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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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시험보고 결과를 기다리는라 요 며칠 정말 긴장이 장난 아니었는데 다행이네요. 너무 한량처럼 살았는데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 의학도가 의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한량이 의학을 공부하는 거였는데, 병원을 들어가게 되었으니 희비가 교차합니다.

이제 '의학'이라는 책의 '목차'를 마쳤을 뿐입니다. 뭐,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놀아야겠습니다.

아, 티스토리 초대권 필요하신 분들 비밀글로 이메일 주소 남겨주세요. 열심히 블로깅하실 분들이 신청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선착순 4분께 초대권 보내드릴게요.
2007/01/18 23:21 2007/01/18 23:21

W. 워런 와거 - 인류의 미래사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W. 워런 와거(Walter Warren Wager)'의 저서 '인류의 미래사'. 부제는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고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원제를 직역하면 '미래의 짧은 역사'가 된다. '미래의 역사'라니. '역사(history)'는 원래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나. 미래(future)와 역사(history)가 같이 쓰여있는 제목이 좀 어색하다.

미래학 저서라고 할 수있는 책이지만,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미래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22세기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20세기 말부터 현재(22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 사이사이마다 편지, 일기, 서신 등의 그럴싸한 글들을 수록하여 각 시기에 살던 소시민의 삶도 조명하고 있다. 마치 범지구적인 '심시티(Simcity)'를 하면서 중간중간 '심즈(Sims)'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할까?

작가의 예상 혹은 예언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단순히 사회학적인 시각 뿐만아니라,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미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한다. 나처럼 잡학다식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땡길 만한 구성이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만만하지 않은 양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이 쓰여진 때가 1989년 이후에 두번의 개정이 있었다는데, 2007년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맞다 싶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예상보다 세계는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 변화는 시간이 더 지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미래세계는 분명히 매혹적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꿈꾸었을 법한 일들이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한다. 과학의 발전에 힘 입어,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진다. 자유, 그 날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제 3차 세계대전을 치룬 뒤, 등장하는 '세계 국가'와 세계 국가의 붕괴 후 등장하는 '자유의 시대'. '통합과 분열', 세계는 이 두 단어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게 아닌가한다. 현재는 아직 분열의 시대지만 UN, EU, NATO 등 국경을 초월한 단체들이 등장하여 통합을 꿈꾸고 있다. 과거에 칭기스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대제국을 꿈꾼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오래 못가 와해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덕이란 알 수가 없다.

21세기와 22세기에 등장하는 유토피아(Utopia)에 가까운 모습들. 과연 지금의 인류가 그렇게나 빨리 그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세계의 변화'와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인류의 가장 '핵심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작가가 예상하는 것처럼 빨라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도 엄청나게 빠른 변화 속에 살고있지만, 책 속에서처럼 정말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는 멸망이 먼처 찾아올 듯도하다.

멸망보다는 발전과 진화를 선택한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실패와 위험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대해 아주 작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453쪽 "엄마......죽음......복제......안 돼."라는 미지의 외계에서 온 (해독된) 신호를 들려준다. 텅빈 공간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미래에서 온 경고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구, 즉 'gaia'를 복제는 인간 복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화석연료의 고갈, 국제 분쟁 등으로 인류에게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진화하느냐 혹은 멸망하느냐. 과연 인류는 그 운명의 기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 상황으로만 봐서는 후자에 가까워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 대한 옮고 그름의 판단은, 100년 후에 혹은 200년 후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과연 그 때 이 책이 '위대한 예견'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헛된 몽상'으로 남을 것인가? 전자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

2007/01/17 15:38 2007/01/17 15:38

푸른새벽 - 보옴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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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말, 예고도 없이 찾아온 푸른새벽의 두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보옴이 오면'.

공연도 별로 없이 갑자기 발매된 두번째 앨범만으로 이별을 고하니 많은 이들이 아쉬웠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double disc로 발매된 EP 'Submarine Sickness + Waveless'에서 이들의 행보는 예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덮힌 벌판에 한 그루의 나무만 쓸쓸히 서있는 자켓과 그 아래 쓰여진 '보옴이 오면'. 봄을 기다리며 리뷰를 시작합니다.  

