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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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다면,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때는 2009년 상반기 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주목하게 된 이유에는 흔하지 않은 '솔로'로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동영상 때문이었습니다. '여신'이라고 부를 만큼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10대답게 풋풋하고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에서, 한국 가요계에서는 찾기 힘든 '크게 성공할 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이 보였고,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싱어송라이터'에 주목한 이유는 그때도 한참 빠져있던 'Taylor Swift'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성장'은 아쉽게도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아이돌'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실력파 뮤지션이 되었고, 수 많은 메스컴이 주목하고 수 많은 국민들이 그녀의 이름을 하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본명인 '이지은'보다 예명이 더 친숙한 '아이유(IU)'입니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는 다분히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싱어(가수)'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정규 2집부터는 꾸준히 자작곡을 들려주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곡의 작사니 작곡에 참여한 새 미니앨범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었죠. '아이돌'로서의 그녀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풋풋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쉬웠으니까요.

공식적으로는 '네 번째'가 되는 미니앨범의 제목은 'CHAT-SHIRE'입니다. 톡특한 제목인데,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네티즌들의 추측에 의하면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캣(Cheshire cat)'을 의미한다는데, 앨범의 아트웍이나 사진 컨셉트 그리고 수록곡의 가사까지 고려한다면 꽤나 신뢰할 만합니다. 다만 "왜 변형하여 사용했을까?"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첫 곡 '새 신발'의 제목에서부터 딱 떠올랐던 곡은 정규 3집의 '분홍신'입니다.(가사에도 역시 '분홍신'이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소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너무 '성숙함'을 정규 3집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또, 기교를 아끼면서도 상쾌하고 편안하게 부르는 창법이나 그녀가 직접 쓴 시원하고 자유로운 가사는 분명 지난 앨범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다분히 '아이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내놓은 앨범의 첫 곡이기에 '새 신발'은 적절한 배치입니다. 다만 자작곡이 아니라는 점이 '옥의 티'네요.

모든 가사를 그녀가 직접 쓴 만큼, 가사가 꽤 고백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Zeze'는 꽤나 은유적인 표현들이 가득하고 또 꽤나 '야하다'는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사실 이번 미니앨범의 수록곡들은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이보이는데, 이 곡이 '은유'로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녀와 연애를 하다가 더 어린 여자에게 떠난 누군가를 저격하는 곡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맞다면 그 누군가는 꽤나 뜨끔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스물셋'은 타이틀로 Zeze만큼이나 논란이 될 수 있는 곡입니다. 컨셉트부터 은유가 가득한 이 앨범에서 비교적 솔직한 곡인데, 경쾌한 진행 위로 풀어내는 그 솔직함이 주는 후련함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연예인'과 '행복하고 싶은 23세 여성'으로서 갈등도 담아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변덕스러운 '메스컴과 여론'의 태도를 당당하고 꼬집는 점입니다. 조금 위험해보이는 솔직함이지만, 이제는 이런 변덕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성공한 그녀의 당당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올해의 노래'로 뽑을 수 있을 만큼, 가사나 곡 모두 '아이돌의 노래'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작사/작곡 모두 그녀가 해낸, 온전한 '그녀의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은 총 3곡인데, '푸르던'은 그 시작입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 위로 흐르는 여린 그녀의 음성은 딱 그녀의 첫인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적절한 비유와 서정성은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이 추구하는 음악 세계가 아닐까요? '푸르던'이라는 과거형의 제목부터 가사로 이어지는, 잡을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잔잔한 아쉬움'은 꽤나 좋습니다. 다만 이 곡을 반드시 기억하게 할 만한 어떤 '임팩트'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음원깡패 '자이언티(Zion.T)'와 함께한 'Red Queen'은 제목에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릅니다. 스윙째즈풍 연주와 자이언티의 음성은 담배연기 자욱한 바(bar)를 연상시킵니다. 가사는 역시 다분히 은유적인데, 그 가사의 주인공은 남이 아닌 '그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자전적인 느낌입니다. 

