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홍대 나들이를 했다. 내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공연은 바로, 얼마전에 EP를 발표한 '알레그로(Allegrow)'의 '1st Date with Allegrow - 그대의 봄과 함께'였습니다, EP 'Nuit Noire'를 들으면서 라이브가 궁금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연 소식이 들려왔고 재빨리 예매를 마쳤습니다. '그대의 봄과 함께'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카페에서 열리는 40석 한정의 소규모 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장소는 홍대역보다는 합정역에 가까이 위치한 카페 'Ben James'였습니다.
40석의 예매가 모두 매진되었는지, 공연이 시작하는 6시가 되었을 때는 아담한 카페 Ben James에는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연은 6시가 조금 지나 시작했고, '알레그로'의 첫 EP 수록곡 'Sunflower'로 공연은 시작했습니다. 노래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하는 알레그로 본인 외에는 기타리스트 한 명 뿐인 단촐한 세션에서 오랜만에 소규모 클럽 공연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CD로 듣던 그 곡과는 약간 다른 음정이었습니다. 편곡이 달라진 일인지 아니면 첫 곡이라 실수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다른 편곡이었겠죠? 이어 들려준 곡은 바로 EP의 outro '잔향'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알레그로'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는데, '잔향'은 바로 'Sunflower'의 멜로디로 쓴 곡이랍니다. 해바라기는 원래 향기가 없는 꽃이기에 '잔향'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잔향'은 'Sunflower'에 대한 슬픈 대답이라네요. 이런 친절한 설명은 계속 이어져서, 마치 이 공연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EP 발매 기념 공연'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알레그로의 발표곡들 가운데 반응이 가장 좋았던 '어디쯤 있나요'도 들을 수 있었고, 커버곡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쨰 커버곡은 '성시경'의 데뷔곡인 '내게 오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가사와 조금 달랐기에 좀 불안불안했지만, 음이탈 없이 무난했습니다. EP 수록곡들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다는 'Under the Fake Sunshine'은 가사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 창 밖으로 지나가는 밤의 풍경을 보고 쓰게된 곡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CD처럼 신디사이저의 소리가 빠진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1부의 마지막 곡은 EP의 타이틀인 'Urban Legend'였습니다. EP에서 그나마 가장 락킹한 곡이기에, 밴드와 함께하는 공연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공연의 게스트는 예고처럼, 알레그로와 마찬가지로 '파스텔뮤직' 소속인 '비스윗(BeSweet)'이었습니다. 알레그로나 비스윗이나, 음반으로는 많이 들었지만 공연에서는 처음보는 얼굴들인데, 신인답지 않은 입담을 들려주는 알레그로만큼이나 그녀도 재밌는 입담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분위기를 가라않게 할 수 없다면 들려준 첫 곡은 바로 'Can't Stop'이었습니다. 그녀가 파스텔뮤직에 들어와서 EP를 발표하기에 앞서, 발표했던 1집의 타이틀이기도 했던 곡으로 공연으로 꼭 보고 싶었던 곡이었습니다. 사실 마냥 밝은 곡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녀가 준비한 다른 곡들에 비하면 밝은 느낌이기는 합니다. 이별 후에 떠오르는 잘못에 대해 노래하는 '잘못'에 이어 따끈따끈의 그녀의 신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사진을 보다'로, EP 수록곡들과는 다른 느낌의 곡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마지막 곡은 '부탁'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고백을 위한 노래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녀가 공연마다 한다는 이벤트를 이번에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남자 관객 한 명을 그녀의 바로 앞에 앉게하고 그녀가 '부탁'을 불러주는 이벤트였습니다.
게스트 공연이 끝나고, 경쾌한 퇴근길을 기분을 담은 'PM 7:11'로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레그로의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Love Today'에 이어서 두 번째 커버곡 '토이'의 '좋은 사람'을 들을 수있었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이었는데, 그만 이 곡에서도 1절과 2절의 가사를 혼동하는 실수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의 분위기가 '팬미팅'의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P 수록곡 '봄의 목소리'에 이어 공연을 찾아와준 관객들을 위한 알레그로의 선물이 있었는데, 비스윗처럼 따끈한 신곡이었습니다. 바로 공연의 제목과 같은 곡 '그대의 봄과 함께'였습니다. EP의 마지막 보컬곡인 '너와 같은 별을 보며'로 공연은 끝났습니다.
