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유감과 유토피아

'평창유감', 하나로 좌파와 전교조의 오랜 노력이 모두 물거품...

그들은 오랜 시간 '민족', '통일' 타령을 주입시키며 노력해왔다.

하지만 반도 남쪽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이란 모호한 개념은 반도의 북쪽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아니라, 반도 남쪽의 대한민국 국민과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으로 이민간 한국 출신 외국인 정도일 뿐이다. 세계에서 최빈국에 가까운 북한은 오히려 짜증나는 이웃 국가이자, 군대에 끌려가서 2~3년 뺑이치게 만드는 빌어먹을 주적일 뿐이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뿌리 깊은 '인지부조화'로 인해, '반일'을 통해 배운 '일본'과 작년 한국인 600만명이 방문했다는 '일본'은 거의 다른 나라이다. 책으로 배운 '일본'과 현실 생활 속 '일본'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책 속의 일본은 밉지만 현실의 일본은 너무나 부럽고 너무나 좋은 이웃 나라이다. 통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높은 세금 등 크나큰 경제적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통일을 바라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제가 먼 훗날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현실에서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이 바라는 통일은, 북한 내부 쿠데타로 인한 자체 붕괴 후 무혈 입성이나, 미국/연합군의 일방적인 폭격 후 북한의 무조건 항복일 것이다.

주사파들의 유토피아(Utopia)...

그 의미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다.

2018/02/08 08:18 2018/02/08 08:18

지옥으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요즘에 더더욱 와닿는 명언이다.

...

외식을 많이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직접 식자재를 구입하는 식자재 가격도 만만치 않게 높은 점이 크지 않을까 한다. 애를 키우는 집에서 장을 보고, 손질해서 요리하고, 설거지 등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주말에 한두 끼 정도는 나가먹는 일이 편할 때도 있다. 어른 둘 세살짜리 아이 한 명이서 한끼 2만원 정도면, 이제 '선방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저녁 식사로 집 근처 가성비가 괜찮은 돈까스 전문점에 갔다. 이미 몇 번 갔던 음식점이고 평소에도 잘 되는 집인 줄은 알았지만, 30분 정도 대기 해야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집 근처고 다른 곳 가기도 뭐 해서 기다렸다 먹었는데, 메뉴판을 보니 최저임금 인상에도 가격은 그대로였다.

주방에서는 보이는 인원만 6명이 바쁘게 요리하고 있었고, 홀에서도 서빙 및 안내를 위해 움직이는 5명은 정신 없어보였다. 설거지 등을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몇 명이 더 있을 수도 있겠다. 동네 음식점들을 자주 다니지만, 이렇게나 기다려서 먹고 이렇게나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은 처음이다. 이렇게나 잘 되어가는 덕분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인력 조정으로 버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자재 가격 자체가 낮지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결국 영세 자영업자을 벼랑으로 몰고,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대형 음식점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작은 식당들은 이미 '맛집'으로 자리 잡은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최저 임금 상승의 여파로(인건비 상승이나 식자재 가격 상승)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어들 수 밖에 없겠다. 맛도 평균 이상은 하는 큰 식당들이 가격을 안올리고 버티기에 들어들어가버리면, 가격을 올려버린 작은 식당들은 절대적인 가격으로 커녕 '가성비'로도 극복하기 쉬워보이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몇 년 안된 비교적 최신식 아파트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경비 인력이 적인 편이라서, 최저임금 인상을 인력 감원 없이 근무 시간 조정으로 넘어간 것으로 안다. 하지만 무인 경비와 자동화가 덜 된 오래된 아파트들의 경우 대규모 경비원 해고의 소식이 들린다.

경비원 아버지도,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도, 편의점/PC방 등에서 일하던 자녀도 모두 해고당한 다음, 생활고를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느 일가족의 이야기가 조만간 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요즘이다.
2018/01/09 16:18 2018/01/09 16:18

존 스칼지 - 노인의 전쟁 / 유령여단 / 마지막 행성 / 조이 이야기

느리지만 꾸준히 SF 장르를 일고 있고, '스타쉽 트루퍼스'와 '영원한 전쟁' 이후로는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에 빠져서,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알게 되었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국내에 번역된 '노인의 전쟁'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시리즈 모두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상태로, 앞으로 작가가 2편 정도는 더 쓴다고 한다.