'intro', 그야말로 인트로입니다. '이별만은 아름답도록'이라지만 마지막을 고하는 앨범의 intro로는 너무나 밝은 느낌입니다. 밝다 못해 희망적이고 진취적입니다. 푸른새벽, 두 멤버의  앞 길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Undo', 도입에서부터 앞선 intro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intro에서 느꼈겠지만 1집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1집에서는 기본적으로 기타가 중심이 되었지만, 1집과 2집을 잇는 EP 'Submarine Sickness + Waveless'에서 보였던 키보드나 신디사이저 중심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집니다.

'사랑', '푸른새벽'의 대표곡 '스무살'에 필적할 만한 아니 뛰어넘을 만한 '임팩트'를 가진 곡입니다. dawny의 '나른한 슬픔'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인 곡이구요. 나른하게 진행하는 보컬은 후렴에서는 황량한 슬픔으로 바뀝니다. 그 황량함은 앨범 자켓에서 보이는 눈으로 덮인 쓸쓸한 벌판과 싱크로율 100%에 가깝네요. 조용한 방안에서 듣다가 숨이 먿을 듯하고 주체할 수 없는, '텍사스 들판의 소떼처럼 몰려오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후렴에서는 'Maximillian Hecker'의 'Dying'이 떠오르더군요. "I'm dying"이라는 외치는 모습과 겹쳐지네요.

'하루', 앞선 두 곡이 dawny의 보컬에 상당히 의존하는 곡이었다면 이곡에서 보컬의 비중은 줄어들고 연주가 중심입니다. 앞선 두곡이 더블 EP 중 'Submarine Sickness'의 연장선이라면 이 곡은 'Waveless'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더블  EP 중 'Submarine Sickness'는 dawny의 스타일이고, 'Waveless'는 sorrow의 스타일이라고 본다면 대충 맞지 않을까하네요.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긴 제목의 곡입니다. 아마 제가 지금까지본 우리나라 노래 중 가장 긴 제목이 아닐까하네요. 주도권은 다시 dawny쪽으로 기울었지만 두 사람사이의 균형이 느껴집니다. 다른 좋은 곡들이 있지만, 이 곡이 제가 '푸른새벽'에게 바라던 모습들과 가장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가사처럼 이번 푸른새벽은 앨범이 끝이라도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별', 시작이 왠지 EP에도 수록되었던 '빵'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담백함과 기교가 적절히 어우러진 보컬이 매력적으로 곡의 길이가 짧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네요.

'딩', 특이한 제목과 나긋나긋한 보컬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 예전에 Demo로 들었을 때의 거친 느낌과는 많이 달라서 처음 들었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Tabula Rasa',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렸던 곡입니다. 보컬과 기타 연주에서 2집보다는 1집과 EP 사이에 있을 법한 분위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후가 지나는 거리', dawny의 보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곡입니다. 3분이 좀 안되는 짧지 않은 곡이지만 interude같은 느낌이 드네요. 단조롭다고 할까요.

'명원', EP 수록곡 '별의 목소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마지막 곡 '보옴이 오면', 봄이 오면 하고 싶은 바람들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가사의 처음 dawny의 목소리가 '보옴'으로 늘어지는 부분에서는 아른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봄'이 아닌 '보옴'으로 늘어져 화자에게는 그 그리움만큼이나 바람들도 너무나 멀어보입니다. 우린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늑한 '빵'에서 공연하는 '푸른새벽'의 모습을.

아쉽습니다. 많은 사랑를 받았던 밴드가 고작 2장의 앨범과 1장의 EP만 내고 사라진다니 아쉽습니다. 아쉽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언더그라운드 씬의 현실이기도 하니 착찹하기도 하네요. '보옴이 오면'이라는 제목처럼 봄은 너무나도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 두 사람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이들에게 남겨진 앨범 '보옴이 오면'. 가만히 듣다보면 우리에게 '보옴'이 오지 않을까요? 그날을 기다립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7/01/17 10:37 2007/01/17 10:37

묵공 - 2007. 1. 15.

