이 '사실은 뭐.. 성인용(?) 트랙'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시 좀 위험해요.

발랄하고 달달한 기타팝은 역시 앨범이 표방하는 컨셉이구요. 그리고 그 발랄함과 달달함은 2장의 '지은(1집과 2집)'에서 찾아볼 수 없던 모습으로, '홍대 마녀'라고 불릴 만큼 극단적이고 과격하거나(華,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진공의 밤) 차분하고 서정적인(wind blows,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등) 표현들과는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물론 발랄한 곡들(웨딩송, 인생론)이 없지 않았지만 그 곡들조차도 다분히 진솔한 자기고백적인 수준으로 이렇게 '자제력을 상실한 사랑의 찬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틈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오지은'을 보여주는 '지은' 시리즈의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앨범의 후반부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 'Outdated Love Song'은 달달한 기타팝에서 진중한 모던락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작합니다. 앞선 트랙들이 '애정행각'에 대한 노래들이었다면 이제는 그 후폭풍의 시작이죠. 또 오지은만의 밴드가 아님을 다시 주지하듯이 'Outdate Love Song'과 '없었으면 좋았을걸'에서도 멤버들의 참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작곡을 각각 드러머 '신동훈'과 '키보드 '박민수'가 담당했습니다. 작곡자의 영향인지, 'Outdated Love Song'에서는 드럼이 두드러지고, '없었으면 좋았을걸'에서는 키보드의 비중이 큽니다. 가사에서는 비슷하게 사랑에 대한 후회를 담고 있지만, '단호한 후회' 대  '무기력한 후회'로 극명한 대비도 재밌네요.

'만약에 내가 혹시나'는 두 장의 앨범에서 볼 수 있는 '오지은'은 모습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근조근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두 장의 '지은'에서 후반부에 위치한 트랙들의 분위기에 닮아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어쿠스틱이 아닌, 늑대들의 밴드 사운드 위에서 펼쳐진다는 점이죠.

마지막 두 트랙은 앨범을 정리하는 트랙들이네요. 두 곡의 작곡은 베이시스트 '박순철'이 담당한 편안한 팝넘버입니다. '마음맞이 대청소'가 제목처럼 앞선 트랙들에서 펼쳐진 '사랑과 이별의 모든 감정'에 대한 정리를 담은 트랙이라면, '가자 늑대들은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셀프타이틀 앨범 '오지은과 늑대들'을 정리하는 트랙이라고 하겠습니다. 솔로 '오지은'에 가장 가까운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주는 '마음맞이 대청소'는 '만약에 내가 혹시나'와 더불어 오지은의 세 번째 앨범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습니다. 조금은 오글오글한 가사의 '가자 늑대들'이 프로젝트 밴드 '오지은과 늑대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곡일지, 혹은 힘찬 시작을 의미하는 곡일지는 지켜봐야겠죠.

'해피로봇 레코드'의 '2010년 깜짝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오지은과 늑대들'은 단순히 오지은의 확장판이 아닌 전혀 다른 색깔로 매력적인 곡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오지은이 들려주는 곡들이 무대 위에서 듣기보다는 방에서 조용히 듣기에 좋은 곡들이었다면 '무대 친화적'인 곡들로 무장하여서 그녀의 팬들에게 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홍대 라이브클럽과 방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단순히 오지은의 네임벨류에 의지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오지은과 늑대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좀 더 '오지은과 늑대들'만의 색깔로 가득찬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1/01/10 15:54 2011/01/10 15:54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파스텔뮤직표 캐롤 앨범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전격 발매!

