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싸이트 토끼 - a little sparkle

여성 뮤지션이 유난히 많은 '파스텔뮤직'의 여성 듀오 '루싸이트 토끼', 2집 'a little sparkle'.

2007년 12월에 발매된 '루싸이트 토끼'의 데뷔앨범 "twinkle twinkle"은 그 녹록하지 않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으로 11월과 12월은 유명 뮤지션의 기대작들이 줄줄이 발매되는 시기이기도 하며, 루싸이트 토끼의 소속사인 파스텔뮤직 내부에서도 기대작들 사이에 끼인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앨범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 달 앞선 같은해 11월에  두 장의 기대작,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3집 "우리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입니다"와 '요조'와 함께한 앨범 "My name is Yozoh"이, 같은 12월에는 '스위트피(김민규)'의 3집 "거절하지 못 할 제안"이, 이듬해 1월에는 '인디씬의 블럭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파스텔뮤직의 5주년 기념앨범 "We will be together"이 연이어 발매되었기 때문이죠. 축구판에서 빅클럽에서 영입된 스타들에 밀려,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는 유망주처럼 말이죠.

하지만 꾸준한 판매고를 보여주고 있는 루싸이트 토끼의 선전은 파스텔뮤직으로서도 중요한 기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당시 파스텔뮤직의 대표주자들은 대부분 자체 발굴한 유망주가 아닌, 타 클럽(타 레이블)에서 성공을 거두고 영입된 스타들이었으니까요. '스위트피',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푸른새벽(그리고 한희정)', '허밍 어반 스테레오' 등은 '파스텔뮤직판 갈락티코'의 구성원들은 한 장 이상의 음반을 발표하고 어느 정도 지지기반을 확보한 상태에서 파스텔뮤직에 영입되었으니까요. 물론 '루싸이트 토끼'에 앞서 '더 멜로디'가 엄청난 기대를 모았고 성공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 장의 정규앨범을 마지막으로 장렬하게 '산화'해버리고 말았습니다.('바이에른 뮌헨'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처럼.) 그렇기에 자제 발굴 유망주들이 당당한 주전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후보를 전전하다가 사라지는 일처럼, 괜찮은 음악에도 대중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여타 '순수 파스텔뮤직산 1집 앨범들'처럼 2집은 '기약없는 약속'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다시 하지만, 루싸이트 토끼는 당당한 스타팅 멤버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교체 선수로 얼굴을 보이면서 입지를 확보하고 이제 새로운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파스텔뮤직 소속 뮤지션들 가운데  장르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음악색을 보인 루싸이트 토끼의 1집은, 음악적 온도에서도 파스텔톤의 스카이블루(서늘함과 시원함)와 역시 파스텔톤의 핑크(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이 적절히 배합된, 천상 파스텔뮤직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2집에서는 그 균형잡힌 색채가 어떤 변화를 혹은 진화를 들려줄지 궁금했었죠. 최근 드디어 '타루'와 '요조'를 비롯한 파스텔뮤직 자체 발굴 유망주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Senstimental Scenery와 에피톤 프로젝트는 분명 인디씬에서는 '유망주의 나이'이지만 '초특급'인, '초특급 유망주'이기에 갈락티코 2기로 하죠. '호날두'와 '카카'처럼.) 그럼 이제 '파스텔뮤직의 대런 플레쳐(?)'가 될 수 있을지, 루싸이트 토끼의 두 번째 이야기를 살펴보죠.

앨범으로 들어가기 전에, 앨범 제목부터 살펴봅시다. 'a little sparkle'이라는 제목은 단어의 선택이나 의미면에서 상당한 고뇌가 느껴집니다. 1집의 제목이 'twinkle twinkle'이었던 점을 생각하고, 두 제목을 붙이면, 'twinkle twinkle little sparkle'은 Rap의 한 소절처럼 라임이 맞아들어갑니다. 그리고 1집은 '반짝 반짝'이고 2집은 '작은 불꽃(섬광)' 정도로 해석할 수 있기에, 의미적으로도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첫 곡 '생일'은 1집에 이어 나이에 비해 노숙한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는 이 밴드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트랙입니다. 후렴구의 '앞으로 맞이 할 생일보다 지난간 생일이 저점 많아져도, 첫눈에 반했던 그 예쁜 손이 점점 변해도 같이 있어줄게'는,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의 생일에 나올 말이라기 보다는 청혼하면서 나올 말처럼 들리지 않나요? '재주소년'이 밴드 이름과는 다르게,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꾸준히 사춘기의 풋풋하고 예민한 감성을 노래하는데에 반해, 공연에서 '여성판 재주소년'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이 밴드는 더 어린 연배임에도 더 노숙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설렘이 아닌 담담하게 이야기하기에,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바보마녀의 하루'는 만화적 감수성이 살아있는 보사노바풍의 트랙입니다. 파스텔톤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가사는, 슬며시 미소짓게 만들면서, 그래도 두 사람의 본래 나이는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손 꼭 잡고'는 이미 여러차례 공연을 통해 소개된 트랙입니다. 어쿠스틱으로만 들을 수 있었기에 그럭저럭 단촐한 곡으로만 들렸었는데, 앨범에서 들으니 그 이미지가 사뭇 다릅니다. 현악 편곡으로 두드러지는 '강약약 중강약약'의 3박자(혹은 빠른 6박자)는 왈츠의 강점을, 살려 꼭 잡은 손의 따뜻함과 설렘을 온전하게 전합니다. 하지만 방정맞지 않은 조예진의 음성은 '내숭 뒤에 숨겨진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부족함 없이 그려냅니다. '봄봄봄'을 이어가는 이 곡은,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싸구려 가요들과는 다르게, '파릇한 새내기'의 소녀적 감성을 완벽하게 포착했다고 해야겠어요. 19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여성들의 배경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앞선 세 트랙이 포근한 핑크의 느낌이었다면 이제, 서늘한 스카이블루의 분위기가 '나에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집 비운의 타이틀'인 '12월'의 맥은 간결한 사운드에서, '수요일'의 맥은 쓸쓸한 독백으로 가득찬 가사에서 느껴집니다. 'Driving'은 가사에 등장하는 '도시의 밤'처럼, '12월'의 차가운 도시적 감수성을 이어가는 트랙입니다. 곡 마지막 음의 불협화음도 묘하게 인상적입니다. 'B.I.S.H'는 제목의 의미부터가 궁금해지는 트랙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bish'는 속어로 '실수' 혹은 '잘못'을 뜻합니다. 철자 사이에 위치한 점은 그 뜻과 더불어 숨겨진 뜻이 있음을 암시하지 않을까요? 곡 전반을 아우르는 처절함은, 1집의 토끼 시리즈 '북치는 토끼'와 '토끼와 자라'처럼 잔혹동화의 이미지를 이어갑니다.