12월 24일에 '중천'을 보았었지만 리뷰를 미루다미루다 결국 못썼군요.. '김태희'도 나오고'중천' 나쁘지는 않은 영화였는데 망해서 좀 아쉽네요.

정말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보았습니다. '안성기'가 등장하는 중국영화 '묵공'.

사실 한국 배우 '안성기'와 '최시원'이 중국어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안성기'는 직접했네요. '최시원'은 목소리를 모르니 알 수 없지만 왠지 성우 더빙 같기도 했어요.

'유덕화'는 나이가 들어도 아니, 나이가 들 수록 매력이 더 해가네요. 광고에서는 '항엄중'으로 등장하는 '안성기'와 함께 그가 연기한 '혁리'가 주연인 듯했지만, 사실 '유덕화' 혼자 주연이네요. 그의 여자가 될 뻔했던 '일열'을 연기한 '범빙빙'은 영화에 하도 미인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쁘네요.

전쟁 장면은 그럭저럭입니다. '반지의 제왕', '알렉산더' 등의 헐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박진감은 떨어지지만, 빠지는 점은 없기에 좀 더 사실적이라고도 할까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작년에 보았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이 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묵가'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들이 세우려했던 '이상주의'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물론 다른 점도 있어보입니다만.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결국 약한 백성들은 희생될 뿐입니다. 백성을 위하는 길이란 전쟁을 하는 것도, 전쟁을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정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무도 통치하는 않는 것이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길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묵가'는 왜곡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가'와 닮아있는 느낌이네요.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모두를 구하려했던 '혁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조차도 구하지 못했죠. 이상주의는 목표가 될수 있을 뿐, 방법은 될 수가 없나봅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크레딧을 보니 원작이 일본의 만화인가보네요. 한중일 합작 영화였나요?

2007/01/15 13:56 2007/01/15 13:56

전체주의, 그 불온한 움직임의 가성능

2005년에 썼던 '이상주의, 전체주의, 히틀러'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글이 과거에 있었던  전체주의에 대한 이야기었다면, 지금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을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2002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붉은 함성'을 기억하는가? 2002년  이후에도 종종 TV를 통해 볼 수 있었던 2002년의 영광들, 그리고 그 화면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보았는가? 그리고 대정벌을 이뤄낸 '광개토대왕'의 드높은 기상에 그리움을 느껴보았는가? 공감한다면 한번쯤은 귀 기울여보자. '붉은 광기(狂氣)'와 '무의식 속의 국가주의'를.

과거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3S', 즉 'Sex, Screen, Sports'를 이용했다는 것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의도적이건 우연이건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은 이 '3S' 중 'Sports'를 제대로 활용한 사례로 보인다. 모든 TV와 신문은 온통 '월드컵' 뿐이었고, 국민들의 머릿 속도 역시 그랬다. 그 덕에 무능한 정부와 정치인들, 불안한 경제에 대한 불만들은 모두 망각한 한 해였다.

어떻게 그렇게 쏠려갈 수 있었을까? 온 국민을 사로잡고, 거리마다 언청난 자발적인 인파를 동원한  '붉은 함성' 혹은 '붉은 광기'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국민 전체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불안과 불만에 대한 '국가주의적 표출'은 아니었을까?

