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일간의 폭풍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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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책의 제목과 홍보 문구에 이끌려 사게 된 책.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사랑’의 프로듀서로, 다큐멘터리에서 다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방영 당시 화제가 되었다는데 어느 정도였을까?  과학다큐멘터리였기에 ‘과학의 눈으로 본 사랑’임은 피할 수 없다.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사랑은 단지 화학작용’일 뿐이라고 이 책 역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단순한 화학작용들의 ‘파급효과’에 대해서 더 많이 들려준다. ‘북경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뉴욕에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단순한 뇌 속의 화학작용이 삶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수 있다.

단지 과학다큐멘터리가 아닌 ‘감성과학다큐멘터리’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였던 ‘사랑’. TV를 통해 대중에게 보여주는 내용으로는 적절하지만, 더 많은 궁금증을 품은 독자들에게는 좀 그 깊이에서 아쉽겠다. 감성 쪽으로도 과학 쪽으로도, 전문가들의 조언이 좀 많을 뿐 ‘깊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나, 사랑을 잃은 사람들 모두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일은 괜찮은 경험이 되겠다. 처음으로 찾아올 사랑이나,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나, 다시 찾게 될 사랑을 위해서.

다음은 이 책에서도 인용한 한 구절로,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글이 아닌가 한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끊임없이 사랑해라. 그것이 빗나간 사랑이라 해도, 사랑해서는 안 될 대상이라 해도 좋다. 아예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올곧은 삶보다 죄로 가득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면서 엇나가는 삶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 윤구병


그렇다지만 이젠 빗나가지 않은, 사랑해도 좋을 대상과의 사랑을 꿈꾸어본다. 모두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이 가슴 시리게 하지 않는,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2007/04/23 19:31 2007/04/23 19:31

에쿠니 가오리 - 마미야 형제

열심히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 중 가장 최근에 국내에 발매된 '마미야 형제'. 일본에서는 2004년에 출판된 작품이고 이번달에 동명의 영화도 국내에 개봉한다고 하니, 영화에 맞춰서 부랴부랴 번역되었나보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미야 아키노부'와 '마미야 테츠노부'라는 '마미야'가(家)의 두 형제 이야기를. '남성'을, 그것도 '두 명'이나 전면에 내세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인 듯하다. 작가는 연애에 번번히 실패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너무 비참하지도, 너무 우습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은 안타깝고 처연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답게도 두 형제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써왔던 그녀이기에, 두 형제를 중심으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들도 들려주고 있다. 남자 친구와 뜨거운 데이트(?)를 즐기는, '혼마 나오미'와 '혼마 유미',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혼마'가(家)의 두 자매나, '아키노부'의 직장 동료 '오오카키 켄타'의 부인 '오오가키 사오리', '테츠노부'와 같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동료교사와 부적절한 관계 중인 '쿠즈하라 요리코' 등... 아마도 주변 여성들의 '타입(?)'은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한 번 쯤은 나왔을 법하다. 역시 '불륜'은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소재이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은 소설이랄까? '어른의 고독'이 담겨있고, '어른의 좋은 점'도 담겨있다. 어른이기에, 어렸을 때 창피했던 일들을 이젠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만큼 고독하다. 어른이기에.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것일까?

적지 않은 나이, 30대가 되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서로 취미를 공유하고 부대끼며 사는 '마미야 형제'. 정상적인 결혼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무렵부터 일관되게 짝사랑만 해왔다. 상대의 이름을 지금도 나열할 수 있다. 어떤 애였는지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이런저런 씁쓸한 경험들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한 예로, 복도에 붙여 놓은 학교행사 사진들 중에서 원하는 사진의 번호를 종이에 적어 신청하게 했는데, 아키노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의 사진을 한 장 사려고 했다.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곁에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졌는지, 아키노부가 본인이 찍히지도 않은 사진을 사려고 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에 퍼져, 사진의 주인공에게 항의를 받았다. 거센 항의였다. 그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주위 여자애들은 동정했다. 정작울고 싶은 쪽은 아키노부였는데.
2007/03/17 15:49 2007/03/17 15:49

일곱 빛깔 사랑

'일본의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모았다는 책, '일곱 빛깔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있다는 점도 구매한 이유이지만, 아직 모르는 다른 일본의 여성 작가들의 글이 궁금하기도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드라제'.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그녀의 소설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드라제'는 중년과 청년, 두 다른 나이대의 여성의 시각에서 회상하는 형식이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회상에 잠겨드는 두 사람, 나이대가 다른만큼 사고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려한 것일까? 적어도 그녀의 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역시 중년의, 현재의 그녀는 '쿨'하다.

