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과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었던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데뷔앨범 'Instant Pig'.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봉할 만하지는 않지만, 100장의 앨범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라는 점은 큰 상징을 갖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일렉트로니카 역사가 짧다는 반증이 되지만, 그 극히 짧은 역사 속에서 100대 명반에 뽑힐 만큼 잘 만들어진 음반이라는 것이죠. 더구나 일렉트로니카 쪽에는 상당히 짠, 철지난 음악들을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은 나름대로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이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기에 그 매력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이 음반의 성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으로 '러브홀릭'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음악성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레이블 '플럭서스뮤직'의 대표 밴드가 된 점에서도 이 음반의 또 다른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식상했던 대중가요에 젖어있는 청자를 비웃기라도 하는 제목의 'You Never Know'를 시작으로 클래지콰이의 음악 세계가 시작됩니다. 가사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자 세 번째 트랙의 제목인 'Futuristic'을 외치는 것은 의도적인 장치였을까요? '내게로 와'는 호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Futuristic'은 음반 녹음에만 참여하는 또 다른 여성 보컬이나 남성 보컬 알렉스의 친누나인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영화에서 샘플링했다고 생각되는 인상적인 대사로 시작되는 'After Love'는 일렉트로니카와 접목된 클래지콰이식 발라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여유로운 일상을 노래하는 'Novabossa'는 제목처럼 보사노바풍의 트랙이고,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있는 'Sweety'가 이어집니다.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과 사랑스러운 가사는 제목처럼 달콤한 라운지를 만들어냅니다.
다시 크리스티나의 보컬과 그루브한 리듬이 어우러진 'Stepping out'에 이어지는 'Tattoo'는 제목처럼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기교가 상당한 호란의 기교를 절재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이 앨범 수록곡의 절반 이상의 곡에서 단독 혹은 공동 작사로 참여한(이 곡에서는 단독 작사) 호란의 작사 실력 또한 빛이 납니다.
스타일리쉬한 보컬과 트랜스의 느낌도 가미되어있는 'I will never cry'는 클럽 음악과 대중음악의 묘한 경계선 위를 지나고 '세련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한 축을 들려줍니다. 위태위태한 두 보컬의 '스타일'은 1집 수록곡들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되구요. 'Gentle Rain'은 말이 필요없는, DJ클래지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트랙입니다. 혹시 원곡이 외국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며 어쿠스틱으로 연주되는 멜로디와 수려한 보컬 듀엣,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가사는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또 다른 축인 '신선함'을 대표합니다.
'After Love'의 Extra Remix를 지나 'Flower'는 제법 무거운 비트와 어우러진 알렉스의 보컬의 보컬과 호란의 코러스가 빛나는 클래지콰이식 발라드의 연장선에 있는 트랙입니다. 두 여성 보컬의 매력을 각각 다시 한 번씩 느낄 수 있는 'Play Girl'과 'My Life'가 이어지고, 마지막은 보너스 트랙인 'Cat Bossa'가 담당합니다. 크리스티나의 보컬에서 앞선 트랙들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의외의 천진함을 들을 수 있고, 이는 고양이이 귀여운 소망이 담겨있는 가사와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Gentle Rain'에 이어 DJ클래지의 센스가 다시 빛나는 트랙입니다.
한 곡 한 곡의 완성도 뿐만아니라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잘 녹아들어서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세련됨'과 '신선함'을 적절히 배합하여 완성된 'Instant Pig'는 제목처럼 짧은 순간 즐기고 잊혀질 앨범이 아닌 오래 즐길 만한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클래지콰이'을 단숨에 대한민국 대표 일렉트로니카 밴드로 격상시켰구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니카와 라운지의 조용한 반란, 그 선봉는 클래지콰이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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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zziquai project - Instant P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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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두 번째, 방'이 발표되었습니다. 파스텔뮤직으로서는 본격 코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이미 '요조 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로서 시도해본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하고 할 수 있겠네요. 요조의 경우 앨범 발매 전부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공연을 함께하는 전략으로 입소문을 늘려가다면, 심규선의 경우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에 참여 후 함께 심규선의 이름을 걸고 연작 싱글을 발표하고 있으니,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첫 번째, 방'이었으니, 두 번째는 거실, 부엌, 욕실(?) 등등 중에서 나올줄 알았는데 두 번째도 '방'이라니 허를 찌르고 말았습니다. 혹시 대저택에 살아서 방이 여러개인 건가요? 자는 방, 옷방, 공부방, 놀이방 등등...?