파스텔뮤직은 우리나라 인디레이블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많은 소속 뮤지션을 보유한 레이블로, 인디대표 레이블이라고 할 만큼 2006년 발매된 'Cracker'를 시작으로 여러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발매해왔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소속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모아서 울궈먹기식의 컴필레이션이 아닌, 향후 발매될 앨범에 수록될 신곡 뿐만 아니라 앨범에 실리지 않은 미발표곡이나 컴필레이션 앨범만을 위한 특별한 신곡들까지 수록하여 샘플러 이상의 가치를 보장 때문입니다. 하지마 레이블 설립 후 수년이 지났음에도, 연말이 되면 레이블 입장에서는 '연말 대목(혹은 수금?)' 등등의 의미로, 혹은 팬 입장에서는 누구나 기대할 만한 그 흔한 '캐롤 앨범' 한 장 발매하지 않는 점은 의문이었습니다. 오래전 친분이 있는 파스텔뮤직 관계자에게 캐롤 앨범 계획에 대해 문의했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식의 답변 뿐이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적 의미를 담은 Christmas라는 용어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하여 Holiday라는 단어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고, 여러 고대 문헌상 12월 25일은 원해 태양신의 탄생을 위한 축제일이었지만 크리스트교에서 유일신 사상을 위해 차용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렇게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가 여러 이유에서 퇴색되어가는 경향이고, 그와 더불어 예수 탄생을 축하하던 캐롤도 대중가요 정도의 의미가 된 상황이지만, 그래도 연말 연시하면 떠오르는 노래들은 역시 캐롤이 아닌가합니다. 그리고 파스텔뮤직에서 2010년에는 무슨 새로운 결심을 해서 2011년을 준비하려는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캐롤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캐롤 앨범'하면 응당 흥청망청하는 우리 대중문화의 연말연시 이미지와 맞물려 그냥저냥 흥겨운 크리스마스 음악을 떠올리겠지만, 파스텔뮤직표 크리스마스 음악은 파스텔뮤직표 컴필레이션 앨범인 만큼 컨셉부터가 다릅니다. 좀 장황해서 말이 어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가슴으로 이해되는 '여전히 서툴고 외로운 어른들을 위한,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겨울동화'를 표방하고 있죠. 우선 앨범을 꾸며주는 일러스트부터 그렇습니다. 눈이 내리는 숲 속에 붉은 리본을 한 여우 한 마리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홀로 서있습니다. 그만 가엽게도 놀아줄 친구가 없는지 외롭게도 두리번 거리면서요. 그런데 여우가 그냥 여우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추운 곳에 서식하는 여우와 다르게 귀가 큰 것이 분명 '사막여우'네요. '눈 내리는 숲 속에 왠 사막여우?'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겠네요. 하지만 거기에 현명한 안배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눈 내리는 숲 속의 사막여우는 바로 '서툴고 외로운 어른들'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뜨거운 사막에 살던 사막여우가 이렇게나 추운 숲 속에 홀로 있으니 얼마나 어색하고 외롭울까요.

총 16트랙으로 한 장에 CD에 꽉꽉 눌러 담기에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2CD라는 호화사양으로 발매된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간단히 살펴보죠.

첫 트랙, 너무 유명한 캐롤 'The First Noel'은 후속 앨범의 소식이 궁금한 , '센티멘탈 시너리(Sentimental Scenery)'가 들려줍니다. 센티멘탈 시너리의 특기인 서정성과 더불어 탄생의 신비함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I hate Christmas parties'는 1997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Relient K'의 곡으로 원곡 만큼이나 낯선 'Hee Young'이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얼굴인가? 이별 후 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쓸쓸함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Redribbon Foxes'는 앨범을 꾸며주는 일러스트의 모티브가 된 '붉은 리본을 단 여우'의 쓸쓸한 동화입니다. 원곡은 'A Fine Frenzy'가 2009년 크리스마스 특별앨범을 위해 불렀고 파스텔뮤직의 떠오르는 신예 '심규선'이 다시 부릅니다. 긴장 가득한 기타 선율부터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원곡과 너무나도 똑같이 들려주는 소리들은 감탄스럽습니다. 눈으로 덮인 벌판에 부는 칼바람처럼 쓸쓸한 울림의 허밍은 압권입니다. 다음곡은 1944년에 쓰여졌고 수 많은 버전이 존재하지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서 유명한 곡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로 '캐스커'의 '융진'이 들려줍니다. 최근 새앨범에서 작곡으로도 참여하여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발휘하는 그녀인데,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도 잊지 않고 들려주네요. 멋들어지게 불러야할 법한 곡인데, 다정함을 담은 그녀의 목소리도 잘 어울립니다.

'George and Andrew'는 영국 밴드 'The Boy Least Likely To'의 노래입니다. 원래 이 밴드의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Special'에 수록된 곡으로 2010년에 파스텔뮤직을 통해 이 앨범이 국내에도 소개되었죠. 아담한 실로폰 연주와 함께, 'Wham'의 너무나도 유명한 'Last Christmas'만큼이나 흥겹습니다. 유명한 'Oh Happy Day'는 '어른아이'가 부릅니다. 경쾌한 이 곡이 경쾌함과는 거리가 있는 어른아이의 목소리로 들으니 조용한 기도처럼 경건함이 느껴지네요. 원곡은 18세기 찬송가를 1967년에 편곡하여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네요.

