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연못 <6>

소녀는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늘의 해는 오르막을 지나고
내리막으로 내려오고 있었어.
하지만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소녀는 조금 춥고 피곤했지.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밤의 추위가 찾아오기 시작했어
여인은 소녀에게 말했어.
"오늘은 오지 않으려나보네."
하지만 소녀는 더 기다려보기로 했어.

해는 사라지고 달이 떠올랐어.
하지만 소년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
소녀는 추위에 지쳐갔고
그 모습을 본 여인은 말했어.
"근처에 내 집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으련?"

사실 소녀는 얼음연못 근처에서
어떤 집도 본 일이 없었어.
더구나 호수가 꽁꽁 얼어있을 뿐
따뜻한 계절에는 물이었으니
집이 있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추위와 배고픔은
소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어.
그리고 여인은 말했어.
"내 집에서 쉬다가 다시 나와서 기다리렴."
소녀는 여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지.

소녀가 본 여인의 집은 놀라웠어.
태어나고 호수 근처에서 자라온 소녀였지만,
소녀를 기다리고 있던 집은
소녀가 근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궁전이었지.

겉보기에는 차가운 얼음궁전이었지만
궁전의 내부는 따듯하고 아늑했고
은은한 불빛과 달콤한 향기가 흐르고 있었어.
하지만 궁전의 하인들은 여인과 마찬가지로 창백했지.
소녀는 여인과 함께 성대한 식사를 했어.

소녀는 너무나 배가 고팠기고
음식들은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소녀의 인생에가 가장 맛있는 요리들이었어.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소녀는
아무 의심 없이 먹기 시작했어.

소녀는 알고 있었을까?
음식을 먹을 수록 그녀의 피부는 점점
얼음궁전의 여인처럼 창백해져 갔고,
그녀의 눈빛은 몽롱하게 변해갔어.
식사를 마치고 여인은 말했어.
"소년은 오지 않을꺼야. 평생 원망하렴, 아가."

놀랍게도 소녀는 "네, 엄마. 이제 좀 자야겠어요."라고 대답했어.
소녀의 눈은 이미 촛점을 잃었고,
그녀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했어.
그리고 소녀는 여인의 품에서 눈을 감았어.
소녀가 잤던 어떤 잠보다도 긴,
아주 아주 긴 잠에 빠져들었어.

2009/07/08 15:18 2009/07/08 15:18

얼음연못 <5>

소년이 믿을 수 있었을까?
연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소녀가 만난 신비한 여인이 이야기를.
소년은 소녀가 잠시 졸다가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어.

소녀는 믿을 수 있었을까?
소년이 약속에 늦은 이유가
소년의 마을에 큰 폭설이 내려서라고.
호수 반대편 소녀의 마을은
아침부터 날이 좋았던 그날에.

그 여인의 모습에 매료된 소녀는
마을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어.
하지만 어른들과 아이들, 어느 누구도
심지어 가장 나이 많은 노인들도
그런 신비한 모습의 여인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어.

소녀와 소년이 만나기로 한 날,
소년은 언제나 폭설이 내려 늦었어.
그리고 소년이 나타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어.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나 신비한 여인을 만나서
빵과 차를 마실수 있었고,
여인은 소년이 나타날 때 즈음 사라졌어.

북쪽나라는 점점 추워졌고
게다가 계속 되는 폭설 때문에
소년이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하나 둘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기 시작했어.
폭설과 추위 때문에 낚시나 사냥도 할 수 없었고
숲의 나무에서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으니까.

또 소녀과 소년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어.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소년에게는 소녀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어.
하지만 그날, 소년의 마을에는
어느때보다도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때 소녀는 또 그 신비한 여인을 만났어.
여인은 소녀에게 소년을 기다리냐고 물었고,
소녀는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래? 과연 그럴까?"
여인은 또 알 수 없는 말을 했어.

2009/06/24 00:04 2009/06/24 00:04

얼음연못 <4>

소녀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녀가 집을 나섰을 때,
막 떠올랐던 태양은
어느덧 하늘 한가운데 떠있었어.
하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지.

그 때 소년의 마을 쪽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
소녀는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습에게로 달려갔지.
하지만 그 모습은 소년이 아니었어.

새하얀 왕관에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역시 새하얀 코트를 걸친,
살결이 너무나 창백한 점을 빼면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그 모습은 소녀가 처음보는 사람이었어.
소녀가 들어본 적도 없는 모습이었어.

