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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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로 구성된 밴드를 나열하라고 한다면, 나이가 지긋한 누군가는 'Capenters'와 'Bee Gees'를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Hanson'이나 'the Moffatts', 'the Corrs', 혹은 'Jonas Brothers'같이 비교적 젊은 세대의 밴드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제 형제자매 밴드 리스트에 새로운 이름을 추가해야 겠다. 바로 'Haim'이다.

Haim은 국내에는 아직도 낮선 이름이지만, 첫 정규앨범이 발표하기 전인 2012년 말부터 영국 BBC의 컨테스트 'Sound of 2013'의 우승자로 이름을 알리는 동시에 기대를 모은 밴드이다. 독특한 점은 앞서 나열한 밴드들이 모두 형제 혹은 남매 밴드였지만, 이 밴드는 '자매 밴드'라는 점이다. (영국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의 세 자매 Este Arielle Haim(1986), Danielle Sari Haim(1989), 그리고 Alana Mychal Haim(1991)로 구성된 이 밴드는 여느 형제자매 밴드들처럼 성(family name)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했다. 모두 20대 밖에 안되는 세 자매의 밴드라고, 보통 여자 아이돌처럼 말랑말랑하거나 달콤한 음악을 한다고 하면 큰 오산이다.  꾸미지 않은 생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마치 8,90년대 남성 락스타들처럼) 기른 세 자매의 헤어스타일은 이들의 음악이 아이돌 밴드와는 거리가 있음을 환기시킨다. 또, 어린 시절부터 가족밴드 및 걸 그룹 활동을 하면서 음악과 함께 자란 세 자매는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를 줄 안다고 한다. Haim에서는 주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Este는 기타도 연주할 수 있고, 메인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는 Danielle는 드럼 세션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Alana도 기타와 퍼커션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0년 대부터, 급부상한 밴드들이 장르파괴적인 음악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장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구분이 무의미해고 있는데, 이 밴드의 음악 역시 그렇다. 1970년대 활동한 soft rock 밴드 'Fleetwood Mac'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세 자매의 주장에 따르면 R&B/Hip-hop가 혼합된 folk rock 정도로 들릴 수도 있다. 혹자는 Glam rock 등 Hard rock과 Garage rock을 들려준다고도 평하기도 한다. 이처럼 듣는 이에 따라서 규정하는 장르가 다양할 만큼 Haim이 여러 장르의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확실히 복고적인 요소를 들려주고 있지만, 복고를 바탕으로 그를 뛰어넘는 '새로움'을 들려주는 점이 이 밴드가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유가 아닐까?

여성 3인조 밴드의 음악으로서는 상당히 파워풀하고 연주와 강렬한 훅을 갖추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밴드의 음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여성 밴드로서 의외의 진정성을 넘어선 '어떤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힌트는 이 세 자매의 큰 언니인 Este의 경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ste의 경력을 살펴보면 2010년 UCLA에서 ethnomusicology(민족음악학) 학위로 졸업했다고 한다. 민족음악학은 그 이름처럼 기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민속 음악'을 비교하는 학문인데, Haim의 음악에서도 그런 '민속음악'적인 요소들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민속 음악'적 요소는 Haim의 데뷔 앨범 "Days are gone"의 첫 곡 'Falling'에서부터 보인다. 이 곡은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던 곡으로, 이 앨범의 두 번째 곡이자 첫 번째 싱글이었던 'Forever'와 더불어 'Haim'을 각인시킨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의 후렴구는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볼 만하다.

"into the fire feeling higher than the truth
I can feel the heat but I'm not burning
fear and desire feed the tired, hugry tooth
feel like I'm falling
I can hear them calling for me"

듣기에 따라서는 굉징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들리는 후렴구이다. 이 부분을 부르는 Danielle의 음성은 톤을 높여 부르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혹은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Forever에서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분위기의 후렴구를 갖고 있다. 가사를 옮겨보면 이렇다.

"go get out get out of my memory
no not tonight I don't have the enery
go get out get out of my memory
no not tonight..."

일정한 톤으로 단어와 구를 반복하는 이 부분은 마치 어떤 '주문'처럼 들린다. 종교적 의식과 연관시키자면 무속 신앙의 '퇴마 의식'떠올릴 수도 있겠다.

네 번째 싱글이기도 한 'the Wire'에서도 민속음악적 요소들을 들을 수 있다. 앞선 곡들과 마찬가지로 가사의 끝을 꺾거나 적절하게 들어가는 추임새는, 흑인 음악에서 기원한 하는 blues와 hip-hop에서 들을 수도 있지만, Danielle와 Este가 주고 받으며 부르는 형식이나 구성진 연주는 우리 전통음악의 '타령'처럼 들리기도 한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Let Me Go'의 경우 시작부터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초반부에서 Danielle가 읊조리듯 풀어내는 가사와 제창으로 부르는 'Let Me Go', 이어지는 Este의 노래에서 'Let Me Go'의 끝을 구슬프게 꺾어올려 부르는 부분과 돌림노래처럼 부르는 부분, 그리고 노래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는 타악기 연주가 긴장을 고조하는 점은, 마치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일종의 '장송곡'처럼 들리게 한다.

더불어 세 자매가 들려주는 화음은 여성 밴드만의 매력을 더 한다. (Este의 꽥꽥거리는 느낌의 목소리나 힘이 부족한 Alana의 목소리는 Rock 밴드의 메인 보컬로서는 어울리지 않아서, 중저음의 Danielle가 메인 보컬) Danielle의 메인 보컬 위로 두 사람이 쌓아가는 목소리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들에서는 들을 수 없는 화음을 만들어내고, 이 화음은 복고의 느낌과 더불어 남성 중심의 rock과는 다른 신선함을 부여한다.

Haim 데뷔앨범 'Days are gone'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세 자매의 치기어린 앨범이라고 할 수 없는 굉장한 앨범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세 자매는  점점 말랑해져만 가는 남성 중심의 rock 음악 저변에 주목할 만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장르의 적절한 차용, 그리고 정통적 밴드 사운드와 미니멀리즘을 적절하게 배치한 노련한 완급조절은 이 앨범이 20대 자매들로 구성된 밴드의 첫 앨범이라고 믿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신인이기에 이런 시도들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13년 최고의 신인이라고 할 만하다. 별점은 4.5개, 반 개는 다음 앨범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2014/02/18 17:43 2014/02/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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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디레이블'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레이블은 두세 곳 정도입니다. 하지만 최근 무섭게 떠오르는 레이블이 있으니, 바로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MSB Sound)'입니다. 이제는 레이블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옥상달빛'이 바로 MSB 소속이고, 파스텔뮤직 소속이었던 '요조'와 '루싸이트 토끼'나 인디씬에서 인지도가 있는 '카프카'와 '이영훈' 등을 영입하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인디씬의 신흥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메직스트로베리 사운드'는 인디음악을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레이블이지만, 아직도 소속 뮤지션들은 낯설게 들립니다. 저도 MSB는 레이블의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금 소개하는 '남녀공룡'은 작년 말에야 알게 된 뮤지션입니다. 바로 2013년 시작된 MSB의 컴필레이션 프로젝트 '내가 너의 작곡가 vol.1'에 참여한 팀이 이름 가운데 '남녀공룡'이 있었고, '요조'와 함께했다는 호기심에 처음으로 듣게 된 그의 곡이 바로 'This means Goodbye'였습니다. 요조의 차분한 음성과 우주적인 느낌의 사운드로 담담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별을 노래하는 이 곡은 묘한 중독성으로 이 컴필레이션에 함께 수록된 다른 어떤 곡보다도 귀를 사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녀공룡'에 대한 궁금증에, 2012년에 발매되었던 그의 첫 EP 'Love is in the Ear'를 들어 보았습니다.

