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 'Color Your Soul'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두 번째 리믹스 앨범 'Pinch Your Soul'.
1집 'Instant Pig'의 리믹스 앨범인 'Zbam'이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같은 느낌이었다면, 2집 'Color Your Soul'에 이어 발매된 'Pinch Your Soul'은 클래지콰이에게 리믹스 앨범이 단순히 정규앨범에 힘입어(묻어가는 성격의) '이벤트성 음반'이 아님을 알리는 동시에 '1 정규앨범 + 1 리믹스 앨범'의 공식을 확립하는 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앨범 제목부터가 재밌습니다. 2집 'Color Your Soul'이 우리말로 '너의 영혼을 채색하라' 정도가 된다면, 'Pinch Your Soul'은 '너의 영혼을 꼬집어라'로 익살스러운 느낌을 갖게하면서, 동시에 리믹스 앨범다운 느낌으로 앨범의 성격을 알리고 있습니다.
첫 트랙 "Color Your Soul (Pinch Your Mix)"는 이 앨범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트랙입니다. 시크한 느낌이 강했던 원곡을 '꼬집는' 리믹스를 통해 좀 더 경쾌하고 댄서블하게 바꾸어놨습니다. 불필요한 어깨의 힘을 빼고, 좀 더 즐기도록 말이죠. 이어지는 "Love Mode"는 당시부터 한국 최고의 힙합 그룹으로 떠오른 '에픽하이(Epik High)'의 리더 '타블로'가 참여하여 더 눈길이 가는 트랙입니다. 이 리믹스 앨범을 팔기위한 '상술의 눈초리'는 지울 수 없지만, 분명 팬들에게는 이 앨범을 구입하게 만드는 '킬링트랙'이라고 할 만합니다. 타이틀 곡으로서는 2집보다 나아서, 이 곡을 2집에 수록하여 정규앨범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Date Line(bon voyage remix)'는 리믹스 앞에 붙은 'bon voyage'의 의미를 알아야 이해할 만한 트랙입니다. 'voyage'는 영어로 '항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bon voyage'는 프랑스어로 '좋은 여행 되세요(Good Journey)'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원곡이 화창한 날 넓지 않지만 잘 정리된 도로변의 거리를 산보하는 느낌이라면, 리믹스 버전은 voyage가 의미하는 '항해'처럼 뱃놀이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보내는 느낌입니다. 곡 가운데 들리는 프랑스어는 뱃놀이에 '프랑스 어딘가'라는 낭만을 더해줍니다.
이어지는 두 트랙, "Fill This Night (paradox remix)"와 "Come Alive (distort remix)"는 전자음의 강화가 두드러지지만, 사운드의 밀도와 비트는 '댄서블'하기에는 부족합니다. "I'll give you everything (buoyant remix)"는 '부력이 있는, 경쾌한'을 의미하는 buoyant처럼 반짝반짝한 사운드 때문에 떠오르는 분위기와 켱쾌한 사운드가 매력적인 트랙입니다. 하지만 이 트랙이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원곡의 보컬과는 다르게 'J(제이)'와 'Booby Kim(바비킴)'이 다시 부르고 있기때문입니다. 여성 보컬리스트로서 가녀린 음색로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J'와, 역시 한국인으로서는 독특한(소울풀한) 음색의 '바비킴', 두 사람의 확연한 음색 대비는 귀를 즐겁게 합니다.
"Speechless (Vanilla soul remix)"는 말랑말랑 전자음들을 통해 '바닐라'처럼 달콤해진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Cry Out Loud (black sunshine remix)"는 노래 속 화자의 기분을 대변하는 듯한 'black sunshine'이라고 명명된 리믹스가 재밌습니다. 강렬한 명암대비가 느껴지는 리믹스 제목처럼, 리믹스로는 특이하게도 원곡보다 전자음을 배제하여 보컬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음각과 양각으로 흑백의 명암 대비를 통해 표현하는 '판화' 같다고 할까요? "Chi Chi (original remix)"는 이 앨범까지 클래지콰이의 음악들을 따라왔다면 한 번 즈음은 들었을 법한 멜로디와 전자음들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마지막 트랙 "이별"은 국악의 연주에 시조같은 가사를 입힌, 이번 앨범의 성격에는 벗어나는 다분히 '보너스 트랙'이라고 생각됩니다.
1집을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아쉬운 2집의 리믹스 앨범이기에, 역시 아쉬움은 큽니다. Love Mode나 "I'll give you everything'의 리믹스 트랙이 이 앨범을 지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2집에 실려 정규앨범에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국 판매량으로 보면 2집이나 이 앨범이나 '공멸'하게 되지 않았나 하네요. 하지만 'Zbam'과 더불어 단지 '보너스 CD'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리믹스 앨범의 위상을 개별적인 앨범으로 높인 점은 높이 살만 합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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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zziquai project - Pinch Your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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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zziquai project - Color Your Soul
데뷔앨범 'Instant Pig'의 성공에 따라 큰 기대 속에 발매된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두 번째 앨범 'Color Your Soul'.