"삼가 고인의 무운을 빕니다."

이 시리즈의 첫 권 '노인의 전쟁'의 서문을 이렇게 썼으면 어땠을까? 노인과 전쟁의 조합이라니, 뭔가 은유나 비유적인 제목이 아닐까 했는데, 그야말로 직설적이고 이 시리즈의 주요 소재를 담고 있는 제목이었다.

1편 '노인의 전쟁'은 '스타쉽 트루퍼스'에 뿌리를 둔 인류의 우주 진출과 외계인의 전쟁을 바탕으로, 신선한 상상력을 첨가하여 21세기에 맞게 업그레이드 된 재미를 보여준다. '의식 전이'는 고도의 기술을 이용하여 '스타쉽 트루퍼스'+'아바타' 정도의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아마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 소설에서 일부 힌트를 얻었으리라. 주인공 '노년병 존 페리'가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우주 해병대의 무용담'이라고 할 수 있다.

2편 '유령 여단'은 1편과 마찬가지로 작품 속 '개척 방위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달라서 1편의 조연이었던 '제인 세이건'과 그녀가 소속된 '유령 여단'의 쓸쓸한 무용담이 펼쳐진다. 노인의 전쟁 연대기의 이야기지만 '노인'이라는 제목은 쓸 수 없는 특수 부대의 이야기다. 1편에서도 그랬지만 이 2편에서는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 느껴진다. 인간 복제와 관련된 생명 윤리에 대한 SF적인 대답이라고 할까?

3편과 '마지막 행성'과 외전 '조이 이야기'는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그린 이야기들이다. '마지막 행성'은 1편의 '존 페리'와 2편의 '제인 세이건'이 제대 후 가족을 이루고 양녀로 받아들인 '조이'가 주인공으로. 앞선 두 편이 '밀리터리 SF'였다면, 3편은 개척민의 입장에서 펼쳐지는 낮선 행성에서의 생존기로 시작한다. 불시착인줄 만 알았던 '로아노크'의 도착은 거대한 '정치적 설계'에 의해 의도된 상황이었고, 전작들과 다른 재미를 보여준다. 지구, 개척연맹과 적대 종족들 외에도 '콘클라베'라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함으로서 '노인의 전쟁' 세계관의 확장이 시작된다.

'조이 이야기'는 두 남녀 주인공의 딸 '조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겹쳐서 초반에는 조금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3편에서 또렷하게 서술하지 않고 지나간 의문들이 이 외전에서 명확해 진다. 더불어 남자 작가가 쓴 '10대 소녀의 눈높이에서 쓴 성장 드라마'라서 3부작과는 또 다른 신선한 재미가 있다.

SF소설 불모지인 국내에 정식 번역 출판될 정도라면, 어느 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판권이 팔리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재미 부분에서는 큰 걱정을 안해도 되겠다.
2017/12/09 19:57 2017/12/09 19:57

쇼미더머니에 대한 단상

쇼미더머니6(Show Me the Money 6, SMTM6) 보다가 드는 잡생각.

1. CJ E&M의 뮤직 비즈니스.

아주 오래전 예상대로, 영화판은 CGV를 통한 제작/배급 수직 계열화로 독점적 위치에 올랐고, 음악에서도 음악전물 채널 및 스트리밍을 하는 Mnet으로 최고의 위치를 노렸는데, 유튜브의 강세로 삐걱거리는 모양세. 아이돌 기획사들과의 콜라보를 유지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에서는 마이너였던 '힙합/랩'의 대중화에도 어느 정도 공로가 있음.
초기에는 아이돌 3대 기획사, SM/YG/JYP와 콜라보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 그 연결고리가 매우 느슨해진 느낌. 가장 몸집이 컸던 SM이 이탈했고(최근에 자체 제작해서 스트리밍으로 배포하는 눈덩이 프로젝트만 봐도) YG도 위너/아이콘의 데뷔 과정을 마지막으로 상당히 소원해진듯. SM/YG는 이전부터 예능 제작 프로듀서들을 영입했다는 걸로 봐서는 이탈이 거의 확실. (제작은 따로 하지만 배포는 아직 Mnet 채널도 이용 중으로 확인됨)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JYP는 '식스틴'으로 탄생한 '트와이스'로 재미를 봤고, 그래서 프로듀스 101 시즌 1에 출연한 3대 기획사의 유일한 출전자 '전소미'로 마지막 의리를 지킨 듯. 시즌 2 YG케 이플러스는 흡수/합병한 자회사이므로 예외.