'Letter to Arctic', 즉 '북극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하프물범'은 딱 모 포털 사이트의 웹툰 '그린 스마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만화의 주인공이 바로 아기 '하프물범'이고, 배경은 '북극'이기 때문입니다. 예상이 맞다면 두 사람도 그 웹툰을 보고 이 곡을 쓰게 되었겠죠? 부분별한 수렵으로 물범들의 개체수가 급감하고, 온난화로 인한 해빙으로 더 먼거리를 헤엄쳐야하는 북극곰이 익사하고 있는 북극의 이야기들... 우리 후손들에게 빌려쓰고 있고 잘 보존하여 돌려주어야할 '행성 지구(Planet Earth)'를 우리는 너무 방만하게 이용하고 있지않나요? 그냥 지구 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날이 다른 지구 모든 생명체에게 '해방의 날'이 아닐까요? 망설임과 설렘의 추억을 노래하는 '잊혀진 이야기'는 반어법의 제목과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어지는 두 트랙의 제목을 보면, 12월에 발매되어 철지난 타이틀이 되어버린 비운의 타이틀 '12월'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더불어 2집은 10월에 발매된다는 강점을 살려, 작정하고 겨울 시즌을 노린 트랙들임을 알 수있습니다. 'Christmas Carol'은 그 단순명확한 제목처럼 행복으로 가득찬, 흥겨운 트랙으로, 내내 기타 뒤에 숨어있던 또 다른 멤버 김선영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부제로 '제1탄 크리스마스 트리의 신비한 힘'이 달려있어 제2탄을 찾아보지만 이어지는 'Christmas Next Day'에서도, 앨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3집에 대한 복선일까요? 그렇다면 '제2탄'은 혹시 '산타클로스의 새까만 음모(혹은 음흉한 속셈)'이 되려나요? Christmas Carol의 다음이기에 'Christmas eve'가 아닌 'Christmas Next Day'가 된 트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쓸려 고백하고 실패한 뒤의 착찹함을 노래합니다. 24일에 잠들에서 26일에 일어나는 '회피기동'을 실행한 '솔로부대의 허탈감'을 노래하는 것은 어땠을까요? '어떤 솔로의 노래(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 패러디로, 수많은 버전이 떠도는 것으로 알고 있음)'를 해주면 어땠을까요? 솔로부대를 '사병(이것도 패러디)'으로 거느릴 기회였는데.


"어떤 솔로의 노래" 보기



마지막 트랙 '손'은 앨범 타이틀 '손 꼭 잡고'의 '또 다른 부분'이자 '또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 꼭 잡고'난 뒤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그 두 마음이 통한 뒤 펼쳐질 이야기들이 '손'에 담겨있습니다. '루싸이트 토끼의 범주'에서 가장 강렬한 느낌의 연주는 진취적이며, 어쩐지 '피터팬'이 '웬디'에게 처음 손을 내밀며 '네버랜드'로 날아가자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동시에 피터팬에게 작별을 고하게 '현실(Londun)'으로 돌아와 어른이 된 웬디가 그 첫만남을 회상하는 장면도요. 대반전처럼요. (그리고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는 보너스 트랙 'Sweetest loser'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루싸이트 토끼의 2집 'a little sparkle'을 살펴보았습니다. 1집과 마찬가지로 난잡하지 않은 다양함 속에서 역시 밴드 본연의 끈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화려한 드리블에 이은 돌파(=화려한 연주실력)'나 '강력한 골 결정력(=강렬한 임팩트=앨범 판매를 위한 한 방)'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탄탄한 실력과 쏠쏠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하는 매력이 다른 파스텔뮤직 소속 뮤지션들과는 차별화된 루싸이트 토끼의 매력이자 강점이 아닐까 하네요. 이제 감독님(사장님)이 한 번 더 밀어주셨으니 '포텐 폭발'할 때입니다. 루싸이트 토끼! 별점은 4개입니다.

2009/10/22 00:36 2009/10/22 00:36

타루 팬미팅 in 10월 19일 클럽 타

2009년 10월 19일 홍대 인근에 위치한 '클럽 타'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월요일에 찾아가는 홍대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예스24'에서 이벤트로 진행한 '타루 팬미팅 추첨'에 선정되었기에, 바로 하루 전에 있었던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타루를 보게되는 기회가 생겼죠.

조금 일찍 도착한 홍대의 거리는, 그야말로 상당히 쌀쌀해서 초겨울의 날씨였습니다. 팬미팅은 7시 30부터 시작예정이었는데, 당첨자 확인 및 입장을 동시에 7시에 시작하기에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입장 티켓을 받은 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팬미팅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입장 후 30분의 기다림이 지나고 팬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준 예스24 관계자분의 안내가 지나고 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비춰졌죠. 요조나 한희정의 단독공연때도 그렇고, 요즘 '파스텔뮤직'이 영상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 속에는 동대구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팬미팅이 열리는 클럽 타까지 들어오는 타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이 올라가고 타루와 그녀의 음악적 동반자 '오박사(오수경, 밴드 1984 소속이기도 함)'가 등장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는 팬미팅에 응모한 사연들 중 '타루와 함께 여행하고 싶은 곳은?'에 대한 대답들이었습니다. 재치있는 대답부터 장황한 대답까지 여러 글들을 타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퀴즈 시간이 이어졌고, EA에서 협찬한 USB 메모리를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잘 모르고 있었던 타루에 대한 사실들 알게되었습니다. 더불어 오박사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되었구요. 이어 이어진 질문 시간에서는 재미를 붙인 오박사의 계속된 질문 뽑기로 상당히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왔구요.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어쿠스틱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팬미팅의 시작에 앞서 예고한 셋리스트대로 곡은 진행되었습니다. 오박사의 키보드에 연주에 맞춰 코 앞에 앉은 타루는 "Don't let me down"를 불렀습니다. 들으면 들을 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는 곡들이 있는데, 이 곡도 그렇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팬미팅 시작에 앞서 상영된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흘렀던, 타루가 홀로 부르는 '내일이 오면'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기타세션도 등장하였고, 화려한 분위기의 앨범 버전과는 달리 소박한 어쿠스틱에서는 좀 더 가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내내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에 진행된 팬미팅에 실망했는지, 타루는 좀 더 편한 분위기를 갖도록 유도했고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가장 앞 줄에 앉은 한 팬은 미리 준비해온 김치전을 비롯한 음식들을 그녀 앞에 풀어 놓기 시작했죠. 막X리까지 등장하여 마치 타루를 앞에 두고 제사를 치루는 장면같았달까요? 그리고 사건은 일어났습니다. 가장 슬픈 곡이라고 할 수 있는 'Sad melody'를 부르다가 그만, 먹는 모습에 타루의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죠.

팬미팅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팬클럽에서 추첨된 인원이 아닌 대형사이트에서 추첨으로 선정된 인원이기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타루의 열렬한 팬이 아닐 수 있기에 프로답지 못한 그녀의 첫인상에 큰 기대가 무너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실수 때문인지, 팬미팅 시작부터 내내 타루 옆에 있었던 오박사는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이어진 '연애의 방식'과 '풍경은 언제나'는 깔끔히 마무리되었고, 앵콜곡으로 '사랑의 찬가'가 이어졌습니다.