'기쿠다 미쓰요'의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 현재 36세가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 셋 중 한 친구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회상이다. '외도'는 일본 여성 작가들의 단골 소재일까? '에쿠니 가오리'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다음에 나올 몇몇 글도 그렇고 '외도'의 관한 이야기다. 화자의 '유부남과 연애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다. 유부남과 연애하기에 골든위크, 연말,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함께 할 수 없고, 결국 '연애 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런 날을 함께 보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연애' 대한 짧은 생각이 담겨있다. '연애 동맹'이라는 이름이지만, 그 두 친구의 관계도 '연애'가 아닐까? 꼭 이성과만 '연애'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이노우에 아레노'의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 역시 '외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주관심사는 아니다. 부인의 외도와 결국 헤어지기로 한 부부, 그 둘이 헤어지며 부인이 짐을 싸서 나가는 날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수년 만에 기록적인 강우는 부인의 발목을 잡는다. 남편에의해 구조된 옆집 고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부부의 죽은 고양이, '테르'는 대신할 수 없듯, 두 사람의 사랑은 변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니무라 시호'의 '이것으로 마지막'. 이 글도 '외도'와 약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처럼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작가의 나이가 적어도 30대나 40대일텐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치(bitch, 소설 속 그대로의 표현)'들의 이야기를 꽤나 재밌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우습거나 그런 이야기만은 아닌, '관계'와 '성장'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거 할까? 성장통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과 그런 성장통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계의 종말. 좋아하는 친구와 멀어지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후지노 지야'의 '빌딩 안'.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인 '일곱 빛깔 사랑'에 어울릴 만한 '정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 관계'의 한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옮겠다. 거리에서 우연히 묘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보게된 주인공이 그를 같은 빌딩 안의 다른 회사 직원임을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어떤 '시시한 연애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하지만 시시하다기보다는 소박하도 해야겠다. 이 후에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냥 친구가 되었으려나.

'미연'의 '해파리'. 작가의 이룸이 심상치 않은데, 책 앞쪽의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역시나 한국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글이 상당히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같다고 할까?

'유이카와 케이'의 '손바닥의 눈처럼'. 드디어 '진짜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애인 '료지'의 한 순간 실수를 참지 못하고 1년 후에 만나자고 한 주인공 '나오'와 료지와의 하룻밤 불장난을 한 애인 '다에코'을 보낸 '슌스케', 한 달의 한 번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에 대한 담론들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자의 입장, 여자의 입장, 아마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눈에서 멀어지면 역시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 끝을 만날 때 까지의 끊임 없는 탐색, 그것이 진짜 '연애의 본질'일까? 그래도 가장 훈훈한 결말을 보여주는, '순백의 사랑'.

정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하나가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해파리'는 좀 난해한 점이 있어서 읽기 힘들었지만.) 이제 에쿠니 가오리외에 다른 일본 여성 작가들의 책도 하나 하나 찾아 읽어볼까? 결국 시간의 문제인가? 독서도, 연애도.

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는 잘 나가는 컴필레이션이나 샘플러를 찾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쩌면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곱 빛깔 사랑'같은 '컴필레이션'이라면 일본 소설 입문자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일인지, 그때 나오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모든 것은 아마도 이 손바닥의 눈처럼 녹아버리고 말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면.
2007/01/30 22:00 2007/01/30 22:00

묵향 22권 : 폭풍전야

지난해 3월에 21권이 나오고 약 10개월 만에 나온 22권. 정말 너무 오랜만에 나오니 이전에 자세한 내용들이 생각이 날 듯 말 듯하여 읽기가 힘들더군요. 그래도 빨리 읽어버렸습니다. 궁금해서 미루어둘 수가 없지요.

'폭풍전야'라는 제목처럼 작가가 20권대 초반에서 끝낼 마음이 없는지 무슨 일을 여러개 벌리려나 봅니다. 역시 묵향의 대활약상은 나오지 않고 여러 사건 전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네요.

