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관성이 좋아', 앨범 자켓, 또 다른 예술의 세계

요즘에는 mp3나 온라인 스트리밍같은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 되었지만, 아직도 '앨범'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CD'이다. 각종 음원 압축 기술이 좋아졌다지만, 용량을 줄이기위해 압축을 하면서 음질의 손실이 발생하기에 CD의 음질을 따라갈 수는 없다. 또, CD는 만질 수 없는 가상의 존재같은 '파일'이 아닌 현물이기에 그 자체로서의 소장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CD 속에 담겨있는 음원들, 그 음원의 음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CD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CD를 보호해주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케이스(디지팩이든 플라스틱 케이스든)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자켓'이 바로 그것이다.

앨범 자켓이 뭐 대수롭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 'Beatles'의 그 유명한 앨범 'Abbey Road'의 자켓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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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범한 자켓이 얼마나 많이 패러디와 오마쥬의 대상이 되었는지.

각종 시각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앨범 자켓은 단순히 포장의 기능 뿐만 아니라, CD 속에 담긴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리나라의 자켓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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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마녀', '오지은'의 앨범 자켓들로 좌측부터 '1집', '1집 해피로봇 에디션', '2집'의 자켓이다. '해피로봇 에디션'은 어차피 레이블이 바뀌면서 판매를 위해 자켓을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1집과 2집만을 비교하면 본인의 얼굴에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수록곡들도 앨범 자켓처럼 그녀의 자화상 혹은 일기장 같은 노래들이다. 더구나 앨범 타이틀도 1집과 2집 모두 '지은'으로 뮤지션의 고집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자켓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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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블루'의 앨범 자켓들로 왼쪽부터, 1집 '너의 별이름은 시리우스 B',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EP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의 자켓이다. 자켓에서부터 남다른 안목이 느껴지는데, 일관적으로 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들을 사용하고 있고, 더불어 밴드 로고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어 어떤 연속성이 느껴진다. 1집이 일러스트처럼 풋풋하고 달달하고 멜랑콜리한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고 EP들도 마찬가지여서, 첫 번째 EP는 흰눈처럼 순수한 감수성을 두 번째 EP는 여린 봄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고집있고 꾸준한 모습들, CD를 수집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즐겁다. 이런 멋을 아는 뮤지션들이 좋다. 음악뿐만아니라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주는 뮤지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앨범 자켓은 이제 단순히 '음반의 포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포토그라피, 일러스트레이트, 타이포그라피 등이 융합된 또 다른 예술의 장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010/09/19 22:32 2010/09/19 22:32

환상의 짝궁, '센티멘타루(Sentimentaru)'

'센티멘타루(Sentimentaru)'. 제가 'Sentimental Scenery(이하 SS)'와 '타루(taru)'를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환상의 짝궁'이니까요. 두 사람의 인연(?)은 '파스텔뮤직'에서 시작됩니다. 타루는 밴드 '더 멜로디'의 보컬로서 파스텔뮤직 소속이었습니다. SS는 이미 몇 장의 디지털 앨범을 발표하였고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음악을 알리고 있었고, '더 멜로디'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을 때 즈음에 파스텔뮤직에 영입되었습니다.

'타루'는 파스텔뮤직에서 솔로로 활동하기로 하였고 미니앨범을 준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레이블 이름처럼 '파스텔톤의 소녀적 감수성' 위주의 앨범들을 발표해온 파스텔뮤직은 '조금 우울하고 진중한 소녀적 감수성'이 아닌, 타루에게 잘 어울리는 '활기넘치고 발랄한 소녀적 감수성'을 기획했나 봅니다. 그리하여 일렉트로니카 성향을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신예 SS를 프로듀서로 선입합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환상적인 코라보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타루의 미니앨범 'R.A.I.N.B.O.W'를 통해 코라보레이션의 결과는 나타납니다. 'Swinging Popsicle'이 선사한 'Yesterday'와 같은 파스텔뮤직 소속의 '미스티 블루'의 곡 '날씨 맑음'을 제외한 네 곡을 SS가 작곡하고 타루가 작사했습니다. 팝과 일렉트로니카가 적절히 조화되어 미니앨범 수록곡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Miss You', 음료 CF에도 삽입되었고 다소 민망한 가사이지만 타루가 불러 어색하지 않은 'Love Today', 너무나 사랑스러운 가사가 인상적인 흥겨운 듀엣곡 '오! 다시', 그리고 SS의 또 다른 재능인 이름 그대로의 센티멘탈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는 '제발'이 그 결과물들입니다.

R.A.I.N.B.O.W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은,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앨범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타루의 보컬과 SS의 프로그래밍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귀에 들어오면서 그야말로 '완소 앨범' 가운데 하나로 등극하기에 이릅니다. 그 가운데 절정은 바로 Miss You입니다. 다분히 유치할 수 있는 가사이지만, 무게감 있는 비트와 튜닝을 거친 목소리는 그런 유치함을 진중함으로 승화시킵니다. 보컬과 멜로디를 이끄는 기타 연주, 그리고 중심을 잡아주는 비트가 중심이된 곡이지만, 에그쉐이크나 박수소리 같이 경청하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요소들과 현악이 어우러져 풍성한 바탕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세 곡과는 달리 충분히 절제된 타루의 보컬도 적절했구요.