실수가 많은 공연이었지만, 팬미팅 겸 EP 발매 기념 공연의 성격으로 40명의 관객들과 함께한 소규모 공연이었기에 분위기는 무척 좋았습니다. 더구나 알레그로의 '역사적인 첫 단독 공연'이었기에, 앞으로 더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소규모 공연은 모두 3부작으로, 아직 날짜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두 번의 공연이 더 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연을 도와준 세션 기타리스트는 그의 팬클럽 카페 회장이라고 하네요. 오랜만에 즐거운 공연이었고, 그의 셋리스트에 들어갈 곡들이 더 많아지고, 더 큰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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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Date with Allegrow '그대의 봄과 함께' in 5월 25일 cafe Ben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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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심규선) - décalcomanie (2012)

artist : Lucia (심규선)
album : décalcomanie (EP)
disc : 1CD
year : 2012
full-length album 수준의 quality와 quantity를 들려주는 Lucia(심규선)의 첫 EP "décalcomanie".
2011년 debut album부터 매년 착실하게 쌓여가는 'Lucia(심규선)'의 discography를 살펴보면, 2013년으로 이제 11년차에 접어든 indie label 'Pastel Music'의 managemnet system도 확실한 성숙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singer-songwriter의 역량에 노래/연주/작사/작곡 등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존 indie label들의 album production 방식과는 다르게, label의 주도로 유능한 songwriter-producer와 유망한 vocalist의 collaboration으로 시작하여 자연스레 singer-songwriter의 가능성까지 이끌어내는 일련의 방식은, (물론 indie label의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더 오랜 역사의 music business와 더 방대한 market을 대상으로하는 영미권 label에서는 낯선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국내 indie label 최초의(혹은 아직까지도 유일한) Pastel Music의 시도는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Lucia'를 통해 완성해가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pitone Project의 2010년 album "유실보관소"에 guest vocal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알린 Lucia는, 이듬해인 2011년 Epitone Project가 작/작곡가 겸 producer로 참여하여 두 사람의 chemistry가 돋보인 debut album "자기만의 방"에서 vocalist의 역량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vocalist에만 머물지 않고 몇몇 곡의 작사/작곡자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면서 singer-songwriter로서의 가능성도 보였다. 그녀의 가능성을 확인한 Pastel music은 두 번째 full-length album을 서두르기보다는 확실한 singer-songwriter로서의 능력에 담금질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2012년과 2013년에 발표된 두 장의 EP다.
지금 소개하는 EP는 2012년 10월에 발표한 첫 EP "décalcomanie"다. 그런데 수록곡 list를 보면 재미있다. EP 수록곡이 무려 10곡인데, intro나 outro 없이 모두 vocal track으로만 채웠다는 점이다. 최근 수 년동안 가요계를 보면 'full-length album(정규앨범)'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intro/outro를 포함해도 10 track이 안되는 '부실한 음반'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EP는 그런 세태를 비웃는 듯하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부실한 음반'은 비단 track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total play time이 약 74분인 compact disc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경우들이다.) full-length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volume을 가진 이 음반를 굳이 'EP'로 발표한 이유는, 모든 수록곡들이 바로 주제에 집중해서가 아닐까. 여느 여가수들의 음반처럼 '안빈낙도'나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track 수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concept album이라고 분류해도 될 정도로 그녀가 집착한 그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이 EP는 Lucia가 '사랑'이라는 물감으로 찍어낸 10가지 "décalcomanie"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concept album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최근의 국내 앨범으로는 '호란'의 band 'Idadi'의 "Songs for Ophelia"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수준있게 완성한 singer-songwriter의 앨범을 에둘러 'well-made pop'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그녀가 쓴 자작곡들의 style을 분류하자면 'adult contemporary(이하 AC)'정도가 될 듯하다. 'AC'도 기본적으로 'verse-chorus structure'로 쓰여지는데, 이 EP의 수록곡들도 style과 structure에서 AC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easy listening이 가능하지만, 나쁘게 해석하면 모든 곡이 비슷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각 곡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을 극복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힘이 담겨 있고, 우아하면서도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음색) 뿐만 아니라 호흡(발성)과 발음까지, 이토록 완벽하게 자신 '발성기관'을 지배하는 vocalist가 indie scene에 있었던가. 그녀는 한 가지 구종으로도 완벽한 control로 mound를 지배하는 pitcher가 되어 listener를 알고도 strike out를 당하는 hitter가 되게 한다. 그만큼 그녀의 음성과 완급조절은 listener가 그녀의 목소리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음성과 완급조절은 그녀의 써내려간 가사들이 전달하는 의미를 견고하게 한다.
