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뮤직의 신예 뮤지션 '심규선'의 첫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에 객원보컬로 참여해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파스텔뮤직의 신인 '심규선'이 그녀의 첫 싱글 '첫번째,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심규선이라는 이름은 아직 귀에 익지 않은데, 그녀의 약력을 살펴보면, 밴드 '러브홀릭'이 보컬 '지선'의 탈퇴 이후 새 멤버 영입을 위해 연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뮤지컬 '마법사들'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러브홀릭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이기에 1위를 하고도 멤버로 영입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에피톤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녀와 저는 이렇게 음악으로 만나는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앨범 '유실물 보관소'에서 '선인장'과 '오늘', 두 곡으로 절제된 감성과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멋진 조합을 보여주었죠. 앨범 제목은 '첫번째, 방'이지 수록곡은 '고양이왈츠'뿐인(물론 어쿠스틱 버전이 따로 있지만) 이번 싱글에서도 탁월한 조합을 이어갑니다. 바로 크레딧을 보면 작사/작곡 및 프로듀싱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양이왈츠'는 제목처럼 왈츠의 느낌을 살린 세 박자의 곡입니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고양이의 걸음처럼, 왈츠의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스타카토의 키보드 연주는 그 사뿐함을 더하고, 퍼커션과 아코디언은 마치 놀이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아코디언의 음색은 언제나 아련한 어린시절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실물 보관소'의 두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사랑에 대한 수줍음과 설렘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역시 매력적이구요.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더욱 담백한 느낌의 그녀를 들을 수있습니다. 단촐한 기타 연주는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씨라면, 은은히 흐르는 현악은 수줍은 그녀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기타와 현악의 조합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모습도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왈츠의 세 박자에 아코디언 연주와 고양이까지, 모두 '봄'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들인데 이 싸늘한 가을에 발표된 점은 의외입니다. 의도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싱글 제목인 '방'에 있을 법하네요. 방의 아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겠죠. '첫 번째'는 이 싱글의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싱글 시리즈의 첫 번째를 의미하겠구요. 센티멘탈 시너리와 타루의 조합에 이어, 심규선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가 되네요. 더불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심규선의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하구요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Search Results for '2010/10'

9 items
고양이왈츠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Song&Album
한희정 - 잔혹한 여행
가끔 공연하기로 유명했던(악명 높았던?), 그래서 단독 공연이 열리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푸른새벽'의 해체 이후, 듀오 때와는 전혀 다르게도 꾸준한 솔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한희정'이 새로운 EP '잔혹한 여행'을 '어느 가을'날에 발표했습니다. 2008년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2009년 EP '끈'에 이어 올해 2010년 EP '잔혹한 여행'까지 3년 연속으로 앨범을 한 장씩 발표하는 기대이상의 왕성한 모습은 팬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지난 EP '끈'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여행'도 어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법합니다. '끈'이 '인연의 끈'에 대하 노래했다면 심각한 느낌의 제목 '잔혹한 여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자, '가이드 한희정'의 안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해 봅시다.
첫 곡은 '어느 가을'입니다. 이 EP가 발매된 '어느 가을'을 의미하면서도 이 EP 속 이야기의 시점인 '어느 가을'을 알려주는 제목입니다. 어느 가을날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덕수궁 돌담길 아래서 예정된 이별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의 발거음처럼 쓸쓸합니다. 길게 '서있다', '불었다'라고 쓸쓸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리의 낙엽들도 날려버릴 만큼 쓸쓸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시작됩니다.