이 곡은 SS의 데뷔앨범 'Harp song + scentimental scene'에 SS의 보컬로 수록됩니다. 남자가 불렀다면 더 닭살스러웠을 가사는 영어가사로 바뀌었고, 역시나 타루가 featuring으로 참여했지요. 두 사람의 코라보레이션은 CF를 통해 다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핸드폰 CF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Bling Bling'입니다. CF가 2가지 버전이 있고 그래서 'Bling Bling'도 두 가지 버전이 탄생했습니다. 당연히 '타루 버전'과 'SS 버전'이죠. 반짝 반짝 빛나는 느낌의 'Bling Bling', 타루 버전이 먼저 공개되었고 이어 SS 버전이 공개되었는데, 두 버전은 보컬 외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타루 버전에서 오토튠을 이용해 조금 변조된 타루의 목소리는 저음의 무거운 비트와 무게중심을 이룹니다. 그리고 타루의 목소리는 보컬이라기 보다는 연주처럼 들립니다. SS 버전의 보컬이 생각보다 두드러지게 들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두 버전의 조금씩 다른 편곡 때문에 타루 버전이 원래 이 곡의 제작 목적이었던 배경음악으로 더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제 바람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두 사람이 아예 '프로젝트 유닛'을 결성하는 것입니다. Clazziquai의 DJ Clazzi에게 호란과 크리스티나가 있고, Casker의 캐스커(이준오)에게 융진이 있듯, SS에게도 여성 보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바로 타루라고 생각합니다. 유닛을 결성하게 된다면 이름은 당연히 '센티멘타루'로 해야겠구요.

앞으로도 두 사람의 멋진 코라보레이션을 기대해봅니다.

'Bling Bling'의 타루 버전 벨소리가 'Bling Bling Can U' 홈페이지(http://blingbling.lgtelecom.com/)에서 2009년 6월 8일까지 무료 다운로드 이벤트 중이니 반짝 반짝 빛나는 벨소리를 설정해보세요.
2010/09/19 22:25 2010/09/19 22:25

소녀에서 숙녀로, Taylor Swift의 'Fearless'

수려한 외모에 빠지지 않는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완소녀 'Taylor Swift'의 두 번째 앨범 'Fearless'는 흥얼거리며 들을 만한 트랙들로 가득합니다. 'Shania Twain'과 'the Wreckers'에 이어 제가 세 번째로 구입한 'Country(컨트리)'라는 장르의 앨범이기도 하구요. 세계 음악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음악 시장이고 '컨트리'라는 장르가 미국에서는 자주 빌보드차트의 상위권을 점령하지만, 다분히 '미국인의 취향'이라는 특성때문에 북미권(미국, 캐나다) 밖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Taylor Swift는 앞서 언급했던 두 뮤지션들 처럼 'Pop(팝)'으로 적절히 치장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네요.

앨범 수록곡들 중 두 곡만 살펴볼게요. 바로 'Love Story'와 'White Horse'로 꼭 한 쌍같은 노래들입니다.

먼저 'Love Story'입니다.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행복한 결말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비극은 'White Horse'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Love Story'가  첫 눈에 반한 사랑 노래라면, 'White Horse'는 이별 노래입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두 노래가 한 쌍은 아닙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많은 단서들이 숨어있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Prince'와 'Princess'입니다. 두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Love Story>

Romeo take me somewhere we can be alone
I`ll be waiting all there`s left to do is run
You`ll be the prince and I`ll be the princess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White Horse>

That I`m not a princess, this ain`t a fairy tale
I`m not the one you sweep off her feet,
Lead her up the stairwell

Love Story에서는 "너는 왕자, 나는 공주"가 되리라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White Horse에서 "나는 공주가 아니야, 이건 동화가 아니야"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서 동시에 환상에 빠져들지만, 이별이 찾아오고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는 모습이죠.

두 번째 단서는 두 곡의 공통적인 색 'White'입니다.

<Love Story>

And said, marry me Juliet
You`ll never have to be alone
I love you and that`s all I really know
I talked to your dad, go pick out a white dress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White Horse>

This ain`t Hollywood, this is a small town,
I was a dreamer before you went and let me down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ome around

Love Story에서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말합니다. "너희 아빠에게 말해두었어. 새하얀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하지만 White Horse에서는 '너와 네 백마는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White dress는 공주가 입는 옷인 동시에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을 의미합니다. 반면 White horse는 왕자가 타는 것이며,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듯 합니다.

두 곡을 이어서 놓으면 꼭 한편의 성장소설 같습니다.

<Love Story>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Cause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White Horse>

Cause I`m not your princess, this ain`t a fairytale
I`m gonna find someone someday who might actually treat me well
This is a big world, that was a small town
There in my rearview mirror disappearing now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atch me now

Love Story의 시작은 "내가 너를 처음봤을 때 우리는 둘 다 어렸어"이지만 마지막은 "내가 너를 처음봤을 때 우리는 둘 다 어렸기 때문에"입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사로 봐서 현재는 행복으로 가득찬 노래와는 좀 다를 법도 합니다. 치기어린 과거에 한 말이 "이건 사랑 이야기야, 그냥 '그래'라고만 말해"입니다.