이렇게 3대장이 멀어지면서 다른 아이돌 기획사들과 협업했지만 큰 재미는 못본듯하고, 차라리 마이너인 힙합이 뜨면서 SMTM이 생명을 다해가는 음악전문채널의 마지막 동아줄로 보임. 그리고 그 동아줄을 잘 타서 큰 인물이, 이제는 SMTM의 절반이라고 할수 있는 두 레이블 '일리네어'와 'AOMG'. AOMG는 CJ가 지분을 갖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일리네어도 연결고리가 확실할 듯.

2. SMTM

프로그램의 수명이 끝에 가까워진듯. 우선 재미가 없다. 도전자들의 무게감도 지난 시즌보다 확 떨어지는 느낌. 지난 시즌에서 발굴한 아까운 재능들로 재탕하는 느낌. 지난 시즌의 실력만큼 건방진 씨잼이나, 수도승의 얼굴을 하고 목사 같은 설교랩을 하는 비와이 같은 임팩트가 없음.
이제는 힙합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타이거JK와 다듀, 지코까지 등장한 점은 시청자를 40대에서 10대까지 아우르려고 한 거 같은데 무리수. 2000년 이후 한국 힙합에서 언제나 탑3로 꼽을 만한 다듀와 도끼가 같이 등장하는 점도 이제 더 보여줄게 없겠다하는 생각이 들게함.
SMTM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네어 도끼와 AOMG 박재범을 같은 팀에 넣어버린 건 무슨 생각이었을지. 인기로 보나 최근의 커리어로 보면 우승하라고 한거 같은데 과연?

더 한다면 시즌7 정도도 할 수 있을거 같은데, 심사위원 격인 프로듀서팀 이런거보다는, 전 프로듀서/전 시즌 우승자 등등 제한 없이, 모두 계급장 때고 대국민 경연해서 한국 힙합씬의 킹왕짱을 가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한데...

3. 박재범

90년생 도끼야 아주 어린나이에 데뷔해서 일리네어 설립하고, 도끼는 몰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연결고리' 하나로 힙합씬의 거목이 되어버렸지만, 교포출신 박재범이 더 재미있는 케이스.
2PM의 리더였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탈퇴했는데, 원래 미국에서도 힙합을 했었고 크루도 있었다는데, 아무래도 자유분방과는 거리가 있는 아이돌 생활이 맞지 않았을 듯. 나와서 한동한 방송 못타다가, AOMG를 설립하고 화려하게 재기. 거의 유일하게 아이돌 그룹에서 불미스럽게 나와서 전혀 다른 장르로 대성한 케이스일듯. (현재 AOMG에 과거 크루의 멤버들도 다수 영입)

이미 검증된 댄스 실력과 더불어, 솔로 데뷔의 근간이 된 R&B과 중간 이상은 한다는 랩까지...힙합의 토털 패키지라고 할 만한 인재. 한국의 '크리스 브라운'이라고도 불림. 더구나 엄청난 하드워커, 워커홀릭...앨범도 음원도 꽤나 많고 15년에는 랩 앨범을 16년에는 R&B앨범을 발표한 점도 특이함. 2017년 올해도 이미 싱글 5장 발표했으니 해가 바뀌기 전에는 랩 앨범 하나 나오지 않을지.
2017/08/17 22:00 2017/08/17 22:00