앞선 곡에서 기대한 쓸쓸함을 날려버리듯, 이어지는 '입맞춤, 입술의 춤'은 매우 경쾌하게 흘러가는 트랙입니다. 입맞춤을 입술의 춤으로 의인화한 그녀의 기지가 재밌습니다. 간주에서 들리는 그녀의 애드립은, 이전의 그녀의 곡들과는 다르게 키치적으로 들려오네요.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는, 두 사람의 시공간이 포개어지면서 만들어진 그 '춤'이 얼마나 격렬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춤의 현장은 과거형으로 그려지고 있어 회상의 일부분임을 암시합니다. 또, 포개어진 시공간이 다시 나뉘어지듯, 이 순간도 언젠가 나뉘어지고 우리들의 내일도 다시 흩어질 것이라는 담담하면서도 슬픈 예감이 동반됩니다. 그 짧은 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그 춤을 다시 출 수 없음을 예감하게 하네요. 참으로 역설적인 곡이 아닐까 하네요.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그녀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앨범 발매 기대곡'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에서보다 부드럽고 가볍게 '순화하여'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좀 아쉽습니다. 나쁜 여자가 되어 이별을 일방적인 통보하는 듯한 느낌의 이 곡은 더 무겁고 거친 느낌이 나게 녹음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반추' 역시 공연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트랙입니다. 상당히 잔잔한 곡이기에 앞선 곡과는 다르게 비슷한 느낌으로 녹음된 것으로 들리네요. 심오한 가사는 이별을 불러오는 오해에 대한 가사처럼 들리기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카더라 통신'에 대한 풍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은 6박자로 절제와 격렬함을 모두 갖춘 무도곡 같은 트랙입니다. '입맞춤, 입술의 춤'처럼 '한희정식 비유법(?)'이 다시 느껴지는 제목으로, 사랑을 여행, 특히 '잔혹한 여행'에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 여행같던 사람이기에 여행처럼 시작되어 또 여행처럼 떠날 수 밖에 없고, 모든 여행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이별)에 가까워지기에 사랑은 잔혹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됩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무도곡 중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절망을 향해 내딛는 무도곡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녀의 데뷔앨범 '너의 다큐멘트'에 실리기도 했던 트랙인데 EP에서는 Band version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풍성한 밴드 연주와 어우러진 맑은 피아노 연주는 이 곡에 풍부한 소리의 질감을 더합니다. 공연으로 듣다가 막상 음반으로 들으면 언제나 뭔가 빠진 느낌처럼 허전했던 원곡과는 다르게, 전신을 감싸는 느낌의 풍부함이 좋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트랙은 놀랍게도(!)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언제나 기타와 함께하는 그녀의 앨범에 피아노 연주곡이라니 의외이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연착'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과의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연착은 과연 어떤 연착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는 시작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기에 그 여행 사이에 연착은 아닐까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공항에서 사랑이라는 비행기이 뜨고 내리면서 생기는 연착...사랑과 사랑사이,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텅빈 공항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의 '가이드 한희정'이 안내하는 '잔혹한 여행' 패키지를 마치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어떠셨는지요? 지난 EP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는 더욱 좋아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러브레터'와 같이 짠하게 마음을 적시는 트랙이 없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네요. 이번 EP로 그녀의 셋리스트 선택폭은 더욱 넓어졌을테니, 그녀의 공연들도 기대해봅니다. 내년에는 2집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Song&Album
스테프니 메이어 - 뉴문( New Moon)
트와일라잇 사가의 본편에 해당하는 4부작('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 그리고 '브레이킹던')은 이미 작년에 한꺼번에 구입하여, 작년에 읽은 트와일라잇을 제외하고는 책장에서 독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더. 오랜만에 그 두 번째 이야기 '뉴문'을 꺼내들어 읽었다.
트와일라잇이 주인공 '벨라 스완'과 뱀파이어 남자친구 '에드워드 컬렌'의 만남부터 고난 그리고 사랑의 확인까지 서장이라면, 뉴문에서는 전작에서 쑤려두었던 떡밥들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전작에서 인디언의 후손 '제이콥 블랙'이 벨라에게 들려주었던 '늑대인간'과 '냉혈족(뱀파이어)'의 전설이 현실화 되면서 포크스에는 새로운 갈등이 생겨난다. 전설처럼, 월야환담 시리즈나 언더월드 시리즈처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과 뱀파이어라는 두 사람의 관계에는 위기가 찾아오고, 제이콥이 늑대인간이 되면서 삼각관계와 비슷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무서웠던 점은 바로 벨라라는 인간이었다. 얼마나 무모하고 대담하고 탐욕적일 수 있는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특히 불사를 얻기위해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벨라의 탐욕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어쨌든 전작의 떡밥 중 늑대인간 떡밥이 드러나지만 가장 중요한 떡밥, '앨리스'가 본 '벨라의 미래'는 '볼투리 일가'와의 불편한 조우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된다. 수 천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재미을 읽어버린 늙은 뱀파이어들조차 흥미로워하는 벨라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을까? 뉴문에서도 그 떡밥만은 확인시키지 않으면서 종결나지만, 볼투리 일가와의 약속으로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제공한다. 더불어 아직 끝나지않은, 벨라를 노리는 '빅토리아'와 벨라를 지키려는 늑대인간들과의 싸움도 남아있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시리즈'에 비교하다면, 트와일라잇이 스스로 종결할 수도 있는 1편이었다면, 여러 사건들이 미완결로 끝나는 뉴문은 3편 '레볼루션' 없이는 종결될 수 없는 '리로리드'랄까? 빨리 다음 이야기 '이클립스(Eclipse)'를 읽어야겠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Book
김혜나 - 제리
무엇보다도 확실히 신세대답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노래방 도우미'는, 흔히 남성들끼리 노래방에 갔을 때 부르는 '여성 도우미'가 아닌, 여성들이 부르는 '남성 도우미'도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흔히 '호빠'라고 불리는 곳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광고 그대로, 내 나이 또래의 남성 들이라면 사춘기 시절 한 번 즈음은 접해보았을, '야설(야한 소설)'에 버금가는 성애 묘사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99.9% 남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야설들 과는 달리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성애 묘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까?