지난 싱글 수록곡 '고양이왈츠'가 방처럼 따뜻한 '왈츠'였다면, 이번 싱글 수록곡 '부디'는 '방'이라는 공간의 다분히 개인적인 느낌처럼 슬픈 '발라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오케스트라, 기타 솔로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소리들은 에피톤 프로젝트답습니다. 지난 싱글에서 꼭꼭 숨어있던 에피톤 프로젝트가 그의 진짜 모습을 활짝 드러냈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심규선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에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객원보컬들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다분히 절재된 감정을 보여주었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들과는 다르게, 심규선의 이름을 달고 나온 '부디'에서는 감정의 기복을 확연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부디(feat. 심규선)'이 아닌,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이 될 수 있겠지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발라드이면서도 심규선의 또 다른 매력도 담겨있는 곡이 바로 '부디'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감탄사(오~)를 지나치게 남용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없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3연작의 마지막 '세번째, 방'도 기대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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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앵콜요청금지'를 비롯한 청승맞은 가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브로콜리 너마저'의 두 번째 정규앨범 '졸업'이 발매되었습니다.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가 발매된 후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는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목소리로 '브로콜리 너마저표 노래'의 '얼굴마담'이라고 할 수 있었던 메인보컬 계피가 탈퇴했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고 하는데, 그 후 그녀는 '우쿨렐레 피크닉'과 '가을방학'을 통해 꾸준한 음악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소속사와 결별하고 자체 레이블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설립했다는 점입니다. 2008년 '보편적인 노래' 발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해체에 대한 우려까지 들 정도였지만, 2009년 두 장의 데모를 발표하고 건재를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으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자정을 갓넘긴 이른 새벽 시간인 '열두시 반'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마지막 트랙의 제목이 '다섯시 반'인 점을 보면 이 앨범은 새벽의 약 5시간 동안 벌어지는 짧고도 긴 이야기가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습은 우리들의 쉽지않은 일상의 이야기이면서, 또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도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한, 길을 잃고 지쳐버린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계피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류지'는 계피보다 더 불안하지만, 새벽 열두시 반에 지친 목소리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타의 몽환적인 연주도 피곤하고 몽롱한 기분을 그려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이라는 긴 제목의 두 번째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변화를 알리는 서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메인보컬로 자리잡은 '덕원'의 목소리와 모던락의 성향이 그렇습니다. 뼈에 사무칠 듯한 외로움을 노래하는 가사는, 현실의 험난함과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한 점에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떠오르게 합니다.
'변두리 소년, 소녀'는 그런 변화들을 이어가는 트랙입니다. 시골의 소년, 소녀 혹은 소외된 소년, 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혹은 어느 글에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소설 속세엇 다 들을 수 없었던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에서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이미 수 차례의 공연과 데모로 공개되어 주목받았던 트랙입니다. 제목이 독특한데, 리더 덕원을 비롯한 멤버들의 대학교 강의의 제목이라네요. 제목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소통의 불일치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컬의 아쉬움이 두드려집니다. 메인보컬이지만 안정적이지는 못했던 계피의 탈퇴 후, 더욱 불안해진 보컬은 브로컬리 너마저의 최대 약점이었습니다. 이 곡의 라이브에서 덕원의 보컬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보컬을 필요하는 곡들을 쓰는 밴드가 아니기에 들을 만했죠. 하지만 녹음된 결과물에서 덕원의 보컬은 잘 부르려는 흔적이 오히려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요? 잘 부르려는 노력은 좋지만, 오히려 어색하고, 목소리의 흐름은 '오토튠' 사용의 의혹까지 강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다른 트랙들과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의 흐름, 목소리의 변두리를 가공한 느낌은 상당히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울지마'와 '마음의 문제'는 앞선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에 이어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던락 넘버들입니다. '이젠 안녕'은 데모로 공개되었던 트랙으로, 밴드를 떠난 누군가를 향해 들려주는 이야같은 느낌이 듭니다. '할머니'는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장수에 대한 욕심을 엄살스럽게 표현하는 모습과 덕원의 '할머니 성대모사'가 재미있는 트랙입니다.
'환절기'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사운드의 트랙입니다. 멤버들이 함께부른 보컬은 낮게 가라앉습니다. 수록곡들의 연주가 전체적으로 가벼운 모던락이나 팝락 분위기인데 반해, 이 곡의 무거운 연주는 좀 더 하드한 락들에 가깝습니다. 계절에 변화에 따른 사랑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런 계절의 변화를 좀 더 다른 의미로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나눈 계절, 그 계절과 계절 사이, 경계와 경계 사이 존재하는 또 다른 시간 환절기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 이념과 이념들...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를 노래하는 이 곡에서 어쩐지 'W'의 '경계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선 '환절기'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환절기'로 표현했다면, '졸업'은 그 경계의 끝을 '졸업'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환절기가 대학시절 정도라면 그 모호한 경계의 끝은 '대학교 졸업'이라고 할까요? '미친 세상에'라고 노래하듯, '짝짓기'나 '팔려가는'같은 살냄내새 나는 단어들의 선택은 현실에 냉소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 모습은 어른이 되었지만, 조금은 더 순순했던 시절을 잊지말자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졸업', 이 밴드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곡이라 의심이 들어서 조금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015B의 명곡 '이젠 안녕'을 염두하여 쓴 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 트랙은 수미상관을 이루는 '다섯시 반'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앞둔 청년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어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약 5시간 동안에 스쳐가는 짧지만 긴 이야기들,그런 지난 세상의 아픔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는 청춘을 위해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눈을 떠보면 찾아와 있을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용기가 됩니다. (CD에서 들을 수 있는 히든 트랙은 '다섯시 반'의 에필로그와 같은 트랙입니다. 라이브의 느낌이 졸업식의 마지막 합창 같습니다.)