뇌파로 움직이는 미래에 대한 잡다한 생각

'뇌파로 움직이는 자동차'(이하 '뇌파 자동차')의 실현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외국의 발명대회에서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이 뇌파로 움직이는 RC카를 구현해냈고, 자동차 업계도 뇌파로 조종하는 이동수단(vehicle)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이미 '자동차(automobile)'이라는 이름처럼 진짜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율 주행 자동차'가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완성 단계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관련 법규가 비미하고 교통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는 등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뇌파 자동차'는, 운전하는 방법이 손과 발을 이용한 '고전적 운전'이 아닌 뇌파 즉, '생각'을 이용하기에 그런 논란에서는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운전의 재미 측면에서도, 고전적 운전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수단으로 병행된다면, 일상의 운전 뿐만 아니라 'F1' 같은 레이싱 부문에서도 혁신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의사, 특히 재활의학과 의사의 입장에서도 '뇌파 자동차'는 꽤나 흥미로운 기술이다. 뇌파로 조종 가능한 휠체어나 보조 기구의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지기능을 비롯한 뇌의 전반적인 기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척수의 손상으로 사지 혹은 하지를 쓸 수 없는 환자에서 휠체어를 대신하거나 그 이상의 기능을 보여주는 보조 기구로서의 미래가 상당히 기대되는 부분이다. 뇌파 자동차와 더불어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엑소슈트'와의 결합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까지는 전동휠체어가 척수손상 환자들의 '발'을 대신하고 있고, 예전에 비해 크기는 줄어들었고 배터리 효율도 개선되었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들은 아직도 많다. 계단을 대신할 휠체어 램프가 없는 상황도 많고 가파른 경사가 있는 경우 휠체어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전동휠체어는 부피와 무게 때문에 장애인 전용 운송수단이 아니면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뇌파로 조종하는 엑소슈트'라면, 척수손상 환자들에게 새로운 다리를 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물론 내구성이나 모터의 강도, 그리고 배터리의 부피와 효율에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다. 조금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머지 않은 미래에 상당히 개선 될 것이다. 전동휠체어의 부피와 무게 수준에서 충분히 그것을 대체할 만한 엑소슈트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의학적'인 혹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해보고 싶다.

인간의 '두 발로 서서 걷는 능력' 혹은 '걷기'는, 평범한 인간이 아주 어린 시절의 '걸음마 단계'를 지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자연스럽다'는 우리 인간이 걸으면서 -음악을 듣거나 먼 곳을 바라보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시각과 사고 능력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는 책을 읽더라도- 큰 노력 없이 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다른 걸으면서 동시에 하나 혹은 두 가지 이상의 다른 행동에 집중할 때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유지하고 마음대로 보폭이나 속도를 바꿀 수 있고,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는 역시 '자연스럽게'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출 수도 있다. '뇌'가 조절하는 '걷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유연하게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뇌파로 조절하는 엑소슈트를 이용한 걷기'는 '자연스러운 걷기'와는 뇌의 처리과정이나 뇌파가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사 '걷다'와 그의 타동사 형태인 '걷게 하다'가 다른 것처럼, 뇌에서 명령하는 '걷기'와 '걷게 하기(걷게 조종하기)'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걷기를 시작한다면 뇌의 운동피질, 주로 사지를 담당하는 부분으로 전기적 신호로 명령이 전달되겠고, 운동피질에서도 뉴런을 통해  척수로 그 명령을 전달하여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측정 가능한 '뇌파'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걷게 하기' 혹은 '(뇌파 엑소슈트를)조종하기'의 뇌의 명령은 '걷기'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대뇌 피질에서 활성되는 영역이 당연히 다르겠고, 척수로 내려가는 명령도 필요없기 때문에 뇌파도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뇌파 엑소슈트'가 상용화된다면 그 조절은 어느 뇌파에 맞추어야 할까?

