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내가 생각하는 일본 최고의 여류작가. (라고는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어본 일본 여류 작가의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밖에 없다.)

조금은 우울하지만 단아한 문체가 그녀의 매력.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나타난 그녀? 바로 그녀는 목욕광.

국내 번역서

1999년 '나의 작은 새(문일출판)'
2000년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2001년 '반짝 반짝 빛나는'
2003년 '하느님의 보트(자유문학사)'
2003년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2003년 '호텔 선인장'
2003년 '낙하하는 저녁'
2004년 '울 준비는 되어있다'
2004년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2004년 '웨하스 의자'
2005년 '도쿄타워'
2006년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2006년 '일곱 빛깔 사랑'(공저)
2007년 '마미야 형제'
2007년 '홀리 가든'
2007년 '차가운 밤에'
2008년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2008년 '장미 비파 레몬'
2009년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2009년 '좌안 1&2'
2009년 '제비꽃 설탕 절임'
2010년 '빨간 장화'
2010년 '달콤한 작은 거짓말'
2011년 '소란한 보통날'
2011년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공저)'
2011년 '부드러운 양상추'
2012년 '나의 작은새(소담출판사, 권신아 그림)'
2012년 '수박향기'
2012년 '하느님의 보트(소담출판사)'
2013년 '잡동사니'
2013년 '한낮인데 어두운 방'
2013년 '울지 않는 아이'
2013년 '우는 어른'
2014년 '기억 깨물기(공저)' 
2014년 '등 뒤의 기억'
2015년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번역서로서는 단편집 '차가운 밤에'의 다음으로 나온 중단편 모음집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다 읽었다. 최근 그녀의 소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재미있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사실은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가 실려있다는 점에 더 기대되었다.

'러브 미 텐더'는 지금까지 그녀의 장편 소설들과는 다른 노부부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묘한 감동이 있다. '선잠'은 '한 여름밤의 꿈'같은 사랑이야기로 계절의 변화와 사랑의 변화를 그려낸다. 여주인공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케릭터이다. 유쾌한 세 친구들의 이야기 포물선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진득한 우정을 모임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냈다. '재난의 전말'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진드기'라는 재난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파헤쳐간다. '오지은'의 노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가 떠오르는데, 주인공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 혹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은, 작가거나 잡지사 등 출판관련업에 종사하고 목욕을 좋아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과 연애하는, 조금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느낌도 드는 케릭터이다.

'녹신녹신'은 속을 알 수 없는, 아니 어쩌면 비겁한 변명의 나쁜 여자 이야기이고,  '밤과 아내와 세제'는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짧고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례식을 좋아하는 아주 독특한 부부의 이야기 '시미즈 부부'는 시미즈 부부와의 교류를 통한 여주인공의 정신적 성숙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 가장 궁금할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충격적 결말일 수도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줄이도록 하겠다. '마지막 기묘'한 장소는 같이 늙어가는, 노년기에 있는 세 모녀, 어머니와 두 딸의 이야기로 유쾌하고 활기차다.

지난 단편집 '차가운 밤에'와 마찬가지로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던 책으로, 역시나 장편들보다 재밌고 읽기가 편했다. 사놓고 읽지 못했던 그녀의 작품들, 밀린 책들을 이제부터 열심히 읽어야겠다.

2009/05/17 16:28 2009/05/17 16:28

10년이 지나서 좋은 것들

10년이 지나서 좋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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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서 좋은 것, 하나.

1995년에 발표되어 내 10대 중반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Alanis Morissette'의 충격적인 데뷔앨범 'Jagged Little Pill'.
그리고 'Jagged Little Pill' 발표 10주년 기념으로 2005년 발표된 'Jagged Little Pill Acoustic'이 나온 것.
제목 그대로 원곡들을 acoustic으로 편곡/연주하여 들려주는 앨범.
20주년이 되는 2015년에도 하나 나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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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서 좋은 것, 둘.