EP '앵콜요청금지'와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에서 '청승맞은 가요'로 듣는이의 공감을 얻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가요보다는 모던락 성향이 강한 트랙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작의 앨범 제목과도 같은 수록곡 '보편적인 노래'에서부터 감지되었던 변화는 이번 앨범에서 뚜렷해집니다.(어쩌면 계피와의 결별을 염두해두었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기존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새로운 '브로콜리 너마저'를 만나게 됩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다운 재치와 감수성은 여전히 가사에 녹아있지만, 새로운 사운드와 불안한 보컬은 아쉽기만 합니다.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경계선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일까요? 아니면 '브로콜리 너마저표 음악'의 마지막이 될까요? 별점은 3.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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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작 살펴보기
2007년 제 18회부터 '싸이월드'와 함께 해온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21번째 본선 무대가 2010년 11월 20일, 작년과 같은 장소인 한양대학교 백남 음악관에서 펼쳐졌습니다.
총 10팀이 영광스러운 본선 무대에 올랐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6개 부문(작곡상, 작사상, 연주상, 가창상, 싸이월드음악상, 대상)에 대한 수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작년 본선 수상자들의 음반 소식이 아직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올해 또 다른 수상자들을 만난다는 점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과거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음반이라는 결과로 나오기까지, 수상 후에도 짧게는 2~3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작년 수상자들에 대한 기다림은 아직 이르겠죠. 그 기다림을 대신해 줄, 아니면 또 다른 기다림을 불러올 노래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 2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수상곡들을 살펴보죠. 소개 순서는 '순위'와는 무관합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홍보하는 곡들을 자주 접할 수 있죠. 그 멜로디를 평가하는 '작곡상'의 수상자는 남성 솔로 뮤지션 '김선욱'입니다. 기타 한 대와 어우러진 남성의 목소리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무난한 구성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그의 기타와 함께 들려주는 '길'은 기승전결의 구성이 뚜렷한 곡입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지향하는 '90년대 즈음의 싱어송라이터가 들려주는 가요'에 부합되지요. 그 기승전결 속에서 완급조절을 하는 기타연주보다 더 귀를 사로잡는 점은, 사실 '가사'입니다. 작곡상을 받은 곡에서 가사타령이 좀 우습지만, 진취적이고, 다분히 '삶에 대한 투쟁적'이라고 들릴 수도 있는 가사는 소위 '랩을 포함하는 힙합음악'에서 들었을 법합니다. 가사의 시작이 모두 명사(아침, 기차, 스무 살 역)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전리품'부터 '타협', '싸움'이나 '절대 가치' 등 보통 가요에서 들을 수 없던 단어들의 선택에서도 그렇습니다. '거라고, 남더라도', '모를 뿐, 바랄 뿐'이나 '나이, 묻지, ~는 지, 있을지'과 같이 다분히 라임(?)을 맞추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구요. 포크를 가장한 힙합이라고 할까요? 힙합 스타일로 리믹스되어도 재밌을 법하네요.
음원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다고 공연장을 찾았을 때, 그 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감동은 아마 아름다운 연주일 겁니다. 그 연주를 평가하는 '연주상'의 수상자는 혼성 4인조 '새의 전부'입니다. 피아노와 신디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젬베로 이루어진 이 4인조의 수상곡은 '흙에서 묻고 웃자'입니다. 구성악기에 젬베가 있는 점에서도, 제목에 '흙'이 들어가는 점에서도 '제 3세계 음악', 소위 '월드뮤직'의 향기가 예상됩니다.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풍경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나라의 북소리만큼이나 젬베의 푸근한 소리는 이른 아침 논두렁을 걷는 농민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을 그려냅니다. 기타 연주는 그 논 주위를 굽이굽이 사행하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맑은 피아노 소리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만들어내고 신디사이저는 자욱한 안개가 되어 공간을 채웁니다. 하지만 어떤 악기보다 인상적인 악기는 바로 여성 보컬의 목소리입니다. 가사를 풀어내는 목소리는 노래라기 보다는 악기에 가까운 소리가 되어 어우러집니다. '슬픔도 미움도 흙에 묻고...'라는 가사에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恨)'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들이, 이 팀의 이름 '새의 전부'라는 이름처럼, 하늘을 나는 새의 눈에서 제 3자의 시각으로 그려집니다.
