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 - 제리

평소 서적 및 음반 쇼핑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예스24를 둘러보다가 호기심에 구입한 책 '제리'.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장르문학을 제외한) 국내 문학인데,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사실 광고문구에 '치명적인 성애 묘사'라는 말에 더욱 끌려서 구입해보았다.

무엇보다도 확실히 신세대답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노래방 도우미'는, 흔히 남성들끼리 노래방에 갔을 때 부르는 '여성 도우미'가 아닌, 여성들이 부르는 '남성 도우미'도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흔히 '호빠'라고 불리는 곳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광고 그대로, 내 나이 또래의 남성 들이라면 사춘기 시절 한 번 즈음은 접해보았을, '야설(야한 소설)'에 버금가는 성애 묘사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99.9% 남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야설들 과는 달리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성애 묘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까?

남성 노래방 도우미와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섹스는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하고 글을 읽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광고 문구인 '파괴적이고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누구나 알고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그 어두운 솔직함,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내 마음이 불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섹스의 묘사와 심리의 흐름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혹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은 아닐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생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결말은, 소위 '루저'들의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치닫는 불행한 결말 같아 답답했다. 소위 '스펙'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취업과는 동떨어진 삼류 대학교 야간반을 다니는 대학생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변질된 밤문화의 최하위층 남성 도우미를 하는 청년,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어쩐지 읽는 내내 조금은 촐싹되는 느낌의 '제리'는, 요즘 티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권'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2010/10/24 00:30 2010/10/24 00:30

삼성 NX100 개봉기

똑딱이 카메라들만 쓰다가 DSLR 장만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작으면서도 DSLR급 이미지 센서를 갖고 있는 NX10을 눈여겨 보았죠. 그렇게 고민하던 중 새로운 녀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NX10'을 잇는 '삼성카메라'의 두번째 미러리스 카메라 NX100을 지난 10월 2일 삼성모바일 잠실점에서 현장구매하였습니다. 그리도 뒤늦게나마 간단한 개봉기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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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장만한 VLUU WB1000과의 패키지 비교입니다. NX100이 렌즈교환식 카메라이기에 패키지의 크기부터 확실히 다릅니다. iFunction 마크가 눈에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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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구매 특전 사은품들(프리미엄 가방, EVF, 한효주 스트랩, 나얼 파우치 + 추가 8기가 메모리, 추가 정품 벳터리, 활용 가이드) 가운데 하나인 프리미엄 가방입니다. WB1000 전용 파우치와 크기비교를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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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100의 전면입니다. 화이트와 블랙, 두 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실물을 보니 블랙이 더 매력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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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입니다. WB1000과 마찬가지로 3인치 AMOLED입니다. 바로 삼성카메라의 강점이죠. 이외에 다른 카메라들에서 볼 수있는 다이얼과 버튼들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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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들 20-50mm 렌즈입니다. iFunction 버튼이 딱 눈에 들어오죠? 다른 렌즈들도 어서 발매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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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이 디자인했다는 파우치입니다. 상당히 넉넉해서 NX100 뿐만 아니라 NX10도 충분히 들어갈 듯하네요. 극세사로 만들어졌는지 액정 닦는 용도로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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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F입니다. 깜찍하고 NX100과 합체해도 이쁘더군요. 악세서리나 렌즈들이 다들 블랙톤이라 블랙 바디를 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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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패키지와 특전 사은품들까지 한 번에 담아봤습니다. 모든 사진들은 앞으로 보조 카메라로 활약할 WB1000으로 담았습니다. NX100 액정 보호필름을 장만해야하는데 싸고 좋은 녀석 아시는 분 소개해 주세요. 앞으로 더 좋은 사진, 많이 찍도록 하겠습니다.
2010/10/17 00:22 2010/10/17 00:22

9와 숫자들 - 9와 숫자들

'그림자궁전'의 리더, '9'의 또 다른 도전 '9와 숫자들'.

