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의 낭만 in 5월 19일 춘천 어린이 회관 야외무대 - part. 2

훈훈한 '9와 숫자들'의 무대를 이어가는 순서는 바로 '오지은'이었습니다. '9와 숫자들'과 다른 소속사이지만, 같은 무대에 오르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번 '봄철의 낭만' 공연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밴드 세션은 9를 제외한 숫자들과 함께하여 훈훈한 분위기를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하늘하늘한 의상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먼 곳까지 찾아와준 팬들을 위해, 지금까지 정규앨범 2장과 프로젝트 밴드 '오지은과 늑대들'로 1장을 발표한 '오지은 연대기'의 요약본이라고 할 만한 '오지은 3종 세트'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3종 세트'의 첫 번째는 '강렬한(혹은 처절한) 오지은'이었습니다. '그대'와 '화', 두 곡을 연달아 들려주었는데 바로 제 기억 속 '무대 위 그녀'의 이미지처럼 강렬했습니다. 음악에 심취한 듯한 손동작과 움직임은 그런 강렬함에 한 몫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하는 '잔잔한(혹은 얌전한) 오지은'이었습니다. '네가 없었다면'으로 잔잔한 분위기로 바꾼 그녀는 이어서 오랜만에 어쿠스틱 기타를 들었습니다. 데뷔 초기에는 자주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했지만 최근에는 노래에만 주력하는 그녀였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잡는 기타라 좀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다소곳한 통기타 소녀가 빙의한 그녀는 '오늘 하늘에 별이 참 많다'와 '익숙한 새벽 3시'를 들려주었습니다. 잔잔한 그녀의 모습 오랜만이지만 나른한 봄날의 소풍에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곡은 제목 때문인지 별이 빛나는 밤에 들었다면 더 좋았을 듯하네요.

3종 세트의 마지막은 바로 새로운 숫자들과 합체한 '발랄한 오지은'이었습니다. 그녀의 프로젝트 밴드였던 '오지은과 늑대들'은 현재 해체 상태여서 다시 무대 위에서 보기 어려운 상태인데, 숫자들의 도움으로 '오지은과 늑대들'의 곡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오지은과 숫자들'의 결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9와 숫자들'과 함께 '그림자궁전'의 노래를 불렀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경쾌한 락넘버 두 곡, '사귀지 않을래'와 '너에게 그만 빠져들 방법을 내게 가르쳐줘'를 들려주었는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는 발랄하고 명랑한 그녀의 모습은 남자팬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 가운데 최고의 공연으로 뽑고 싶네요. 길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모든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제는 노련미가 느껴졌습니다.

1부의 마지막은 '홍대 소방수'라는 별명을 최근에 얻은 '이영훈'의 무대였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면 '홍대 소방수'라는 별명에서 쉽게 눈치챌 수도 있겠는데, 뜨거워진 분위기를 차갑게 식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밴드 구성을 위해 역시 세션 돌려막기가 있었는데, '로로스'의 드러머 '도재명'과 기타리스트 '최종민', 그리고 키보드 '연진'으로 본 공연자보다도 화려한 세션 밴드의 모습이었습니다. '빵'의 공연일정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그의 이름이었지만, 제대로 공연을 보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왠지 구수한 음악을 들려줄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노래들을 들려줍니다. '하품', '봄의 고백', '그저 그런 오후', '이제는 옛날 이야기지' 등, 아마도 대부분 처음 듣는 곡들이었는데도 낯설기보다는 공감을 할 만한 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긴 공연 일정 때문에 약간의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2부의 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2부는 포스트락 밴드의 무대였고 첫 번째는 '전자양'이었습니다. 인디 음악을 들으면서 이름으로만 들었던 뮤지션이고 공연을 볼 기회도 없었지만, 포스트락을 하는 뮤지션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전자양'의 얼굴도 몰라서 '프렌지'와 '마이티 코알라'의 돌려막기 세션이 올라와서 무슨 팀인가 어리둥절했는데, 나왔던 밴드들과 나올 밴드들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뮤지션은 전자양 뿐이었습니다. '봄을 낚다' 등 기존의 곡들을 포스트락으로 편곡해서 들려주었다고 생각되는데, 댄서블한 포스트락으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드디어 세션으로 혹사한 기타리스트 '유정목'의 본래 소속인 '프렌지'의 순서였습니다. '마이티 코알라'을 시작으로 '9와 숫자들', '오지은', 그리고 '전자양'까지 이미 공연의 절반이 넘는 시간동안 기타를 연주한 그에게는 마지막 순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혹사의 후유증이 드디어 나타나는지, 본인 밴드의 곡이 잊어버리는 사태(?)가 결국 발생하였습니다. 이 무대에 서기 얼마전에 모 방송국의 밴드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인지 '프렌지'에 대한 반응은 더욱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9와 숫자들'과 같은 '튠테이블 무브먼트' 소속이라 같은 무대에 자주 서기에 공연을 몇 번 보았지만 곡의 제목은 모르겠더군요. 그렇지만 프렌지의 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밴드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 대공황'은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팀은 멤버들의 군문제를 해결하고 6인조로 활동을 시작한 밴드 '로로스'였습니다. 기존 국내 밴드들에게는 듣기 힘든 스케일과 서정성으로, 이미 여러 페스티벌에 단골 손님이라고 할 수있는데, '봄철의 낭만'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원래 7시 즈음 마칠 예정이었지만 조금씩 지연되면서, 로로스가 세팅을 시작했을 때 이미 해는 서쪽 하늘에서 지고 있었고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로로스의 공연이었는데, 신곡들이 많아서 더욱 알차게 느껴진 공연이었습니다. '방안에서', 'Pax', 'Dream 1'같은 앨범 수록곡들 외에도 신곡으로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춤을 추다', 'You'와 같은 신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로로스'다운 스케일이 느껴지는 공연이었지만, 기존 곡들의 완성도에 비교한다면 신곡들은 아직 덜 다듬어졌고 로로스만의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다듬어져서 다음 앨범에서 만날 수 있겠죠? 곡수는 많지 않아도 한 곡 한 곡이 꽤 긴 편이라, 해는 완전히 지고 밤하늘에는 별이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습니다. 춘천 어린이 회관 야외무대에 모였던 관객들 모두 앵콜을 원했지만,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야했습니다.

'봄철의 낭만', 최근 각종 페스티벌이 난무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붐비지 않는 교외에서 제 취향에 맞는 밴드들이 가득한, 정말로 알찬 공연이었습니다. 이런 기획 공연이 이번 봄 뿐만 아니라 여름, 가을에도 꼭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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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6:34 2012/06/12 16:34

봄철의 낭만 in 5월 19일 춘천 어린이 회관 야외무대 - part. 1

최근 몇년 사이에 각종 페스티벌이 난립하기 시작한 5월, 페스티벌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트위터를 통해 그런 고민을 해결해줄 공연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봄철의 낭만"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이틀이 대세인 페스티벌들과는 달리 단 하루, 오후에만 열리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9와 숫자들', '오지은', '로로스', '연진' 등 제가 좋아하거나 보고싶은 팀들로 이루어진 '종합선물세트'같은 라인업이기에 망설임 없이 예매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공연장이 서울 홍대 근처의 클럽이 아닌,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 어린이 회관'의 야외무대라는 점이죠. 제가 있는 곳에서는 편도로만 260km 가까이 되는 상당히 먼 거리니까요.