노래 실력을 평가하는 '가창상'의 수상자는 남녀 혼성 2인조 'F#m7'입니다. 이름이 독특한데 포털 검색을 해서 찾아보면 어려운 운지법으로 악명이 높은 기타 코드 가운데 하나랍니다. 어려운 코드를 능숙하게 연주하듯, 실력을 뽑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남녀 혼성 2인조라는 점과 남성이 보컬을, 여성이 피아노를 담당하는 점은 작년 이 상의 수상자들과 일치합니다. 멋들어진 보컬의 목소리는 'Brown eyed soul'의 '정엽'이 떠오릅니다. '나의 일상'이라는 제목은 '박정현'의 '나의 하루'를 떠올리게 하구요. 피아노 연주위로 흐르는 그의 목소리는 멋진 째즈바의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합니다. 가창상을 받는 것은 당연했구요.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 가사를 평가하는 '가사상'은 여성 솔로 뮤지션 '이경원'이 수상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남녀 각각 솔로 뮤지션은 꾸준히 수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올해는 '작곡상'과 '작사상'을 가져갔네요. 떡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수필처럼 그려낸 가사는, 간결하지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습니다. 분위기를 바꾸어 할머니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떡 사이소, 떡 사가소'라는 소절은 짧지만, 굽이굽이 굴곡진 할머니의 긴 하루, 긴 인생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올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본선에 오른 팀은 10팀이고 상은 6개 부문이지만 수상팀은 5개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시 수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인기상'에 해당하는 '싸이월드음악상'과 으뜸에게 주어지는 '대상'이 혼성 3인조 '하늘'에게 돌아갔습니다. 하늘은 여성보컬 겸 피아노, 남성보컬 겸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젬베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작년 대상 수상팀 '둘이서 만드는 노래'도 젬베가 있었고 올해 '연주상'을 받은 '새의 전부'도 젬베가 포함되어 있는데, 인기상과 대상을 거머줜 이 팀에도 젬베가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실력을 기준으로 수상이 되었겠지만, 혹여나 '젬베=수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 밴드 이름과 동일한 수상곡 '하늘'의 피아노, 기타, 그리고 젬베가 어우러진 연주는 다분히 '월드뮤직'의 향기를 담고 있습니다. 밝고 진취적인 분위기는 '두번째 달'이나 'Alice in Neverland'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월드뮤직의 바탕에 남녀가 주고 받는 보컬과 가사의 자연친화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은 역시 'Bard'의 음악이 떠오릅니다. (Alice in Neverland와 Bard는 모두 두번째 달에서 분리된 밴드들입니다.) 작년 대상팀 역시 월드뮤직의 색채를 띠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로써 심사위원들의 기호가 노출된 건 아닐까 합니다. 대상을 위한 어떤 공식이 말이죠. 분명히 듣고 좋고 잘 만들어진 곡으로 인기상을 받기에 충분한 흡인력을 갖고 있지만, 대상으로서는 아쉽고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작사, 작곡, 연주, 가창의 모든 면을 보았을 때, 월메이드 가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네요.
수상하지 못한 입상팀들의 곡들도 분명 매력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요소에서 충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점, 기성 가요와는 다른 출전팀만의 매력이 부족한 점이나 확연한 인상을 줄 만한 임팩트가 부족한 점 등이 아쉽습니다. 이상으로 모든 수상곡을 살펴보았습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꾸준히 열리고 있지만, 일회성 이벤트의 이미지가 강한 점은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뮤지션들을 꾸준히 배출하지 못하는 점도 그렇구요. 무엇보다도 과거보다 줄어든 수상의 메리트(대표적으로 상금의 감소)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생업과 음악을 병행하는 숨은 고수들에게 출전 동기로서 부족해 보입니다. 일회성의 상금 지급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지속적인 지원이 그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음반제작 지원과 같은 후속 조치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수상자들이 전문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등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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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프니 메이어 - 이클립스 (Eclipse)
이 시리즈의 앞선 두 권, '트와일라잇(Twilight)'과 '뉴문(New moon)'의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인데, 이 시리즈는 뒷 쪽으로 갈 수록 점점 분량이 많아진다. 이클립스는 뉴문보다, 마지막인 브'레이킹던(Breaking Dawn)'은 이클립스보다 분량이 많다. 그만큼 읽는데 더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
뱀파이어보다 더한 탐욕의 '벨라'는 이번에는 어처구니 엄청 우유부단으로 독자를 짜증나게 하기에 충분하다. 뱀파이어가 되려는 욕망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에드워드)와 늑대인간(제이콥) 사이에서 우유부단과 둘을 모두 소유하려는 욕심은,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의 주인공보다도 멍청하고 파렴치하며 분노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진짜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면 '재앙'이나 다름 없겠지.