국가간의 전면적이고 소모적인 전쟁이 잠시 사라진 지금,또 자본주의를 업은 다국적 기업들이 맹활약하면서 국가간의 경계와 국가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져가는 지금, '월드컵'을 통한 국가간의 대결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국가대표팀'은 희미해져가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의 재교육, 강화하고 '월드컵 축구'는 그야말로 국가를 대신하는 '전쟁'과도 다를 바 없다.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정말로 '월드컵'은 수 많은 세계인을 광기로 몰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보여준 그 '광기'의 크기는 충분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이 거의 없기에 그렇게 부르지만, '국사'를 배우면서 그런 '나약함'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아서 세계 초강대국들에 둘러쌓여 있고, 위로는 우리의 '불만 많은 형제'가 있기에 국민의 느끼는 '잠재적 불안 혹은 불만'은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 상승율을 뛰어넘어 치솟는 물가와 하루가 멀다고 생겨나는 사회문제들은 더 이상 '경제 성장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탕발림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고, 앞서 이야기했던 '국외적 불만(혹은 불안)'과 더불어 '국내적 불만(혹은 불안)'으로 커가고 있다.

이 두 불만들을 잊게 하고 자긍심까지 심어준 '2002년 월드컵의 영광', 그리고 영광과 함께 정체를 드러낸 '광기'. 아마도 아직까지도 '단일 민족 국가'에 가까운 우리나라, '한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한(恨)', 그 울분의 '국가주의적 표출'이 아닐까?

자 모든 재료가 갖추어졌다. '국외적 그리고 국내적인 불만들'혹은 '단일 민족의 울분'과 '잠재된 엄청난 광기'. 어쩐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상황이 떠오른 사람은 나 뿐일까?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재료들을 잘 이용할 '주술사의 혀'와 우리 민족의 운이 좋다면 얻을 수 있을 '기가 막힌 상황들'이다.

'기가 막힌 상황들'을 이야기하자면, 그 중 하나가 바로 '극적인 통일'이다. 민족 정서가 완전히 완해되지 않은,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훌륭한 촉매'가 될 것이다. 지구 상에 유일한 '한민족 단일 국가'의 도래는 국내적으로는 '국가의식'과 더불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하고 국외적으로는 주변 강대국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또 통일 이후에 찾아올, 남북한의 사회경제적 격차같은 문제들은 '국내적 불만' 가중시킬 것이고,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은 주변국들의 역사왜곡과 국경문제 등에 일침을 가하면서 '국외적 불만'도 커질 것이다. 다른 '기가 막힌 상황'으로는 세계를 뒤집을 만한 '신기술의 발견'이 있겠다. 아마도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이나 신무기, 신물질의 발견 정도라면 날개를 달아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마지막, '주술사의 혀'가 필요하다. 바로 사리사욕에는 눈 멀지 않은 '이상 군주',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광기어린 지도자'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는 지독한 '이상주의자'이자 냉철한 '국가주의자', 뜨거운 '민족주의자'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글 '이상주의, 전체주의, 히틀러'의 내용처럼, 역사 속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전체주의'와 야합(野合)한 경력이 있고 '이상주의'에게 '전체주의'의 유혹은 너무다 달콤하다 못해, 지구 상에서 '이상(理想)'을 이룩할 '유일한 방법'으로까지 보인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런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부하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면, 그때 '불만들'은 주변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고 '광기'는 속으로 쌓아두었던 불을 뿜기 시작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들은 불만의 방향을 돌리고 책임을 지워 온 국민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 '폭발직전의 화약고'를 터뜨리기에 너무나 매혹적이다. '한(恨)의 광기'와 더불어 이 땅의 남성들은 한번은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점'도 그 시기에는 큰 무기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상주의'에 살짝 발가락을 담그고 있는 나 자신도 '주술사의 혀'에 이끌려 전장으로 뛰어가지 않을까 싶다.

'대중선동'의 전문가 '파울 요제프 괴벨스', 매우 매혹적인 인물이다. 한번 검색해 보시라. 그리고 그의 연설 동영상을 보시라. 그것을 보면서 미국의 락밴드 'Marilyn Manson'과 그의 노래들이 떠오른 사람이 또 있을까? 'Marilyn Manson'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선동성(煽動性)'을 느껴보았는가? 그가 '나치(Nazis)'에게 빌려온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패션만이 아닌라, 선동성도 있었다.
2007/01/14 13:08 2007/01/14 13:08

그리고 그리움을

두 사람이 있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거 있잖아."

"응?"