밴드 '그림자궁전'이 2007년 1집을 발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한 활동정지에 들어간 동안,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멤버라고 할 수 있는, '9', 'stellar', 그리고 '용'은 각자 다른 밴드에 몸담고 있으며, 그 중 밴드 그림자궁전를 결성하고 정체성을 만든 리더 '9'는 또 다른 밴드의 리더로 곡을 쓰고, 음반 작업을 하고 간간히 공연을 해왔죠. 그 밴드의 이름은 '9와 숫자들'로 본인의 닉네임(9)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사실 9에게는 이번 앨범이 세 번째 1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1집만 세 번 냈다고 했던 뭐 가수처럼 말이죠.) 이제는 '장기하와 얼굴들'로 유명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시작과 함께한 포크 4인조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이하 청포협)'의 멤버 '9'로서 1집이자 마지막 앨범 '꽃무늬 일회용휴지/ 유통기한'에 참여하였고, 역시 '그림자궁전'의 1집이자 마지막 앨범이 될지도 모르는 앨범 '그림자궁전'으로 '두 번째 1집'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 '9와 숫자들'로 '1집만 세 번째'라는 흔하지 않은 경력을 완성했습니다.

'청포협'이 멤버 개개인의 사정으로 앨범 발매 후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인디씬에 관심이 조금 있는 분들이라면, 그의 이름은 '그림자궁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알고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9는 그림자궁전 활동 중에는 틈틈히 '포크가수 9'로서의 곡작업 및 '홍대앞 프리마켓'과 '클럽 빵' 등지에서 공연을 하면서, 그림자궁전과는 다른, 또 다른 음악세계로의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사실 게을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정진의 결과물이 '9'라는 이름들 단 솔로 앨범이 아닌, '9와 숫자들'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했습니다.

'9와 숫자들'에 대한 흥미는 이런 9의 음악 활동 경력에서 나옵니다. 밴드 그림자궁전에서 stellar를 프런트로 내세우고 '그림자'처럼 활약했던 점과는 다르게 직접 프런트로 나서고 있고, 닉네임을 밴드 이름의 맨앞에 넣음으로서 '포크가수 9'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곡 '그리움의 숲'은 그림자궁전이나 포크가수 9를 생각했을 때, 상당히 상큼한 출발을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영미 인디씬의 포크팝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맑은 로우파이(Lo-Fi) 사운드는 이 앨범이 지향하는 '복고'라는 지향점을 들려줍니다. 뛰어나지 않지만 곡 분위기에 적절한 보컬, 충분히 시적인 가사와 꼭 찬 밴드 사운드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향수로 가득합니다. '너'를 거룩한, 심오한 등으로로 신격화 숲의 초록과 빨간 모자, 빨간튜브 등 빨강이라는 선명한 색의 대비는 농밀한 그리움과 어우려져 청자의 감각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말해주세요'는 가벼운 팝-락풍의 연가입니다. 좀 더 단백한 9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진솔하고 담백한 가사는, 사랑의 무게가 가벼운 이 시점에서, 90년대 이전에 느낄 수 있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느낄 수 있게합니다. 가사에 진솔함에 비해, 경쾌하고 조금은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연주가 재밌습니다.

'오렌지 카운티'는 제목에서 재치가 느껴집니다. '오렌지족'으로 유명한 '한국의 오렌지 카운티'는 바로 압구정으로, '오렌지족'는 추억 속의 단어를 차용했다고 하겠습니다. 묵직한 타악기 소리는 댄스 플로어의 뜨거운 비트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그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 시절 순박한(?) 청년의 모습을 엿보게 합니다.

이어지는 곡은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지면서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석별의 춤'입니다. '석별'과 '춤'이라는 대비되는 이미지로 인해 이 곡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애틋한 이별의 곡이 되어야하겠지만 춤이라는 부분에 충실하여, 이 앨범에서 가장 댄서블한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리지 부기'는 대학생활의 로망을 노래한 트랙으로, 다분히 선정적으로 오해를 살만한 가사들이 숨어있습니다. '슈거 오브 마이 라이프'는 어렵지 않은 가사로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랑 노래입니다. 비장한 느낌의 연주로 시작하는 '삼청동에서'는 시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경쾌한 '옛날 얘기'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심각해지는 '실낙원'도 그 비장함을 이어가네요.

