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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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상대로 EP '유예' 이후 2년이 지나서야 '9와 숫자들'의 새 앨범이 찾아왔습니다. 2009년에 데뷔앨범이 나왔으니 약 5년만이기도 합니다. 팬으로서 너무나 긴 휴식기는 아쉽지만, 1집과 EP 사이에 복고적 취향에서 짙은 감수성으로의 음악적 변화를 경험했기에, 시간의 간격 동안 또 어떤 음악적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2집 '보물섬'은 1집의 복고풍 그룹사운드의 색채 위에 EP의 강점이었던 '취향 저격' 요소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우선 트랙 제목만 살펴보면, 1집의 재치를 이어나가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집에서는 유년기의 향수를 일으킬 만한 단어들이 포진해있습니다. '보물섬'은 '소년중앙'과 쌍벽을 이루던 소년잡지를 떠오르게 하고, '숨바꼭질/깍쟁이/초코바/북극성'의 단어들도 그 시절의 소소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트랙 '보물섬', '실버라인'부터 마지막 '북극성'까지, 꽤 많은 달달한 사랑 노래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보물섬은, 만화 '원피스'가 생각나는 제목이지만, 감정이 절절히 넘실거리는 '2014년의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이라고 할 만한 트랙입니다. 이어 지는 '실버라인'은 '보물섬'의 감정선을 이어가고, 눈가에 맺힌 아롱아롱 눈물 방울도 같은 아쉬움과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차분한 '창세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앨범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강한 잔잔한 트랙이고, 아마도 히든트랙이 되었을 수도 있는 '북극성'은 9와 숫자들다운 차분한 달달함과 여운으로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EP처럼 전체적으로 꽤나 서정적인 앨범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이사이에는 '건빵 속 별사탕'같은 즐거움들이 끼어있습니다. 바로, '깍쟁이'와 '초코바'와 같은 트랙들입니다. '깍쟁이'는 이미 공연에서는 오래전부터 연주했었던 곡으로, 새침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세기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깍쟁이 2편' 혹은 '깍쟁이, 그 뒤 이야기'라고 할 만한 '초코바'는 새침함과 경쾌함에 톡톡 튀는 감정까지 더했습니다. 마치 '고고장' 분위기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 밴드가 큰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면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곡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더불어 뮤지션 9가 이어온 현실에 대한 고찰 또한 놓치지 않고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높은 마음'과 중의적인 제목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녹여낸  '잡 투 두'가 그렇습니다.

이 앨범은 유일한 단점이라면 발매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EP 발표 직후, '근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지만, 늦어지면서 '보물섬'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연에서 들려준 곡들과 더불어 더불어 컴필레이션 수록곡이나 디지털 싱글 등으로 몇 곡이 미리 발표되어서 이번 앨범에 대한 신선함을 조금은 떨어뜨렸습니다.

다행히도 9와 숫자들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기존 발표곡들을 앨범으로 들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신곡들도 뛰어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팬으로서 앨범 한 장으로 '업데이트된 9와 숫자들'을 즐길 수 있는 점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팬들에게는 9와 숫자들만한 '북극성'이 또 있을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15/03/05 18:02 2015/03/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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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진(Origins)'은 약 10년 전에 한국어판 발매와 직후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한 번 읽어보았다. 사실 오래전에 도전했다가, 지루함 때문에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NG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를 본 기억이 나서, 다시 도전해 봤다. 두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바로 '코스모스'의 안내자였기 때문이다.

약 10년이라는 시간만큼 내 독서 스펙트럼도 달라졌을까?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꽤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실 그 쪽으로는 '별자리 이야기'나 '그리스/로마 신화' 정도를 빼면 아는 지식이 없었는데, NGC 코스모스와 더불어서 우주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체물리학'과 '양자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이고 비교적 최근의 지식들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확실히 TV 다큐멘터리보다는 깊이가 있는 책이어서, 인력이나 중력 그리고 원자와 분자 등 기본적인 물리화확적 지식이 없으면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그리도 물리/화학/지구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의 나'에게 고맙고 뿌듯해지는 경험이었다.

10년 전에 끝까지 읽고 더 나아간 책들을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칼 세이건'의 시대보다 더 나아간 지식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도 지금으로부터는 '10년이나 지난' 지식들이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발견과 지식의 발전이 있었을까? 인간에게 아직도 우주는 무한하고 신비롭고 경외롭다. 아주 작은 지구 위에 사는 아주 작은 인간에는 낯선 세계이지만, '신성'과 '초신성'의 폭발이나 '퀘이사' 같은 천체 현상들이 인간 사회의 현상과 닮아있다는 점이 재밌다.