"봄철의 낭만"은 밴드 밴드 '마이티 코알라'를 중심으로 '밝고 건강한 아침을 위하여'(줄여서 '밝건아', 마이티 코알라의 데뷔앨범 제목이기도 합니다.)라는 모임에서 '봄 소풍'을 컨셉으로한 공연입니다. 장소가 춘천이기에 오후2시부터 7시까지로 예정된 공연 티켓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춘천까지 왕복 차편과 점심식사가 포함된 일종의 '여행상품'같은 패키지도 예매가 가능했습니다. 드디어 5월 19일이 되었고 저는 먼 거리를 운전해야하기에, 더구나 교통체증을 예상되는 서울을 우회해서 국도로만 춘천까지 가기로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서 간단한 식음료를 챙겨 출발했습니다. 국도이기에 무려 5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춘천 어린이 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가평에서 주유를 했는데 다행히 경유는 제가 주로 가는 도시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고, 셀프세차 비용도 저렴하여 (예비세차 500원에 1분30초!) 오랜만에 세차도 하고 비교적 넉넉하게 도착했고,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이 열리는 춘천 어린이 회관의 위치는 춘천에서도 상당히 외각이어었기에 "왜 이런 곳에서 공연을 하나?"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회관 뒤쪽 정원과 그 넘어 펼쳐진 북한강의 풍경은 그런 의문을 한 번에 날려버렸습니다. 혼자 와서 보는 것이 너무나 아까울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날씨도 너무나 좋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먹는 도시락 너무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내려쬐는 햇살은 대지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햇살을 그대로 받는 야외무대의 모습은 공연관람의 쉽지 않음을 예상하게 했죠.

첫 순서는 바로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의 보컬 '연진'이었습니다. '라이너스의 담요'나 '연진'의 노래는 많이 들었지만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첫 무대부터 공연을 도와주는 '세션'의 돌려막기가 시작되었는데, 연진은 역시 공연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영훈'을 기타세션으로 함께 했습니다. 'Labor in Vain'과 'Misty' 같이 분위기있는 곡들과 너무나도 유명한 'Picnic', 듀엣곡이지만 혼자 부른 'Gargle'을 들을 수 있었고, 그녀가 EBS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곡으로 '승수'(원래는 '프랭키'나 마이티 코알라의 멤버 '승수'가 곰을 닮아서)와 '쿠키송'을 들려주었습니다. 커버곡으로 'Cheek to cheek'이라는 곡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발랄한 모습은 '봄 소풍'에 딱 어울리는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아이폰을 잃어버려 분노했던 점과 그런 그녀를 놀리던 세션 이영훈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마이티 코알라'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클러 빵'에서 공연을 한 번 보았고, 멤버들의 학업 문제로 자주 활동하기 어려웠던 밴드로 아는데, 작년에는 데뷔앨범도 발표하고 공연도 시작했나봅니다. 오래전의 기억으로는 밴드 이름처럼 귀여운 이미지였는데, 생각보다 시니컬한 곡도 부르는 밴드더군요. 드러머 '유병덕'은 바로 멤버 변동이 잦았던 '9와 숫자들'의 현재 드러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돌려막기 기타 세션으로 역시 '9와 숫자들'에 합류했고 원래 '프렌지'의 멤버인 '유정목'이 등장하였고 앞으로 쭈욱 등장하게 됩니다. 한 번 보았던 예전 공연에서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Bob', '에이프릴', '매일매일 누워' 같은 곡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이시스트가 메인보컬인 '고속도로'는 시니컬한 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번째 밴드는 바로 제가 먼 춘천까지 갔던 이유라고 할 수 있는 '9와 숫자들'이었습니다. 작사/작곡 및 보컬을 담당하는 '9'를 비롯하여 '9'와 함께 '그림자궁전'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꿀버섯', 그리고 앞선 무대에 섰던 두 사람 '마이티 코알라'의 드러머 '유병덕', '프렌지'의 '유정목'의 구성은 작년에 보았던 공연들과 같았습니다. 결성 후 첫 앨범 발표까지 멤버 변동이 잦았는데 이제는 현재의 멤버로 안정을 찾은 모습이네요. '9와 숫자들'이 들려주는 말랑말랑한 감성은 화창한 봄날, 듣는이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지난 번에도 준비중이라는 EP는 올해는 진짜로 나올 모양인지 신곡들이 많았는데, 1집 수록곡 '말해주세요'를 제외하면 모두 1집 미수록곡 및 신곡이었습니다. 9와 숫자들의 매력은 청승맞은 가사를 세련된 밴드 사운드로 포장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매력에 걸맞게 EP에 수록된다면 타이틀이 될만한 '깍쟁이'를 시작으로, '그대만 보였네'와 컴필레이션 수록곡 '서울 독수리'같은 신곡들과 솔로 '9'의 공연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착한 거짓말'과 '북극성'은 밴드 사운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착한 거짓말'은 솔로 기타. 정말 춘천까지 가는 수고가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습니다. 다만 공연 팀 수가 많기에 많은 곡을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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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은 http://youtube.com/bluoxetine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12/06/07 16:12 2012/06/07 16:12

Last Night Episode in 1월 15일 SSAM

유난히도 추운 이번 겨울 1월 15일에 '라이브 클럽 SSAM'에서 있었던 'TuneTable Movement' 소속의 포스트락 밴드 '프렌지'의 1집 마무리 단독공연 'Last Night Episode'에 다녀왔습니다. SSAM에서 공연 관람도 참 오랜만이었지만, 모회사의 부도에도 우려했던 '클럽 폐쇄'나 '용도 변경'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버텨주었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어려운 인디씬을 수 년간 지켜본 입장에서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프렌지는 바로 이 SSAM을 중심으로 하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고수 찾기'를 통해 발굴된 밴드로 '그림자궁전'과 '로로스'가 소속된 TuneTable Movement를 통해 작년 7월에 1집 'Nein Songs'를 발표했죠.

오랜만에 SSAM의 방문이 프렌지의 단독 공연이기에 제가 프렌지의 '열렬한 팬'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사실 저의 관심은 '제사보다 젯밥'에 있었습니다. 바로 스페셜 게스트로 수 년째 활동이 없던 '그림자궁전'이 등장한다는 엄청난 소식이 제 발을 SSAM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밴드의 홍일점 'stellar'를 대신해서 홍대마녀이자 최근 '오지은과 늑대들'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오지은'이 함께한다는 소식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프닝 밴드로 나오는 '화난곰(Angry Bear)'의 존재도 궁금했습니다. 우스운 밴드이름이지만 한국 이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외국인 밴드'이고, 'Angry Bear'라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자칫 폭력적이고 폭발적인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역시 그 예상을 뒤집고 기타팝을 들려주는 밴드라기에 호기심을 자극했구요.

사실 밴드 '프렌지'의 공연은 앨범을 발표하기 전 몇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었고 날도 춥기에, 이름하여 '단독공연'인데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을지 괜한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듯 너무 비좁지도, 넓지도 않은 SSAM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대충 보아도 100명은 가뿐히 넘을 인원이었죠. 예정된 7시 30분이 조금 지나서 공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프닝 게스트는 예고대로 '화난곰(Angry Bear)'이었습니다. 모든 멤버가 외국인으로 구성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라는 점 만큼이나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도 궁금했습니다. 더구나 공연의 소개들에 '소프트한 기타팝'을 들려준다기에 더욱 그랬죠. 사실 홍대 인근에서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의 문란한 생활에 대한 소문이 많은데, 무대에 오른 4명의 멤버들은 모두 건실한 외국인 유학생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소프트한 기타팝'은 아니었습니다. 기타팝은 맞지만 제가 기대한 '소프트함'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음악들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단독공연에는 외국인 관객들도 상당히 보였는데, 아마도 이 밴드를 보러온 사람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한 외국인 남성은 오프닝부터 분위기 메이커로서 감초 역할을 보였습니다.

