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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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베스트셀러 '세계대전 Z'의 작가 '맥스 브룩스'의 책은 두 권이 더 국내에 번역되었는데, 모두 '세계대전 Z'와 관련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세계대전 Z 외전'이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는 작가가 '세계대전 Z'를 발표하기에 앞서 내놓은 책으로 가상에 바탕을 둔 '소설'이 아닌 논픽션으로 분류되는 점이 흥미롭니다. '덕(덕후) 중에 최고의 덕은 양덕(양키 덕후)이고, 양덕 가운데서도 밀덕(밀리터리 덕후)가 으뜸이다.'라고 하는데, 보통 총기 등의 무기류의 소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 '밀리터리 덕후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실정에 맞는 '생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가상의 적으로 '좀비'를 내세웠지만, '좀비'가 아니더라도 '치사율이 높은 심각한 전염병'이나, 핵전쟁 혹은 핵발전소 폭발 같은 '방사능 유출 사고', 아니면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대규모 폭동이나 전쟁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지식들로 가득하다. 앞서 밀덕을 언급했듯이, 무기와 전투에 관한 지식과 기술은 물론 인간으로서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들도 포함되어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밀리터리 덕후 + 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가 될 수 있게 하는 안내서라고 할까? 물론 진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서적을 통한 학습과 훈련, 그리고 실전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이 책은 그 과정에서 헤매지 않고 지름길을 알려주는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입문서'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밀리터리 덕후는 물론 생존 전문가와는 더욱 동떨어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책이 쓰여진 시간적 순서대로 '세계대전 Z'보다 먼저 읽으려면 상다히 따분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세계대전 Z'를 먼저 읽고나서 읽는다면 그 내용들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올 수도 있다. 게다가, 심각한 망상에 빠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비관주의자거나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커다란 사태에 대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법하다. 물론, 지금 당장 '세계대전 Z'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읽고 숙지한다면 몇 일 혹은 몇 주는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겠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무지'이니까. '가이드'라는 이름처럼 일종의 '실용서적'으로 볼 수도 있는데, 좀비에 대비하는 지식을 얻으면서 따라오는 '마음의 평안' 혹은 '든든함' 덤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기록에 남은 좀비 공격 사례'를 읽고 있으면 '좀비'는 가상의 질병이 아니라,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현실로 다가온다. 꽤 많은 사례들이 실려있는데,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기록되었고, 꽤 여러 민족과 문화에서 좀비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들에 관한 전설이나 민담 등이 전해져 내려오는 점을 보면 단순히 공상으로 치부할 수도 없지 않을까? 우리가 재난이나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일처럼, 좀비 사태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세계대전 Z 외전'은 제목처럼 '세계대전 Z'의 연장선에 있는 내용이다. 다만 보고서나 다큐멘터리 같았던 원작에는 실릴 수 없었던 다른 성격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본편이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체험담을 전달하는 형식이었기에, 인터뷰 형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거나 인터뷰로는 밝혀질 수 없는내용들을 담았다. 본편에도 작품 속 저자가 수집한 내용들 가운데서 삭제된 부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삭제된 내용들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주는 책이 이 외전일 수도 있겠다.  특히 인간이 아닌 종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좀비 전쟁은 신선했다.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사가(Twilight Saga)'처럼 뱀파이어 열풍에 편승한 느낌도 있지만, 판타지가 아닌 다분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생존'의 문제에서 바라본 좀비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은 참신하다. 더불어 맥스 브룩스라는 작가의 다른 역량도 조금 살펴볼 수 있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혹시 이런 현대 판타지물이 되지 않을까?
2014/09/05 10:23 2014/09/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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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기원 혹은 조상에 대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과 역사'라는 주제는 인간이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후로 '우주의 기원과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호기심의 영역에 있었다. 두 주제는 모두 20세기까지도 미지의 영역에 가까웠다. 그 기원에 관해 수 많은 '설'이 존재했고 또 그만큼 많은 반론이 존재했다. 하지만 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천체물리학도 발전하면서 20세기에 우주의 탄생에 관한 '빅뱅 이론'으로 그 기틀은 갖춰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더 많은 부분들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빅뱅 이론'은 이제 우주 탄생에 관한 정론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인류의 기원도 20세기까지 밝혀진 부분은 많았다.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원하여 지구 곳곳의 대륙으로 퍼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빅뱅 이론'만큼 기초 과학 상식이 되었지만, 어떤 경로로 어떻게 거의 전 지구에 퍼졌는지는 20세기 말까지도 의문점으로 남아있었다. 더구나 인간처럼 뛰어난 지능과 적응력으로 지구 곳곳을 이동한 동물은 이전까지 없었고, 인류의 이동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 문제를 결정하는 '자연환경의 변화' 뿐만 아니라, 농업과 항해술 같은 기술 발달이나 인간 사이의 갈등(대표적으로 전쟁)에도 영향을 받았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역사적 사료로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는 최소 수십만 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에서 만 년이 채 되지않는다. 그러다가, 모든 동식물에 존재하는 게놈, 유전자(gene), 그리고 DNA가 밝혀지면서 이 기원을 추적하는 강력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세기 말까지도 기술적인 측면 그리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 단서들을 대규모로 이용하기에는 제한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200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되면서, 이 단서를 탐구하는 '유전학'의 새 지평이 열렸다.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는 원제 "Deep Ancestry inside the Genograhic Project"처럼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염색체와 DNA 단위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나서는, 거댄한 범지구적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스펜서 웰스'가 집필한 전작 "The Journey of Man : A Genetic Odyssey(2004)", 국내 번역판 '최초의 남자'의 연장선에 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의 최근 발견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동시에 참여를 호소하는 책이다. 모계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와 부계 유전되는 'Y 염색체'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내용들은, 일반인들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써놓았으나 생물학이나 유전학의 지식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의예과 시절에 배웠던 '유전학' 지식들을 새록새록 되살려냈다.