아르티어스는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다시 나타났으니, 또 뭔가 큰 일이 벌어지겠죠. 22권 끝에서 아르티어스와 만통음제가 만나는데 과연...

그나저나 예스24는 무슨 배짱인지 2천원 추가적립금 기준도 5만원으로 늘었고, 신간의 배송도 늦네요. 음반과 DVD도 함께 살 수 있어서 예스24를 주로 이용하는데 조만간 바꾸던지 해야겠습니다.

읽을 책들이 밀렸는데, 신간에 눈이 돌아가니 책이 자꾸 쌓이네요.
2007/01/24 18:32 2007/01/24 18:32

W. 워런 와거 - 인류의 미래사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W. 워런 와거(Walter Warren Wager)'의 저서 '인류의 미래사'. 부제는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고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원제를 직역하면 '미래의 짧은 역사'가 된다. '미래의 역사'라니. '역사(history)'는 원래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나. 미래(future)와 역사(history)가 같이 쓰여있는 제목이 좀 어색하다.

미래학 저서라고 할 수있는 책이지만,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미래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22세기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20세기 말부터 현재(22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 사이사이마다 편지, 일기, 서신 등의 그럴싸한 글들을 수록하여 각 시기에 살던 소시민의 삶도 조명하고 있다. 마치 범지구적인 '심시티(Simcity)'를 하면서 중간중간 '심즈(Sims)'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할까?

작가의 예상 혹은 예언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단순히 사회학적인 시각 뿐만아니라,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미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한다. 나처럼 잡학다식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땡길 만한 구성이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만만하지 않은 양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이 쓰여진 때가 1989년 이후에 두번의 개정이 있었다는데, 2007년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맞다 싶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예상보다 세계는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 변화는 시간이 더 지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미래세계는 분명히 매혹적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꿈꾸었을 법한 일들이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한다. 과학의 발전에 힘 입어,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진다. 자유, 그 날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제 3차 세계대전을 치룬 뒤, 등장하는 '세계 국가'와 세계 국가의 붕괴 후 등장하는 '자유의 시대'. '통합과 분열', 세계는 이 두 단어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게 아닌가한다. 현재는 아직 분열의 시대지만 UN, EU, NATO 등 국경을 초월한 단체들이 등장하여 통합을 꿈꾸고 있다. 과거에 칭기스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대제국을 꿈꾼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오래 못가 와해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덕이란 알 수가 없다.

21세기와 22세기에 등장하는 유토피아(Utopia)에 가까운 모습들. 과연 지금의 인류가 그렇게나 빨리 그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세계의 변화'와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인류의 가장 '핵심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작가가 예상하는 것처럼 빨라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도 엄청나게 빠른 변화 속에 살고있지만, 책 속에서처럼 정말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는 멸망이 먼처 찾아올 듯도하다.

멸망보다는 발전과 진화를 선택한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실패와 위험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대해 아주 작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453쪽 "엄마......죽음......복제......안 돼."라는 미지의 외계에서 온 (해독된) 신호를 들려준다. 텅빈 공간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미래에서 온 경고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구, 즉 'gaia'를 복제는 인간 복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화석연료의 고갈, 국제 분쟁 등으로 인류에게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진화하느냐 혹은 멸망하느냐. 과연 인류는 그 운명의 기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 상황으로만 봐서는 후자에 가까워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 대한 옮고 그름의 판단은, 100년 후에 혹은 200년 후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과연 그 때 이 책이 '위대한 예견'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헛된 몽상'으로 남을 것인가? 전자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

2007/01/17 15:38 2007/01/17 15:38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30대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

난 20대다. 난 남성이다. 난 연애하지 않고 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30대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이현'이라는 이 책의 작가도 모른다. 사실 광고문구나 책 표지에 끌려서 산 점도 없지 않다. 표지와 책 속의 일러스트는 만화가 '권신아'의 작품이다.

도시적 느낌과 인터넷 시대의 문화가 글 곳곳에서 들어나 읽기는 수월하고 재밌다. 주인공 '오은수'와 그녀의 단짝 친구들, 그리고 그녀들을 스쳐가는 남자들의 이야기. 30대 도시인들의 삶, 어쩌면 한국판 'Sex and the City'라고도 할까?