뉴문이 완결된 이야기가 이니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의 완결은 이클립스에서 만날 수 있다. 새로운 달(뉴문; new moon))으로 등장한 늑대인간 제이콥의 사랑이 '벨라의 태양' 에드워드를 가려서 일식(이클립스; eclipse)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말이다. 광기와 관련있고 늑대인간의 전설과도 닿아있는 달이기에 에드워드의 호적수로 등장한 늑대인간 제이콥은 새로운 달(뉴문)이기에 충분하다.
등장인물들은 예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판타지 소설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충분히 예측할 만한 전개(동맹)는 뻔하지만 나름 재미있다. 큰 이야기 하나는 마무리 되지만, 볼투리가의 재등장과 에드워드와 벨라의 계약은 마지막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제이콥의 시각으로 본 이야기는 외전을 예고한다. 이미 적으로 등장한 '브리'의 이야기로 '브리 태너'가 발매되었고, 작가가 작업 중단으로 선언한 ' 에드워드의 시각으로 본 트와일라잇 사가' 미드나잇선(Midnight Sun)'이 있는 점으로 볼때, 이 매력적인 늑대인간들의 이야기는 외전으로 충분하다.
브레이킹던은 어떤 의미의 제목일까? 이제 트와일라잇 사가의 마지막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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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팬미팅 in 11월 11일 클럽 타
팬미팅의 시작은 7시 30분부터였고 입장은 7시에 시작이었기에, 클럽 타 앞에 넉넉히 도착한 저는 근처 라멘집 '하카다 분코'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클럽 타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타에서는 리허설하는 소리가 들렸고, 식사를 하고 돌아왔음에도 줄을 서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7시가 가까워져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비도 내리고 번개도 치는 날이라서 혹여나 팬미팅을 포기한 당첨자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 7시 즈음에는 꽤 줄의 길이가 길어졌죠. 간단한 신분증 확인 후 입장이 시작되었고 가장 먼저 입장을 한 저는 맨 앞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볼 기회를 얻었죠.
드디어 팬미팅이 시작되었고 스크린이 올라갔습니다. 한희정의 사상 첫 팬미팅은 그녀의 새 EP에 실린 '어느 가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팬미팅이 시작되었죠. '더더 밴드'를 시작으로 '푸른새벽'을 거쳐 솔로활동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이런 팬미팅은 놀랍게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인디뮤지션들이 팬미팅을 가질 기회가 없기는 만찬가지겠죠.
이번 EP '잔혹한 여행'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팬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질문에 대한 대답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팬미팅 답게 그녀의 '첫사랑'과 '첫입맞춤'에 대한 이야기도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팬미팅을 놓친 팬들은 땅을 칠 만했죠. 추첨을 통해 세 명의 팬에게는 그녀가 직접 빼빼로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들인데, 그녀는 지구 멸망에 대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담으로 1시간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연 공연시간이 시작되었죠. 이번 EP는 '한희정 밴드'로서 밴드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이번 팬미팅 무대에 올라선 그녀는 혼자였습니다. 오랜만에 솔로 뮤지션 '한희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우리 처음 만난 날'은 팬들과 함께했고, '솜사탕 손에 핀 아이', '잔혹한 여행'으로 팬미팅은 끝났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팬미팅이었고, 그녀의 두 장의 EP '끈'과 '잔혹한 여행'에 자필 사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홍대 나들이였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팬미팅 영상은 예스24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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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 유년에게
감성 모던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네 번째 정규앨범 '유년에게'.
사실 '파스텔뮤직' 합류 이전의 재주소년은 저에게 관심 밖이었습니다. '재주소년?, 재주를 넘는 소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성보컬을 편애하고 해외보다 국내 남성보컬은 더더욱 관심이 없는 제 음악적 취향에서 '소년(국내 남성보컬)'은 당연히 가까워질 수 없었죠. 하지만 '스위트피(김민규)'와 함께 파스텔뮤직으로 영입되고, 컴필레이션 앨범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주소년'의 음악을 엿볼 수 있게 되었죠. 신곡 '농구공'과 요조가 다시 부른 '귤', 두 곡을 통해서 재주소년에 대한 다시 보게 되었죠. 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 느껴지는 '농구공'에서는 이승환의 '덩크슛'이 생각나기도 했고, 요조가 재주소년과 함께 다시 부른 '귤'에서도 새콤달콤한 귤처럼 상큼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노래로 풀어나가는 재주소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정규앨범이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은 '박경환'과 '유상봉', 남성 이인조의 모던 포크 듀오입니다.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이 밴드가 처음 '문라이즈레코드'로 데모 테잎을 보냈을 당시 제주도에 있었는데 제주도 소년을 의미하는 '제주소년'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름을 짖기는 민망해서 살짝 바꾸어 '재주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재주소년이 들려주는 유년에 대한 오마쥬, '유년에게'가 시작됩니다.