연구의 최근 발견들은 역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지만, 그 이동 과정은 예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뤄진 연구여서 그럴까? 아프리카 기원에 관한 내용은, 이 책보다 나중에 출간되었지만 먼저 읽었던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과 교차점이 된다. 그리고 이 인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하고 방대한 작업은 단순히 유전학적 지식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단다. 인류의 유전학적 발자취를 돌아보는 일은, 실제로 인류가 지구 위에 남긴 흔적들을 탐구하는 '고고학'과 '인류학'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이 재밌다. 생각해보면, 전세계에서 모은 염색체 자료를 바탕으로 실험실에서 발견한고 추론해낸 '유전학적 연대'는 실제 현장에서 알아낸 '고고학적 연대'와 일치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은 당연하겠다. 실험실의 기초 과학을 벗어난 물리학이 천문학과 만나 천체물리학이 되는 모습과도 비슷한데, 현대의 수 많은 과학기술 학문들은 이제 서로 얽히고설켜서 점점 더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최근 범죄 현장에서 남겨진 머리카락이나 신체 일부 속에 있는 DNA로 범인을 알아내는 방법처럼, 이제 조만간 역사학과 인류학의 고증에서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유전학적 검증이 필요한 시대가 열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논쟁도 유전학을 통해 종결되는데,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유전적으로 우리의 조상들과는 매우 다른 아종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선조가 아닌 셈이다. 인류와의 생존 경쟁에서 뒤쳐져서 멸종했다는데, 정말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적인 도태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서론을 시작으로 최근의 연구 내용을 도표와 더불어 업데이트하는 본론, 그리고 연구 참여자, 연구 방법, 연구 윤리, 연구의 한계점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결론은 꽤나 장황하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한 편의 '연구 논문'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 연구와 관련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읽기 쉽게 쓰여졌을 뿐이다. 이 연구는 이 책이 발간된 2007년에도 진행 중이었고 2010년에 종료 예정이라는데, 연구의 최후 결론을 알리는 후속 도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재밌는 점은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제노그래픽 프로젝트 웹사이트(https://genographic.nationalgeographic.com/)를 통해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송비를 제외하고 약 160달러에 구매할 수 있는 'DNA test kit'을 구입하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고 자신의 '유전학적 기원'을 알 수도 있다. 참여는 이 키트를 이용해 '구상상피세포'를 채취해서 다시 돌려보내면 간단하게 가능하다. 160달러를 지불하고 또한 염색체를 제공하여,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시에 이 '비영리 프로젝트'를 위한 기부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참여자 자신을 포함한 인류의 기원을 알아내는 연구에 참여하는 test kit이기에 정식 명칭은 'DNA Acestry Kit'라고 한다. 이 Kit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이 2014년 6월에 올라왔고, "Geno 2.0"이라는 주제가 붙은 점으로 볼 때 2010년에 전 단계의 연구를 종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계로 나아갔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2010년까지 완성된 인류의 '유전자 계보'를 바탕으로, 참여한 일반인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유전학적 족보'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프로젝트의 입장에서는 윤리적이면서도 재정적으로 안정되게 '유전자 풀(gene pool)'을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나온 Kit라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인류 모두를 위한 거대한 연구에 참여하는 '킥스타터'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2014/08/05 01:30 2014/08/05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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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실의 시대'를 이제야 읽었다. 사실 2010년에 새책으로 구입했고  2011년부터 읽기에 도전했는데, 초중반을 넘어가면 읽기가 어려워져 두 번이나 중단을 했었다. 왜 그랬을까? 문학 서적을 읽을 때는 그런일이 없었기에 아이러니할 뿐이다.