'기원'을 의미하는 '오리진'이라는 제목처럼, 이미 '빅뱅'으로 잘 알려진 우리 우주의 탄생 과정은 꽤 자세히 알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에서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이고 영원한 질문들의 해답을 위한 작은 실마리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까지, 인류에게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

많이 읽을 수록 더 많이 알게 되지만, 그만큼 더 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들이 많아진다. 바로 그 점이 독서에 빠져드는 이유가 아닐까?
2015/02/10 15:22 2015/02/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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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블로그에는 소홀한 편이다. 사실 최근의 관심사는 음악이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미식'이다. 맛있는 요리를 탐하는 그 '미식'이 맞다. 이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미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서, 더 그 쪽에 관심이 커졌을 수도 있겠다. '미식'에 관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 직업도 '지식 노동'이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직업이기 때문일까? 음식의 맛에 눈을 뜨면서, '지식 노동'을 포함해서 '타인의 보이지 않는 노동'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음식점에서 '원가 타령'을 하는 건,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미식'은 확실히 '자본주의의 꽃'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북(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맛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격 대비 성능(맛)을 따진다. 하지만 '미식'에 조금 눈을 뜨면서 무턱대고 '저렴함'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싼 음식에도 분명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다. 그런 태도를 갖고 나서, 요리를 즐길 줄 아는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

'미식'이란 단순히 '음식의 맛'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맛 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분위기부터 서비스까지 여러 가치들이 '미식'에 포함될 수 있다. 유명한, 그리고 그만큼 가격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들은 확실히 인테리어(실내 장식)에도 꽤 신경을 쓴다. 또, 식기의 선택에서도 특별 제작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용할 정도로 세세하게 신경쓰는 셰프들도 있다. 좋은 식기를 사용할 수록 요리의 꾸밈(데코)에도 공을 들이기에, 그런 셰프의 요리들은 '멋'스럽다. 미식은 비단 '맛' 뿐만 아니라, '멋'도 함께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가 아닐까?

'인테리어'부터 '식기의 선택' 그리고 '조리에 들어가는 정성'까지, '요리'라는 행위에는 '식자재 원가' 외에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들'이 더해진다. 같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도 들어간 정성에 따라 셰프 각자가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일은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다. 음식이 원가보다 터무니 없이 비싸고 맛이 없다? 그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 음식점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정말 그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결국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도태될 것이다. 비싸지만 인기가 좋은 음식점에는 분명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인 '맛과 멋'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원가 타령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유명인이 차린 음식점이 비싸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맛이 없고,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정말 비난해야할 점은 공중파를 비롯한 '대중매체'가 음식점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노이즈마케팅에 이용되는 상황이다. '맛'은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맛의 잣대'에까지 대중매체가 낭비될 필요는 없다. 그런 낭비는 '자본주의의 순수함'을 천박하게 오염시킬 뿐이다.
2015/01/23 16:14 2015/01/23 16:14
파랑사과

bluo님 미식 블로그 주소 공개는 안하시나요?
매번 블로그 즐겨 보고 있는 눈팅족인데,, 미식블로그도 보고싶어요.. 흐.. ~

bluo

ㅎㅎ 특급비밀을 알려달라고 하시다뇨.ㅎㅎ

파랑사과

크.. 특급비밀이었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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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의 탄생이 한낱 '신적 존재'의 불꽃놀이에 불과하고,

우리 우주의 역사가 순간 피어났다 사라지는 불꽃의 수명에 불과하다면.

우리 존재가 그 불꽃 속 에너지와 미립자가 작용하는 찰나에 불과하고,

우리의 꿈은 그 원리와 법칙에 불과하다면.

...

우주의 나이는 대략 140억년.

하지만 그 시간의 개념이 지금 우리의 시간과 같을까?