아둥바둥 잡으려하는 것은 놓치고, 목표하지 않았던 것들은 일어난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흘러가는 수 밖에.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하나보다. 30대에서도 그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성장이 끝나지 않은 만큼 결말도 나름대로 '쿨'하다. 역시 요즘은 '쿨'이 대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쿨'인 걸까?

추천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때우기로는 부족하지 않다.

2007/01/13 17:18 2007/01/13 17:18

한젬마 - 화가의 집을 찾아서

1999년에 발매되었던 '그림 읽어주는 여자'와 2001년에 발매된 속편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이 후, 정말 오랜만에 출간된 '한젬마'의 책 '화가의 집을 찾아서'와 '그 산을 넘고 싶다'. 구입할까 망설이다가 두 권을 세트로 구입하면 적립금도 각각 구매할 때보다 높기에 '반충동구매'식으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월야환담 창월야' 등과 함께 구입했던 책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을 하루도 안걸려 다 읽은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조금씩 읽다보니 한 달도 더 걸렸다.

'한국미술에 관한 입문서'같은 책이다. 그렇기에 한 작품에 대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작가들의 인생이나 미술관 등을 지루하지 않게 재조명하고 있다. 미술이나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시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미술에는 문외한(門外漢)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신선한 내용이 될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나무와 두 여인'을 그린 '박수근' 화가나 '초충도'를 그린 '신사임당'의 인생에 대해 읽는 기회가 흔하겠는가?

아직 두번째 책 '그 산을 넘고 싶다'를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우리미술'에 대한 '자부심'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수치심'이었다. 그 '수치심'은 다름아닌, 현재 한국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문화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매일 정부와 언론은 '문화강국'을 외치고, 모두들 '문화인'인듯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정작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는 그리 소홀한 것일까?

유명작가와 작품이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까? 유명작가가 탄생하기까지 문화에 대한 인식과 문화 활동에 대한 지지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어찌 우리나라는 '베짱이의 노력'으로 '개미의 성과'를 이룩하기만을 바라고 있을까? 눈 앞에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천대되던 미술을 비롯한 문화의 힘이 21세기에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한국이지만, 이 책을 보면 '알았다는 것'을 결코 알았다고 할 수 없겠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앎은 가치가 없으니까.

지역 개발을 이유로 동네 주민에게까지 위협받고 있는 한 작가의 생가를 보면서 안타까울 뿐이다. 옛날의 업적이나 외국의 업적만을 좇을 뿐, 현재의 그리고 우리의 업적을 만들어나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후대에 빈약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20세기, 21세기에 한국에 살았던 세대의 무지와 몽매함을 얼마나 비웃을까?
2006/11/10 04:59 2006/11/10 04:59

에쿠니 가오리 - 초록 고양이, 천국의 맛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中)

첫번째 '손가락'에 이어지는 이야기 '초록 고양이'. 주인공 '모에코'와 그녀의 단짝 '에미'의 이야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알았는데, 앞선 '손가락'의 주인공 '기쿠코'나 그녀의 친구들 '유즈', '다이케', '마미코' 등이 등장하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일어나는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손가락이 '어른 세계에 대한 고민'이라면 '초록 고양이'는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이라 하겠다.

둘도 없는 단짝인 '모에코'와 '에미'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에미'의 정신 상태와 점점 멀어지는 둘의 관계...남자들과는 달리 단짝 친구와 손도 잡고 다니는 여중고생들에게 '친구'는 좀 다른 의미일까? 남자들의 'brotherhood'와는 또 다른, 신비롭게 보일 수 있는 여자들 사이의 '그 무엇'.

세번째 '천국의 맛'은 '키쿠코'의 친구 중 한 명인 '유즈'의 '이성에 대한 고민'같은 이야기.

엄마의 유일한 삶의 기쁨이자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는 '유즈'가 네 명의 단짝들 중 하나인 '다이케'로 부터 소개받은 '요시다'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기묘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자동차'와 '명품'으로 대면되는 엄마의 보호를 벗어나, '걷기만 하는 데이트'와 '소박함'의 '요시다'에 의해 동등한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에 눈뜨게 되는 '유즈'의 소박한 로맨스.