첫 곡 '밤새 달리다'는 오래된 카세트 테잎을 듣는 기분이 독특한 인트로로 시작됩니다. 가사는 상당히 자전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느낌의 가사입니다. 두 사람이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고 해야겠네요. '밤새 고속도로를 달린다'라고 상쾌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조금 비틀어 보면 두 남자가 '밤새 술로 달린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까요? 술로 밤을 지새우며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가 펼쳐질 지도 모르죠. 어떻게 달리든, 밤새 달려온 그 끝에서 유년에 대한 향수가 펼쳐집니다.
'소년의 고향'은 그 유년에 대한 향수를 시작하는 트랙입니다. 제목 그대로 고향에 대해 노래하고 있고 이 밴드의 이름의 유래가 된 '제주'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경환이 시작한 제주 이야기는 시작되는 노래는 왠지 구수한 느낌의 상봉이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로 잠시 눈을 돌립니다. 다분히 회상적인 앨범의 분위기에 이 곡도 일조하면서 두 멤버의 출신에 대해 엿볼 수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하며 제주도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가사는 마치 제주도 관광을 홍보하는 CM송처럼 들립니다. 제주도 관광 공사는 재주소년을 섭회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요?
'미운 열두살'은 경쾌한 멜로디와 재밌는 가사가 절로 미소를 만드는 트랙입니다. 열두살 여동생의 이야기를 오빠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가사는 여동생을 둔 오빠라면 한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합니다. 천방지축 여동생이지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가사는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재주소년 음악의 매력이 담겨있습니다. 째즈풍의 분위기있는 연주와 흥겨운 가사의 묘한 어울림은 이 곡의 매력을 더합니다.
앨범 제목과 동일한 '유년에게'는 유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밤새 달리다'에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곡에서는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평온한 수면 위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져갑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농구공'은 90년 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히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필자나 재주소년의 두 멤버와 같이 20대 후반의 남자라면 겪였을 이야기들이 담겨있죠. '패닉'의 '달팽이'를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농구'라는 소재난 슬픈 사랑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는 가요와는 다르게 밝은 가사는 '이승환'의 '덩크슛'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농구라는 소재는 90년대를 한국 소년 만화계를 휩쓸었던 '슬램덩크'의 향기도 담겨있습니다. 가수와 만화가가 되겠다는 두 친구도 바로 90년 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만화'와 '가요'에 대한 그리움을 슬며시 드러내구요. 간결한 기타리프는 코트 위를 가르는 드리블 소리와 겹쳐집니다. 바로 '이것이 웰메이드 가요'라고 불러도 될 만큼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동안'은 성장기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트랙입니다. 출생(소년의 고향)을 시작으로 유년기(유년에게)와 소년기(미운 열두살)를 지나 청소년기(농구공)를 거친 화자는 사춘기의 마지막을 지납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함께 가슴아픈 풋사랑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아려한 그리움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남성 듀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서정성을 바로 재주소년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파스텔뮤직에서는 남성 뮤지션과 여성 뮤지션의 코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손잡고 허밍'도 그런 정책(?)에 따라 '요조'와 함께하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노래이기에 풋풋한 연애감정에 슬며시 미소짓게 만듭니다. '봄이 오는 동안'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드디어 봄이 와서 '혼잡고 허밍'을 하나봅니다. 따뜻한 봄날의 밤에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연인과 함께라면 꼭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Beck'은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믹싱의 연주곡입니다. 제목처럼 뮤지션 'Beck'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네요.
'비밀의 방'은 몽환적인 소리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꿈 속에서 들여오는 듯한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비밀의 방'이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의 제목과 의미심장한 가사는 11월 27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는 밴드의 미래와 맞물려서 곱씹어 보게 합니다.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숨겨진 바다', '머나먼 바다'는 이 밴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를 연상시킵니다. '지쳐있는 내가'는 재주소년으로 서 지금까지 온 두 멤버가, '잠시 지켜만 볼게'는 재주소년의 기약 없는 휴식이 대응됩니다. '비밀의 방',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지금껏 미뤄온 각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겠죠. 의미를 생각하면 다분히 쓸쓸합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런 쓸쓸함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주소년의 끝을 안타까워하는 청자의 마음이 그런 쓸쓸함으로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쓸쓸함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비밀의 방', 이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꼽고 싶습니다.
'머물러줘'와 '솔직, 담백'은 모던 포크 듀오답게 포크에 충실한 트랙들입니다. 연인에게 속삭이듯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들이 떠오르네요. 마지막 '춤추는 대구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락킹한 트랙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인 대구에서, 뜨거운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는 뜨거웠던 시절에 대한 노래이구요.
