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이애경

사실 전혀 모르는 작가이고 요즘 거의 관심 없는 장르의 책이지만, 정말 우연히 구입하여 일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허세스러웠다고 할까.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의 '영리한 구성'을 빼놓을 수 없겠다. 텍스트만으로는 책 반 권도 나오지 않을 분량이지만, 작가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이용하여 한 권을 채우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들이지만 읽기에는 그다지 가볍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들을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담아서, 사이사이 주위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작가의 고집이었는지 아니면 편집부의 전력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분명 '사진 + 텍스트'의 구성은 '미니홈피(싸이월드)'의 '일기장'과 '사진첩'이나 블로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반 쯤은 개인적이고 반 쯤은 공개된 새로운 도구에 익숙한 지금의 2,30대에게 이런 구성은 충분히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만하다. 역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거쳐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도, 주로 여성 사용자들이 사진과 함께 올렸던 (허세도 적당히 들어간) 감성적인 문장과 문단들이 떠올랐다.

글의 내용들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20대의 연예에 대한 회한과 30대의 다짐, 그리고 노처녀의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감성적인 표현력으로 써내려가 감수성이 더해진 글들은 공감의 요소를 만들어낸다. 최근 '웰빙(well-being)'에 이어 '힐링(healing)'이 유행하면서 힐링을 강조하는 감성 에세이들이 많이보인다. 이 책도 그런 시류에 편승하여 쉽게 써져서 쉽게 소비되는 소비재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2000년대 초반에 불었던 시집 열풍이 '미니홈피와 블로그 세대'에 적합게 변형되고 포장된, '새로운 에세이의 사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이애경 작가의 글에는 신문의 가쉽란처럼 가볍게 읽고 잊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알맹이가 있다.
2014/02/12 11:45 2014/02/12 11:45

여름으로 가는 문 - 로버트 A. 하인라인

SF 장르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여름으로 가는 문(1957)'은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부터 시작해서 SF답지 않은 제목에 의아했던 작품이다. 혹시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나 했지만, 원래의 영문 제목도 'the Door into Summer'로 다를 바 없다. '스타쉽 트루퍼스(1959)'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기에 이 작품은 어떤 미래(혹은 과가의 작가가 꿈꾼 우리의 현재)를 그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0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활자가 커서일까? 아니면 작품이 너무 지지하지 않아서일까? 오랜만에 쉽게 쉽게 읽어나간 작품이었다.  SF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 시간 여행을 위한 왕복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냉동 수면'과 '타임머신'이라는 SF적인 재료로 쓰여진 이야기지만, 시간 여행이나 시간 여행으로 인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의 위한 중요한 '양념' 정도로 쓰일 뿐이다. 놀랍게도 SF 거장이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에 가까웠다. 사실 정통 로맨스라기 보다는, 고결한 사랑을 이룩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SF의 거장'에게 '전형적인 SF 작품'를 기대한 'SF 독자'라면 이 정도도 대단한 로맨스라고 할 만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문제와 관련되어 다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로리콘'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 미국은 요즘 이슈에 자주 등장하는 소위 '베이비붐' 시대이기에 그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도 어떠했을 지도 궁금하다. '시간을 초월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후대의 '조 홀드먼'이 '영원한 전쟁(1975)'에서 보여준 '시공을 초월한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영원한 전쟁 속 주인공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뤄낸 사랑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속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미국적 위트도 녹아있는 이 작품은 분명 정치적, 군사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고전 SF 작품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역시 미국인답게 장황한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은 이야기를 크게 부풀린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SF 형식을 빌린 기행문같은 '여름으로 가는 문'은 다른 장르의 소설 못지 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은 본문 속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다분히 중의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댄과 그의 고양이가 찼었던 진짜 여름의 날들은 결국 시간 여행을 통해 '찾은 아름다운 사랑의 날'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댄은 애완동물은 '고양이'로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평행우주에 관한 반전적인 부분이 등장하는데 혹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2014/01/13 17:32 2014/01/13 17:32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

독보적인 세계 최강국 '미합중국(미국)'와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을 들여다보면, 자주 발견되는 단체의 이름이 보이곤 한다. 바로 수 많은 비밀과 음모를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름의 '프리메이슨'이다. 그와 함께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이 '템플 기사단'이나 '일루미나티'다. '그레이엄 헨콕'과 '로버트 보발'이 함께 쓴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는 오랜 시간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의 배후로 지목되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템플 기사단'을 다루는 책이다. 그레이엄 헨콕은 '신의 지문'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저자이기도 하다.