'무릎'도 온전한 '그녀의 곡'으로 가슴시린 발라드입니다. 이번에는 기타가 아닌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하는데, '푸르던'보다 절정이 뚜렷한 곡의 흐름으로 자작곡 가운데서는 가장 사랑받을 만한 곡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지금의 외로움을 절제된 감정으로 노래하는 모습에서는 '신인같은 풋풋함'과 '8년차 뮤지션의 노련함'이 교차합니다. '누구'의 무릎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무릎에서라도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 자작곡 '안경'도 다분히 은유적이며, 제목 자체는 중이적이기도 합니다. 가사까지 살펴보면 '그녀에 대한 타인들의 삐뚤어진 시선'인 '색안경'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안경'이기도 합니다. 안경 없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스물셋'의 당당함과도 이어지지만, 꽤 적극적인 '스물셋'과는 다르게 이 곡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들립니다.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으로서는 이제 크게 한 걸음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자작곡들로 성공했던 Taylor Swift와는 다르게 꽤나 먼 길을 돌아왔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앨범의 별점은 4개입니다.
2015/11/01 21:03 2015/11/01 21:03
ezs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여러 구설수가 좀 있었죠. 개인적으로도 이 앨범은 구매했지만 충분히 들을만 한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듣기도 했군요. 뭐 이래저래 엄청 까이기(?)도 했지만 제가 구매하는 앨범이라면 우선은 그냥 들어봐 라고 얘기해줄수 있을것 같아요.

bluo

진짜 음악만으로 좀 들어줬으면 하는데, 사람들 오지랖들이 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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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아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부터 꾸준히 극찬을 아끼지 않는 작가가 있다. 바로 미국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드디어 읽어보았다. 이미 영화판 '위대한 개츠비'를 봤지만, 영화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는 소설로 읽기를 잘했다. '자막의 오역' 혹은 번역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언어의 뉘앙스'의 차이 때문일까? 원작 소설은 영화와 완전히 같지 않다. 영화 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나 인물들도 소설에서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결말에서는 꽤 차이가 있다.

전체적은 줄거리는 영화와 거의 동일하다. 지독하게 순수한 마음의 남자가 겪었던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화려한 영상의 영화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점을 소설은 담고 있다. 서부에서 동부로 이주한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갈등은 '서부 개척 시대'는 다른 미국의 근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 속 화려한 영상만큼이나 유려한 문체는, 영화가 화려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조금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랑을 열망했던 '제이 개츠비', 그래서 그는 위대했다. 그의 죽음으로 맺는 결말은, 낭만과 순수가 사라져가는 시대의 모습과 겹치면 짙은 여운과 공허를 남겼다.

* '위대한 개츠비'가 갈망했던 '데이지'는 영화보다 더욱 속물스러운 인물이다. 수 많은 속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그녀는 가히 '속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2015/07/28 17:26 2015/07/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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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고 생각하면 꽤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길지도 않은,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센티멘탈 시너리(Sentimental Scenery)'의 팬들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으리라. 두 장의 일렉트로니카 앨범(Harp Song & Sentimentalism, Soundscape)을 발표하고 결정한 군입대는, 그의 미래에 물음표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군대'라는 2년의 경험은 그의 섬세한 감수성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어 음악적 변화를 유발할 수도 있을테고, 그 영향이 팬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부정적인 방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물음표와 함께 해는 세 번 바뀌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과 더불어 '파스텔뮤직의 향후 10년을 이끌어나갈 뮤지션'으로 뽑았던 센티멘탈 시너리였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그 기대만큼,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예상했던 '10년' 가운데 절반이 지났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10년'에 대한 예상은 반만 맞았을까? 2015년 3월, 3년을 기다린 답장이 그로부터 날아왔다. 바로 정규 2집의 발매에 앞서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지금 여기, 이곳에서'다.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Chapter 5"에 수록된 '추억을 걷다'는 팬들의 사연으로 꾸려진 앨범이기에 예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집 맛보기인 '지금 여기, 이곳에서'도  일렉트로니카가 아닌 점은 '예상했던 변화'를 직접 맞딱뜨리는 상황이 되었다. 눈치가 빠르다면, 영화 '청춘의 증언'의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꾸민 점이나, 'Lucia(심규선)'가 featuring이 아닌 duet으로 참여한 점만으로도 알아챌 수도 있었겠다. 놀랍게도, '지금 여기,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발라드 넘버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 시적인 가사, 그리고 센티멘탈 시너리와 Lucia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까지, '발라드'는 기대하지 않은 변화의 방향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변화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이름의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경력이나 연주곡 위주의 스페셜 앨범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를 생각한다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그의 재능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성숙함이 느껴지는 작사 능력이나 좀 더 다듬어진 보컬 능력은, 3년이라는 공백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부분이다.