White Horse의 마지막은 "나는 언젠가 나를 진짜로 잘 대해줄 누군가를 찾을거야. 여긴 큰 세상이고 그곳은 작은 마을이었으니까"입니다. 앞서 자신이 공주가 아니라고 했던 말처럼 역시 현실을 깨닿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백미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떠나는 모습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중이죠. 노래 속 사건의 시간적 순서는 Love Story 다음에 White Horse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Love Story가 먼훗날 회상하는 형식이라고 본다면, 순서는 반대가 되겠네요.
2010/09/19 22:19 2010/09/19 22:19

Epitone Project - 유실물 보관소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

작년 발표된 '긴 여행의 시작'은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으로 파스텔뮤직에 합류 이후, 정규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기다림에 목이 마를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발매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정규앨범이 늦어지면서, '긴 여행의 시작'이 아닌, '긴 기다림의 시작'이 되어버렸죠.

앨범을 시작을 여는 트랙은 앨범 제목과 같은 '유실물 보관소'입니다. 신디사이저와 함께 시작되는 고요한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일렉트릭기타가 어우러지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합니다. 캐나다의 'Steve Barakatt'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진취적인 사운드와 함께 펼쳐지는 사랑의 순간 순간들. '유실물 보관소',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떠나는, 또다른 '긴 여행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유실물 보관소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억들,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살펴보죠.

"유난히 검은 밤, 그래서 유난히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 밤. 모든 이야기는 그 밤에 시작되었는지도 몰라요."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미 여러 앨범에서 피쳐링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루싸이트 토끼'의 '조예진'이 참여한 트랙입니다.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시티팝의 향기는 조예진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루싸이트 토끼의 곡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진 분위기를 들려줍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던 밤, 가로등 아래서 멀어지던 그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잃었을까요?

"소중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날 때, 그 순간의 감정은 한숨 섞인 미안함 뿐인 걸... 너는 알고 있니?"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유망주 '이진우'가 참여한 '한숨이 늘었어'는 전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가 떠오르는 트랙입니다. 푸르고 높은 하늘처럼 청명한 목소리가 빛나는 클라이막스는 '찬란한 슬픔의 한숨'을 표현합니다. '재밌다는 영화를 일부러 찾는' 그의 모습은 '그대는 어디에'에서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긴'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대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처럼, 사랑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 그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숨을 짖구요.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봄이 찾아오길...그대가 없는 세상이라는 사막에서 나를 지키며 선인장처럼 묵묵히 서있을테니..."

익숙한 기타 코드과 함께 시작하는 '선인장'은 여성보컬 '심규선'의 목소리로 불려집니다. 편안한 멜로디 위를 흐르는, 마치 '선인장 재배 지침서(?)' 같이 시작해서 선인장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위로하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관조하는 듯한, 정말 굿굿한 선인장같은 음색을 들려주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인상적이구요. 연가가 되어야 할 법한 기타 연주는, 아주 약간의 습기를 간직했고 적당히 건조한 보컬과 함께 평정심을 유지한 이별 노래를 완성합니다.

기억과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새, 쉽게 지날 수 없는 '좁은 문'을 지나 또다른 유실물로 시선은 옮겨갑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 하늘 아래서 느껴지는 소중했던 순간들, 그리고 찬란한 슬픔..."

'이화동'은 지난 앨범의 '그대는 어디에'에 이어 다시 한번 '한희정'과 호흡을 맞춘 트랙입니다. 함께 걷던 골목길과 눈이 부신 햇살과 사소한 나뭇잎에서 조차도 느껴지는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세정과 한희정의 듀엣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그 슬픔의 찬란함을 더할 나위없이 잘 표현하고 있구요.

'해열제'는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신예 'Sammi'가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에서는 '재주소년'의 '아스피린'이 떠오르더군요.)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과 함께  사랑의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열병, 그 열병을 위한 해열제는 '눈물을 쏘옥 빼는 일'일까요?

연주곡 '시간'은 서랍속 옛 일기장처럼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버린 시간들을 담고 있을 법합니다.

"기억해. 기나긴 이별의 겨울을 지나서 다시 찾아올 우리의 봄이 있다는 걸..."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하는 '손편지'는 차세정이 부르는 트랙입니다. 비록 이별이라는 아픔의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찾아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자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진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흐르는 목소리에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와 함께 써내려가는 손편지처럼, 간절한 진솔함이 담겨있습니다.

'서랍을 열다'는 연주곡이지만 앞선 트랙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크로스오버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는 트랙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진 묵직한 비트의 그루비함은, '째즈 힙합'을 연상시킵니다. 지난 앨범의 수록곡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와도 닮아있는데, 그루비함은 간결함과 그루함은 더 합니다. 평범한 어느날 무심코 연 서랍 속에서 발견한 시간의 흔적들, 그 상황에서 밀려오는 추억의 그림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들...결국 모두 나만의 착각이었나요?"

'오늘'은 '선인장'에 이어 다시 심규선이 목소리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차분한 어조로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의 슬픔을 담아냅니다. (가사에서 Alanis Morissette의 Simple together가 떠오릅니다.) 역시 차분한 피아노 연주는  그녀가 묻는 물음들, 그 하나 하나가 마음을 아리게 하고, 마법이 되어 대답을 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네요.