이미 '그림자궁전' 활동과 병행했던 포크가수 '9'의 곡으로 알려진 '이것이 사랑이라면'은 '9의 숫자들'의 앨범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겠어요'으로 사랑의 환희와 아픔을 동시에 표현해낸 가사는 '9식 화법'의 정수가 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중한 가사와 달리, 조금 가볍고 경쾌한 연주의 대조도 인상적입니다.

'선유도의 아침'은 시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댄스의 느낌이 충만한 트랙입니다. 그 흥겨움에 푹 빠져서 후렴구 '그래 없었던 일로 해 난 원래 그런 놈이니까'를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몰라요. '연날리기'는 그 흥겨움을 이어가면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더불어 연날리기를 통해 세태를 비판하는 정신이 돋보이는 트랙이기도 합니다.

'디엔에이'는 '그림자궁전'의 소위 '과학 시리즈' 곡들를 연상시키는 제목입니다. 가사 내용은 참으로 과학적인 단어인 'DNA'와는 경원하게 들릴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와 나의 몸속 너무 깊은 곳'에 있는 그것을 DNA에 비유한 재치에 감탄하게 됩니다. '낮은 침대'는 앨범을 마지막 트랙으로 마지막의 느낌처럼 '난 도망가버릴 거에요'라는 외침이 인상적입니다.

포크, 팝, 락, 댄스가 녹아든 '9와 숫자들'의 동명의 데뷔 앨범은 '그림자궁전'과는 전혀 다른 스펙트럼의 보여주는 앨범입니다. 하지만 그 멀어보이는 두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9의 음악적 DNA'에는 공통적으로 '복고'가 녹아있습니다. 요즘 음악보다는 80년대, 90년대 음악에 가까운 가사와 화법, 멜로디는 9의 감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소리를 펼쳐냅니다. 특히 댄서블한 사운드는 9가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던 같은 레이블 소속인 '흐른'의 앨범에도 감지된 부분으로, '그림자궁전'의 무기한 활동정지 후(혹은 그 이전부터) 감지되었던 9의 새로운 음악적 지향점이 아닐 하네요. '그림자궁전'의 데뷔 앨범에 이어 향후 2000년대의 처음 10년 동안 인디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을 음반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 확실한 두 번째 앨범을 완성한 '9'에게 경의를 표하며 별점은 5개입니다.

2010/10/16 21:30 2010/10/16 21:30

사랑이 머문 자리에

사랑을 하고 이별은 하고 또 다른 사랑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해.

'사랑이 머문 자리에 그 사랑이 지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사랑 후의 사랑.

'지금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지난 사랑은 가짜였을까?'

늘 그렇게 궁금했어.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겠어.

사랑, 사랑, 사랑.

어느 하나의 사랑도 그들에게는 모두 진짜 사랑이었을 것이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 마음의 나이테가 하나 정도 늘어나겠지.

그렇게,

사랑이 머문 자리에.
2010/10/05 09:42 2010/10/05 09:42

우리가 만나는 날에는

밤새 그치지 않을 것만 같던 폭우가 내리다가도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면 맑은 하늘이 찾아오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결코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고민들이 어어지다가도
그 때가 되면 모두 다 눈녹듯 녹아 사라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걱정마, 모두 다 잘 될 거야'
서로에게 밝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너와 나,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렇게 '우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는 날에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2010/10/05 09:40 2010/10/05 09:40

10월의 질식

어느덧 2009년에게도 시월이 찾아왔어. 해는 짧아지고 밤공기는 점점 싸늘해지고 있어.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조금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밤공기를 쐬면서 생각이 났어. '미스티 블루'의 'Daisy'가.