이 한 곡만으로 정규 2집을 예상한다면, 앞선 두 장의 일렉트로니카 앨범과는 전혀 다른 색채가 예상된다. 투명한 피아노 선율을 내세운 점에서는 오히려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의 방향성을 이어가는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 '에피톤 프로젝트'와 'Lucia' 이후로 '걸출한 신인의 데뷔'에 목말라있던 파스텔뮤직에게 센티멘탈 시너리의 새 앨범이 '제 2의 데뷔'로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 지 지켜보도록 하자.

https://youtu.be/lyTpCyJShvM

2015/03/31 00:06 2015/03/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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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이 세계화에 실패했다는 기사들이 보인다.

그 실패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망상도 크게 한 몫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피자'지만, 최근까지우리가 즐겨먹던 피자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가까웠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서 '나폴리 피자' 등 진짜 이탈리안 스타일에 가까운 피자들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인식 속의 피자'는 미국식이다. 중식당에서 먹는 중화요리의 대표적인 메뉴 '짜장면'도 본토와는 전혀 다르게, 한국식으로 계량된 요리이다. 일식당에서 회를 먹을 때도, 한국식으로 초장에 찍어먹는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심지어, 우리가 흔히 '인도 요리'라고 알고 있는 카레도 한국인이 먹는 방식은 일본식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런데 그런 망상이 팽배한 상황은, '역지사지'가 결여된 지독하고 멍청한 '이기주의'라고 볼 수도 있겠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고추장/고춧가루를 버려야 한식이 살 수 있다고 본다.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자극적인 '매운맛'은 이미 세계화에 성공한 멕시코/중국 등과 겹치는 포지션이다. 매운맛은 통증에 가깝고, 매력을 담고 있는 다른 미묘한 맛들을 쉽게 가린다. 역사적으로도 임진왜란 이전에는 한반도에 고추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그 자체도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 문화와 생활양식의 영향을 받는, 고정되지 않은 개념이다. 차라리 '선(禪)'과 접목된 '사찰음식'이나, 고추를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로 사용한 음식으로, 세계인의 입맛과 시장에 대한 '접근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식의 작은 가능성은 최근의 소규모 집밥 열풍에 있다고 본다.

함께 먹는 '탕/찌개/전골류'는 세계 시장의 주요 타켓이 되는, 개인주의적인 '서양인'의 식습관과는 상충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일식처럼 1인분씩 정갈하게 담겨나오는 소규모 집밥들의 모습은, 이미 세계화에 성공한 '일식'처럼 깔끔하면서도 한식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왁자지껼하게 정이 느껴지는 한 그릇에 담아 떠먹는 식탁이 아름답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식 편견일 수있다. 상품성으로 본다면 아직까지 '한국'의 이미지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접목시키는 편이 더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맛 뿐만 아니라, 그 맛을 담아내는 방법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망상은, 세계화에 성공한 음식들을 살펴본다면, 사실상 연구 및 개발을 게을리하고 날로 먹으려는 심보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2015/03/18 00:32 2015/03/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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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야가 '태양계 속 태양과 일부 행성들' 수준에만 머무르던 우주개발시대 이전에, '화성'만큼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천체가 있었을까? 화성은 오래전부터 밤하늘에 빛나는 붉은빛 때문에 '피'와 관련된 신화와 상징들을 만들어냈고, 근대에는 일반인들도 천체 망원경으로 표면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왔던 천체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1898년)"이라는, '화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담은 소설로 화성을 신화 속에서 현실로 가져왔고, SF 장르의 단골 소재로 가져오게 했다. 이후 20세기에는 꽤 많은 작가들의 화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내놓았다. 2012년에 헐리우드 영화로 국내에 알려진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도 20세기 초에 발표된, 가상의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소설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도 제목처럼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화성 연대기"는 SF 소설들과는 분명 다르다.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SF 거장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정교하게 예측한 편이라면, 레이 브래드버리가 이 작품 속에서 그린 '미래의 모습(작품 속 설정 년도로는 21세기의 현재)'에서는 과학적 고찰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SF보다는 환상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부분이다. '연대기'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기승전결로 끝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느슨한 연관성을 갖는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화성'이라는 배경을 지구 위에 있는 '미지의 지역'으로 슬쩍 바꾼다면,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에 더 어울릴 만한 단편들이 많다.