오프닝 게스트의 공연이 지나가고 본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프렌지의 공연인데, 그들은 예상과 달리 차분하게 앉아서 어쿠스틱 셋으로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포스트락으로 분류할 수 있는 그들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잔잔함을 느낄 수 있었죠. 예상보다 차분했던 1부가 생각보다 짧게 지나가고 그토록 기다리던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림자궁전'의 스페셜 게스트 무대였습니다. 2009년 5월에 역시 SSAM에서 , 역시 오랜만에 했던 공연이 마지막이었다고 하면 제 기다림이 조금은 설명이 되려나요? 더구나 이번 깜짝 공연이 더욱 특별한 점은 바로 '오지은'이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막이 오르고 오리지널 멤버라고 할 수 있는 기타의 '9'와 베이스의 '용'을 볼 수 있었고 드럼은 세션으로 '유병덕'군이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9의 기타는 익숙한 멜로디를 뿜어내기 시작했죠. 한 차례 예열 후 본격적인 무대는 오지은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광물성여자"를 그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죠. 오지은이 첫 앨범을 준비하면서 공연했던 곳은 '빵'이었고, 그 시절 그림자궁전은 빵의 대표밴드 가운데 한 팀이었는데 지금은 오지은이 그림자궁전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오지은과 늑대들'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로 최근 활발히 활동도 하고 있어 오지은과 함께하는 그림자궁전을 '오지은과 숫자들'이라고 불러야할 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좋아하고 오랫동안 지켜봐온 두 팀, 그림자궁전과 오지은의 합동무대니 좋을 수 밖에 없겠지만 좋아하는 밴드의 곡들이기 때문인지 아쉬운 점이 귀에 바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나의 플루토늄'이라고 강렬하게 외치는 광물성여자에 이어 "She's got the hotsausce"에서도 보컬 오지은의 매력이 담겨있었지만 밴드 사운드 면에서 'stellar'가 보컬과 함께 담당하던 기타 연주가 빠지만서 소리의 빈 공간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아쉬움 만큼이나 그녀가 stellar의 새침한 보컬과는 다른, 자신의 매력에 녹여 불러내는 그림자궁전의 곡들은 다시는 경험하기 어려운 기회이자 선물이었습니다. 자켓을 벗어던진 "Magic Tree"에서는 더욱 농염한 보컬을 들려주었고 다음을 약속할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지막 곡 "I'm nobody"에서는 그녀 역시 기타를 메고 연주도 들려주었습니다.

이번 공연의 목적을 100% 가까이 이루었기에 사실 프렌지의 2부 공연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은 10시가 넘어서도 계속되었고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켰죠. 오랜만에 찾은 SSAM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림자궁전과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추운 밤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림자궁전'로서 혹은 '9와 숫자들'로서 다시 만나기를 바랬는데 마침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공연 리뷰에서 밝혀지는 즐거운 소식이죠.

공연의 영상 일부는 제 유튜브 채널(http://www.youtube.com/bluoxetine)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11/02/03 02:57 2011/02/03 02:57

오지은과 늑대들 - 오지은과 늑대들

홍대 마녀 '오지은'의 '지은' 시리즈의 스핀오프? '오지은과 늑대들'
 
2007년와 2009년에 각각 한 장씩, 두 장의 '지은'을 발표하며 홍대 앞 인디씬에서 상당한 인지도의 뮤지션으로 올라선 '오지은'이 자신의 세 번째 정규앨범이 아닌 '기타팝 프로젝트'로 찾아왔습니다. 2집을 발표하고 공연을 하면서 밴드에 대한 욕심을 간간히 보여왔던 그녀라 놀랄 일은 아니지만 단순에 앨범까지 들고 나왔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요즘 인디씬에는 복고적이 느낌이 드는 'XXX와(과) XXX' 형식의 이름을 가진 밴드들이 은근히 유행인가 봅니다. 2009년을 휩쓴 '장기하와 얼굴들(장얼)'부터 2010년에 마땅히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여준 '9와 숫자들(9숫)'에 이어, 2011년을 앞둔 2010년 12월에는 데뷔앨범을 발표한 '오지은과 늑대들(오늑)'이 등장하였으니까요. 여성 프런트에 남성 세션 4명으로 이루어진, 뭔가 일을 낼 법한 멤버 구성의 '오늑'의 1집, 살펴보죠.

힘차게 앨범을 여는 '넌 나의 귀여운!'은 여러모로 이 앨범의 컨셉을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운 면보다 좋은 면이 많고, 나이는 많지만 애 같은 귀여운 남자친구' 예찬론을 펼치는 노래는, 본 곡을 포함하여 모두 오지은이 작사/작곡한 전반부(2~5번) 트랙들의 연애 이야기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근두근한 고백송 '뜨거운 마음'은 진솔한 표현이 돋보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나비의 날개짓에 비유하고, 마음의 크기를 방석, 의자, 소파로 점층적으로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이런 비유들은 9와 숫자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사귀지 않을래'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가 외칠 법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사귀기 전에 그에게 바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긴 제목의 '너에게 그만 빠져들 방법을 이제 가르쳐 줘'는 미리듣기로 공개될 만큼 탁월한 매력의 트랙입니다. 경쾌한 리듬과 기타리프는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부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락페스티벌의 싱얼롱을 노리고 만든 곡이 아닐까하고 강력하게 의심되기도 하구요. 역시 선공개되었던 '아저씨 미워요'는 제목부터 위험한 트랙입니다. '아이유'의 '오빠팬'이나 '삼촌팬'을 넘어서 '아저씨팬'까지 노리는 야심(?) 담겨있는 가사는 아저씨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합니다.

'사실은 뭐'는 '차도녀'를 넘어서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에 가까운 오지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사가 은근히 과격한데, 크레딧을 살펴보면 앞선 곡들과 달리 이곡의 작사/작곡은 모두 기타리스트 '정중엽'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 곡을 제외하면 모든 곡의 가사는 오지은이 썼습니다.) 재밌게도 마지막 반전은 이 곡이 '사실은 뭐.. 성인용(?) 트랙'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시 좀 위험해요.

발랄하고 달달한 기타팝은 역시 앨범이 표방하는 컨셉이구요. 그리고 그 발랄함과 달달함은 2장의 '지은(1집과 2집)'에서 찾아볼 수 없던 모습으로, '홍대 마녀'라고 불릴 만큼 극단적이고 과격하거나(華,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진공의 밤) 차분하고 서정적인(wind blows,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등) 표현들과는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물론 발랄한 곡들(웨딩송, 인생론)이 없지 않았지만 그 곡들조차도 다분히 진솔한 자기고백적인 수준으로 이렇게 '자제력을 상실한 사랑의 찬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틈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오지은'을 보여주는 '지은' 시리즈의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앨범의 후반부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 'Outdated Love Song'은 달달한 기타팝에서 진중한 모던락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작합니다. 앞선 트랙들이 '애정행각'에 대한 노래들이었다면 이제는 그 후폭풍의 시작이죠. 또 오지은만의 밴드가 아님을 다시 주지하듯이 'Outdate Love Song'과 '없었으면 좋았을걸'에서도 멤버들의 참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작곡을 각각 드러머 '신동훈'과 '키보드 '박민수'가 담당했습니다. 작곡자의 영향인지, 'Outdated Love Song'에서는 드럼이 두드러지고, '없었으면 좋았을걸'에서는 키보드의 비중이 큽니다. 가사에서는 비슷하게 사랑에 대한 후회를 담고 있지만, '단호한 후회' 대  '무기력한 후회'로 극명한 대비도 재밌네요.

'만약에 내가 혹시나'는 두 장의 앨범에서 볼 수 있는 '오지은'은 모습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근조근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두 장의 '지은'에서 후반부에 위치한 트랙들의 분위기에 닮아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어쿠스틱이 아닌, 늑대들의 밴드 사운드 위에서 펼쳐진다는 점이죠.

마지막 두 트랙은 앨범을 정리하는 트랙들이네요. 두 곡의 작곡은 베이시스트 '박순철'이 담당한 편안한 팝넘버입니다. '마음맞이 대청소'가 제목처럼 앞선 트랙들에서 펼쳐진 '사랑과 이별의 모든 감정'에 대한 정리를 담은 트랙이라면, '가자 늑대들은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셀프타이틀 앨범 '오지은과 늑대들'을 정리하는 트랙이라고 하겠습니다. 솔로 '오지은'에 가장 가까운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주는 '마음맞이 대청소'는 '만약에 내가 혹시나'와 더불어 오지은의 세 번째 앨범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습니다. 조금은 오글오글한 가사의 '가자 늑대들'이 프로젝트 밴드 '오지은과 늑대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곡일지, 혹은 힘찬 시작을 의미하는 곡일지는 지켜봐야겠죠.