2004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Instant Pig'는 '클래지콰이'에게 대중의 관심을 모아준 앨범이었고, 그 인기는 수록곡들이 CF에 사용되면서 표면적으로도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판매량이나 대중의 인기보다는 음악성에 중점을 둔 시상식인 '2005년 제 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가수(밴드)'와 '최우수 팝'까지 안겨주니,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리믹스 앨범 'ZBAM'도 1집과 2집을 잇는 1.5집으로서 상당한 완성도와 기대되는 신곡들을 들려주었구요.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클래지콰이의 새로운 앨범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중의 눈을 한 수준 높여놓은 그들이었기에, 대중은 더 높은 수준을 원할 수 밖에 없었죠. 앨범 아트웍에서는 1집에 이어 전형적인 돼지가 등장하여 -멧돼지의 그림자와 등장했던 리믹스 앨범과는 다른, 변종이 아닌- 1집의 혈통을 잇는 '적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intro "Beautiful Woman"에 이어지는 "Salesman"은 크리스티나의 보컬이 빛나는 트랙으로 앨범의 전반적인 성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1집보다 더 높아진 보컬의존도와 더 짙어진 팝적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더욱 댄서블한 "Fill the night"과 1집 중반부의 트랙들을 연상시키는, 비교적 강렬한 비트의 "Cry out loud"가 이어지고 'I will give you everything'에서는 나긋나긋한 보컬로 인해 말랑말랑한 팝적 감각이 절정에 달합니다. 'Come alive'는 2집 수록곡 가운데 가장 일렉트로니카적인 트랙으로 타이틀 곡 "날짜 변경선"은 팝적 성향이 절정에 달한 라운지풍의 트랙입니다.
같은 플럭서스 뮤직 소속의 이승열이 객원보컬로 참여한 "Be my love"는 인기 드라마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은 트랙으로 'Color your soul'의 후반부의 시작을 알리는 트랙입니다. 후반부의 다른 점은 전반부보다 더 보컬 의존적이며, 대체적으로 가볍고, 일부 트랙에서는 상당히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곡들이 어쿠스틱으로 편곡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하네요.
'삼인삼색(三人三色)'의 시작인 "춤"은 호란의 보컬이 빛나는 트랙으로 클래지콰이를 '대한민국 대표 일렉트로니카 밴드'라고 부르기에 무색할 만큼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후에 "이바디"로 만나게 되는 호란을 엿볼 수 있죠.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제목의 "Color your soul"은 "춤"에서 코러스에 가까웠던 알렉스가 호란과 역할을 바꾼 트랙으로 제목처럼 Soul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춤"과 더불어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인 "Speechless"는 호란과는 또 다른 매력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크리스티나를 만날 수 있고 전작의 "After Love"에 비견할 만한 트랙입니다.
비교적 나긋하고, 조금은 느끼한 알렉스의 보컬과 함께하는 "Sunshine"은 전작의 "Gentle Rain"을 생각나게 하는 흥겨움과 발랄함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 흥겨움과는 역설적으로 이별을 노래했던 "Gentle Rain"과는 다르게, "Sunshine"은 가사까지도 제목처럼 찬란합니다. 여름의 연가로 손색이 없죠. "Step Ahead"는 이어지는 "다시..."의 Intro 성격의 짧은 연주 트랙입니다. "다시..."는 여러모로 전작의 'flower'를 떠올리게하는 트랙입니다. 개성이 강한 두 보컬인 알렉스와 호란이 서로의 개성을 줄이고, 차분하게 하모니에 집중한 점이 그렇고, 흔한 싸구려 발라드처럼 눈물에 호소하지 않고 차분차분, 또박또박, 하지만 안타깝게 읊조리는 가사가 그렇습니다. 이별의 슬픔을 넘어,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구요.
분명 'Color your soul'은 전작 Instant Pig에 견줄 만큼 클래지콰이의 다양한 음악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이 대중에게 안겨준 '충격'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아쉬운 앨범입니다. 영화에서 본편을 능가하는 후속편이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중의 귀를 "일렉트로니카/라운지"라는 또 다른 세계로 한 단계 높이고, 또 그 만큼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그들이기에 아쉬움은 짙습니다. 그럼에도 각곡의 퀄리티나 앨범 전체의 완성도는 대중가요의 평균을 뛰어넘는, 흔히 말하는 'Well-made'라고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클래지콰이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버릴 수 없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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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 - Bard
에스닉 퓨전(ethnic fusion) 밴드 '두번째 달'의 또 다른 반쪽 '바드(Bard)'의 첫 앨범 'Bard'.
2005년 등장한 '두번째 달'의 데뷔앨범은 척박한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가볍게 소비되고 가볍게 잊혀지는 선정적인 댄스음악 일변도의 음악시장에서, 두번째 달이 들려준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연주 위주의 퓨전음악은 2000년에 불기 시작한 웰빙열풍과도 부합하여서 의식주의 웰빙 뿐만아니라 듣고 느끼는 정식적인 웰빙에도 부합하고 있었죠. 이 새로운 밴드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을 차지한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중과 비평가, 모두 이런 앨범을 기다려왔을 테니까요.
드라마 '아일랜드'의 OST에 '서쪽하늘에'로 참여하여 데뷔앨범 발표하고, 드라마 '궁'의 OST에 참여하면서 밴드의 앞날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밴드의 두 번째 정규앨범 발표는 진짜 '두번째 달'이 떠올라야만 가능한 일인지, 소식이 없었죠. 그렇게 '두번째 달'이라는 이름이 흐려져가는 2007년 말, '두번째 달 Monologue Project'인 'Alice in Neverland'가 첫 앨범을 발표합니다. 6명의 두번째 달 한국인 멤버 가운데 4명(최진경, 조윤정, 박진우, 백선열)이 참여한 Alice in Neverland은 두번째 달의 프로젝트 밴드답게 연주를 중심으로한 음악을 들려주며 두번째 달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었습니다. 하지만 Alice in Neverland는 두번째 달과는 다르게 민속음악은 색채는 흩어지고 서정성에 중심을 둔 뉴에이지와 크로스오버에 가까운 음악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Alice in Neverland의 음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활발한 공연 활동과 2009년에는 두 번째 앨범까지 발표하면서 두번째 달을 계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머지 2명의 한국인 멤버(박혜리, 김현보)가 추축이 된 밴드의 소속이 들렸습니다. 밴드의 이름은 음유시인을 뜻하는 '바드(Bard)'이고, '두번째 달 Irish trad Project'로서 아일랜드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하는 들려주는 밴드였습니다. 바드의 음악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들의 음반은 소량 생산되어 그들의 공연에서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동선은 그들의 공연과 어긋나서, '두번째 달의 또 다른 반쪽'의 고연도 음원도 접할 기회가 없었죠. 저와 바드는 인연이 아니라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2010년 5월 드디어 바드의 첫 앨범 '바드'가 정식발매되었습니다.