서정적인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오프닝 'Sincerely'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Dear J'는 일렉트로닉과 팝이 바탕이 된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고 제목도 그 'J'에게 보내는 곡인데, 앞선 오프닝이 보통 영문 편지에서 끝맺음 말로 쓰는 'sincerely'라는 점은 재밌습니다. 'Moonlight'는 제목처럼 신비로운 달빛같이 몽환적인 트랙입니다. 제목은 '달빛', 혹은 '월광(月光)'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달을 의미하는 'luna'에서 파생되어 '광기'를 의미하는 단어 'lunatic'이 떠오를 만큼 어떤 광기가 느껴집니다.

'Blueberry Dream'이라는 제목처럼, 상큼하고 달달하게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쓰여진 영어 가사와 라운지풍의 연주는 여러보로 일본 시부야계/라운지 음악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나른한 음성은 'Paris Match'의 보컬 '미즈노 마리'의 음성을 떠오르기도 합니다. 'Last Lullaby'는 제목처럼 앨범을 끝맺는 마지막 곡으로서 '마지막'에 어울리는 어쿠스틱 풍의 트랙입니다. 언제가 찾아올 이별을 기다리며, 혹은 그 이별에 순간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정들이 전해집니다. 이 곡이 그려내는 잔잔하지만 강렬한 이별의 이미지는 요조와 함께한 'This means Goodbye'와도 닿아있습니다.

앨범 내내 여성의 음성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노래하지만, 남녀공룡은 남성이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보코더로 음성을 변조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미성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은 '남녀공룡'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의 이름과 독특한 음성적 선택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남녀공룡이라는 난해한 이름과는 다르게 EP 'Love is in the Ear'는 난해하지 않고 듣기 편안한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줍니다. 언제 정규 1집 혹은 후속 음반이 나올 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그의 노래들을 기대해 봅니다.
2014/02/06 15:35 2014/02/0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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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뉴에이지(New Age)' 장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미 뉴에이지 음악이 폭넓게 자리 잡은 미국과 일본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소개되었고, 한국인 아티스트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열풍 속에서 데뷔한 '이루마'는 이제 한국 뉴에이지 음악을 대표할 만한 아티스트로 성장했습니다. 거의 매년 전국 투어를 성황리에 마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던 그는 2006년 돌연 군입대를 합니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서 공부했고 영국 국적을 취득하여 이중 국적이었던 그의 입대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했습니다. 이로서 앞으로 그의 활동에 국적 논란과 군입대 논란은 분명 사라지겠다는 점에서 안도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예민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작곡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2008년 10월,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바로 발표한 6번째 정규앨범으로 무뎌지지 않은 감수성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앨범과 함께 다시 입대 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후속 앨범의 소식은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데뷔 때부터 함께 했던 지난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3년의 시간이 흐른 2011년 11월 이루마는 다시 그의 이름을 건 앨범을 발표합니다. 바로 그의 첫 공식 베스트 앨범인 "The Best - Reminiscent 10th Anniversary"입니다. 이루마, 그가 직접 선곡하고 다시 녹음한 기존 발표곡들과 미발표곡, 신곡을 더해 총 17곡을 담은 이 베스트 앨범은, 법적 분쟁을 끝내고 새로운 소속사 '소니뮤직'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앨범이었습니다. 이 베스트 앨범은 제목처럼 지난 10년 동안의 그의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만큼의 시간 동안의 변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새롭게 녹음된 곡들은 원곡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마치 콘서트에서 직접 들었던 그의 연주처럼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새 소속사가 바꿔고 처음으로 발표하는 일곱 번째 정규앨범 "Stay in Memory"에서는 그런 변화들을 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앨범들에서도 물론 그의 곡들은 듣기 좋았지만 정해진 틀에 맞춰있는 느낌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그런 틀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던 그의 지난 대표곡들과는 달리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아기자기하기보다는 틀을 벗어난 자유와 여유는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감회와 세월이 녹아들었기 때문일까요?

'Nocturne no.1 in C'는 "Summer Nocturne"처럼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하는 여름날의 풍경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노을을 타고 불어오는 밤바람에 살짝 열린 창문의 커튼은 살포시 흔들리고 긴 하루도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Stay in Memory'는 '기억에 머무르다'라는 제목처럼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비교적 이루마다운 아기자기한 멜로디가 인상적인데, 그리움과 더불어 얼핏 회한이 어려있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어지는 'I Could See You'에서도 그런 그리움의 감정은 이어집니다.

'Nocturne no.2 in Eb'는 아늑하고 따뜻한 가족이 모습이 그려지는 곡입니다. 마치 이제는 결혼하고 가족을 이룬 그의 모습처럼 말이죠. 'Impromptu'는 '즉흥곡'을 의미합니다. 원래 슬픈 내용으로 썼던 곡을 바탕으로 즉흥으로 연주했다는데, 비오는 밤 빗소리를 들으며 감성에 빠져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의 도전 정신이 엿보였던 스페셜 앨범에 실렸던 'Happy Couple, Sad Couple 'n Happy Again'은 '이제서야' 피아노 버전으로 이번 앨범에서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이 곡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던 곡었지만, 피아노 버전으로는 어떤 앨범에도 수록된 적이 없었습니다. 보통 너무 긴 제목 때문에 '해피커플'이라고 줄여서 불리는 이 곡은 긴 영문 제목처럼 행복했던 커플이 시련을 커져 다시 행복을 찾게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Falling in Love'는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인 순간은 그려냅니다. 그 사랑은 격렬하기 보다는 평온하고 환희로 충분한 분위기로 들립니다.

'Nocturne no.3 in A minor'는 단조의 야상곡이기 때문인지, 슬픔과 탄식이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소중한 것 혹은 사람을 읽은 밤의 감정을 그려냈으리라 생각되네요. 'Silver line'은 구름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을 뜻하는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듣고 있으면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린 뒤 활짝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밝고 희망적인 기분이 듭니다. 마치 최근 몇 년간 마음 고생을 하고 이제는 평온을 맞이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을 법합니다.

