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



너무나 슬퍼서 심금을 울리고 눈물샘을 자극해버리고 마는, 그리고 너무나 귀에 익숙한 멜로디. 하지만 내가 'Thanksgiving'이라는 제목과 이 곡의 연주자가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얼마전이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작이라는, 사계절 연작 앨범 가운데 하나인 'December'의 수록곡으로, Thanksgiving은 수록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적인 피아노 곡의 제목이 Thanksgiving이라는 점은 어쩌면 의외라고 할 수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Thanksgiving'은 'Thanksgiving day'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 뜻은 '추수 감사절'로 우리나라의 '한가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을 '추수 감사절'이라고 부르기엔, 추수 감사절이 담고 있는 풍요로움과 즐거움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Thankgiving의 또 다른 뜻은 '감사식, 감사제'이다. 이 정도의 뜻을 갖고 마음대로 해석해보면 조금은 어울릴까? 그대를 보내며 그대에 대한 '감사식'이라고. 그래야만 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해석되지 않을까?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입가에 맴도는 단어들을 차마 말할 수 없는 슬픔...

그런데 어쩐일인지, 제목을 알기도 전부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꼭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곤 했다. 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영화에 이 곡이 나왔던가?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는 '안나 카레니나' 정도이고 그 유명한 '라붐' 등은 아주 어렸을 때 봤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소피 마르소와 조지 윈스턴이 조우한 작품(?)을.



손발이 오글오글? 지금 생각해도 한국 CF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점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 엄청난 지명도를 생각하면 CF 자체의 수준은 정말 눈물겹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뉴에이지의 대가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을 들을 수 있다. 뛰어난 여배우와 한 장르의 대가가 만났지만 그 결과물은 참담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 CF 덕분에 Thanksgiving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는 '조건 반사'가 형성되었나보다. 이제 여러분도 '파블로프의 개', 아니 '드X의 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2010/09/19 22:50 2010/09/19 22:50

수채화같은 영화가 떠오르는 음악, Olafur Arnalds의 'Eulogy for evolution'

아이슬란드의 뮤지션 'Olafur Arnalds'는 그의 국적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아이슬란드가 바로 'Sigur Ros'의 고향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조금 있겠습니다. 'Bjork'이 바로 아이슬란드 출신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겠죠. 언급한 Sigur Ros나 Bjork같은 고규의 독특한 뮤지션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슬랜드 출신답게  Olafur Arnalds도 평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특히 그는 Sigur Ros의 유럽 투어에서 오프닝 뮤지션으로도 무대에 올라선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Sigur Ros와 다른 색깔이지만 그만큼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라이센스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음반은 'Eulogy of Evolution'입니다. 우리말로는 어색하지만, '진화을 향한 찬양'정도가 되겠습니다. 또 독특한 점은 수록곡 모두가 단지 숫자로 된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련번호라고 생각하면 혹시 이 뮤지션이 작곡한 곡을 첫번째부터 숫자를 붙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곡에서 무려 3천번이 넘는 제목을 갖고 있기에, 한 음악가가 평생 작곡해도 불가능해 보일 법한 숫자를, 1987년 생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그가 그렇게 많은 곡을 작곡했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듭니다.

앨범을 들어보면 혹시 영화같은 영상물에서 쓰이는 장면의 컷 번호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피아노 연주 중심에 현악이 더해진 그의 음악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전형적인 유럽영화(특히 프랑스)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씨의, 수채화 같은 장면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0040

눈꺼풀 위로 아른거리는 햇살에 눈을 뜬 주인공의 이런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야할 법합니다. "그는 이제 없다." 이별인지 사별인지 알 수 없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애써 태연하려고 하지만 쉽지않습니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그녀는 다시 음악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그 시간 속에서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어 한 곡의 음악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슬픔은 물러가고 그녀는 평온을 찾아갑니다.

0048/0729

새벽 이슬이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이른 새벽, 한 남자가 침엽수로 울창한 숲을 걷고 있습니다. 안개가 일어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법하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좇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이 숲과 그가 걷는 이 길에 남겨진 기억들, 그 기억들의 흔적을 좇고 있습니다.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숨도 멈춥니다. 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던 공터 한가운데 섭니다. 공허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요?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아득한 기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0952

싱그러운 아침, 두 남녀가 공원을 산책합니다. 바닥을 뒤덮은 낙엽들과 조금은 두터운 외투가 늦가을임을 알립니다. 기나긴 공원의 산책길,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강물처럼 두 사람 발걸음도 흘러갑니다.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두 사람의 시간도 영원하기를 두 사람의 각자의 마음 속에 빌어봅니다.