첫 곡 '아침이 오면'은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표방하는 밴드답게 아이리쉬 휘슬이 청명함으로 시작하는 곡입니다. 아이리쉬 휘슬은 싱그러운 아침을 느낌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흥겨운 멜로디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아침의 공기를 그려나갑니다.
'Bird Song'은 우리나라의 단소와 비슷한 음색이 매력적인 아이리쉬 플룻으로 시작하는 곡입니다. 사연이 담긴 듯한, 도입부의 아이리쉬 플룻의 연주는 우리민족의 정서와도 닿아있습니다. 하지만 도입부를 지나면 곡은 흥겨워집니다. 일찍 일어난 새 한 마리가 공중을 배회하다가 뒤늦에 일어난 온갖 새들과 어우러져 벌어지는 잔치를 표현하고 있을까요?
두 곡의 연주곡이 지나가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 '듣고 있을까'가 이어집니다. '루빈(Ruvin)'으로 더 잘 알려진 멤버 '김정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듣고 있을까?'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길 위에 자란 숲'은 이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트랙으로 홍일점 '박혜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곡입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목소리도 역시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방랑자들의 노래와 선율에 맞추어 길위에 펼쳐지는 눈물과 웃음, 그리움의 이야기숲이 자라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어지는 곡들, 'London Lasses'와 'Donny Brook Fair'는 아일랜드 전통음악들입니다. '런던 아가씨들'을 의미하는 'London Lasses'는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농촌총각의 눈에 그려지는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도시처녀들을 그리내고 있을 법합니다. 'Donny Brook Fair'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Donny brook이라는 거리에서 열리는 축제의 이름이며, 아일랜드 정통 춤곡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축제를 가득 채운 춤사위처럼, 흥겨운 곡입니다. 바드의 자작곡 '맛있는 아일랜드'는 역시 흥겨운 연주곡입니다. 맥주가 맛있는 아일랜드의 펍(pub)에서 펼쳐지는 신나는 파티같은 느낌입니다.
'목소리'는 다시 루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곡입니다. 하지만 노래 속의 목소리는 화자의 목소리가 아닌, 화자를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세박자에서 마지막 박자를 지긋히 누르는 루빈의 노래와 바람과 파도가 들어가는 가사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구령에 맞추어 노를 젓는 선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렇기에 육지에 있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선원들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She moved through the fair'는 아일랜드 민요로 느릿느릿하면서 주술이 깃들었을 법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어지는 두 곡 'Ships are sailing'과 'Toss the feather'는 흥겨운 아일랜드 전통 춤곡들입니다.
마지막 트랙 '꿈꾸는 섬 Eire'입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지만 아이리쉬 휘슬이 울려퍼지면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펼쳐집니다. 바로 '두번째 달'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이는 '서쪽하늘에'의 멜로디입니다. '서쪽하늘에'의 작곡자가 바로 바드에 참여한 박혜리이기에 가능했나봅니다.(두번째 달의 멤버 박진우가 Alice in Neverland에 참여하였기에 '얼음연못'이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일처럼요.) 하지만 장엄하고 화려한 '서쪽하늘에'와는 다르게 아이리쉬 휘슬이 들려주는 멜로디는 단촐하면서도 쓸쓸해한 느낌입니다. 민속음악을 지향하는 '바드(Bard)스러워졌다'고 할까요? 두번째 달에서 갈라져나온 두 밴드가 두번째 달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점이 기쁘면서도 '온전한 두번째 달'로 만날 수 없는 점은 아쉽기만 합니다.
오랜 기다름 끝에 발매된 바드의 첫 번째 앨범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전통악기 소리들이 들려주는 연주는 왠지 친근감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민족의 역사처럼 오랜 시간동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아일랜드인들이기에, 그들의 전통음악이 들려주는 그리움과 흥겨움의 정서가 우리의 '한'과 '흥'을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앨범에 자작곡이 비중이 적다는 점입니다. 처음 듣는 청자에게는 수록된 아일랜드 전통음악들의 각 곡이 서로 다른 인상을 주기 어렵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집니다. 꾸준한 활동으로 좋은 공연들과 더 좋은 음반들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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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zziquai project - Zbam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두 번째 앨범이자, 첫 번째 리믹스(Remix) 앨범인 'Zbam'.
