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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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고 생각하면 꽤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길지도 않은,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센티멘탈 시너리(Sentimental Scenery)'의 팬들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으리라. 두 장의 일렉트로니카 앨범(Harp Song & Sentimentalism, Soundscape)을 발표하고 결정한 군입대는, 그의 미래에 물음표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군대'라는 2년의 경험은 그의 섬세한 감수성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어 음악적 변화를 유발할 수도 있을테고, 그 영향이 팬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부정적인 방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물음표와 함께 해는 세 번 바뀌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과 더불어 '파스텔뮤직의 향후 10년을 이끌어나갈 뮤지션'으로 뽑았던 센티멘탈 시너리였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그 기대만큼,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예상했던 '10년' 가운데 절반이 지났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10년'에 대한 예상은 반만 맞았을까? 2015년 3월, 3년을 기다린 답장이 그로부터 날아왔다. 바로 정규 2집의 발매에 앞서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지금 여기, 이곳에서'다.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Chapter 5"에 수록된 '추억을 걷다'는 팬들의 사연으로 꾸려진 앨범이기에 예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집 맛보기인 '지금 여기, 이곳에서'도  일렉트로니카가 아닌 점은 '예상했던 변화'를 직접 맞딱뜨리는 상황이 되었다. 눈치가 빠르다면, 영화 '청춘의 증언'의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꾸민 점이나, 'Lucia(심규선)'가 featuring이 아닌 duet으로 참여한 점만으로도 알아챌 수도 있었겠다. 놀랍게도, '지금 여기,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발라드 넘버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 시적인 가사, 그리고 센티멘탈 시너리와 Lucia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까지, '발라드'는 기대하지 않은 변화의 방향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변화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이름의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경력이나 연주곡 위주의 스페셜 앨범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를 생각한다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그의 재능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성숙함이 느껴지는 작사 능력이나 좀 더 다듬어진 보컬 능력은, 3년이라는 공백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부분이다.

이 한 곡만으로 정규 2집을 예상한다면, 앞선 두 장의 일렉트로니카 앨범과는 전혀 다른 색채가 예상된다. 투명한 피아노 선율을 내세운 점에서는 오히려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의 방향성을 이어가는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 '에피톤 프로젝트'와 'Lucia' 이후로 '걸출한 신인의 데뷔'에 목말라있던 파스텔뮤직에게 센티멘탈 시너리의 새 앨범이 '제 2의 데뷔'로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 지 지켜보도록 하자.

https://youtu.be/lyTpCyJShvM

2015/03/31 00:06 2015/03/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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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과 함께 찾아온, 봄노래들 가득한 루시아(심규선)의 두 번째 EP "꽃그늘".

2012년 10월 첫 EP "décalcomanie"를 발표했던 루시아는 겨우내 쉬지 않고 음반 작업을 했는지, 약 6개월 만인 올해 4월 두 번째 EP "꽃그늘"을 발표했습니다. 2011년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과 함께 작업한 데뷔 앨범 "자기만의 방"을 시작으로 3년 동안 매년 음반을 발표한 셈이 되는데, 그녀의 '음악적 욕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10트랙 모두 신곡이었던 첫 EP만큼은 아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는 들을 수 없는 보너스 트랙'이 포함된 CD의 8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면 6곡의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녀의 욕심만큼이나 '완성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곡 '사과꽃'은 EP "꽃그늘"을 시작하는 '서문'과 같은 트랙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봄날 한적한 공원을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 산책이 떠오습니다. 상쾌한 나무그늘 속을 달리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의 따뜻한 설렘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느린 산책처럼 느긋한 선율 위로 흐르는 우아한 노래는 듣는이의 주의를 그녀의 목소리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합니다. 음악적 효과를 주는 가사 '봄, 밤, 맘(마음)'은 이 곡의 심상을 압축하는 세 단어입니다. 그리고 '봄'과 '마음(맘)'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봄' 혹은 '봄이기에 어지러운 마음'을 노래하는 이 EP을 관통하는 주재(主材)입니다.

이 EP의 타이틀 '그런 계절'은 '잔인한 계절, 봄'을 노래합니다. 시조를 읊듯 노래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그녀의 감정들을 노랫말로 쓸 때 단어를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느꼈을 고민이 느껴집니다.  또 그 선택된 단어들이 그녀의 목소를 통해 노래로 불려질 때, 하나하나 단어를 발음하면서 그녀가 그 단어에 담아낸 감정과 노력도 그려집니다. 공 들인 가사만큼이나 선율도 빼어납니다. 간주 부분에서 3/4박자의 왈츠보다 빠른 6/8박자의 멜로디는 지는 꽃잎의 흩날리는 윤무를 그려냅니다. 확실히 왈츠보다는 '현대무용'으로 표현될 법한 선율인데, 놀랍게도 이 곡을 듣고 얼마 지나 찾아본 뮤직비디오에서도 '현대무용'으로 시각화하고 있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만개(滿開)한 그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라 하겠습니다. 어쿠스틱과 현악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점은 편곡자의 탁월한 능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편백나무'는 낯선 이름입니다. 편백나무는 영어로는 'Hinoki Cypress'이고 꽃말은 '기도'랍니다. 바로 이 곡은 그녀 자신을 위한 '기도'같은 곡입니다. 어쿠스틱의 가벼운 경쾌함은 지난 EP의 'What Should I Do'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사랑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5월의 당신은'은 제목처럼 5월의 나른하고 아련한 아지랑이 같은 감정을 노래합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그대'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는 그런 애잔함과 봄의 나른함을 더해줍니다. '담담하게'는 제목과는 다른,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실편백나무'와 제목을 바꾸었어도 어울렸을 법합니다.) 이 EP의 어떤 곡들보다도 고백적인 노래인데, CD를 구입할 경우 포함된 두툼한 부클릿의 '서문'을 모두 읽어야 이 곡 뿐만 아니라 이 EP를 통해 '루시아',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온라인 음원의 마지막 트랙은 '그런 계절'의 연주곡입니다. 하지만 CD에는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더 들어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꼭 CD를 구입합니다.) 한 곡은 '꽃 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의 early demo version으로, 배경음의 빗소리가 '봄비'를 연상시켜서 봄을 노래하는 이 EP에 어색하지 않은 감성을 전해줍니다. 다른 한 곡은 '오스카'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노래같지만, 그 고양이에 그녀의 '그대'와 '그대에 대한 감정'이 이입된 사랑노래입니다. 나긋하게 힘을 빼고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나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고양이'도 다분히 봄을 연상시키기에 다분히 '봄 노래'답습니다.

EP "꽃그늘"은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8개의 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더라도 6곡의 신곡을 담고 있기에 CD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음반입니다. 또, 소책자 형식으로 상당히 공을 들인 부클릿은 그 소장가치를 더합니다. CD에 담겨진 음악 뿐만 아니라, CD를 수납하는 부클릿과 부클릿에 담겨진 내용물들까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반시장이 내리막을 향해가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시도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파스텔뮤직'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시도이기에 그 고집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싱어송라이터로 성큼 성장한 그녀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앨범들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어려운 음반시장의 상황 속에서도 10주년을 넘어 한 걸음씩 성장해가는 파스텔뮤직의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2013/10/04 02:31 2013/10/0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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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홍대 나들이를 했다. 내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공연은 바로, 얼마전에 EP를 발표한 '알레그로(Allegrow)'의 '1st Date with Allegrow - 그대의 봄과 함께'였습니다, EP 'Nuit Noire'를 들으면서 라이브가 궁금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연 소식이 들려왔고 재빨리 예매를 마쳤습니다. '그대의 봄과 함께'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카페에서 열리는 40석 한정의 소규모 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장소는 홍대역보다는 합정역에 가까이 위치한 카페 'Ben James'였습니다.