'해피로봇 레코드'의 '2010년 깜짝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오지은과 늑대들'은 단순히 오지은의 확장판이 아닌 전혀 다른 색깔로 매력적인 곡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오지은이 들려주는 곡들이 무대 위에서 듣기보다는 방에서 조용히 듣기에 좋은 곡들이었다면 '무대 친화적'인 곡들로 무장하여서 그녀의 팬들에게 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홍대 라이브클럽과 방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단순히 오지은의 네임벨류에 의지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오지은과 늑대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좀 더 '오지은과 늑대들'만의 색깔로 가득찬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1/01/10 15:54 2011/01/10 15:54

'그 일관성이 좋아', 앨범 자켓, 또 다른 예술의 세계

요즘에는 mp3나 온라인 스트리밍같은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 되었지만, 아직도 '앨범'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CD'이다. 각종 음원 압축 기술이 좋아졌다지만, 용량을 줄이기위해 압축을 하면서 음질의 손실이 발생하기에 CD의 음질을 따라갈 수는 없다. 또, CD는 만질 수 없는 가상의 존재같은 '파일'이 아닌 현물이기에 그 자체로서의 소장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CD 속에 담겨있는 음원들, 그 음원의 음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CD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CD를 보호해주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케이스(디지팩이든 플라스틱 케이스든)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자켓'이 바로 그것이다.

앨범 자켓이 뭐 대수롭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 'Beatles'의 그 유명한 앨범 'Abbey Road'의 자켓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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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범한 자켓이 얼마나 많이 패러디와 오마쥬의 대상이 되었는지.

각종 시각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앨범 자켓은 단순히 포장의 기능 뿐만 아니라, CD 속에 담긴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리나라의 자켓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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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마녀', '오지은'의 앨범 자켓들로 좌측부터 '1집', '1집 해피로봇 에디션', '2집'의 자켓이다. '해피로봇 에디션'은 어차피 레이블이 바뀌면서 판매를 위해 자켓을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1집과 2집만을 비교하면 본인의 얼굴에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수록곡들도 앨범 자켓처럼 그녀의 자화상 혹은 일기장 같은 노래들이다. 더구나 앨범 타이틀도 1집과 2집 모두 '지은'으로 뮤지션의 고집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자켓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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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블루'의 앨범 자켓들로 왼쪽부터, 1집 '너의 별이름은 시리우스 B',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EP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의 자켓이다. 자켓에서부터 남다른 안목이 느껴지는데, 일관적으로 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들을 사용하고 있고, 더불어 밴드 로고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어 어떤 연속성이 느껴진다. 1집이 일러스트처럼 풋풋하고 달달하고 멜랑콜리한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고 EP들도 마찬가지여서, 첫 번째 EP는 흰눈처럼 순수한 감수성을 두 번째 EP는 여린 봄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고집있고 꾸준한 모습들, CD를 수집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즐겁다. 이런 멋을 아는 뮤지션들이 좋다. 음악뿐만아니라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주는 뮤지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앨범 자켓은 이제 단순히 '음반의 포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포토그라피, 일러스트레이트, 타이포그라피 등이 융합된 또 다른 예술의 장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010/09/19 22:32 2010/09/19 22:32

Mint Breeze Stage in 10월 24일~25일 GMF 2009

이동하면서 잠깐 본 밴드들 빼고, 전곡을 감상한 밴드들은 이 틀 동안 모두 5팀이었습니다. 24일 '오지은', '스위트피'였고 25일 '짙은', '장기하와 얼굴들', 'Maximilian Hecker'였죠.

'Loving Forest Garden'에서 'Alice in Neverland'의 공연을 마치고 찾아온 'Mint Breeze Stage'에서는 '홍대 마녀' '오지은'의 순서가 예정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전부터 우려되었던 점은 그녀의 음악이 이렇게나 큰 무대에 어울리냐였습니다. 오히려 방금 있었던 Loving Forest Garden이 그녀의 음악에는 더 어울릴 법했으니까요. '그대'를 시작으로 '익숙한 새벽 3시',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등 잔잔한 곡들로 채워나간 그녀의 공연은 나쁘지 않았지만 밝은 대낮의 넓은 무대 위에서는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오후 3시를 오전 3시의 분위기로 만들어버린다'라고 불평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후반부에 배치된 곡들이 다행히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진공의 밤'을 시작으로 그녀를 마녀로 만드는 곡들인 '화'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죠. 다음날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 명약관화했던, 인디씬의 원로밴드 '언니네 이발관'이나 신인밴드들 가운데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리플라이' 공연에 자리가 부족했던 점을 생각했다면 역시 무대 배치는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소속사와 GMF의 기획사가 같은 계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분히 '오지은 밀어주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같이 더 인지도있고 연륜있는 밴드가 더 작은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런 의혹은 더 클 수 밖에 없었죠.

이어 델리스파이스의 리더이자, 인디씬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스위트피(김민규)'의 무대였습니다. 세션들과 함께 등장했는데 그 세션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문라이즈 연합군'혹은 '문라이즈 잔당'이라고 해야할까요? '문라이즈'의 대표이자 뮤지션인 '스위트피'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유일한 소속 뮤지션인 남성 듀오 '재주소년'의 두 사람이 기타와 코러스로 등장했고, 다른 한 명의 기타 세션은 바로 '슬로우 쥰'이었습니다. 스위트피와 재주소년같이 말랑말랑한 남성보컬의 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죠. 또 독특한 점이 '스위트피'의 순서였지만 '문라이즈 연합군'이라고 언급했듯이 새로운 컨셉으로 공연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스위트피는 자신의 곡들 '섬', '오! 나의 공주님' 등을 들려주었는데 비단 스위트피의 곡들 뿐만 아니라 재주소년의 곡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위트피가 부르는 재주소년의 곡이 아니라, 바로 재주소년의 목소리로요. 두 멤버가 각각 부른 '미워요', '귤'이 기억에 남네요. '스위트피'에게 배정된 시간을 문라이즈 연합군이 공연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방식은 바로 25일에 예정되어있는 '재주소년'의 순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역시 문라이즈 연합군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깐 이틀 동안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문라이즈 연합군 공연'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재주소년의 입장에서는 다음날은 또 어떻게 꾸려나갈지 살짝 걱정이되기도 하더군요. '재주는 소년이 부리고 돈은 사장님이 번다'고 사장님(스위트피)의 횡포가 아니었을지요? 물론 그럴리 없겠지만요. 마지막 곡은 주옥같은 스위트피의(스위트피도 카피한 곡이기는 하지만) 'Kiss Kiss'였습니다. 화창한 가을날, 재주소년과 스위트피, '어린왕자 연합군'의 소소하고 수줍은 공연이었죠.

그렇게 24일은 'Loving Forest Garden'과 'Mint Breeze Stage'를 돌아다니다가 끝이났습니다. 25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늦게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3시에 예정되어있는 '짙은'은 순서를 맞춰 Mint Breeze Stage에 입장해서 스탠딩 존에 들어갔지요. 이 날 짙은의 무대는 아주 특별했는데, 바로 짙은의 파스텔뮤직 입사 즈음에 군입대를 한 다른 멤버 '윤형로'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짙은'을 보컬 '성용욱'의 원맨 밴드로 알고 있지만, 보컬 성용욱과 기타리스트 윤형로의 듀오랍니다. 세션으로는 계속 공연을 도와주고 있는 첼로리스트 '성지송'과 '타루'의 '음악적 짝'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박사(오수경)'가 눈에 띄었습니다.

