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문 - 로버트 A. 하인라인

SF 장르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여름으로 가는 문(1957)'은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부터 시작해서 SF답지 않은 제목에 의아했던 작품이다. 혹시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나 했지만, 원래의 영문 제목도 'the Door into Summer'로 다를 바 없다. '스타쉽 트루퍼스(1959)'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기에 이 작품은 어떤 미래(혹은 과가의 작가가 꿈꾼 우리의 현재)를 그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0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활자가 커서일까? 아니면 작품이 너무 지지하지 않아서일까? 오랜만에 쉽게 쉽게 읽어나간 작품이었다.  SF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 시간 여행을 위한 왕복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냉동 수면'과 '타임머신'이라는 SF적인 재료로 쓰여진 이야기지만, 시간 여행이나 시간 여행으로 인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의 위한 중요한 '양념' 정도로 쓰일 뿐이다. 놀랍게도 SF 거장이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에 가까웠다. 사실 정통 로맨스라기 보다는, 고결한 사랑을 이룩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SF의 거장'에게 '전형적인 SF 작품'를 기대한 'SF 독자'라면 이 정도도 대단한 로맨스라고 할 만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문제와 관련되어 다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로리콘'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 미국은 요즘 이슈에 자주 등장하는 소위 '베이비붐' 시대이기에 그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도 어떠했을 지도 궁금하다. '시간을 초월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후대의 '조 홀드먼'이 '영원한 전쟁(1975)'에서 보여준 '시공을 초월한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영원한 전쟁 속 주인공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뤄낸 사랑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속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미국적 위트도 녹아있는 이 작품은 분명 정치적, 군사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고전 SF 작품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역시 미국인답게 장황한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은 이야기를 크게 부풀린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SF 형식을 빌린 기행문같은 '여름으로 가는 문'은 다른 장르의 소설 못지 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은 본문 속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다분히 중의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댄과 그의 고양이가 찼었던 진짜 여름의 날들은 결국 시간 여행을 통해 '찾은 아름다운 사랑의 날'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댄은 애완동물은 '고양이'로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평행우주에 관한 반전적인 부분이 등장하는데 혹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2014/01/13 17:32 2014/01/13 17:32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

독보적인 세계 최강국 '미합중국(미국)'와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을 들여다보면, 자주 발견되는 단체의 이름이 보이곤 한다. 바로 수 많은 비밀과 음모를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름의 '프리메이슨'이다. 그와 함께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이 '템플 기사단'이나 '일루미나티'다. '그레이엄 헨콕'과 '로버트 보발'이 함께 쓴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는 오랜 시간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의 배후로 지목되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템플 기사단'을 다루는 책이다. 그레이엄 헨콕은 '신의 지문'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저자이기도 하다.

제목인 '탤리즈먼'은 '종교적 염원 혹은 신념이 깃들어 현세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민속 신앙 속의 '부적'이나 '장승'도 탤리즈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박했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로 운을 띄운 긴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문명시대까지 조명한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승자'로서 문명의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를 강력하게 지배해온 '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역사만큼 혹은 더 오래 존재해온 이단 종파와 이교적 사상과 철학에 관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보다 더 순수하고 이상적으로 종교다우면서도 훨씬 '이성적인'이 이단과 이교의 사상이 많은 사람이 '기독교'과 '성경'에 품었을 의문들을, 이성적으로 더 잘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과 이교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속세에 의연한 종교인다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통 기독교에 의해 박해받았던 이단 종파의 수행자들의 모습이 도교의 '도사'들이나 불교의 '승려'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고대 헤르메스 주의와 유대교 신비주의 등과 자유롭게 사상을 공유하면 '철학적 사조'에 가까웠던 순수 기독교는 다분히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정통이하고 자부하는 한 종파'에 의해 현재에 이른다. 성서 직해주의적인 소위 '정통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들에 의해 받았던 박해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이단이었던 종파들과 이교를 '로마의 황제들처럼' 배척하고 박해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헤르메스 주의에 기반을 둔 이 이단 혹은 이교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고 마니교, 카타리파 등 시대에 따라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헤르메스주의적 사조'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그 반격들은 번번히 실패했고 비밀결사로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바로 '템플 기사단'이라도 한다. 역시 이단으로 몰려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비밀결사로 이어졌고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졌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비의적이고 열성적 계파 정도로 볼 수 있다.)

프리메이슨은 아직도 비밀결사 조직이기 때문에 그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는 구성원이 아니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근대화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의 역사적 공헌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음모론에서 이야기하는 프리메이슨의 모습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 점차 지지 기반이 약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세한 승자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에 의해 악의적 왜곡이 의심되기도 한다.

종교와 비밀결사에 관한 내용을 방대한 고증과 적절한 추리로 풀어내는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달하는 분량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다만 인물사전처럼 수 많은 이름들, 특히 프랑스식 낯설고 긴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여 기억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다분히 원서를 직역한 듯한 번역체는 몰입을 방해하는 또 다른 단점이다.
2013/12/30 13:55 2013/12/30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