40석의 예매가 모두 매진되었는지, 공연이 시작하는 6시가 되었을 때는 아담한 카페 Ben James에는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연은 6시가 조금 지나 시작했고, '알레그로'의 첫 EP 수록곡 'Sunflower'로 공연은 시작했습니다. 노래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하는 알레그로 본인 외에는 기타리스트 한 명 뿐인 단촐한 세션에서 오랜만에 소규모 클럽 공연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CD로 듣던 그 곡과는 약간 다른 음정이었습니다. 편곡이 달라진 일인지 아니면 첫 곡이라 실수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다른 편곡이었겠죠? 이어 들려준 곡은 바로 EP의 outro '잔향'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알레그로'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는데, '잔향'은 바로 'Sunflower'의 멜로디로 쓴 곡이랍니다. 해바라기는 원래 향기가 없는 꽃이기에 '잔향'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잔향'은 'Sunflower'에 대한 슬픈 대답이라네요. 이런 친절한 설명은 계속 이어져서, 마치 이 공연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EP 발매 기념 공연'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알레그로의 발표곡들 가운데 반응이 가장 좋았던 '어디쯤 있나요'도 들을 수 있었고, 커버곡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쨰 커버곡은 '성시경'의 데뷔곡인 '내게 오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가사와 조금 달랐기에 좀 불안불안했지만, 음이탈 없이 무난했습니다. EP 수록곡들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다는 'Under the Fake Sunshine'은 가사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 창 밖으로 지나가는 밤의 풍경을 보고 쓰게된 곡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CD처럼 신디사이저의 소리가 빠진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1부의 마지막 곡은 EP의 타이틀인 'Urban Legend'였습니다. EP에서 그나마 가장 락킹한 곡이기에, 밴드와 함께하는 공연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공연의 게스트는 예고처럼, 알레그로와 마찬가지로 '파스텔뮤직' 소속인 '비스윗(BeSweet)'이었습니다. 알레그로나 비스윗이나, 음반으로는 많이 들었지만 공연에서는 처음보는 얼굴들인데, 신인답지 않은 입담을 들려주는 알레그로만큼이나 그녀도 재밌는 입담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분위기를 가라않게 할 수 없다면 들려준 첫 곡은 바로 'Can't Stop'이었습니다. 그녀가 파스텔뮤직에 들어와서 EP를 발표하기에 앞서, 발표했던 1집의 타이틀이기도 했던 곡으로 공연으로 꼭 보고 싶었던 곡이었습니다. 사실 마냥 밝은 곡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녀가 준비한 다른 곡들에 비하면 밝은 느낌이기는 합니다. 이별 후에 떠오르는 잘못에 대해 노래하는 '잘못'에 이어 따끈따끈의 그녀의 신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사진을 보다'로, EP 수록곡들과는 다른 느낌의 곡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마지막 곡은 '부탁'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고백을 위한 노래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녀가 공연마다 한다는 이벤트를 이번에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남자 관객 한 명을 그녀의 바로 앞에 앉게하고 그녀가 '부탁'을 불러주는 이벤트였습니다.

게스트 공연이 끝나고, 경쾌한 퇴근길을 기분을 담은 'PM 7:11'로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레그로의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Love Today'에 이어서 두 번째 커버곡 '토이'의 '좋은 사람'을 들을 수있었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이었는데, 그만 이 곡에서도 1절과 2절의 가사를 혼동하는 실수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의 분위기가 '팬미팅'의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P 수록곡 '봄의 목소리'에 이어 공연을 찾아와준 관객들을 위한 알레그로의 선물이 있었는데, 비스윗처럼 따끈한 신곡이었습니다. 바로 공연의 제목과 같은 곡 '그대의 봄과 함께'였습니다. EP의 마지막 보컬곡인 '너와 같은 별을 보며'로 공연은 끝났습니다.

실수가 많은 공연이었지만, 팬미팅 겸 EP 발매 기념 공연의 성격으로 40명의 관객들과 함께한 소규모 공연이었기에 분위기는 무척 좋았습니다. 더구나 알레그로의 '역사적인 첫 단독 공연'이었기에, 앞으로 더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소규모 공연은 모두 3부작으로, 아직 날짜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두 번의 공연이 더 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연을 도와준 세션 기타리스트는 그의 팬클럽 카페 회장이라고 하네요. 오랜만에 즐거운 공연이었고, 그의 셋리스트에 들어갈 곡들이 더 많아지고, 더 큰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13/05/30 13:42 2013/05/3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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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Lucia (심규선)

album : décalcomanie (EP)

disc : 1CD

year : 2012

full-length album 수준의 quality와 quantity를 들려주는 Lucia(심규선)의 첫 EP "décalcomanie".

2011년 debut album부터 매년 착실하게 쌓여가는 'Lucia(심규선)'의 discography를 살펴보면, 2013년으로 이제 11년차에 접어든 indie label 'Pastel Music'의 managemnet system도 확실한 성숙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singer-songwriter의 역량에 노래/연주/작사/작곡 등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존 indie label들의 album production 방식과는 다르게, label의 주도로 유능한 songwriter-producer와 유망한 vocalist의 collaboration으로 시작하여 자연스레 singer-songwriter의 가능성까지 이끌어내는 일련의 방식은, (물론 indie label의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더 오랜 역사의 music business와 더 방대한 market을 대상으로하는 영미권 label에서는 낯선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국내 indie label 최초의(혹은 아직까지도 유일한) Pastel Music의 시도는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Lucia'를 통해 완성해가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pitone Project의 2010년 album "유실보관소"에 guest vocal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알린 Lucia는, 이듬해인 2011년 Epitone Project가 작/작곡가 겸 producer로 참여하여 두 사람의 chemistry가 돋보인 debut album "자기만의 방"에서 vocalist의 역량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vocalist에만 머물지 않고 몇몇 곡의 작사/작곡자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면서 singer-songwriter로서의 가능성도 보였다. 그녀의 가능성을 확인한 Pastel music은 두 번째 full-length album을 서두르기보다는 확실한 singer-songwriter로서의 능력에 담금질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2012년과 2013년에 발표된 두 장의 EP다.

지금 소개하는 EP는 2012년 10월에 발표한 첫 EP "décalcomanie"다. 그런데 수록곡 list를 보면 재미있다. EP 수록곡이 무려 10곡인데, intro나 outro 없이 모두 vocal track으로만 채웠다는 점이다. 최근 수 년동안 가요계를 보면 'full-length album(정규앨범)'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intro/outro를 포함해도 10 track이 안되는 '부실한 음반'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EP는 그런 세태를 비웃는 듯하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부실한 음반'은 비단 track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total play time이 약 74분인 compact disc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경우들이다.) full-length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volume을 가진 이 음반를 굳이 'EP'로 발표한 이유는, 모든 수록곡들이 바로 주제에 집중해서가 아닐까. 여느 여가수들의 음반처럼 '안빈낙도'나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track 수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concept album이라고 분류해도 될 정도로 그녀가 집착한 그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이 EP는 Lucia가 '사랑'이라는 물감으로 찍어낸 10가지 "décalcomanie"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concept album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최근의 국내 앨범으로는 '호란'의 band 'Idadi'의 "Songs for Ophelia"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수준있게 완성한 singer-songwriter의 앨범을 에둘러 'well-made pop'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그녀가 쓴 자작곡들의 style을 분류하자면 'adult contemporary(이하 AC)'정도가 될 듯하다. 'AC'도 기본적으로 'verse-chorus structure'로 쓰여지는데, 이 EP의 수록곡들도 style과 structure에서 AC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easy listening이 가능하지만, 나쁘게 해석하면 모든 곡이 비슷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각 곡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을 극복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힘이 담겨 있고, 우아하면서도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음색) 뿐만 아니라 호흡(발성)과 발음까지, 이토록 완벽하게 자신 '발성기관'을 지배하는 vocalist가 indie scene에 있었던가. 그녀는 한 가지 구종으로도 완벽한 control로 mound를 지배하는 pitcher가 되어 listener를 알고도 strike out를 당하는 hitter가 되게 한다. 그만큼 그녀의 음성과 완급조절은 listener가 그녀의 목소리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음성과 완급조절은 그녀의 써내려간 가사들이 전달하는 의미를 견고하게 한다.