짧은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이 이어졌고, 남은 사인회를 뒤로 하고 금토일 그리고 월요일로 이어지는 외출의 피로 누적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쿠스틱 공연의 소득이 있었지만, 진행 상 많이 아쉬운 팬미팅이었습니다. 편안한 만찬은 공연 중이 아닌, 공식적인 순서가 모두 끝나고, 혹은 편안한 사인회 즈음에 시작했어야 좋았을텐데요.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좋지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한 팬미팅이었다고 할까요? 걱정과 우려로 편안한 어쿠스틱이 불편한 자리가 되어버린 상황은 다시 없도록 해야겠구요.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즐겁게 놀자구요.
2009/10/20 21:16 2009/10/20 21:16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in 2009.10.18.

제작자의 이름에 올려진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만으로 초 기대작이 되었던 '디스트릭트 9(District 9)'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감히 제가 올해 본 영화들 중 최고로 뽑겠습니다.

뉴스와 인터뷰, 그리고 자료화면을 교차편집한 전반부는 시사회 후기들처럼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상공에 나타난 엄청난 우주선, 그 우주선을 타고온 외계인은 지구침공이나 우주정복이 목적도 아니었고 압도적인 초능력 시범이나 과학기술을 전수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굶주림에 허덕이는 난민에 불과했죠. 그리고 그들은 요하네스버스의 외계인 난민촌인 '디스트릭트 9(9 구역)'에 거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지구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외계인들의 거주구역은 그대로 슬럼화되면서 외계인의 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나이지리아 갱들까지 등장하면서 주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아공의 국민이 아닌 외계인이기에 남아공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결 불가능해지자 세계연합의 대리자로서 다국적기업 'MNU'가 외계인 난민촌을 요하네스버스 외곽의 '디스트릭트 10'으로 백만이 넘는 외계인의 이주를 집행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죠.

핸드헬드카메라 기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내면서도 이 신비로운 '외계인'의 실체(?)를 밝히는데 게으르지 않습니다. MNU가 세계 2위의 무기제조업체라는 점과 외계인들이 자신들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야기 퍼즐의 조각은 완성되죠. 신비한 무기와 그것을 노리는 다국적기업의 움직임,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나요?

하지만 영화는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초점의 중심을 정의로운 요원이 아닌, 하루아침에 MNU의 직원에서 지명수배자로 전락한 주인공 '비커스'의 입장에서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의 처절한 투쟁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죠. 소시민으로서 거대한 시스템(정부, 국가, 혹은 다국적 대기업)에 대항한 투쟁은 이미 여러 영화들에서 그려져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외계인'이라는 SF 소재가 결합되면서 이 영화를 특별하고 화려하게 합니다. 더불어 다큐멘터리 같았던 영화는 액션 영화로 녹아듭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심하니 그만하도록 하죠.

지구인 주인공 비커스와 외계인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신뢰는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보았던 SF 영화 한 편을 떠올립니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우주전쟁으로 시작되는 영화인데, 지적 생명체가 없는 행성에 불시착한 지구인 조종사와 외계인 조종사가 서로 적이었던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도와가며 행성에서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외계인은 지구인과는 다르게 남성과 여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자웅동체로서, 자식을 남기고 죽게되고 지구인 주인공이 그 자식을 아들로서 키운다는 내용이었죠.

영화의 절정에서 외계무기들의 실전 시범(?)에서 보여준 성능은 통쾌하더군요. 그 대상이 누구냐에 관계 없이요. 그리고 큰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혹시나 가능하다면 후속편을 기다리게 합니다. 물론 나온다면 통쾌한 대학살극(?)이 되겠죠.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언론의 삼위일체가되어 진실을 은폐하고 한 개인을 억압하는 현실은 왠지 남의 이야기같지 않습니다.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깊은 여운과 많은 생각할거리를 남긴 영화 '디스트릭트 9' 별점은 5개입니다.
2009/10/20 15:09 2009/10/20 15:09

기대해보자, '숲의 큐브릭'

'파스텔뮤직'에서 발매한 음반들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파스텔뮤직의 음악들이 계속 흘러나오는 멋진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네."라고요. 아마도 날씨가 좋은 날 햇살이 잘 드는 1층 혹은 2층의 카페에서였을 거에요. 저만 그런 생각을, 그런 꿈을 갖았던 것은 아니었나봐요. 물론 조금 변질(?)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루어졌으니까요. 바로 '숲의 큐브릭'으로요.

'숲의 큐브릭'은 그야말로 '파스텔뮤직'에서 직영(?)하는 공간입니다. 약도는 파스텔뮤직 블로그(http://pastelmusiclife.tistory.com/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직접 잠깐 찾아갔던 '숲의 큐브릭'을 살펴보죠.

숲의 큐브릭은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상상마당 근처에 위치하게 있어요. 하지만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닌, 그 옆골목에서 조금 더 들어간 조금 외진 구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처음가는 발길에 찾기 힘들겠지만, 다행히도 한 번에 기억될 만한 표지가 사람들을 맞이해주네요.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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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건물로 가까이 접근하면 숲의 큐브릭은 햇살이 잘 들 법한 1층이 아니라, 지하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죠. 가까이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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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 원숭이 = 부엉숭이?


지하에 위치한 숲의 큐브릭을 발견했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녀석입니다. 숲의 큐브릭 공식 마스코트라고 할까요? '부엉이'와 '원숭이'의 합체 '부엉숭이'라고 불러야겠네요. 그림풍이 왠지 어린시절 어디에선가 보았을 법한, 일본만화의 한 컷같은 느낌이 들어요. '숲의 큐브릭'이 일본어로 써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요. 이제 내부를 둘러보죠.


'숲의 큐브릭' 내부의 전경들입니다. 아직은 정식 개장이 아니라 그런지 휑한 느낌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저 말고 두 사람이 있었는데 곧 나가더군요. 홀의 중앙에 아무것도 없어서 썰렁했죠. 작은 공연장일 뿐만 아니라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의 역할도 하기에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주문해 보았어요.