수필집인 '무라카미 라디오'와 단편소설집인 'TV피플'을 제외하면 내가 읽은 하루키의 장편소설은 순서대로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1Q84' 정도로,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초라한 수준이다. 세 작품은 떨어져있지만 관련있는 '두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실의 시대는 이 세 작품과는 다르게, 다분히 '연애소설'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어느 시점에서 성장을 멈추고 노화를 시작하지만 정신은 육체와 다르게 죽는 순간까지도 성장이 가능한 점처럼, 연애소설이면서도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성장소설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연애, 사랑 역시도 삶의 한 과정이고 성장의 한 과정이기에 연애소설과 성장소설의 공통분모는 꽤 많다. 그리고 사랑은 사람의 삶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요소가 아니던가?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슬픔과 낭만, 결핍과 공허가 공존하는 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소설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시간을 위주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시절은 사랑의 슬픔과 낭만이 공존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인물들은 모두 '성장의 과정'에서 뭔가 '결핍'된 사람들이다. 결국 죽음으로 영원히 함께한 비운의 연인 '기즈키'와 '나오코'에게는 성인에게 필요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용기' 혹은 '자아 성장'이 부족했다. 선배 '나가사와'는 세상을 사랑하는 '포용' 혹은 '너그러움'이 결핍되었고, 그를 사랑했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한 '하쓰미' 역시 '현실감각' 혹은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정상에 가까웠던 '레이코' 역시 비슷한 이유들로 정신병을 앓았다. 그나마 와타나베를 구원할 수 있는 '미도리' 역시도 성장 과정에서 '애정'이 결핍되어 애정에 큰 갈증을 느끼는 여자였다. 상당히 견고하고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 역시도 그 고지식함은 아주 '미세한 균열' 같은 결핍에서 기인했으리라 생각된다.

하루키의 비교적 초기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이 잘 녹아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다분히 현실 세상인 '도쿄'와 나오코와 레이코가 머물었던 '환상 속 세상' 같은 '아미료'로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하루키의 인기 소설들의 공통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주인공 와타나베의 모습은 하루키의 소설들 속 견고하고 건실한 주인공의 전형이고, 무뚝뚝한 미도리 아버지의 모습 역시 하루키 작품들 속의 전형적인 아버지 모습과 닮아있다. '미도리'로 대변되는 '구원자' 역시도 공통적인 요소이다. 미도리에게 전화하면서 끝나는 장면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음악이 빠질 수 없는데,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이 바로 '비틀즈(the Beatles)'의 곡 'Norwegian Wood'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목의 유래처럼 작가 하루키의 '문화적 취향' 역시도 잘 녹아있어서, 음악과 문학에 관한 그의 사랑이 엿볼 수있다. 그가 사랑하는 음악은 클래식과 째즈 그리고 올드팝 정도로, 그가 존경하는 '스콧 피츠레럴드'로 대변되는 그의 '문학적 취향'처럼 '음악적 취향'도 상당히 미국적이라는 점이 재밌다. 원제 '노르웨이의 숲'은 다분히 '아미료'의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소설이 유럽에서 쓰여졌다기에 그 영향일까도 생각했지만, '노르웨이'가 있는 '북유럽'이 아닌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국가인 '그리스'와 '이탈리아'란다. 하루키는 그 온화한 날씨 속에서도 '노르웨이의 차가운 숲'을 상상하고 있었을까? 이 소설이 겨우내 쓰여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작품은 70년대 말 대학생들의 사회 저항 운동인 '동맹 휴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질풍노도처럼 어지러웠던 주인공 와타나베의 '내면 세계'만큼이나 세상도 어지러웠고, 그렇기에 '세상을 보는 가치관'과 직결된 그 결핍들이 더 크게 부각되었을 수도 있겠다. 마침 이미 알고 있는 일본 노래이자, 이 실패한 저항 운동이었던 '동맹 휴학'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인 '모리타 도지'의 '우리들의 실패'가 떠올랐다.