MP3나 온라인 스트리밍이 CD를 대신하기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음반 판매량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지만, 장르적인 면에서는 '음악 불모지'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에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는 'Instant Pig'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클래지콰이'의 또 다른 성과는 바로 '리믹스 앨범'에 있습니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리믹스 음악은 리페키지 앨범에서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는 정도로, 그저 오리지널 음원의 부수적인 산물로서, '덤'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리믹스 트랙'들만을 담아 '리믹스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클래지콰이(의 DJ클래지)'는 달랐습니다. 전작 'Instant Pig'에 리믹스 트랙이 수록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리믹스 앨범
'Zbam'을 정규 앨범 리패키지(repackage)의 보너스 CD가 아닌, 독립적인 앨범으로 발매한 것입니다. 이후 정규 앨범 한 장에 리믹스앨범 한 장을 발매하는 공식(?)은 세 번째 정규 앨범까지 지속됩니다. (네 번째 정규 앨범은 발매되었고, 아마도 지속되겠지요.) 'Instant Pig'가 일렉트로니카/라운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남녀 보컬을 비롯하여 팝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여 많이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다면, 'Zbam'은 그 짙은 팝적 요소에 아쉬워했을 매니아들을 위해 말랑말랑함을 최소화하고 댄서블함과 일렉트로니카 본연에 좀 더 충실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Oh Yes(Drum Bon Remix)'는 1집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정식 데뷔 전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곡으로 각종 샘플링이 1집을 통해 익숙한 트랙입니다. 'Futuristic(House Remix)'은 원곡도 댄서블한 트랙이었지만 날카로운 느낌이었다면, 리믹스를 통해 한층더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Come to Me(Mellotron Remix)'는 영어제목 그대로 '내게로 와'의 미래적이고 우주적인 사운드 외에 변화는 없습니다. 'She Loves You'는 크리스티나가 보컬을 담당한 신곡으로 가사의 시작이 동요같은 느낌입니다. 'Stepping Out(Step Remix)'는 제목 그대로 원곡에 비해 스텝을 밝듯이 강한 비트로 무장하고 돌아온 트랙입니다. 'You never know(Soft Remix)'는 원곡과 비교했을 때, 오리혀 부드러운 어쿠스틱 음악의 느낌이 강해진, 기존까지 알고 있던 '리믹스(보통 전자음이 강화되고 댄서블해지는)'와는 거리가 있게 리믹스된 트랙입니다.
'Snatcher'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세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랙들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Snatcher'는 신곡으로 Rap까지 들려주는 '호란'의 기교가 재밌는 트랙입니다. 호란의 보컬과 Rap이 교차되고 블링블링한 전자음이 어우러져 중독성을 만들어냅니다. 'Coming at Me to Disco(Rocking Mix)'는 모 컴필레이션을 통해 공개되었던 곡을 리믹스한 트랙으로 믹스 제목 그대로 Rocking한 사운드가 감질맛나고, 이를 통해 클래지콰이의 새로운 면모를 들려줍니다. 'After Love(Female Version)'은 전작에서 '알렉스'가 불렀던 곡을 호란이 새롭게 부른 트랙입니다. 호란의 보컬로서의 탁월한 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고, 이후 'Ibadi'로 어쿠스틱 밴드를 시작하는 그녀의 욕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Skyscraper'은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 탁월한 보컬들에 가려져 '클래지콰이'의 실질적인 주체임에도 대중의 주목에서 벗어나있는 DJ클래지의 울분을 풀어주는 트랙이라고 생각됩니다.
리믹스 앨범을 별개로 발매한 점은 클래지콰이의 '대담'이라고 한다면, 리믹스 앨범이지만 전작의 리믹스 트랙들만 수록하지 않고 신곡들(몇곡은 이전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곡들도 있지만, 대중에게는 처음인)을 절반 가량 수록하여 리믹스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도 관심도를 높인 점은 클래지콰이의 '전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꾸준히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여, '리믹스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리믹스 앨범을 정착시키는 점은 'Instant Pig'가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점과 더불어 클래지콰이가 음반시장에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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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zziquai project - Instant Pig
'경향신문'과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었던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데뷔앨범 'Instant Pig'.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봉할 만하지는 않지만, 100장의 앨범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라는 점은 큰 상징을 갖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일렉트로니카 역사가 짧다는 반증이 되지만, 그 극히 짧은 역사 속에서 100대 명반에 뽑힐 만큼 잘 만들어진 음반이라는 것이죠. 더구나 일렉트로니카 쪽에는 상당히 짠, 철지난 음악들을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은 나름대로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이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기에 그 매력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이 음반의 성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으로 '러브홀릭'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음악성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레이블 '플럭서스뮤직'의 대표 밴드가 된 점에서도 이 음반의 또 다른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식상했던 대중가요에 젖어있는 청자를 비웃기라도 하는 제목의 'You Never Know'를 시작으로 클래지콰이의 음악 세계가 시작됩니다. 가사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자 세 번째 트랙의 제목인 'Futuristic'을 외치는 것은 의도적인 장치였을까요? '내게로 와'는 호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Futuristic'은 음반 녹음에만 참여하는 또 다른 여성 보컬이나 남성 보컬 알렉스의 친누나인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영화에서 샘플링했다고 생각되는 인상적인 대사로 시작되는 'After Love'는 일렉트로니카와 접목된 클래지콰이식 발라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여유로운 일상을 노래하는 'Novabossa'는 제목처럼 보사노바풍의 트랙이고,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있는 'Sweety'가 이어집니다.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과 사랑스러운 가사는 제목처럼 달콤한 라운지를 만들어냅니다.
다시 크리스티나의 보컬과 그루브한 리듬이 어우러진 'Stepping out'에 이어지는 'Tattoo'는 제목처럼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기교가 상당한 호란의 기교를 절재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이 앨범 수록곡의 절반 이상의 곡에서 단독 혹은 공동 작사로 참여한(이 곡에서는 단독 작사) 호란의 작사 실력 또한 빛이 납니다.