'Nocturne no.4 in Db'는 이 앨범의 마지막 야상곡으로, 세상 만물이 모두 깊이 잠든 평온한 밤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그 깊은 밤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는, 모두에게 아늑하고 편안한 밤이겠죠? 'The Days that'll never come'은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라는 의미처럼 좋았던 시절에 대한 슬픈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그의 곡들처럼 잔잔 슬픔의 잔물결이 아닌, 감정의 격류와 소용돌이가 느껴지는데, 그만큼 그는 지난 시간들 애타게 갈구하고 있나봅니다. 'Painted'는 우리말로 '그린', '색칠한' 혹은 '허식적인', '공허한'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입니다. 제목처럼 지금까지 그가 그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화려했던 순간을 지나 공허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낸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종종 자신을 "뉴에이지가 아닌 세미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습니다. 종교적 오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최종적인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었다고 생각됩니다.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고 발표된 이 앨범은, 지난 앨범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변화를 들려줍니다. 피아노로 들려주는 손끝의 표현은 마치 스스로의 구속을 깨고 나와 득도나 해탈한 사람처럼 정해진 형식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그의 음악들이 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처럼 들리게 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그의 음악 인생에서 앨범 "Stay in Memory"는 새로운 이정표로 기억되지 않을런지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3/11/22 17:56 2013/11/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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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세탁소', '언니네 이발관'처럼 밴드의 이름으로는 독특한 이름입니다. 전혀 다른 나라이지만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통한 돈'세탁'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LA의 이민자 성공담에 한 번 정도는 등장할 만한 '세탁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 밴드 이름으로 이런 이름을 선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스웨덴세탁소'는 곡을 쓰고 노래하는 '최인영'과 주로 기타 치고 코러스를 부르는 '왕세윤'이 결성한 여성 듀오입니다. '스웨덴'이 들어간 밴드 이름에 첫 EP 제목은 "From, Paris"라서, 어쩐지 유럽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유럽풍(?)의 음악을 들려줄 법한 느낌이 듭니다.

첫곡 '입맛이 없어요'가 들려주는 첫인상은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처럼 조금 거칩니다. 인디씬에서 시니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몇몇 여성 솔로 뮤지션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첫곡의 거친 인상을 지나면 이어지는 곡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줍니다. 타이틀인 'From, Paris'는 여성 보컬 특유의 달달함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파리에 두고온, 고백하지 못한 남자친구의 연애 소식을 풀어낸 노래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여러 여성 듀오들이 지향하는 '달콤씁쓸함'이 역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의미하듯 '파리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소재로한 점은 소소하면서도 참신합니다. 'As for Me'는 역시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한 곡씩은 불러보는 분위기있는 보사노바풍의 곡입니다. 'Paradise'는 제목처럼 천국같이 행복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동행'은 어떤 곡보다도 이 여성 듀오의 진솔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보컬 최인영은 앞선 곡들에서 곡마다 다른 톤으로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다른 어떤 곡보다도 애교나 기교가 빠진 담백한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더불어 왕세윤과 함께 쌓은 코러스는 여성 듀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Happy birthday waltz'는 제목처럼 생일축하 왈츠곡입니다. 왈츠의 느린 세 박자는 듣는이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감정들을 전달하기에 좋은 선택입니다. 마지막 곡 '우리가 있던 시간'에서도 여성 듀오 '스웨덴세탁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 듀오 특유의 듣기 좋은 보컬/코러스는 당연하고, 두 사람이 쌓아낸 아름다운 화음은 다른 여성 듀오와 차별되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 EP를 관통하는 소재는 '사람이 머무는 혹은 머물던 자리'라고 생각되는데, 그 빈 자리에 대한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너무 과잉되지도 않고 너무 무덤덤하지도 않은, 적절하고 절절한 감정 표현은 이 듀오의 활동을 기대하게 합니다.

'스웨덴세탁소'의 첫 EP "From, Paris". 밴드 이름이나 앨범 제목처럼 유럽의 정취를 물씬 느껴지는 앨범은 아니더라도, '상상 속의 유럽'같은 낭만과 여유를 조금은 찾을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요? 인디씬의 '여성 듀오 붐'의 후발 주자로 등장해서 그 '붐'이 잠잠해진 요즘, 다른 여성 듀오들보다 더 빛나는 별이 될 '스웨덴세탁소'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2013/11/14 01:29 2013/11/1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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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과 함께 찾아온, 봄노래들 가득한 루시아(심규선)의 두 번째 EP "꽃그늘".

2012년 10월 첫 EP "décalcomanie"를 발표했던 루시아는 겨우내 쉬지 않고 음반 작업을 했는지, 약 6개월 만인 올해 4월 두 번째 EP "꽃그늘"을 발표했습니다. 2011년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과 함께 작업한 데뷔 앨범 "자기만의 방"을 시작으로 3년 동안 매년 음반을 발표한 셈이 되는데, 그녀의 '음악적 욕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10트랙 모두 신곡이었던 첫 EP만큼은 아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는 들을 수 없는 보너스 트랙'이 포함된 CD의 8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면 6곡의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녀의 욕심만큼이나 '완성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곡 '사과꽃'은 EP "꽃그늘"을 시작하는 '서문'과 같은 트랙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봄날 한적한 공원을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 산책이 떠오습니다. 상쾌한 나무그늘 속을 달리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의 따뜻한 설렘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느린 산책처럼 느긋한 선율 위로 흐르는 우아한 노래는 듣는이의 주의를 그녀의 목소리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합니다. 음악적 효과를 주는 가사 '봄, 밤, 맘(마음)'은 이 곡의 심상을 압축하는 세 단어입니다. 그리고 '봄'과 '마음(맘)'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봄' 혹은 '봄이기에 어지러운 마음'을 노래하는 이 EP을 관통하는 주재(主材)입니다.

이 EP의 타이틀 '그런 계절'은 '잔인한 계절, 봄'을 노래합니다. 시조를 읊듯 노래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그녀의 감정들을 노랫말로 쓸 때 단어를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느꼈을 고민이 느껴집니다.  또 그 선택된 단어들이 그녀의 목소를 통해 노래로 불려질 때, 하나하나 단어를 발음하면서 그녀가 그 단어에 담아낸 감정과 노력도 그려집니다. 공 들인 가사만큼이나 선율도 빼어납니다. 간주 부분에서 3/4박자의 왈츠보다 빠른 6/8박자의 멜로디는 지는 꽃잎의 흩날리는 윤무를 그려냅니다. 확실히 왈츠보다는 '현대무용'으로 표현될 법한 선율인데, 놀랍게도 이 곡을 듣고 얼마 지나 찾아본 뮤직비디오에서도 '현대무용'으로 시각화하고 있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만개(滿開)한 그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라 하겠습니다. 어쿠스틱과 현악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점은 편곡자의 탁월한 능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편백나무'는 낯선 이름입니다. 편백나무는 영어로는 'Hinoki Cypress'이고 꽃말은 '기도'랍니다. 바로 이 곡은 그녀 자신을 위한 '기도'같은 곡입니다. 어쿠스틱의 가벼운 경쾌함은 지난 EP의 'What Should I Do'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사랑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5월의 당신은'은 제목처럼 5월의 나른하고 아련한 아지랑이 같은 감정을 노래합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그대'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는 그런 애잔함과 봄의 나른함을 더해줍니다. '담담하게'는 제목과는 다른,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실편백나무'와 제목을 바꾸었어도 어울렸을 법합니다.) 이 EP의 어떤 곡들보다도 고백적인 노래인데, CD를 구입할 경우 포함된 두툼한 부클릿의 '서문'을 모두 읽어야 이 곡 뿐만 아니라 이 EP를 통해 '루시아',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온라인 음원의 마지막 트랙은 '그런 계절'의 연주곡입니다. 하지만 CD에는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더 들어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꼭 CD를 구입합니다.) 한 곡은 '꽃 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의 early demo version으로, 배경음의 빗소리가 '봄비'를 연상시켜서 봄을 노래하는 이 EP에 어색하지 않은 감성을 전해줍니다. 다른 한 곡은 '오스카'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노래같지만, 그 고양이에 그녀의 '그대'와 '그대에 대한 감정'이 이입된 사랑노래입니다. 나긋하게 힘을 빼고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나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고양이'도 다분히 봄을 연상시키기에 다분히 '봄 노래'답습니다.