남성 노래방 도우미와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섹스는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하고 글을 읽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광고 문구인 '파괴적이고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누구나 알고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그 어두운 솔직함,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내 마음이 불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섹스의 묘사와 심리의 흐름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혹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은 아닐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생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결말은, 소위 '루저'들의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치닫는 불행한 결말 같아 답답했다. 소위 '스펙'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취업과는 동떨어진 삼류 대학교 야간반을 다니는 대학생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변질된 밤문화의 최하위층 남성 도우미를 하는 청년,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어쩐지 읽는 내내 조금은 촐싹되는 느낌의 '제리'는, 요즘 티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권'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Book
삼성 NX100 개봉기

작년에 장만한 VLUU WB1000과의 패키지 비교입니다. NX100이 렌즈교환식 카메라이기에 패키지의 크기부터 확실히 다릅니다. iFunction 마크가 눈에 띄네요.

현장구매 특전 사은품들(프리미엄 가방, EVF, 한효주 스트랩, 나얼 파우치 + 추가 8기가 메모리, 추가 정품 벳터리, 활용 가이드) 가운데 하나인 프리미엄 가방입니다. WB1000 전용 파우치와 크기비교를 해봤습니다.

NX100의 전면입니다. 화이트와 블랙, 두 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실물을 보니 블랙이 더 매력적이더군요.

후면입니다. WB1000과 마찬가지로 3인치 AMOLED입니다. 바로 삼성카메라의 강점이죠. 이외에 다른 카메라들에서 볼 수있는 다이얼과 버튼들이 보이네요.

번들 20-50mm 렌즈입니다. iFunction 버튼이 딱 눈에 들어오죠? 다른 렌즈들도 어서 발매되었으면 좋겠네요.

나얼이 디자인했다는 파우치입니다. 상당히 넉넉해서 NX100 뿐만 아니라 NX10도 충분히 들어갈 듯하네요. 극세사로 만들어졌는지 액정 닦는 용도로도 좋네요.

EVF입니다. 깜찍하고 NX100과 합체해도 이쁘더군요. 악세서리나 렌즈들이 다들 블랙톤이라 블랙 바디를 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본 패키지와 특전 사은품들까지 한 번에 담아봤습니다. 모든 사진들은 앞으로 보조 카메라로 활약할 WB1000으로 담았습니다. NX100 액정 보호필름을 장만해야하는데 싸고 좋은 녀석 아시는 분 소개해 주세요. 앞으로 더 좋은 사진, 많이 찍도록 하겠습니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어떤순간에/review
9와 숫자들 - 9와 숫자들
'그림자궁전'의 리더, '9'의 또 다른 도전 '9와 숫자들'.