유난히 무표정한 차갑게 무관심한 시월의 밤
두 손 모아 그린 원 가득, 그 안에 시린 널 따스히 담아
내게만 보이지 않는지, 우울한 밤하늘 그곳엔
그토록 헤매였던, 보고팠던 그댈 닮은 별들 볼 수 없었어


짙어지는 가을, 특히 시월의 밤공기에는 어떤 마력이 있나봐. 너무 차갑지 않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딱 알맞은 서늘함과 가슴 깊게 들어마시면 느껴지는 그리움 가득한 가을밤의 향기는 숨이 멎게해.



내 맘은 점점 시들어버려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향해도
입가에 맴도는 그리운 이름 하나, 부를 수 없는


아직도 기억해 내 안의 너의 모습
시간의 영원 속에서 미소짓는 듯
매일 난 꿈을 꿔 항상 같은 얘기 똑같은 눈빛으로


그런데, 그런데 그리울 이름, 그리울 얼굴이 없는데도 그리움이 생겨나는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내가 가진 그리움은 너무 막연한 그리움이어서,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처럼 막연해.

인간은 본연 외로운 존재라고 했나? 결국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니.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삶처럼,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리움도 인간 본연의 속성이 아닐까?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느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본연의 그리움을 품고 있지 않을까?

맑은 밤하늘, 마른 가을의 공기의 향기는 그렇게 숨을 멎게 해. 사색에 빠져들게 해.

2010/10/05 09:31 2010/10/05 09:31

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



너무나 슬퍼서 심금을 울리고 눈물샘을 자극해버리고 마는, 그리고 너무나 귀에 익숙한 멜로디. 하지만 내가 'Thanksgiving'이라는 제목과 이 곡의 연주자가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얼마전이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작이라는, 사계절 연작 앨범 가운데 하나인 'December'의 수록곡으로, Thanksgiving은 수록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적인 피아노 곡의 제목이 Thanksgiving이라는 점은 어쩌면 의외라고 할 수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Thanksgiving'은 'Thanksgiving day'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 뜻은 '추수 감사절'로 우리나라의 '한가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을 '추수 감사절'이라고 부르기엔, 추수 감사절이 담고 있는 풍요로움과 즐거움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Thankgiving의 또 다른 뜻은 '감사식, 감사제'이다. 이 정도의 뜻을 갖고 마음대로 해석해보면 조금은 어울릴까? 그대를 보내며 그대에 대한 '감사식'이라고. 그래야만 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해석되지 않을까?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입가에 맴도는 단어들을 차마 말할 수 없는 슬픔...

그런데 어쩐일인지, 제목을 알기도 전부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꼭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곤 했다. 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영화에 이 곡이 나왔던가?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는 '안나 카레니나' 정도이고 그 유명한 '라붐' 등은 아주 어렸을 때 봤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이 조우한 작품(?)을.



손발이 오글오글? 지금 생각해도 한국 CF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점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 엄청난 지명도를 생각하면 CF 자체의 수준은 정말 눈물겹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뉴에이지의 대가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을 들을 수 있다. 뛰어난 여배우와 한 장르의 대가가 만났지만 그 결과물은 참담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 CF 덕분에 Thanksgiving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는 '조건 반사'가 형성되었나보다. 이제 여러분도 '파블로프의 개', 아니 '드X의 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2010/09/19 22:50 2010/09/19 22:50

수채화같은 영화가 떠오르는 음악, Olafur Arnalds의 'Eulogy for evolution'