EP "꽃그늘"은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8개의 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더라도 6곡의 신곡을 담고 있기에 CD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음반입니다. 또, 소책자 형식으로 상당히 공을 들인 부클릿은 그 소장가치를 더합니다. CD에 담겨진 음악 뿐만 아니라, CD를 수납하는 부클릿과 부클릿에 담겨진 내용물들까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반시장이 내리막을 향해가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시도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파스텔뮤직'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시도이기에 그 고집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싱어송라이터로 성큼 성장한 그녀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앨범들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어려운 음반시장의 상황 속에서도 10주년을 넘어 한 걸음씩 성장해가는 파스텔뮤직의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2013/10/04 02:31 2013/10/0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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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순관의 '그렇게 웃어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여배우를 보았다.
2. 웹서핑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낸 그녀의 이름은 '정은채'였다.
3. 그녀는 몇 편의 영화에 출였했고, 최근에는 '음반'까지 발표했다.

가끔 우연히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괜찮은 노래들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몇년전에 우연히 듣게된 모델 '장윤주'의 데뷔곡 'Fly Away'처럼 지금 소개하는 영화 배우(로 더 유명한) '정은채'의 '소년, 소녀'가 그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정은채의 EP는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핏 봤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연예인들이 유명 작사/작곡가의 곡으로 팬서비스 정도로 음반을 발표하는 모습과 다르게, 일부 곡을 작곡하고 모든 곡의 가사를 쓴 점과 인디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노래가 궁금하기에 충분했습니다.

EP를 시작하는 첫곡 '이방인'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담겨있는 곡이랍니다. 외국인들의 음성이 가득한 공항의 소음을 배경으로 낮게 울리는 허밍은 쓸쓸함을 그대로 전합니다. "Hello, Hello. I'm fine. thank you, and you?", 반복적으로 홀로 답하는 영어 가사는, 낯선 공간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함을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간결하게 반어적으로 전달합니다. 곡이 진행되면서 합류하는 스트링 연주는, 감정이 절제되고 건조한 정은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그녀의 목소리가 전하는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이방인'과 더불어 그녀가 작곡한 '잘 지내나요'는 '정은채', 그녀의 투명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이렇게 천진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보컬이 얼마나 있을까요? 청아한 피아노 연주 위로 노래하는 꾸밈없이 맑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서툴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별 후에 남은 감정들을 굿굿하고 태연하게 노래하려는 모습에서 소녀는 어느새 숙녀로 성장해갑니다. 그녀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풋풋하고 미숙했던 이성에 대한 감정'을 회상하면서 이 곡이 썼을 때, 그녀는 조금 더 세상의 쓸쓸함에 대해 알게 되었고, 꼭 그만큼 성숙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노래와 영미권 노래들을 모두 즐겨듣다보면 다른 언어로는 전달하기 힘든, 언어 특유의 '감정적 울림'이 느껴지곤 하는데, "How are you doing?" 부분에서도 제목과 같은 우리말 "잘 지내니?"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울림느 느껴집니다.(물론 노래가 아닌, 영화 속 대사라면 또 달랐겠지만, 멜로디를 따라야하는 노래에서 우리말 "잘 지내니"는 확실히 불리하다고 생각되네요.)

이제 이 EP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권영찬'이 작곡하고 정은채가 가사를 쓴 3곡이 어어집니다. '달'은 달의 스산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입니다. 마지막 곡 '여름바다'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여름의 동해와 그 바다에 담긴 추억들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그런데 두 곡은 보컬의 색이나 곡의 분위기에서 가수 '박지윤'의 최근 곡들과 많이 겹치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박지윤'과 작업하기도 했던 프로듀서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네요.

EP의 타이틀 '소년, 소녀'는 밴드 'My Aunt Mary'의 보컬 '토마스 쿡(정순용)'이 함께한 곡입니다. 여린 정은채의 보컬과 이제는 연륜(혹은 내공)이 느껴지는 토마스 쿡의 묵직한 보컬은 조금은 어색한 대비를 이룹니다. 하지만 묵직한 토마스 쿡의 음성이 여린 그녀의 음성을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서, 묘한 조화를 이뤄냅니다. 개인적으로 가수의 역량을 단지 '가창력'으로만 평가하려는 세태는 잘못된 획일화라고 생각하는데, 뛰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제법 그럴싸하게 전달하는 '정은채' 그녀의 모습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다만 마지막 'ㄹ' 받침의 발음이 부정확한 점은 이 곡을 듣는 내내 아쉽습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욕심이었는지, 혹은 그녀의 미래를 위한 소속사의 의도된 전략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음반으로서는 꽤나 들을 만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반을 들고 배우 '정은채'는 뮤지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이 EP로 뮤지션으로서의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가을 즈음에는 'GMF 2013'의 '페스티벌 레이디'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신인 배우 '정은채'로 신선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가끔 신선한 자작곡들이 담긴 앨범으로도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앨범 북클릿 마지막에 실린 그녀의 인사말 '씩씩하고 재밌게 살겠습니다'처럼 말이죠.
2013/06/14 04:11 2013/06/1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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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Peppertones)'의 discography에서 전환점이 될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

남성 2인조 밴드 '페퍼톤스'는 2004년 3월 EP "A Preview" 발표하고 'Next Big Thing'으로 큰 기대와 함께 데뷔하였습니다.  2013년, 올해로 데뷔 10년을 채워가는 이 듀오는 지금까지 4장의 정규앨범과 2장의 EP를 발표하였고, 그 기대만큼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앨범은 2012년 4월에 발매된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입니다. 앨범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총 6장의 앨범이 특정한 두 시기에 발매되었다는 점입니다. 첫 EP "A Preview"와 첫 정규앨범 "Colorful Express"가 각각 2003년 3월과 2005년 12월에 발표되었고, 후속 앨범들은 이 두 시기에 번갈아가면 발표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2집 "New Standard"가 2008년 3월에, 3집 "Sounds Good!"이 2009년 12월에, 4집 "Beginner's Luck"이 2012년 4월,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매된 두번째 EP "Open Run"이 11월에 발매되어, 3/4월과 11/12월에 번갈아 발매된 점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각각 봄과 겨울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름이나 가을에 녹음을 시작하여,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끝나면 겨울에 발표되고, 그렇지 않고 미뤄진다면 이듬해 봄에 발표된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수록곡 리스트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페퍼톤스표 음악'의 한 축이었던 '여성 객원보컬'이 참여한 곡이 단지 하나라는 점입니다. 페퍼톤스의 데뷔 당시에 인디밴드로서 과감한 객원보컬의 참여는 분명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앨범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객원보컬의 목소리는 곡에 상큼함을 더해주는 점 외에는 오히려 이 밴드의 정체성과 음악적 발전에 있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듯합니다.