물론 환자 개개인의 따라, 뇌파 엑소슈트의 조절 뇌파를 '걷기'에 맞추는 경우도, '걷게 하기'에 맞추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의 유연한 작동'을 고려한다면, '걷기'에 맞추는 편이 엑소슈트를 조정하기에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척수 손상이 발생하고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환자의 경우에, 뇌가 '걷기'를 생각하고 팔과 다리를 작동하게 하는 과정은 일반인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인에게는 자연스러운 '걷기'가, 척수 손상 환자에게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닌 '상상 속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척수 손상으로 부터 긴 시간이 지났을 경우, 뇌가 '두 다리로 걷는다'는 명령을 잊고 '걷는 상상'으로 대신하여 작동하거나, 뇌의 명령 처리 과정이 상당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 척수 손상이기 때문에, 척수를 통해 팔과 다리로 명령이 전달되는 과정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과로 환자가 상상하는 자신의 '바디이미지(body image)'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걷기와 관련된 뇌파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신체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운동선수들의 경우 특정 동작들을 반복적으로 훈련한다. 그러면서 각각의 동작들과 그 동작들에 사용되는 근육과 관절의 위치(고유 수용감각;proprioception)는 그것들을 조절하는 뇌의 특정부위에 강하게 각인된다고 한다. 그래서 숙달된 운동선수들이 상상만으로도 가능한 훈련,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이 가능하다. 수준 높은 운동선수들의 경우에는 실제로 운동할 때의 활성되는 대뇌 피질 영역과 이미지 트레이닝할 때의 대뇌 피질 영역이 매우 높은 정도로 일치한다. 그렇게 상상만으로, 실제적인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없이도, 운동 피질을 훈련하고 근육과 관절의 긴장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는 원리가 이미지 트레이닝의 근거이다. 물론 아무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효과를 볼 수는 없다. 엄청나게 반복적이고 전문적으로, 흑 '선수 수준으로' 단련한 사람이나 가능한 훈련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가능하다면, 그 반대로 척수 손상 환자의 바디 이미지 변화와 그로 인한 걷기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의 기능 변화/상실도, 충분히 근거 있는 예측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재활의학이 '뇌파 엑소슈트'와 가장 긴밀하게 접촉해야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표준화 된다면, 뇌파 엑소슈트도 '일부 옵션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동일한 자동차'처럼 그 자체로는 의사가 크게 간섭하거나 조절할 구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엑소슈트를 작동하는 부분에서는 개개인에 대한 맞춤이 필요하겠고, 바로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작동 뇌파를 선택하는 점 뿐만 아니라, 환자가 척수 손상 후 본인에게 맞는 뇌파 엑소슈트를 착용하기 전까지, '걷기'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를 조절하고 훈련하여, 그 기능을 잃지 않고 뇌파를 유지하는 부분이 재활의학의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으리라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2017/02/18 11:51 2017/02/18 11:51

청춘 (Day & Night) by 우효 (Oohyo)

지난 7월 '우효(Oohyo)'의 새로운 싱글이 발표되었습니다. 평소 관심있게 지켜보는 뮤지션이라도, SNS까지 찾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SNS를 통해 미리 예고되었던 싱글인가봅니다.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두 곡이 수록된 싱글로, 두 가지 버전의 '청춘'이 수록되었습니다.

곡을 들어보기에 앞서, 눈에 띄는 앨범 커버(자켓)이 재밌습니다. '자켓'과 '이어폰'이 보이는데, 자켓으로 자켓을 찍은 점이 재밌습니다. 자켓은 클럽에서 입을 법한 모습으로, 클럽 조명처럼 현란하면서도, 세련되기 보다는 복고풍적인 느낌의 색조를 보여줍니다. '청춘'이라는 제목까지 생각하면, 묘하게도 인디씬의 밴드 '글렌체크(Glen Check)'의 앨범 'Youth!'를 떠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벗어진 자켓 위로 놓은 이어폰은 꽤나 쓸쓸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많은 사람과 화려한 조명의 클럽에서도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어폰을 끼고 홀로 음악을 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됩니다. 노래와 꽤나 잘 어울리는 선택입니다.

노래는 '청춘'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밝은 희망'은 없고 꽤나 쓸쓸하게 흘러갑니다. 'Day'와 'Night' 두 가지 버전의 두 곡을 담고있는데, '밤낮 없는 고독'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이네요.  Day는 모던락 버전으로, 밴드의 연주에서 'Radiohead'의 대표곡 'Creep'이 떠오릅니다.  Night는 밤과 잘 어울리는 일렉트로니카 버전으로 Day와는 또 다른 느낌이지만, 이질감은 없습니다. Day가 햇살 속에서도 느껴지는 낮의 고독이라면, Night는 화려한 조명 아래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고독처럼 들립니다.

재채있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던 그녀의 대표곡들과 비교하면, 가사의 소소한 재미는 부족하지만 진솔함만은 여전합니다. 그녀의 EP와 1집은 꽤 오래, 그리고 꽤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녀의 새로운 앨범이 너무나 기다려지네요.
2016/12/16 17:18 2016/12/16 17:18

살롱 드 오수경 - 파리의 숨결

인상적인 데뷔 앨범을 남기고, 리더의 유학으로 긴 휴식에 들어갔던 밴드 '살롱 드 오수경'이 두 번째 정규앨범을 2015년 8월에 발표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기에 최근에야 발표 사실을 알았고 들어보았네요.

앨범 자켓부터 살펴보면 1집 "Salon de Tango"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파리의 숨결"이라는 타이틀처럼 '파리(Paris)'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의 날씨처럼 구름 낀 하늘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건물에서는 묘한 평화로움이 느껴지네요.