시간이 흐름이 인력의 영향을 받는다면,

우주의 밀도가 훨씬 더 높았던 시기의 '시간의 흐름'은 지금보다 더 느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주가 더욱 팽창하여 밀도가 더욱 낮아지고 인력도 더 약해진다면,

시간의 흐름은 지금보다 매우 빨라져서,

지금 우리에게 수십 년, 수백 년인 시간도 결국에는 찰나로 수렴하지 않을까?
2015/01/08 11:12 2015/01/0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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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Neuromance)'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SF와 판타지 장르에 익숙하고 생물이나 의학적 지식이 있다면 '신경/신경계'를 의미하는 'neuro'와 '시체나 영혼을 조종하는 주술사'를 의미하는 '네크로맨서(Necromancer)'를 조합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뉴로맨서'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나 '매트릭스(Matrix)'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이 발표된 때는 고작 1984년이었다. 제목부터 뉴로맨서와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매트릭스(the Matrix)'나 인간의 인지 속 세상을 다룬 '인셉션(Inception)' 같은 영화들부터 소설과 코믹스들까지 이 작품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SF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도 흥미롭다. 전통적인 '고전 SF'에서는 소설의 결말이 비극적이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꽤 낙관적인 견해가 대세였다. 그 낙관적인 견해 속에서 인류는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뤄내고 지구라는 굴레를 벗어나 우주 개척 시대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는 낙관적인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닌, 불안과 허무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다. '사이버펑크' 장르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하고, 과학기술은 현재보다 꽤 발전하지만 장미빛 미래는 아니다. 국가과 법을 대신할 '초거대 기업'과 '군산복합체'가 등장하고, 인류는 '안드로이드(인조인간)'이나 '개조인간'과 공존한다. 지구와 태양계 밖에 있는 인류가 이주 가능한 '골디락스 존'의 발견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일까? '우주 개척'에 대해서도 뚜렷하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 더욱 두각을 나타낸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의 영향으로도 보인다. '사이버펑크'를 생각하면,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가 둘러싼 거대한 도시'나 '향락의 네온 사인 불빛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한 안개와 매연이 가득한 골목' 등이 떠오르는 이유도 그런 디스토피아적 관점에 있겠다.  

소설 뉴로맨서는 그런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현실이 아닌 사이버스페스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에서, 소모품인 '병사'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과 인공지능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고전적인 메타포를 따라 세상을 구하는 '신화적/영웅적 모험담'과는 거리가 있고, '정의'나 '진실' 같은 불변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퇴폐와 염세로 가득하고 결말은 허무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고, 평범한 인생의 종착역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기에 'SF 장르의 하나'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을까? 지금은 꽤 익숙한 소재들을, 오직 글로써 시각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은 그 시대를 고려하면, 경이롭다. '모험담'보다는 큰 이야기의 줄기 속에서 '한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서 끝까지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선 상상력' 만큼이나 '시대를 앞선 화법'이라고 할 만 하겠다. 두 번째 소설까지만 발간된 '스프롤 삼부작'이 마지막까지 온전히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5/01/02 12:06 2015/01/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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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블록버스터가 없는 영화관에서 큰 기대 없이 선택했지만, 큰 여운을 남긴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데이빗 핀처', 헐리우드에서 작품성으로 나름 인정받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초기 작품들인 '에일리언3'와 '세븐'을 빼면 제대로 본 작품이 없었다. 이 영화도 사실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보았다.

결론적으로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149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꽤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Gone Girl'이라는 원래 제목처럼, 소녀처럼 애지중지 자라온 '실종된 부인'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가 전반의 내용이다. 벤 에플랙이 연기한 남편 '닉'이  범인처럼 보이면서도, 범인답지 않은 어리숙함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관객과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진행은  베테랑 감독의 관록과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후반에서 부인 '에이미'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그녀는 꽤 영리한 '사이코패스'였고, 인관 관계를 이용해 먹을 만큼 사악했다. 그리고 그녀의 계산에는 미국 대중매체의 반응과 사법 제도의 허점까지 들어있었다. 실종 사건의 시작부터 해결까지 모두 스스로의 각본 위에서 조종하는 그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이 거대한 사건의 발단인 '에이미의 정신적인 문제'는, 의사나 교육학 혹은 심리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그녀의 성장 과장은 부모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고, 그 때문에 그 과정은 왜곡되고 과장되었다. 결국 그녀의 정신적 성장은 비틀어지고 미숙할 수 밖에 없었고, 그녀가 바로 절제를 모르고 자란 'spoiled child'의 미래였다. 딸의 실종 후 기자회견에서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부모의 모습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에이미가 대중매체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모습은 확실히 부모에게 매운 점으로 보인다.