'왜 내게 묻지 않나요? 사량하냐고'는 제목처럼 독특한 이름의 '수미아라 & 뽄스뚜베르'가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가족인지 정체도 알 수 없지만 노래 제목만큼 이름도 독특하네요. 이 앨범에서 유일한 우리말 노래이기도 한데 합창으로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보면 긴 이름처럼 멤버도 많은가 봅니다. CD 1의 마지막 곡은 스페인어로 'Merry Christmas'를 의미한다는 'Feliz Navidad'입니다. 역시 유명한 캐롤로 1970년에 발표되었고, 보통 흥겹게 불려지는데 '이진우'는 나긋나긋 느끼하면서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여성팬들 좀 끌어모으겠어요.

CD 2는 '홍대 여신' '한희정'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곡은 1948년에 쓰여진 컨트리 넘버 'Blue Christmas'로 제목만큼이나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노래합니다. 그대는 white christmas를 보내지만 나는 blue christmas를 보낸다는 비유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그녀의 '리즈시절'인 '푸른새벽' 즈음의 분위기가 다시 발산되는 느낌이네요. 역시 신예인 '헤르쯔 아날로그'는 유명한 '겨울 노래'인 'Winter Wonderland'를 들려줍니다. 1934년에 쓰여진 이 곡은 무려 150명이 넘는 가수들이 앨범을 통해 발표했다네요. 1인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 '헤르쯔 아날로그'인데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 버금가는, 멋진 화음을 들려주니 정체가 궁금해지네요.

또 다른 '홍대 여신' '타루'는 유명한 캐롤이 아닌,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판타지인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에 삽입된 'Sally's Song'을 선택했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그녀의 음성은 당장 영화에  삽입되어도 매우 잘 어울릴 만큼 비참함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우물 가서 숭늉 찾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Dreaming of White Christmas (in Summer Days)'는 신예 '트램폴린'이 들려줍니다. (이 곡은 원곡을 찾을 수 없네요.) 매력적인 여성의 보컬과 어우러진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향후 행보와 공연이 상당히 기대되네요.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박준혁'은 'What Child is This'라는 곡을 들려줍니다. 무려 1865년에 쓰여진 이 곡은, 원작자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겪은 후 쓴 여러 찬송가들 가운데 하나라네요. 제목만 들으면 '이 아이들은 다 뭐야!', 이런 느낌으로 상당히 염세적인 제목같네요. 역시 오랜만인 '불싸조'는 'Somewhere in My Memory'를 들려줍니다. 낯선 제목이겠지만 몇년 전까지 크리스마스를 달궈주던, 너무나 친근한 영화 '나 홀로 집에'의 메인 타이틀이 바로 이 곡입니다. 역시 '파스텔뮤직의 개구쟁이'라고 할 수 있는 불싸조다운 선택이라고 할까요?

2010년 세 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Yield'를 파스텔뮤직을 통해 국내에도 발표한 'Arco'도 'I believe in Father Christmas'로 참여했습니다. 역시 Arco다운 간결함이 돋보이는 곡으로 원래 1975년에 발표되었고, Father Christmas는 영국에서 산타클로스를 부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마지막 곡에는 '짙은'을 필두로 파스텔뮤직 식구들이 참여하여 대미를 장식합니다. 바로 'John Lennon'과 'Ono Yoko'의 너무나도 유명한 'Happy X-mas(War is Over)'로 국내외 수 많은 가수들이 커버했던 곡이죠. 파스텔뮤직 버전에서는 합창을 통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노래처럼 세상의 모든 분쟁이 끝나고 언제나 크리스마스처럼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수 년을 기다려온 파스텔뮤직표 캐롤 앨범을 둘러보았습니다. 파스텔뮤직의 모든 식구들이 참여하지 않은 점이나 센스 넘치는 자작곡들로 채워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눈 내리는 숲 속의 사막여우'처럼 어색하고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선물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언젠가 이 곡들을 따뜻한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발매 예정인,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또 다른 컴필레이션 'SAVe tHE AiR : GREEN CONCERT'를 기대하면서 마칩니다.

2011/01/04 10:40 2011/01/04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