앨범을 여는 '오라투와'는 프랑스어 'oratoire'로 '기도실'을 뜻합니다. 제목만으로는 경건한 느낌이 들지만, 흥얼거림과 간결한 연주에서는 경건함보다는 미묘한 긴장과 비밀이 느껴집니다. 기도실에서 기도와 함께 홀로 독백하는 '비밀 이야기'가 아닐까요? 제목처럼 1집을 아우르는 '탱고'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슬픈로라'는 제목처럼 쓸쓸하고 애처러운 피아노 연주로 시작합니다. 악기가 하나하나 추가될 수록 연주는 감정의 흐름은 거세져서, 절정을 향합니다. 2분이 되지 않는 짧은 트랙으로,  짧지만 강렬하고 슬픈 꿈과 같은 곡입니다. 기타리스트 'Joon Smith'와 함께한 '파리의 숨결'은 파리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거리의 악사'가 연주할 법한 흥겨운 기타 연주로 시작합니다. 방랑 혹은 유랑 악단을 떠오르게 하는 기타와 아코디언의 조합은,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낭만과 고독, 그리고 비애를 담아냅니다.

'장난감 병정의 비행'은 처음 듣지만, 들어본 듯한 기시감을 주는 트랙입니다. 장난감 병정을 연상시키는 태엽 돌아가는 소리와 어린 시절의 묘한 기억을 떠올리는 오르골 소리로 시작해서 부드러운 현악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탱고'가 테마였던 지난 앨범과는 확연한 차이를 들려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드러운 낭만은 어쩐지 밴드 '두번째 달'의 프로젝트였던 'Alice in Neverland'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어지는 네 트랙 '놀이동산', '원더랜드', '뮤직박스', '회전목마'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했던) 리더 오수경이 밴드를 결성하기 전에 발표했던 소품집 "시계태엽 오르골"를 통해 발표했던 곡들로, 이번 앨범을 통해 4중주로 되살아 났습니다. 첫 세 트랙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기에, 한 가지 테마를 갖고 진행되던 전작과는 비교가 되면서, 이 앨범을 '소품집'처럼 들리게 합니다.

앞선 '장난감 병정의 비행'에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놀이동산'은 '어린 시절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놀이동산에 대한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따스한 곡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원더랜드'의 시작은 손님이 모두 떠나고 불도 꺼진 놀이동산처럼 처량한 느낌을 줍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원더랜드'는 결국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닳게 되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실감'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또 다른 '현실 속의 원더랜드'를 찾게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합니다.

'뮤직박스'는 1분이 조금 넘는, interlude라고 할 수 있는 트랙으로, 현악 덕분인지 원곡과는 꽤 다른 느낌입니다. 원곡은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꽤나 쓸쓸한 분위기가 강했는데, 새로운 편곡의 뮤직박스는 우아하고 고풍스럽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트랙 '회전목마'도 기묘한 분위기였던 원곡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홀로 도는 텅빈 회전목마'는 느낌인데, '모든 열정이 식어버린 뒤 남은 집착의 광기가 불러온 새드 엔딩'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독특합니다. '뮤직박스'와 '회전목마', 두 곡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여러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조영욱' 음악감독의 디스코그라피가 떠오르게 하는 점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던 데뷔앨범과는 달리, 수록곡들의 다양한 분위기 때문에 정규앨범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는 '소품집'의 느낌이 강합니다. 더구나 수록곡의 절반이 리메이크된 곡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밴드 '살롱 드 오수경'의 새 앨범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충분히 기다림의 선물이 될 만한 곡들이고, 전작의 탱고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일반 청자들에게도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곡들입니다. 이제 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공연'이 아닐까 하네요. 별점은 3.5개입니다.
2016/07/05 15:38 2016/07/05 15:38

드라마 '닥터스'의 아이러니

흥행보증 수표라고 할 만한 두 배우 '김래원'과 '박신혜'를 내세운 '의학(이라고 쓰고 판타지라고 읽는다) 드라마' "닥터스"를 잠깐 보았는데,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원장(배우 엄효섭)과 부원장/신경외과(NS) 과장(배우 장현성)이 진료부 회의에서 맞붙는 상황이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원장 : 작년에 230억 적자가 났는데. 신경외과 매출이 꼴지다 분발해 달라. 수입 증대를 위해 노인의료센터(?)를 만들겠다.