1440

조금씩 비가 내리는 어느 흐린 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뒤를 조심스레 쫓고 있습니다. 그는 뒤쫓는 그녀의 존재를 모른 체,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뒤를 쫓는 여자의 옛 애인으로 몇 년전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져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억을 잃었는지, 그녀가 이 추적을 시작하기전 마주쳤지만, 그저 스쳐지날 뿐이었습니다. 몇 개의 건널목들과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집, 한 여인이 마중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눕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제 그녀의 자리는 없고, 이 여인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만이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납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3055

수백년 후의 미래, 지구는 환경파괴와 여러 전쟁들로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몇몇 선택받은 인류는 지구 상의 남은 모든 종의 유전자 정보를 담은 우주선을 타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년, 망망대해보다도 더 넣은 광활한 우주를 십수년간 찾아헤맸지만 남은 인류와 생명체들이 살아갈 만한 또 다른 행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선의 모든 승무원들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끊없는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 순간 레이더가 찾아낸 몇 광년 떨어진 행성 하나. 지구와 비슷한 태양을 갖고 있고, 공기와 물, 모두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당합니다. 아직 수광년 떨어져있지만, 인류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우주선이라면 수 개월내에 도착이 가능합니다. 모든 승무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우주선은 전속력으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2010/09/19 22:45 2010/09/19 22:45

우리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기억해. Steve Barakatt의 'All about Us'

월드컵 열풍이 몰아쳤던 2002년은 저에게는 '뉴에이지(New age) 열풍'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뉴에이지 뮤지션 '이루마'를 시작으로 미국의 'Brain Crain'와 'David Lanz', 일본의 'Isao Sasaki'의 음반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Yuki Kuramoto'의 음악들은 큰 감흥을 얻을 수 없었지만, 아직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았던 한 캐나다 뮤지션에게 끌렸습니다. 그 뮤지션이 바로 'Steve Barakatt'이었습니다. 이미 그의 곡들 중 'Day by day', 'Whistler's song'은 귀에 익은 곡들이었습니다. Steve Barakatt은 캐나다 퀘백 출신의 뮤지션으로 뉴에이지 계열이지만, 중창단과의 협연이라던지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 등 밴드 사운드와 조우하는 행보는 크로스오버 뮤지션에 가깝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먼저 구입한 Steve Barakatt 앨범은 유명곡들이 수록된 앨범이 아닌, 바로 당시에 발매된 따끈따끈한 신보 'All about Us(2002년)'였습니다. 사실, 지금은 Steve Barakatt의 모든 앨범들이 정식발매되었지만, 당시에는 2장의 정규앨범과 (아마도 한국을 위해서라고 생각되는) 베스트앨범 성격의 'Rainbow bridge the collection'이 발매된 상태였습니다. 보통 지난 음악들을 찾아듣기보다는 새 음악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제 음악감상에서의 일종의 철학(?)이 반영되었지요. (지금은 대부분의 앨범들이 정식 발매되어서, 'All about Us' 이전 앨범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함께 시작하는,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첫 곡 'All about Us'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젊음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유명 뉴에이지 뮤지션들 중에서도 상당히 젊은 나이인, 앨범 발매 당시 30세(73년생)를 생각했을 때 그의 세련되고 진보적인 시도와 소리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No Regrets'는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섹소폰과 어우러진 긍정적이고 로맨틱한 사운드는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과는 역설처럼 들립니다. 이 역설에 대한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이 곡은 사랑하고 난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밝은 것은 그럼에도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그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No Regrets)'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또 그렇기에 그 시간들이 이렇게나 눈물나도록 로맨틱하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마음가짐이야 말로 그 시간들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

'Jardin Secret'은 Steve Barakatt의 출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제목입니다 'Jardin'은 영어로 'Garden' 즉 정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그는 캐나다 출신이지만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퀘벡'의 출신이니까요. 우리말로 하면 '비밀 정원'정도가 될까요? 앞선 두 트랙을 생각하면 상당히 차분하고 조용한 트랙인데, 비밀 정원이라는 제목처럼 그 정원에서 비밀스러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표현하고 있나봅니다. 하지만 피아노 선율에서 느껴지는 그 사랑이, 어쩐지 애달프고 서글픈 이유는 무엇일까요?