'봄의 멜로디'는 연주곡으로 '손편지'에서 노래한 '봄'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하지만 그 봄의 따뜻한 느낌은 어쩐지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려옵니다.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법한 이미지(들을 법한 멜로디)라고 할까요?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닿아있다면, 어디선가 들을 수 있기를..."

마지막 트랙 '유채꽃'은 차세정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에필로그와도 같은 트랙입니다. 노래하던 봄은 결국 찾아왔고 화자는 유채꽃이 핀 제주도에 왔습니다. 하지만 슬픔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앞선 '봄의 멜로디'가 꿈 속의 멜로디로 들린 것처럼, 화자는 홀로 제주의 언덕에 서있습니다.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귀를 간지럽히는 바닷바람같습니다. 그 바람 속에 흩날리는 화자의 목소리는 건조하지만, 눈물인지 파도인지 알 수 없는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펼쳐진 그 길들을 걸으면서 화자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런지요.

기쁨과 슬픔, 웃움과 눈물이 담겨있는 추억을 보관하는 '유실물 보관소'의 주인을 기다리는 기억들(혹은 유실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기억(유실물)을 발견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 그러셨다면, 오늘은 꼭 찾아가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 베갯잇에 촉촉히 이슬이 내려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9/19 21:39 2010/09/19 21:39

미스티 블루 -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

'미스티 블루(Misty Blue)'의 길고 길었던 1년간의 여정,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계절 연작 EP의 네 번째,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

우선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미스티 블루의 두 사람 '경훈'과 '은수'에게 박수치고 싶습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작년 초에 계획되었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1년 사계절을 관통하는 음악 작업을 무사히 끝내고 네 장의 EP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이 전대미문의 프로젝트와 함께한 지난 약 1년의 시간 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지난 세 장의 EP들이 약 3개월의 간격을 두고 발매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이하 겨울은 봄의 심장, 혹은 겨울 EP)'은 2월 즈음에 발매될 것으로 생각되었으니, 실제 발매된 3월은 이미 봄이어서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봄을 의식한 듯한 부제 '겨울은 봄의 심장'은 그 '늦음'에 대한 항변으로 보이네요.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EP라는 점 뿐만 아니라 이미 2006년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을 통해 겨울의 느낌을 물씬 담아냈던 미스티 블루이기에, '겨울은 봄의 심장'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긴 여정의 마지막을 시작하는 인트로 성격의 '봄의 심장'은 마치 카세트테잎을 거꾸로 감아서 재생했을 때 들었을 법한 소리들로 시작됩니다. 가사를 통해 반복되는 'how'는 토로의 어려움을 노래합니다. 곡 전반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는 미스티 블루가 음악으로 참여했던 '베스트극장'의 단막극 '동쪽 마녀의 첫번째 남자' 테마곡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곡의 앞 부분은 거꾸로 감아서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망각 [Oblivate]'는 이 EP가 겨울을 표방하듯, 앞선 '봄의 심장'과 이어지는 지독한 쓸쓸함으로 시작합니다. 만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겨울의 이미지처럼 '어둠'과 '무덤'이라는 단어는 '기억의 죽음', 즉 제목 그대로 '망각'을 그려냅니다.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밴드 음악들 가운데 일부를 '슈게이징(shoegazing)'이라고 부르는데, 다분히 '슈게이저'라는 제목은 이 슈게이징에서 차용한 'shoegazer'라고 생각되네요. 그렇기에 '슈게이저'는 조근조근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는 이 밴드의 이미지가 담겨있는 제목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차분하지만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져서 미스티 블루다운 달달한 쓸쓸함을 들려줍니다.

'조와 울'은 텅빈 공간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공허한 슬픔을 노래합니다. 겨울 EP를 만드는 동안 두 멤버가 얼마나 많은 우울을 겪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행복하니?'라고 묻는 가사와 샘플링하여 수록한 울음소리에서 그 슬픔은 극명해집니다.

'On And On'은 미스티 블루답지 않게도 대부분 영어 가사에 더구나 라킹(Rocking)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어쩌면 슬픔을 넘어선 분노가 이런 사운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낮잠'은 놀랍게도 미스티 블루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최초로 베이스 '경훈'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말랑말랑한 멜로디들을 잘도 만들어내는 그의 작곡 능력과는 다르게, 그의 음성은 차운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마지막 '기억은 겨울보다 차갑다'는 겨울 EP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쓸쓸히, 조근조근 읊조리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는 보컬과 사운드는 어떤 시에서 노래했던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연상시킵니다. '너의 심장이 나의 심장에'라고 차마 끝내지 못한 여운은 어떠한 말보다도 더 깊은 슬픔을 담아냅니다. 너의 심장에서 나의 심장으로... 마음과 마음이 끈이 끊이 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기 힘들기에 쓸쓸합니다.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겨울 EP를 통해 약 1년에 가까운 미스티 블루의 긴 여정은 막을 내립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활기 넘치는 봄이 아닌, 겨울의 쓸쓸함을 가슴에 담은 슬픔의 봄을 위한 겨울은 역시 미스티 블루다운 해석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안타깝게도 미스티 블루의 마지막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제 미스티 블루의 음악들은 음반들로 만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겨울 EP가 그렇게도 서럽게 슬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 미스티 블루...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6/17 13:07 2010/06/17 13:07

페퍼톤스 (Peppertones) - Sounds Good!