아이슬란드의 뮤지션 'Olafur Arnalds'는 그의 국적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아이슬란드가 바로 'Sigur Ros'의 고향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조금 있겠습니다. 'Bjork'이 바로 아이슬란드 출신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겠죠. 언급한 Sigur Ros나 Bjork같은 고규의 독특한 뮤지션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슬랜드 출신답게  Olafur Arnalds도 평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특히 그는 Sigur Ros의 유럽 투어에서 오프닝 뮤지션으로도 무대에 올라선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Sigur Ros와 다른 색깔이지만 그만큼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라이센스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음반은 'Eulogy of Evolution'입니다. 우리말로는 어색하지만, '진화을 향한 찬양'정도가 되겠습니다. 또 독특한 점은 수록곡 모두가 단지 숫자로 된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련번호라고 생각하면 혹시 이 뮤지션이 작곡한 곡을 첫번째부터 숫자를 붙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곡에서 무려 3천번이 넘는 제목을 갖고 있기에, 한 음악가가 평생 작곡해도 불가능해 보일 법한 숫자를, 1987년 생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그가 그렇게 많은 곡을 작곡했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듭니다.

앨범을 들어보면 혹시 영화같은 영상물에서 쓰이는 장면의 컷 번호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피아노 연주 중심에 현악이 더해진 그의 음악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전형적인 유럽영화(특히 프랑스)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씨의, 수채화 같은 장면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0040

눈꺼풀 위로 아른거리는 햇살에 눈을 뜬 주인공의 이런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야할 법합니다. "그는 이제 없다." 이별인지 사별인지 알 수 없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애써 태연하려고 하지만 쉽지않습니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그녀는 다시 음악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그 시간 속에서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어 한 곡의 음악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슬픔은 물러가고 그녀는 평온을 찾아갑니다.

0048/0729

새벽 이슬이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이른 새벽, 한 남자가 침엽수로 울창한 숲을 걷고 있습니다. 안개가 일어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법하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좇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이 숲과 그가 걷는 이 길에 남겨진 기억들, 그 기억들의 흔적을 좇고 있습니다.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숨도 멈춥니다. 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던 공터 한가운데 섭니다. 공허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요?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아득한 기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0952

싱그러운 아침, 두 남녀가 공원을 산책합니다. 바닥을 뒤덮은 낙엽들과 조금은 두터운 외투가 늦가을임을 알립니다. 기나긴 공원의 산책길,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강물처럼 두 사람 발걸음도 흘러갑니다.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두 사람의 시간도 영원하기를 두 사람의 각자의 마음 속에 빌어봅니다.

1440

조금씩 비가 내리는 어느 흐린 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뒤를 조심스레 쫓고 있습니다. 그는 뒤쫓는 그녀의 존재를 모른 체,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뒤를 쫓는 여자의 옛 애인으로 몇 년전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져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억을 잃었는지, 그녀가 이 추적을 시작하기전 마주쳤지만, 그저 스쳐지날 뿐이었습니다. 몇 개의 건널목들과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집, 한 여인이 마중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눕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제 그녀의 자리는 없고, 이 여인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만이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납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3055

수백년 후의 미래, 지구는 환경파괴와 여러 전쟁들로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몇몇 선택받은 인류는 지구 상의 남은 모든 종의 유전자 정보를 담은 우주선을 타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년, 망망대해보다도 더 넣은 광활한 우주를 십수년간 찾아헤맸지만 남은 인류와 생명체들이 살아갈 만한 또 다른 행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선의 모든 승무원들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끊없는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 순간 레이더가 찾아낸 몇 광년 떨어진 행성 하나. 지구와 비슷한 태양을 갖고 있고, 공기와 물, 모두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당합니다. 아직 수광년 떨어져있지만, 인류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우주선이라면 수 개월내에 도착이 가능합니다. 모든 승무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우주선은 전속력으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2010/09/19 22:45 2010/09/19 22:45

우리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기억해. Steve Barakatt의 'All about Us'