스타일리쉬한 보컬과 트랜스의 느낌도 가미되어있는 'I will never cry'는 클럽 음악과 대중음악의 묘한 경계선 위를 지나고 '세련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한 축을 들려줍니다. 위태위태한 두 보컬의 '스타일'은 1집 수록곡들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되구요. 'Gentle Rain'은 말이 필요없는, DJ클래지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트랙입니다. 혹시 원곡이 외국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며 어쿠스틱으로 연주되는 멜로디와 수려한 보컬 듀엣,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가사는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또 다른 축인 '신선함'을 대표합니다.
'After Love'의 Extra Remix를 지나 'Flower'는 제법 무거운 비트와 어우러진 알렉스의 보컬의 보컬과 호란의 코러스가 빛나는 클래지콰이식 발라드의 연장선에 있는 트랙입니다. 두 여성 보컬의 매력을 각각 다시 한 번씩 느낄 수 있는 'Play Girl'과 'My Life'가 이어지고, 마지막은 보너스 트랙인 'Cat Bossa'가 담당합니다. 크리스티나의 보컬에서 앞선 트랙들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의외의 천진함을 들을 수 있고, 이는 고양이이 귀여운 소망이 담겨있는 가사와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Gentle Rain'에 이어 DJ클래지의 센스가 다시 빛나는 트랙입니다.
한 곡 한 곡의 완성도 뿐만아니라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잘 녹아들어서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세련됨'과 '신선함'을 적절히 배합하여 완성된 'Instant Pig'는 제목처럼 짧은 순간 즐기고 잊혀질 앨범이 아닌 오래 즐길 만한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클래지콰이'을 단숨에 대한민국 대표 일렉트로니카 밴드로 격상시켰구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니카와 라운지의 조용한 반란, 그 선봉는 클래지콰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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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두 번째, 방'이 발표되었습니다. 파스텔뮤직으로서는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이미 '요조 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로서 시도해본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하고 할 수 있겠네요. 요조의 경우 앨범 발매 전부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공연을 함께하는 전략으로 입소문을 늘려가다면, 심규선의 경우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에 참여 후 함께 심규선의 이름을 걸고 연작 싱글을 발표하고 있으니,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첫 번째, 방'이었으니, 두 번째는 거실, 부엌, 욕실(?) 등등 중에서 나올줄 알았는데 두 번째도 '방'이라니 허를 찌르고 말았습니다. 혹시 대저택에 살아서 방이 여러개인 건가요? 자는 방, 옷방, 공부방, 놀이방 등등...?
지난 싱글 수록곡 '고양이왈츠'가 방처럼 따뜻한 '왈츠'였다면, 이번 싱글 수록곡 '부디'는 '방'이라는 공간의 다분히 개인적인 느낌처럼 슬픈 '발라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오케스트라, 기타 솔로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소리들은 에피톤 프로젝트답습니다. 지난 싱글에서 꼭꼭 숨어있던 에피톤 프로젝트가 그의 진짜 모습을 활짝 드러냈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심규선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에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객원보컬들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다분히 절재된 감정을 보여주었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들과는 다르게, 심규선의 이름을 달고 나온 '부디'에서는 감정의 기복을 확연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부디(feat. 심규선)'이 아닌,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이 될 수 있겠지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발라드이면서도 심규선의 또 다른 매력도 담겨있는 곡이 바로 '부디'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감탄사(오~)를 지나치게 남용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없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3연작의 마지막 '세번째, 방'도 기대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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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앵콜요청금지'를 비롯한 청승맞은 가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브로콜리 너마저'의 두 번째 정규앨범 '졸업'이 발매되었습니다.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가 발매된 후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는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목소리로 '브로콜리 너마저표 노래'의 '얼굴마담'이라고 할 수 있었던 메인보컬 계피가 탈퇴했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고 하는데, 그 후 그녀는 '우쿨렐레 피크닉'과 '가을방학'을 통해 꾸준한 음악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소속사와 결별하고 자체 레이블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설립했다는 점입니다. 2008년 '보편적인 노래' 발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해체에 대한 우려까지 들 정도였지만, 2009년 두 장의 데모를 발표하고 건재를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으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자정을 갓넘긴 이른 새벽 시간인 '열두시 반'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마지막 트랙의 제목이 '다섯시 반'인 점을 보면 이 앨범은 새벽의 약 5시간 동안 벌어지는 짧고도 긴 이야기가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습은 우리들의 쉽지않은 일상의 이야기이면서, 또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도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한, 길을 잃고 지쳐버린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계피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류지'는 계피보다 더 불안하지만, 새벽 열두시 반에 지친 목소리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타의 몽환적인 연주도 피곤하고 몽롱한 기분을 그려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이라는 긴 제목의 두 번째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변화를 알리는 서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메인보컬로 자리잡은 '덕원'의 목소리와 모던락의 성향이 그렇습니다. 뼈에 사무칠 듯한 외로움을 노래하는 가사는, 현실의 험난함과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한 점에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떠오르게 합니다.
