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날보다

사랑했던 날보다 / 이정하

그대 아는가,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를 덮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했기에 더욱 그대에게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듯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네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여 진정 아는가.
2003/06/05 19:45 2003/06/05 19:45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2003/06/05 19:44 2003/06/05 19:44

별이 되어

차라리

밤하늘을 수 놓는 저 많은 별들 중

안타깝게 빛나는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원체 홀로이기에

외로움을 모르는 별이 될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결국 눈물이 되고 말 바람들

그 모두를 스치는 별이 되어...
2003/05/30 19:38 2003/05/30 19:38

함께

늘 바라던 일이었죠.

함께 할 수 있기를...

하지만 마음은 바람을 타고 전해질 수 없는 것일까요?

결국 기다림이란

기다림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겠죠.

두근거리던 마음도

점점 차분해져가고

결국에는 원망에 찬 마음으로

그대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나...

이제는 수 많은 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데..
2003/05/26 23:55 2003/05/26 23:55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은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2003/05/25 23:54 2003/05/25 23:54

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2003/04/28 23:22 2003/04/28 23:22

편지

편지

김 남 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내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2003/04/28 23:21 2003/04/28 23:21

끊긴 전화

끊긴 전화 (도 종 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것을 눌러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 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 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2003/04/19 23:17 2003/04/19 23:17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지은이 : 도 종 환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 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2003/04/19 23:14 2003/04/19 23:14

인연이란

인연이란

한 이파리 위에 떨어진 두 빗방울 같은 것은 아닐까?

언제 미끄러질 지도 모르고 아슬아승하게 올라서있는 빗방울들

미끄러지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기약없는 약속이 될 지도 모르지만

강을 따라흘러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하늘로 그렇게 돌다가

그 두 방울이 다시 한 이파리 위에서 만날 날

그 날이 찾아오는 것..

그것이 인연이 아닐까?
2003/04/02 23:05 2003/04/02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