'Secret', 'December', 'Feel alright' 등 지난 단독 공연에서 들었던 곡들을 좀 더 꽉찬 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 발매된 EP 수록곡 'Rock Doves'는 두 멤버가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며 들으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짙은의 주목같은 히트곡(?) '곁에'였습니다. 두 멤버가 함께 선 모습은 팬들에게는 아마도 큰 선물이었을 듯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겠군요.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순서였습니다. 올해 어떤 페스티벌이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섭외 1순위 인디밴드답게, 세팅시간동안 사람들은 속속 모여들어서 스탠딩 존은 거의 가득 찼고, 이 밴드의 인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잖어', '정말 없었는지'같은, 장기하의 표현에 의하면 축축 처지는 노래들로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미미 시스터즈'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페스티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있었나 봅니다. 결국 미미 시스터즈도 합류했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 없이 산다' 등을 들려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저는 이때 돗자리에 누워 가을날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Maximilian Hecker'의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최근 일 년에 한 번 씩은 꾸준히 방문하는 그는 올해는 GMF에서 볼 수 있게되었죠. 밴드와 함께했는데, 아시안 투어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GMF 공연을 갖게된 것이더군요. 우리나라를 경유해서 중국에 갈 예정으로 그곳에서는 수 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더군요.

이제는 나이를 속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리고 감성적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와 그의 밴드는, 다섯 번 째 앨범이 발매된 만큼, 그 앨범의 수록곡들("The space that you're in", "Misery", "Miss underwater", 'Snow white" 등) 위주로 공연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3집의 수록곡들도 몇 곡 들을 수 있었습니다. 'Summer days in bloom', 'Anaesthesia' 등이었고 저는 나즈막히 싱얼롱할 수 있었습니다. anaethesia의 허밍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서정적이고 조용한 음악들을 들려주는 그이기에 스탠딩 존에 서서 즐기는 사람들보다, 잔디에 앉아 즐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페퍼톤스'를 보고 싶었지만 한참을 기다려야하고, 더구나 다음날 출근해야한다는 '직장인의 비애'를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Mint Breeze Stage 사이에 본 'Cafe Blossom House'의 두 뮤지션은 마지막 포스팅으로 하도록 하죠. 그러고보니 'Club Midnight Sunset'을 결국 25일에 잠깐 드른 것 외에는 제대로 본 뮤지션이 없네요.

2009/10/28 16:05 2009/10/28 16:05

Live THEY : acoustic session in 8월 29일 상상마당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동안 '상상마당'에서는 '마스터플랜'과 '해피로봇'의 소속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MPMG Live THEY 2009'가 열렸습니다. 29일과 30일 각각 다른 컨셉으로 공연을 펼쳐졌는데, 29일에 있었던 'acoustic session'에 다녀왔습니다. (30일은 electric session이었습니다.)

첫 무대는 바로 '이지형'이었습니다. 이날 예정되어있던 뮤지션들 중 연륜도 있어, 가장 먼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었는데, 등장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하기라도 했나봅니다. 사실 여성 보컬을 매우 선호하는 제 취향때문에 이지형의 노래는 거의 듣지 않는데, 이날은 '빰빰빰', 'No body likes me', '산책'같이 편안한 느낌의 곡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끼는 후배 '나루'의 기타 연주와 함께 'Beatles Cream Soup'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프닝으로 너무 튀는 적절한 선곡이었죠.

이어 남성 3인조 '세렝게티'가 등장했습니다. 대자연이 살아숨쉬는 세렝게티 초원같은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는 밴드 이름과 남성 3인조이기에 때문에 상당히 진지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금 어색하면서도 걸출한 입담을 보유한 재밌는 밴드였습니다. 앞서 등장한, 외모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선배 '이지형'과 '변해가네'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어 '별이 되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남성 보컬임에도 상당한 감수성의 인상적인 곡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누비는 한 부족의 전사들이 동료를 하늘로 떠나보내며 초원에서 울려퍼지는 노래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어 밴드가 해체될 뻔한 사연이 담긴, '너는 너의 길을 가'는 꽁트같은 연출이 재밌었습니다. 이어 멤버에 대한 충고가 담긴 '위가 없어'를 커버곡 'Street life'와 이 밴드의 다른 곡 'Afro Afro'가 이어지는 메들리로 들려주었습니다. '코끼리'를 마지막으로 세렝게티의 순서는 끝났습니다.

세 번째로는 '나루'가 '노리플라이'의 보컬 '권순관'을 베이시스트로 대동하고 등장했습니다. '우주인'을 비롯하여 '잠', 'Mr. Right', '좋은 날'을 들려주었는데, 첫 곡 '우주인'을 제외하면 다른 곡들은 너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상당히 뛰어난 능력 때문에 같은 소속사 형, 누나의 이쁨을 받고 있다는데,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준비 중이라는 2집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네 번째로는 최근에 해피로봇의 식구가 된 '티어라이너'가 등장했습니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유명한 '바다여행'을 시작으로 '추억으로', 'Novaless'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멘트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좋은 취지로 여러 뮤지션들이 모인 공연에서 그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멘트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겠습니다. 마지막 곡 '너를 보며'는 이지형이 다시 등장하여 함께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이번 공연의 홍일점인 '오지은'이었습니다. '화', '잊었지 뭐야',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같이 어쿠스틱에 어울릴 만한 선곡을 들려주었습니다. 또 이지형과 마찬가지로 오지은도 격하게 아끼는 나루가 등장하여 도와주었죠. 그녀의 네 번째 곡은 '노리플라이'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곡 '뒤돌아보다'였고, 세션에는 키보드에 권순관, 어쿠스틱 기타에 정욱재로 바로 원곡을 부른 노리플라이의 두 멤버가 등장하여 진정한 조인트 공연다운 모습을 들려주었습니다. 오지은의 보컬, 노리플라이의 연주 모두 너무 좋았던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듣는 '뒤돌아보다'는 더욱 애절한 느낌으로, 앞으로 노리플라이가 여성보컬을 객원멤버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지은과 한다면 '오지은 + 노리플라이', 바로 '오지플라이'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곡은 역시 어쿠스틱으로 들어야하는 '익숙한 새벽 3시'였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바로 해피로봇의 떠오르는 신예 '노리플라이'였습니다. 원래는 마지막 순서가 아닌데, 공장장님의 콘서트에 공연을 한 후, 퀵서비스로 홍대까지 날아왔다고 합니다. 무서운 질주 때문에 권순관은 막말(?)도 하고 실수도 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여기 저기서 도움을 주는 나루는 이번에는 베이스 세견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밴드가 첫 곡으로 애용하는 '끝나지 않은 노래'를 역시 첫 번째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 '그대 걷던 길'과 '고백하는 날', 어쿠스틱 세션에 어울리는 두 곡이 이어졌죠. 이어 오지은이 다시 무대로 등장했고 당연히 '오래전 그 멜로디'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오지은의 무대와는 반대로, 오지은의 노래를 노리플라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강렬한 '시야'였습니다.

마지막 곡이 끝났지만 스크린은 내려가지 않았고, 이날 공연한 조금 지나서 모든 뮤지션들이 등장했습니다. 다시 한 번 소개가 있었고, 모두 함께하는 곡들을 들려주었죠. 바로 해피로봇에서 발매한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의 수록곡인 '소리벽'과 'Hello'였습니다. 소리벽은 원래 이지형과 오지은은 듀엣 곡이고, Hello는 '요조'와 세렝게티가 불렀는데, 이날은 오지은과 세렝게티의 리더 '유정균'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MPMG Live THEY 2009'는 '마스터플랜과 해피로봇의 오늘'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민트 페스타'와는 다르게 좌석제로 진행되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죠. 하지만 이틀간 진행하기에는 소속 뮤지션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오지은, 노리플라이, 세렝게티, 이지형은 이틀 모두 공연할 예정이었지요. '민트 페스타' 시리즈와 'GMF(Grand Mint Festival)'처럼 상당히 큰 규모의 공연들을 진행하고, 여러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상당한 기획력을 보여주지만, 정착 소속 뮤지션들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인디씬의 대표 레이블이 되기에는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공연이 열린다면, 뛰어난 신예들을 많이 발굴해서 이틀 동안 전혀 다른 라인업으로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2009/09/13 17:39 2009/09/13 17:39

Mint Festa(민트페스타) Vol. 21 : Drift in 7월 19일 상상마당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1주일 남겨둔 지난 주말, 금토일 3일 연속 홍대 공연 출동으로 전야제가 아닌 '전주제(前週祭?)'를 지냈다고 하겠습니다. 일요일, 그 3일 연속 출동의 대미는 바로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Mint Festa(민트 페스타)'의 21번째 이야기(Vol. 21), Drift였습니다. '굴소년단', '오지은', '요조', '해오', 'Alice in Neverland(앨리스 인 네버랜드)'의 라인업은 초호화이자 제가 보고 싶어하는 뮤지션들을 모아 놓은 라인업이었구요. 라인업이 좋아서 아주 빨리 예매를 완료했는데, 초대권을 얻을 기회가 있어서 사실 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않은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죠.