'변두리 소년, 소녀'는 그런 변화들을 이어가는 트랙입니다. 시골의 소년, 소녀 혹은 소외된 소년, 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혹은 어느 글에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소설 속세엇 다 들을 수 없었던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에서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이미 수 차례의 공연과 데모로 공개되어 주목받았던 트랙입니다. 제목이 독특한데, 리더 덕원을 비롯한 멤버들의 대학교 강의의 제목이라네요. 제목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소통의 불일치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컬의 아쉬움이 두드려집니다. 메인보컬이지만 안정적이지는 못했던 계피의 탈퇴 후, 더욱 불안해진 보컬은 브로컬리 너마저의 최대 약점이었습니다. 이 곡의 라이브에서 덕원의 보컬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보컬을 필요하는 곡들을 쓰는 밴드가 아니기에 들을 만했죠. 하지만 녹음된 결과물에서 덕원의 보컬은 잘 부르려는 흔적이 오히려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요? 잘 부르려는 노력은 좋지만, 오히려 어색하고, 목소리의 흐름은 '오토튠' 사용의 의혹까지 강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다른 트랙들과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의 흐름, 목소리의 변두리를 가공한 느낌은 상당히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울지마'와 '마음의 문제'는 앞선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에 이어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던락 넘버들입니다. '이젠 안녕'은 데모로 공개되었던 트랙으로, 밴드를 떠난 누군가를 향해 들려주는 이야같은 느낌이 듭니다. '할머니'는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장수에 대한 욕심을 엄살스럽게 표현하는 모습과 덕원의 '할머니 성대모사'가 재미있는 트랙입니다.
'환절기'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사운드의 트랙입니다. 멤버들이 함께부른 보컬은 낮게 가라앉습니다. 수록곡들의 연주가 전체적으로 가벼운 모던락이나 팝락 분위기인데 반해, 이 곡의 무거운 연주는 좀 더 하드한 락들에 가깝습니다. 계절에 변화에 따른 사랑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런 계절의 변화를 좀 더 다른 의미로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나눈 계절, 그 계절과 계절 사이, 경계와 경계 사이 존재하는 또 다른 시간 환절기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 이념과 이념들...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를 노래하는 이 곡에서 어쩐지 'W'의 '경계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선 '환절기'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환절기'로 표현했다면, '졸업'은 그 경계의 끝을 '졸업'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환절기가 대학시절 정도라면 그 모호한 경계의 끝은 '대학교 졸업'이라고 할까요? '미친 세상에'라고 노래하듯, '짝짓기'나 '팔려가는'같은 살냄내새 나는 단어들의 선택은 현실에 냉소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 모습은 어른이 되었지만, 조금은 더 순순했던 시절을 잊지말자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졸업', 이 밴드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곡이라 의심이 들어서 조금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015B의 명곡 '이젠 안녕'을 염두하여 쓴 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 트랙은 수미상관을 이루는 '다섯시 반'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앞둔 청년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어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약 5시간 동안에 스쳐가는 짧지만 긴 이야기들,그런 지난 세상의 아픔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는 청춘을 위해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눈을 떠보면 찾아와 있을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용기가 됩니다. (CD에서 들을 수 있는 히든 트랙은 '다섯시 반'의 에필로그와 같은 트랙입니다. 라이브의 느낌이 졸업식의 마지막 합창 같습니다.)
EP '앵콜요청금지'와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에서 '청승맞은 가요'로 듣는이의 공감을 얻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가요보다는 모던락 성향이 강한 트랙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작의 앨범 제목과도 같은 수록곡 '보편적인 노래'에서부터 감지되었던 변화는 이번 앨범에서 뚜렷해집니다.(어쩌면 계피와의 결별을 염두해두었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기존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새로운 '브로콜리 너마저'를 만나게 됩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다운 재치와 감수성은 여전히 가사에 녹아있지만, 새로운 사운드와 불안한 보컬은 아쉽기만 합니다.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경계선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일까요? 아니면 '브로콜리 너마저표 음악'의 마지막이 될까요? 별점은 3.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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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 유년에게
감성 모던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네 번째 정규앨범 '유년에게'.
사실 '파스텔뮤직' 합류 이전의 재주소년은 저에게 관심 밖이었습니다. '재주소년?, 재주를 넘는 소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성보컬을 편애하고 해외보다 국내 남성보컬은 더더욱 관심이 없는 제 음악적 취향에서 '소년(국내 남성보컬)'은 당연히 가까워질 수 없었죠. 하지만 '스위트피(김민규)'와 함께 파스텔뮤직으로 영입되고, 컴필레이션 앨범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주소년'의 음악을 엿볼 수 있게 되었죠. 신곡 '농구공'과 요조가 다시 부른 '귤', 두 곡을 통해서 재주소년에 대한 다시 보게 되었죠. 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 느껴지는 '농구공'에서는 이승환의 '덩크슛'이 생각나기도 했고, 요조가 재주소년과 함께 다시 부른 '귤'에서도 새콤달콤한 귤처럼 상큼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노래로 풀어나가는 재주소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정규앨범이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은 '박경환'과 '유상봉', 남성 이인조의 모던 포크 듀오입니다.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이 밴드가 처음 '문라이즈레코드'로 데모 테잎을 보냈을 당시 제주도에 있었는데 제주도 소년을 의미하는 '제주소년'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름을 짖기는 민망해서 살짝 바꾸어 '재주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재주소년이 들려주는 유년에 대한 오마쥬, '유년에게'가 시작됩니다.
첫 곡 '밤새 달리다'는 오래된 카세트 테잎을 듣는 기분이 독특한 인트로로 시작됩니다. 가사는 상당히 자전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느낌의 가사입니다. 두 사람이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고 해야겠네요. '밤새 고속도로를 달린다'라고 상쾌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조금 비틀어 보면 두 남자가 '밤새 술로 달린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까요? 술로 밤을 지새우며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가 펼쳐질 지도 모르죠. 어떻게 달리든, 밤새 달려온 그 끝에서 유년에 대한 향수가 펼쳐집니다.