잔잔하고 평온한 호흡으로 간절함을 노래하는, 이 album이 있게 한 '사랑'의 발단, '소중한 사람'을 지나면 전형적인 'verse-chorus structure'로 들려주는 3곡이 이어진다. 'I Can't fly'는 발음과 발음, 단어와 단어에서 들리는 완벽한 완급조절이 돋보이고, 부드러운 음성 속에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대의 고요'는 그 호소력 덕분에 EP의 title 'Savior'보다 더 title처럼 들린다. 전작의 수록곡 'Sue'의 변주처럼 들리는 'Savior'의 고독함과 간절함은 listener의 감정을 흠뻑 적시기에 충분하다. 이 전형적인 구조는 최근의 노래들보다 2000년 이전의 노래에 가깝게 들리는데, 그래서 이 구조와 다른 무엇보다도 노래를 빛나게 하는 그녀의 '가창력'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1990년대 adult contemporary music의 마지막 전성기를 빛낸 Diva들, 'Mariah Carey'와 'Celine Dion'이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또 이는 EP를 AC로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격양된 음성과 빠른 tempo로 사지 말단까지 전해지는 사랑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필로소피'를 지나면 앨범의 후반부에 접어든다. 사실 10 track은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으로 나누어 2장의 disc에 담아 각각 EP로 발매해도 될 volume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은 2013년 올해 발표된 두 번째 EP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담금질'의 한 chapter를 온전히 완결하겠다는 의지와 후속 album을 위한 왕성한 창작력 및 결과물들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Lucia와 '짙은'의 아름다운 harmony가 돋보이는 'What Should I Do'와 날카로우면서도 처연한 비유의 가사가 인상적인 'I Still Love'에서도 곡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그녀의 음성은 빛난다. 그런데 이 두 곡에서도 1990년대의 익숙한 그림자가 느껴지는데, 바로 'Mr. Big'의 'To Be With You'와 'Richard Marx'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같은 곡들이다. (전작도 그런 점이 옅게 존재했지만) 1990년대 향수를 뜸뿍 느껴지는 점은 Pastel Music이 설정한 Lucia의 소비층이, 일반적인 indie music 소비층인 '20대~30대 초반'보다 높은, 88서울올림픽 이후 급격한 문물개방과 맞물려 1990년대 영미권 Pop Music을 흡수한 '30대~40대 초반이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1990년 3월에 첫방송을 시작한 '배철수의 음악캠프'세대라고 봐도 되겠다.)
R&B style의 '보통'은 제목과는 다르게, 수록곡 가운데 그녀의 singer-songwriter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곡이다. midtempo의 rhythm 위로 '사랑의 설램'을 표현해내는 그녀의 음성과 완벽한 완급조절은 listener의 심박동수까지도 synchronization(동기화)되어 황홀경으로 안내하기 충분하다. 특히 그녀의 vocal이 저음의 chorus와 대비되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봄날의 어린아이처럼 들뜬 감정을 아른하게 그려낸다. 처절한 절망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감정의 회오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연극이 끝나기 전에'와 마지막 track답게도 공허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전해지는 '신이 그를 사랑해'로 EP "décalcomanie"는 막을 내린다.
EP 전곡에 걸쳐 piano 및 string을 비롯한 모든 연주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절제되어 사용됐는데, 이는 그녀의 vocal을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시켜 listener가 오롯이 그녀의 음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mixing 및 mastering을 포함한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 점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런 노력들 덕분인지 그녀의 음반은 Epitone Project와 함께 audiophile의 사랑을 받는 몇 안되는 indie label의 음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Pastel music이 설정했으리라 예상되는 소비층의 연령대와 보통 30대 이상인 audiophile들의 연령대가 겹치는 점은 우연만은 아니리라. indie label에서 전혀 indie답지 않은 음악을 들려줘서 일까? audiophile의 우호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Pastel music 소속 artist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박하다는 점은 irony다. 사실 "décalcomanie"라는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Rorschach test"였다. Pastel music과 Lucia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음반을 "단지 '얼룩'으로 볼 것인가?" 혹은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볼 것인가?"는 이제 listener의 몫이다.