앨범을 여는 첫곡 'For All Dancers'는 제목처럼 댄서블한 곡입니다. 헐리우드 B급 무술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기합소리로 시작되어, '사용 설명서'같은 나레이션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곡은, 확연히 달라진 페퍼톤스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이전 발랄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렉트로닉과 락이 결합된 역동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는 앞으로 듣게 될 변화들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행운을 빌어요'는 기존의 장점과 새로운 변화가 융합된 '새로운 페퍼톤스표 음악'을 들려줍니다. 기존의 대표곡들의 가볍고 경쾌한 연주와는 다르게, 강렬해진 연주와 보컬은 이 밴드가 지향하는 장르적 변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집까지 이 밴드가 들려주었던 '일렉트로닉 팝'과 '팝락'과는 다른, 견고한 '락'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그런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위해 '초심자의 행운'을 뜻하는 앨범 제목을 붙였나봅니다. 어휘에서는 페퍼톤스 고유의 개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서는 그런 변화는 또렷합니다. 이전까지 '소소한 생활의 즐거운 발견'을 노래하는 곡들이 주류를 이뤘던 점과는 달리, '행운을 빌어요'는 '뜨거운 사랑 노래'라고 할 수있겠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제나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잊고 있었던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는 가사는, 이별을 인종의 인류애로 승화시킵니다.  1집의 'Fake Traveler'나 2집 'New Hippie Generation'처럼 두 멤버가 보컬을 욕심낸 곡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곡은 처음이라고 생각되네요. 따라부르기 어렵지 않은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가 주는 강한 호소력은, 수 년 혹은 십수 년 후에도 이 밴드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면 이 곡이 콘서트들에서 '절정의 싱얼롱'을 장식하리라 예상하게 합니다.

'러브앤피스'는 제목이 주는 따사로움 만큼이나 자유롭고 평온한 느낌의 곡입니다. 무엇보다도 째즈의 즉흥연주(잼)만큼 자유분방한 느낌의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넘어 복잡한 설계를 생각한다면, 어느때보다도 음향적인 면을 치밀하게 고려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앨범 전반에서 들을 수 있는 견고해진 연주 뿐만 아니라, 과거 앨범들에서 언제나 아쉬웠던 믹싱과 마스터링에서도 확실히 나아진 점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앞선 '행운을 빌어요'가 '뜨거운 이별 노래'였다면 '러브앤피스'는 '추억에 잠겨 짓게된 옅은 미소'같은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Robot'은 제목에서 일렉트로닉 팝정도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차분한 모던락 트랙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확연하게 이전보다 많아진 사랑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 트랙도 '로봇'처럼 얼어붙은 마음이 봄바람같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Wish-List'는 두 멤버가 번갈아 나열하는 그들의 '위시리스트'가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곡의 진행이나 유유저적의 가사에서는 2집의 'New Hippie Generation'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곡이 전하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도, '행운을 빌어요'에서도 이야기했던 '인류애'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같은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아시안게임'은 페퍼톤스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담아낸 트랙입니다. 질주하는 펑크락 사운드의 공격적인 연주와 역시 도발적인 가사는 전혀 다른 밴드의 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지난 앨범에서도 불안했던 두 사람의 보컬은 이번 앨범에서야 '뛰어나지는 않지만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할 수준에 도달했지만, 깊은 울림과 여운을 전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게 들립니다. 그 부족함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이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인 '검은 산'에서 유일하게 '여성 객원보컬'로 여성 듀오 '랄라스윗'의 '김현아'의 목소리를 빌려왔습니다. 가사 속 화자의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김현아의 목소리는 '검은 산'이라는 묘한 이미지와 어우러져 애잔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움이 가득한 뭍어나는 가사를 읊조리는 김현아의 목소리에서는 단어와 단어에서, 그리고 행간에서도 그 절절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의 울림은 어쩐지 애잔하면서도 공허합니다. '검은 산'이 그대에게 가는 길을 막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처럼 들립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전하는 심상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먹먹합니다.

여름의 바캉스 시즌을 노렸는지, 페퍼톤스답지 않게 노골적인 제목의 'BIKINI'는 제목처럼 '행운을 빌어요'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거운' 트랙입니다. 이 곡에서도 참신한 시도가 녹아있는데, (페퍼톤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오토튠을 적당히 사용한 감각적인 랩과 세련된 연주는 '페퍼톤스가 이토록 트랜디한 락밴드였나?'하는 생각까지 들게합니다.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하는 가사에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감성'으로 시작했던 페퍼톤스가 어엿한 '청년 취향'의 밴드로 성장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놀이기구가 떠오르는 제목의 '바이킹'은 제목처럼 지난 앨범들의 채취가 조금은 남아있는 트랙입니다. 신나는 놀이동산이 떠오르는 제목과 다르게 차분한 어쿠스틱 연주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숙한 단어 선택(밥솥, 건배)'이 돋보이는 가사는, 추수를 앞둔 가을의 들판처럼 익어가는 페퍼톤스의 음악적 역량을 그려냅니다.

outro를 남겨둔 마지막 곡 '21세기의 어떤 날'은 어려모로 '행운을 빌어요'와 닿아있는 곡입니다. '행운을 빌어요'에서 끝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을 노래했다면, 이 곡에서는 또 다시 '끝'을 노래합니다. '행운을 빌어요'가 전혀  새로운 '음악적 시작'을 하는 밴드 자신에게 행운을 비는 곡이었다면, 이 곡에서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시작되어 21세기 전파를 지구 밖 우주로 쏘는 행동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인류의 보편적 소망'도 노래합니다.

앨범을 닫는 outro는 'fine'입니다. 잔잔한 올드팝 넘버의 느낌으로 영어 가사를 읊는 보컬과 그런 느낌을 살려주는 연주는 페퍼톤스의 네 번째 앨범도 여기서 끝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영어 가사의 문맥에서는 '좋은'을 의미하는 형용사 'fine'이지만, 마지막 곡의 제목으로만 본다면 악곡의 '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fine'가 될 수 있기에, 'fine'이라는 제목은 다분히 중의적입니다.