'소년의 고향'은 그 유년에 대한 향수를 시작하는 트랙입니다. 제목 그대로 고향에 대해 노래하고 있고 이 밴드의 이름의 유래가 된 '제주'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경환이 시작한 제주 이야기는 시작되는 노래는 왠지 구수한 느낌의 상봉이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로 잠시 눈을 돌립니다. 다분히 회상적인 앨범의 분위기에 이 곡도 일조하면서 두 멤버의 출신에 대해 엿볼 수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하며 제주도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가사는 마치 제주도 관광을 홍보하는 CM송처럼 들립니다. 제주도 관광 공사는 재주소년을 섭회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요?
'미운 열두살'은 경쾌한 멜로디와 재밌는 가사가 절로 미소를 만드는 트랙입니다. 열두살 여동생의 이야기를 오빠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가사는 여동생을 둔 오빠라면 한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합니다. 천방지축 여동생이지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가사는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재주소년 음악의 매력이 담겨있습니다. 째즈풍의 분위기있는 연주와 흥겨운 가사의 묘한 어울림은 이 곡의 매력을 더합니다.
앨범 제목과 동일한 '유년에게'는 유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밤새 달리다'에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곡에서는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평온한 수면 위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져갑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농구공'은 90년 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히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필자나 재주소년의 두 멤버와 같이 20대 후반의 남자라면 겪였을 이야기들이 담겨있죠. '패닉'의 '달팽이'를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농구'라는 소재난 슬픈 사랑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는 가요와는 다르게 밝은 가사는 '이승환'의 '덩크슛'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농구라는 소재는 90년대를 한국 소년 만화계를 휩쓸었던 '슬램덩크'의 향기도 담겨있습니다. 가수와 만화가가 되겠다는 두 친구도 바로 90년 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만화'와 '가요'에 대한 그리움을 슬며시 드러내구요. 간결한 기타리프는 코트 위를 가르는 드리블 소리와 겹쳐집니다. 바로 '이것이 웰메이드 가요'라고 불러도 될 만큼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동안'은 성장기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트랙입니다. 출생(소년의 고향)을 시작으로 유년기(유년에게)와 소년기(미운 열두살)를 지나 청소년기(농구공)를 거친 화자는 사춘기의 마지막을 지납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함께 가슴아픈 풋사랑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아려한 그리움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남성 듀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서정성을 바로 재주소년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파스텔뮤직에서는 남성 뮤지션과 여성 뮤지션의 코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손잡고 허밍'도 그런 정책(?)에 따라 '요조'와 함께하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노래이기에 풋풋한 연애감정에 슬며시 미소짓게 만듭니다. '봄이 오는 동안'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드디어 봄이 와서 '혼잡고 허밍'을 하나봅니다. 따뜻한 봄날의 밤에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연인과 함께라면 꼭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Beck'은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믹싱의 연주곡입니다. 제목처럼 뮤지션 'Beck'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네요.
'비밀의 방'은 몽환적인 소리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꿈 속에서 들여오는 듯한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비밀의 방'이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의 제목과 의미심장한 가사는 11월 27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는 밴드의 미래와 맞물려서 곱씹어 보게 합니다.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숨겨진 바다', '머나먼 바다'는 이 밴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를 연상시킵니다. '지쳐있는 내가'는 재주소년으로 서 지금까지 온 두 멤버가, '잠시 지켜만 볼게'는 재주소년의 기약 없는 휴식이 대응됩니다. '비밀의 방',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지금껏 미뤄온 각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겠죠. 의미를 생각하면 다분히 쓸쓸합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런 쓸쓸함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주소년의 끝을 안타까워하는 청자의 마음이 그런 쓸쓸함으로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쓸쓸함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비밀의 방', 이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꼽고 싶습니다.
'머물러줘'와 '솔직, 담백'은 모던 포크 듀오답게 포크에 충실한 트랙들입니다. 연인에게 속삭이듯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들이 떠오르네요. 마지막 '춤추는 대구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락킹한 트랙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인 대구에서, 뜨거운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는 뜨거웠던 시절에 대한 노래이구요.