'유년에게', 유년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2002년에 시작된 '재주소년'의 긴 여정,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년적 감수성'의 기록도 여기까지이구요.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에게 건투를 빕니다. 앞으로 각자 소년적 감수성을 들려주기를, 그리고 잊을 만하면 가끔 다시 재주소년으로 찾아와 주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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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왈츠 -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파스텔뮤직의 신예 뮤지션 '심규선'의 첫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 정규앨범 '유실물 보관소'에 객원보컬로 참여해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파스텔뮤직의 신인 '심규선'이 그녀의 첫 싱글 '첫번째,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심규선이라는 이름은 아직 귀에 익지 않은데, 그녀의 약력을 살펴보면, 밴드 '러브홀릭'이 보컬 '지선'의 탈퇴 이후 새 멤버 영입을 위해 연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뮤지컬 '마법사들'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러브홀릭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이기에 1위를 하고도 멤버로 영입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에피톤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녀와 저는 이렇게 음악으로 만나는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앨범 '유실물 보관소'에서 '선인장'과 '오늘', 두 곡으로 절제된 감성과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멋진 조합을 보여주었죠. 앨범 제목은 '첫번째, 방'이지 수록곡은 '고양이왈츠'뿐인(물론 어쿠스틱 버전이 따로 있지만) 이번 싱글에서도 탁월한 조합을 이어갑니다. 바로 크레딧을 보면 작사/작곡 및 프로듀싱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양이왈츠'는 제목처럼 왈츠의 느낌을 살린 세 박자의 곡입니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고양이의 걸음처럼, 왈츠의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스타카토의 키보드 연주는 그 사뿐함을 더하고, 퍼커션과 아코디언은 마치 놀이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아코디언의 음색은 언제나 아련한 어린시절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실물 보관소'의 두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사랑에 대한 수줍음과 설렘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심규선의 목소리도 역시 매력적이구요.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더욱 담백한 느낌의 그녀를 들을 수있습니다. 단촐한 기타 연주는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씨라면, 은은히 흐르는 현악은 수줍은 그녀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기타와 현악의 조합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모습도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왈츠의 세 박자에 아코디언 연주와 고양이까지, 모두 '봄'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들인데 이 싸늘한 가을에 발표된 점은 의외입니다. 의도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싱글 제목인 '방'에 있을 법하네요. 방의 아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겠죠. '첫 번째'는 이 싱글의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싱글 시리즈의 첫 번째를 의미하겠구요. 센티멘탈 시너리와 타루의 조합에 이어, 심규선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가 되네요. 더불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심규선의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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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잔혹한 여행
가끔 공연하기로 유명했던(악명 높았던?), 그래서 단독 공연이 열리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푸른새벽'의 해체 이후, 듀오 때와는 전혀 다르게도 꾸준한 솔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한희정'이 새로운 EP '잔혹한 여행'을 '어느 가을'날에 발표했습니다. 2008년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2009년 EP '끈'에 이어 올해 2010년 EP '잔혹한 여행'까지 3년 연속으로 앨범을 한 장씩 발표하는 기대이상의 왕성한 모습은 팬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지난 EP '끈'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여행'도 어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법합니다. '끈'이 '인연의 끈'에 대하 노래했다면 심각한 느낌의 제목 '잔혹한 여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자, '가이드 한희정'의 안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해 봅시다.
첫 곡은 '어느 가을'입니다. 이 EP가 발매된 '어느 가을'을 의미하면서도 이 EP 속 이야기의 시점인 '어느 가을'을 알려주는 제목입니다. 어느 가을날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덕수궁 돌담길 아래서 예정된 이별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의 발거음처럼 쓸쓸합니다. 길게 '서있다', '불었다'라고 쓸쓸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리의 낙엽들도 날려버릴 만큼 쓸쓸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시작됩니다.
