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Belle Epoque) -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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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감정들을 노래하는 '벨 에포크'의 1집 '일요일들'.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들('Cracker'와 'We will be together')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정규앨범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벨 에포크'에서 '벨(Belle)'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미인(美人)'혹은 '여자 이름(벨)'이기에 '벨 에포크'도 '여자 이름'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의미가 있더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합니다.

필름카메라를 감고 셔터 누르는 소리로 시작하는 '뷰파인더 세상'은 이 앨범의 '관점'을 대변하는 첫 곡입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조각 조각 사진으로 남아내는 일처럼, '일요일들'을 통해 일상의 소중한 조각들이 펼쳐질 테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조각들이 있는지요? 보컬 '조은아'의 목소리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듯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5월의 후유증'은 어쩐지 미스티 블루의 'Slow days'가 떠오르는 곡입니다. Slow days에서 후렴구의 단호한 어조와 이 곡에서 처음부터 시작되는 단호한 어조가 배치만 다를 뿐, 비슷한 느낌 아닌가요? 바쁘게 스쳐지나가는 거리 위의 인파, 그 속에서 느껴지는 5월의 아지랑이와 봄의 열기 그리고 현기증... 그런 -5월만큼이나 따뜻했던-사랑의 후유증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크림샤워', 어떻게 보면 가사와 제목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추억에 잠겨, 비에 흠뻑 젖은 후 크림샤워와 함께 하는 따뜻한 샤워를 떠올려 보세요.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단촐하지만 꽉찬 밴드의 연주와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가사가 지리하게 비가 내리는 7월의 밤에 잘 어울립니다.

'별의 속삭임'은 제목에서부터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별의 목소리')이 떠오릅니다. 가사의 내용도 그 애니메이션과 잘 들어맞는 느낌입니다. 먼 별로 떠난 연인을 그리는 애틋함과 애틋함을 너무나 잘 표현했어요. 도입부의 나팔소리같은 목소리가 궁금합니다. 무슨 말을 한 것일까요?

'Vacation'은 타이틀 곡답게 '일요일들'이라는 제목처럼 여유를 소소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별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결코 쓸쓸하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함이 느껴집니다. 스트링은 경쾌함을 더 강하게 느껴지게 하네요. 찌든 세상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휴가, 그런 고독함을 꿈꿉니다.

'금단(禁斷)'은 이어지는 'cafe Siesta'의 intro같은 트랙입니다. 'cafe Siesta'는 이 앨범에 유일한 듀엣곡으로 'e.p ho'라는 남성 보컬과 함께 합니다. 'siesta'의 '낮잠'이라는 의미처럼 cafe Siesta에서 보냈던 낮잠같이 달콤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곡입니다.

'아직은',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제목처럼 아직은 마음에서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기억들를 노래합니다. 단촐하게 기타와 에그쉐이크만 사용한 연주가 '여백의 미'를 더합니다. '나와 같은 너'는 보컬 조은아가 작사, 작곡 모두를 담당한 곡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가사로 고양이 재롱같은 연주가 잘 어울립니다.

'December'는 바로 'We will be together'에도 수록되었던 트랙입니다. 은백색 눈의 이미지와 설레는 12월의 기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달에 숨다', 유유히 떠있는 달과 그로 인한 광기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4월 아침'에서 등장하는 여러 소품들은 다시 한 번 '미스티 블루'와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계절의 끝', 유난히 계절의 색채가 강한 곡들이 많기에 제목이 더 의미심장합니다. 도입부부터 차디찬 바람처럼 쓸쓸함이 뿜어냅니다. 곡 전반에 반복되는 전자음들은 'Mono'의 'Life in mono'가 연상됩니다. 간주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스트링은 절망의 정점을 향해 역설적인 힘을 더합니다. 노래 중간에 잠시 사용된 '모짜르트'의 레퀴엠 'Introitus'도 인상적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라는 의미가 있는 '레퀴엠'은 '끝'의 이미지와 닿아있습니다. 쓸쓸함의 절정을 달리는 '계절의 끝'은 어쩌면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의 종결(혹은 1집 '일요일들')에 대한 은유는 아닐런지요.