1999년에 발표(우리나라에는 2000년)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독특한 작품이자 대표작이된 '냉정과 열정사이'의 'Rosso'와 'Blu', 각각 10년 만에 재회하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 나는 2001년이나 2002년 즈음에 읽었을 것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소설들은 '반짝 반짝 빛나는'과 '마미야 형제'를 제외하면 상당히 지루한 편이었다. 반면에 단편소설집들은 상당히 재미있는 편.
'츠지 히토나리'의 장편소설들은 많지 않지만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서에는 더 맞는 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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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가 다시 의기투합하여 '냉정과 열정사이' 발표 10주년이 되는 바로 올해 비슷한 형식의 작품을 발표한단다.
바로 '좌안'과 '우안', 각각 2 권으로 총 4권. 분량도 만만하지 않다.
'좌안'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마리'의 이야기, '우안'은 츠지 히토나리가 쓴 '큐'의 이야기.
'냉정과 열정사이'를 시작으로 두 작가의 팬의 되어 번역서는 대부분 사서 읽고 있는데. 기대된다.

아래는 '냉정과 열정사이'를 제외하고 내가 갖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






이번에는 역시 '츠지 히토나리'의 책들



10년이 지나서 좋은 것, 셋.
정말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좋은 음악과 좋은 책을 함께할 10년 정도 사귄 연인이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2009/05/05 23:47 2009/05/05 23:47

에쿠니 가오리 - 차가운 밤에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 여성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모음집 '차가운 밤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귄으로 발매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88년과 93년 즈음에 발매된 두 권의 단편 모음집을 모아 소개하는 책이다. 발표 년도로만 보아도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초기 작품 성격과 근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차가운 밤에'와 '따스한 접시'라는 두 개의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어떤 작품보다도 더 큰 만족을 선사한다.

유령, 전생과 환생, 변신 등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차가운 밤에'는 신비롭지만 가슴 한 켠을 찡하게 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코 끝이 찡해질 '듀크'부터 '호접지몽'을 떠오르게 하는 '여름이 오기 전', 눈시울을 뜨겁게하는 유령이야기 '쿠사노조 이야기'와 '마귀할멈', 그리고 머나먼 기억 이전의 기억을 찾아가는 '언젠가, 아주 오래전' 등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느껴볼 수 없었는 감동으로 가득 찬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기까지 하다.


두 번째 부분인 '따스한 접시'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의 근간이 될 만한 단편들이 차지하고 있다. 연인, 결혼, 불륜과 이혼 등 '냉정과 열정 사이' 이후로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들의 주요 내용들을 군더더기 없는 단편들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그녀의 소설들이 '지리한 여름의 정오'같았다면 이 단편들은 180도 다르게 쉽고 명료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정확하게 남겨둔다.

전체적으로 정말 그녀의 작품 세계를 다시 살펴보고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고 그녀의 작품들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더 할 나위 없는 단편집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2008/02/27 22:56 2008/02/27 22:56

에쿠니 가오리 - 홀리 가든

일본에서 1994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7년 10월에 번역되어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홀리 가든'. 30세의 동갑내기 친구 '가호'와 '시즈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다지 나이가 뚜렷하지 않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나이가 뚜렷한 주인공을 내세웠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64년 생인 에쿠니 가오리는 이 소설이 발표된 1994년에 30세였다.

그녀 소설의 단골 메뉴인 '불륜'은 당연히 들어가고 부메뉴인 '실연'과 '우울'도 빠지지 않는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크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5년전 실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가호'와 건강해보이지만 '불륜'이라는 위태한 사랑을 하는 '시즈에', 두 친구의 서른살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실연의 수렁'과 '위험한 사랑', '하룻밤을 보내는 남자들과 이름 모를 여자친구들'과 '정신적 친구들', '잘 차려진 밥상'과 '기능성 식단'...여러가지로 대비는 두 친구의 모습은 겉으로는 '가호'가 더 이상하게 보이지만, 내면적인 안정은 또 다르다. 불안이 엄습하면 '올라잇'이라고 되되이는 '시즈에'가 더 위태롭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가호'가 마지막 남은 홍차잔을 꺼내어 '나카노'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면은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온 가호를 의미하나보다. 그리고 가호와 나카노의 나이차이 '5년', 5년 연하인 나카노의 설정은 가호가 최악의 실연 시건으로 보낸 '5년', 그리고 그 실연 후 지나간 '5년'을 의식한 설정이었을까?

에전부터 그랬지만 에쿠니씨의 소설을 읽은 후, 엄청난 감동이 밀려온다거나 깨닮음을 얻게 된다거나 의지를 굳게 다지게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깊은 생각 없이 가볍게 읽을 만했다.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점은 TV드라마와 닮았달까?