잔잔하고 평온한 호흡으로 간절함을 노래하는, 이 album이 있게 한 '사랑'의 발단, '소중한 사람'을 지나면 전형적인 'verse-chorus structure'로 들려주는 3곡이 이어진다. 'I Can't fly'는 발음과 발음, 단어와 단어에서 들리는 완벽한 완급조절이 돋보이고, 부드러운 음성 속에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대의 고요'는 그 호소력 덕분에 EP의 title 'Savior'보다 더 title처럼 들린다. 전작의 수록곡 'Sue'의 변주처럼 들리는 'Savior'의 고독함과 간절함은 listener의 감정을 흠뻑 적시기에 충분하다. 이 전형적인 구조는 최근의 노래들보다 2000년 이전의 노래에 가깝게 들리는데, 그래서 이 구조와 다른 무엇보다도 노래를 빛나게 하는 그녀의 '가창력'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1990년대 adult contemporary music의 마지막 전성기를 빛낸 Diva들, 'Mariah Carey'와 'Celine Dion'이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또 이는 EP를 AC로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격양된 음성과 빠른 tempo로 사지 말단까지 전해지는 사랑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필로소피'를 지나면 앨범의 후반부에 접어든다. 사실 10 track은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으로 나누어 2장의 disc에 담아 각각 EP로 발매해도 될 volume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은 2013년 올해 발표된 두 번째 EP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담금질'의 한 chapter를 온전히 완결하겠다는 의지와 후속 album을 위한 왕성한 창작력 및 결과물들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Lucia와 '짙은'의 아름다운 harmony가 돋보이는 'What Should I Do'와 날카로우면서도 처연한 비유의 가사가 인상적인 'I Still Love'에서도 곡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그녀의 음성은 빛난다. 그런데 이 두 곡에서도 1990년대의 익숙한 그림자가 느껴지는데, 바로 'Mr. Big'의 'To Be With You'와 'Richard Marx'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같은 곡들이다. (전작도 그런 점이 옅게 존재했지만) 1990년대 향수를 뜸뿍 느껴지는 점은 Pastel Music이 설정한 Lucia의 소비층이, 일반적인 indie music 소비층인 '20대~30대 초반'보다 높은, 88서울올림픽 이후 급격한 문물개방과 맞물려 1990년대 영미권 Pop Music을 흡수한 '30대~40대 초반이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1990년 3월에 첫방송을 시작한 '배철수의 음악캠프'세대라고 봐도 되겠다.)

R&B style의 '보통'은 제목과는 다르게, 수록곡 가운데 그녀의 singer-songwriter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곡이다. midtempo의 rhythm 위로 '사랑의 설램'을 표현해내는 그녀의 음성과 완벽한 완급조절은 listener의 심박동수까지도 synchronization(동기화)되어 황홀경으로 안내하기 충분하다. 특히 그녀의 vocal이 저음의 chorus와 대비되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봄날의 어린아이처럼 들뜬 감정을 아른하게 그려낸다. 처절한 절망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감정의 회오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연극이 끝나기 전에'와 마지막 track답게도 공허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전해지는 '신이 그를 사랑해'로 EP "décalcomanie"는 막을 내린다.

EP 전곡에 걸쳐 piano 및 string을 비롯한 모든 연주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절제되어 사용됐는데, 이는 그녀의 vocal을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시켜 listener가 오롯이 그녀의 음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mixing 및 mastering을 포함한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 점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런 노력들 덕분인지 그녀의 음반은 Epitone Project와 함께 audiophile의 사랑을 받는 몇 안되는 indie label의 음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Pastel music이 설정했으리라 예상되는 소비층의 연령대와 보통 30대 이상인 audiophile들의 연령대가 겹치는 점은 우연만은 아니리라. indie label에서 전혀 indie답지 않은 음악을 들려줘서 일까? audiophile의 우호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Pastel music 소속 artist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박하다는 점은 irony다. 사실 "décalcomanie"라는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Rorschach test"였다. Pastel music과 Lucia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음반을 "단지 '얼룩'으로 볼 것인가?" 혹은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볼 것인가?"는 이제 listener의 몫이다.

더불어 전도유망한 illustrator 'Kildren'이 artwork 참여한 booklet은 CD 구매자들을 위한, 국내에서 가장 CD packaging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label이라고 할 만한 pastel music의 '심심한 배려'라 하겠다.


*Pastel music은 고음질의 flac을 DVD로 발매해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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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5 05:38 2013/05/25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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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의 도시를 노래하는 'Allegrow(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

초기 주로 여성뮤지션들을 소개했던 '파스텔뮤직'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짙은' 등 남성 뮤지션들의 괄목한 만한 성과 이후, 남성 뮤지션 발굴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은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 연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연작의 마지막 2011년에 발매된 "사랑의 단상 Chapter 3. Follow Me Follow You"는 '알레그로(Allegrow)'를 비롯해,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 '이진우', 그리고 '옆집남자'까지 이전 연작들보다 많은 남성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앨범이었습니다. "사랑의 단상" 연작은 처음부터 앨범을 발표할 뮤지션들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샘플러같은 성격도 있는 앨범이었는데, 역시 이 연작의 세 번째에서 소개했던 '헤르쯔 아날로그'는 작년에 EP와 첫 정규앨범을, 알레그로는 올해 2월에 EP "Nuit Noire"를, 그리고 '이진우'는 최근(5월)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에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이나 홍보로 보았을 때, 파스텔뮤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남성 뮤지션들 가운데 '헤르쯔 아날로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되는데, 제 취향에는 알레그로의 노래들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사랑의 단상"에서 'Love Today'로 들은 첫인상은 '무난함'과 '기대감'사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앨범인 "Ten Years After"에 수록된 '어디쯤 있나요'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사라지기 전에, 파스텔뮤직은 소속 뮤지션들의 2013년 첫 앨범으로 바로 알레그로의 "Nuit Noire"를 발표했습니다.

'검은 밤'을 뜻하는 앨범의 프랑스어 제목 "Nuit Noire"처럼, 앨범을 여는 첫 트랙은 어스름한 밤이 시작될 즈음의 시간일 법한 'PM 7:11'입니다. 3호선역의 안내방송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연주곡은 꽤나 경쾌합니다. 정시가 지난 퇴근 시간인 7시 11분 즈음의,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낸 경쾌한 마음, 혹은 낮의 일상과는 또 다른 밤의 일상에 대한 기대감처럼 들립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Urban Legend'는 함께한 여가수의 이름과 독특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바로 같은 소속사의 '한희정'이 참여했고, 제목은 우리말로 하면 '도시 전설' 정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인류가 도시에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전설을 '도시 전설'이라고 하는데, 알레그로는 어두운 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랑의 망령'을 이 '도시 전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목이나 가사에서 '공포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데, '망령'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타리프가 인상적인 락넘버입니다. 이미 같은 소속사인 에피톤 프로젝트, 박준혁의 곡에서도 아름다운 음성을 들려주었던 한희정은 이 곡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 '망령'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고, '공포 스릴러 영화'를 완성하는 방점입니다. 하지만 그 망령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점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Urban Legend'는 알레그로의 기존 곡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지만 이어지는 곡들은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Under the Fake Sunshine'는 네온사인과 가로등같은 인공적인 빛들을 'fake sunshine(가짜 태양볕)'에 비유하고 도시인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합니다.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곤 하는데, 피아노와 기타 연주는 그런 밤의 공기를 타고 서정적인 시어(詩語)들을 나열합니다. '긴 밤을 채우는 추억'에서는 누군가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세운 밤'을 떠오르고, '시간의 강'에서는 '추억과 현실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acoustic set의 느낌으로 흘러가는 연주에서 배경음처럼 사용된 synth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화자를 위로합니다. 과하지 않게 synth가 사용된 점은 알레그로의 데뷔곡 'Love Today'와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올해로 11년차를 맞는 파스텔뮤직의 지난 10년을 생각하게 합니다. '미스티 블루', '푸른새벽', '어른아이' 등 파스텔뮤직의 초기를 대표하는 '여린 소녀적 감수성의 시대'를 지나서, 현재는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센티멘탈 시너리'로 대표될 만큼 남성 뮤지션 중심의 '확장되고 다변화된 음악적 스펙트럼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인디레이블로서는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를 누리고 있다할 수 있겠는데, 이 곡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여린 감수성'과 '전자음과 어쿠스틱 연주의 조화'는 이 곡을 파스텔뮤직의 초기와 현재사이 즈음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곡으로 들리게 합니다. '파스텔뮤직다운'이라는 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파스텔뮤직의 초기 뮤지션들에 대한 그리움이 갖고 있는 파스텔뮤직의 올드팬들에게 그 그리움을 조금은 달래줄 만합니다.