부원장/NS과장 : 아니다. 장기이식센터가 의학발전에 도움이된다. 작년에 병원은 적자였지만 부대수익으로 1000억 흑자가 났지 않느냐.

원장 : 병원이 의료로 이익을 내야지, 부대사업으로 연명하면 쓰겠는가?

드라마는 원장을 '지잡대 의대 출신으로 실력 없지만 혈연으로 원장자리에 앉은 돈에 눈이 먼 의사'로 대놓고 비하하려고 한다. 그에 반해 부원장은 의로운 인물로 만드려고 애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의사나 의료인 혹은 관련 전문가라면 좀 이상하다고 느낄만 하다. 부대수익이 아닌 의료수익으로 흑자를 내서 병원을 운영해야한다는 '악역' 원장의 말은 어디를 봐도 흠잡을 부분이 없다. 병원도 기업이고, 기업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정직한 생산활동으로 정부의 지원금/보조금 없이 자생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닌가?(사회적 기업 타령하는 좀비들은 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히려 의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부원장의 말은 이상하다. 충분히 부대사업 수익으로 병원을 운영하자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이건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민영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를 옹호하는 발언이다.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안인데, 결과가 바르다면 과정은 바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을 섞어서 교묘하게 옳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뒷통수를 치는 악역으로 자주 등장했던 배우 '장현성'인데, 역시나 교묘하게 시청자들의 뒷통수를 치고있다.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작가가 영리하게 의도하였을까? 아니면 그냥 멍청한걸까?
2016/07/04 22:52 2016/07/04 22:52

안녕하신가영 - 순간의 순간

'좋아서 하는 밴드'는 꽤나 유명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밴드는 아니었고 그래서 노래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안녕하신가영"이라는 이름의 뮤지션을 발견했을 때, '참 재밌는 이름이다'라는 생각만 들었지, '좋아서 하는 밴드'와의 연관성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죠.

'안녕하신가영'은 '좋아서 하는 밴드'의 전(前) 멤버 '백가영'의 솔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안녕하신가영'이라는 뮤지션은 'Sentimental Scenery'의 앨범을 통해서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듀엣곡에 참여한 그녀의 독특한 이름과 목소리는 충분히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서 그녀의 정규앨범 "순간의 순간" 발매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결국 수록곡들을 쭉 들어보았습니다.

앨범 "순간의 순간"을 시작하는 첫곡 '너와 나'는 이 앨범이 소소한 연애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임을 직감하게 합니다. 편안한 멜로디와 편안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첫곡답고 목소리와도 어울리게 꽤나 밝고 희망적입니다만, 재밌게도 이어지는 곡들에서는 어떤 '역설'이 느껴집니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순간의 순간'과 이어지는 '문제없는 사이'는 이 앨범의 가장 즐겨듣는 트랙들이자 제 취향에 맞는 '슬픈 노래들'입니다. 이별로 향하는 순간들을 노래하는 '순간의 순간'은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즐 수 있는 가장 슬픈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뜻하지만 슬프고, 그러면서도 담담하기에 '찬란한 슬픔'이라고 할 만큼 빛이 납니다.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인 '사랑해서 이별한다'는 말을 가슴으로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하는 절절한 가사는 인상적입니다. 사실, 장황한 서술형 가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안녕하신가영'의 노래들만큼 예외로 하고 싶네요.

'순간의 순간'에서 들려주는 슬픔은 '문제없는 사이'에서 쓸쓸함으로 이어집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침착하게 풀어내는 모습은 정말 '안녕하신가영'만의 매력이라고 할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사 '그때는 정말 우리 후회 없이 사랑해도 문제없는 사이'는 쓸쓸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남겨두었기에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앨범이 담고 있는 12트랙들은 대부분 '일상과 그 속의 연애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노래하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나 밝고 희망차게 결말을 노래하는 '제미없는 창작의 결과'는 톡특한 제목만큼 인상적입니다. 생각해보면, 평범하지 않은 제목 센스도 이 뮤지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현실에 대한 따끔한 충고과 풍자가 인상적인 '어른인 듯 아닌 듯'과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에서는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보이기도 합니다.