'어떤 모습이 올바른 사랑의 모습일까?'는 우스운 생각인가보다. 아마 누구나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사랑이 가장 '올바른 사랑'이겠지.
2007/12/16 18:52 2007/12/16 18:52

에쿠니 가오리 - 마미야 형제

열심히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 중 가장 최근에 국내에 발매된 '마미야 형제'. 일본에서는 2004년에 출판된 작품이고 이번달에 동명의 영화도 국내에 개봉한다고 하니, 영화에 맞춰서 부랴부랴 번역되었나보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미야 아키노부'와 '마미야 테츠노부'라는 '마미야'가(家)의 두 형제 이야기를. '남성'을, 그것도 '두 명'이나 전면에 내세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인 듯하다. 작가는 연애에 번번히 실패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너무 비참하지도, 너무 우습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은 안타깝고 처연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답게도 두 형제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써왔던 그녀이기에, 두 형제를 중심으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들도 들려주고 있다. 남자 친구와 뜨거운 데이트(?)를 즐기는, '혼마 나오미'와 '혼마 유미',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혼마'가(家)의 두 자매나, '아키노부'의 직장 동료 '오오카키 켄타'의 부인 '오오가키 사오리', '테츠노부'와 같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동료교사와 부적절한 관계 중인 '쿠즈하라 요리코' 등... 아마도 주변 여성들의 '타입(?)'은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한 번 쯤은 나왔을 법하다. 역시 '불륜'은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소재이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은 소설이랄까? '어른의 고독'이 담겨있고, '어른의 좋은 점'도 담겨있다. 어른이기에, 어렸을 때 창피했던 일들을 이젠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만큼 고독하다. 어른이기에.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것일까?

적지 않은 나이, 30대가 되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서로 취미를 공유하고 부대끼며 사는 '마미야 형제'. 정상적인 결혼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무렵부터 일관되게 짝사랑만 해왔다. 상대의 이름을 지금도 나열할 수 있다. 어떤 애였는지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이런저런 씁쓸한 경험들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한 예로, 복도에 붙여 놓은 학교행사 사진들 중에서 원하는 사진의 번호를 종이에 적어 신청하게 했는데, 아키노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의 사진을 한 장 사려고 했다.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곁에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졌는지, 아키노부가 본인이 찍히지도 않은 사진을 사려고 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에 퍼져, 사진의 주인공에게 항의를 받았다. 거센 항의였다. 그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주위 여자애들은 동정했다. 정작울고 싶은 쪽은 아키노부였는데.
2007/03/17 15:49 2007/03/17 15:49

일곱 빛깔 사랑

'일본의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모았다는 책, '일곱 빛깔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있다는 점도 구매한 이유이지만, 아직 모르는 다른 일본의 여성 작가들의 글이 궁금하기도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드라제'.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그녀의 소설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드라제'는 중년과 청년, 두 다른 나이대의 여성의 시각에서 회상하는 형식이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회상에 잠겨드는 두 사람, 나이대가 다른만큼 사고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려한 것일까? 적어도 그녀의 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역시 중년의, 현재의 그녀는 '쿨'하다.

'기쿠다 미쓰요'의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 현재 36세가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 셋 중 한 친구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회상이다. '외도'는 일본 여성 작가들의 단골 소재일까? '에쿠니 가오리'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다음에 나올 몇몇 글도 그렇고 '외도'의 관한 이야기다. 화자의 '유부남과 연애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다. 유부남과 연애하기에 골든위크, 연말,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함께 할 수 없고, 결국 '연애 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런 날을 함께 보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연애' 대한 짧은 생각이 담겨있다. '연애 동맹'이라는 이름이지만, 그 두 친구의 관계도 '연애'가 아닐까? 꼭 이성과만 '연애'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이노우에 아레노'의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 역시 '외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주관심사는 아니다. 부인의 외도와 결국 헤어지기로 한 부부, 그 둘이 헤어지며 부인이 짐을 싸서 나가는 날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수년 만에 기록적인 강우는 부인의 발목을 잡는다. 남편에의해 구조된 옆집 고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부부의 죽은 고양이, '테르'는 대신할 수 없듯, 두 사람의 사랑은 변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니무라 시호'의 '이것으로 마지막'. 이 글도 '외도'와 약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처럼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작가의 나이가 적어도 30대나 40대일텐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치(bitch, 소설 속 그대로의 표현)'들의 이야기를 꽤나 재밌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우습거나 그런 이야기만은 아닌, '관계'와 '성장'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거 할까? 성장통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과 그런 성장통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계의 종말. 좋아하는 친구와 멀어지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후지노 지야'의 '빌딩 안'.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인 '일곱 빛깔 사랑'에 어울릴 만한 '정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 관계'의 한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옮겠다. 거리에서 우연히 묘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보게된 주인공이 그를 같은 빌딩 안의 다른 회사 직원임을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어떤 '시시한 연애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하지만 시시하다기보다는 소박하도 해야겠다. 이 후에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냥 친구가 되었으려나.