제목인 '탤리즈먼'은 '종교적 염원 혹은 신념이 깃들어 현세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민속 신앙 속의 '부적'이나 '장승'도 탤리즈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박했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로 운을 띄운 긴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문명시대까지 조명한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승자'로서 문명의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를 강력하게 지배해온 '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역사만큼 혹은 더 오래 존재해온 이단 종파와 이교적 사상과 철학에 관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보다 더 순수하고 이상적으로 종교다우면서도 훨씬 '이성적인'이 이단과 이교의 사상이 많은 사람이 '기독교'과 '성경'에 품었을 의문들을, 이성적으로 더 잘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과 이교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속세에 의연한 종교인다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통 기독교에 의해 박해받았던 이단 종파의 수행자들의 모습이 도교의 '도사'들이나 불교의 '승려'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고대 헤르메스 주의와 유대교 신비주의 등과 자유롭게 사상을 공유하면 '철학적 사조'에 가까웠던 순수 기독교는 다분히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정통이하고 자부하는 한 종파'에 의해 현재에 이른다. 성서 직해주의적인 소위 '정통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들에 의해 받았던 박해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이단이었던 종파들과 이교를 '로마의 황제들처럼' 배척하고 박해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헤르메스 주의에 기반을 둔 이 이단 혹은 이교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고 마니교, 카타리파 등 시대에 따라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헤르메스주의적 사조'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그 반격들은 번번히 실패했고 비밀결사로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바로 '템플 기사단'이라도 한다. 역시 이단으로 몰려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비밀결사로 이어졌고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졌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비의적이고 열성적 계파 정도로 볼 수 있다.)

프리메이슨은 아직도 비밀결사 조직이기 때문에 그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는 구성원이 아니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근대화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의 역사적 공헌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음모론에서 이야기하는 프리메이슨의 모습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 점차 지지 기반이 약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세한 승자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에 의해 악의적 왜곡이 의심되기도 한다.

종교와 비밀결사에 관한 내용을 방대한 고증과 적절한 추리로 풀어내는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달하는 분량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다만 인물사전처럼 수 많은 이름들, 특히 프랑스식 낯설고 긴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여 기억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다분히 원서를 직역한 듯한 번역체는 몰입을 방해하는 또 다른 단점이다.
2013/12/30 13:55 2013/12/30 13:55

제주 버스 여행 : 뚜벅이들을 위한 맞춤 여행법

누구나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도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상황과 시간은 여의치 않고, 그렇게 먼 곳으로 가기에는 휴가가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이 제주도가 아닐까? 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한라산과 푸른 바다의 픙경은, 비록 그곳이 꿈꾸던 낯선 곳은 아닐지라도 일상에 찌든 마음에 위로와 상쾌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렌트카를 타고 도시와는 다르게 탁트인 도로에서 맑은 공기를 즐기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고,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빌려서 일주도로를 따라 수일에 걸쳐 섬을 한 바퀴도는 낭만은 분명 다른 관광지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제주도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이것은 아마 제주도 여행 계획에 있어서 첫 단추에 불과하다. 아직 여러가지 고민 사항들이 남아있고, 특히 '어디서 자고, 어떻게 식사를 해결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마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자 걱정일 것이다.

처음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던 10여년 전 학생시절의 제주도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제주도는 과거와는 다르게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훨씬 많아진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가 되었지만, 제주공항에 내리면서 보이는 풍광은 그 시절 목포발 배편으로 점점 가까워지던 섬의 모습만큼 설렘을 주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이 풍부해진 만큼 제주도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언론 기사 등의 정보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 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광고성 글도 많아지면서 그 많은 정보(information) 가운데 내게 필요한 자료(data)를 찾기란 쉽지만은 않다.