그런점에서 '봄의 목소리'이 곡도 올드팬의 그리움을 자극합니다. '봄의 목소리'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경쾌한 연주 위를 달리는 달콤씁쓸한 긍정의 감정은 여러모로 '미스티 블루'의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곡의 미스티 블루의 목소리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레그로의 목소리 역시 담백함으로 부르기에 그런 생각이 더 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스쳐온 서울 밤하늘엔'은 긴 제목만큼이나 긴, 4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역시 제목처럼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과 그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상상하게 합니다. 앨범의 나머지 두 보컬곡 'Sunflower'와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지속됩니다. Sunflower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는 제목 '해바라기'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의 빛이 오랜 시간을 날아서 지구의 하늘을 비추듯, 언젠가라도 '너'에게 닿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합니다. 이 두 곡들도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으면 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트랙 '잔향'은 앨범을 닫는 outro입니다. 한희정의 허밍을 들을 수 있는 곡인데, 진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울림은, 이 앨범이 전하는 고독과 그리움의 메시지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는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의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전업 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으로 뮤지션을 겸업하는 그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런 이중생활(?) 때문에 이 EP의 제목이 'Nuit Noire', 즉 '검은 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밤이 내려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그를 '밤의 음유시인'으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최근 파스텔뮤직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다른 소속 뮤지션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다른 어떤 뮤지션들보다 그의 다음 앨범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알레그로'의 정규앨범을 기대해봅니다.

2013/05/16 05:58 2013/05/1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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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곡과 대표곡으로 꾸며진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콘서트의 첫 째 날은 풍성했지만, 분명 아쉬움도 있었다. 내가 파스텔뮤직을 알게 되고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푸른새벽', '미스티 블루' 등의 곡은 하나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분명 풍요 속 빈곤을 가슴에 안고 돌아간 팬들이 있으리라.

11월 11일, 마침 'XX로 데이'와 겹친 10주년 기념 콘서트의 두 번 째 'Ten Years After - 파스텔 올스타즈'는 토요일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시작되었다. 리퀘스트쇼와 마찬가지로 '파스텔뮤직의 이단아' 예슬로우의 사회로 시작되었고 진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리퀘스트쇼와 올스타즈의 다름 점이라면, 리퀘스트쇼에서는 각각의 뮤지션이나 밴드가 각자의 노래를 불렀지만 올스타즈에서는 4개의 팀을 이뤄 자유롭게 무대를 꾸며나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입장할 때 각 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었는데, 요즘 TV 프로그램의 대세인 '경연' 형식을 차용하여 4개의 팀이 경연이 바로 올스타즈에서 펼쳐졌다.

본격적인 올스타즈의 경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파스텔뮤직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여성 3인조 아이돌(?) 밴드가 등장했다. 원래는 각자 파스텔뮤직에 입사(?)했지만 우연히 팀을 이루게 되었고, 아직 밴드의 이름은 정하지 못했단다. 한 곡을 들려주었는데, 바로 '캐스커'의 준오가 준 '너를'이라는 곡이었다. '캐스커'표 음악다우면서도, 세 명의 여성 보컬로 듣는 노래는 기존 파스텔뮤직 소속의 여성 뮤지션들과는 또 다른 신선함이 있었다. 여러 명의 프로듀싱이 가능한 뮤지션들이 소속된 파스텔뮤직이기에, 이 여성 3인조 아이돌 밴드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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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팀의 이름은 '크로스오버'로 한희정, 융진, 루시아, 그리고 비스윗, 이렇게 네 명의 여성 뮤지션들이 모인 팀이었다. 이름에서부터 네 명이 뭔가 협연을 펼치리라 예고하는 모습인데, 사실 여성 보컬을 좋아하고 네 뮤지션의 노래들 역시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조건 가장 기대되는 팀이었다.

조명이 들어오고 한 명의 뮤지션만 등장했는데, 바로 이 팀에서 가장 늦게 파스텔뮤직에 합류한 '비스윗(BeSweet)'이었다. '크로스오버라는 누구의 노래를 들려줄까?' 궁금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노래 '잘못'으로 시작했다. 그녀의 공연을 보고 싶기는 했지만, 의외였다. 그렇다면 노래 중간에 깜짝 반전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한 곡의 다 불렀다. 그리고 다음 곡을 위해서 '융진'이 등장했고, 비스윗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비스윗의 연주와 융진의 목소리로 들려준 곡은 비스윗의 데뷔앨범에 수록되었던 'Can't Stop'이었다. 크로스오버의 의미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그런데 가사가 달랐다. 원곡이 그리움을 담은 슬픈 가사였다면, 바뀐 가사는 사랑에게 다가가는 노래랄까? 게다가 다정다감하게 불러주는 융진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욱 솔로들의 마음을 후볐을 법했다. 곡이 끝나고 비스윗은 내려가고 홀로 남은 융진은 캐스커 5집에 수록된 '네게 간다'를 들려주었다. 사뿐사뿐 초원을 걷는 기분이 들게 하는 노래는 행복감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서 홀로 등장한 '루시아(심규선)'가 들려준 두 곡은 '한희정'의 '어느 가을'과 '입맞춤, 입슬의 춤'이었다. 루시아의 실력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커버였고, 특히 원래 댄서블한 느낌이 있었던 '입맞춤, 입술의 춤'은 루시아의 특별한 제스쳐와 어우러져 열정으로 무대를 채웠다. 그녀를 처음 보고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으리라. 루시아가 남은 무대에 예상대로 한희정이 올라왔고, 함께 '멜로디로 남아'를 불렀다. 리퀘스트쇼에서 한희정의 목소리가 덜 풀린 듯하다고 했었는데, 이 날 공연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달랐다. 목이 풀린 올스타즈의 한희정은 어제와는 다른 사람같았다. 이 팀의 마지막 곡은 한희정이 부른 루시아의 새 EP 수록곡 'I Still Love'였다. 하지만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노래가 아닌, 그녀가 노래 마지막 즈음에 보여준 일명 '오지명 춤'이었다. 단독 공연에서도 가끔 의외의 곡들을 불러서 의외의 모습(혹은 나사가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였는데,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맞이하여 그 정점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큰 준비는 없었을 지 몰라도, 그녀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투표는 2팀에게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나의 한 표는 이 팀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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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팀은 '슈파스텔K'로 이름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을 차용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90년대 가요들 위주로 들려주었는데, 넉넉한 인적 자원에도 아쉬웠다. '무리수' 혹은 '참사'라고 해야할까?  파스텔뮤직의 뮤지션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오랜 팬들은 즐겁게 봐줄 수 있는 무대였지만, 이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파스텔뮤직을 접하는 관객들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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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팀은 19금이었다. 사회자이자 '파스텔뮤직의 이단아'인 예슬로우가 포함된 팀이라 서로 다른 색깔을 어떻게 융합해갈지 궁금했다. 첫 순서는 바로 예슬로우였다. 드럼에 앉은 그는 드럼 연주와 더불어 랩을 풀어나갔고, 그가 들려준 곡은 그의 디지털 싱글 수록곡 '별'이었다. 이름만 알고 있던 '예슬로우'라는 뮤지션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였달까? 랩퍼로서 곡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그가 들려주는 감성은 분명 파스텔뮤직에 닿아있었다.