우여곡절의 끝에 발매된 '페퍼톤스(Peppertones)'의 세 번째 정규 앨범 'Sounds Good!'.

데뷔 EP 'A Preview(2004)'로 'the Next Big Thing'이라고 칭송받았던 남성 듀오 '페퍼톤스'는 등장 당시 인디씬에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어습니다. 당시 가요계서도 흔하지 않았던 EP로 등장하였던 점, '객원보컬'을 전격 채용한 점, 뭔가 심오하거나 무게감 있는 음악을 지향하던 많은 인디밴드들과는 다르게 가볍고 말랑말랑한 음악을 들려준 점 등이 그러했죠. EP로 쌓아놓은 큰 기대 속에 발매된  1집 'Colorful Express(2005)'는 기대를 뛰어넘기보다는 '현상유지'에 가까운 앨범이었고, 2집 'New Standard(2008)'는 객원보컬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탈피하여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절반의 성공'에 가까운 앨범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신선했지만 'the Next Big Thing'라는 수식어는 어느덧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걸출한 밴드의 등장으로 페퍼톤스에게는 무색하게 된 2009년의 말미에, 이 남성 듀오는 세 번째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Sing!'은 시원하게 질주하는 느낌으로 앨범을 엽니다. 페퍼톤스다운 시원한 상쾌함은 1집의 'Ready, Get set, Go!'를 이어가는 이 트랙에서 새로운 객원보컬 '이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Victory'는 역시 발랄함을 이어갑니다. 2집에서 객원보컬로 합류한 '현민'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곡이죠. 각종 전자음보다는 밴드 연주가 중심이된 평이한 트랙입니다.

2집에서 'Drama', 한 곡에만 객원보컬로 참여함으로서 입지가 확연하게 줄었던 'deb'은 이번 앨범에서도 'Ping-Pong', 이 한 곡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탁구를 소재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붙은 '한판 승부'을 노래하는 가사는 치열한 '자전거 경주'로 얼룩진 1집의 'Bike'와도 닮아있습니다. '지금만큼만은 친구든 뭐든 아무 상관없어'라는 가사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승부욕이 느껴지지 않나요?

'공원여행'은 마치 실제로 거리를 걷는듯한 기분을 들게합니다. FPS(1인칭 슈팅 게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현민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친절한 안내때문일까요? 묘사적인 전달 때문에, 또 여행을 주제로 했기에, 1집의 'Fake Traveler'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Salary'는 2집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연진'을 다시 만나는 곡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월급날'의 즐거움을 신나는 탭댄스가 떠오로는 째즈풍으로 그루비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루비함은 지금까지 페퍼톤스의 느낌과는 다른, 색다름으로 다가오네요.

'지금 나의 노래가 들린다면'은 이선이 보컬을 담당한 곡으로 1집의 '세계정복'을 생각나게 합니다. '새벽열차'는 deb과 더불어 EP시절부터 함께해온 정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연희(WestWind)'를 들려줍니다. 이 두 곡에서는 이전 앨범들과는 다른, 3집에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가사'인데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전까지는 페퍼톤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니까요.

이어지는 세 트랙은 페퍼톤스의 두 멤버, '사요'와 '노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들입니다. 2집에서 두 사람을 목소리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 다시 객원보컬들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지만, 두 사람의 보컬에 대한 욕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나봅니다. 사요가 부르는 '작별은 고하며'는 왠지 마지막 트랙이어야할 법한 제목입니다. 노쉘이 부르는 'Knock' 역시 앞선 트랙과 마찬가지로 무난하지만, 평화로운 서정성이 매력적입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겨울의 사업가'는 본인들의 꿈을 노래하는 트랙이 아닌가 합니다. 12월에 이 앨범을 발매한 두 사람이 바로 음반구입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앞으로도 겨울마다 음반을 내려나요? 하지만 사실 '겨울의 사업가'는 여러모로 Wham의 명곡 'Last Christmas'를 떠오르게 합니다. 남성 2인조라는 점과 겨울 노래라는 점 뿐만 아니라, 곡의 분위기나 사운드, 그리고 튠을 적절히 사용한 보컬까지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겨울의 사업가라는 제목은 이 곡이 겨울마다 두 사람에게 돈을 벌어다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제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세 번째 정규앨범인만큼, 사운드의 양적인 면에서는 1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EP에서 들려주었던 그 재기발랄함에 걸었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페퍼톤스가 걸어온 모습은 조금 아쉽습니다. 사운드의 질적인 면에서는 그 기대를 채워주고 있지 못하니까요. 별점은 3개입니다.

2010/02/20 01:23 2010/02/20 01:23

전우치 - 2009.12.27

한국형 영웅물의 시작 '전우치'.

사실 영화 '전우치'는 '장동건', '원빈'을 이어가는 차세대 주연급 꽃미남 배우 '강동원'이 주연이라는 점보다도 톱니바퀴처럼 치밀한 각본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이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업영화가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우리나라이지만 변변한 히어로물은 없었기에,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는, 대놓고 상업영화를 표방하는 '전우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죠.