이 초호화 라인업은 '홍대 인디씬의 대표' 수준의 라인업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각 뮤지션들의 앨범이 발매된 레이블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굴소년단'은 '일렉트릭뮤즈' 소속으로 '파고뮤직'을 통해서 EP와 1집이 유통되었고, '오지은'은 본인 자체 레이블 '사운드니에바' 소속이자 '해피로봇' 소속으로 역시 '해피로봇'을 통해 1집의 새로운 이슈와 2집을 발매하였습니다. '요조'는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역시 동일 소속사에서 앨범이 발매 및 유통하였고, '해오'는 '롤리팝뮤직' 소속으로 1집은 '비트볼뮤직'을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Alice in Neverland'는 앨범이 '엠넷미디어'라는 거대 자본을 통해 유통되기는 하지만 소속은 '트라이앵글뮤직'입니다. '펑크', '메탈' 등의 소위 '강한 음악 장르'들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런 장르를 즐겨듣지 않는 제 취향에서는 각 뮤지션들이 대표하는 '파고뮤직', '해피로봇', '파스텔뮤직', '비트볼뮤직', '트라이앵글뮤직'은 홍대 인디씬을 이끌어가는 중요 레이블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민트페스타가 '2009 GMF(Grand Mint Festival) 미리보기'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3시 30분부터 티켓팅 시작예정이었고 3시가 안되서 도착했을 때는 아직 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하니 줄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세 번째로 서있게 되었는데, 부스에서 벽보(?)를 붙이더니 '오늘의 행운 번호는 마지막 번호 3'이라더군요. 부스에 '멘토스'가 잔뜩 있어서 그걸 주나 했는데, 티켓팅을 시작하니 모든 사람들에게 주더군요. 4시 30분터 입장이 시작 예정이었지만, 리허설이 지연되면서 입장은 조금 늦어졌습니다. 입장할 때 번호표를 보더니 작은 종이 가방을 주더군요. 그 안에는 2만 3천원 상당의 티셔츠와 '스펀지하우스' 초대권 2장이 들어있더군요. 와우! 딱 봐도 이 공연을 예매하는데 지불한 2만5천원을 초과하는 사은품으로 '초대권 신청 못했으니 공연이라도 열심히 보자'는 자기최면에 가까운 동기와 아쉬움은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동기 상실'이었죠. 스탠딩 공연이었지만 라이브홀은 거의 가득 찼고, 공연은 5시가 조금 지나 막(사실은 스크린)이 올랐습니다.

오프닝은 데뷔앨범 'Lightgoldenrodyellow'를 발표하고 드물게 활동 중인 '해오'였습니다. 2004년 당시 '올드피쉬'의 멤버로 처음 본 기억이 있는데, 무대 위에 선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 시티팝을 지향하는 '해오'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앨범을 생각하면서 어쿠스틱 공연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깨고 밴드로 등장했습니다. 앨범의 첫 곡이기도 한 '바다로 간 금붕어는 돌아오지 않았다'로 시작을 알렸고 '오후 4시의 이별'과 'La Bas'가 이어졌습니다. 총 5곡을 들려주었고, 마지막 두 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은 새'와 앨범 타이틀 '작별'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30분 남짓의 짧은 공연은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번에는 기타리스트로서 일렉기타를 통해 화려한 해오의 모습을 보았으니, 다음번에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대해보죠.

해오 - 오후 4시의 이별(http://loveholic.net/46)
해오 - 작은 새(http://loveholic.net/47)
해오 - 작별(http://loveholic.net/48)

이어 '굴소년단'이 등장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다섯 팀 중 제가 가장 공연을 많이 본 밴드이지만, 정작 노래는 가장 모르는 밴드가 바로 '굴소년단'이기도 합니다. 공연으로 자주 본 밴드라서 음반으로 들으면 그 맛이 떨어져서 그런 것을까요? 멤버의 변화가 있었는데, 키보디스트가 탈퇴했는지, '어배러투모로우'의 '호라'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흔하지 않게 레게를 기반으로 그루브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 밴드 역시 1집 수록곡들로 들려주었습니다. 'Yuki Underground'와 'Today mode'로 분위기를 한껏 뛰어놓은 뒤, 무대에는 객원 보컬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City.M'의 '진영'으로, 굴소년단 1집에서 피쳐링으로 참여한 러브송 '초록빛의 방'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어 마지막 곡 'I must love'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비록 4곡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관객에게 '굴소년단'이라는 밴드를 각인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굴소년단 - 초록빛의 방(with 진영)(http://loveholic.net/49)

세 번째는 2집 'Festa in Neverland'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려버리고, 일상의 감정들을 꾸준히 들려주는 밴드 'Alice in Neverland'였습니다. 2집의 첫 곡이자 유쾌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Welcome to Festa'로 시작했습니다. 굴소년단이 달구어놓았던 뜨거운 분위기는 이 착한 밴드의 '착한 곡'들 덕분에 가라앉았지만, 이 밴드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관객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가 쓴 이 밴드의 앨범 두 장의 리뷰에 직접 리플을 달아주기도 한) 베이시스트(박진우 a.k.a 박연)의 뒷수습이 조금은 어려운 멘트는 역시 은근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역시 이 밴드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유려한 멜로디와 진취적 기상이 담긴, 착한 곡 '바람을 타고 온 편지'와 제목의 해석이 재밌는 곡(과연 아침에 하는 인사인지, 잠들기 전에 하는 인사인지) '안녕! 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이 밴드의 매력을 만드는 중요 요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바로 'CF의 여왕(최진경)'이 연주하는 아코디언이 아닐까 합니다. 아코디언은 멜로디언과 더불어 멜로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건반악기로서 피아노처럼 세련되거나 맑지는 않지만, '낡은 브라운관으로 보는 명작 만화'같은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이 '두번째 달'과는 다른 'Alice in Neverland'가 지향하는 지향점이라고 생각되구요.

하지만 착한 밴드가 꼭 착한 곡을 들려주지 않음을 실토하고는 착하지 않은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Neverland판 '놈놈놈(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주제가 'Neverland 횡단열차'였습니다. 착한 곡에서 여왕님이 들려주었던 매력의 중심은, 탱고로 무장한 나쁜 곡에서는 이 밴드의 '마스코트 바이올리니스트(조윤정)'에게 넘어왔습니다. 더구나 구석에 위치한 여왕님과는 달리, 무대의 중심에서 질풍처럼 출중한 실력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녀의 자태는 관객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은 1집 수록곡으로 흥겨운 아이리쉬풍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이 곡을 통해 분위기는 다시  상승했습니다.