'I'm sorry'는 '미안해요'라는 제목과는 모순되게도 슬픔의 감정이 아닌, 싱그럽고 맑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마도 두 연인사이에 큰 다툼이 있은 다음날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곡이 아닐까 합니다. 거센 비바람이 치는 밤새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의 공기는 분명 싱그럽고 상쾌할테니까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툼이 있은 뒤, 두 사람의 사랑도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요?

'Sould Attraction'은 웅장한 코러스를 사용하여 '영혼의 끌림'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Hoping She would be there'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처럼 투명한 피아노 연주로 그 감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Angel over Me'는 기쁨의 감정을 소소하지만, Steve Barakatt의 특기인 '로맨틱하게' 들려줍니다. 이어지는 곡들에서도 Steve Barakatt, 그의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째즈풍의 'Temptation', 리듬이 두드러진 'Sunrise'는 그의 젊음, 젊은 뮤지션다운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정한 기념품을 의미하는 'Tendres Souvenirs'에서는 오래된 연인으로부터 날아온 여행 기념품을 통해 전해지는 애틋한 감정을 수필처럼 그려내고, 이어지는 'You were so close'에서는 그 멀어진 연인에 대해 애틋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절절히 녹아있습니다.

수 많은 뉴에이지 뮤지션들이 보통 슬프고 서정적인 감성을 연주하고 들려주는 점과 비교할 때, Steve Barakatt은 분명 그 '보통'과는 다른 뮤지션입니다. 그의 음악에는 '밞은', '진취적인', '긍정적인', 이런 형용사들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의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로맨틱(romantic)'한 감성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어렇게나 잘 어울리는 뉴에이지 뮤지션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전까지 '로맨틱'하면 떠오르는 악기는 '섹소폰'이었고, 뮤지션은 '섹소폰의 사나이'인 'Kenny G'였습니다.)

지난 인연과 지난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쁨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앨범 'All about Us'는 이제는 헤어진 연인들과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기억해'라고. 누구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모두가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사랑, 그렇지만 그 '영원하지 않음'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은 사라지겠지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다시 사랑하게 합니다. 한 사람과 만든 하나의 사랑은 사라지지만, '사랑' 그 자체는 언제나 다시 태어나 계속되기에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마음 속에 계속됩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어처구니 없고 경악에 가까운 '보컬 앨범'을 내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Steve Barakatt의 행보를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0/09/19 22:43 2010/09/19 22:43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 Azure Ray의 Hold on Love

'파스텔뮤직'의 'the Greatest Album of All Time Series'로 정식 발매된, 여성 듀오 'Azure Ray'의 마지막 정규 앨범 'Hold on Love'.

'Azure Ray'의 약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CD에 포함된 속지나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잘 소개가 되어있으니까요. 2001년 첫 앨범을 발표하고 2004년 세 번째 앨범을 끝으로 해체한 Azure Ray는 전부터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 좋다는 입소문이 있었지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해외 드라마에 이들의 노래가 수록되면서 한국에서는 좀 더 대중에게 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는 앨범 Hold on Love는 이들 음악의 정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앨범이 전체적인 느낌은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형체들처럼,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을 아스라이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은 네 번째 트랙 'Look to Me'에서부터 확연히 느껴집니다. 슬픔이 지나치면 차마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것처럼, 처절하게 슬픈 마지막 장면같은 가사와 구슬프게 울리는 목소리는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감정을 일으키고, 그 감정을 잡으려고 하면 연기처럼 흩어져버립니다.

이어지는 'The Drinks We Drank Last Night'은 딱히 형용하기 어려운, 하지만 익숙한 소소하고 쓸쓸한 감정들을 노래합니다. 가사에 나오는 파도, 먼지, 바람처럼 익숙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들처럼 흐르는 감정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잔잔히 흐르는 바다처럼 잔잔한 연주가 인상적인 'Across the Ocean'은 시간이 지나서 색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 기억의 끝자락을 노래합니다. 희미한 기억의 끝자락 역시, 가장 빛나던 시절의 그림자처럼 남아서 존재하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If You Fall'은 이 앨범 수록곡들 중 가장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기쁜 가사에도 그녀들의 목소리는 마냥 환하지만은 않습니다. 조금은 지친 기색이 느껴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할까요? 제목처럼 가정법으로 진행하는 가사는 그 기쁨이 '현실이 아닌 가정'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쁨의 감정이 마음 속에 딱 담아두기만은 힘든 것이 아닐까요? 다가올 수도 있는, 혹은 그냥 눈 앞에서 지나갈 수도 있는 기쁨의 잔상처럼요.