'We will be together'의 리뷰에서 '벨 에포크'를 '미스티 블루'의 '이란성 쌍둥이 자매'라고 표현했었는데 바로 '미스티 블루'의 '최경훈'이 바로 '벨 에포크'의 멤버이며 두 밴드에서 작곡과 프로듀싱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 밴드의 감수성은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두 밴드가 마냥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미스티 블루'의 1집 수록곡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들이 밴드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있는 느낌이라면, '벨 에포크'의 데뷔앨범은 좀 더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듯합니다. '미스티 블루'에서는 '정은수'가 대부분의 가사를 담당하고 작곡에도 참여했지만, '벨 에포크'에서 최경훈은 작사까지 영역을 넓여 그의 비중은 좀 더 커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두 밴드의 차이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이 '벨 에포크'의 공연을 더 기대하게 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8/08/04 00:56 2008/08/04 00:56

타루 -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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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더 멜로디’의 홍일점 ‘타루’의 첫번째 홀로서기 ‘R.A.I.N.B.O.W’

'타루'를 이야기하면서 '더 멜로디'를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공연이나 앨범을 통해서 멋진 보컬을 들려주었죠. 하지만 이후 featuring으로 참여했던 곡들('Humming Urban Stereo'의 '스웨터'나 'Sweatpea'의 '떠나가지마')을 들어보면 '더 멜로디'에서는 그녀의 매력을 100% 발산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디지팩을 보면 타이틀보다도 ‘produced by Sentimental Scenery’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파스텔뮤직이 야심차게(?) 영입한 그의 이름은, 타루의 EP가 단순히 ‘잘 나가던 밴드의 보컬이 홀로서기를 한’ 그저 그런 음반이 아님을 알리는 보증인같이 느껴집니다. Sentimental Scenery와 함께 한 타루의 홀로서기는 과연 어떨까요?

‘Yesterday’,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파스텔뮤직 5주년 기념 공연’에서 'Swinging popsicle'의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타루가 들려주었던 노래입니다. 'Swinging popsicle'의 멤버 '히로노부 히라타'가 작곡한 곡으로, 이전보다 좀 더 성숙한 느낌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옵니다. 일본인 작곡가의 곡이라서 그럴까요? 타루가 쓴 가사지만 꼭 일본가사를 번안해 놓은 느낌입니다.

두 가지 버전이 수록된 'Miss you', 사랑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으로 느껴질 만큼) 차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점이 재밌습니다. 가공된 타루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기 보다는 '연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점이 이 곡에 대한 중독성을 만들어내구요. 작곡에서부터 Sentimental Scenery가 참여한 곡인만큼 스트링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앞선 두 곡이 각각 '팝'과 '일렉트로닉'의 색채가 짙었다면 'Love Today'는 좀 더 danceable한 느낌입니다. 일렉트로닉을 차용하면서도 멜로디에 충실한 진행은 도입부부터 Sentimental Scenery의 색채가 짙게 느껴집니다.  소녀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예뻐져라 예뻐져~'라는 주문같은, 명쾌한 가사가 청명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로 펼쳐지며, 가사 그대로 화려한 무지개를 그려냅니다.

'오 !다시'는 너무 사랑스러운 가사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두 남녀의 '사랑의 줄다리기'를 그려내는 가사가 흥겹습니다. 빠른 템포의 리듬과 함께하는 타루의 너무 귀여운 코러스는 중독적이기까지 하네요. featuring으로 참여한 'U(唯)'는 모 트로트 가수의 아들로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있다네요.

'제발', 이 미니앨범의 정점에 있는 트랙입니다. 쓸쓸함의 가사를 가슴 깊은 곳에서 퍼지는 공허한 울림으로 표현해낸 타루의 보컬이 그렇고, 무게감 있는 비트와 키보드의 멜로디로 서정성을 더한 Sentimental Scenery의 감각이 그렇습니다. 인간 본연의 고독함과 누구나 갈망하는 삶의 위로... 인간은 언제쯤 그런 고통들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날씨 맑음'은 '미스티 블루'의 원곡을 재해석한 커버곡입니다. 원곡이 워낙 좋지만, 외모부터 발랄한 분위기의 타루가 부르니 발랄함이 배가 됩니다.

'Love Today(Sentimental mix)'는 'Sentimental mix'라는 부제처럼 좀 더 Sentimental Scenery의 입맛에 맞게 mix된 곡인가 봅니다.

타루의 '홀로서기'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겠습니다. 각각의 트랙들로 보면, '타루의 앨범'이라기보다 타루가 featuring으로 참여한 트랙들을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뮤지션'으로서의 '타루'가 차지 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특히 작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한 Sentimental Scenery의 입김이 상당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컬리스트로서의 앨범 제목인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날씨 맑음'을 제외한 모든 곡에서 작사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전망은 밝습니다. 다음 앨범에서는 자작곡들 통해 좀 더 타루다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Sentimental Scenery와 보여준 호흡은 두 사람이 '클래지콰이'나 '캐스커'같은 프로젝트나 팀을 결성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게합니다. 실력 있는 여성 보컬과 뛰어난 사운드메이커의 조합은 아직까지도 대중을 공략하는 '적절한 조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개개인에게도 음악성 성숙과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진정한 뮤지션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은 타루의 미니앨범 'R.A.I.N.B.O.W', 별점은 4점입니다.