역시 매우 재미있고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그만큼 슬프고도 아픈 소설이다. 죽음 역시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껴안아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앞으로 내가 겪게될 죽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을 뻔했다. 젊음이란 아름답지만 그만큼 덧없고 슬프다. 의미 없이 허비된 내 지난 젊음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너무나도 공허하면서도 아리게 다가왔다.

1987년에 발표된 소설이기에 국내에도 다양한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가에 의해 출간되었다. 내가 읽은 '상실의 시대'는 가장 널리 판매되었다고 할 수 있는 '문학사상'의 책으로, 1989년 초판이 출간된 후 2010년에 나온 3판이다. 최근에 나온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가의 '노르웨이의 숲'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2014/07/14 01:58 2014/07/1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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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 도서/영화/TV시리즈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포스트묵시록(postapocalypse)'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좀비물'의 인기인데, 1950년대 소설을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비롯한 '좀비 영화'는 역시 최근 소설을 각색한 영화 '월드워Z'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TV시리즈로는 '워킹 데드'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2008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도 일면에서는 그런 '종말적 재앙 뒤의 세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대중문화적 현상에 궤를 같이하는 책이라고 할 수있겠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흥미 위주로 쓰여진 소설이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정교한 과학적 예측이 첨가된 논픽션이다. 작가는 고고학, 생물학, 화학, 해양학, 토목건축학 등 과학의 각 분야들(그리고 그 세부 분야들)의 전문가들과의 협조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지를 돌며 인간이 없었던 과거와 인간의 등장 이후,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상까지 다각도로 조명한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스미스 요원'은 '네오'에게 '인간은 바이러스와 같다'고 말한다. 지구와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숙주에 침투하여 숙주를 이용하고 결국에는 파멸로 몰아가는 지독한 '바이러스'처럼, 인류도 '지구'와 '대자연'이라는 숙주에 기생하면서 그 혜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구와 대자연을 파괴하고 결국에는 인류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류가 유인원에서 벗어나 도구를 사용하고 문명을 개척해나간 역사는 '파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도 '수렵 생활 동안 자행된 인류의 (전격전에 비유되는) 대학살과 그로 인한 대형 포유류의 멸종 가능성'과 '농경 생활에 따라 자행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숲과 목초지의 대파괴'를 언급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화석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최근 2세기 동안에는 그 파괴가 더욱 가속되었고, 인류 등장 이후 어느 순간보다 더 많은 생물종이 멸종되고 있다.

결국에는 '자연과의 조화와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책이지만, 그 이상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직도 코끼리나 코풀소, 하마와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건재하는 아프리카 대륙과는 다르게,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형 포유류가 서식하지 않는 이유는 꽤나 충격적이다.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아메리카로 건너간 인류의 '전격전에 가까운 대량 학살'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역시 다분히 인간 중심의 가치 판단이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처럼 '악하고 파괴적'이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친환경 플라스틱' 혹은 '광분해 플라스틱'이라고 알고 있는 플라스틱들도 자연에서 완전히 분자 수준까지 분해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분해되지만, 현미경으로는 보이는 수준이어서 결국 바다의 미생물들이나 작은 생물들에게 먹이로 오인되어 흡수되고 먹이 사슬을 따라 상위 포식자로 갈 수록 농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상당히 께름칙할 따름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희망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우리 인간이 없어지면, 인류가 길들였던 몇 종의 동물과 식물들을 제외하면, 아프리카 세렝게티를 비롯해 여러 대륙 곳곳에 아직 상처 없이 남아있는 산과 숲과 들에서 동식물들이 처져서 대부분은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기쁘게) 다시 번성하리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인류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가까운 바다에도 회복의 희망은 남아있다고 한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분명 '세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성경을 기초으로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비꼬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루 아침에 인간이 모두 사라지거나 갑자기 대부분의 생물종들이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멸종을 늦추고 조화로 나아가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 만큼이나 극단적이다. 결국 지구를 소모하는 인간의 수를 줄여야하고, 그 수를 줄여나가는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은 '출산 제한'이다. 한국의 성공적인 '산아 제한 정책'이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한데, 엄마 한 명에 아이 하나로 제한한다면 21세기의 끝자락에는 현재 60억이 넘는 인류를 그 절반 정도까지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확실하지만 쉽지 않은 방법이다. 다행히도 산업화된 많은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점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도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과연 그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라는 부하를 지구와 대자연이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인류가 22세기와 23세기, 그리고 더 먼 미래의 시간들을 지구에서 보낼 수 있을까? 결국 화석으로만 기억되는 공룡처럼 되지는 않을까? 인류도 아직까지는 '지구'라는 단 하나의 행성에 의존하는 종족이기에,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같은 자연 재해에는 당해낼 수 없겠지만, 인류의 '멸종 원인'이 어리석게도 '우리 자신'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바로 지금이 지구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위한 작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전문 서적을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고고학/인류학적 사실과 미국과 미국의 대도시들의 자연사, 그리고 최근 인류가 이뤄낸 다방면에서의 과학적 성취까지 전달해주는 점은 흥미롭다. 다만, 꽤 길게 늘어지는 문장들에서 부자연스럽고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아쉽다.
2014/07/07 00:48 2014/07/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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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 제일교포 작가로서 그의 소설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로도 발표되었기에 전혀 낯선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물론, 그의 소설이 원작이 된 영화도 본 적이 없기에, 이름과 제일교포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펴보았다.