Alice in Neverland - Welcome to Festa(http://loveholic.net/50)
Alice in Neverland - 안녕! 하루(http://loveholic.net/51)
Alice in Neverland - 집으로 가는 길(http://loveholic.net/52)

나머지 남은 두 팀(?), 아니 두 뮤지션은 바로 '요조'와 '오지은'이었습니다. 앞선 세 레이블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 홍대 인디씬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텔뮤직'과 '해피로봇'를 대표하는 두 뮤지션(더구나 둘다 여성)이기에 누가 마지막에 등장할지도 기대되고, 무대 위에서의 기싸움(?)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홍대 마녀(혹은 여왕)', '오지은'이었습니다. 앨범 제작을 위한 모금 시절부터 알게된 그녀이기에 다른 팀들과는 인연이 또 다른데, 그녀가 이렇게나 멀리까지 날다니 대단합니다. 첫 곡은 위태하고 위험한 분위기의 '진공의 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게스트가 아닌 그녀 자신의 무대에서 기타를 들지 않은, 완전한 여성 락커의 모습으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이어 보통 앵콜곡으로 즐겨부른다는 1집의 '24'가 이어졌습니다. 단독 공연이 아니기에, 앵콜이 없다는 의미었죠. 예전의 모습처럼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를 둘러매고, '2집에서 한 곡 1집에서 한 곡'의 콤보를 이어갔습니다.  엉뚱하고 솔직한 매력의 '인생론'과 따뜻한 어쿠스틱으로 충만한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가 이어지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의 네 곡을 통해 그녀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콤보의 변칙'으로 2집, 1집의 순서가 아닌 1집, 2집의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갈아먹는 마녀'를 있게한 곡 '화(華)'가 이어졌습니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1집의 타이틀 곡이자,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곡이기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마지막은 2집의 타이틀 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였습니다. 역시 소속 레이블의 위력인지, 한 곡 한 곡이 짧지 않은데도 앞선 팀들보다 많은 6곡을 들려주었고, 더불어 그녀의 입담은 앞선 밴드들이 마치 그녀의 공연을 위한 게스트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오지은 - 진공의 밤(http://loveholic.net/53)
오지은 -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http://loveholic.net/54)
오지은 -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http://loveholic.net/55)
오지은 - 화(華)(http://loveholic.net/56)

레이블 전쟁의 최종 승자는 파스텔뮤직이었나 봅니다. 마지막은 '홍대 여신'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요조'였습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합작 앨범을 발표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이하 소규모)'의 공연을 통해서 였습니다. 합작 앨범 'My Name is Yozoh'를 발표하고 소규모와 요조는 각자의 길을 갔고 어느덧 요조는 '여신'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2008년 초에 본 그녀의 공연에서는 아직 여신으로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 사이 솔로 1집을 발표하고 수차례의 단독 공연을 갖은 그녀는 어떻게 성장해 있었을까요?

합작 앨범 수록곡 '슈팅스타'를 시작으로 '여신 요조'의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상하지 않았던(음반에서도 들을 수 있는), 추임새 '아뵤~'를 '실전'에서 보여준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엉뚱한 매력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재주소년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1집 수록곡 'Sunday'에서는 바로 공연 당일이 노래 제목과도 같은 일요일인 점을 착안한 에드립을 보여주었고, 뽕끼가 넘치는 합작앨범의 '사랑의 롤러코스터'가 이어졌습니다. 역시 합작앨범의 '그런지 카'에서는 관객 한 명을 '변태 총각'으로 매도하는 만행(?)을 보여주었습니다.

단독 공연이 아니었지만 요조의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졌고, 그 나뉨을 알리는 '자체 게스트 공연(?)'도 있었습니다. 바로 요조의 공연에서 언제나 기타 세션을 해주고 있고, 동남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관영'의 순서였습니다. 요조의 엉뚱함에는 관영의 존재도 한 몫하는 모습입니다. 무대 위의 '요조'는 단순히 솔로 뮤지션 '요조'가 아닌 그녀를 도와주는 세션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밴드 '요조'가 아닐까 합니다. 좀 이상한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밴드 'Marilyn Manson'이 동명 밴드의 카리스마의 주축인 리더 이름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작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탈퇴하였다가 최근 앨범에서 다시 합류한) 'Twiggy Ramirez'를 포함한 밴드 전체를 의미하는 이름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요조가 Manson이라면 관영이 Twiggy라고 할까요?)

'바나나파티'이 이어지는 '모닝스타'에서는 그 '요조' 밴드의 농밀함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래 맑고 조용한 곡이지만, 공연에서 들려주는 기타와 퍼커션의 불온하면서도 농밀한 기운은 요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보컬과 어우러지면서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헀습니다. 뽕끼가 조금은 겉힌 '꽃',  솔로의 마지막 곡인 '그렇게 너에게'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앵콜곡 성격의, 요조의 대표곡 'My Name is Yozoh'로 긴 공연의 문을 닫았습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공연과 그의 일부인 무대 매너에서까지 그녀를 '홍대 여신'이라고 불릴 만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요조 - 슈팅스타(http://loveholic.net/57)
요조 - Sunday(http://loveholic.net/58)
요조 - 그런지 카(http://loveholic.net/59)
요조 - 바나나파티(http://loveholic.net/60)
요조 - 꽃(http://loveholic.net/61)

앞서 오지은이 앞선 밴드들을 게스트로 느껴지게 했는데, 요조는 그런 오지은 마저도 게스트로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8곡(관영의 부른 곡까지 합한다면 9곡)을 들려줌으로서 레이블 전쟁(?)의 승자는 '파스텔뮤직'과 '요조'임을 확인시켰습니다. 하지만 요조가 부른 곡들이 대부분 '소규모'와 합작 앨범 수록곡이거나 리메이크 곡이어서 싱어송라이터 '요조'를 보여주기에는 분명 미흡한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완성도의 음반들을 다수 발매하고 있는 '파스텔뮤직'이지만 최근 공연 기획에서는 '해피로봇'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분발이 필요하겠습니다. '양질의 음반'도 분명 중요하지만, 인디씬 자체는 '활발한 공연'을 통한 청취자(혹은 소비자)들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취향의 밴드들, 더구나 서로 다른 빛깔의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들이 5팀이나 등장하기에, 3시간이 조금 넘는 스탠딩의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2009/07/23 17:43 2009/07/23 17:43

노리플라이(No Reply) 1집 Road 발매 기념 공연 in 7월 11일 SoundHolic

2009년 7월 11일 홍대 앞에 위치한 클럽 '사운드홀릭(SoundHolic)'에서 얼마전에 데뷔앨범 'Road'를 발표 한 노리플라이(No Reply)'의 1집 Road 발매 기념 공연이 있었습니다. 노리플라이는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하는 '권순관'과 기타를 담당하는 '정욱재'로 이루어진 남성 2인조 밴드입니다. 제 17회 유재하 가요제(혹은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뒤돌아보다'로 은상을 차지했고 해피로봇 레코드에 입사하여 1집을 발매하게 되었죠.

상당히 인기가 있는지 공연 티켓은 현장 판매 없이 예약 판매로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번 공연을 초대로 보게되었는데, 초대이기 때문인지 입장번호가 200번이 넘어가서, 좌석은 약 200개이기에 스탠딩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운좋게도 거의 맨 뒤쪽의 의자에 앉을 수있어서 그나마 덜 불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7시가 조금 지나서 1집의 첫 곡인 '끝나지 않은 노래'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싱글 수록곡 'Boy', 컴필레이션 '강아지 이야기'의 수록곡 '강아지의 꿈', 1집 수록곡 'Road'가 이어졌습니다. 큰 인기를 얻어 싱글로 발매되었던 '고백하는 날'을 부를 때는 게스트 '나루'의 난입이 있었습니다.

그의 게스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1집을 같은 소속사에서 먼저 발매했기에 선배이자, 정욱재의 동네 친구라는 '나루'는 노리플라이 1집에서 함께한 'Violet Suit'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노리플라이와 세션들의 퇴장이 있었습니다. 따지자면 그 순간이 1부의 마지막이었다고 할까요? 나루는 '강아지 이야기'와 짝을 이루는 컴필레이션 '고양이 이야기'의 '연극'을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의 곡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곡이라네요.