'제주 버스 여행 : 뚜벅이들을 위한 맞춤 여행법'은 그 고민에 대해 최고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지도 모르지만, 간편하고 적절한 해답이 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제목처럼 '버스 여행'을 기본으로 하기에, 제주도의 북쪽에 위치한 제주시에서 출발하는 버스 노선에 따라 권역별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버스의 동선을 따라 가볼만 한 관광지와 먹거리, 즐길거리를 모아서 설명하지만, 제주공항에서 제주여행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동선도 대부분 비슷하기에 버스 여행이 아니더라도 알찬 정보들이 많다. 어느덧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려, 버스 여행이나 자전거 일주는 엄두도 나지 않는 나에게도 꽤 알찬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부부로 결혼 후 2년동안 제주에 살면서 구석구석 누빈 경험으로 썼다고 하는데, 이미 몇 차례의 제주 여행에서 직접 경험했던 '좋았던 곳들'은 역시 이 책에도 여러 곳 소개되어 있기에 꽤 신뢰를 갖고 읽게 되었다. 또, 오랜 제주 여행의 경험이 묻어나는 내용들을 보면서, 이 책이 단순히 업체들과 뒷거래를 통한 광고성 혹은 그저 책을 팔기위한 상업성이 아닌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송악산 올레길, '카페 숑',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리고 월정리 해변 카페 거리는 가볼만 곳이었다. 더불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기자기한 특색의 게스트하우스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그곳들을 거쳐가는 여행도 하고 싶어졌다.

다만 쉬운 점도 있어서,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기까지의 시간과 '지금의 여행'이주는 '시차'의 문제이다. 책이 출간된 때가 올해(2013년) 5월인데 벌써 책 내용과 다른 점이 있는 부분이다. '흑돼지돈까스'의 맛이 궁금해서 찾아간 두모악 근처의 카페 '오름'은 주방장의 사정으로 이제 식사 메뉴는 주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맛깔스러운 정식을 소개한 한 집은 최근에 사나운 인심으로 더 유명했다. 제주 여행 안내서로서 스테디 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일년에 한 두 차례 판올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페 숑'



2013/11/19 20:51 2013/11/19 20:51

에쿠니 가오리 - 달콤한 작은 거짓말

최근에 여러 책을 읽었고 읽고 있지만, 장르소설이 아니면 꾸준히 읽기가 어려워서 읽다가 놓곤해왔다. '에쿠니 가오리'의 '달콤한 작은 거짓말'도 그 놓은 책들 가운데 하나인데, 얼마전 마음을 잡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장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제목부터 왠지 아기자기하게 '달콤한 작은 거짓말'이라고 하여서 부부 사이의 작은 거짓말을 이야기할 줄로 알았는데, 거짓말의 규모가 참 '발칙'하다. '발칙'이라는 단어 선택이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발칙'만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 세대와 비교해보면 미성숙한 어른의 전형 혹은 '키덜트(Kidult)' '루리코'와 '사토시'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 같지는 않다. 과감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은 가부장적인 지금의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나 황혼 이혼나 외도에 의한 이혼이 많은 아버지/어머니 세대와는 또 다른 세대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모순된 모토(?)로 외도를 합리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바다 건너 이웃나라의 세태를 풍자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닮아가는 우리나라이기에, '결혼'과 '그에 대한 환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혼율은 높아지고 결혼 관계에 대해서도 서구적인 개방성이 퍼지는 상황에서, 확실히 발칙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고전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닌, 사랑과 비슷하면서도 사랑과는 조금 다른 어떤 유대감으로 심리적/정신적 안정을 위해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동거와는 조금 다른, 또 다른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2010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원래는 약 10년전인 2004년에 발표된 소설인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 사회는 이미 10년을 앞서 이런 고민을 해왔다는 말이 되기에 그들은 어떤 해답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2013/03/20 17:29 2013/03/20 17:29

에쿠니 가오리 - 나의 작은 새

우리말로 출판될 때마다 한 권씩 사두고 읽지 못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아주 오래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가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간된 '나의 작은 새'다. 출판사 뿐만 아니라 역자도 바뀌고 양장으로 나오면서 삽화도 추가되었다. 그 삽화를 그린 사람은 바로 '권신아' 작가이다.