'의심의 바다'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Sea of Doubts'은 서정성이 빛나는 트랙입니다. 그 바다를 가로지르는 진취적인 항해를 연상케하는 피아노와 현악은 보컬이 없다면 멋진 뉴에이지 트랙이 될 법하고, 이 곡의 서정성의 튼튼한 받침이 됩니다. 그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 바로 '그대'만이 이 의심의 바다를 해쳐나갈 수 있는 희망이겠죠.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 끝까지 아무리 나아가도 결국 그 태양에 닿을 수는 없을지라도.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앨범 'Hold on Love'의 네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다섯 개의 트랙들이 바로 이 앨범을 빛나게하는 곡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기쁨과 슬픔의 잔상들'을 노래하는 트랙들이구요. 그런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에서 더 공감이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도 한 가지 기분만으로 딱 형용할 수 있는 순간보다는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으니까요. 울다가 웃다가 혹은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를 삶의 순간들,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들과 함께 Azure Ray의 음악을 가슴 깊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2010/09/19 22:42 2010/09/19 22:42

다시 거들떠보자 박기영 4집 'present 4 you'

2001년 11월에 발매된 박기영의 4집 'present 4 you',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앨범이기에 이렇게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소개를 합니다.

2001년부터 2002년, 겨울동안 제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졌던 자줏빛을 두른 깔끔한 디지팩 케이스에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면 총 13곡을 담고 있는 박기영 그녀의 네 번째 앨범을 살펴봅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에서 친숙한 이름이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러브홀릭(Loveholic)'의 멤버로 더 익숙한 '이재학'과 '강현민'입니다. 첫 번째 '선물'에서 이재학이 작사와 편곡으로 참여했고 강현민이 코러스로 참여했고 두 번째 'Loving you'에서는 강현민이 작사, 작곡, 및 편곡을 담당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두 곡은 러브홀릭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앨범의 발매로부터 약 2년 후인 2003년 10월에 1집을 발표한 러브홀릭의 음악과도 많이 닳아 있는 곡들이기 때문입니다. 러브홀릭의 1집을 들은 후 생각난 점이 바로 박기영의 4집이었을 만큼, 사실 이 두 곡의 보컬을 3집까지의 보컬이었던 '지선'의 목소리로 대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러브홀릭과도 잘 어울립니다.(사실 러브홀릭 티저 동영상에서 박기영이 추천사를 날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히 'Loving you'의 경우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러브홀릭에서 팝락 성향이 강한 곡을 만들었던 강현민이 담당했기에 러브홀릭 1집의 성향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이재학은 발라드 성향이 짙은 곡들을 만들었고 이 앨범이 열 번째 트랙인 '정원'에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 곡은 작사, 작곡 및 편곡을 모두 이재학이 담당하였고 역시 지선이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트랙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2006년 11월에 발매된 러브홀릭의 리메이크 앨범 'Re-wind'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지선의 목소리롤 되살아났습니다.

세 번째 트랙 '산책'은 대중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양질의 곡들을 쓰고 있는 '심현보'의 작품으로 '선물'과 더불어 이 앨범의  가장 대중적인, 킬링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곡입니다. 네 번째 트랙 'Thank you!'부터 아홉 번째 트랙 'My Life'까지는 모두 박기영이 작사, 작곡, 편곡을 담당한, 그녀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트랙들입니다. 특히 'Thank you!'는 박기영의 시원한 가창력과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트랙으로 킬링트랙들에 버금가는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사랑의 느낌이 가득한, 다섯 번째 '오늘은...'에서는 고인이된 '거북이'의 '터틀맨 임성훈'의 랩을 들을 수 있고, 동양적이고 애절한 분위기의 일곱 번째 트랙 '後'와 스트링 세션이 참여한 락발라드인 여덟 번째 트랙 '부탁'에서는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세션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의 열한 번째 트랙 '길'과 발라드 버전으로 다시 듣는 열두 번째 트랙'선물(Ballad)'를 지나면 마지막 트랙 'Nadia'입니다. Nadia는 그녀가 작사, 편곡 및 공동작곡을 한 곡으로 또 다른 분위기의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정원'과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지선의 탈퇴로 '러브홀릭'에 메인 보컬이 없는 지금, 강현민과 이재학 두 사람이 박기영과 또 다른 '러브홀릭'을 결성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선물', 'Loving you', '정원' 세 곡에서 들려준 호흡들은 '러브홀릭'에 버금가는 팀이 탄생할 법도 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꼭 한 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앨범 한 장으로 해체하더라도요.