이어서 공연에서 독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트램폴린(차효선)'이었다. 어떤 '바바리맨'같은 남자와 등장했는데, 그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임꼭병학'이란다. 독특한 제목과 야릇한 가사로 '19금'에 걸맞는 곡 'Be My Mom's Lover'를 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퍼포먼스와 함께 풀어나갔다. 아이디어와 완성도 면에서 '파스텔 올스타즈'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무대였다.

이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순서였다. '민홍'과 '은지' 두 사람이 패티쉬한 복장으로 나와서 깜짝 놀라게 했고, '19금 판정'을 받은 사연과 함께 그 곡을 들려주었는데, 그 19금 곡이 바로 '사랑'이었다. 말도 안되는 잣대로 19금을 판정하는 심의위원회를 풍자하는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예슬로우와 트램폴린, 은지가 함께하는 무대였다. 19금에 대한 노래 '19금'을 들려주었는데, 아마도 올스타즈 콘서서트를 위해 준비한 곡 같았다. 파스텔뮤직 뮤지션들의 콘서트에서 보통 찾아보기 힘든,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의 다른 한 표는 이 팀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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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화성학개론'이었다. 모두 남자로만 이루어진 팀으로, 라인업에서는 상당히 화려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곡은 놀랍게도 '동방신기'의 'Hug'였다. 이어지는 곡도 충격이었는데, '리퀘스트 쇼'에서 '헤르쯔 아날로그'와 멋진 듀엣을 들려주었던 '소수빈'이 여장을 하고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하와이안 커플'을 들려주었다. 메들리도 들려주었는데,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가 '백아연'을 위해 쓴 '머물러요'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그리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이 이어지는 '머물러 다시 사랑한다 말할 오늘'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은 그럴싸하게 어우러졌지만, 사실 마지막 곡까지 이으려고 한 점은 역시 '무리수'였다. 마지막 곡은 무려 '카라'의 'Rock U'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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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팀의 순서가 끝나고 모든 뮤지션들이 무대로 올라와 각 팀에 대한 인터뷰와 무대인사가 있었다. 정말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뮤지션들이 모인 무대였기에, (공연장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였지만)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이틀의 공연은 분명 파스텔뮤직의 팬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더불어 10주년이 되서 제법 성장한 '파스텔뮤직'의 위상을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퇴장하면서 관객들은 두 팀에게 투표를 하였고, 투표 결과는 몇 일 후 파스텔뮤직을 통해 공개되었다. (1등은 당연히도 '화성학개론'이었다.)

이 날은 퇴장하고 콘서트에 등장했던 뮤지션들의 음반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입하지 않은 음반은 딱 한 장 뿐이었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내가 구입한 한 장의 음반은 좋은 인상을 심어준 '파스텔뮤직의 이단아', '예슬로우'의 EP 'Nice Dream'이었다.

12주년 혹은 15주년 즈음이 되어야 할까? 언제가 되었든, 나는 파스텔뮤직의 팬이고 즐겁게 공연장을 찾을 듯하다. 또 언젠가 찾아갈 파스텔뮤직의 레이블 공연을 기대하며,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콘서트 'Ten Years After : Live'의 후기를 마친다.
2012/11/24 03:25 2012/11/24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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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주년이 되는 파스텔뮤직의 2012년은 어느 떄보다 바쁜 해가 아닌가 싶다. 10주년 기념으로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는 에세이북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도 발매했고, 5주년과 7주년보다 더 큰 볼륨이 될 앨범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의 오랜 팬들에게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콘서트'가 아닐까? 한 권 분량이나 되는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이지만 그 한 권에도 담지 못한, 파스텔뮤직과의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들을 기억과 마음에 품고 있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이 될 테니까.
 
파스텔뮤직의 레이블 공연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데, 2005년 아마도 3주년 기념이었을 '사운드홀릭'과 '클럽 OTWO'의 공연들, 2007년 백암아트홀에서  해외 아티스트들까지 초청하여 큰 규모로 열렸던 5주년 기념 공연, 그리고 2009년 7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여러 공연들까지 모두 멋진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11월 10일과 11일 이틀동안 열리는 10주년 기념 콘서트 'Ten Year After : Liver'는 최근 공연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기대를 안겨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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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바로 옆 '메세나폴리스'라는 주상복합건물 안에 위치한 '인터파크 아트 센터'는 5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던 백암아트홀과 비교한다면 아담한 규모였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소속의 국내 뮤지션으로만 꾸며진 라인업은 지난 어떤 파스텔뮤직의 레이블 공연보다 알차서, 요 몇년 사이 부쩍 성장한 파스텔뮤직의 입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파스텔뮤직의 입지만큼이나 성장한 인지도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콘서트를 예매해야 했고, 운 좋게 이틀 모두 앞쪽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같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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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파스텔뮤직의 이단아', 파스텔뮤직 소속의 유일한 레퍼인 '예슬로우(Yeslow)'가 사회로 등장하여 유창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달군었는데, 조용한 이미지가 강했던 파스텔뮤직의 기존 공연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10주년 콘서트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공연은 '러블리벗'의 곡 '그 손, 한 번만'으로 시작했다.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노래를 부른 '강현준'과 등장한 러블리벗은 키보드를 연주했다. 공연이 궁금한 뮤지션이었는데, 한 곡만 들려주고 내려간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만큼 오늘 등장 인물이 많다는 의미일 터이니,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두 번째는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어른아이'의 무대였다. 2006년과 2009년에 1집과 2집을 발표한 그녀는 꽤나 오래 파스텔뮤직과 함께한 뮤지션이라고 하겠다. 첫 날 공연은 '리퀘스트쇼'로 팬들이 신청한 곡들을 들려주는 날인데, 최근 소식이 없었던 어른아이였지만 누군가 잊지 않고 그녀의 노래를 신청했나보다. 두 앨범의 대표곡 'Annabel Lee'와 'Sad Thing'을 들려주었다. 파스텔뮤직의 첫인상인 잔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그 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였다.

다음은 놀랍게도 이 공연을 위해 '긴급 재결성(?)'한 남성 듀오 '재주소년'이었다.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에서 재주소년의 글을 읽었거나, 재주소년 해체를 알리는 글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기억할 '지났을 줄이야'를 멘트로 언급한 Sabo는 공연장을 웃음으로 채웠다. 'Afternoon'이라는 이름으로 파스텔뮤직에서 솔로 EP를 발표했던 경환은 '박경환'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앨범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런데 파스텔뮤직이 아닌 다른 레이블이란다. '타루', '요조', '루싸이트 토끼'에 이어 또 다른 뮤지션을 떠나보낸다니, 조금은 서글펐다.(이 여성 세 팀은 모두 지금, 과거 파스텔뮤직에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올드피쉬'가 설립한,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 소속이다. 인디 레이블 사이에서도 EPL의 맨유와 위성구단 같은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서글픔도 잠시, 소년에서 청년이 된 두 남자는 소년 시절의 히트곡 '귤'과 '이분단 셋째줄'을 들려주고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언제가 무대 위에 함께 오른 두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무대는,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안방마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파스텔뮤직과 오래 함께한 '한희정'이었다. 그리고 첫 곡은 '우리 처음 만난 날'이었다. '푸른새벽'의 해체 후, 솔로로 시작한 그녀의 첫 히트곡이라 할 이 노래를 들으면서 2005년 '사운드홀릭'애서 있었던 레이블 공연에서 처음 보았던 '푸른새벽'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떄가 그렇게나 오래된 일이라니, 파스텔뮤직의 오랜 팬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어서 '잔혹한 여행'과 '드라마'를 들려주고 그녀는 내려갔다.