앨범 막바지에서 만나는 '어떤 종류의 환상'도 추천하고 싶은 트랙입니다. 느릿한 멜로디 위로 풀어놓는 첫사랑에 대한 상념들에서는 어쩐지 나른한 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봄날의 달콤씁쓸한 꿈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앨범을 닫는 마지막 트랙 '오늘 또 굿바이'는 가사 속 '우리'의 마지막 인사이자 앨범의 청자들에게 보내는 '중의적인 인사'를 전합니다.

장황한 가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노래들만은 '예외'라고 할 만큼, 가슴의 한 구석을 흔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 가운데는 장황함 속에서도 재치있는 발상과 단어 선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에 발매된 정규앨범에 이어 올해 초에 발매된 EP '좋아하는 마음'도 꽤 좋은 곡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녀의 활발한 행보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6/04/18 16:30 2016/04/18 16:30

우효 (OOHYO) - 소녀감성

작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가장 즐겨들은 앨범은 바로 '우효(OOHYO)'의 EP "소녀감성"과 정규 1집 "어드벤쳐"입니다. 두 앨범 가운데서 고르자면 '인디음악'다운 풋풋한 감성이 더 진한 EP "소녀감성"을 조금 더 많이 들었네요. EP가 2014년 5월에 발매되었으니, 보석을  꽤 늦게 발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본명은 '우효은'이라고 하며, 어린 시절 별명을 사용하는 경우랍니다. 현재는 20대로 영국에서 유학중이고, 그녀가 들려주는 음악은 신디사이저(신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신스팝'입니다. 앨범의 제목이 '소녀감성'인 이유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쓴 곡들로, 본인의 소녀시절을 담고있는 자전적인 노래들이기 때문이랍니다.

EP를 여는 첫 트랙 "This is why we're breaking up"에서부터 신스팝과 일렉트로니카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유학파이기 때문일까요? 개인적으로는 'Moby'가 떠오르는 구석도 들립니다. 불안함과 아련함 같은 감정들도 느껴지는, 바로 지나버린 '소녀감성'을 회상하는 시작이기 때문일까요? 이어지는 "Motorcycle"도 앞선 트랙과 마찬가지로 '너(you)'에 대한 노래로, 제목처럼 질주하는 느낌의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Vineyard"는 두 가지 버전(우리말/영어)으로 수록되었는데, 후렴구만 비슷하고 가사의 내용은 두 버전이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가사 모두 '복잡하고 미묘한' 소녀의 감정을 간결하게 담하내고 있습니다. 앞선 두 트랙이 'EDM'스러운 부분이 컸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꿈을 꾸는 듯한 신스팝의 시작입니다. 이 곡의 달콤씁쓸(bittersweet)한 분위기를 의미할까요? '포도원'을 의미하는 vineyard를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소녀감성 100퍼센트"는 우효의 매력이 듬뿍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게하는 도입부 가사에서부터 그녀의 재치를 느낄 수 있고, 또 그런 재밌는 추억을 담담히 읊조리는 음성에서는 시크한 매력도 전해집니다. '친오빠'의 조련으로  시작된 '농구 훈련'은 아마 '농구대잔치'와 '슬램덩크' 그리고 '마이클 조던'으로 대표되는 농구 열풍이 떠오릅니다. 역시 Vineyard와 마찬가지로 '알듯말듯 알쏭달쏭한 소녀의 감성'을 노래하는 소녀감성 100%의 곡입니다. 그녀의 음악이 인기를 모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복잡미묘한 감정을 간결하게 표현해낸 그녀의 작사 능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쓸쓸한 감정을 이어가는 "Piano Dust"도 Vineyard의 영어 버전처럼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노래들이 들려주는 매력 가운데 하나가 이런 '1인칭이 아닌 시점에서 노래하는 자신의 이야기'인데, 이런 점은 "Teddy Bear Rises"에서도 이어집니다. 제목과 가사를 고려하면 '테디 베어'를 앞에 앉혀놓고 하는 혼잣말처럼 들리는데,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충고입니다.

'환상'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도 않는 '복잡 미묘한 소녀의 감성 세계', 그녀는 너무 직설적이지도, 너무 우회적이지도 않은 화법으로 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점이 그녀를 인디씬의 '떠오르는 별'로 만들어준 비결이 아닐까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에 발견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여성 뮤지션입니다. 꾸준히 솔직하고 좋은 노래들을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2016/04/12 16:05 2016/04/12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