상당히 인상적인 네 개의 트랙을 시작으로 마지막까지 완성도 높은 곡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제목처럼 선물 같은 앨범 'present 4 you', 박기영과 러브홀릭에 관심있는 사람들, 그리고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2010/09/19 22:40 2010/09/19 22:40

'그 일관성이 좋아', 앨범 자켓, 또 다른 예술의 세계

요즘에는 mp3나 온라인 스트리밍같은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 되었지만, 아직도 '앨범'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CD'이다. 각종 음원 압축 기술이 좋아졌다지만, 용량을 줄이기위해 압축을 하면서 음질의 손실이 발생하기에 CD의 음질을 따라갈 수는 없다. 또, CD는 만질 수 없는 가상의 존재같은 '파일'이 아닌 현물이기에 그 자체로서의 소장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CD 속에 담겨있는 음원들, 그 음원의 음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CD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CD를 보호해주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케이스(디지팩이든 플라스틱 케이스든)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자켓'이 바로 그것이다.

앨범 자켓이 뭐 대수롭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 'Beatles'의 그 유명한 앨범 'Abbey Road'의 자켓을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평범한 자켓이 얼마나 많이 패러디와 오마쥬의 대상이 되었는지.

각종 시각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앨범 자켓은 단순히 포장의 기능 뿐만 아니라, CD 속에 담긴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리나라의 자켓을 살펴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대의 마녀', '오지은'의 앨범 자켓들로 좌측부터 '1집', '1집 해피로봇 에디션', '2집'의 자켓이다. '해피로봇 에디션'은 어차피 레이블이 바뀌면서 판매를 위해 자켓을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1집과 2집만을 비교하면 본인의 얼굴에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수록곡들도 앨범 자켓처럼 그녀의 자화상 혹은 일기장 같은 노래들이다. 더구나 앨범 타이틀도 1집과 2집 모두 '지은'으로 뮤지션의 고집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자켓을 살펴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스티 블루'의 앨범 자켓들로 왼쪽부터, 1집 '너의 별이름은 시리우스 B',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EP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의 자켓이다. 자켓에서부터 남다른 안목이 느껴지는데, 일관적으로 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들을 사용하고 있고, 더불어 밴드 로고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어 어떤 연속성이 느껴진다. 1집이 일러스트처럼 풋풋하고 달달하고 멜랑콜리한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고 EP들도 마찬가지여서, 첫 번째 EP는 흰눈처럼 순수한 감수성을 두 번째 EP는 여린 봄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고집있고 꾸준한 모습들, CD를 수집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즐겁다. 이런 멋을 아는 뮤지션들이 좋다. 음악뿐만아니라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주는 뮤지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앨범 자켓은 이제 단순히 '음반의 포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포토그라피, 일러스트레이트, 타이포그라피 등이 융합된 또 다른 예술의 장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010/09/19 22:32 2010/09/19 22:32

환상의 짝궁, '센티멘타루(Sentimentaru)'

'센티멘타루(Sentimentaru)'. 제가 'Sentimental Scenery(이하 SS)'와 '타루(taru)'를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환상의 짝궁'이니까요. 두 사람의 인연(?)은 '파스텔뮤직'에서 시작됩니다. 타루는 밴드 '더 멜로디'의 보컬로서 파스텔뮤직 소속이었습니다. SS는 이미 몇 장의 디지털 앨범을 발표하였고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음악을 알리고 있었고, '더 멜로디'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을 때 즈음에 파스텔뮤직에 영입되었습니다.

'타루'는 파스텔뮤직에서 솔로로 활동하기로 하였고 미니앨범을 준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레이블 이름처럼 '파스텔톤의 소녀적 감수성' 위주의 앨범들을 발표해온 파스텔뮤직은 '조금 우울하고 진중한 소녀적 감수성'이 아닌, 타루에게 잘 어울리는 '활기넘치고 발랄한 소녀적 감수성'을 기획했나 봅니다. 그리하여 일렉트로니카 성향을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신예 SS를 프로듀서로 선입합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환상적인 코라보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타루의 미니앨범 'R.A.I.N.B.O.W'를 통해 코라보레이션의 결과는 나타납니다. 'Swinging Popsicle'이 선사한 'Yesterday'와 같은 파스텔뮤직 소속의 '미스티 블루'의 곡 '날씨 맑음'을 제외한 네 곡을 SS가 작곡하고 타루가 작사했습니다. 팝과 일렉트로니카가 적절히 조화되어 미니앨범 수록곡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Miss You', 음료 CF에도 삽입되었고 다소 민망한 가사이지만 타루가 불러 어색하지 않은 'Love Today', 너무나 사랑스러운 가사가 인상적인 흥겨운 듀엣곡 '오! 다시', 그리고 SS의 또 다른 재능인 이름 그대로의 센티멘탈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는 '제발'이 그 결과물들입니다.