'아사히 생맥주' 한 잔(6000won)과 '숲의 샐러드(8000won)'이었죠. 아사히는 약 400cc 정도가 글라스에 담겨나왔고, 기본 안주로 프레즐처럼 생긴 과자가 나왔습니다. 숲의 샐러드는 소개글이 재밌어서 시켜보았죠. 부담스러운 소스보다는 야채와 치즈로 이루어져 아삭아삭 씹는 맛이 있는, 내용물에 충실 샐러드였고 혼자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가볍게 맥주 한 잔에 샐러드 한 접시, 14000원이라는 돈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직장인들에게 주말의 가벼운 휴식을 위해 지출하기에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닌,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기대 속에 개장한 '숲의 큐브릭', 아직은 뭔가 빠진 느낌입니다. 파스텔리언들의 아지트가 되지에는 아직 부족한 느낌입니다. '숲의 연주회' 벽화(?) 앞 의자들은 테이블에 비해 높아, 혹은 테이블이 너무 낮아, 술을 마시고 샐러드를 먹기에는 불편함이 있더군요. 더불어 아무리 좋은 블로그 툴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포스트들이 실하지 않으면 방문자를 늘릴 수 없듯, 숲의 큐브릭에도 '실한 포스트'와 같은 알찬 내용물이 필요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비유하여 이야기하자면, 음반과 음원 그리고 공연, 즉 소프트웨어만를 제작해온 장인 '파스텔뮤직'에게 '숲의 큐브릭'이라는 공간은 하드웨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하드웨어를 가꾸고, 그 안을 채울만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일, 파스텔뮤직이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파스텔리언들의 멋진 아지트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2009/10/20 10:34 2009/10/20 10:34

'다시 포오-크의 시대다' in 10월 16일 V-hall

'장기하와 얼굴들'로 홍대 앞 인디씬에서 중요 레이블로 급부상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도서 발매 기념으로 열리는, 총력 레이블전 제 1탄 '다시 포오-크의 시대다!'가 10월 16일 홍대 앞 'V-hall'에서 있었습니다. 이 공연의 부제는, 그 유명한 모토를 패러디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vol. 11'이기도 합니다.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도서 발매를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공연이 더 중요했던 점은 바로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이하 청포협)'의 참 오랜만에 공연이라는 점입니다.

'청포협'은 붕가붕가 레코드 초기 시절, 처음으로 12트랙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4인조 남성 포크 팀으로 '청년실업'과 더불어 이제는 공연을 보기 힘든 밴드이고, 청포협의 1집 '꽃무늬일회용휴지/유통기한'은 이제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이되었습니다. 더구나 청포협의 네 사람이 함께 한 무대에서 공연한 역사가 없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하겠습니다. 2005년에 발매되었으니 4년 만에 진정한 음반 발매 콘서트를 연다고 할까요? 이제는 구할 수 없는 1집을 대신해서, 공연에 온 사람들에게 한정적으로 4개의 트랙을 선곡한 미니앨범을 판매한다고 하니, 1집을 애타게 찾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생겼다고 하겠습니다.

금요일 오후 8시에 시작으로, 비교적 늦은 시간에 시작된 공연은, '청포협'의 한 명이자 잠정적으로 해체한 밴드 '그림자궁전'의 리더였던 '9'의 새로운 밴드 '9와 숫자들'가 게스트로 등장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9와 숫자들'로 그동한 멤버 교체가 있었고 한창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귀에 익은 '말해주세요'가 첫 곡으로, '솔로 9'로서 보여주었던 포크적 감성이 이어지는 곡입니다. 이어 압구정(?)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오렌지 카운티', 유치하면서도 사뭇 진지한 가사와 상당히 철학적인 제목의 '그리움의 숲'이 이어졌습니다. 게스트로서는 상당히 긴 공연 시간을 보냈는데, 특별한 이벤트로 도서 증정 이벤트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Sugar in my life'로 역시 솔로 9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9의 얼굴들'의 음악적 이미지는 인디팝-락의 감성을 이어가면서도, 세련된 화법이라기 보다는 80년대 음악이나, 80년대 이전의 미국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인디음악의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자궁전에서는 서브보컬이었던 9가 메인보컬을 담당하면서 조금은 불안한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현재 멤버는 초기 멤버라고 할 수있는 홍일점 여성 드러머 7, 어리지만 뛰어난 음악 센스를 갖고있다는 키보디스트 8과 '로로스'에서 빌려온 베이시스트 1, 기타리스트 6, 그리고 보컬 및 기타의 9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게스트 공연에 이어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 밴드들의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순서는 바로 이름으로만 들었던 '불나방 스타 소시지 클럽'이었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이름을 패러디했다는 소문이 있기에 상당히 분위기 있는 음악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기대는 등장에서부터 무너져내렸습니다. 바로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한 6인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각각 병아리 감별사(보컬), 스키강사(멜로디언), 3천년 정통의 중국 발맛사지사(베이스), 4대강 공사장 인부(퍼커션), 태릉인(드럼), 그냥 외국인(기타)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장은 단지 부차적인 것일 뿐이었습니다. 현 가요계의 세태를 비꼬는듯, 동종 업계 음악들의 무단 샘플링으로 얼룩진(?) 곡 '아으어우아으아'는 너무 얌전한 곡이었습니다. '원더기예단'이라는 곡에 이어 만화주제가풍의 '마도로스 K의 모험'이 이어졌고 '다음 시간에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익숙한 동요 '악어떼'를 재구성하여 '사회의 폭력'에 대해 노래하는 '악어떼'에서는 떼창 시간이었죠.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독수리'와 앵콜곡이자 랩이 가미된 '석봉아'를 들으면서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붕가붕가 레코드가 이끌어가는 새로운 혼합 장르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이날 처음 보게되기를 기대했던 팀은 '청포협'만이 아니었고 바로 두 번째 메인인 '청년실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이제는 록큰롤 스타가 되어버린 장기하가 몸담었던 밴드로 더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청년실업의 음악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에 근간이 될 만한 소리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장기하 외에도 두 멤버는 '목말라'와 '이기타'였는데 이기타는 과거 '눈뜨고 코베인'의 '깜악귀'와 함께 '프리마켓' 공연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청년실업'이라는 밴드 이름다운 곡 '쓸데없이 보냈네'로 시작되었습니다. 허무한 하루를 한탄하는 듯한 이기타의 탄식 혹은 울부짖음이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이제 한 사람은 로큰롤 스타가 되었고 다른 두 사람도 나름대로 직업이 있기때문에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모순이 되어버렸고, 목말라는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바로 '청년취업'이 아닌 '청년시럽'이었죠. 언어유희로 한국어의 묘미라고 할까요?