2008/07/26 18:47 2008/07/26 18:47

한희정 - 너의 다큐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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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을 깨고 발표된 한희정의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더더(3집, 4집)'와 '푸른새벽'의 히로인 '한희정'이 솔로 데뷔앨범이 드디어 발표되었습니다. 푸른새벽 시절처럼 많이 미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5월 즈음 예상은 7월 정도로(?) 약간의 연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더구나 '푸른새벽'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설정샷의 앨범 커버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팬들의 지갑을 열게하고 있습니다.(얼마전에 새앨범을 발매한 섹시 아이콘 이효X양을 의식한 건 아닌가하는 의혹도...)

앨범 제목과 동일한 첫 곡 '너의 다큐멘트'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분의기입니다. 왠지 음험한 분위기는 유쾌한 호러물의 분위기이며, 어떤 면에서는 'MOT'의 느낌이 납니다. 곡 자체만으로는 짙은 안개 속을 헤쳐나가는 분위기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만으로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기분은 왜일까요?

두번째는 이미 홍대에서 보여주었던 공연을 통해 익숙히 들었던 기대곡(?)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입니다. 공연에서 엉뚱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소절 '우리 그만 헤어져~'를 들을 수 없어 좀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곡은 좀 더 진지해졌습니다. -사실 공연에서 이 곡이 진지한 곡임에도 엉뚱한 목소리 덕분에 웃긴 곡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브로콜리를 통해 창백한 초록의 낯으로 이별을 말하는 '그'를 투영시킨 상황이 브로콜리가 벌떡 일어나 이야기하는 모습처럼 재밌지만, '그녀'의 사연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12 Songs about you'를 통해 솔로 뮤지션 한희정을 '우리 처음 만난 날'은 밴드 버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처음 만난 날의 환희'를 한 편의 시처럼 담아낸 분위기는 '푸른새벽'까지 '한희정'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쓸쓸한 느낌의 솔로 버젼이 색바랜 사진을 넘기는 분위기같이 훗날의 회상같았다면, 밴드 버젼은 생생한 기쁨을 담아낸 느낌입니다. 밴드의 연주도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가릴 수 없네요. 그만큼 그녀는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고막을 통해서도 빛이 납니다.

'MOT'의 '이언'이 참여했고 기타 연주 위로 흐르는 'Drama'는 아마도 '푸른새벽' 속에서 그녀의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곡들을 지나 가장 반가운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공연에서 가증스럽게(?) 준비했던 멘트로는 이 곡은 '인생이란 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 아니겠어요~'라는 기분으로 '드라마'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곡이 끝날 무렵에는 이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날들'은 아주 오래전 개인 홈페이지에 데모로 올라왔던 곡입니다. 그 즈음에 같이 들었던 '딩'이 이미 '푸른새벽' 2집에 실려서 버려졌나 했는데 아니었군요. 그때는 가사가 많이 달랐는데(아마도 사랑 노래), 이런 모습으로 솔로 앨범에서 만나게 되네요. 공연을 통해 너무 익숙해진 바로 앞의 세 곡과 함께 공연에서 들을 수 있던 곡으로, 공연에서는 세 곡보다 나중에 소개되었던 곡입니다. 곡 소개를 하던 날 '5 18 민주화 운동'을 노래하고 있다고 했었고 음반 소개에도 그렇네요.

'Re', 이 곡도 데모로 들었던 곡입니다.  그 때는 가사는 없었지만, 전혀 새로운 분위기에 어떤 곡이 될런지 궁금했었는데, 밴드 구성과 함께 찾아온 모습은 다시 들어도 낯설기만 합니다. 기타 리프는 불안하고, 보코더를 통해 들리는 코러스는 불길합니다. 어린 시절 남량특집 '전설의 고향'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잠든 후 꾼, 기묘한 꿈처럼 말이죠.

'산책'은 피아노 반주만 함께 해도 좋을 법한 곡입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푸른새벽' 2집에 수록되었던 '오후가 지나는 거리'를 떠올리게 하네요.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그 햇살 속에서 빛나는 먼지같이 소소한 느낌에서 두 곡이 닮아 있습니다.

'Glow'는 '한희정 밴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들려주는 밴드 포멧의 시도는 보컬이 너무 두드러져 존재감이 약하고, 'Re'에서는 연주와 보컬이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Glow'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절한 느낌의 연주와 차가움을 담고 있는 보컬은 비극의 엔딩 크레딧을 듣는 기분입니다.