다음은 몇 년째 '앨범 준비 중'인,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만년 기대주'라고 할 수 있는, '이진우'의 무대였다. 그런데 앨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서 곧 나온다고 했다. 이제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게 된 그는,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그의 히트곡(이라지만 음원으로 공개된 곡은 이 곡 뿐) '스무살'과 그의 첫 앨범에 수록될 '사랑은 이별을 부른다'를 들려주었다. '스무살'은 언제나처럼 그의 정규앨범을 기대하고 만들었고, '사랑은 이별을 부른다'는 그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까? 1부의 마지막은 바로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의 순서였다. 음반으로만 듣던 그의 음악을 공연으로는 처음 보게 되는데, 많은 여성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왔는지, 반응은 대단히 뜨거웠다. 인디밴드로서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 이후, 음반 판매량과 공연의 관객 동원에서 명실상부 '파스텔뮤직의 기둥'이라고 불릴 만한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기 배우이자 가수인 '이승기'의 음반에 참여했다는 소식(더구나 이승기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는)과 이제는 '인디음악의 대세'가 되어가는 모습은 파스텔뮤직을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도 뿌듯했다. 세 곡을 들려주었는데 2집 수록곡 '초보비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곡은 '이화동'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위해 앞서 공연했던 한희정이 다시 무대로 등장했다. 그의 공연이 궁금했고, 특히 세 곡이나 '한희정'과 함께한 듀엣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전 무대에서도 목이 덜 풀렸는지 조금 불안했던 한희정의 목소리는 고음을 요구하는 이 곡에서도 왠지 불안했다. 마지막 곡은 지금의 에피톤 프로젝트를 있게 한 곡들 가운데 하나인 '눈을 뜨면'이었다.

휴식시간 없이 이어진 2부의 오프닝은 파스텔뮤직의 새 가족이된 '참꺠와 솜사탕'이었다. 3인조 혼성 밴드이고 남녀 보컬을 들려주 팀인데, 만화 제목같은 밴드 이름과는 다르게 진지한 감성의 두 곡, '공놀이'와 '비마음'을 들려주었다.

이어서 단독 공연이 보고 싶었지만 빈번이 기회를 놓쳤던 '캐스커(Casker)'의 무대였다. 그리고 당연히 전자음을 기대했는데, '융진'의 옆자리에 '준오'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앉았다. 그리고 들려준 곡은 '향'이었다. 음반이 아닌 공연으로 보는 두 사람의 어쿠스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융진'의 뛰어난 보컬은 놀라웠다. 명료한 발음과 특별한 음성을 들려주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라이브가 아닌 음반을 듣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이어지는 곡도 역시 어쿠스틱으로 들려준 '나의 하루 나의 밤'이었다. 원래 앨범에서는 '마이 언트 메리(My Aunt Mary)'의 '정순용(aka Thomas Cook)'이 불렀던 곡으로 융진의 보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앨범에서 정순용의 목소리는 피로하고 지친 기분이 역력했다면, 융진이 부른 느낌은 그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최근에 발매된 새앨범 수록곡인 '나쁘게'였다. 이 곡만은 어쿠스틱이 아닌 DJing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5집의 '물고기'랑 느낌이 비슷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전혀 다른 곡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스텔뮤직 소속 밴드 가운데는 가장 많은(듀오로는 5번째이지만) 6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노련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다음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Sentimental Scenery'를 잇는 파스텔뮤직의 '차세대 기대주'라고 할 수 있는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였다. 그런데 각종 매체를 통해 공개된 사진보다 후덕한 모습은 사실 좀 충격이었다.(소개 없었다면 못 알아볼 뻔했다.) 곧 발매할 1집 수록곡 '오랜만이다'와 이미 발매된 EP 'Prelude' 수록곡 '살고있어'를 들려주었는데, EP 수록곡들 가운데 남성 듀엣이 인상적이었던 '살고있어'는 EP에서 함께 부른 '소수빈'이 등장하여 듀엣을 보여주었다. '살고있어', 곡의 끝맺음이 아쉽지만 남성 듀엣은 좋았다.

두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정화의 순서는 바로 '루시아(심규선)'이었다. 뮤지컬의 주연이기도 했던 그녀이기에 공연에서 모습이 참 궁금했었는데, 그녀에게 매혹될 수 밖에 없는 무대였다. 최근에 발표한 (무려 10곡이 수록된) EP '데칼코마니'의 타이틀 'Savior'로 시작하여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한 데뷔 앨범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와 '부디', 총 3곡을 들려준 짧은 무대였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을 뚜렸했다. 열정적인 보컬과 더불어 연주를 손으로 표현하는 듯한 그녀만의 독특한 제스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그녀의 무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10일 공연에서 최고의 노래 실력을 보여준 두 사람을 꼽는다면 앞서 언급한 캐스커의 '융진' 더불어, 바로 '루시아'였다.

마지막은 역시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수있는 '짙은'이었다. 행복전도사같이 환한 웃음으로 등장한 그는 대부분 우울한 곡들을 들려주었던 앞선 뮤지션들과 다르게, 행복 가득한 'Sunshine'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역시 그 기운을 이어가는 Feel 'Alright'이었다. 아마도 이 공연을 잘 즐기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안도하게 만드는 짙은의 모습이었으리라. 마지막 곡은 'TV Show'였고, 그렇게 즐거운 쇼는 끝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관객들은 앵콜을 연호했고, 앵콜로는 '백야'를 들려주었다. 곡 중간에는 이 날 공연에 참여했던 모든 뮤지션들이 등장하여,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뮤지션들을 한 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나오는 길에 이 날 공연했던 뮤지션들의 앨범이 팔지 않았던 점은, 파스텔뮤직의 유일한 실수였다.
2012/11/19 13:34 2012/11/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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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속사와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 여성 싱어송라이터 '비스윗(BeSweet)'의 첫 EP 'Bitter Sweet'.

옛 노래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참신 했던 '메이랜드(Mayland)'의 노래를 다시 듣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객원보컬 '비스윗(BeSweet)'은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그녀의 첫 EP를 발표했습니다. '메이랜드'를 통해 알게된 '비스윗'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파스텔뮤직에서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파스텔뮤직에서도 같은 생각이었나봅니다.

과거 인터넷 개인 방송이 한창이던 시절에 여성 DJ의 목소리가 생각나는 그녀의 음성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인디씬에서는 남성 보컬들처럼 여성 보컬들도 담백하게 부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듯하고 실제로도 그런 보컬들이 인기가 많은데, 비스윗읜 경우에는 비음이 섞여있는 느낌이고 약간의 바이브레이션까지 있어서 '담백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어조와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들이 그녀에게서는 목소리 자체에서도 느껴집니다. '간드러지게' 들릴 수도 있는 점들이 그녀에게는 어떤'간절함'으로 들립니다.

그녀의 특별한 음성에서오는 감정의 전달은 그녀의 첫 EP 'Bitter Sweet'의 첫 곡 '슬프다는 말'에서부터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보통 노래들처럼 두 절과 반복되는 후렴구로 되어있는 이 노래에서, 각 절에 해당하는 가사들에 운율을 넣어 읊조리는 그녀의 음성은 슬픈 멜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대사처럼 들립니다. 고심 끝 이별을 고하는 투명한 슬픔의 음성은, 슬프다는 말을 쏟아내는 수 많은 노래들 사이에서 그녀의 노래를 특별하게 합니다.