1999년도에 우리나라에 한 번 출간 되었던 작품이니 '에쿠니 가오리'의 초기 작품이 아닐까 하는데, 그녀의 다른 장편 소설들과는 다른 '어떤 간결함'이 느껴진다. '나'와 그의 집에 찾아온 '하얀 작은 새'와 나의 '여자 친구'가 그려내는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문체 뿐만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서도 그렇게 느껴진다.

주인공과 작은 새의 관계에서는 오래전에 읽었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가 이야기했던 '길들임'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어린 왕자' 속 길들임과는 조금 다르지만, 서로를 조금씩 질투하는 모습은 이야기 속 '나'와 '작은 새'가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장편 소설이라기보다는 중편이나 단편에 가깝니다. 적은 분량을 편집의 힘(?)과 삽화와 양장 커버로 적당한 두께감을 주고 있다는 점은 좀 아쉽니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임은 틀림없다.
2012/09/25 17:23 2012/09/25 17:23

아더왕과 각탁의 기사 1~7권 - 홍정훈

야심차게 설립했던 출판사 '넥스비전 미디어웍스'가 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있었던 작가 '홍정훈'이 정말 오랜만에 발표하는 장편 소설 '아더왕과 각탁의 기사'.

여느 때처럼 '예스24'에서 책과 음반을 고르다가 정말 우연히 검색어에 '홍정훈'이라는 작품을 검색하게 되었고 '아더왕과 각탁의 기사'를 발견했다. 이미 커그(www.fancug.com)에 연재되었던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넥스비전'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몇 년째 작품이 출판되지 않아서 그 작품이 출판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조금 놀랐다. 이 때가 4월 중순인데 3월부터 발간을 시작하여 이미 3권까지 나와있던 상황으로, 이미 원고는 완성되어있는 상황이라기에 '월야환담 광월야'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우선 1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7월에 7권으로 너무 길지 않게 마지막 권이 출간되었다. (사실 이 작가의 소설들 가운데 다 읽은 것은 '월야환담' 시리즈가 유일한데, 월야환담을 너무 흥미롭게 읽었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책이 팔려야 광월야의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연히 1권부터 7까지 모두 구입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전설이 혼합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의 이이야를 기반으로 하면서 반영웅적이고 유머를 좋아하는 주인공 '킬워드'의 설정은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반신반인이라고 할 만큼 강한 설정은 당연히 강하지는 않지만 처절한 '한세건'과 비교가 되면서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작가가 거대한 음모를 가진 단체, '빅브라더'나 '프리메이슨'를 애용하는지 내용이 전개될 수록 '월야환담'의 '테트라 아낙스'같은 집단의 존재와 '리리스'와 비슷한 존재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차원이동'이나 '시간이동'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6권까지 읽다보면 'SF 판타지'임을 알 수 있다. 비전형적인 SF 판타지라고 해야할까? 작가가 쓴 해설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구상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하는데, 초반 주인공의 호쾌한 행보에 비해 후반 홍정훈 작가다운 처절함은 너무 몰아붙인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쉬웠다. 요즘 자꾸 그리워지는 전형적인 RPG 게임 같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아더왕' 이야기와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해석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3월에 시작하여 7월에 결말을 보여준 깔끔한 출반도 좋았다. 평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작가가 언제나 걸작이나 대작을 쓸 수는 없지 않을까?