그 여인은 소녀에게 말을 걸었어.
"안녕, 이렇게 추운 곳에서 뭐하고 있니?"
소녀는 대답했어.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얼마나 기다렸니, 얼굴도 손도 다 얼었구나."
"아침에 나와서 지금까지요."
"춥겠구나. 이것 좀 먹어보렴."

놀랍게도 빈 손이었던 여인의 손에는
따뜻한 차와 맛있어 보이는 빵이 담긴
반짝반짝 빛나는 접시가 있었어.
소녀는 낯선 사람을 경계했지만
너무나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지.

차와 빵을 다 먹고 마신 소녀를 보며
여인은 만족한듯 웃으며 말했어.
"그 친구가 올 것같니?"
"네. 그럼요."
"그래? 과연 그럴까?"
여인은 알 수 없는 말을 했지.

그때 아주 멀리서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였어.
하얀 입김을 내며 달리는 모습이었어.
바로 그렇게 기다리던 소년이었지.
"꼭 온다니까요."
소녀는 말했어.
여인은 웃으며 대답했어.
"어머, 오는구나. 하지만 많이 늦었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구나.
조만간 또 보자구나. 안녕."
여인은 알 수 없는 인사를 하며,
소년의 반대편으로 걸어갔어.
소녀는 인사를 하기 위해 뒤돌아 보았지만,
여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어.
2009/06/23 16:09 2009/06/23 16:09

그 간격

번개가 치는 날

번개의 빛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얼마의 간격을 두고 소리가 귀에 닿게 된다.

이 빛과 소리의 간격은

빛과 소리의 전달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그럼

한 사람의 마음이

먼저 그 사람의 행동과 표정으로 나타나고,

그 다음 그 마음이 전해지기까지는

얼만큼의 간격이 필요한 것일까?

2009/06/21 01:56 2009/06/21 01:56

얼음연못 <3>

소년과 소녀는 점점 가까워졌어.
호수를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있는 마을,
그 중간 즈음에서
친구들과의 놀이를 핑계로 자주 만나곤 했어.

몇 번의 계절이 지났을까?
소년의 키는 한 뼘정도 자라났고,
소녀는 조금씩 숙녀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만큼 북쪽 나라는 추워졌고,
또 그 만큼 소년과 소녀사이에서 사랑이 자라났지.

아주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
북쪽 나라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추위의 겨울이었지.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에게는 좋았어.
호수가 꽁꽁 얼어붙어서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거든.

호수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눈으로 덮여서
여느 겨울의 얼어붙은 땅과 다름없었어.
소년과 소녀는 호수를 멀리 돌아가지 않고,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서 만날 수 있었지.

긴 긴 겨울의 어느날이 었어.
소년과 소녀, 두 사람의 약속에서
점점 소년이 조금씩 늦게 얼굴을 보인
두 사람의 마지막 겨울의 어느날이 었어.

그 겨울의 다른 날처럼
소년과 소녀는 얼어붙은 호수의 한 가운데에
그 차디찬 추위 속에서도
얼어붙지 않은 작은 연못이 있는,
바로 얼음연못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어.
2009/06/13 22:46 2009/06/13 22:46

오래된 정원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정원.

그곳은 너무나 낡고 오래되어서,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마음대로 자라난 이름모를 수풀이 무성하고

언제 마지막으로 사람이 앉았을지 모르게

시간의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벤치와

그안에서 영영 흐르지 않을듯한 시간처럼

시침과 분침이 사라져버린 시계탑이 있는.

그저  고요한 물 소리와 허망한 바람 소리

나무가지 끝에 은은히 퍼지는 새소리와

작은 동물의 울음소리만은 들을 수 있는.

이제는 그 낡음과 오래됨의 불편함으로

도저히 가꾸고 꾸미기 어려울 만큼 황량한.


그래도, 그래도 찾아와준다면,

오래된 정원, 내 마음의 정원으로.

언제나 그대를 위해 열어놓을게

낡고 오래된 정원, 그 정원의 문을.

2009/06/11 20:50 2009/06/11 20:50

얼음연못 <2>

얼음여왕이 큰 호수로 찾아오고
추위가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
그것이 끝나지 않을,
기나긴 겨울의 시작이라는 것을.
긴 추위가 시작되면서 호수와 숲의 선물이 줄었지만
아직도 낚시와 사냥과 열매는
사람들을 굶지않게 할 수 있었어.

소녀의 집과 소년의 집은
여느 북쪽 나라 사람들처럼 가난했어.
소녀의 집과 소년의 집은
서로 큰 호수의 반대편에 있었어.