R.A.I.N.B.O.W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은,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앨범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타루의 보컬과 SS의 프로그래밍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귀에 들어오면서 그야말로 '완소 앨범' 가운데 하나로 등극하기에 이릅니다. 그 가운데 절정은 바로 Miss You입니다. 다분히 유치할 수 있는 가사이지만, 무게감 있는 비트와 튜닝을 거친 목소리는 그런 유치함을 진중함으로 승화시킵니다. 보컬과 멜로디를 이끄는 기타 연주, 그리고 중심을 잡아주는 비트가 중심이된 곡이지만, 에그쉐이크나 박수소리 같이 경청하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요소들과 현악이 어우러져 풍성한 바탕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세 곡과는 달리 충분히 절제된 타루의 보컬도 적절했구요.

이 곡은 SS의 데뷔앨범 'Harp song + scentimental scene'에 SS의 보컬로 수록됩니다. 남자가 불렀다면 더 닭살스러웠을 가사는 영어가사로 바뀌었고, 역시나 타루가 featuring으로 참여했지요. 두 사람의 코라보레이션은 CF를 통해 다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핸드폰 CF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Bling Bling'입니다. CF가 2가지 버전이 있고 그래서 'Bling Bling'도 두 가지 버전이 탄생했습니다. 당연히 '타루 버전'과 'SS 버전'이죠. 반짝 반짝 빛나는 느낌의 'Bling Bling', 타루 버전이 먼저 공개되었고 이어 SS 버전이 공개되었는데, 두 버전은 보컬 외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타루 버전에서 오토튠을 이용해 조금 변조된 타루의 목소리는 저음의 무거운 비트와 무게중심을 이룹니다. 그리고 타루의 목소리는 보컬이라기 보다는 연주처럼 들립니다. SS 버전의 보컬이 생각보다 두드러지게 들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두 버전의 조금씩 다른 편곡 때문에 타루 버전이 원래 이 곡의 제작 목적이었던 배경음악으로 더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제 바람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두 사람이 아예 '프로젝트 유닛'을 결성하는 것입니다. Clazziquai의 DJ Clazzi에게 호란과 크리스티나가 있고, Casker의 캐스커(이준오)에게 융진이 있듯, SS에게도 여성 보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바로 타루라고 생각합니다. 유닛을 결성하게 된다면 이름은 당연히 '센티멘타루'로 해야겠구요.

앞으로도 두 사람의 멋진 코라보레이션을 기대해봅니다.

'Bling Bling'의 타루 버전 벨소리가 'Bling Bling Can U' 홈페이지(http://blingbling.lgtelecom.com/)에서 2009년 6월 8일까지 무료 다운로드 이벤트 중이니 반짝 반짝 빛나는 벨소리를 설정해보세요.
2010/09/19 22:25 2010/09/19 22:25

소녀에서 숙녀로, Taylor Swift의 'Fearless'

수려한 외모에 빠지지 않는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완소녀 'Taylor Swift'의 두 번째 앨범 'Fearless'는 흥얼거리며 들을 만한 트랙들로 가득합니다. 'Shania Twain'과 'the Wreckers'에 이어 제가 세 번째로 구입한 'Country(컨트리)'라는 장르의 앨범이기도 하구요. 세계 음악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음악 시장이고 '컨트리'라는 장르가 미국에서는 자주 빌보드차트의 상위권을 점령하지만, 다분히 '미국인의 취향'이라는 특성때문에 북미권(미국, 캐나다) 밖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Taylor Swift는 앞서 언급했던 두 뮤지션들 처럼 'Pop(팝)'으로 적절히 치장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네요.

앨범 수록곡들 중 두 곡만 살펴볼게요. 바로 'Love Story'와 'White Horse'로 꼭 한 쌍같은 노래들입니다.