더불어 전도유망한 illustrator 'Kildren'이 artwork 참여한 booklet은 CD 구매자들을 위한, 국내에서 가장 CD packaging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label이라고 할 만한 pastel music의 '심심한 배려'라 하겠다.
*Pastel music은 고음질의 flac을 DVD로 발매해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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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Peppertones) - Beginner's Luck
'페퍼톤스(Peppertones)'의 discography에서 전환점이 될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
남성 2인조 밴드 '페퍼톤스'는 2004년 3월 EP "A Preview" 발표하고 'Next Big Thing'으로 큰 기대와 함께 데뷔하였습니다. 2013년, 올해로 데뷔 10년을 채워가는 이 듀오는 지금까지 4장의 정규앨범과 2장의 EP를 발표하였고, 그 기대만큼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앨범은 2012년 4월에 발매된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입니다. 앨범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총 6장의 앨범이 특정한 두 시기에 발매되었다는 점입니다. 첫 EP "A Preview"와 첫 정규앨범 "Colorful Express"가 각각 2003년 3월과 2005년 12월에 발표되었고, 후속 앨범들은 이 두 시기에 번갈아가면 발표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2집 "New Standard"가 2008년 3월에, 3집 "Sounds Good!"이 2009년 12월에, 4집 "Beginner's Luck"이 2012년 4월,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매된 두번째 EP "Open Run"이 11월에 발매되어, 3/4월과 11/12월에 번갈아 발매된 점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각각 봄과 겨울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름이나 가을에 녹음을 시작하여,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끝나면 겨울에 발표되고, 그렇지 않고 미뤄진다면 이듬해 봄에 발표된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수록곡 리스트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페퍼톤스표 음악'의 한 축이었던 '여성 객원보컬'이 참여한 곡이 단지 하나라는 점입니다. 페퍼톤스의 데뷔 당시에 인디밴드로서 과감한 객원보컬의 참여는 분명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앨범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객원보컬의 목소리는 곡에 상큼함을 더해주는 점 외에는 오히려 이 밴드의 정체성과 음악적 발전에 있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듯합니다.
앨범을 여는 첫곡 'For All Dancers'는 제목처럼 댄서블한 곡입니다. 헐리우드 B급 무술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기합소리로 시작되어, '사용 설명서'같은 나레이션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곡은, 확연히 달라진 페퍼톤스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이전 발랄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렉트로닉과 락이 결합된 역동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는 앞으로 듣게 될 변화들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행운을 빌어요'는 기존의 장점과 새로운 변화가 융합된 '새로운 페퍼톤스표 음악'을 들려줍니다. 기존의 대표곡들의 가볍고 경쾌한 연주와는 다르게, 강렬해진 연주와 보컬은 이 밴드가 지향하는 장르적 변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집까지 이 밴드가 들려주었던 '일렉트로닉 팝'과 '팝락'과는 다른, 견고한 '락'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그런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위해 '초심자의 행운'을 뜻하는 앨범 제목을 붙였나봅니다. 어휘에서는 페퍼톤스 고유의 개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서는 그런 변화는 또렷합니다. 이전까지 '소소한 생활의 즐거운 발견'을 노래하는 곡들이 주류를 이뤘던 점과는 달리, '행운을 빌어요'는 '뜨거운 사랑 노래'라고 할 수있겠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제나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잊고 있었던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는 가사는, 이별을 인종의 인류애로 승화시킵니다. 1집의 'Fake Traveler'나 2집 'New Hippie Generation'처럼 두 멤버가 보컬을 욕심낸 곡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곡은 처음이라고 생각되네요. 따라부르기 어렵지 않은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가 주는 강한 호소력은, 수 년 혹은 십수 년 후에도 이 밴드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면 이 곡이 콘서트들에서 '절정의 싱얼롱'을 장식하리라 예상하게 합니다.