여러 복선들이 날실과 씨실로 얽혀,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에서도 역시 그의 실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전형적인 구조를 탈피하기 어려운 영웅물이기에, 냉혹한 현실을 비웃는 지난 작품들과는 다르게 반전은 약하지만요.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는 기대하지 않았던 배우 '강동원'의 재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수로 가득찬 눈빛의 그가 능글맞은 날라리 도사 '전우치'을 능청스레 연기하는 모습에서, 단지 모델출신의 꽃미남 배우로만 생각되었던 그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연기력을 갖춘 차세대 주연급 배우의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죠.

'범죄의 재구성', '타짜'처럼 맛깔스러운 연기파 주조연들, '김윤석', '유해진', '임수정', '염정아', '백윤식' 등의 적절한 배치는 역시 최동훈 감독 작품임을 알 수 있었죠. 한국형 영웅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후속편이 기대되는 '전우치'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2/18 20:31 2010/02/18 20:31

2NE1 솔로 활동 중간평가

2009년 상반기를 지배한 여성 아이돌 그룹이 '소녀시대'였다면 하반기를 지배한 여성 아이돌 그룹은 '2NE1'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84년 생인 박봄과 다라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이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리고 다라, 박봄, CL&민지로 나뉘어 솔로 활동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중간 평가를 해보자.

Kiss(Feat. CL) - 산다라

산다라가 첫 솔로 활동을 보여준 점은, 2NE1의 인기의 50%이상을 차지한다는 그녀의 입지를 생각할 때 의외는 아니었다. 귀여운 외모 외에는 2NE1내에서 서브보컬로 그다지 두드러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 모 맥주의 CM송으로 만들어진 이 곡으로 산다라가 아닌 누가 불렀어도 무난했을 곡. 현상유지, 별점 3개.

YOU AND I - 박봄

2NE1으로 데뷔하기전 솔로 데뷔가 예상되기도 했던 메인보컬 박봄의 솔로 데뷔는 당연한 것이었다. 2NE1에서 메인보컬인 그녀의 역할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기에 솔로로서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그녀가 지향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폭발적이지 못한, 오토튠의 냄새까지 나는 보컬은 YG가 그녀를 솔로로 데뷔시키지 못한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유명무실, 별점 2개.

Please Don't Go - CL & 민지

old girl들인 산다라의 외모와 박봄의 보컬에 밀려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2NE1의 두 young girl의 프로젝트. YG도 각각 내보내기에는 뭔가 불안했는지 두 사람을 함께 내보냈다. 하지만 2NE1보다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리듬, 그리고 주로 랩을 담당하던 두 사람의 나쁘지 않은 보컬까지. 기대이상, 별점 3.5개.

2010/01/05 02:19 2010/01/05 02:19

아바타 (Avatar) - 2009. 12. 19

'타이타닉(Titanic)'으로 영화사에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Avatar)'.

수년전부터 제작 소식과 각종 추측이 무성했던 영황 '아바타'는 우선 기대보다는 우려가 매우 컸던 영화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무려 12년만의 신작이라는 점과 감독의 필모그라피에 새로운 행성을 그려낸 본작과 비슷하게, 바닷속 세상을 신비롭게 그려낸 '어비스'라는 작품의 실패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오랜 제작 기간이 작품의 뛰어남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너무 많은 정보가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다는 점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약 두 달전에 드디어 공식 예고편이 공개되었고, 지나친 우려를 잠재울 수 있었지만 마치 '온라인 게임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또 다른 논란이 되었죠. 그리고 드디어 이번주 17일 개봉하면서 전세계에 공개되었습니다. 추청 제작비가 최소 '3억 달러(최대 5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제작비답게 영화 내낸 보여지는 CG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아니, CG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요. 이미 2000년대 초반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 두 삼부작이 CG의 신기원을 만들어지만 두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상들이었는데 반해, '아바타'가 행성 '판도라'의 모습은 원색의 또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은 해병대 출신으로 작전 수행 중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아바타 프로젝트에 우연한 기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행성 '판도라'에서 외계종족의 몸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다시 '걷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트릭스'와 같은 거대한 가상현실처럼 '꿈과 현실'의 모호함에 고민하게 됩니다. 둘 다 현실이지만 외계 종족을 통해 겪는 체험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실이기에 꿈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하반신 불구라는 현실보다 외계 종족을 통해 겪는 꿈이 더욱달콤합니다. 외계종족의 이름이 우리말로 '나비'라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호접지몽'이 바로 제이크 설리가 겪는 모습인데, 호접지몽이 바로 '나비의 꿈'이라는 뜻이기에 한국인들에게는 영화 속 상황과 사자성어가 묘한 일치를 이루게 되죠.