먼저 'Love Story'입니다.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행복한 결말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비극은 'White Horse'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Love Story'가  첫 눈에 반한 사랑 노래라면, 'White Horse'는 이별 노래입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두 노래가 한 쌍은 아닙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많은 단서들이 숨어있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Prince'와 'Princess'입니다. 두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Love Story>

Romeo take me somewhere we can be alone
I`ll be waiting all there`s left to do is run
You`ll be the prince and I`ll be the princess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White Horse>

That I`m not a princess, this ain`t a fairy tale
I`m not the one you sweep off her feet,
Lead her up the stairwell

Love Story에서는 "너는 왕자, 나는 공주"가 되리라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White Horse에서 "나는 공주가 아니야, 이건 동화가 아니야"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서 동시에 환상에 빠져들지만, 이별이 찾아오고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는 모습이죠.

두 번째 단서는 두 곡의 공통적인 색 'White'입니다.

<Love Story>

And said, marry me Juliet
You`ll never have to be alone
I love you and that`s all I really know
I talked to your dad, go pick out a white dress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White Horse>

This ain`t Hollywood, this is a small town,
I was a dreamer before you went and let me down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ome around

Love Story에서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말합니다. "너희 아빠에게 말해두었어. 새하얀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하지만 White Horse에서는 '너와 네 백마는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White dress는 공주가 입는 옷인 동시에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을 의미합니다. 반면 White horse는 왕자가 타는 것이며,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듯 합니다.

두 곡을 이어서 놓으면 꼭 한편의 성장소설 같습니다.

<Love Story>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Cause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White Horse>

Cause I`m not your princess, this ain`t a fairytale
I`m gonna find someone someday who might actually treat me well
This is a big world, that was a small town
There in my rearview mirror disappearing now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atch me now

Love Story의 시작은 "내가 너를 처음봤을 때 우리는 둘 다 어렸어"이지만 마지막은 "내가 너를 처음봤을 때 우리는 둘 다 어렸기 때문에"입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사로 봐서 현재는 행복으로 가득찬 노래와는 좀 다를 법도 합니다. 치기어린 과거에 한 말이 "이건 사랑 이야기야, 그냥 '그래'라고만 말해"입니다.

White Horse의 마지막은 "나는 언젠가 나를 진짜로 잘 대해줄 누군가를 찾을거야. 여긴 큰 세상이고 그곳은 작은 마을이었으니까"입니다. 앞서 자신이 공주가 아니라고 했던 말처럼 역시 현실을 깨닿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백미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떠나는 모습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중이죠. 노래 속 사건의 시간적 순서는 Love Story 다음에 White Horse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Love Story가 먼훗날 회상하는 형식이라고 본다면, 순서는 반대가 되겠네요.
2010/09/19 22:19 2010/09/19 22:19

Epitone Project - 유실물 보관소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

작년 발표된 '긴 여행의 시작'은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으로 파스텔뮤직에 합류 이후, 정규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기다림에 목이 마를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발매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정규앨범이 늦어지면서, '긴 여행의 시작'이 아닌, '긴 기다림의 시작'이 되어버렸죠.

앨범을 시작을 여는 트랙은 앨범 제목과 같은 '유실물 보관소'입니다. 신디사이저와 함께 시작되는 고요한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일렉트릭기타가 어우러지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합니다. 캐나다의 'Steve Barakatt'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진취적인 사운드와 함께 펼쳐지는 사랑의 순간 순간들. '유실물 보관소',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떠나는, 또다른 '긴 여행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유실물 보관소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억들,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살펴보죠.

"유난히 검은 밤, 그래서 유난히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 밤. 모든 이야기는 그 밤에 시작되었는지도 몰라요."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미 여러 앨범에서 피쳐링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루싸이트 토끼'의 '조예진'이 참여한 트랙입니다.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시티팝의 향기는 조예진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루싸이트 토끼의 곡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진 분위기를 들려줍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밤, 가로등 아래서 멀어지던 그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잃었을까요?

"소중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날 때, 그 순간의 감정은 한숨 섞인 미안함 뿐인 걸... 너는 알고 있니?"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유망주 '이진우'가 참여한 '한숨이 늘었어'는 전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가 떠오르는 트랙입니다. 푸르고 높은 하늘처럼 청명한 목소리가 빛나는 클라이막스는 '찬란한 슬픔의 한숨'을 표현합니다. '재밌다는 영화를 일부러 찾는' 그의 모습은 '그대는 어디에'에서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긴'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대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처럼, 사랑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 그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숨을 짖구요.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봄이 찾아오길...그대가 없는 세상이라는 사막에서 나를 지키며 선인장처럼 묵묵히 서있을테니..."