이어서 두 번째 게스트로 '오지은'이 등장했습니다. 오지은은 노리플라이와 같은 유재하 가요제에서 노리플라이의 은상보다 밑인 동상을 차지했었죠. 하지만 노리플라이가 앨범 1장을 낼 동안 2장을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지은은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MR과 함께 그녀의 2집 타이틀 곡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를 들려주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공연이었는데, 기타를 연주하지 않고 노래만 하는 모습은 그녀의 1집 발매 기념 공연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노래만 하는 그녀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저질(?) 손동작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노리플라이가 다시 세션들과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집에서 오지은과 함께 헀던 '오래전 그 멜로디'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곡만 같이하는 점은 아쉬웠는지, 오지은 2집 수록곡이자 제목이 너무 긴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를 들려주었습니다. 오지은의 가창력은 좋았지만, MR을 사용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무대 매너는 역시 서툰 노리플라이와 비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차이 때문에 게스트인 오지은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었구요.

오지은이 퇴장하고 본격적인 2부가 시작되었고 그 시작은 지금의 노리플라이를 있게 한 곡 '뒤돌아보다'였습니다. 이어지는 '솔로 타임'은 두 멤버가 각자 솔로로 노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권순관은 그의 키보드와 함께 1집 수록곡인 '흐릿해져'를 멋지게 불렀습니다. 이 곡은 제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정욱재는 과연 어떤 곡을 부를지 궁금했는데, 그는 밴드의 곡이 아닌 유명곡을 불렀습니다. 바로 'Knockin' on heaven's door'였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곡었고 너무나 유명한 뮤지션들이 커버곡으로 많이 불렀기에 아쉽게도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이어서 데뷔앨범의 타이틀 곡인 '그대 걷던 길', 전철을 타면서 느낀 느낌으로 만들었다는 'Fantasy Train'이 이어졌고, 공연의 마지막 곡은 앨범에서 가장 화려했던 'World'로 스트링이 없어도 그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역시나 앵콜 요청이 있었고 아마도 이 밴드의 최고 인기곡이라고 생각되는, 컴필레이션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의 수록곡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을 들려주었습니다. 분위기는 고조되어 모든 관객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깜짝 게스트로 이 곡을 같이 불렀던 '타루'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타루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야'를 끝으로 공연은 끝났습니다.

상당히 많은 곡들이 지나갔지만 공연시간인 예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첫 공연은 아니었겠지만,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라는 거창한 제목 때문인지 모두 긴장을 했고, 눈에 보이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아쉬운 점은 그 긴장 때문인지 노래와 더불어 공연의 중요 요소이고, 앨범만 듣지 않고 공연을 찾게되는 요소인 '공연의 여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멘트에서는 많이 부족헀습니다. 그래서 게스트가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구요. 앨범 수록곡들은 탁월했지만, 더 오래 사랑받는 밴드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그 곡들을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그 여백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하겠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진 노리플라이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09/07/13 01:22 2009/07/13 01:22

오지은 - 지은 (2집)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지은'으로 데뷔했지만, 거대 기획사에 밀려 '오지은'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두 번 째 앨범 '지은'.

앨범 타이틀이 1집과 마찬가지로 '지은'입니다. 이것도 그녀만의 identity라고 해야할까요? 앨범 자켓도 역시 본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난 '지은'과는 다르게 이번 '지은'은 컬러에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뇌쇄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그렇기에 같은 '지은'이지만 다른 '지은'입니다. 앨범 수록곡들의 방향에 대한 '복선'이랄까요? 야심차게(?) 전작과 같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2집을 살펴보죠.

'그대'는 앨범의 첫 곡이지만 마지막 곡이라고 해도 어울릴 분위기의 곡입니다. '그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그대'의 반복에서는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 절절함 때문에 가사에는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곡이 기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이별의 노래로 들립니다. 1집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에서 선보였던 곡으로 그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1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어필할 법합니다. '말주변'과 '요령'이 없는 '그대'가 그녀에게 한 '그런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진공의 밤'의 두드러지는 베이스와 드럼 연주의 어둡고 무거운, 퇴폐적인 분위기는 '오지은'이 아닌 '네스티요나'에게서나 들을 법한 곡입니다. 숨막히는 스릴러 영화같은 분위기는 그녀의 또 다른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약', '자빠트리면' 이런 묘한 상상을 하게 하는 단어들은 이 곡을 더 위험하게 합니다.

긴 제목의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는 경쾌한 분위기의 모던락 넘버입니다. 전작의 '부끄러워'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로 제목만으로는 다음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 니고'와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두 곡은 많이 다른 분위기이지만 가사를 살펴봐도 역시나 한 쌍 같습니다. '요즘 가끔 드는 생각'과 '잊으려했던 진실'은 바로 다음 곡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순정만화'의 수록곡 '이게 바로  사랑일까'까지 생각한다면 '사랑'에 관한 3색의 3부작이라고 하고 싶네요.

앨범 타이틀 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섬뜩한 사랑의 진실에 대해 노래합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발상을 뒤지는 충격적인 가사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가사와 더불어 짙은 호소력의 목소리는 이 곡의 흡인력을 절정에 다르게 합니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진실은 이 곡의 '잔인한 미덕'입니다. 풍성한 연주는 귀를 더욱 즐겁게 합니다. 무대에서 이 곡을 통해 본격적인 락커로서 보여줄 그녀의 모습이 기대가 되네요.

'인생론'과 '웨딩송'은 그녀의 어떤 인터뷰처럼 정말 멋대로 만들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곡입니다. '인생론'의 코믹스러운 보컬과 솔직한 가사는 앞선 트랙들에서 쌓아놓은 그녀의 분위기를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웨딩송'은 그 바톤을 이어받아 듣는 사람이 얼굴 빨개질 정도로 솔직한 가사를 들려줍니다. 또 그런 점들은 두 곡을 J-pop처럼 느껴지게도 합니다. 전작의 '그냥 그런 거에요'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의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을 듣고 있으면 그 여유로움에 빠져듭니다. 수평선 넘어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서서 우크렐레 선율에 맞춰 '훌라 춤'이라도 느릿느릿 춰야할 분위기입니다.

앨범의 '화려한 그래서 낮선(?) 전반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익숙한 후반부'를 시작하는, '푸름'은 엄숙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다른 트랙들과는 이질적이며, 피아노와 현악은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제가사는 꼭 한 편의 시조를 듣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목은 '푸름'이지만 듣고 있으면 '주름'이 생길 법도 합니다. '잊었지 뭐야'는 몽롱한 기억같은 몽환적인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후반부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이 곡도 마찬가지로, 이별 후에 깨닳음에 대해 노래합니다. 곡 분위기는 마지막 곡 같지만 아직 네 곡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익숙한 새벽 3시'는 이별의 후유증을 노래합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막연한 누군가가 무작정 그리운 새벽 3시의 감정들은, 아픈 이별들 겪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법합니다. '두려워'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합니다.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기억의 상처 때문에 사람은 복잡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더 복잡한가 봅니다. 앨범 전반부가 서로 다른 개성의 곡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면, 잔잔한 후반부는 이 곡에서 클라이막스를 들려줍니다.

'차가운 여름밤'은 앨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으로 전작의 '작은 방'같은 분위기입니다. 보컬과 연주를 한 번에 녹음했는지, 라이브를 같은 거친 느낌이 앞의 12트랙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7분에 이르는 긴 트랙인데도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보너스 트랙 '작은 자유'는 앞선 사랑 이야기들의 잔잔한 에필로그같은 곡입니다. 아픔, 두려움, 고통 모두 사라지고 모난 마음이 둥근 조약돌이 되어 평온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 너무 멀리있지만 더 큰 사랑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분한 기타 연주는 그 평온함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마지막 허밍에서 마음의 평온과 여유가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소속사가 생기고 좀 더 넉넉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지난 앨범에 비해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지난 '지은'의 성공 덕분인지 이번 '지은'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뭔가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결과물이 조금 아쉬웠던 전작과는 달리, 어깨에 힘은 빠졌지만 좀 더 자신있는 목소리는, 좀 더 '지은답게' 들립니다. 더 멋진 지은이 되어 돌아온 '지은',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01 15:03 2009/05/01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