사실, 작가는 과학적으로 고뇌보다는 '시대적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지의 세계 '화성'을 배경으로 이용해서 현실을 풍자하려 했을 수도 있겠다. "무진기행" 속 가상의 도시 '무진'처럼, 그의 이야기가 펼쳐질 '환상/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선택된 '화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화성 연대기' 속 배경과 이야기들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성'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아릅답다. 눈물 겹도록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한 마지막 단편 "백만 년짜리 소풍"이 가장 먼저 쓰여진, 이 연대기가 쓰여지게 한 계기라는데, '대홍수와 방주'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어으리라 생각되는 이 한 편만으로도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함께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과 풍자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약 반 세기 전에 예측한 화성 여행이나 지구의 상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언제나 그가 예측한 '가장 비참한 결과'에 빠질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과학적 고찰은 허술하지만, 인류와 현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인식이 그의 작품의 걸작 반열에 올렸다고 본다. '화성 연대기'에 꽤나 연관성을 갖고 있는 그의 다른 대표적들도 궁금해지는, 책 읽기 좋은 봄의 저녁이다.
2015/03/09 18:46 2015/03/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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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상대로 EP '유예' 이후 2년이 지나서야 '9와 숫자들'의 새 앨범이 찾아왔습니다. 2009년에 데뷔앨범이 나왔으니 약 5년만이기도 합니다. 팬으로서 너무나 긴 휴식기는 아쉽지만, 1집과 EP 사이에 복고적 취향에서 짙은 감수성으로의 음악적 변화를 경험했기에, 시간의 간격 동안 또 어떤 음악적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2집 '보물섬'은 1집의 복고풍 그룹사운드의 색채 위에 EP의 강점이었던 '취향 저격' 요소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우선 트랙 제목만 살펴보면, 1집의 재치를 이어나가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집에서는 유년기의 향수를 일으킬 만한 단어들이 포진해있습니다. '보물섬'은 '소년중앙'과 쌍벽을 이루던 소년잡지를 떠오르게 하고, '숨바꼭질/깍쟁이/초코바/북극성'의 단어들도 그 시절의 소소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트랙 '보물섬', '실버라인'부터 마지막 '북극성'까지, 꽤 많은 달달한 사랑 노래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보물섬은, 만화 '원피스'가 생각나는 제목이지만, 감정이 절절히 넘실거리는 '2014년의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이라고 할 만한 트랙입니다. 이어 지는 '실버라인'은 '보물섬'의 감정선을 이어가고, 눈가에 맺힌 아롱아롱 눈물 방울도 같은 아쉬움과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차분한 '창세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앨범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강한 잔잔한 트랙이고, 아마도 히든트랙이 되었을 수도 있는 '북극성'은 9와 숫자들다운 차분한 달달함과 여운으로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EP처럼 전체적으로 꽤나 서정적인 앨범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이사이에는 '건빵 속 별사탕'같은 즐거움들이 끼어있습니다. 바로, '깍쟁이'와 '초코바'와 같은 트랙들입니다. '깍쟁이'는 이미 공연에서는 오래전부터 연주했었던 곡으로, 새침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세기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깍쟁이 2편' 혹은 '깍쟁이, 그 뒤 이야기'라고 할 만한 '초코바'는 새침함과 경쾌함에 톡톡 튀는 감정까지 더했습니다. 마치 '고고장' 분위기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 밴드가 큰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면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곡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더불어 뮤지션 9가 이어온 현실에 대한 고찰 또한 놓치지 않고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높은 마음'과 중의적인 제목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녹여낸  '잡 투 두'가 그렇습니다.

이 앨범은 유일한 단점이라면 발매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EP 발표 직후, '근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지만, 늦어지면서 '보물섬'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연에서 들려준 곡들과 더불어 더불어 컴필레이션 수록곡이나 디지털 싱글 등으로 몇 곡이 미리 발표되어서 이번 앨범에 대한 신선함을 조금은 떨어뜨렸습니다.

다행히도 9와 숫자들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기존 발표곡들을 앨범으로 들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신곡들도 뛰어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팬으로서 앨범 한 장으로 '업데이트된 9와 숫자들'을 즐길 수 있는 점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팬들에게는 9와 숫자들만한 '북극성'이 또 있을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15/03/05 18:02 2015/03/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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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진(Origins)'은 약 10년 전에 한국어판 발매와 직후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한 번 읽어보았다. 사실 오래전에 도전했다가, 지루함 때문에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NG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를 본 기억이 나서, 다시 도전해 봤다. 두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바로 '코스모스'의 안내자였기 때문이다.