'이용하기 쉬운 대중매체의 폐해'와 '여론/언론에 휘둘리는 미국 사법 제도의 허점'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도 다룬 소재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폐해와 허점'을 뛰어넘어, 그것들을 이용하는 '인간의 위험성'을 직접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답게 사악하고 충격적인 결말은 꽤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별점은 4.5개.
2014/12/23 15:58 2014/12/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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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수개월 앞서 공개된, '가족'과 '우주여행'이라는 테마를 결합한 예고편은 큰 궁금증을 유발했다. 더불어 '우주'라는 다분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목적에 '가족'이라는 감성적인 접근을 더한 점은,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소설을 원작으로 '조디 포스터'가 출연했던 영화 '콘택트(Contact)'가 떠오르기에 충분했기에, 그 '감상적인 우주'를 클리스토퍼 놀란이 약 20년 가까이 지난 시간만큼 '얼마나 다르게 그려내느냐'가 감상 포인트였다.

물론 '이성적인 과학(우주)'과 '비이성적인(감정적인) 신념(가족)'이라는 두 상반되는 테마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를 잡기란 사실 쉽지는 않은데,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영화 '콘택트'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그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다. '콘택트'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우주'와 그 너머에 '아직 알지 못하는(언젠가는 알게 될) 우주' 사이에서, 'SF(Science fiction)'답게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타협한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콘택트'를 의식했을까? 콘택트에서 주인공 '조디 포스터' 다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이었던 '매튜 매커너히'가 바로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뚜껑을 연 인터스텔라는 어떨까? 

가까운 미래에 자연재해와 식량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종말을 앞둔 묵시록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구를 대신할 '대안'을 찾는 과정을 풀어낸다. 복귀를 기약할 수 없는 '우주 여행'의 시작을 그리는 초반은,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잔잔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우주 여행에서는 SF 영화다운 영상 효과로 눈을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시간의 상대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에서는 애틋한 감정의 파문을 일으킨다.

지구의 대체 행성을 찾는 과정에서 모이게 되는 4명이 인물의 성격과 구도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4명의 모습은 '우주 개발'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데, '시간의 상대성' 덕분에 24년에 가까운 시간을 우주선에서 기다리면 관측을 한 '로밀리(데이빗 기아시)'의 모습은 인간의 우주에 대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가깝다. 깜짝 등장하는 '맷 데이먼'이 연기한 '닥터 만'의 '대의를 위한 희생'을 내세우면서도 '사리사욕'을 탐하는 모습은,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가 떠오른다.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보여주는 '미국적인 가족애'는 '강한 애국심'과도 관련이 있고 전통적인 '보수주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쿠퍼'와 함께 마지막까지 생존하지만, '지구로 복귀'가 아닌 연인이 있는 행성을 선택한 '브랜드(앤 헤서웨이)'는 '우주 개발'의 '기본적인 목적'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낭만주의'나 '진보주의'라고 볼 수 있다.

블랙홀의 중력을 버티는 우주선의 모습이나, 블랙홀을 통해 시간의 틈으로 들어가서 과거의 딸에게 힌트를 주는 '순환하는 우주관'은 조금 황당하지만, 'SF 영화'의 애교로 봐주자. 지금까지 놀란 감독이 보여주었던 '블록버스터다운 기대 이상의 스펙터클'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콘택트'의 '감성적인 우주'에서는 '십수 년 동안 업데이트된 과학적 지식'만큼 한 발자국 정도는 더 나갔다고 본다.

'시간의 상대성' 덕분에 10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자신을 기다릴 가족이 사라진 '쿠퍼'가 떠나는 모습에서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결말'처럼 '새로운 모험'을 향한 '열린 결말'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앤 해서웨이의 비중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장면만으로도 그녀의 캐스팅 이유는 충분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지구의 대안'이지만 먼저 도착했던 연인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홀로 남겨진 행성에서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그 먹먹함은, 그녀의 깊은 눈이 아니면 또 어떤 여배우가 표현할 수 있었을까? 별점은 3.5개다.
2014/12/09 15:16 2014/12/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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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IT 업계의 회두는 '헬스케어(Health Care)'다.

애플, 구글, 삼성 등 IT 업계의 공룡들도 미래의 먹거리로 낙점한 상태다.

이 열풍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원지는 '미국'이다.

미국의 지나치게 높은 '의료비 지출'을 생각하면 열풍의 근원에 대한 답을 생각할 수 있다.