'러브앤피스'는 제목이 주는 따사로움 만큼이나 자유롭고 평온한 느낌의 곡입니다. 무엇보다도 째즈의 즉흥연주(잼)만큼 자유분방한 느낌의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넘어 복잡한 설계를 생각한다면, 어느때보다도 음향적인 면을 치밀하게 고려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앨범 전반에서 들을 수 있는 견고해진 연주 뿐만 아니라, 과거 앨범들에서 언제나 아쉬웠던 믹싱과 마스터링에서도 확실히 나아진 점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앞선 '행운을 빌어요'가 '뜨거운 이별 노래'였다면 '러브앤피스'는 '추억에 잠겨 짓게된 옅은 미소'같은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Robot'은 제목에서 일렉트로닉 팝정도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차분한 모던락 트랙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확연하게 이전보다 많아진 사랑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 트랙도 '로봇'처럼 얼어붙은 마음이 봄바람같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Wish-List'는 두 멤버가 번갈아 나열하는 그들의 '위시리스트'가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곡의 진행이나 유유저적의 가사에서는 2집의 'New Hippie Generation'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곡이 전하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도, '행운을 빌어요'에서도 이야기했던 '인류애'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같은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아시안게임'은 페퍼톤스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담아낸 트랙입니다. 질주하는 펑크락 사운드의 공격적인 연주와 역시 도발적인 가사는 전혀 다른 밴드의 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지난 앨범에서도 불안했던 두 사람의 보컬은 이번 앨범에서야 '뛰어나지는 않지만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할 수준에 도달했지만, 깊은 울림과 여운을 전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게 들립니다. 그 부족함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이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인 '검은 산'에서 유일하게 '여성 객원보컬'로 여성 듀오 '랄라스윗'의 '김현아'의 목소리를 빌려왔습니다. 가사 속 화자의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김현아의 목소리는 '검은 산'이라는 묘한 이미지와 어우러져 애잔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움이 가득한 뭍어나는 가사를 읊조리는 김현아의 목소리에서는 단어와 단어에서, 그리고 행간에서도 그 절절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의 울림은 어쩐지 애잔하면서도 공허합니다. '검은 산'이 그대에게 가는 길을 막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처럼 들립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전하는 심상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먹먹합니다.
여름의 바캉스 시즌을 노렸는지, 페퍼톤스답지 않게 노골적인 제목의 'BIKINI'는 제목처럼 '행운을 빌어요'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거운' 트랙입니다. 이 곡에서도 참신한 시도가 녹아있는데, (페퍼톤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오토튠을 적당히 사용한 감각적인 랩과 세련된 연주는 '페퍼톤스가 이토록 트랜디한 락밴드였나?'하는 생각까지 들게합니다.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하는 가사에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감성'으로 시작했던 페퍼톤스가 어엿한 '청년 취향'의 밴드로 성장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놀이기구가 떠오르는 제목의 '바이킹'은 제목처럼 지난 앨범들의 채취가 조금은 남아있는 트랙입니다. 신나는 놀이동산이 떠오르는 제목과 다르게 차분한 어쿠스틱 연주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숙한 단어 선택(밥솥, 건배)'이 돋보이는 가사는, 추수를 앞둔 가을의 들판처럼 익어가는 페퍼톤스의 음악적 역량을 그려냅니다.
outro를 남겨둔 마지막 곡 '21세기의 어떤 날'은 어려모로 '행운을 빌어요'와 닿아있는 곡입니다. '행운을 빌어요'에서 끝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을 노래했다면, 이 곡에서는 또 다시 '끝'을 노래합니다. '행운을 빌어요'가 전혀 새로운 '음악적 시작'을 하는 밴드 자신에게 행운을 비는 곡이었다면, 이 곡에서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시작되어 21세기 전파를 지구 밖 우주로 쏘는 행동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인류의 보편적 소망'도 노래합니다.
앨범을 닫는 outro는 'fine'입니다. 잔잔한 올드팝 넘버의 느낌으로 영어 가사를 읊는 보컬과 그런 느낌을 살려주는 연주는 페퍼톤스의 네 번째 앨범도 여기서 끝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영어 가사의 문맥에서는 '좋은'을 의미하는 형용사 'fine'이지만, 마지막 곡의 제목으로만 본다면 악곡의 '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fine'가 될 수 있기에, 'fine'이라는 제목은 다분히 중의적입니다.