올해 개봉한 '디스트릭트 9'에서도 그랬고 이제는 SF영화에서 지구인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아바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천명의 지구인 중 주인공(외계인 측 지구인 중 유일한 전투형?)과 양심적인 과학자들과 조종사 등 몇몇을 제외한 지구인의 사고방식, '자원을 위해서 협조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은 마치 미국의 최근 모습(이라크, 아프카니스탄)을 은근히 비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들은 미국인이고 장소만 지구에서 행성 판도라로 바뀌었을 뿐이죠.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나비 종족의 모습은 인류의 역사에서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그리고 북아메리카 인디안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족사회에 족장과 주술사, 제정분리로 이끌어가는 사회와 각종 의식들은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등의 부족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영혼의 나무를 섬기고 모든 생명체들이 이어져있다는 나비 종족의 사상은, 대지모 신앙과 샤머니즘, 물아일체 사상 등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부족이름에서는 토테미즘도 느껴집니다.

제목 '아바타(Avatar)'의 이중적 의미도 흥미롭습니다. 신이 인간의 몸을 빌려 현세에 나타나는, '화신(化身)'을 의미하는 본래 뜻이 최근에는 가상사회에서 자신의 분신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죠. 행성 판도라를 침략하는 지구인의 입장에서 인간과 나비 종족의 유전자를 조합하여 탄생시킨 아바타 프로젝트는 분명 가상사회의 분신과 마찬가지 입니다. 후반 영화에서 보여지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케릭터가 죽는다고 플레이어가 죽지 않듯이, 아바타가 죽는다고 그것을 조종하던 인간이 죽지 않는 것처럼요. 하지만 나비 종족의 입장에서 아바타 프로젝트를 통해 나타난 '제이크 설리'는 신이 현세에 나타난 '화신', 그 본래의 의미로 다가갑니다. 종족에게 닥친 위기에서 부족을 규합하고 종족을 구한다는 그들의 신화 혹은 전설처럼, 그리고 제이크 설리를 흔들리게하는 나비 종족의 '네이티리'의 증조할아버지처럼 말이죠.

나비 부족 연합을 무참히 괴멸시키던 침략자(인간)의 우세는 행성 판도라의 대자연이 보낸 짐승들의 공격에 의해 역전됩니다. 거대 초식동물들의 돌격은 우아하고 통쾌하며, 포식자 육식동물이 네이티리에게 꼬리를 내리고 교감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찡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행성 판도라의 모든 것들이 서로 공생하는 '공동체'임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죠.

역시 저도 지구인이지만 지구인의 대패가 이렇게 통쾌하게 느껴지니,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성공적입니다. 화려한 볼거리 외에도,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지구인에게 자연보호과 공생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다시 전하는 영화 아바타,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12/22 01:10 2009/12/22 01:10

캐스커(Casker) - Your Songs (EP)

네 번째 정규앨범 'Polyesther Heart', 이후 약 1년만에 다시 찾아온 '캐스커(Casker)'의 겨울 선물 'Your Songs'.

'Fragile Days', '정전기'같은 어쿠스틱 친화적인 곡들을 여럿 선보인 '캐스커'가, 올해 8월에 디지털 싱글로 선보인(역시 어쿠스틱 친화적인) '향'이 담긴 EP 'Your Songs'로 찾아왔습니다.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하지만 절대 어렵지 않은, 보컬 '융진'의 고품격 분위기와 어우러진 대중 친화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캐스커이지만, 그 음악의 완성도에 비해 대중의 관심은 정말 '잔인할 정도'로 낮은게 현실이었습니다. (뭐, 그렇기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찾아서 음반 리뷰를 쓰고 있겠지만요.)

첫곡 '창밖은 겨울'은 앨범의 시작부터 상당한 인상을 남기는 트랙입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미드템포에 일렉트로닉 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무엇보다도, '현실'과 '꿈'으로 구분되는 이중적인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현실 부분의 가사는 같은 파스텔뮤직 소속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 '그대는 어디에'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너의 자리는 없다고 스스로 다짐도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노래하는 '현실 부분'은 차분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삽입되는 꿈 속에서 만나기를 바라는 '꿈 부분'에서는 템포는 빨라집니다. 그리고 차마 현실에서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꿈에서 펼쳐집니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서글프게 들리지 않고, 소박하게 바람을 노래합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너의 자리는 없다고 했지만 흘린 눈물처럼 쓸쓸함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 밤에는 잠들지 못합니다. 꿈에서라도 주인공은 어느정도 위로를 얻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쓸쓸함이 잠 못이루게 하는 것일까요? 그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기 전에 노래는 시선을 '창 밖의 겨울'로 옮겨가며 끝납니다. 24일 저녁과 25일 저녁 사이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의 가사는, 짧지만 상당한 여백으로 여운을 남깁니다. 독백과도 같이 감정의 변화를 예측할 만한 장치들이 많지만, 직접적으로 감정을 언급하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 그렇고, 특히 마지막 가사 '힘없이 창문을 열면 겨울'은 '여백의 미'의 절정으로 다분히 '열린 결말'입니다. 창 밖에 '너'가 서있었을지, 아니면 주인공은 창 밖 커플들의 애정행각을 보면 그냥 그대도 쓸쓸했을지, 또 아니면 아니면 '겨울의 축복'이 주는 위로로 안정을 찾았을지.

'밤의 이야기'는 동양의 밤을 일렉트로니카로 표현하고 있는 트랙입니다. 신서사이저의 음색이나 피아노 연주, 마지막 박에 강조를 둔 세박자와 같은 '동양의 밤'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은 여러 크로스오버/일렉트로니카 계열 뮤지션들이 연장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캐스커는 '답습'에 그치지 않고 캐스커만의 색채를 입혀서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해냅니다.