헤어진 애인을 냄새를 통해 회상하게되는 웃지못할 비극을 노래하는 '냄새나요', 진지한 나레이션이 인상적인 '착각', '장기하와 얼굴들'이 불러 더 유명해진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까지 한 곡 한 곡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점을 찍은 곡은 바로 앵콜곡이었습니다. 그 전에 원래 준비했지만 하지 못하게된, 이기타가 만든 비운의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나코에서 생긴 일'이라는 곡으로 이기타 솔로로 들을 수 있었고, 데모로 듣고 좋지 않았다던 장기하의 뒷수습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앵콜곡은 바로 '포크레인'이었습니다. 음악장르를 뜻한느 '포크(folk)'와 식사도구인 '포크(fork)'의 같은 발음과, 비를 뜻하는 '레인'을 더해 건설기계인 '포크레인(굴삭기)' 혹은 '포크음악의 비'를 뜻하는 '포크레인'의 언어유희를 펼쳐나가는 곡입니다. 이기타와 장기하가 주고받는 딴지는 또다른 묘미였죠. 장기하는 과거의 후덕함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 들더군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청포협'의 무대였습니다. 청포협 혹은 '관악청년포크협의회'는 '9', '치기 프로젝트', '그린티바나나', '언팩트그레이'이로 4인조 밴드로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꽃무늬일회용휴지/유통기한'을 발표하고 '치기 프로젝트(이후 '도반', 현재 '생각의 여름'으로 활동)'의 군입대로 네 사람의 함께 무대에 오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세 사람도 거의 함께 공연하지 못하고, 자주 둘둘 짝을 의루어 공연을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죠. 저는 프리마켓에서 9와 그린티바나나가 '청포협'의 이름을 걸고 한 공연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더불어 2000년 이후의 홍대 앞 인디씬의 역사에서 족적을 남길 만한 두 밴드, '그림자궁전'과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각각 9와 그린티바나나)를 배출했다는 점만으로도 청포협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청포협을 그렇게 기다리던 이유는 그 의의에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청포협의 이름을 걸고 그들이 들려준 음악들은 추억으로 묻혀두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치기 프로젝트'의 '습기'를 시작으로 4년을 기다려온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치기 프로젝트의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9는 일렉기타를, 다른 세 사람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앉아있었죠. 치기 프로젝트의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9의 일렉기타와 다른 두 사람의 코러스가 돕는 형식이었고, 다른 곡들에서도 한 멤버의 곡을 다른 세 멤버들이 돋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어 '그린티바나나'의 타이틀곡 '꽃무늬일회용휴지'가 이어졌습니다. 90년대 가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답게 이 밴드 음악의 근간이 느껴지는, 가요에 가까운 대중적인 포크음악이 그린티바나나의 매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제목에서도 '브로콜리 너마저'의 청승이 조금 느껴지지 않나요?

드디어 '언팩트그레이'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현재 장르는 제 각각이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계속가는 세 사람과는 다르게, 대기업 회사원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오랜만에 공연이기에 더욱 특별했죠. 그의 첫 곡은 바로 '내 모습'이었는데, 그린티바나나와 마찬가지로 90년대 가요에 가까우면서도, 그린티바나나보다는 좀 더 세련된 서정성이 더 두드러지는 점이 언팩트그레이의 매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청포협 멤버로 화장실이 급했던 '9'의 곡이 두 곡 이어졌습니다. 9는 다른 세 멤버와는 다르게 좀 더 거친 포크음악을 들려주는데, 본인의 과거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좀 더 진정한 포크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합니다.여백의 미가 강한 음악이 9의 매력이구요. 유명한 동요 '과수원길'이 첫 곡이었는데 중간에 그린티바나나의 돌발행동 때문에 진지한 분위기는 폭소로 물들었고, 덕분에 따라부르기 시간이 별도로 이어졌습니다.

9의 두 번째 곡은 '간격은 여전히 한 뼘'으로 가사보다 한숨같은 허밍에 더 많은 의미(제목같은 두 사람 사이의 간격)가 느껴지는 곡이죠. 그린티바나나의 감미로운 포크+발라드 '4', 얼마전에 '생각의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 치기 프로젝트의 앨범 타이틀 곡 '말'이 이어졌고, 마지막 곡은 정말 꿈만같았던 네 사람의 무대를 대변하는 듯한 언팩트그레이의 '꿈만같던'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앵콜곡이 이어졌죠. 무려 두 곡이나! 8090세대를 위한 두 곡이었는데 한 곡은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싱얼롱을 위한 적절한 배려였죠. 하지만 두 번째 곡은 바로바로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이었습니다. 이건 싱얼롱도 싱얼롱이지만, 이 곡은 '눈물'과 '마지막'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합니다. 정말 눈물 흘릴 뻔 했으니까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그 노랫말처럼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의 이름을 건 공연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포협과 우리들 사이의 '간격은 여전히 한 뼘'이니 어떤 '말'보다 강한 그들의 음악, '4' 사람의 모습으로 '꿈만 같던' 공연을 종종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리고 희귀반 청포협 1집을 들고가서 네 사람 모두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1집에서 특별히 선곡한 미니앨범을 두 장 입수하였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청포협이 일 년에 한 두번, 혹은 한 계절에 한 번 정도는 공연을 하고 가끔 음반도 내서 주머니의 총알들을 빼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영상은 http://loveholic.net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9/10/20 00:29 2009/10/20 00:29

에쿠니 가오리 -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최근 약 2 달동안은 책을 잡아도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읽으려고 잡은 책도 몇 페이지를 읽고나면, 덮어놓고 다시 펴 읽게되지 않았달까? 정말 내 마음에도 가을이 왔나? 그러다가 요즈음 몇일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을의 효과인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않기만 하면 스르르 눈이 감기던 습관이 조금은 줄어들어서, 앞부분을 읽다가 그만두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2009년 3월에 발매된 책으로 '에쿠니 가오리'의 책으로, '냉정과 열정 사이' 이후로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을 사고 있는 유일한 외국 작가다.(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그랬었지만 이제는 식었달까?) 원래는 진작에 읽었어야했지만, '좌안'과 '우안' 시리즈에 밀리다보니 10월까지 오게되었다. 9월 말에 앞부분을 조금 읽었다가 덮어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역시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은, 이제는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인지 기대에 비한다면 실망스러웠던 '좌안'과는 달리, 언제나 마음에 들었던 앞던 단편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좋았다. 그녀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들의 근본을 찾을 수있다고 할까? 목욕을 좋아하고,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하고,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소소한 것들에서 찾는 재미를 좋아하는 그녀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녀 본인의 투사라고 확인할 수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 좋아하는 색들, 좋아하는 소품들... 좀 더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취하기 부족하지 않은'이 아닐까한다? 그녀의 전형성에 면역이 생긴 독자라도 그녀의 매력에 다시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2009/10/19 00:16 2009/10/19 00:16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in 10월 11일 cafe Veloso

5시 폰부스와 한음파 공연에 이어서 8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5시 공연과 마찬가지로, 바로 하루 앞서 있었던, 인디씬의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여파인지 예약이 매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리는 거의 차더군요.

민홍형과 은지누나 두 사람만의 공연이고 더구나 '단독공연'에 가까웠기에,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죠. 소규모의 1집 시절부터 지켜본 한 사람으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요?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예정되어있던 넉넉한 공연 시간을 어떻게 꾸려갈 지도 궁금했습니다. 한 곡 한 곡이 긴 편은 아니고, 만담이 폭발하는 두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곡들이 기대되었죠.

