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람 불고

오늘도 바람 불고

도종환


어제 불던 바람이 오늘도 붑니다
견딜 수 없어 싸리꽃 한 무더기 바람에 넘어집니다

어제 피었던 꽃들이 오늘 시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 있습니까
고요한 뼈 하나로 있습니까

나는 아직 살아서 봄풀 사이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습니다

빛나던 것들도 하나씩 재가 되어서 떨어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걸 알면서
오늘도 지향 없는 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어디쯤 와 있습니까
오늘도 바람 불고
싸리꽃 한 무더기 바람에 넘어집니다
2003/08/06 22:26 2003/08/06 22:26

모난 돌

내 마음의 모난 돌이

세상의 풍파 속에서

갈리고 닳아서

새하얀 조약돌이 되었을 때...

그 때에 나를 찾아 주세요..
2003/08/01 22:25 2003/08/01 22:25

그렇게

몇일 동안 내린 비에

모든 길이 흠뻑 젖어버렸건만

아침에 비가 그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마음도 그럴 수 있을까?

오래동안 적혀진 마음에

한번에 다 말라버릴 수 있을까?

오랜동안 좋아했던 마음이

한 번에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그럴 수 만 있다면...
2003/07/29 22:24 2003/07/29 22:24

이제는

이제는 그대를

내 마음에서 훨 훨 날려보내 줄게요.

그대는 내게 너무 높고 메마른 사람이에요.

어차피 혼자 한 짝사랑인걸...

나는 그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짝사랑을 좋아한 것일 지도 모르죠.

이런 나를 용서하세요...

안녕, 안녕히...

다시 그대를 보더라도

지금까지 처럼 그냥 웃을 수 밖에 없겠죠.

안녕, 안녕히...

그대는 내가 좋아하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2003/07/21 22:22 2003/07/21 22:22

꽃이 다시 피어 날 때 즈음에..

그때는 세상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기 위해

내 마음 황무지에 던져놓는 것이 옳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 거친 황무지에 물들줄은, 그렇게 메마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내 마음에 그대가 머무를 곳이 있었을 리없겠죠.

그렇게 그대는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지셨습니다.

하지만 기다립니다.

그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에 거친 마음의 폭풍이 지나고

꽃이 다시 피어 날 때 즈음에는 그대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2003/07/08 22:20 2003/07/08 22:20

먼 후일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2003/06/27 20:03 2003/06/27 20:03

손톱

오랜만에 길어버린 손톱을 짧게 깎았다.

손톱이 길었을 때와는 달리

그 짧은 손톱으로 씨디속지를 꺼내기가 참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그대를 향한 내 기억의 손톱도 닳고 닳아

그렇게 짧아져버릴 날이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그대를 기억하는 일이

그대 얼굴을 떠올리는 일조차도

짧은 손톱으로 씨디 속지를 꺼내보는 일처럼

힘든 일이 되고 말겠죠.


시간이 지나 손톱은 다시 자라나겠지만

그 손톱은 예전의 손톱이 아니듯...

내 마음 속에도 또다른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자라날지...
2003/06/26 20:02 2003/06/26 20:02

교차로

그대와 나는

인연의 교차로에 있다는 생각이든다.

조금씩 가까워지겠지만

이제 우린 다시 엇갈린 길을 가야만 한다.

하지만 길은 어디나 이어지듯이

교차로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대의 끌림으로

혹은 나의 바람으로

인연은 다시 이어질 것을 믿는다.
2003/06/16 19:57 2003/06/16 19:57

보이지 않죠

보이지 않죠
언제나 자신을 가장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거죠.

보이지 않죠
그러기에 그대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날 알아볼 수 없겠죠.

보이지 않죠
나 역시 날 생각해 줄 누군가를 알아볼 수 없겠죠.



....볼 수 있나요?
2003/06/13 19:56 2003/06/13 19:56

자연

자연

- 박재삼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랑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2003/06/11 19:53 2003/06/11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