아주 깊은 밤, 하늘에는 세상을 밝게 비추는 둥근 달이 떠있고, 그 달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주인공인 서있습니다. 청명한 신서사이저는 밝은 달밤의 이미지와 고즈넉이 쓸쓸한 주인공의 심상도 같이 들려줍니다.  '쿵쿵짝' 세박자에서 '쿵쿵'을 담당하는 에그쉐이크 소리는 발자국 소리를, 간간히 저 빠르게 흔들리 에그쉐이크 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를 연장시킵니다. 낭창낭창하게 부르는 '융진'의 목소리는 그런 고즈넉한 달밤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한 편의 시조 낭송처럼 들립니다. 여러 일렉트로니카 계열 뮤지션들이 그려낸 동양적 이미지는 서양인이 바라봤음직한, 실크로드 끝에 존재하는 황금으로 이루어진 도시나 한국의 단청이나 중국의 경극처럼 화려한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캐스커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화려함과는 먼, 어두운 달밤과 여백이 존재하는 담백한 수묵담채화라고 해야겠습니다.

앨범 제목과도 같은 'Your song'은 앞선 두 곡과는 다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오토튠의 힘으로 변화된 목소리가 그렇고. 역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감정했던 두 곡과는 달리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Your song이라는 제목에서 '너의 이야기'를 노래할 법했지만, 사실 가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바로 Your song인가봅니다.

이어지는 '향(Alternate Ver.)'는 이미 디지털 싱글로 공개되었던 트랙으로 음원이 아닌 음반으로 소장하고 싶은 팬의 마음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사랑의 동상이몽과 이별 후에 그가 남긴 '향'을 노래하는 이 곡은 아늑한 느낌의 제목처럼 가장 어쿠스틱한 소리와 감성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지난 '향' 디지털 싱글 리뷰를 참고해 주세요.)

그런 어쿠스틱한 느낌을 살려서 더욱 살려서 '향(Acoustic Ver.)'이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어있습니다. '향'이 가사부터 소리의 요소요소가 좋은 곡이어서 어쿠스틱 버전도 큰 기대를 했지만, 사실 조금 아쉽습니다. 어쿠스틱의 느낌은 더욱 충만해졌지만, 어쿠스틱 버전만의 그 이상을 기대했기에 아쉽다고 할까요? 더 욕심을 내어 보컬을 '융진'이 아닌 객원보컬을 기용해봐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이 곡에서 만큼은 융진의 보컬도 좋지만. '한희정'같은 조금 매마른 느낌의 보컬이었으면 또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어쿠스틱 버전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디지털 싱글로 기대했던 어쿠스틱 공연을 이렇게 음원으로 실연가능함을 확실하게 들려주고 있고, 최대한 조근조근한 융진의 보컬과 캐스커(이진오)의 코러스는 그윽한 향을 더욱 짙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간곡한 호소같은 융진의 목소리와는 달리, 한희정이 불렀다면 더 처절하게 들려주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어지는 트랙들은 캐스커 본연의 일렉트로니카에 좀 더 충실한 두 곡으로, 4집 'Polyester heart'에 실리지 못한 후보곡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듭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브라스가 흥을 돋우는 'Let it shine'은 EP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댄서블한 트랙입니다. '녹턴'은 약 50초의 짧은 연주곡으로 이어지는 'Pluto'의 전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luto'는 향의 어쿠스틱 버전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트랙으로 앨범 'Polyesther heart'에 수록된 동명의 곡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두 곡 모두 '녹턴'과 '너와 나'라는 피아노 연주의(너와 나에는 더 불어 두 사람의 짧은 가사가 있지만) 전주곡을 갖고있다는 점이 그렇고, 어떤 트랙들보다도 귀에 감기는 트랜스한 연주 위로 흐르는 이별 후에 되묻는 형식의 가사가 그렇습니다. 차가운 소리들이지만 그 속에서 온기를 놓치지 않는, 캐스커식 일렉트로니카를 좋아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하죠.

'Pluto'라는 제목 선택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Pluto, 플루토'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죽음의 신'의 로마식 이름(그리스식은 '하데스')이자, 태양계에서 행성으로 분류되다가 퇴출되어버린 비운의 '명왕성'의 영어 이름입니다. 가장 처음 가사가 '버려지기 전부터 보이지 않던 별'입니다. 지금의 명왕성의 처지를 가장 잘 의미하고 있는 구절이 아닐까 하네요. 태양계에서도 거의 최외곽에 위치하기에 지구에서는 관찰하기 힘들고(보이지 않던), 결국 행성의 지위를 잃은(버려지기 전부터) 명왕성이니까요. 그리고 그 의미가 죽음의 신, 끝을 의미하기에 '이별 노래'의 제목으로도 적절합니다.

'Your Songs'라는 왠지 푸근하면서도 서글픈, 양가감정의 제목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청자인 우리를 위한 곡들로 채워진 앨범임을 암시할 지도 모릅니다. 두 남녀가 앉아 다과를 즐기고 있는 간결한 자켓의 일러스트도 그렇구요. 이번 EP는 캐스커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작심하고 준비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12/19 14:50 2009/12/19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