공연의 시작은 바로바로 'Hello'였습니다. 바로 1집의 첫 곡이기도 하죠. 너무나 너무나 오랜만에 듣게되는 곡이기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소규모를 지켜봐온 관객들이라면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인지 벨로주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1집의 히트곡 'So Good-bye'였습니다. 담담히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인사가 될 법한 말을 전하는 가사는 오랜만에 라이브로 들으니 더욱 아리게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특별한 무대가 준비되었습니다. 바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낭독의 발견' 순서. 얼마전에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두 사람이 준비한 특별한 순서였죠. 첫 번째로 낭독한 책은 바로 '대성당'이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소설로 얼마전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발표한 '김연수' 작가가 번역을 담당한 소설입니다. 자칭 '연빠' 은지누나의 입김으로 낭독하게 되었죠. 낭독 순서는 총 세 번있었는데, 아마도 모두 은지누나의 책들이었을겁니다.

이어서 어떤 앨범들에도 수록되지 않은 '신곡'들이 이어졌습니다. 1집과 2집 사이 즈음의 감수성들이 담겨있는 '별'과 '바다와 국화'는 모두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곡들로 'So Good-bye'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분명히 빠져들 곡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제목과 소규모다운 흥겨움이 느껴지는 '안녕 슈퍼맨'이 이어졌죠. 두 번째 낭독은 '정한아' 작가의 단편집 '나를 위해 웃다' 가운데 '휴일의 음악'이었습니다.

이어서 '2집 퍼레이드'로 세 곡이 이어졌습니다. 2집 수록곡 가운데 신파적 요소가 돋보이는 '고양이 소야곡', 너무나 단순한 가사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사랑' 그리고 '고양이 소야곡'과 더불어 '동물 시리즈'이지만 분위기는 180도 달라서 너무 신나는 '두꺼비'였습니다. 보통 '두꺼비'에서는 후렴구를 따라하게 마련인데, 이날의 무서운(?) 관객들은 공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소음 모드에 너무도 충실했습니다. 두 사람의 한 음절 한 음절, 한 음 한음에 놀랍도록 집중했다고 할까요? 1부의 마지막은 새로운 '동물 시리즈'인 'Bugs fly again'이었습니다. 영어 가사지만 단순한 가사가 웃음짓게 만드는 곡이죠.

약 10분의 휴식이 있은 후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부는 시작은 신곡의 연속으로 시작되었고 첫 곡은 '던져지는 돌'이라는 제목의 곡이었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던져지는 돌같아서 그런 제목이 붙었다나요? 이어 '이런 찰나'와 '착각'이 이어졌습니다. '착각'은 지난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로, 소규모의 색깔보다는 민홍형의 솔로 프로젝트 '민홍'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과 함께 즉흥적으로 라임(?)을 주고 받으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낭독은 '김중혁' 작가의 단편 소설집 '펭퀸 뉴스' 가운데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아'였습니다. 앞선 두 낭독과는 다르게, 두 사람이 역할 분담을 하여 삼촌과 조카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민홍형은 바리톤은 삼촌으로서 괜찮았고, 은지누나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로 좋았죠.

역시 지난 공연들에서 들었던 신곡 'TV에 나온 사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종종 그리고 최근 TV를 통해 얼굴을 보여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네요. 이어 3집 수록곡으로 상당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가 이어졌습니다. 점점 작사에서 민홍형을 압도(?)하는 은지누나의 탁월한 가사가 좋은 곡이죠.

공연의 마지막은 신곡 두 곡, '개나리 본부'와 'Diamond Book'이었습니다. '개나리 본부'는 단순하고 천진한 가사가 재밌는 곡으로, 선정성으로 찌든 요즘 노래들에 개탄하여 만든 곡으로 무료 배포할 계획도 있다고 하네요. 마지막 'Diamond Book'은 금강경에서 얻어온 제목으로 영어 가사이지만 '너는 새이고, 나는 바람이다'하는 명상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사는 '노장사상'이나 '도교'의 느낌도 나더군요.

당연히 앵콜요청이 있었고, 2집의 인기곡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총 1시간 30분이 넘는 짧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숨막힐 듯한 몰입 때문이었는지 여전히 아쉬웠습니다. 충분한 곡 수와 많은 신곡들,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진행으로, 이날 벨로주를 찾은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겠죠.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4집을 빨리 만나봤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런 좋은 공연들로도 자주 봤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1집 시절의 느낌도 참 좋았구요.

일부 동영상은 역시 http://loveholic.net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9/10/18 12:24 2009/10/18 12:24

폰부스 & 한음파 acoustic set in 10월 11일 cafe Veloso

여러 밴드들의 어쿠스틱 공연이 열리는 'cafe Veloso(벨로주)',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알게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카페로 운영되다가 일요일에만 공연을 위한 공간이 된다는데, 출연 밴드들도 좋았지만 사진 속에서 꽤나 분위기 있어보이는 모습에 끌렸죠. 하지만 일요일에만 공연이 있기에, 최근 일요일에 바빠서 Veloso에 찾아갈 인연이 생기지 않더군요. 그러던 차에 지난 11일 바로 오랜만에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단독 공연이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예약을 했습니다. 사실 정식으로 말하자면 '단독 공연'이하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다른 밴드 없이 소규모 혼자 하는 공연이니 단독 공연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또 부를 말이 없네요.

마침 일요일에는 5시와 8시 두 개의 공연이 예정되어있었습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은 8시였고, 5시는 '폰부스'와 '한음파'의 공연이었죠. 두 밴드 다 '빵'에서 알게된 밴드들로 차분한 모습의 Veloso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들인데, 5시에는 acoustic set으로 Veloso에 어울리게 꾸며질 예정이었죠. 8시 공연만 예약해두었지만, 공연 당일 바로 일요일 아침에 5시 공연이 매진되지 않아서 예약해버렸죠. 사실 5시와 8시 공연을 다 예약해서 보면, 기본적으로 공연당 하나씩 제공하는 1 free drink coupon을 하나 더 받을 수 있어, 총 3병의 맥주를 마실 수 있기에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일찍 도착한 Veloso의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첫 번째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폰부스와 한음파 중, 척 보기에도 멤버들이 더 어려보이는 폰부스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두 밴드가 각각 45분씩 공연하기로 예정되어있었죠. 5인조로 알고 있는데 무대에는 3명의 멤버, 보컬 한명 과 기타리스트 두 명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전 빵에서 보여준 뭔가 요란한 모습과는 다른, 차분하게 앉아서 공연을 시작했죠. 그렇게 한 곡을 들려주고는 나머지 두 멤버,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도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acoustic set이라고 해서 unplugged에 가까운 모습을 기대했지만, 역시 모든 멤버가 총 동원되다보니 그런 느낌은 힘들었습니다. 하긴, 보통 4~5인조 락밴드가 unplugged에 가까운 소리를 내려면, 다른 멤버들은 쉬고 보컬과 리드기타만 공연을 해야할테니까요.