'연애소설', 다 읽고 나면 참으로 엉뚱한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연애소설'이기는 하지만 이 책 전체를 대표하는 제목으로서는 뭔가 어색하다. 알고 보니 원래 제목은 '對話篇(대화편)'이다. 원제처럼 이 책에 담겨있는 세 가지 이야기는 대부분 '대화'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상당히 신기하다. 세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유명 사립대학교 법학부' 출신들의 이야기로 일종의 '도시 전설'처럼 들린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연애소설'과 두 번째 '영원의 환'이 그렇다. 모두 '사랑 이야기'이면서, 또 모두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죽음에 관한 호기심'으로 진행된다. '죽음과 맞닿은 호기심', 신화적인 모티브라는 점도 재밌다.  '법학부' 외에도 '레코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백혈병' 등의 소재로 세 이야기들을 느슨하게 연결한 점도 흥미롭다.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의 투영이라는 말은 역시 사실인가보다. 작가가 '제일교포'이기에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역시 느껴진다. '연애소설'의 '투명인간'이나, '영원의 환'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K'의 정체, 그리고 마지막 '꽃'의 '도리고에 가의 전설'까지, 제일교포로서 그가 성장하면서 경험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앞의 두 이야기의 결말이 정말 섬뜩한 '도시 전설'같은 이야기라면, 마지막 '꽃' 제목처럼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롭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간결하고 맛깔나게 풀어나가면서도 그 안에 있어야 할 '중요한 알맹이 혹은 감동'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필력은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될 만큼 사랑 받는 작가'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2014/05/08 02:38 2014/05/08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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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무자비한 밤의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은 '미스터 SF'라고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스타쉽 트루퍼스', '여름으로 가는 문'에 이어 세 번째인데, 제목은 '여름으로 가는 문'만큼이나 시적이지만 내용은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정치적이다. 다만 '스타쉽 트루퍼스'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SF 소설이다. 작품은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시작하여 독자적인 문화와 경제를 구축한 식민지 '달 세계'가 그들을 지배하는 지구의 '세계 연맹'과 '총독부'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SF소설들은 보통 '신화, 전설, 그리고 고전에 대한 오마주나 패러디',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의 풍자' 혹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진행된다. 그 사건은 '달 세계의 독립'과도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18세기의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실제로 작품 속 여러 고유명사들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차용했고,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여러 소재들은 가져왔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찌보면 기승전결은 뚜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진행이지만, 여기에 SF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치밀한 상상력'이 녹아들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총독부를 뒤엎고 독립을 향한 '혁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세 사람 '미구엘', '교수', '와이오밍'의 구성은 각각 '프랑스 대혁명' 정신적 이념인 '형제애, 자유, '평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젊은 남자의 행동력', '나이든 사람의 지혜', '젊은 여성의 풍요로움(수태 능력)'를 의미하는 모양새다. 이런 3인조의 구성은 후대의 SF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속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의 '삼위일체(trinity)'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지구 태생이자 온전한 지구인으로 달 세계 혁명의 끈끈한 동지가 되는 왕정주의자 '스튜어트'의 모습에서는 여러모로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한 '라파예트'가 떠오른다.