밴드 '그림자궁전'이 2007년 1집을 발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한 활동정지에 들어간 동안,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멤버라고 할 수 있는, '9', 'stellar', 그리고 '용'은 각자 다른 밴드에 몸담고 있으며, 그 중 밴드 그림자궁전를 결성하고 정체성을 만든 리더 '9'는 또 다른 밴드의 리더로 곡을 쓰고, 음반 작업을 하고 간간히 공연을 해왔죠. 그 밴드의 이름은 '9와 숫자들'로 본인의 닉네임(9)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사실 9에게는 이번 앨범이 세 번째 1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1집만 세 번 냈다고 했던 뭐 가수처럼 말이죠.) 이제는 '장기하와 얼굴들'로 유명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시작과 함께한 포크 4인조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이하 청포협)'의 멤버 '9'로서 1집이자 마지막 앨범 '꽃무늬 일회용휴지/ 유통기한'에 참여하였고, 역시 '그림자궁전'의 1집이자 마지막 앨범이 될지도 모르는 앨범 '그림자궁전'으로 '두 번째 1집'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 '9와 숫자들'로 '1집만 세 번째'라는 흔하지 않은 경력을 완성했습니다.
'청포협'이 멤버 개개인의 사정으로 앨범 발매 후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인디씬에 관심이 조금 있는 분들이라면, 그의 이름은 '그림자궁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알고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9는 그림자궁전 활동 중에는 틈틈히 '포크가수 9'로서의 곡작업 및 '홍대앞 프리마켓'과 '클럽 빵' 등지에서 공연을 하면서, 그림자궁전과는 다른, 또 다른 음악세계로의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사실 게을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정진의 결과물이 '9'라는 이름들 단 솔로 앨범이 아닌, '9와 숫자들'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했습니다.
'9와 숫자들'에 대한 흥미는 이런 9의 음악 활동 경력에서 나옵니다. 밴드 그림자궁전에서 stellar를 프런트로 내세우고 '그림자'처럼 활약했던 점과는 다르게 직접 프런트로 나서고 있고, 닉네임을 밴드 이름의 맨앞에 넣음으로서 '포크가수 9'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곡 '그리움의 숲'은 그림자궁전이나 포크가수 9를 생각했을 때, 상당히 상큼한 출발을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영미 인디씬의 포크팝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맑은 로우파이(Lo-Fi) 사운드는 이 앨범이 지향하는 '복고'라는 지향점을 들려줍니다. 뛰어나지 않지만 곡 분위기에 적절한 보컬, 충분히 시적인 가사와 꼭 찬 밴드 사운드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향수로 가득합니다. '너'를 거룩한, 심오한 등으로로 신격화 숲의 초록과 빨간 모자, 빨간튜브 등 빨강이라는 선명한 색의 대비는 농밀한 그리움과 어우려져 청자의 감각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말해주세요'는 가벼운 팝-락풍의 연가입니다. 좀 더 단백한 9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진솔하고 담백한 가사는, 사랑의 무게가 가벼운 이 시점에서, 90년대 이전에 느낄 수 있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느낄 수 있게합니다. 가사에 진솔함에 비해, 경쾌하고 조금은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연주가 재밌습니다.
'오렌지 카운티'는 제목에서 재치가 느껴집니다. '오렌지족'으로 유명한 '한국의 오렌지 카운티'는 바로 압구정으로, '오렌지족'는 추억 속의 단어를 차용했다고 하겠습니다. 묵직한 타악기 소리는 댄스 플로어의 뜨거운 비트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그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 시절 순박한(?) 청년의 모습을 엿보게 합니다.
이어지는 곡은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지면서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석별의 춤'입니다. '석별'과 '춤'이라는 대비되는 이미지로 인해 이 곡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애틋한 이별의 곡이 되어야하겠지만 춤이라는 부분에 충실하여, 이 앨범에서 가장 댄서블한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리지 부기'는 대학생활의 로망을 노래한 트랙으로, 다분히 선정적으로 오해를 살만한 가사들이 숨어있습니다. '슈거 오브 마이 라이프'는 어렵지 않은 가사로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랑 노래입니다. 비장한 느낌의 연주로 시작하는 '삼청동에서'는 시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경쾌한 '옛날 얘기'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심각해지는 '실낙원'도 그 비장함을 이어가네요.
이미 '그림자궁전' 활동과 병행했던 포크가수 '9'의 곡으로 알려진 '이것이 사랑이라면'은 '9의 숫자들'의 앨범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겠어요'으로 사랑의 환희와 아픔을 동시에 표현해낸 가사는 '9식 화법'의 정수가 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중한 가사와 달리, 조금 가볍고 경쾌한 연주의 대조도 인상적입니다.
'선유도의 아침'은 시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댄스의 느낌이 충만한 트랙입니다. 그 흥겨움에 푹 빠져서 후렴구 '그래 없었던 일로 해 난 원래 그런 놈이니까'를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몰라요. '연날리기'는 그 흥겨움을 이어가면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더불어 연날리기를 통해 세태를 비판하는 정신이 돋보이는 트랙이기도 합니다.