개인적으로 '유즈'와 '요시다'의 이야기는 너무 부러웠다. 굳은 날, 바람 속에서 '걷기만 해도 좋은 두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2006/11/01 16:17 2006/11/01 16:17

에쿠니 가오리 - 손가락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中)

'도쿄타워'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이번에도 역시 '에쿠니 가오리 전문 변역가'라고 할 만한 '김난주'씨의 번역이었고 첫장으로 보니 일본에서는 2002년에 출간된 책이었다.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번 책은 총 6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번째 '손가락'은 '여고괴담',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영화들에서 느꼈던 '여고시절'에 대한 동경(?)이 다시 고개를 들게 하는 이야기다.

'교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을 완벽하게 가려준다.'는 소설 속의 문장처럼 교복은 여고생들에게는 남고생들과는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남고생들에게는 소속감과 동료애의 상징 정도라면, 여고생들에게는 자신을 가려주는 차단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신발달 상 사춘기 시기에 남성에 비해1~2년 빠른 정신적 성숙을 보인다는 여성인 만큼, 여고생들은 같은 옷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고생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 서먹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처음에는 밤이라 볼 수 없었고 다음에는 겨울이라 얼어버려 볼 수 없었던 닛코의 폭포처럼 알 수 없는 어른들의 마음과 세계, 그리고 그와는 동떨어지게 유유히 흘러가는 여고시절.

여고생 '키쿠코'가 늦 가을부터 겨울까지 만났던 '여성 치한' 아키바 치하루. 그녀의 이름에 들어가 가을(秋)과 봄(春), 키쿠코가 그녀를 알지 못했던 '봄'부터 '가을'까지 그녀에게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던 것일까?
2006/11/01 13:40 2006/11/01 13:40

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가 개봉한다기에 박차를 가해서 지난주에 독파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로 전에 읽은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가 좋았기에 작가 '공지영'에게 흠뻑 빠져들어 있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좋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기작가답게 문장도 편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갔다.

여자주인공 '문유정'의 이야기, 멋진 노래나 시나 글의 한 구절, 남자주인공 '정윤수'의 짧은 이야기인 '블루노트'로 이어지는 구성이 참 좋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고 사이사이에 삶과 죽음, 슬픔과 사랑에 관한 짧은 글들... 시간 상으로 나중에 발표된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의 향기를 찾을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빗방울처럼..'에서 '우행시'에 대한 것들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멜로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슬픈 거라는 예상을 하고 읽으니 초반부를 읽을 때부터 눈이 그렁그렁했다. 다른 독자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오히려 앞부분이 더 슬펐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삐뚤어진 인간인 '유정'과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윤수',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 별 슬플 것도 없을 듯한 이야기가 어쩐지 더 슬프게 느껴졌다.(아, 영화 예고편의 부작용!) 그들이 서서히 마음의 치유를 받는 과정을 지나면서 그렁그렁한 느낌은 점점 가벼워져 갔다. 결국 인간에게는 빠르건 느리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지워져있기는 하지만...

'문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참 멋진 점이 있었다. 천주교(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그리스도교(천주교과 개신교)의 위선을 조롱하는 모습이 어쩐지 멋져 보였다고 할까? (소설을 읽으면 처음에는 좀 거북해질 '광신도'가 있을지모 모르겠다.) 부유한 천주교 집안의 '유정'과는 전혀 다르게 자라왔고 모니카 수녀와 유정을 만나가면서 점차 '신'이 신도하는 길로 빠져드는 '윤수'의 모습은, '상습 자살시도자'와 '살인자'의 대비와 함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윤수'처럼 예수도 사형수 였다는 점이나 형이 집행되기 전 '유정'이 '윤수'를 부인한 점 등 성서를 염두한 작가의 배려가 눈에 띄고, 유정이 처음에 윤수를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가 예상대로 였을 때와 이어서 '윤수'와 '은수'의 중간 발음이 '운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때 부터 영화화를 고려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짜 이야기'가 오가면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다듬어가는, 인간의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찬반 논란에도 '사형제도'에 대해 중립이거나 찬성쪽에 가까웠던 나의 마음이 반대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사형'은 결국 '복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 '복수'가 과연 정말 '사회의 원한'을 산 사람에게 이루어졌는가는, 윤수의 경우처럼, 확실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살인자와 피해자 외에는 아무리 형사들이 수사를 해도, 아무리 기자들이 기사를 써도 사실을 만들 뿐 진실은 완전히 밝힐 수 없으니까. 그리고 사형수들이 법정에서 사형을 받기까지 '범죄와 수감'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데에는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2006/09/30 01:59 2006/09/30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