월드컵 열풍이 몰아쳤던 2002년은 저에게는 '뉴에이지(New age) 열풍'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뉴에이지 뮤지션 '이루마'를 시작으로 미국의 'Brain Crain'와 'David Lanz', 일본의 'Isao Sasaki'의 음반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Yuki Kuramoto'의 음악들은 큰 감흥을 얻을 수 없었지만, 아직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았던 한 캐나다 뮤지션에게 끌렸습니다. 그 뮤지션이 바로 'Steve Barakatt'이었습니다. 이미 그의 곡들 중 'Day by day', 'Whistler's song'은 귀에 익은 곡들이었습니다. Steve Barakatt은 캐나다 퀘백 출신의 뮤지션으로 뉴에이지 계열이지만, 중창단과의 협연이라던지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 등 밴드 사운드와 조우하는 행보는 크로스오버 뮤지션에 가깝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먼저 구입한 Steve Barakatt 앨범은 유명곡들이 수록된 앨범이 아닌, 바로 당시에 발매된 따끈따끈한 신보 'All about Us(2002년)'였습니다. 사실, 지금은 Steve Barakatt의 모든 앨범들이 정식발매되었지만, 당시에는 2장의 정규앨범과 (아마도 한국을 위해서라고 생각되는) 베스트앨범 성격의 'Rainbow bridge the collection'이 발매된 상태였습니다. 보통 지난 음악들을 찾아듣기보다는 새 음악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제 음악감상에서의 일종의 철학(?)이 반영되었지요. (지금은 대부분의 앨범들이 정식 발매되어서, 'All about Us' 이전 앨범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함께 시작하는,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첫 곡 'All about Us'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젊음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유명 뉴에이지 뮤지션들 중에서도 상당히 젊은 나이인, 앨범 발매 당시 30세(73년생)를 생각했을 때 그의 세련되고 진보적인 시도와 소리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No Regrets'는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섹소폰과 어우러진 긍정적이고 로맨틱한 사운드는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과는 역설처럼 들립니다. 이 역설에 대한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이 곡은 사랑하고 난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밝은 것은 그럼에도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그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No Regrets)'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또 그렇기에 그 시간들이 이렇게나 눈물나도록 로맨틱하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마음가짐이야 말로 그 시간들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

'Jardin Secret'은 Steve Barakatt의 출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제목입니다 'Jardin'은 영어로 'Garden' 즉 정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그는 캐나다 출신이지만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퀘벡'의 출신이니까요. 우리말로 하면 '비밀 정원'정도가 될까요? 앞선 두 트랙을 생각하면 상당히 차분하고 조용한 트랙인데, 비밀 정원이라는 제목처럼 그 정원에서 비밀스러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표현하고 있나봅니다. 하지만 피아노 선율에서 느껴지는 그 사랑이, 어쩐지 애달프고 서글픈 이유는 무엇일까요?

'I'm sorry'는 '미안해요'라는 제목과는 모순되게도 슬픔의 감정이 아닌, 싱그럽고 맑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마도 두 연인사이에 큰 다툼이 있은 다음날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곡이 아닐까 합니다. 거센 비바람이 치는 밤새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의 공기는 분명 싱그럽고 상쾌할테니까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툼이 있은 뒤, 두 사람의 사랑도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요?

'Sould Attraction'은 웅장한 코러스를 사용하여 '영혼의 끌림'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Hoping She would be there'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처럼 투명한 피아노 연주로 그 감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Angel over Me'는 기쁨의 감정을 소소하지만, Steve Barakatt의 특기인 '로맨틱하게' 들려줍니다. 이어지는 곡들에서도 Steve Barakatt, 그의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째즈풍의 'Temptation', 리듬이 두드러진 'Sunrise'는 그의 젊음, 젊은 뮤지션다운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정한 기념품을 의미하는 'Tendres Souvenirs'에서는 오래된 연인으로부터 날아온 여행 기념품을 통해 전해지는 애틋한 감정을 수필처럼 그려내고, 이어지는 'You were so close'에서는 그 멀어진 연인에 대해 애틋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절절히 녹아있습니다.

수 많은 뉴에이지 뮤지션들이 보통 슬프고 서정적인 감성을 연주하고 들려주는 점과 비교할 때, Steve Barakatt은 분명 그 '보통'과는 다른 뮤지션입니다. 그의 음악에는 '밞은', '진취적인', '긍정적인', 이런 형용사들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의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로맨틱(romantic)'한 감성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어렇게나 잘 어울리는 뉴에이지 뮤지션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전까지 '로맨틱'하면 떠오르는 악기는 '섹소폰'이었고, 뮤지션은 '섹소폰의 사나이'인 'Kenny G'였습니다.)