앨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사/작곡/편곡/연주/보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음악적 변화와 성숙으로 가득합니다. 이 밴드의 음악을 신선하고 상큼하게 만들었던 장점들을 포기하고, '신재평'과 '이장원' 두 사람의 밴드를 완성하기 위해 선택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페퍼톤스는 치기 어린 재기발랄함을 벗고 밴드의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을 향한 신선한 껍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두 사람이 정말로 입고 싶었던 꼭 맞는 옷을 찾나봅니다. 이 앨범이 밴드 '페퍼톤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위에 있을 앨범이 되리라고 예상해봅니다. 페퍼톤스, 두 사람의 또 다른 힘찬 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진정한 락밴드'로서 '두 번째 데뷔'를 시작한 두 사람에게 "Beginner's Luck"을 기원합니다. 이 앨범은 질리지 않고 꽤나 오래 즐겨 들을 듯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3/05/23 00:37 2013/05/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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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의 도시를 노래하는 'Allegrow(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

초기 주로 여성뮤지션들을 소개했던 '파스텔뮤직'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짙은' 등 남성 뮤지션들의 괄목한 만한 성과 이후, 남성 뮤지션 발굴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은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 연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연작의 마지막 2011년에 발매된 "사랑의 단상 Chapter 3. Follow Me Follow You"는 '알레그로(Allegrow)'를 비롯해,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 '이진우', 그리고 '옆집남자'까지 이전 연작들보다 많은 남성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앨범이었습니다. "사랑의 단상" 연작은 처음부터 앨범을 발표할 뮤지션들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샘플러같은 성격도 있는 앨범이었는데, 역시 이 연작의 세 번째에서 소개했던 '헤르쯔 아날로그'는 작년에 EP와 첫 정규앨범을, 알레그로는 올해 2월에 EP "Nuit Noire"를, 그리고 '이진우'는 최근(5월)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에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이나 홍보로 보았을 때, 파스텔뮤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남성 뮤지션들 가운데 '헤르쯔 아날로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되는데, 제 취향에는 알레그로의 노래들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사랑의 단상"에서 'Love Today'로 들은 첫인상은 '무난함'과 '기대감'사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앨범인 "Ten Years After"에 수록된 '어디쯤 있나요'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사라지기 전에, 파스텔뮤직은 소속 뮤지션들의 2013년 첫 앨범으로 바로 알레그로의 "Nuit Noire"를 발표했습니다.

'검은 밤'을 뜻하는 앨범의 프랑스어 제목 "Nuit Noire"처럼, 앨범을 여는 첫 트랙은 어스름한 밤이 시작될 즈음의 시간일 법한 'PM 7:11'입니다. 3호선역의 안내방송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연주곡은 꽤나 경쾌합니다. 정시가 지난 퇴근 시간인 7시 11분 즈음의,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낸 경쾌한 마음, 혹은 낮의 일상과는 또 다른 밤의 일상에 대한 기대감처럼 들립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Urban Legend'는 함께한 여가수의 이름과 독특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바로 같은 소속사의 '한희정'이 참여했고, 제목은 우리말로 하면 '도시 전설' 정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인류가 도시에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전설을 '도시 전설'이라고 하는데, 알레그로는 어두운 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랑의 망령'을 이 '도시 전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목이나 가사에서 '공포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데, '망령'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타리프가 인상적인 락넘버입니다. 이미 같은 소속사인 에피톤 프로젝트, 박준혁의 곡에서도 아름다운 음성을 들려주었던 한희정은 이 곡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 '망령'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고, '공포 스릴러 영화'를 완성하는 방점입니다. 하지만 그 망령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점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Urban Legend'는 알레그로의 기존 곡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지만 이어지는 곡들은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Under the Fake Sunshine'는 네온사인과 가로등같은 인공적인 빛들을 'fake sunshine(가짜 태양볕)'에 비유하고 도시인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합니다.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곤 하는데, 피아노와 기타 연주는 그런 밤의 공기를 타고 서정적인 시어(詩語)들을 나열합니다. '긴 밤을 채우는 추억'에서는 누군가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세운 밤'을 떠오르고, '시간의 강'에서는 '추억과 현실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acoustic set의 느낌으로 흘러가는 연주에서 배경음처럼 사용된 synth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화자를 위로합니다. 과하지 않게 synth가 사용된 점은 알레그로의 데뷔곡 'Love Today'와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올해로 11년차를 맞는 파스텔뮤직의 지난 10년을 생각하게 합니다. '미스티 블루', '푸른새벽', '어른아이' 등 파스텔뮤직의 초기를 대표하는 '여린 소녀적 감수성의 시대'를 지나서, 현재는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센티멘탈 시너리'로 대표될 만큼 남성 뮤지션 중심의 '확장되고 다변화된 음악적 스펙트럼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인디레이블로서는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를 누리고 있다할 수 있겠는데, 이 곡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여린 감수성'과 '전자음과 어쿠스틱 연주의 조화'는 이 곡을 파스텔뮤직의 초기와 현재사이 즈음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곡으로 들리게 합니다. '파스텔뮤직다운'이라는 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파스텔뮤직의 초기 뮤지션들에 대한 그리움이 갖고 있는 파스텔뮤직의 올드팬들에게 그 그리움을 조금은 달래줄 만합니다.

그런점에서 '봄의 목소리'이 곡도 올드팬의 그리움을 자극합니다. '봄의 목소리'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경쾌한 연주 위를 달리는 달콤씁쓸한 긍정의 감정은 여러모로 '미스티 블루'의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곡의 미스티 블루의 목소리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레그로의 목소리 역시 담백함으로 부르기에 그런 생각이 더 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스쳐온 서울 밤하늘엔'은 긴 제목만큼이나 긴, 4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역시 제목처럼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과 그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상상하게 합니다. 앨범의 나머지 두 보컬곡 'Sunflower'와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지속됩니다. Sunflower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는 제목 '해바라기'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의 빛이 오랜 시간을 날아서 지구의 하늘을 비추듯, 언젠가라도 '너'에게 닿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합니다. 이 두 곡들도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으면 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트랙 '잔향'은 앨범을 닫는 outro입니다. 한희정의 허밍을 들을 수 있는 곡인데, 진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울림은, 이 앨범이 전하는 고독과 그리움의 메시지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는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의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전업 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으로 뮤지션을 겸업하는 그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런 이중생활(?) 때문에 이 EP의 제목이 'Nuit Noire', 즉 '검은 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밤이 내려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그를 '밤의 음유시인'으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최근 파스텔뮤직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다른 소속 뮤지션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다른 어떤 뮤지션들보다 그의 다음 앨범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알레그로'의 정규앨범을 기대해봅니다.

2013/05/16 05:58 2013/05/1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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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흔해지는 '여성 듀오'이지만, 흔하지만은 않은 노래를 들려주는 '랄라스윗(Lalasweet)'의 첫 정규앨범 'bittersweet'.

2011년 이전에도 홍대 인디씬에는 여성 듀오가 가끔 보였지만, 혼성 듀오 '푸른새벽'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그리고 남성 듀오 '페퍼톤스'나 'MOT'만큼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던 여성 듀오는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는 2011년쯤이 여성 듀오의 반격이 시작되는 해라고 할 수 있는데, '옥상달빛', '제이레빗', '랄라스윗'같이 인지도있는 여성 듀오들이 첫 정규앨범을 발표한 해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세 팀은 현재 인디씬의 '대표 여성 듀오'라고 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앞 두 팀은 음악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본 '랄라스윗'의 첫 정규앨범은 '어떤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보컬/어쿠스틱 기타를 담당하는 '김현아'와 피아노/키보드를 담당하는 '박별', 두 사람을 멤버로하는 '랄라스윗'은 2008년 'MBC 대학가요제'로 데뷔했습니다. 인디씬의 '거대 기획사'라고 할 수 있는 '해피로봇 레코드' 소속으로 2010년에는 EP '랄라스윗'을, 2011년에는 첫 정규앨범 'bittersweet'를 발표했습니다.