조금은시니컬한 어조로 부르는 '오빠가'는 첫곡을 생각한다면 반전같은 곡입니다. 오빠의 뻔한 변명는 어쩐지 주머니가 가벼운 '복학생'이 떠오르고 그런 핑계를 알고도 속아주는 여자친구는 점점 세상에 물들어가는 '새내기 여대생'이 떠오르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보통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 연애의 끝에 씁쓸해집니다. 연애 시절에도 핑계를 그 끝에도 핑계로 끝낼 수 밖에 없는 오빠의 입장에 씁쓸하고, 알고도 속아주는 여자친구의 사정에 또 씁쓸합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허밍은 후반으로 갈 수록 점점 감정이 실려서,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너의 곁에'에 뒤에 듣게 될 '잘못'과 더불어 그녀의 첫 정규앨범 'Lost of Spring'에 수록되었던 곡입니다. 원곡은 조금은 빠른 템포와 신디사이저로 팝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EP에 다시 수록되면서 템포를 늦추고 피아노 반주만 사용하여 그녀의 음성과 감정 표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눈의 하얀색과 핏빛의 붉은색이 명확한 대조를 이루는 가사는 인상적입니다.

제목처럼 '달콤 씁쓸한' 사랑에 대한 노래들이지만 '이미 없는데'는 제목과는 다르게 연주가 상당히 경쾌합니다. 그 유치한 첫사랑에 대한 생각에 달콤(sweet)하지만, 이제는 늦었기에 씁쓸(bitter)합니다. '잘못'은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이제는 '인디씬의 메이저'라고 할수 있는 파스텔뮤직의 실력(?)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비스윗의 1집이나 파스텔뮤직의 과거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이 EP를 비롯하여 최근에 발매된 '에피톤 프로젝트'나 'Sentimental Scenery' 음반에서는 메이저 시장의 음반들과 비교할 만큼 향상된 레코딩과 믹싱이 들립니다.

'이미 없는데'의 어쿠스틱 버전이 보너스 트랙이라고 본다면,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인 '달빛아래'는 틴로맨스 소설처럼 밝고 경쾌합니다. 제목을 '두근두근'이나 '나만의 선물'이라고 했어도 잘 어울렸을 법합니다. 달콤 씁쓸한 사랑이지만 희망을 놓치지말라는 메시지일까요?  비스윗처럼 달콤 씁쓸한 노래들이 많았던 파스텔뮤직 초기의 밴드 '미스티 블루'가 떠오르는데, 이 곡 '달빛아래'는 그래서 '날씨 맑음'이 떠오르게 합니다. 수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소속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 여성 뮤지션이 줄고 '에피톤 프로젝트', 'Sentimetal Scenery', '짙은' 등 남성 뮤지션들이 중심이 되는 파스텔뮤직이었는데, 비스윗같이 달콤한 팝락을 들려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을 소개했다는 점이 반갑습니다. 다만 그녀에게 아쉬운 점은 비음의 영향인지(아니면 혹시나 사투리의 영향인지) 발음이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된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메이랜드처럼 이 EP가 단발성 이벤트가 될 지, 두 번째 정규앨범으로 찾아올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을 통해, 앨범 자켓에서 보이는 육각기둥 원석(석영?)에서 더욱 다듬어진 보석이 되어 찾아오길 기대합니다.

2012/10/04 03:46 2012/10/04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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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두 번 째 정규앨범 '낯선도시에서의 하루'.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대표 아티스트이라고 할 만한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가 두 버째 정규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파스텔뮤직과 계약 이후, 2009년 기존 발표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 '긴 여행의 시작', 2010년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를 발표했고, 2011년에는 'Lucia(심규선)'과 함께 'Lucia with Epitone Project'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방'을 발표하면서 파스텔뮤직 소속의 어느 뮤지션들보다도 꾸준히 달려오고 있는데, '2012년'도 쉬어가지 않고 '대표 뮤지션'으로 쐬기를 박을 기세인지 두 번째 정규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발표했습니다.

수록곡들을 살펴보면서 눈에 띄는 것은 지난 두 장의 앨범과는 다르게 여성 보컬의 곡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여성 보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은, 이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여성형 페르소나'라고 의심할 만한 '한희정'과의 듀엣곡 뿐입니다. 'Lucia with Epitone Project'로 여성 보컬곡을 모두 소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달라진 '음악적 어조'나 또 다른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흥미롭게도 스페셜 앨범과 정규앨범 두 장의 앨범 제목들을 살펴보면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목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긴 여행 시작하고(긴 여행의 시작),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되찿아(유실물 보관소) 낯선 도시에서 경유하는(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일련의 과정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적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 끝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교통방송처럼 들리는 배경음으로 시작하는 '5122'는 제목의 의미부터 궁금해지는 인트로 곡입니다. 4자리 숫자로된 곡 제목은 'Olafur Arnalds'의 앨범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앨범의 제목을 생각한다면 '낯선 도시'로 떠나는 항공편의 번호나 철도편의 번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하게도 총 51분 20초대인 이 앨범의 재생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낯선 도시를 담은 사진들이 담겨있는 아이폰 속 사진첩의 비밀번호일까요?) 우아한 3박자의 춤곡 '미뉴에트'는 곧 도착할 '낯선 도시'에 대한 조금의 설렘과 조금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춤곡에 이어지는 '이제, 여기에는'는 리듬감과 -지난 두 앨범을 들었다면 차세정, 그의 곡들에게는 그다지 어울지 않는 단어인- 진취적인 느낌이 전해지는 보컬곡입니다. 이 앨범을 포함한 그의 세 장의 앨범 모두, 첫 두 곡 정도는 이 리듬의 도드라집니다. 공연을 염두한 의도적인 곡 배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연의 오프닝에 배치하기에는 딱 좋은 곡들이라고 생각되거든요. (그가 파스텔뮤직 소속이 되면서 그의 노래들은 계속 들어왔지만 공연을 직접 본 일은 없어 확인할 길은 없네요.)

'시차', 상당히 지리적이며 과학적인 단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인가 봅니다. 애써 담담하고 태연하려는 모습 넘어로 뭍어나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시차'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떠오르게 합니다.

"먼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곳은 새벽인데 그곳은 밤이라 합니다.
이렇듯 우리 사랑에는 시차가 있는가 봅니다.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돗한 그리움뿐,

나는 새벽인데
그대는 밤이라 합니다."

물론 이 시에는 마음의 시차를 이야기하고 노래는 실제적인 '시차'에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지만, 결국 '누구와도 같지 않으니 누구라도 다른 거니까'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닮아있지 않나요? 영어의 관용적인 표현인지 영미권 노래들에서 종종 사랑의 변화를 계절에 변화에 빗대어 표현하곤 하는데(이제는 우리나라 노래에서도 많이 이용하는), 그 만큼이나 '시차'의 문제는 생각해 볼 만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마음의 시차'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앨범에서 유일한 듀엣곡이자 유일하게 여성 보컬을 들을 수 있는 '다음날 아침'은 '한희정'과 함께한 곡입니다. 그녀의 듀엣은 '그대는 어디에'와 '이화동'에 이어 세 번째인데, 앞선 두 곡이 '절정'에 위치한 곡이었다면, 이 곡은 상당히 차분한 '전개' 정도가 되겠습니다. 또, '그대는 어디에'나 '이화동'에서 그녀는 보컬과 코러스를 오가는 피쳐링(featuring)으로 '여성보컬로서의 매력'을 들려주었다면, 이 곡에서는 차세정과 비슷한 비중의 '듀엣(duet)'으로 '한희정으로서'의 진정한 매력을 들려줍니다. 건조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매력은 그녀의 새 앨범을 더욱 기다리게 만듭니다.

'다음날 아침'이라는 제목에서, '그럼 전날은 무슨 날이었나?' 궁금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영화나 소설에서 중대한 사건이 있고 다음날의 시작을 알릴 때 쓰이는 자막이나 문구인 '다음날 아침'에서 따온 제목이 아닐까요? '눈을 떠보면 새로운 아침이..'라는 가사가 있어서, '눈을 뜨면'이 생각나는데 가사의 내용도 적당히 개연성이 있게 들립니다.