'미연'의 '해파리'. 작가의 이룸이 심상치 않은데, 책 앞쪽의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역시나 한국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글이 상당히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같다고 할까?

'유이카와 케이'의 '손바닥의 눈처럼'. 드디어 '진짜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애인 '료지'의 한 순간 실수를 참지 못하고 1년 후에 만나자고 한 주인공 '나오'와 료지와의 하룻밤 불장난을 한 애인 '다에코'을 보낸 '슌스케', 한 달의 한 번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에 대한 담론들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자의 입장, 여자의 입장, 아마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눈에서 멀어지면 역시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 끝을 만날 때 까지의 끊임 없는 탐색, 그것이 진짜 '연애의 본질'일까? 그래도 가장 훈훈한 결말을 보여주는, '순백의 사랑'.

정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하나가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해파리'는 좀 난해한 점이 있어서 읽기 힘들었지만.) 이제 에쿠니 가오리외에 다른 일본 여성 작가들의 책도 하나 하나 찾아 읽어볼까? 결국 시간의 문제인가? 독서도, 연애도.

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는 잘 나가는 컴필레이션이나 샘플러를 찾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쩌면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곱 빛깔 사랑'같은 '컴필레이션'이라면 일본 소설 입문자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일인지, 그때 나오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모든 것은 아마도 이 손바닥의 눈처럼 녹아버리고 말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면.
2007/01/30 22:00 2007/01/30 22:00

에쿠니 가오리 - 초록 고양이, 천국의 맛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中)

첫번째 '손가락'에 이어지는 이야기 '초록 고양이'. 주인공 '모에코'와 그녀의 단짝 '에미'의 이야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알았는데, 앞선 '손가락'의 주인공 '기쿠코'나 그녀의 친구들 '유즈', '다이케', '마미코' 등이 등장하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일어나는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손가락이 '어른 세계에 대한 고민'이라면 '초록 고양이'는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이라 하겠다.

둘도 없는 단짝인 '모에코'와 '에미'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에미'의 정신 상태와 점점 멀어지는 둘의 관계...남자들과는 달리 단짝 친구와 손도 잡고 다니는 여중고생들에게 '친구'는 좀 다른 의미일까? 남자들의 'brotherhood'와는 또 다른, 신비롭게 보일 수 있는 여자들 사이의 '그 무엇'.

세번째 '천국의 맛'은 '키쿠코'의 친구 중 한 명인 '유즈'의 '이성에 대한 고민'같은 이야기.

엄마의 유일한 삶의 기쁨이자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는 '유즈'가 네 명의 단짝들 중 하나인 '다이케'로 부터 소개받은 '요시다'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기묘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자동차'와 '명품'으로 대면되는 엄마의 보호를 벗어나, '걷기만 하는 데이트'와 '소박함'의 '요시다'에 의해 동등한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에 눈뜨게 되는 '유즈'의 소박한 로맨스.

개인적으로 '유즈'와 '요시다'의 이야기는 너무 부러웠다. 굳은 날, 바람 속에서 '걷기만 해도 좋은 두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2006/11/01 16:17 2006/11/01 16:17

에쿠니 가오리 - 손가락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中)

'도쿄타워'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이번에도 역시 '에쿠니 가오리 전문 변역가'라고 할 만한 '김난주'씨의 번역이었고 첫장으로 보니 일본에서는 2002년에 출간된 책이었다.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번 책은 총 6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번째 '손가락'은 '여고괴담',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영화들에서 느꼈던 '여고시절'에 대한 동경(?)이 다시 고개를 들게 하는 이야기다.

'교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을 완벽하게 가려준다.'는 소설 속의 문장처럼 교복은 여고생들에게는 남고생들과는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남고생들에게는 소속감과 동료애의 상징 정도라면, 여고생들에게는 자신을 가려주는 차단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신발달 상 사춘기 시기에 남성에 비해1~2년 빠른 정신적 성숙을 보인다는 여성인 만큼, 여고생들은 같은 옷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고생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 서먹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처음에는 밤이라 볼 수 없었고 다음에는 겨울이라 얼어버려 볼 수 없었던 닛코의 폭포처럼 알 수 없는 어른들의 마음과 세계, 그리고 그와는 동떨어지게 유유히 흘러가는 여고시절.