앨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사/작곡/편곡/연주/보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음악적 변화와 성숙으로 가득합니다. 이 밴드의 음악을 신선하고 상큼하게 만들었던 장점들을 포기하고, '신재평'과 '이장원' 두 사람의 밴드를 완성하기 위해 선택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페퍼톤스는 치기 어린 재기발랄함을 벗고 밴드의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을 향한 신선한 껍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두 사람이 정말로 입고 싶었던 꼭 맞는 옷을 찾나봅니다. 이 앨범이 밴드 '페퍼톤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위에 있을 앨범이 되리라고 예상해봅니다. 페퍼톤스, 두 사람의 또 다른 힘찬 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진정한 락밴드'로서 '두 번째 데뷔'를 시작한 두 사람에게 "Beginner's Luck"을 기원합니다. 이 앨범은 질리지 않고 꽤나 오래 즐겨 들을 듯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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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row(알레그로) - Nuit Noire (EP)
검은 밤의 도시를 노래하는 'Allegrow(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
초기 주로 여성뮤지션들을 소개했던 '파스텔뮤직'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짙은' 등 남성 뮤지션들의 괄목한 만한 성과 이후, 남성 뮤지션 발굴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은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 연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연작의 마지막 2011년에 발매된 "사랑의 단상 Chapter 3. Follow Me Follow You"는 '알레그로(Allegrow)'를 비롯해,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 '이진우', 그리고 '옆집남자'까지 이전 연작들보다 많은 남성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앨범이었습니다. "사랑의 단상" 연작은 처음부터 앨범을 발표할 뮤지션들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샘플러같은 성격도 있는 앨범이었는데, 역시 이 연작의 세 번째에서 소개했던 '헤르쯔 아날로그'는 작년에 EP와 첫 정규앨범을, 알레그로는 올해 2월에 EP "Nuit Noire"를, 그리고 '이진우'는 최근(5월)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에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이나 홍보로 보았을 때, 파스텔뮤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남성 뮤지션들 가운데 '헤르쯔 아날로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되는데, 제 취향에는 알레그로의 노래들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사랑의 단상"에서 'Love Today'로 들은 첫인상은 '무난함'과 '기대감'사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앨범인 "Ten Years After"에 수록된 '어디쯤 있나요'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사라지기 전에, 파스텔뮤직은 소속 뮤지션들의 2013년 첫 앨범으로 바로 알레그로의 "Nuit Noire"를 발표했습니다.
'검은 밤'을 뜻하는 앨범의 프랑스어 제목 "Nuit Noire"처럼, 앨범을 여는 첫 트랙은 어스름한 밤이 시작될 즈음의 시간일 법한 'PM 7:11'입니다. 3호선역의 안내방송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연주곡은 꽤나 경쾌합니다. 정시가 지난 퇴근 시간인 7시 11분 즈음의,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낸 경쾌한 마음, 혹은 낮의 일상과는 또 다른 밤의 일상에 대한 기대감처럼 들립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Urban Legend'는 함께한 여가수의 이름과 독특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바로 같은 소속사의 '한희정'이 참여했고, 제목은 우리말로 하면 '도시 전설' 정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인류가 도시에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전설을 '도시 전설'이라고 하는데, 알레그로는 어두운 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랑의 망령'을 이 '도시 전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목이나 가사에서 '공포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데, '망령'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타리프가 인상적인 락넘버입니다. 이미 같은 소속사인 에피톤 프로젝트, 박준혁의 곡에서도 아름다운 음성을 들려주었던 한희정은 이 곡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 '망령'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고, '공포 스릴러 영화'를 완성하는 방점입니다. 하지만 그 망령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점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Urban Legend'는 알레그로의 기존 곡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지만 이어지는 곡들은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Under the Fake Sunshine'는 네온사인과 가로등같은 인공적인 빛들을 'fake sunshine(가짜 태양볕)'에 비유하고 도시인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합니다.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곤 하는데, 피아노와 기타 연주는 그런 밤의 공기를 타고 서정적인 시어(詩語)들을 나열합니다. '긴 밤을 채우는 추억'에서는 누군가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세운 밤'을 떠오르고, '시간의 강'에서는 '추억과 현실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acoustic set의 느낌으로 흘러가는 연주에서 배경음처럼 사용된 synth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화자를 위로합니다. 과하지 않게 synth가 사용된 점은 알레그로의 데뷔곡 'Love Today'와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올해로 11년차를 맞는 파스텔뮤직의 지난 10년을 생각하게 합니다. '미스티 블루', '푸른새벽', '어른아이' 등 파스텔뮤직의 초기를 대표하는 '여린 소녀적 감수성의 시대'를 지나서, 현재는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센티멘탈 시너리'로 대표될 만큼 남성 뮤지션 중심의 '확장되고 다변화된 음악적 스펙트럼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인디레이블로서는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를 누리고 있다할 수 있겠는데, 이 곡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여린 감수성'과 '전자음과 어쿠스틱 연주의 조화'는 이 곡을 파스텔뮤직의 초기와 현재사이 즈음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곡으로 들리게 합니다. '파스텔뮤직다운'이라는 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파스텔뮤직의 초기 뮤지션들에 대한 그리움이 갖고 있는 파스텔뮤직의 올드팬들에게 그 그리움을 조금은 달래줄 만합니다.