아직 두 번째 만남이라 이 밴드의 곡들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It is your mind'와 역시 기억나지 않는 커버곡을 한 곡들을 수 있었죠. 커버곡은 분명 카툰밴드 'Gorillaz'의 곡은 아니었지만, Gorillaz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밴드의 데뷔앨범 타이틀이기도한 'Got a chance'는 흥겨우면서도 쉬운 멜로디 그리고 가사로 후렴구는 따라부를 수 있더군요. 그리고 뭔가 뭉클한 사연이 담겨있을 법한 가사의 '꿈이 춤을 추도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로큰롤의 느낌이 나는 연주는 상당히 흥겨워서 앉아 있는 보컬은 마치 뛰고싶어 안절부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멘트는 아쉬웠지만, 성장이 기대되는 밴드 '폰부스'였습니다.

약 10분의 휴식이 지나고, 지난 '빵' 공연에서 '마두금'의 선율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한음파'가 등장했습니다. 역시 마두금은 보컬의 옆자리에 가지런히 앉아있었고, acoustic set이라니 왠지 마두금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더군요.

'소용없는 얘기'같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기에 음원으로 들을 수 없는 노래도 있었지만, 지난주 '빵' 공연을 보고 음원으로 살짝 복습(?)을 하였기에 노래들이 좀 더 익숙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셋리스트도 한 장 획득하였기에 곡들도 기억할 수 있었죠. 'Pure'라는 곡을 시작으로 매미의 울음 소리를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인 '매미'가 이어졌죠. '매미'라는 곡에서는 현기증이 느껴지는데, 작열하는 태양 아래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서 탈진하기 직전에 걷는 이미지가 떠오른달까요? 퇴폐적인 느낌이 강한 '독감'은 이제 원곡처럼 '네스티요나'의 '요나'와 함께하는 공연이 보고 싶어지더군요.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은 '소용없는 얘기'라는 곡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들려주었던 곡들과는 다르게 모던락의 느낌이 나기에, 그 '가벼움'때문에 실리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acoustic으로서는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곡이었어요. 커버곡이 한곡 있었고, 담긴 독특한 분위기의 초대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앞선 폰부스도 그렇고, 한음파도 그렇고 모두 남성 멤버이기에 그 땀냄새를 환기시켜주는듯, 지난번 '도나웨일'의 게스트로 등장했던 '황보령'의 밴드 'SmackSoft'의 미녀 멤버가 등장하여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코디언은 마두금의 연주와 어우려져, 불안함과 퇴폐적인 불온함이 짙게 담긴 공기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빵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엇던 'Sleep in'에서도 마두금의 매력은 이어졌습니다. 이어 제목처럼 신나는 '200만 광년으로 부터의 5호 계획'이 이어졌죠. 마지막 곡은 당연히 기다렸던 '무중력'이었고 acoustic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acoustic이라 마두금의 선율에 더 집중할 수 있었서 좋았죠. 멘트처럼 악기의 소음들이 서로를 가려주는 공연과는 다르게, acoustic이기에 적나라했습니다. 이 날 멘트는 거의 베이시스트가 담당했는데, 보컬이 요즘 멘트에 슬럼프가 있다나요. 두 사람이 주고 받으면 더 재밌을 법했습니다. 예상보다 5분 정도 일찍 시작한 공연은
역시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앵콜요청이 있었고, 한음파는 '연인'을 비롯한 준비된 두 곡을 들려주고 공연을 마쳤습니다.

지금을 쓰고 있는 시점에 알게 되었는데, 두 밴드가 괜히 같이 공연한 것이 아니고 같은 레이블 소속이었군요. 그래서 이 공연 전에도 또 다음에도 같은 무대에 서는 공연들이 있었고, 예정되어있더라구요. 한음파는 정규앨범은 겨우 1장이 나왔지만 밴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acoustic set에서도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두 밴드다 종종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충동적으로 예약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을 공연이었습니다.

동영상은 역시 http://loveholic.net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9/10/15 01:11 2009/10/15 01:11

내 사랑 내 곁에 in 2009. 10. 09

'CGV 영등포'에서 타의로 보게 된 '내 사랑 내 곁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역시 별 기대를 안하기 잘 한 영화였다. 시작부터 유치 풀풀 풍기는 대사들로 시작하여 결국 신파로 막을 내리는 그저그런, 아니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꽤 괜찮은 작품들이 나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평균을 깎아먹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장준혁', '강마에'를 그럴싸하게 소화해낸 배우 '김명민'의 권위적인 느낌의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서 동정심을 유발해하여 눈물샘을 자극해야할 환자의 목소리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눈물샘을 자극하기 보다는 오히려 웃음보를 자극하더라. 다행히 '하지원'의 연기는 이제 발연기를 확실히 벗어났고,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의 연기는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가인은 은근히 귀엽더라.

루게릭병(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가 재활의학과 영역의 질환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의사로서 합병증 예방을 위한 보존적 치료 외에는 질환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질환이라 조금 답답하기는 헀다. 결말은 너무나 뻔했고 그 과정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궁금했는데, 병원 생활을 그린 부분은 그나마 괜찮았달까.

귀에 익은 가요들을 사용하여 배경음악으로 풀어낸 점은 나쁘지 않았지만, 드라나마나 TV용 영화가 아닌 극장용 영화에서 오리지널 스코어가 빈약한 점은 아쉬웠다. 그리고 하지원이 부른 '내 사랑 내 곁에'를 삽입한 점은 너무나 아쉬웠다. 나중에 음원으로 한 몫 잡아보려고 했던 것일까?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가창력이 아닌 하지원의 목소리가 장의를 치루는 그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너무 노골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상조회사들이 난립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데, 이 영화는 상조회사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2시간 여의 '상조회사 광고'같은 느낌도 들었다. 제 2의 '너는 내 운명'을 노렸을지도 모르지만, 결과는 대 실패. 다행히 미칠 듯한 졸음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별점은 3점. 
2009/10/10 22:48 2009/10/10 22:48

데미안, 한음파, 로로스 in 10월 2일 클럽 빵

2009년 10월 2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자 '추석' 전날 홍대 인근에 위치한 클럽 '빵'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사실 금요일은 빵의 정기 공연이 있는 날로 별로 특별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추석 연휴에 펼쳐지는 공연이라는 점만으로도 공연하는 밴드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설명하기 힘든 특별함을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위는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한가위에 인디밴드 공연'은 충분히 특별하지 않나요?