첫 곡 'soso'는 제목 그대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혹은 '소소한' 일상의 감정을 노래하는, 여느 여성 듀오라면 셋리스트에 한 곡 정도는 보유하고 있을 만한 곡입니다. '아무도, 아무것도'는 보편적인 감적인 '외로움'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보통 여성 듀오들의 곡과는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보통의 여성 듀오가 지향하는 잔잔하거나 달달한 folk/pop보다는 '절정'이 뚜렷한 'rock'에 가깝습니다. 타이틀 곡 '우린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에서는 더욱 뚜렷한 '발단-전개-절정-결말'의 구조를 들려줍니다.

소설 혹은 영화의 제목이 떠오르는 '벨이 울리면'은 (호기심과 묘한 두려움을 함께 담고 있는) 인상적인 제목만큼이나 듀오 '랄라스윗'에 대한 강렬한 잔향을 남기는 곡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고독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고독을 처절하지 않고 아련하게 풀어나갑니다. 눈물의 습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이 곡의 초점을 고독이 아닌 간절한 부탁으로 옮깁니다. 노래를 끝맺는 마지막 단어, '기억해'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도 합축적이고 간절합니다. 앨범 제목인 'bittersweet'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꼽으라면 바로 이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앨범 수록곡은 모두 두 멤버의 자작곡으로, 11곡의 수록곡 가운데 3곡이 박별의 곡이고 나머지는 김현아의 곡입니다. 앞 쪽에는 4곡은 두 멤버의 곡이 절반씩 들어있는데, 둘의 스타일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래는 모두 김현아가 부르지만, 박별의 곡 'soso'와 '우린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에서는 그녀가 담당하는 피아노/키보드가 다른 곡들보다 상대적으로 주요한 위치에서 멜로디를 이끌어 갑니다.

멜로디언 연주가 나른한 봄의 기운을 담고 있는 '봄'은 따뜻한 온도를 느껴지는 연주와는 다르게 '잔인한 4월의 봄'을 노래합니다. 어쩐지 '초점이 흐려진 노란 개나리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드는데, 그 흐려짐이 봄의 아지랑이 때문인지 혹은 눈물 때문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어, 'soso'처럼 여성 듀오다운 감성을 들려주는 '기다려'는 오히려 더 '봄'답게도 사랑의 설램을 노래합니다. '파란달이 뜨는 날에'는 색채와 시각적 이미지가 뚜렷한 가사로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태엽감기'와 'blind eyes'에서도 묘사적인 가사가 이어지는데, 이런 가사는 보컬 김현아가 쓴 곡들의 공통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오는 11월 말에 발매된 앨범이지만, '겨울'이 아닌 '봄'의 내음이 물씬 나는 곡들이 많은데, bonus track을 제외하면 앨범의 마지막 곡이라고 할 수 있는 'April sick'도 그렇습니다. 첫 곡과 마찬가지로 박별의 곡으로, '4월'을 담고 있는 제목처럼 느릿느릿 느리게 흘러가는 연주는 따듯한 봄날의 공기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soso'가 '그저 그런' 적당한 일상에 만족하는 긍정적 시각으로 노래한다면, 'April sick'에서는 그저 그런 특별함 없는 일상에 대한 무료함과 회의가 느껴져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bonus track인 '나의 낡은 오렌지 나무'는 바로 랄라스윗에게 'MBC 대학가요제 은상'은 안겨준 곡으로 두 사람의 데뷔곡이라고 하겠습니다. 정규 수록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지금의 두 멤버가 회상해보면 오글오글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를) '치기 어린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최근 몇 년사이 여러 여성 듀오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그 가운데 몇몇은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여성 듀오에 대한 '실력보다는 여성 듀오라 인기있다'는 선입견을 갖게 했는데, 랄라스윗은 그런 선입견을 무너뜨립니다. 김현아와 박별,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앨범 제목이 'bittersweet'인데, 최근의 여성 뮤지션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경향을 표현하는 바로 그 단어가 'bittersweet'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달콤 쌉살한' 곡뿐만이 아닌, 쌉쌀한(bitter) 곡과 달콤한(sweet)한 곡이 어우러져 랄라스윗의 정체성을 그려내고 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최근에 두 번째 EP를 준비하다가 두 번째 정규앨범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 가을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신곡이 한 발자국 물러선 봄만큼이나 기대가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3/04/12 13:37 2013/04/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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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와 유예를 거듭하다가 발매된 '9와 숫자들'의 EP '유예'.

'9와 숫자들'의 리더 '9'의 앞선 밴드 '그림자궁전'의 2007년 데뷔 앨범 '그림자궁전'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에서는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끝자락에 발매된 '9와 숫자들'의 데뷔 앨범 '9와 숫자들'은 그림자궁전에 이어지는 호평과 더불어 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이 비평가들을 사로잡은 증거였고, 그림자궁전에서는 쉽지 않았던 여러 차례의 단독공연이 청자들을 사로잡은 증거였습니다. 리더 9가 그림자궁전 시절보다 어깨를 빼고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앨범 '9와 숫자들'은 사실 그림자궁전 시절보다 더 많은 고뇌와 독기를 품고 만든 앨범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뛰어난 가창력'이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9의 목소리이지만, 듣기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Smashing Pumpkin'의 노래들에서는 흡입력을 발휘했던 'Billy Corgan'의 그것처럼, '9와 숫자들'의 노래들에서 그의 목소리는 마력(혹은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어쨌든, 데뷔 앨범의 인기에 힘입어 2011년 초에는 후속 EP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즈음, 수차례 멤버 교체를 겪었던 밴드는 현재의 4인 체제로 고정되었습니다. 2011년 5월 즈음에 발매가 예상되었던, EP '유예'는 앨범 제목처럼 발매 유예를 반복하였고 발매일은 멤버들도 모르는 미궁에 빠져들었죠. 2012년으로 해는 바뀌어 팬들의 기다림은 원성이 되고, 2013년을 바라보며 그 원성이 또 망각으로 빠져들 때 즈음인 2013년의 11월, 기다림과 망각의 틈새로 드디어 EP '유예'가 발매되었습니다. 데뷔 앨범이 2009년 12월에 발매되었으니 거의 3년만의 후속 앨범으로 아주 오랜 기다림같지만, 오랜 활동 끝에 한 장의 앨범을 내고 산화해버린 '그림자궁전'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길지 않은 기다림이었고 후속작을 발표해준 점만으로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고 연말이 가까워오는 11월에 발매한 점은 다분히 연말 시즌 특수를 노리지 않았나 합니다.)

대부분의 곡들(1곡을 제외한)에서 전주가 있었던 지난 앨범과는 달리, 전주 없이 바로 노래가 시작되는 첫 곡 '눈물 바람'은 청자가 준비할 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고 없이 급습하는 9의 목소리는 마치 이유 없이 왈칵 쏟아지는 눈물 같습니다. 제목부터 가사까지, 신파 혹은 청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데뷔 앨범이 지향하는 복고 코드를 이어가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곡을 이끌어가는 잔잔한 멜로디와 가성까지 올라가는 9의 노래는, 멜로디보다 리듬이 조금 더 두드러졌던 지난 앨범과는 다릅니다.