일상의 시간 순서로는 어색하지만 '다음날 아침'의 다음 곡은 '새벽녘'입니다. 기억과 추억, 인사와 눈물이 뒤범벅이 된 가사는 '눈을 뜨면'으로 대표할 수 있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감성을 다시 한 번 들려줍니다. 유희열의 청승과 윤상의 세련미가 만난 음악이 바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매력이 아닐런지요. '초보비행'은 어찌 들으면 소박한 청혼같은 노래입니다. 감성을 울리는 슬픈 노래들이 대다수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에서 이런 따뜻한 감성의 노래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노래가 전하지 못한, 혼자만의 바람과 공허한 혼잣말처럼 들리는 사람은 저 뿐인가요?

'국경을 넘는 기차'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연주곡입니다. 앞선 두 앨범에서는 적지 않은 연주곡이 아쉬웠는데, 이 앨범에서는 intro와 outro를 제외하면 유일한 연주곡이라 오히려 반갑습니다. 듣고 있으면, 철로 위를 조급하게 달리는 기차와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치는 풍경들처럼 적당한 속도감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전해집니다. 그 여행의 감정 덕분에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곡입니다.

'떠나자'는 이 앨범의 절정이라고 할 수있는 곡입니다. 수록곡 순서대로 콘서트가 진행된다면 이 곡 즈음에서 꽃가루도 날릴 법합니다. 가사를 잘 음미하면 '낯선 도시'의 정체가 조금은 보입니다. 아마도 '낯선 도시'는 처음 가본 진짜 낯선 도시면서, 동시에 이제는 기억 속에 묻어둔, 가사를 빌리자면, '우리 함께했던, 우리 사랑했던 수많은 날'을 보낸 '다정했던 이 도시'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열어보면 잠깐 동안만 방문할 수 있는 그런 도시가 바로 '낯선 도시' 아닐까요? '긴 여행'을 떠난 그가 '유실물 보관소'에서 찾은 추억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였으리라 봅니다.

트럼펫 연주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전해지는 '우리의 음악'은 앨범이 결말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사는 앞선 노래 '떠나자'에서 했던 유추들을 확인시켜 줍니다. 마지막 가사 '오늘처럼'은 바로 추억 속 그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와 같아보입니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 낯선 도시에 도착한 설렘이 되겠고, '다음날 아침'은 그 짧은 하루를 보낸 아쉬움이 되겠구요.

잔잔하게 시작해서 점점 스케일을 키워가는 '믿을게'는 앨범과 공연의 피날레에 어울리는 곡입니다. 이별에 대한 담담하게 절제된 목소리는 처절한 감정의 표출보다 오히려 더 눈물겨울 때가 많은데, 차세정은 가창력이 출중한 보컬이라고 할 수 없어도 이런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소리내에 울지 않는 울음이나 조용히 흐르는 눈물처럼 감정을 흔들어 놓습니다.

'터미널'은 제목처럼 앨범을 닫는 곡입니다. 하지만 터미널은 모든 여정이 끝나는 동시에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기에  사랑의 여행이 끝나고 이별의 여행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 곡까지 들으면서 꿈 같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왠지 영화 '인셉션'의 림보 속 도시에서의 일상과 겹쳐졌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듯, 마지막 '미뉴에트'는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는지 '5122'과 같은 멜로디입니다. 하지만 춤곡이라고 하기에는 쓸쓸한 피아노 연주는 사랑이 남기는 슬픈 그림자 같습니다.

기대 유망주였던 에피톤 프로젝트는 이제 음반의 판매량이나 공연의 규모와 흥행에 있어서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스페셜 앨범과 첫 정규앨범, 그리고 루시아(심규선)과 함께 작업한 앨범을 거쳐 두 번째 정규앨범까지, 꾸준한 창작력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음악 활동도 보여주고 있구요. 이번 앨범에서는 자신의 보컬에 더욱 집중하면서 앨범을 관통하는 스토리텔링과 응집력을 들려주었습니다.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기다려집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2/08/23 15:49 2012/08/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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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여성 싱어-송라이터 '희영(Hee Young)'의 2009년 자체제작으로 발매된 EP 'So Sudden'은 어떤 계기인지 몰라도 파스텔뮤직을 통해 2011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고, 그녀의 첫 정규앨범(full-length album)은 발로 올해 봄에 발표되었었죠. 제 블로그에도 EP 'So Sudden'과 정규앨범 '4 Luv'를 소개했고,  EP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공연은 언제쯤 국내에서도 볼 수 있을까?'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바로 5월 한 달 서울 여기저기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침 저는 지방민이 되어서 평일이나 금요일 공연은 엄두를 못내고 있었고 5월은 다 지나가고 있었는데, '석가탄신일'이 이어진 황금연휴의 가운데인 5월 27일 홍대 카페 '밤삼킨별'에서 그녀의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밤삼킨별'은 처음 듣는 곳이었지만, 5월이 다 가기전에 그녀가 뉴욕으로 돌아가기전에 공연을 한 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예매하였습니다.
 
보통 홍대 근처 클럽의 공연 시작 시간보다 이른 5시에 시작예정인 공연은 4시 30부터 입장하여 간단힌 도시락이 포함된 공연이었습니다. 4시 30분이 약간 넘어서 도착한 '밤삼킨별'은 아담한 카페로 공연은 2층에서 진행되었습니다. 30명 한정이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카페였습니다. 하지만 실내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 여성들의 수다공간이나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 좋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간단한 도시락은 예쁜 컵케잌과 컵과일로 '밤삼킨별'의 컨셉을 알 수 있는 간식이었습니다.

드디어 시계가 5시를 지나고,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희영의 국내 소속사인 '파스텔뮤직' 관계자의 소개를 듣고서야 이 날의 공연이 '희영'의 국내 '첫 단독공연'이자 이번 방문의 '마지막 단독공연'이라는 점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녀의 공연일정을 살펴보면 당연히 알 수 있었을 텐데, 홍대 근처 인디공연이 오랜만인지라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습니다.

키보드 세션과 함께 등장한 그녀는 아담한 체구의 전형적인 동양인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한국말을 너무 잘 한다는 점인데, 사춘기에 건너간 그녀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주로 영어로 노래하고 영어 앨범으로 우리나라에 먼저 소개되었기에 그런 편견이 생겼나봅니다. '뉴욕, 커피'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그녀의 뉴욕 생활과 커피 이야기가 많이 나올 법한 공연이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원래는 많은 이야기로 진행될 예정이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한국에서 단독공연을 한 희영이나 그 자리에 있던 관객들도 모두 긴장한 나머지, 숨죽이며 노래를 듣는 공연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그리고 특히 많이 들었던 곡 'Buy Myself A Good-bye'를 시작으로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1집 수록곡 'Lonely Like Everyone', 'Knew Your City', '4 Luv'과 EP 수록곡 'So Sudden', 'Solid on the Ground', 'Are You Still Waiting?', 그리고 미발표 곡 하나와 카피곡 하나로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알찬 공연으로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단독 공연이기에 팬들은 앵콜을 원했고, 두 곡을 우리말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독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아서 아쉬웠지만, 앞으로 또 다른 앨범과 더 많은 곡들로 더 큰 무대 위에서 단독공연을 펼칠 그녀를 기다려 봅니다. 아담한 공간이 좋았던 '밤삼킨별'에서 다시 그녀가 노래할 기회가 온다면, 그녀의 뉴욕과 커피에 대한 더 많인 이야기가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공연이 끝나고 간단한 사인회도 있었답니다. 마침 현장에서 팔고 있던 EP 'So Sudden'의 미국판(자체제작)도 구입할 수 있었지요. 더불어 파스텔뮤직 사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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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6:50 2012/06/19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