익숙한 기타 코드과 함께 시작하는 '선인장'은 여성보컬 '심규선'의 목소리로 불려집니다. 편안한 멜로디 위를 흐르는, 마치 '선인장 재배 지침서(?)' 같이 시작해서 선인장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위로하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관조하는 듯한, 정말 굿굿한 선인장같은 음색을 들려주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인상적이구요. 연가가 되어야 할 법한 기타 연주는, 아주 약간의 습기를 간직했고 적당히 건조한 보컬과 함께 평정심을 유지한 이별 노래를 완성합니다.

기억과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새, 쉽게 지날 수 없는 '좁은 문'을 지나 또다른 유실물로 시선은 옮겨갑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 하늘 아래서 느껴지는 소중했던 순간들, 그리고 찬란한 슬픔..."

'이화동'은 지난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에 이어 다시 한번 '한희정'과 호흡을 맞춘 트랙입니다. 함께 걷던 골목길과 눈이 부신 햇살과 사소한 나뭇잎에서 조차도 느껴지는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세정과 한희정의 듀엣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그 슬픔의 찬란함을 더할 나위없이 잘 표현하고 있구요.

'해열제'는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신예 'Sammi'가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에서는 '재주소년'의 '아스피린'이 떠오르더군요.)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과 함께  사랑의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열병, 그 열병을 위한 해열제는 '눈물을 쏘옥 빼는 일'일까요?

연주곡 '시간'은 서랍속 옛 일기장처럼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버린 시간들을 담고 있을 법합니다.

"기억해. 기나긴 이별의 겨울을 지나서 다시 찾아올 우리의 봄이 있다는 걸..."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하는 '손편지'는 차세정이 부르는 트랙입니다. 비록 이별이라는 아픔의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찾아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자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진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흐르는 목소리에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와 함께 써내려가는 손편지처럼, 간절한 진솔함이 담겨있습니다.

'서랍을 열다'는 연주곡이지만 앞선 트랙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크로스오버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는 트랙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진 묵직한 비트의 그루비함은, '째즈 힙합'을 연상시킵니다. 지난 앨범의 수록곡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와도 닮아있는데, 그루비함은 간결함과 그루함은 더 합니다. 평범한 어느날 무심코 연 서랍 속에서 발견한 시간의 흔적들, 그 상황에서 밀려오는 추억의 그림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들...결국 모두 나만의 착각이었나요?"

'오늘'은 '선인장'에 이어 다시 심규선이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차분한 어조로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의 슬픔을 담아냅니다. (가사에서 Alanis Morissette의 Simple together가 떠오릅니다.) 역시 차분한 피아노 연주는  그녀가 묻는 물음들, 그 하나 하나가 마음을 아리게 하고, 마법이 되어 대답을 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네요.

'봄의 멜로디'는 연주곡으로 '손편지'에서 노래한 '봄'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하지만 그 봄의 따뜻한 느낌은 어쩐지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려옵니다.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법한 이미지(들을 법한 멜로디)라고 할까요?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닿아있다면, 어디선가 들을 수 있기를..."

마지막 트랙 '유채꽃'은 차세정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에필로그와도 같은 트랙입니다. 노래하던 봄은 결국 찾아왔고 화자는 유채꽃이 핀 제주도에 왔습니다. 하지만 슬픔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앞선 '봄의 멜로디'가 꿈 속의 멜로디로 들린 것처럼, 화자는 홀로 제주의 언덕에 서있습니다.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귀를 간지럽히는 바닷바람같습니다. 그 바람 속에 흩날리는 화자의 목소리는 건조하지만, 눈물인지 파도인지 알 수 없는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펼쳐진 그 길들을 걸으면서 화자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런지요.

기쁨과 슬픔, 웃움과 눈물이 담겨있는 추억을 보관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주인을 기다리는 기억들(혹은 유실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기억(유실물)을 발견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 그러셨다면, 오늘은 꼭 찾아가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 베갯잇에 촉촉히 이슬이 내려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9/19 21:39 2010/09/19 21:39

그대와 함께

그대와 함께
온세상을 걷고 싶어요.
그래서 그대가 떠나신다면
홀로 남겨진 나는 온세상을 떠돌며
어디에서든 만나게 될
그대와의 추억 속을 떠돌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

그대와 함께
열차를 타고 떠나겠어요.
그래서 그대가 떠나신다면
홀로 남겨진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고
그대와 함께 꾸었던 꿈들이
기나긴 동토 속에서 녹지 않도록 지켜갈 수 있을 테니.

2010/09/05 18:16 2010/09/05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