그런점에서 '봄의 목소리'이 곡도 올드팬의 그리움을 자극합니다. '봄의 목소리'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경쾌한 연주 위를 달리는 달콤씁쓸한 긍정의 감정은 여러모로 '미스티 블루'의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곡의 미스티 블루의 목소리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레그로의 목소리 역시 담백함으로 부르기에 그런 생각이 더 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스쳐온 서울 밤하늘엔'은 긴 제목만큼이나 긴, 4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역시 제목처럼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과 그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상상하게 합니다. 앨범의 나머지 두 보컬곡 'Sunflower'와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지속됩니다. Sunflower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는 제목 '해바라기'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의 빛이 오랜 시간을 날아서 지구의 하늘을 비추듯, 언젠가라도 '너'에게 닿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합니다. 이 두 곡들도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으면 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트랙 '잔향'은 앨범을 닫는 outro입니다. 한희정의 허밍을 들을 수 있는 곡인데, 진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울림은, 이 앨범이 전하는 고독과 그리움의 메시지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는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의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전업 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으로 뮤지션을 겸업하는 그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런 이중생활(?) 때문에 이 EP의 제목이 'Nuit Noire', 즉 '검은 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밤이 내려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그를 '밤의 음유시인'으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최근 파스텔뮤직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다른 소속 뮤지션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다른 어떤 뮤지션들보다 그의 다음 앨범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알레그로'의 정규앨범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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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Oblivion) - 2013. 4. 28.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주제는 SF영화에서 흔하게 쓰이는 주제였습니다. 이런 주제로 성공한 SF영화를 꼽자면 '매트릭스(the Matrix) 삼부작'이 되겠고, 이 주제는 많은 영화들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되어왔죠. 역시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오블리비언'의 내용은 보는 내내 데자뷰(deja vu,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매트릭스'를 비롯해, '다크시티(Dark City)' 등 오블리비언의 선배뻘 되는 영화들을 떨쳐버리기는 어렵습니다.
뻔한 주제라면, 볼거리가 중요한 요소인 SF영화에서 그 주제를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중요할 수 밖에 없겠죠. 스크린에 펼쳐지는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달 파괴로 인한 인력의 변화와 핵무기 사용으로- 황량한 지구의 광경과 홀로 남아 발전시설을 지키는 '잭 하퍼 49요원(톰 크루즈)'의 모습은 (홀로 남겨진) 적막함과 (인간 본연의) 고독함을 전하기에 충분합니다.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토성(Saturn)의 위성 타이탄(Titan)으로 떠났다는 인류, 그리고 조만간 타이탄으로 떠다는 49의 요원들을 보면서 의문점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왜 타이탄에서 무척이나 먼 지구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가? 왜 '49 요원'들의 기억을 지웠으면 '49'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 요원으로 지구 전체의 발전시설 관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타이탄으로 이주할 정도의 과학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 요원들의 거주지와 장비는 그 과학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할까? 위험 지역인 방사능 구역에 가까운 곳이 왜 안전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숲'이 존재할까?...누구나 이런 의문들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로 불시착한 우주선과 그 우주선의 조난자 가운데 잭 하퍼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여인이 나타나면서 의문은 하나씩 풀려갑니다. 지구와 인류의 불편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잭 하퍼', 잭 하퍼의 기억 속의 그녀 '줄리아(올가 쿠릴렌코)'. 그리고 살아남은 인류의 지도자 '말콤 비치(모건 프리먼)'의 조합은 여러모로 영화 '매트릭스'를 이끌어가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그리고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가 떠오르게 합니다. 조작된 인류의 기억 그리고 희생을 통하여 얻어지는 인류의 구원도 역시 닮아있습니다.