여고생 '키쿠코'가 늦 가을부터 겨울까지 만났던 '여성 치한' 아키바 치하루. 그녀의 이름에 들어가 가을(秋)과 봄(春), 키쿠코가 그녀를 알지 못했던 '봄'부터 '가을'까지 그녀에게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던 것일까?
2006/11/01 13:40 2006/11/01 13:40

공지영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몇 일 전 아침, 신문에서 두 여성 작가의 책 소개가 있었다. 그 중 하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썼다는, '냉정과 열정 사이'같은 형식의 소설,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었다.

결국 난 그날로 책을 주문했다. 서적 구매에 거의 유일하게 이용하는 Yes24에서 이 책 두 권과 '나니아 연대기'를 담았다. 그리고 이틀 후 아침 책을 받았다. 참 좋은 세상이다.

'친절한 지영씨'

작가 공지영의 책은 이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처음이었다. '츠지 히토나리'가 쓴 남자편보다는 공지영이 쓴 여자편을 먼저 빼들었다. 그녀의 첫 느낌은 매우 친절했다. 간결하면서도 문장과 문장사이를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에쿠니 가오리'의 '아오이'와는 달리 공지영의 '홍'은 장황한 만큼 감정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풍부했고 막힘 없이 정말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었다.

'이별 전에 있던 일들'

제목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지만 '홍'의 이야기는 '이별 전에 있던 일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홍은 과거의 그와 함께 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이별 전에 있던 것들과 관련이 없을 수 없겠지만 홍의 '사랑 후'는 결국 '이별 전'의 거울이다.

'그녀의 이야기'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막힘없이 물길을 따라갔지만 그 물에 흠뻑 젖을 수 없었다. '조금은 기적같은 내용이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처럼 내용은 너무도 바르게, 아니 결국 그럴 수 밖에 없게 흘러간다. 연애소설이 다 그런 것이겠지만... 좀 더 독자의 상상에 맏겨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2005/12/31 02:20 2005/12/31 02:20

에쿠니 가오리 - 도쿄타워



묵향이나 월야환담 창월야의 신간이 나왔나 알아보러 예스24에 접속했다가 예약판매하고 있고 있어 잽싸게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2001년 발표되었는데 올 초에 일본에서 영화화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개봉 예정이어서, 이제서야 번역본이 나왔나보다.

도쿄타워, 쓸쓸함의 상징...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연상의 여자를 사랑한 19세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또 아슬하고 위태한 연애소설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로서는 특이하게도 두 명의 주인공이 모두 남자이다. 조금은 나약한 모습의 '토오루'와 진취적이고 활발한 '코우지', 서로 다르면서도 닮아있는 두 친구의 이야기로 소설은 진행된다. 40대의 유부녀 시후미에게 빠져드는 토오루와 30대의 유부녀 키미코, 동년배의 유리 사이에서 일명 양다리의 코우지를 보여주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토오루는 고교시절 어머니의 지인으로 알게 된 시후미와 사귀고,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들어간다. 유부녀인 시후미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녀와의 사이에서 어떤 '벽'을 느끼고 그 벽을 부수기위해 고민한다. 결국 토오루가 찾아낸 길은 벽에 창문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생활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는 조건,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또래 여자들은 시시하게 생각하고 재미로 고교시절 유부녀와 위험한 만남을 시작한 코우지는 이 후 동년배 유리와 주부 키미코사이의 이중생활을 하면서 유리의 소녀다운 매력에 빠져들면서도 키미코와의 육체적 쾌락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과거의 업보로 산산조각난다. "같은 또래의 애들은 시시해요."

'소년들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다. 한 소설은 그 환상에서 아슬아슬하지만 현실적인 길을 찾아가고, 또 다른 소년은 자신의 잘난 환상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고 깨질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하게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지난주에 영화 '도쿄타워' 시사회 티켓이 도착했다. 책을 주문할 때는 몰랐는데, 시사회 이벤트를 진행중이었나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소설과 영화가 많이 달랐는데, 영화 '도쿄타워'는 어떨지 살짝 기대된다.
2005/10/30 19:19 2005/10/30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