공연은 7시 30분 시작이었고 부랴부랴 달려간 발걸음은, 제 시간에 만난 버스와 급행열차 덕분에 대략 50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연휴 때문인지, 홍대 인근이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음식점,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아서 마치 새벽녘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쓸쓸함을 더했죠.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기대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어서, 역시 썰렁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7시 30분이 되기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1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날도 싸늘하고 밖이 어둡고 해서 리허설을 들으며 지하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30분이 가까워져서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밖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봅니다. 다행히도 빵의 좌석들은 거의 다 찼으니까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쓸쓸한 홍대의 빵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장 쓸쓸한, 홍대의 살풍경을 보여준 날이었으니, 이날 빵에 온 사람들은 홍대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순서는 '데미안 더 밴드(Demian the band)'였습니다. 빵의 초창기인 2001년부터 빵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데미안은 2002년 말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라인업으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돋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한, '빵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밴드입니다. 최근에는 다른 클럽들에서도 종종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 특별한 공연을 위해서 연휴의 첫 날을 희생했습니다. 첫 곡은 지난 빵 공연에서 처음 만났던 곡 'Wolf'였습니다. 제목처럼 보름달 밤에 외로이 울부짖는 늑대가 떠오르는 도입부 기타연주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에 굴하지 않고 들판을 신나게 질주합니다. 이어지는 곡은 처음 듣게되는 곡으로, 제목에서 언어유희가 느껴지는 'Your god forgot'이었습니다.

세 번째 곡은 이 밴드의 1집 수록곡이기에 가장 익숙한 'Challenger'로 유일하게 간간히 싱얼롱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그루비하고 보컬과 코러스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I become to you'에 이어 역시 언어유희스러운 제목의 'Everybody's every party'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두 곡은 지난 공연으로 친숙해진 'fuckin' umbrella'와 'Vintage dance'였습니다. fuckin' umbrella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반복적인 기타리프와 후렴구는 인상적입니다. Vintage dance는 댄서블한 리듬에 독특한 소리의 타악기(?) 덕분에 뇌리에 박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7년까지의 음악활동을 정리한 1집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신곡들은 더욱 댄서블한 느낌이 강합니다. 음악활동의 후반전를 보내고 있는 데미안의 행보를 기대해보죠.

두 번째 밴드는 빵 공연 일정표에서만 보았던 이름 '한음파'였습니다. 밴드 이름이 과연 무슨 뜻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장발의 보컬을 프런트 맨으로 하고 말 머리가 달린 독특한 현악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 밴드의 음악은 더욱 궁금했습니다. 첫 곡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시작하는 '초대'였습니다. 이 밴드의 앨범을 찾아보니 앨범에서도 첫 곡으로, 앨범이나 공연이나 시작으로 알리며 청자를 한음파의 음악세계로 '초대'하기에 적절한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200만 광년으로 부터의 5호 계획'이라는 긴 제목의 곡이 멘트 없이 이어졌습니다. '초대'보다는 한음파의 음악색을 더 잘 알리는 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드락 사운드를 기반으로 메탈처럼 강한 연주를 감미한 이 밴드의 지향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장발의 보컬에, 제 귀에는 (좀 더 부드러워진) 'Nickelback'의 'Chad Kroeger' 정도가 연상되는 음색에서 알아차려야했습니다.

그루비한 느낌의 '매미'에 이어 이 밴드의 곡들 중 가장 인상적인 '무중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곡에서 보컬이 준비했던 '말 머리가 달린 현악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현악기는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이라고 합니다. '하아!'라는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악기 위에 달린 '말 머리'를 의미하는 '마두(馬頭)'일 테니,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한 이름이니까요. 집시 음악처럼 유목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을 법한 마두금의 연주와 함께 흐르는 하드락 사운드는, 제 귀를 새로 깨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대체적으로 '여성보컬은 우호감 남성보컬은 비호감'이라는 일종의 편식적으로 음악 감상을 하고 있고, 하드락이라는 장르 자체는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즐겨듣지 않는 장르이지만, 이 곡 '무중력'만은 묘한 마력을 갖고 귀를 열게 했습니다.

'독감'이라는 곡은 퇴폐적인 느낌으로, 앨범에 참여한 '요나'의 이름을 보면 왜 그런지 끄덕일 만했습니다. 마지막 두 곡은 '독설'과 '참회'였는데 순서가 재밌습니다. 독설을 내뱉고 참회한다는 의미의 순서였을까요? 앨범에서도 마지막 두 트랙이 이 곡들이지만, 순서는 참회 다음 독설로 공연과는 반대더군요.

마지막은 앞선 두 밴드 데미안과 한음파 모두 멘트 중에 덕분에 객석이 가득 찼다고 언급하기도한, 슈퍼밴드 '로로스'였습니다. 등장은 했지만, 독특한 밴드 구성과 관객을 압도하는 사운드를 위해서 인지, 세팅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로로스표 사운드'는 시작되었습니다. 첫 곡은 바로 너무나 장대해서 EP 'Dream(s)'에도 세 트랙으로 잘라서 수록되었던 'Dream(s)'였습니다. 장장 17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Dream(s) 1과 2를 들을 수 있었죠. 너무나 길고 변화가 많은 곡이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곡을 듣고 있자면 인류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느낌입니다. 선사시대를 시작으로 문명의 시작과 고대와 중세를 거쳐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와 파멸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인류를 거쳐, 지구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비극의 미래로 끝이 납니다. 인류의 어긋난 꿈처럼 말이죠.

한바탕 '꿈'이 지나간 후에는 (사실 짧지 않지만 비교적) 짧은 곡들이 이어졌습니다. 마법사를 만나기 전까지 쓸쓸한 신데렐라(혹은 동물들을 만나기전 콩쥐?)의 쓸쓸한 모습을 노래하는 듯한 'She didn't go to the party', 한 폭의 동양화 혹은 시조 같이 '정중동'의 심상으로 가득한 '방안에서'가 이어졌죠. 메인보컬 및 키보드 '도재명'이 고릴라 인형을 보고 만들었다는 'My cute gorilla'는 싱글에 수록되었었지만 1집에는 빠졌던 곡으로, 그래서 그런지 참 오랜만에 라이브로 듣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지막의 속주는 새로웠구요. 예정된 마지막 곡은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였습니다. 역시 서정적으로 분위기 잡는 곡인데, 도입부부터 실수로 그 분위기는 조금 어긋나버렸죠. 5분 가까이 되는 곡이지만, 다른 곡들이 길어서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준비된 앵콜로는 앨범과는 색다른 느낌의 '비행'이었습니다. 그런 라이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색다름이 바로 공연장을 찾게하는 매력 포인트겠죠? 한 곡이 더 준비된듯 했지만 악기의 문제로 공연을 마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안에서',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과 더불어 로로스의 초기 3대 서정곡이라고 할 수 있는 'It's raining'을 들을 수 없었던 점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미 준비된 곡들도 대단했기에 아쉬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시작에 홍대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모인 공연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가장 즐거운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연이라고도 해야겠네요. 인디음악을 사랑하고 공연장을 즐겨찾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추석 전날 빵을 찾기 어려웠을텐데,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배불리 들을 수 있었을테니까요. 짧은 연휴가 무척이나 아쉽지만, 세 밴드의 멋진 음악 선물에 그나마 아쉬움을 조금은 잊을 수 있는 밤이었습니다. 10월 2일의 밤, 빵을 찾은 모든분들이 좋은 꿈을 꾸셨겠죠?

동영상은 http://loveholic.net/ 에서 감상하실수 있습니다.

2009/10/06 00:33 2009/10/06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