높은 비용으로 의사와의 면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요법과 자가치료'가 'IT와 융합하고 상업화'된 결과물이 바로 헬스케어 열풍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복지가 튼튼한 유럽 국가들처럼 '주치의 제도'가 있을 경우에는

헬스케어 상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직접 주치의와 만나서 상담하는 쪽이

환자의 만족감도 더 높고, 건강 습관 개선에 대한 동기부여도 더 강할 것이다.

주치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상급 의료 기관으로 의뢰가 필요한 문제들은

최첨단 IT 기술이 모인 '스마트 밴드'라도 별 수 없다.

스마트 밴드는 '건강 관리(헬스 케어)'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처럼 병원의 문턱이 낮은 국가에서는 수십만 원짜리 헬스케어 제품을 살 돈으로,

병원에서 종합 건진 한 번 더 받는 편이 더 '헬스케어적'이리라.

적어도 한국에서는 낮은 의료 수가 덕분에 헬스케어 제품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기가 쉽지 않다.

정부까지 IT와 융합된 헬스케어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천명한 상황은 흥미롭다.

약간의 비약일 수도 있지만,

정부가 헬스케어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헬스케어 제품이 의료 서비스와 밥그릇 싸움을 하는 상황'을 없애야하고,

그러려면 '의료 수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역설적 결론'에 도출된다.

의료비 지출 상승을 유발하는 '의료영리화'를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면에는

'헬스케어 산업 육성'이라는 기조가 깔려있으리라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

물론, 의사로서 헬스케어 산업의 트렌드와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이야 필요하겠지만.
2014/12/04 16:50 2014/12/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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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 인간화된 기계를 만드는 일보다는,

'기계와 융합된 인간'이나, '기계에 이식된 인간의 정신'처럼

기계화된 인간을 만드는 일이 더욱 쉽다는 결론이

가까운 미래에 도출될 수도 있겠다.

그날이 오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장벽은 무너지고,

인간도 고도로 발달된 '지적 기계 장치'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인간만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는 외침은

정신병자가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처럼 조롱거리로 인용되리라.
2014/12/01 15:31 2014/12/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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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타인의취향/Book
쓰기만 했던 커피의 참맛을 알게 해준 '테라로사'는 현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다. 당연히 그 '테라로사'의 부사장 '이윤선'씨가 쓴 '테라로사 커피 로드'의 내용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인을 받아도 20000원이 넘는 가격이라서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종종 방문하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상태가  괜찮은 중고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방송국 PD를 하다가 커피의 매력에 빠져 '테라로사'에 입사했고 부사장의 위치까지 오른 저자의 약력에서부터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게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자서전이 아니다. 최근 '카페 열풍'일 불면서 '카페 창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그와 관련된 서적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미 그런 창업 관련 책들은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런 실용 서적들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카페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컨셉과 실내 디자인 뿐만 아니라 판매하는 커피와 음료의 맛과 질도 중요한데, 바로 '커피의 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두 로스팅이나 커핑 과정처럼 '기술적인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런 능숙한 기술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커피 원두의 품질'이다. 커피의 원산지와 소비지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질 좋은 원두를 직접 재배할 수 없는 '커피 소비자들(원두 수입업자, 그 윈두를 커피로 만드는 카페 종사자들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 모두)'은 결국 그런 원두를 직접 찾아낼 수 밖에 없다. 책은 그런 노력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커피 대회'라는 'COE(Cup of Excellence)'와 '커피 원산지 탐방기'를 담고 있다. 'COE' 부분에서는 '카페 창업'이나 '국내 커피 시장'을 넘어서 '세계 커피 시장'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여러나라의 원산지 탐방기에서는 고도, 지질, 기후 등 환경 조건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어떻게 달라지고, 농민들은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원두 시장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대리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저에서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질 좋은 커피를 얻기 위해서 원두의 질을 결정하는 '커피 농업'에도 참여하는  '커피 애호가이자 전문가(COE위원)이고 커피 무역상'인 사람들의 노력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문학적 역량의 문제일까? '분량 늘리기'처럼 같은 문구나 내용들이 종종 반복되는 점은 거슬린다. 그리고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으니 이미 3~4년 전의 이야기라서 2014년의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모습들을, 큰 돈 들이지 않고 '대리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000원 이상을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테라로사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카페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2014/11/27 16:31 2014/11/27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