약 10년이라는 시간만큼 내 독서 스펙트럼도 달라졌을까?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꽤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실 그 쪽으로는 '별자리 이야기'나 '그리스/로마 신화' 정도를 빼면 아는 지식이 없었는데, NGC 코스모스와 더불어서 우주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체물리학'과 '양자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이고 비교적 최근의 지식들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확실히 TV 다큐멘터리보다는 깊이가 있는 책이어서, 인력이나 중력 그리고 원자와 분자 등 기본적인 물리화확적 지식이 없으면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그리도 물리/화학/지구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의 나'에게 고맙고 뿌듯해지는 경험이었다.

10년 전에 끝까지 읽고 더 나아간 책들을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칼 세이건'의 시대보다 더 나아간 지식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도 지금으로부터는 '10년이나 지난' 지식들이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발견과 지식의 발전이 있었을까? 인간에게 아직도 우주는 무한하고 신비롭고 경외롭다. 아주 작은 지구 위에 사는 아주 작은 인간에는 낯선 세계이지만, '신성'과 '초신성'의 폭발이나 '퀘이사' 같은 천체 현상들이 인간 사회의 현상과 닮아있다는 점이 재밌다.

'기원'을 의미하는 '오리진'이라는 제목처럼, 이미 '빅뱅'으로 잘 알려진 우리 우주의 탄생 과정은 꽤 자세히 알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에서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이고 영원한 질문들의 해답을 위한 작은 실마리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까지, 인류에게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

많이 읽을 수록 더 많이 알게 되지만, 그만큼 더 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들이 많아진다. 바로 그 점이 독서에 빠져드는 이유가 아닐까?
2015/02/10 15:22 2015/02/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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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블로그에는 소홀한 편이다. 사실 최근의 관심사는 음악이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미식'이다. 맛있는 요리를 탐하는 그 '미식'이 맞다. 이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미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서, 더 그 쪽에 관심이 커졌을 수도 있겠다. '미식'에 관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 직업도 '지식 노동'이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직업이기 때문일까? 음식의 맛에 눈을 뜨면서, '지식 노동'을 포함해서 '타인의 보이지 않는 노동'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음식점에서 '원가 타령'을 하는 건,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미식'은 확실히 '자본주의의 꽃'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북(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맛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격 대비 성능(맛)을 따진다. 하지만 '미식'에 조금 눈을 뜨면서 무턱대고 '저렴함'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싼 음식에도 분명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다. 그런 태도를 갖고 나서, 요리를 즐길 줄 아는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

'미식'이란 단순히 '음식의 맛'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맛 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분위기부터 서비스까지 여러 가치들이 '미식'에 포함될 수 있다. 유명한, 그리고 그만큼 가격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들은 확실히 인테리어(실내 장식)에도 꽤 신경을 쓴다. 또, 식기의 선택에서도 특별 제작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용할 정도로 세세하게 신경쓰는 셰프들도 있다. 좋은 식기를 사용할 수록 요리의 꾸밈(데코)에도 공을 들이기에, 그런 셰프의 요리들은 '멋'스럽다. 미식은 비단 '맛' 뿐만 아니라, '멋'도 함께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가 아닐까?

'인테리어'부터 '식기의 선택' 그리고 '조리에 들어가는 정성'까지, '요리'라는 행위에는 '식자재 원가' 외에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들'이 더해진다. 같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도 들어간 정성에 따라 셰프 각자가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일은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다. 음식이 원가보다 터무니 없이 비싸고 맛이 없다? 그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 음식점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정말 그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결국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도태될 것이다. 비싸지만 인기가 좋은 음식점에는 분명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인 '맛과 멋'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원가 타령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유명인이 차린 음식점이 비싸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맛이 없고,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정말 비난해야할 점은 공중파를 비롯한 '대중매체'가 음식점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노이즈마케팅에 이용되는 상황이다. '맛'은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맛의 잣대'에까지 대중매체가 낭비될 필요는 없다. 그런 낭비는 '자본주의의 순수함'을 천박하게 오염시킬 뿐이다.
2015/01/23 16:14 2015/01/23 16:14
파랑사과