'몽땅'의 도입부에서 반복되는 '누구에게도'는 '안치환'의 대표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유명한 후렴구 '누가 뭐래도'를 떠오르게 합니다. (의도되었다면 오마주가 아닐까 합니다.) SNS에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의 오마주가 담겨있다고 하는데, 도입부에서 베이스 연주가 들려주는 리듬은 분명 두 만화영화 주제곡의 리듬과 비슷합니다. 지난 앨범의 여러 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신스대신 양념을 사용된 실로폰 소리도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곡을 생각하게 합니다. '외로움'에 만화영화 주제가에서 차용한 요소들과는 달리, 가사의 수준은 지난 앨범의 어떤 곡들처럼 다분히 위험한 수위를 향해 달려가다 적당한 수위 조절로 마무리합니다. (이거, 19금은 아니더라도 15금 정도는 줘야하지 않을런지요.)

제목과 같은 '유예'는 솔로 가수 '9' 시절에 그가 불렀던 '부도'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부도', '유예'나 '연체' 같은 단어에서 '경제학'이 떠오르는데, 그림자궁전의 과학탐구 시리즈('중화반응', '광물성 여자', 그리고 그림자궁전을 위해 만들었지만 9와 숫자들이 부른 'DNA')가 있다면 9와 숫자들에는 사회탐구 시리즈가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잔잔한 기타 연주 위로 담백하게 읊조리는 9의 노래는 데뷔 앨범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곡이 아닐까 하네요.

독특하게 어린이 코러스가 들어간 '그대만 보였네'는 앨범의 타이틀입니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보컬/연주/코러스와 사랑의 세레나데와도 같은 가사 덕분에 '대중성'이 다분히 두드러지는 곡입니다. 지난 앨범의 타이틀 '말해주세요'와 마찬가지로, 밴드의 단독 공연 셋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을 인기곡이 되리라 예상됩니다.

'아카시아꽃'과 '착한 거짓말들'도 지난 앨범의 '이것이 사랑이라면'이나 '칼리지 부기'처럼 솔로 가수 9의 노래에서 부활한 곡입니다.(생각해보면, 제가 솔로 가수 9 시절에 못들어서 그렇지 상당수의 곡이 그 시절 곡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카시아꽃' 이미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의 앨범에 '과수원길'로 수록되기도 했고, 동요 '과수원길'을 재해석한 가사와 그 가사의 '시간적 배경'정도가 될 어스름한 저녁녘을 그려내는 연주가 감상 포인트라고 하겠습니다. '착한 거짓말'을 듣고 있으면, 곡 자체의 쓸쓸함 뿐만 아니라, 뒤의 두 곡이 보너스 트랙 같은 곡들이기에 '마지막 곡'이라는 기분이 다분합니다. 은유가  깔려있는 느낌의 가사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데, 9가 경험했던 '군입대'와 '이별'에 대한 내용이라고 추측해봅니다. 2006년에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으니, 노래 중간에 외치는 '알파벳'의 의미입니다. 내용를 알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쓸쓸한 목소리에서는 회한이 느껴지고, 고고하게 퉁기는 기타 소리는 먹먹합니다.

마지막에 담긴 두 곡은 스튜디오에서 한 번에 녹음된 studio live 트랙들입니다. 이 두 곡을 보너스 트랙이라고 본다면 이 음반은 EP라 할 수 있겠으나, 요즘 대중가요 앨범들의 흉흉한 인심 덕분에 1분 남짓의 인트로/아웃트로나 MR곡을 포함하고도 8곡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정규앨범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full-length album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플라타너스'는 보너스 트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곡으로 다음 앨범의 '맛보기'가 아닐까라고도 생각됩니다.(설마 앨범 발매일을 맞추기 위해 studio live로 녹음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아요.) 은유와 의인화를 적하게 사용한 가사는 매우 시적입니다. 어쩐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같은 시가 떠오르는데, '아카시아꽃'이 동요 '과수원길'을 살짝 비틀어놓았다면, 이 곡도 그 시를 살짝 비틀어 놓은 모양새입니다. (또 그렇다고 보기엔, 국화와는 달리 플라타너스의 덩치가 어마어마합니다만.) 보너스같은 곡이지만, 가사와 9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심상, 그리고 보컬에 집중할 수 있게 최소화된 연주, 적절한 배경음까지, '유예'의 수록곡 가운데 최고의 트랙으로 꼽고 싶습니다. (늦가을이주는 회한과 쓸쓸함에도 잘 어울리구요.) 지난 앨범과는 매우 다른 시도처럼 들리는데, 이 점은 이 곡이 두 번째 정규 앨범의 맛보기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줍니다. '낮은 침대'은 지난 앨범에서처럼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데, studio live acoutic version으로 녹음되어서 급박했던 원곡과는 다르게, 가사에 어울리는 여유를 들려줍니다.

치밀하게 계산되고 구성되었을 법한 '그림자궁전'의 앨범과는 다르게 감성적인 '9와 숫자들(솔로 가수 9를 포함하여)'의 노래를 듣노라면, 그림자궁전의 9의 좌뇌가 시킨 일이라면, 9와 숫자들은 그의 우뇌가 시킨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만큼 동떨어져 있지만, 9의 '음악적 연대기'에서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앨범처럼 보입니다. 솔로 가수 9나 그림자궁전 시절, 혹은 그 이전 시절에 틈틈히 써내려간 곡들, 그 가운데 9와 숫자들의 데뷔 앨범에 실리지 못했고 차후의 정규 앨범에도 실리기 어려운 성격의 곡들의 녹음을 망설이고 유예하다가, 그 곡들을 모아서 발표한 앨범이 바로 '유예'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아주 오래전 곡 '아카시아꽃(과수원길)'이나 그 후에 써졌을 '착한 거짓말들'같은 곡들이도 그렇지만, 공연에서 들려주었던 다른 느낌의 신곡 '깍쟁이'같은 곡이 제외된 점도 그렇게 생각하게 하네요. (그림자궁전에서는 밴드를 위해 남은 곡들을 아직 정리 못했지만, '9와 숫자들'에서는 정리하고 가겠다는 느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예의 유예를 거듭하다 발매한 EP가 '유예'이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유예'도 다음 정규 앨범 발매를 유예하기 위해 '유예'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멤버 구성에서도 꽤 오랜 안정을 보여준 지금의 '9와 숫자들'이 해체나 은퇴는 오래오래 유예하고 계속 활동해주었으면하는 바랍니다. 언제 정리할지도 모를 그림자궁전의 두 번째 앨범을 기다리는 일보다는, 그래도 유예되면서도 종종 발매될 9와 숫자들의 앨범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읽고 있을 지도 모를, 모니터 넘어의 당신의 마음도 같다면 그냥 살포시 이번 앨범도 장바구니에 넣어주시면 되는 겁니다. (두 장, 세 장 넣어서 연말 특수를 노리고 선물하는 일도 좋겠습니다.) 참 쉽지 않나요? 강매가 아니라 그만큼 좋은 앨범이라는 의미입니다.
2012/12/01 10:19 2012/12/01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