'달 세계 식민지'는 인간의 달착륙을 목격한 작가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실현 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렇기에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존재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SF적인 요소이다. 혁명을 이끄는 세 사람에게는 '신의 권능'과도 같은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도움으로 독립 혁명을 성공하는데, 약간의 제한이 있지만 달 세계에서는 거의 '전지전능'한 '마이크'가 그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지구'와의 싸움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을 넘어섰지만 인간에게 우정을 느끼고 '인간들의 놀이'에 동참하는 그의 모습은 '신'에 가까우면서도, 능력에는 확실한 제한이 있다는 점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불완전한 신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500 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이지만,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상상력과 필력은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과학기술적인 SF 요소 외에도 미래 인간 사회에 대한 작가만의 재밌는 장치들도 숨어있는데, 대표적으로, 여자가 부족한 달 세계에서 특별하게 고안된 결혼 형태인 '가계 결혼'이라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지구와는 다른 달 세계 사회까지 세밀하게 글로 풀어나가는 부분에서 그에게 '미스터 SF'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깨닿게 한다. 아마 현대 SF 마니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티브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현대 SF의 기반을 확립하고, 우리보다 수 십년 앞서 살면서 우리의 수 십 수 백 년 뒤를 꿈꾸었던 거장의 걸작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달 세계 사람들의 기본 정신이자 혁명의 밑거름이 되는 명언 '탄스타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 TANSTAAFL)'는 현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냉철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으로,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2014/04/30 01:43 2014/04/3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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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백불'은 '언젠가 함께 파리에 가자'보다 먼저 읽으려 했던 책이다. 역시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1997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1년이 되어서야 출간된 소설이다. 처음 '하얀 부처'를 의미하는 '백불'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백인 승려가 성불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어리석은 예상이었지만.

요약하자면 강 하구의 작은 섬 '오오노지마'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숨을 거둔 '에구치 미노루'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이다. 한 인간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일반적인 성장 소설과 차별점은 청년이 되면 멈추는 '육체적 성장'보다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정신적 성장'을 밀도있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주인공 에구치 미노루와 그의 가족, 친구들이 겪는 삶과 죽음을 그리면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반드시 겪에 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로 풀어나간다. 그 이야기들 사이에는 '오토와'와 '누에'에로 표현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 어린시절의 '기시감'으로 시작되어 딸 '린코'을 통해 밝혀지는 '영혼과 전생' 등 누구나 한 번쯤은 품어보았을 인생과 그 종착역인 죽음에 대한 '질문과 답변'들이 이어진다. 

탄생과 함께하는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리고 죽음의 의미와 죽음 뒤의 세계 등, '죽음'이란 나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사후 세계와 전생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하기에 기억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빠져들만한 주제들이 주인공 미노루의 인생과 사색을 통해 진행된다. 이 작품 하나로 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 미노루와 친구 기요미가 작품 속에서 대화와 행동으로 보여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는 큰 감명을 받았다.

300쪽이 넘는 짧지 않은 분량에 상당히 많은 야이기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지만,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장으로 흡입력을 발휘하는 건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특기라고 해야겠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무게를 잡지도 않는다. 일본 작가들에게 종종 느껴지는 사무라이의 '가면 달린 투구'나 게이샤의 '짙은 화장'이 느껴지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정갈하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젊은 시절부터 유럽을 방랑하였기 때문에, 그의 실제 인생처럼 그의 글 속에서도 그런 자유분방한 기질이 엿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에구치 미노루'는 작가의 외조부가 모델이라고 한다. 그의 외조부는 작품 속 주인공처럼 실제로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는 철포 개발에 종사했고, 발명가가 되었다고 한다. 작품과 다른 점은 작가의 외조부는 전쟁의 부조리와 잘못을 깨닳고 승려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뼈로 만들어진 '백불'도 실제로 승려가 된 그의 외조부가 건립하여, 지금도 오오노지마에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미노루의 딸 린코가 문필가와 결혼했다는 대목에서 '백불이 실제로 있다면 작가의 집안 조상의 이야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다. 실제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이 더해져 완성된 '백불'은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그의 작가 인생에서 '걸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실제로 '프랑스 5대 문학상' 가운데 '페미나상'을 일본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고 한다. 동양적 선(禪)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프랑스인들에게 신비롭게 다가갔을 법도 하다.