6월부터는 라이트노벨에 도전하여 '기신전기 던브링어'라는 SF 판타지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인데, 그 작품도 출판 중단 없이 깔끔한 결말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월야환담을 포함하여 다른 작품들로 꾸준히 만났으면 좋겠다.
2012/08/08 17:19 2012/08/08 17:19

로버트 A 하인라인 - 스타쉽 트루퍼스 & 조 홀드먼 - 영원한 전쟁

최근 2년 가까이는 큰 일이 없음에도 자잘하게 바빠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나마 읽었던 책 가운데 기억나는 책은 SF(science fiction) 소설의 거장들이 쓴 두 권의 책이다. 한 권은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썼고 우리나라에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스타쉽트루퍼스'이고, 다른 한 권은 역시 뛰어난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의 SF 저변은 약하기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이다. 두 소설 모두 SF 소설답게 우주여행과 외계인과의 조우/전쟁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시선은 두 소설이 각각 집필되었던 시대적 배경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편예 첨예하다.

세계 곳곳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2차 세계 대전'에 해군으로 복무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시각이 녹아든 '스타쉽 트루퍼스'는 애국주의적인 입장에서 독자로 하여금 국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우주해병대의 현실적이면서도 멋진 활약에 푹 빠져들었는데, 우주전쟁에 대한 낭만에 빠져든 어린 시절이 있었던 성인 남자라면  충분히 피를 끓게할 매력과 흡인력을 갖고 있다. 더불어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문화현생이 되기도 했던 '스타크래프트(Star craft)'와 스타크래프트에 앞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워게임(war game)인 '워해머 4000K(Warhammer 4000K)'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명분없는 전쟁이자 미국이 처음으로 패배했던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녹아든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오해와 탐욕이 만들어내는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전쟁이 투입되기도 전에 준비 과정에서 부터 훈련병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훈련 환경과 위험한 장비들부터 세세히 설명하는 모습은 '스타쉽 트루퍼스'보다 더욱 현실감 있는 묘사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스타쉽 트루퍼스가 허무맹랑한 소설이라는 말은 아니다. 스타쉽 트루퍼스도 역시 현실적인 SF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 자체 보다도 훈련병으로 시작하여 전쟁의 진행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령까지 진급하는 주인공 '만델라'의 눈으로 전쟁을 통해 피폐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훈련과 우주여행, 그리고 전쟁의 과적에서 목숨을 잃는 수많은 동료들의 모습, 전투에서 살아남고  부당하게 늘어난 복무기간까지도 마치며 살아서 지구에 돌아가지만 지구에서는 이미 잊혀져간 사람이 된 퇴역병들의 상황과 그 들이 적응하기에는 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져버린 시간은 재입대라는 절망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모습은 일관적으로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그리고 순정적이게도, 우주여행이라는 시간의 상대적 흐름 덕분에 지구 시간으로 10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그 끈을 놓치않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주인공 '만델라'와 그의 짝 '메리게이'의 모습에서 이해와 사랑이 인류가 스스로 구원하고 구원받는 길임을 이야기한다. (SF 전쟁 소설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과 북이 분열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어떤 시각이 옳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소설 속에서 외계인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인류의 모습처럼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처럼 아직도 약육강식인 국제사회에서는 힘을 갖추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미비한 SF 저변 덕분인지, 두 책은 아쉽게도 절판이 되어버린 상황으로 중고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두 책과 마찬가지로 '행복한책읽기'라는 출판사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여러 해외 SF 소설을 소개했는데, SF 소설이 돈이 되지 않는지 거의 대부분 절판이 된 상태이다.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이제는 구할 수 없어서 아쉽다. 여러 SF 거장들의 책들이 원서가 아닌 우리말로 변역되어 활발하게 소개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2012/05/24 00:37 2012/05/24 00:37

네온비/캐러멜 - 다이어터 1권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절찬히 연재 중인 다이어트 만화 '다이어터'.

몇몇 다이어트 만화들이 있어왔지만 '다이어터'만큼 현실적인 만화가 또 있을까? 네오비/캐러멜 듀오의 작품은 역시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병맛의 절정'인 '셔틀맨'부터 보아왔고, 다이어터도 셔틀맨의 조연 '등맛 서찬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런 병맛의 연장선이라고 기대하고 보았지만...