수 많은 비슷한 주제의 SF영화들도 그렇지만, '오블리비언'에서는 뚜렷한 무신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밝혀지는 49의 의미와 기억을 공유하는 52요원에서 모습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확인 불가능한) '영혼'이 아니라 생명체 내에 기록되고 저장되는 (확인 가능한) '기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는 주연배우 톰 크루즈의 개인적인 신앙과도 어느 정도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는 영화가 던지는 숨겨진 메시지와 영상과 어우러지는 음악에 더 관심이 가는 영화가 바로 '오블리비언'이 아닐까 합니다. 황폐한 지구를 보면서 떠오르는 적막함과 고독함에 잘 어우러져 그 감정들을 증폭시키고 전달하는 음악들은, 이 영화를 어느 멋진 뮤직비디오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 '조셉 코신스키'의 전작 '트론:새로운 시작(Tron:Legacy)'에서도 음악감독을 담당했던 '조셉 트라파네스(Joseph Trapanese)'와 프랑스 밴드 'M83'의 멤버 '안토니 곤잘레스(Anthony Gonzalez)'가 함께 만든 음악은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마침표'라고 할 만큼 뺴어납니다. 영화음악계의 두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심장을 울리는 웅장함과 박진감 그리고 '반젤리스(Vangelis)의 미래적이고 우주적인 음향을 적절하게 배합한 배경음악들은 엔딩크레딧까지 짙은 여운을 전합니다.
무난한 볼거리와 평범한 내용의 SF영화라고 할 수있지만,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에는 꽤 무거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엔딩은 인간이 멸종하기 전까지도 고민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블루레이로 감독의 코멘터리 등을 수록하여 발매가 된다면 꼭 소장하고 싶은 타이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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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지 않는 것
이제 혼자임에 익숙하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쓸쓸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맨발에 굳은살이 배기더라도
그 발이 결국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발이듯
아무리 굳게 먹은 마음이라도
결국 그 마음의 주인은 불완전한 사람이어서
거친 자갈들을 막아냈지만
예고없이 찾아오는 쓸쓸함의 가시는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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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안에
잃고난 후에 후회를 하지.
쏘아버린 화살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하곤하지.
그러지 않기 위해서,
다시 그러지 않고 싶다면.
언제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것.
그리고 항상 감사할 것.
살아있는 동안에.
그리고,
사랑하는 동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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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과 배려사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게 된다면 생겨날 '(아마도) 행복의 우선 순위'.
2. 너(그대)의 행복
3. 나의 행복
'사랑'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1번 행복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1번이 만족된다면, 2번과 3번은 당연히 만족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1번이 만족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별이라는 문제말이다.
첫 번째, 정말 1번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대에게는 함께하는 것이 2번의 성립의 장애 요인 반면, 1번이 성립되지 않아도 나에게는 3번의 성립된다면 먼저 이별을 말하는 것은 '배려'라고 하자.
두 번째, 1번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2번만 성립되고 이고, 이 상황에서 지금 성립되지 않는 3번을 위해, 2번의 성립을 위해 이별해야 한다고 가장하여 말한다면 이것을 '기만'이라고 하자.
하지만 첫 번째 경우 이별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2번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3번이 성립되면, 분명 그 3번은 '바람 앞의 등불'같은 것일테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3번 만을 위해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기만'이다. 두 번째의 경우 먼저 이별을 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다면 '배려'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리 없다.
결국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이별은 찾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남이었던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끈에 묶에 있다가 어느 한 쪽의 그 끈이 느슨해지면 결국은 놓아주어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먼저 놓음으로서 받는 상처보다, 억지로 붙잡으려하다 받게될 상처가 더욱 클 테니까. 그대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누군가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만'과 '배려'는 결국 상대적인 것이다. 아마도 사랑이 지속될 수 없다면 '쿨하게' 이별하는 것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까? 이별을 통고하는 쪽이든, 아니면 그 반대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번이 성립되어야만 진정한 사랑이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1번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2번 혹은 3번만 성립되는 것은 아마도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물론 1번이 성립되지 않고도 2번과 3번이 동시에 성립되는 '동상이몽'의 기묘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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