"일이 잘 풀려서 이번에 갈 수 있을 거 같아."

"잘 됐네."

"겨우 '잘 됐네'야?"

"그럼, '정말' 잘 됐네."

"그게 아니잖아. 가지 말라고 안하는 거야?"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거 아니야?"

"피이. 그렇긴하지만."

"그럼, 웃는 얼굴로 보내주는 게 마음 편할 거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니, 꼭 갔으면 좋겠어. 너무 바라던 거잖아."

"그럼, 기다려주는 거야?"

"아니. 이참에 헤어지는 거로 하자."

"응?"

"실망인 건가. 3이 되는 길. 그 길을 가보자구."

"3이 되는 길?"

"응. 이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서... 다시 만나서..."

"응."

"그 때까지 키우는 거야... 우리 자신을, 그리고 그리움을..."

"응."

"잠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설원으로, 또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응."

"연락도 일년에 한, 두번만... 살아있다는 것만..."

"응. 잘 참아야 해."

"너도."

"만약, 다른 사람 생기면... 알려줘... 축하해줄 수 있게..."

"응. 너도."

"꼭."

"응. 꼭."

"꼭 다시 만나..."

기억하나요? 그 날, 어느 겨울보다도 시렸던 미소들을. 우리들을.
2007/01/14 10:17 2007/01/14 10:17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30대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

난 20대다. 난 남성이다. 난 연애하지 않고 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30대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이현'이라는 이 책의 작가도 모른다. 사실 광고문구나 책 표지에 끌려서 산 점도 없지 않다. 표지와 책 속의 일러스트는 만화가 '권신아'의 작품이다.

도시적 느낌과 인터넷 시대의 문화가 글 곳곳에서 들어나 읽기는 수월하고 재밌다. 주인공 '오은수'와 그녀의 단짝 친구들, 그리고 그녀들을 스쳐가는 남자들의 이야기. 30대 도시인들의 삶, 어쩌면 한국판 'Sex and the City'라고도 할까?

아둥바둥 잡으려하는 것은 놓치고, 목표하지 않았던 것들은 일어난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흘러가는 수 밖에.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하나보다. 30대에서도 그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성장이 끝나지 않은 만큼 결말도 나름대로 '쿨'하다. 역시 요즘은 '쿨'이 대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쿨'인 걸까?

추천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때우기로는 부족하지 않다.

2007/01/13 17:18 2007/01/13 17:18

JAI in 1월 12일 salon 바다비

세번째는 'JAI'라는 처음 보게되는 뮤지션이었습니다. '바다비의 명물(?)'이라고 할 수있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피아노가 중심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피아노를 압도하였습니다. 키보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피아노의 깊이는 역시 좋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더 인상에 남네요.

곡 사이사이의 재치있는 그녀의 입담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세팀이고 다들 길게 하지 않아서 공연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2007/01/13 16:03 2007/01/13 16:03

피코마츠리 in 1월 12일 salon 바다비

두번째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피코마츠리'였습니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일들도 한 동안 공연을 하지 못했었나봐요. 공연은 익숙한 곡들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공연인데 많은 곡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제 피코마츠리에게 창작의 시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하네요. 어서 두 멤버가 좀 한가한 때가 와서 좋은 곡들을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2007/01/13 01:46 2007/01/13 01:46

심심한 위로의 복숭아 in 1월 12일 salon 바다비

올해 처음가는 '바다비'의 공연. 세 팀의 공연이 잡혀있었는데 최근까지 찾아간 바다비 공연 중 관객이 가장 적었습니다. 이러다가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

첫번째는 '심심한 위로의 복숭아'였습니다. 세 곡 정도는 혼자 들려주었고, 나머지는 '어배러투모로우'의 멤버들을 소환(?)하여 함께 들려주었습니다.

혼자 들려주는 곡들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씩씩함 혹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들려준 곡들 중에는 '엉클'도 있었지만 '빵'에서의 공연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진행하여, 어쩐지 어색하기까지 했습니다.

2007/01/13 00:25 2007/01/13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