'유년에게', 유년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2002년에 시작된 '재주소년'의 긴 여정,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년적 감수성'의 기록도 여기까지이구요.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에게 건투를 빕니다. 앞으로 각자 소년적 감수성을 들려주기를, 그리고 잊을 만하면 가끔 다시 재주소년으로 찾아와 주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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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왈츠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신예 뮤지션 '심규선'의 첫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에 객원보컬로 참여해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파스텔뮤직의 신인 '심규선'이 그녀의 첫 싱글 '첫번째,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심규선이라는 이름은 아직 귀에 익지 않은데, 그녀의 약력을 살펴보면, 밴드 '러브홀릭'이 보컬 '지선'의 탈퇴 이후 새 멤버 영입을 위해 연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뮤지컬 '마법사들'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러브홀릭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이기에 1위를 하고도 멤버로 영입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에피톤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녀와 저는 이렇게 음악으로 만나는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앨범 '유실물 보관소'에서 '선인장'과 '오늘', 두 곡으로 절제된 감성과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멋진 조합을 보여주었죠. 앨범 제목은 '첫번째, 방'이지 수록곡은 '고양이왈츠'뿐인(물론 어쿠스틱 버전이 따로 있지만) 이번 싱글에서도 탁월한 조합을 이어갑니다. 바로 크레딧을 보면 작사/작곡 및 프로듀싱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양이왈츠'는 제목처럼 왈츠의 느낌을 살린 세 박자의 곡입니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고양이의 걸음처럼, 왈츠의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스타카토의 키보드 연주는 그 사뿐함을 더하고, 퍼커션과 아코디언은 마치 놀이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아코디언의 음색은 언제나 아련한 어린시절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실물 보관소'의 두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사랑에 대한 수줍음과 설렘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역시 매력적이구요.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더욱 담백한 느낌의 그녀를 들을 수있습니다. 단촐한 기타 연주는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씨라면, 은은히 흐르는 현악은 수줍은 그녀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기타와 현악의 조합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모습도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왈츠의 세 박자에 아코디언 연주와 고양이까지, 모두 '봄'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들인데 이 싸늘한 가을에 발표된 점은 의외입니다. 의도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싱글 제목인 '방'에 있을 법하네요. 방의 아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겠죠. '첫 번째'는 이 싱글의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싱글 시리즈의 첫 번째를 의미하겠구요. 센티멘탈 시너리와 타루의 조합에 이어, 심규선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가 되네요. 더불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심규선의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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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잔혹한 여행
가끔 공연하기로 유명했던(악명 높았던?), 그래서 단독 공연이 열리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푸른새벽'의 해체 이후, 듀오 때와는 전혀 다르게도 꾸준한 솔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한희정'이 새로운 EP '잔혹한 여행'을 '어느 가을'날에 발표했습니다. 2008년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2009년 EP '끈'에 이어 올해 2010년 EP '잔혹한 여행'까지 3년 연속으로 앨범을 한 장씩 발표하는 기대이상의 왕성한 모습은 팬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지난 EP '끈'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여행'도 어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법합니다. '끈'이 '인연의 끈'에 대하 노래했다면 심각한 느낌의 제목 '잔혹한 여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자, '가이드 한희정'의 안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해 봅시다.
첫 곡은 '어느 가을'입니다. 이 EP가 발매된 '어느 가을'을 의미하면서도 이 EP 속 이야기의 시점인 '어느 가을'을 알려주는 제목입니다. 어느 가을날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덕수궁 돌담길 아래서 예정된 이별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의 발거음처럼 쓸쓸합니다. 길게 '서있다', '불었다'라고 쓸쓸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리의 낙엽들도 날려버릴 만큼 쓸쓸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시작됩니다.
앞선 곡에서 기대한 쓸쓸함을 날려버리듯, 이어지는 '입맞춤, 입술의 춤'은 매우 경쾌하게 흘러가는 트랙입니다. 입맞춤을 입술의 춤으로 의인화한 그녀의 기지가 재밌습니다. 간주에서 들리는 그녀의 애드립은, 이전의 그녀의 곡들과는 다르게 키치적으로 들려오네요.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는, 두 사람의 시공간이 포개어지면서 만들어진 그 '춤'이 얼마나 격렬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춤의 현장은 과거형으로 그려지고 있어 회상의 일부분임을 암시합니다. 또, 포개어진 시공간이 다시 나뉘어지듯, 이 순간도 언젠가 나뉘어지고 우리들의 내일도 다시 흩어질 것이라는 담담하면서도 슬픈 예감이 동반됩니다. 그 짧은 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그 춤을 다시 출 수 없음을 예감하게 하네요. 참으로 역설적인 곡이 아닐까 하네요.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그녀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앨범 발매 기대곡'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에서보다 부드럽고 가볍게 '순화하여'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좀 아쉽습니다. 나쁜 여자가 되어 이별을 일방적인 통보하는 듯한 느낌의 이 곡은 더 무겁고 거친 느낌이 나게 녹음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반추' 역시 공연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트랙입니다. 상당히 잔잔한 곡이기에 앞선 곡과는 다르게 비슷한 느낌으로 녹음된 것으로 들리네요. 심오한 가사는 이별을 불러오는 오해에 대한 가사처럼 들리기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카더라 통신'에 대한 풍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은 6박자로 절제와 격렬함을 모두 갖춘 무도곡 같은 트랙입니다. '입맞춤, 입술의 춤'처럼 '한희정식 비유법(?)'이 다시 느껴지는 제목으로, 사랑을 여행, 특히 '잔혹한 여행'에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 여행같던 사람이기에 여행처럼 시작되어 또 여행처럼 떠날 수 밖에 없고, 모든 여행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이별)에 가까워지기에 사랑은 잔혹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됩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무도곡 중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절망을 향해 내딛는 무도곡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녀의 데뷔앨범 '너의 다큐멘트'에 실리기도 했던 트랙인데 EP에서는 Band version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풍성한 밴드 연주와 어우러진 맑은 피아노 연주는 이 곡에 풍부한 소리의 질감을 더합니다. 공연으로 듣다가 막상 음반으로 들으면 언제나 뭔가 빠진 느낌처럼 허전했던 원곡과는 다르게, 전신을 감싸는 느낌의 풍부함이 좋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트랙은 놀랍게도(!)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언제나 기타와 함께하는 그녀의 앨범에 피아노 연주곡이라니 의외이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연착'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과의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연착은 과연 어떤 연착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는 시작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기에 그 여행 사이에 연착은 아닐까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공항에서 사랑이라는 비행기이 뜨고 내리면서 생기는 연착...사랑과 사랑사이,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텅빈 공항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의 '가이드 한희정'이 안내하는 '잔혹한 여행' 패키지를 마치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어떠셨는지요? 지난 EP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는 더욱 좋아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러브레터'와 같이 짠하게 마음을 적시는 트랙이 없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네요. 이번 EP로 그녀의 셋리스트 선택폭은 더욱 넓어졌을테니, 그녀의 공연들도 기대해봅니다. 내년에는 2집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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