소설 말미에 주인공 '미노루'가 계획한 골불을 실제의 형태로 제작하는 조각가 '이하라 하치헤이'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노루와 섬사람들의 뼈가루로 그들의 생사에 대한 염원이 담긴 골불을 완성한 소설 속 '이하라 하치헤이'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로 삶을 뛰어넘는 '불멸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작가로서의 염원과 포부가 전해졌다. 더불어 조각가 하치헤이가 골불을 완성하고 프랑스로 떠난다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프랑스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프랑스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그를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1989년에 데뷔한 작가의 1997년 작품이니 작가 인생에서는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2011년이나 되어서 번역된 점도 아쉽지만 이 작품 다음으로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지 않는 점은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2014/04/08 18:28 2014/04/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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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함께 파리에 가자'


참 낭만적인 제목이다. 오래전에 사두고 이제서야 읽었지만, 아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도 이 제목에 끌려서 샀을 게다. 프랑스는 커녕 유럽도 가본 적이 없지만,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낭만의 도시 '파리(Paris)'라는 이름이 부사 '함께'와 만나니 그리도 낭만적이면서도 애틋하게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언젠가'는 모호한 시간을 의미하는 부사로 허언처럼 들리게 할 수도 있지만, '가자'라는 힘있는 동사와 만나니 언젠가는 꼭 이뤄질 법한 약속처럼 들린다.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는 우리나라에 많은 책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작가이자 영화 감독이자 뮤지션으로 예술에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졌고,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책은 많지 않지만 몇몇 소설들을 꽤 재밌게 읽은 기억도 있기에, 이 책도 집어 들었다.(그런데 사실은 온라인으로 샀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2005년에 출간되었는데, 약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파리에서 살면서 취재하고 쓴 책이라고 한다. 2003~2005년이 될테니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파리 생활'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 책을 여행자들이 목적지로 떠나기 전에 읽는 '가이드 북'이 아니라 '라이브 북'이라고 한다. '가이드 북'들은 유명하거나, 꼭 가봐야 하거나, 가볼 만한 곳들을 모아서 '백화점'식으로 소개하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런 가이드 북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이 책은 '파리 여행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파리에 거주할 예정'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가이드 북처럼 관광지를 떠먹여 주는 책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파리에서 살아가는 요령과 마음가짐 등을 알려주는 책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잡은 물고기를 주지 않고 낚시할 때 요령이나 마음가짐 정도를 알려주는 책이랄까?

그렇고다 여행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아니다. 미식가가 유난히 많아 보이는 일본답게, 그도 나름 미식가로서 여러 음식점들을 추천하고 있다. 몇 년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음식점을 평가하는 유명한 기준인 '미슐렝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미슐렝 가이드'는 이름처럼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 '미슐렝(Michelin)'이 조사하고 발간한 책으로 최대 3개로서 음식점을 평가하는데, 프랑스에서도 꽤 중요한 음식점 판단 물론 입맛이라는 감각이 다분히 주관적이 요소도 크게 작용해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파리에는 미슐렝 가이드에서 별이 3개에서 2개로 떨어져서 자살한 쉐프가 있을 정도로 쉐프들에게는 자존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픈한 유명한 쉐프 '피에르 가니에르'도 언급되니다. 그렇지만 미슐렝 가이드의 별점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가 찾아낸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 책에 나온 음식점 이름들은 약 10년 전의 정보라서 지금도 유효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만의 맛집을 찾아내는 요령도 놓지지 않고 있는 책이기에 파리에 오래 머무른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먹는 이야기가 분명히 많지만, 프랑스의 기나긴 '바캉스', 파리에서의 '운전', 다정한 인사 '비주', 일본과는 다른 아내의 '출산' 등 거주자가 아닌 여행자라면 알 수 없을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서 '파리에서의 삶'을 여러 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적으로더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한국와 일본이기에 일본인이 파리에 살면서 겪었을 곤란을 한국인으로서 공감할 부분들이 많았다. '인구 고령화', '저출산', '독신 가구'의 증가 등 여러 사회 현상에서 우리보다 수 년에서 십수 년을 먼저 겪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이기에, 이런 현상들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이나 대처는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본보다도 더 빠르게 그런 현상들을 겪은 프랑스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점도 흥미롭다. 과거 유럽 최저 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는 약 10년 전부터 늦은 출산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지금은 유럽에서 출산율이 높은 국가라고 하는데, 이 책에도 그론 늦은 출산이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프랑스, 그리고 파리.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주의 기원이 되었고 수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예술이 살아 숨쉬는' 도시답게 '자유와 낭만의 도시'라고 불린다. '경제 지표'만을 강조하고 국민들에게 세뇌시키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들이다. 시민 의식 수준 또한 굉장히 높다고 하는데, 그런 의식 수준의 바탕이 된 역사적 유산과 문화적 배경은 부러울 따름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한국을 벗어난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파리'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어졌다.