지난 인연과 지난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쁨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앨범 'All about Us'는 이제는 헤어진 연인들과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기억해'라고. 누구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모두가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사랑, 그렇지만 그 '영원하지 않음'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은 사라지겠지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다시 사랑하게 합니다. 한 사람과 만든 하나의 사랑은 사라지지만, '사랑' 그 자체는 언제나 다시 태어나 계속되기에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마음 속에 계속됩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어처구니 없고 경악에 가까운 '보컬 앨범'을 내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Steve Barakatt의 행보를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0/09/19 22:43 2010/09/19 22:43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 Azure Ray의 Hold on Love

'파스텔뮤직'의 'the Greatest Album of All Time Series'로 정식 발매된, 여성 듀오 'Azure Ray'의 마지막 정규 앨범 'Hold on Love'.

'Azure Ray'의 약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CD에 포함된 속지나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잘 소개가 되어있으니까요. 2001년 첫 앨범을 발표하고 2004년 세 번째 앨범을 끝으로 해체한 Azure Ray는 전부터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 좋다는 입소문이 있었지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해외 드라마에 이들의 노래가 수록되면서 한국에서는 좀 더 대중에게 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는 앨범 Hold on Love는 이들 음악의 정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앨범이 전체적인 느낌은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형체들처럼,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을 아스라이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은 네 번째 트랙 'Look to Me'에서부터 확연히 느껴집니다. 슬픔이 지나치면 차마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것처럼, 처절하게 슬픈 마지막 장면같은 가사와 구슬프게 울리는 목소리는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감정을 일으키고, 그 감정을 잡으려고 하면 연기처럼 흩어져버립니다.

이어지는 'The Drinks We Drank Last Night'은 딱히 형용하기 어려운, 하지만 익숙한 소소하고 쓸쓸한 감정들을 노래합니다. 가사에 나오는 파도, 먼지, 바람처럼 익숙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들처럼 흐르는 감정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잔잔히 흐르는 바다처럼 잔잔한 연주가 인상적인 'Across the Ocean'은 시간이 지나서 색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 기억의 끝자락을 노래합니다. 희미한 기억의 끝자락 역시, 가장 빛나던 시절의 그림자처럼 남아서 존재하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If You Fall'은 이 앨범 수록곡들 중 가장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기쁜 가사에도 그녀들의 목소리는 마냥 환하지만은 않습니다. 조금은 지친 기색이 느껴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할까요? 제목처럼 가정법으로 진행하는 가사는 그 기쁨이 '현실이 아닌 가정'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쁨의 감정이 마음 속에 딱 담아두기만은 힘든 것이 아닐까요? 다가올 수도 있는, 혹은 그냥 눈 앞에서 지나갈 수도 있는 기쁨의 잔상처럼요.

'의심의 바다'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Sea of Doubts'은 서정성이 빛나는 트랙입니다. 그 바다를 가로지르는 진취적인 항해를 연상케하는 피아노와 현악은 보컬이 없다면 멋진 뉴에이지 트랙이 될 법하고, 이 곡의 서정성의 튼튼한 받침이 됩니다. 그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 바로 '그대'만이 이 의심의 바다를 해쳐나갈 수 있는 희망이겠죠.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 끝까지 아무리 나아가도 결국 그 태양에 닿을 수는 없을지라도.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앨범 'Hold on Love'의 네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다섯 개의 트랙들이 바로 이 앨범을 빛나게하는 곡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을 노래하는 트랙들이구요. 그런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에서 더 공감이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도 한 가지 기분만으로 딱 형용할 수 있는 순간보다는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으니까요. 울다가 웃다가 혹은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를 삶의 순간들,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들과 함께 Azure Ray의 음악을 가슴 깊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2010/09/19 22:42 2010/09/19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