bluo님 미식 블로그 주소 공개는 안하시나요?
매번 블로그 즐겨 보고 있는 눈팅족인데,, 미식블로그도 보고싶어요.. 흐.. ~

bluo

ㅎㅎ 특급비밀을 알려달라고 하시다뇨.ㅎㅎ

파랑사과

크.. 특급비밀이었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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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Neuromance)'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SF와 판타지 장르에 익숙하고 생물이나 의학적 지식이 있다면 '신경/신경계'를 의미하는 'neuro'와 '시체나 영혼을 조종하는 주술사'를 의미하는 '네크로맨서(Necromancer)'를 조합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뉴로맨서'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나 '매트릭스(Matrix)'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이 발표된 때는 고작 1984년이었다. 제목부터 뉴로맨서와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매트릭스(the Matrix)'나 인간의 인지 속 세상을 다룬 '인셉션(Inception)' 같은 영화들부터 소설과 코믹스들까지 이 작품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SF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도 흥미롭다. 전통적인 '고전 SF'에서는 소설의 결말이 비극적이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꽤 낙관적인 견해가 대세였다. 그 낙관적인 견해 속에서 인류는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뤄내고 지구라는 굴레를 벗어나 우주 개척 시대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는 낙관적인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닌, 불안과 허무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다. '사이버펑크' 장르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하고, 과학기술은 현재보다 꽤 발전하지만 장미빛 미래는 아니다. 국가과 법을 대신할 '초거대 기업'과 '군산복합체'가 등장하고, 인류는 '안드로이드(인조인간)'이나 '개조인간'과 공존한다. 지구와 태양계 밖에 있는 인류가 이주 가능한 '골디락스 존'의 발견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일까? '우주 개척'에 대해서도 뚜렷하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 더욱 두각을 나타낸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의 영향으로도 보인다. '사이버펑크'를 생각하면,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가 둘러싼 거대한 도시'나 '향락의 네온 사인 불빛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한 안개와 매연이 가득한 골목' 등이 떠오르는 이유도 그런 디스토피아적 관점에 있겠다.  

소설 뉴로맨서는 그런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현실이 아닌 사이버스페스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에서, 소모품인 '병사'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과 인공지능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고전적인 메타포를 따라 세상을 구하는 '신화적/영웅적 모험담'과는 거리가 있고, '정의'나 '진실' 같은 불변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퇴폐와 염세로 가득하고 결말은 허무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고, 평범한 인생의 종착역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기에 'SF 장르의 하나'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을까? 지금은 꽤 익숙한 소재들을, 오직 글로써 시각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은 그 시대를 고려하면, 경이롭다. '모험담'보다는 큰 이야기의 줄기 속에서 '한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서 끝까지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선 상상력' 만큼이나 '시대를 앞선 화법'이라고 할 만 하겠다. 두 번째 소설까지만 발간된 '스프롤 삼부작'이 마지막까지 온전히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5/01/02 12:06 2015/01/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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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타인의취향/Movie&DVD
볼 만한 블록버스터가 없는 영화관에서 큰 기대 없이 선택했지만, 큰 여운을 남긴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데이빗 핀처', 헐리우드에서 작품성으로 나름 인정받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초기 작품들인 '에일리언3'와 '세븐'을 빼면 제대로 본 작품이 없었다. 이 영화도 사실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보았다.

결론적으로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149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꽤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Gone Girl'이라는 원래 제목처럼, 소녀처럼 애지중지 자라온 '실종된 부인'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가 전반의 내용이다. 벤 에플랙이 연기한 남편 '닉'이  범인처럼 보이면서도, 범인답지 않은 어리숙함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관객과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진행은  베테랑 감독의 관록과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후반에서 부인 '에이미'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그녀는 꽤 영리한 '사이코패스'였고, 인관 관계를 이용해 먹을 만큼 사악했다. 그리고 그녀의 계산에는 미국 대중매체의 반응과 사법 제도의 허점까지 들어있었다. 실종 사건의 시작부터 해결까지 모두 스스로의 각본 위에서 조종하는 그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이 거대한 사건의 발단인 '에이미의 정신적인 문제'는, 의사나 교육학 혹은 심리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그녀의 성장 과장은 부모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고, 그 때문에 그 과정은 왜곡되고 과장되었다. 결국 그녀의 정신적 성장은 비틀어지고 미숙할 수 밖에 없었고, 그녀가 바로 절제를 모르고 자란 'spoiled child'의 미래였다. 딸의 실종 후 기자회견에서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부모의 모습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에이미가 대중매체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모습은 확실히 부모에게 매운 점으로 보인다.

'이용하기 쉬운 대중매체의 폐해'와 '여론/언론에 휘둘리는 미국 사법 제도의 허점'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도 다룬 소재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폐해와 허점'을 뛰어넘어, 그것들을 이용하는 '인간의 위험성'을 직접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답게 사악하고 충격적인 결말은 꽤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별점은 4.5개.
2014/12/23 15:58 2014/12/23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