2014/04/03 22:44 2014/04/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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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는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 및 주연으로 국내에는 "월드워 Z"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이디. 영화 속 내용을 상상하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영화가 '좀비의 대공습'이라는 주재와 몇 가지 소재를 빌려갔을 뿐 줄거리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예 장르가 다르다고 해야할까?

원작이 헐리우드식 영웅물이라면, 이 원작 소설 속에는 영웅은 없고 '세계대전 Z'에서 살아남은 인간들만이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다르게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는 두 시간이 안되는 시간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지만, 원작 그대로 드라마로 만든다면 아마 시즌 몇개는 나올 만큼 적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다. 500 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이지만, 작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여러 생존자들의 입을 빌려서 지루하지 않고 상당히 몰입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반적인 소설들이 따르는 서사적 구조가 아닌, 미국 부통령부터, 군인, 의사, 일반 시민 등 전세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녹취된 체험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이 체험담을 통해 좀비 전쟁을 꽤나 생생하게 풀어나간다. 여러 생존자들의 녹취록들에는 사건이 벌어진  시간적 혹은 공간적 차이 뿐만 아니라, 각 생존자들의 국적, 인종,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좀비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체험담의 조각들이 모여서 '인류를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갔던 대재앙, 좀비 전쟁'의 큰 그림을 그려간다. 좀비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황당한 재난'이지만, 그 전쟁 속에서 있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사람들의 생각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는 모습까지 그려낸 작가의 치밀함과 노련함에 감탄하게 된다. 

'체험담' 위주로 풀어나갔기 때문에, 이 책만으로는 생존자들이 보지 못했던 좀비 전쟁의 다른 부분이나, 전세계에 걸친 좀비 전쟁이 어떻게 퍼져나가고 어떻게 끝났는 지를 확실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좀비'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좀비의 생태(?)'대해서도 불분명한 점도 아쉽다. 저자 맥스 브룩스가 쓴 '세계대전 Z 외전'과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 겠다.

2014/03/09 22:58 2014/03/0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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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혀 모르는 작가이고 요즘 거의 관심 없는 장르의 책이지만, 정말 우연히 구입하여 일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허세스러웠다고 할까.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의 '영리한 구성'을 빼놓을 수 없겠다. 텍스트만으로는 책 반 권도 나오지 않을 분량이지만, 작가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이용하여 한 권을 채우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들이지만 읽기에는 그다지 가볍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들을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담아서, 사이사이 주위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작가의 고집이었는지 아니면 편집부의 전력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분명 '사진 + 텍스트'의 구성은 '미니홈피(싸이월드)'의 '일기장'과 '사진첩'이나 블로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반 쯤은 개인적이고 반 쯤은 공개된 새로운 도구에 익숙한 지금의 2,30대에게 이런 구성은 충분히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만하다. 역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거쳐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도, 주로 여성 사용자들이 사진과 함께 올렸던 (허세도 적당히 들어간) 감성적인 문장과 문단들이 떠올랐다.

글의 내용들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20대의 연예에 대한 회한과 30대의 다짐, 그리고 노처녀의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감성적인 표현력으로 써내려가 감수성이 더해진 글들은 공감의 요소를 만들어낸다. 최근 '웰빙(well-being)'에 이어 '힐링(healing)'이 유행하면서 힐링을 강조하는 감성 에세이들이 많이보인다. 이 책도 그런 시류에 편승하여 쉽게 써져서 쉽게 소비되는 소비재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2000년대 초반에 불었던 시집 열풍이 '미니홈피와 블로그 세대'에 적합게 변형되고 포장된, '새로운 에세이의 사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이애경 작가의 글에는 신문의 가쉽란처럼 가볍게 읽고 잊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알맹이가 있다.
2014/02/12 11:45 2014/02/12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