만화는 '운동은 너를 속이지 않는다'는 만화 속 (이제는 어엿한 주인공인) 찬희의 말처럼 가장 현실적인 다이어트 방법인 운동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론적인 운동에 머물지 않고 작가들의 다이어트 경험이 녹아들어서, 단순히 운동 만이 아닌 적절한 식이 조절과 동기 부여를 통해 '운동할 수 있는 환경'에도 초점을 맞추어 지금까지 많은 시도만큼이나 실패했던 사람들을 배려하고, 더 나아가 결국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는 운동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뚱뚱하지만 귀여운, 독자나 독자의 누나 혹은 동생일 법한 캐릭터는 친근감을 더하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수지나라'는 흥미와 진중함을 적절히 배분하여 재미와 실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치 않는다. 실제로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대사과정을, 때에 따라 생략 및 간소화 하였지만, 일반인들에게 결국 필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보다도 실제적인 응용이기에 너그러이 봐줄 만하다.

시즌 1 총 32화의 연재분을 300페이지가 넘는 책 한권에 담았는데, 다이어터들에게는  '만화속 세상'에서 '오무라이스 잼잼'과 함께 양대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코알랄라'가 약 절반정도의 연재분을 한 권 속에 담아서 나왔던 점을 생각한다면, 감질맛을 줄였고 그 페이지 수와 분량을 생각했을 때 가격 또한 (요즘 책들 가격의 거품을 생각한다면) 역시 다이어터답게 다이어트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2가 한참 진행중인데, 작품의 완결까지 네온비/캐러멜 두 작가의 건강을 기원한다. 연재분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지만 2권도 기대한다. 더불어 네온비 작가의 '기춘씨에게도 봄은 오는가'의 출판도 기대해본다.

* 요즘 네이버와 다음의 웹툰들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작품들이 참 많다. '양영순' 작가의 대작 '덴마'와 '허영만' 작가의 대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부터, 단행본으로도 소장하고 있는 '야미' 작가의 '코알랄라!' 등등... 많은 좋은 작품들이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08/15 22:46 2011/08/15 22:46

황경신 - 세븐틴

오래전에 읽었는데, 최근 '황경신'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하여 뒤늦게 쓰는 '세븐틴'의 독후감.

월간지 '페이퍼'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출간한 소설인데, 나는 마침 페이퍼에 실린 '사랑받지 않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제목을 글을 인상깊게 읽었었고, 이후 그 글이 이 소설 '세븐틴'에 실렸다고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다만 페이퍼에 실린 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집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페이퍼에 연재된 글을 모아서 완성한 '한 편의 소설'이라는 점은 알지 못했다.

'니나'와 '시에나', 10세 이상 차이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은 두 여자 주변의 남자들 '제이', '대니', 그리고 '비오'가 등장하면서 서로 얽히고 섥혀있는 관계도를 그려나간다. 어떻게 그런 우연과 기연이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섯 사람의 관계는 복잡한데,그들의 관계구도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장(소설 속에서는 니나와 시에나의 피아노 레슨에 빗대어 Lesson이라고 표기한다)이 클래식 음악과 관련되어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니나와 시에나는 피아노 레슨을 통해 만났고, 시에나와 비오가 바이올린으로 연결되어있고, 시에나가 실력있는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유도 있겠다. 물론 황경신 작가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던던 클래식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점은 흥미롭다. 차이코프스키 죽음의 비화라던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이유, 베토벤이 되고 싶었던 슈베르트 등 '클래식'하면 모두 알만한 유명 작곡가들이 이야기부터, 나와 같은 클래식 문외한이라면 한 번 정도 들어보았을 유명 연주자들인 '하이페츠'나 '글렌 굴드'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런 이름들은 궁금즘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음반들 찾아보게 만드니,   클래식 견문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남자 독자로서 솔직히 시에나의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쉽지않고, 그만큼 책장을 넘기기도 쉽지는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이 사랑이야기, 어른이 되어가는 17세의 니나와 어른이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30대의 시에나가 풀어나가는 '세븐틴'은 살면서 겪는 일련의 연애 이야기들을 함축한 축소판일지도 모르겠다.
2010/12/13 12:17 2010/12/13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