호수는 소년과 친구들의 놀이터였어.
물장구, 물수제비, 고기잡기 같은 놀이들로
남자 아이들은 하루를 보냈지.
하지만 소녀와 여자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집에서 보내야했어.

어느 화창한 날이었어.
아마 일년 중 가장 따뜻한 시기였고
북쪽 나라에 마지막 여름이 지나가던 때였어.
여름이라고 했지만, 가장 더운 여름이어야하겠지만
얼음여왕이 찾아오고서 더위는  따뜻함으로 바뀌었지.
이 때만큼은 여자 아이들에게도 물놀이가 허락되었어.
그래서 소녀와 친구들도 물놀이를 나갔지.

천방지축이었던 소년과 친구들은
더 큰 아이들의 주먹과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서
호수 반대편 마을에 가까운 곳에서 종종 놀곤 했어.
그날도 소년과 친구들은 그랬어.
그리고 그곳에서 소녀와 여자 아이들을 만났지.

다른 마을의 아이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렸지만
아이들의 천진함은 곧 그들을 어울리게 만들었지.
그렇게 여느 아이들처럼 소년과 소녀는 가까워졌어.
사실, 소년과 소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어.

2009/05/17 02:24 2009/05/17 02:24

얼음연못 <1>

옛날, 아주 먼 옛날이야기야.
아주 추운 북쪽 나라의 이야기야.
계절이라고는 덜 추운 겨울, 추운 겨울, 아주 추운 겨울만 있는
북쪽 나라의 이야기야.

북쪽 나라에 '얼음연못'이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었어.
왜 호수 이름이 '얼음연못'이냐면,
북쪽 나라에 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는 큰 호수가 있었어.
하지만 얼음여왕이 북쪽나라에 찾아온 뒤로
그 호수는 꽁꽁 얼어버리고 눈으로 덮였어.
그리고 호수 가운데에 작은 연못으로만 남았어.
그래서 얼음연못이 된거야.

긴 겨울이 시작되기 전, 얼음여왕이 찾아오기 전
북쪽 나라의 큰 호수는 참 살기 좋은 곳이었어.
호수에는 온갖 물고기가 가득 했고,
호수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고,
그 숲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었어.
호수 마을 사람들은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숲에서 사냥하고
숲의 나무와 열매로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살 수 있었어.

하지만 얼음여왕이 찾아온 후
호수는 모든 게 달라졌어.
호수가 얼어가면서 물고기들은 줄어들었고
숲의 나무들은 말라기기 시작했어.
숲에서 살던 동물들도 떠나기 시작했지.
당연히 호수 마을 사람들의 삶도 어려워졌지.

더 북쪽 만년설의 산맥에서 살 던 얼음여왕이
왜 북쪽 나라에 왔는지, 그때는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얼음여왕에게는 후계자가 없었데.
그래서 후계자를 찾기위해
북쪽 나라에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돌았어.

살기 어려운 북쪽 나라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어.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갈 때 즈음에 시작된,
한 소녀와 한 소년의 이야기야.

2009/05/06 00:45 2009/05/06 00:45

나의 하루

어젯밤에는 대형할인마트가 닫을 시간 즈음에 가서
할인하는 각종 먹거리와 병맥주를 잔뜩 사서
배불리 먹고 마셨다.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뱃살이 좀 늘겠군.

오늘 아침, 평일에도 힘든 6시 10분에 눈을 떠서
7시 10분 시외버스를 타고 부천에 올라갔다.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부모님께 운동화 한 켤레씩 사드렸다.
물론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운동을 위해 트레이닝 복과 운동화도 샀다.
지름신을 어쩐데.

오후 2시 30분 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
길이 너무나 막혀 5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래도 고속버스만 타면 잠이 들어서 다행...

영화 리뷰를 한 편쓰고,
책을 한 권 읽었다.
어제에 이어 블로그 포스팅은 두 개 정도 하고 자야지.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쓴 하루.
왠지 뿌듯하고 기분 좋아.

그래도,
사랑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09/05/02 23:16 2009/05/02 23:16

그래, 어쩌면

그래, 어쩌면.

외롭고 슬픈 모습이,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일지도 몰라.

외로움과 슬픔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수 많은 책과 영화와 음악을 경험하고

수 백 개의 글들을 쓸 수나 있었겠니?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으려는 아이처럼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너무 욕심을 부린 건지 몰라. 내가.


그렇게 외로움과 슬픔이 나를 움직이는 힘일지도 몰라.

아쉽지만, 외롭고 슬픈 순간에 내가 가장 빛나고

오롯히 내가 온전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니.
2009/04/23 20:51 2009/04/23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