앞선 곡에서 기대한 쓸쓸함을 날려버리듯, 이어지는 '입맞춤, 입술의 춤'은 매우 경쾌하게 흘러가는 트랙입니다. 입맞춤을 입술의 춤으로 의인화한 그녀의 기지가 재밌습니다. 간주에서 들리는 그녀의 애드립은, 이전의 그녀의 곡들과는 다르게 키치적으로 들려오네요.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는, 두 사람의 시공간이 포개어지면서 만들어진 그 '춤'이 얼마나 격렬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춤의 현장은 과거형으로 그려지고 있어 회상의 일부분임을 암시합니다. 또, 포개어진 시공간이 다시 나뉘어지듯, 이 순간도 언젠가 나뉘어지고 우리들의 내일도 다시 흩어질 것이라는 담담하면서도 슬픈 예감이 동반됩니다. 그 짧은 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그 춤을 다시 출 수 없음을 예감하게 하네요. 참으로 역설적인 곡이 아닐까 하네요.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그녀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앨범 발매 기대곡'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에서보다 부드럽고 가볍게 '순화하여'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좀 아쉽습니다. 나쁜 여자가 되어 이별을 일방적인 통보하는 듯한 느낌의 이 곡은 더 무겁고 거친 느낌이 나게 녹음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반추' 역시 공연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트랙입니다. 상당히 잔잔한 곡이기에 앞선 곡과는 다르게 비슷한 느낌으로 녹음된 것으로 들리네요. 심오한 가사는 이별을 불러오는 오해에 대한 가사처럼 들리기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카더라 통신'에 대한 풍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은 6박자로 절제와 격렬함을 모두 갖춘 무도곡 같은 트랙입니다. '입맞춤, 입술의 춤'처럼 '한희정식 비유법(?)'이 다시 느껴지는 제목으로, 사랑을 여행, 특히 '잔혹한 여행'에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 여행같던 사람이기에 여행처럼 시작되어 또 여행처럼 떠날 수 밖에 없고, 모든 여행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이별)에 가까워지기에 사랑은 잔혹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됩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무도곡 중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절망을 향해 내딛는 무도곡 같습니다.
'드라마'는 그녀의 데뷔앨범 '너의 다큐멘트'에 실리기도 했던 트랙인데 EP에서는 Band version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풍성한 밴드 연주와 어우러진 맑은 피아노 연주는 이 곡에 풍부한 소리의 질감을 더합니다. 공연으로 듣다가 막상 음반으로 들으면 언제나 뭔가 빠진 느낌처럼 허전했던 원곡과는 다르게, 전신을 감싸는 느낌의 풍부함이 좋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트랙은 놀랍게도(!)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언제나 기타와 함께하는 그녀의 앨범에 피아노 연주곡이라니 의외이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연착'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앨범 타이틀 '잔혹한 여행'과의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연착은 과연 어떤 연착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는 시작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연착일까요? 아니,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기에 그 여행 사이에 연착은 아닐까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공항에서 사랑이라는 비행기이 뜨고 내리면서 생기는 연착...사랑과 사랑사이,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텅빈 공항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의 '가이드 한희정'이 안내하는 '잔혹한 여행' 패키지를 마치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어떠셨는지요? 지난 EP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는 더욱 좋아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러브레터'와 같이 짠하게 마음을 적시는 트랙이 없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네요. 이번 EP로 그녀의 셋리스트 선택폭은 더욱 넓어졌을테니, 그녀의 공연들도 기대해봅니다. 내년에는 2집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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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프니 메이어 - 뉴문( New Moon)
트와일라잇 사가의 본편에 해당하는 4부작('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 그리고 '브레이킹던')은 이미 작년에 한꺼번에 구입하여, 작년에 읽은 트와일라잇을 제외하고는 책장에서 독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더. 오랜만에 그 두 번째 이야기 '뉴문'을 꺼내들어 읽었다.
트와일라잇이 주인공 '벨라 스완'과 뱀파이어 남자친구 '에드워드 컬렌'의 만남부터 고난 그리고 사랑의 확인까지 서장이라면, 뉴문에서는 전작에서 쑤려두었던 떡밥들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전작에서 인디언의 후손 '제이콥 블랙'이 벨라에게 들려주었던 '늑대인간'과 '냉혈족(뱀파이어)'의 전설이 현실화 되면서 포크스에는 새로운 갈등이 생겨난다. 전설처럼, 월야환담 시리즈나 언더월드 시리즈처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과 뱀파이어라는 두 사람의 관계에는 위기가 찾아오고, 제이콥이 늑대인간이 되면서 삼각관계와 비슷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무서웠던 점은 바로 벨라라는 인간이었다. 얼마나 무모하고 대담하고 탐욕적일 수 있는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특히 불사를 얻기위해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벨라의 탐욕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어쨌든 전작의 떡밥 중 늑대인간 떡밥이 드러나지만 가장 중요한 떡밥, '앨리스'가 본 '벨라의 미래'는 '볼투리 일가'와의 불편한 조우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된다. 수 천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재미을 읽어버린 늙은 뱀파이어들조차 흥미로워하는 벨라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을까? 뉴문에서도 그 떡밥만은 확인시키지 않으면서 종결나지만, 볼투리 일가와의 약속으로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제공한다. 더불어 아직 끝나지않은, 벨라를 노리는 '빅토리아'와 벨라를 지키려는 늑대인간들과의 싸움도 남아있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시리즈'에 비교하다면, 트와일라잇이 스스로 종결할 수도 있는 1편이었다면, 여러 사건들이 미완결로 끝나는 뉴문은 3편 '레볼루션' 없이는 종결될 수 없는 '리로리드'랄까? 빨리 다음 이야기 '이클립스(Eclipse)'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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