'디엔에이'는 '그림자궁전'의 소위 '과학 시리즈' 곡들를 연상시키는 제목입니다. 가사 내용은 참으로 과학적인 단어인 'DNA'와는 경원하게 들릴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와 나의 몸속 너무 깊은 곳'에 있는 그것을 DNA에 비유한 재치에 감탄하게 됩니다. '낮은 침대'는 앨범을 마지막 트랙으로 마지막의 느낌처럼 '난 도망가버릴 거에요'라는 외침이 인상적입니다.
포크, 팝, 락, 댄스가 녹아든 '9와 숫자들'의 동명의 데뷔 앨범은 '그림자궁전'과는 전혀 다른 스펙트럼의 보여주는 앨범입니다. 하지만 그 멀어보이는 두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9의 음악적 DNA'에는 공통적으로 '복고'가 녹아있습니다. 요즘 음악보다는 80년대, 90년대 음악에 가까운 가사와 화법, 멜로디는 9의 감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소리를 펼쳐냅니다. 특히 댄서블한 사운드는 9가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던 같은 레이블 소속인 '흐른'의 앨범에도 감지된 부분으로, '그림자궁전'의 무기한 활동정지 후(혹은 그 이전부터) 감지되었던 9의 새로운 음악적 지향점이 아닐 하네요. '그림자궁전'의 데뷔 앨범에 이어 향후 2000년대의 처음 10년 동안 인디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을 음반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 확실한 두 번째 앨범을 완성한 '9'에게 경의를 표하며 별점은 5개입니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타인의취향/Song&Album
-
- Tag
- 9와 숫자들
사랑이 머문 자리에
이런 생각이 들곤해.
'사랑이 머문 자리에 그 사랑이 지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사랑 후의 사랑.
'지금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지난 사랑은 가짜였을까?'
늘 그렇게 궁금했어.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겠어.
사랑, 사랑, 사랑.
어느 하나의 사랑도 그들에게는 모두 진짜 사랑이었을 것이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 마음의 나이테가 하나 정도 늘어나겠지.
그렇게,
사랑이 머문 자리에.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그리고하루/from diary
우리가 만나는 날에는
밤새 그치지 않을 것만 같던 폭우가 내리다가도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면 맑은 하늘이 찾아오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결코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고민들이 어어지다가도
그 때가 되면 모두 다 눈녹듯 녹아 사라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걱정마, 모두 다 잘 될 거야'
서로에게 밝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너와 나,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렇게 '우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는 날에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그리고하루/at the moment
10월의 질식
어느덧 2009년에게도 시월이 찾아왔어. 해는 짧아지고 밤공기는 점점 싸늘해지고 있어.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조금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밤공기를 쐬면서 생각이 났어. '미스티 블루'의 'Daisy'가.
두 손 모아 그린 원 가득, 그 안에 시린 널 따스히 담아
내게만 보이지 않는지, 우울한 밤하늘 그곳엔
그토록 헤매였던, 보고팠던 그댈 닮은 별들 볼 수 없었어
짙어지는 가을, 특히 시월의 밤공기에는 어떤 마력이 있나봐. 너무 차갑지 않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딱 알맞은 서늘함과 가슴 깊게 들어마시면 느껴지는 그리움 가득한 가을밤의 향기는 숨이 멎게해.
입가에 맴도는 그리운 이름 하나, 부를 수 없는
아직도 기억해 내 안의 너의 모습
시간의 영원 속에서 미소짓는 듯
매일 난 꿈을 꿔 항상 같은 얘기 똑같은 눈빛으로
그런데, 그런데 그리울 이름, 그리울 얼굴이 없는데도 그리움이 생겨나는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내가 가진 그리움은 너무 막연한 그리움이어서,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처럼 막연해.
인간은 본연 외로운 존재라고 했나? 결국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니.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삶처럼,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리움도 인간 본연의 속성이 아닐까?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느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본연의 그리움을 품고 있지 않을까?
맑은 밤하늘, 마른 가을의 공기의 향기는 그렇게 숨을 멎게 해. 사색에 빠져들게 해.
- Posted at
- Last updated at
- Filed under 그리고하루/from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