너무나도 싱그러운 도입부 때문에 '휴가가 필요해'는 다분히 여름, 휴가 시즌을 겨냥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심들게 합니다. '나나니나나나나~'로 유명한 '포XX 스XX' 음료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시원합니다. '우리 처음 만난 날'과 함께 그 '긍적적인 에너지'는, 그녀가 걸어온 디스코그라피와는 다른, 솔로 한희정의 차별화를 만들어주는 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열린다고 예상할 때, 시원한 옷차림(?)과 함께 무대에 등장하여 이 곡을 오프닝으로 한다면, 남심(男心)은 한여름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 떠어진 하드바 마냥 녹아버리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 곡만의 '너무 튈 정도의' 발랄함은 앨범의 통일성에 금을 가게 하네요.

마지막 곡은 '나무'입니다. 1절의 흐릿한 키보드와 2절의 꾹꾹 누르는 피아노의 대비는 비장함을 고조시킵니다.
가사에 등장하는 '쉼표', 이 앨범이 그 '쉼표'가 될런지 아니면 쉼을 마친 새로운 시작이 될런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긴 비바람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은 탐스러운 나무처럼, '한희정' 그녀도 그녀의 홀로서기를 멋진 첫 결과물로 비상을 시작합니다.

'너의 다큐멘트'라는 앨범 제목처럼 '한희정'의 솔로 앨범은 '너'에 대한 노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너의 기록들에서 '나'는 빠질 수 없습니다. 기록의 주체로서 또 기억의 주인으로 '나'가 없이는 '너의 다큐멘트'는 만들어질 수 없의, 그 다큐멘트는 나에 대한 투영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너'를 통해 비취진 '내 이야기'를 하려지는도 모르겠습니다.

짙은 그림자를 남긴 '푸른새벽'호의 항해는 3장의 결과물로 끝이났지만 그녀의 홀로서기는 그 이상으로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요즈음처럼 공연도 자주자주 해서, 팬들과 좀 더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그녀에겐  '데뷔앨범'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젊습니다.  

'보옴이 오면'에서 너무나 먼 봄을 노래했던 그녀. 지금 그녀는 그 보옴을 만났을런지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녀는 따뜻한 바람에게 봄의 소식을 듣지 않았을런지요. 별점은 4개입니다.(팬으로서는 4.5개, 0.5개는 완전 fan心에...)

2008/07/24 20:59 2008/07/24 20:59

Arco - Coming to Terms + 4 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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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여만에 재발매되는 'Arco'의 데뷔앨범 'coming to terms'.

4년 전에는 몰랐지만, 모 드라마와 모 CF를 덕분에 'Arco'를 알게되었고 때마침 재발매되었다. 'coming to terms', 우리말로 '타협하기, 체념하고 받아들기'정도로 해석된다. 얼핏보면 화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쓸쓸함이 묻어나는 새로운 디지팩과 함께.

체념에 대한 단어들. 밴드 'Arco'는 'Speak'로 그 끝이 없을 이야기를 시작한다. 앨범 제목처럼 첫곡부터 쓸쓸의한 정서는 가득하다. 고개를 숙이고 읊조리는, 적막한 방 안 가라앉는 먼지같은 단어들.

독특한 제목의 'Alien'. 이별의 기분을 Alien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곡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여자'처럼 두 사람은 어쩌면 사랑의 순간에 '같은 종족' 흉내를 냈을 뿐일까? 미지의 조우를 마치고 고향별로 돌아가는 외계인처럼.  76년마다 태양계를 한 바퀴 돈다는 '핼리혜성'처럼, 관계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기회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겠지만, 한 번의 기회는 너무 일렀거나, 아니면 너무 늦었을테니. 후렴구의 공허함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무중력 속에 떠가는 눈물처럼 아리게 그려낸다.

제목과 가사처럼 평온한 밤의 비행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flight'. 체념은 달관과 닿아있고 그 달관이 마음에 평온을 선사하는 것일까? 마지막 비행과 함께 지구를 떠난  작가 '생텍쥐페리'처럼. 비행이 인간이 결코 인간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하늘에 대한 헛된 욕망이라면 화자의 바람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지. 'Driving at night'의 마지막 가사처럼.

계절의 변화와 마음에 찾아오는 그 차가운 것을 적절하게 비유한 'Babies' Eyes'. '아기의 눈'이라는 제목은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아기들에 대한 부러움을 대변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천진난만함과는 대조적으로 화자는 세상에 눈뜨게 될 'Accident'를 기다리고 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어떤 '사고', 하지만 굳이 기다리기만 하는지? 찾아갈 수는 없을까?

삶에 대한 자조적 색깔이 뭍어나는 'Movie', 격정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인 'Grey', 우울 그대로의, 'into blue'. 삶은 어쨌든 되돌려볼 수 없는 한 편의 '영화'와 같고, 결국에 그 빛은 점점 바래서 '잿빛'이 되고, 결국에 남는 것은 고즈넉한 혼자만의 '우울' 뿐이니.

빛바랜 기억을 더듬는 느낌의 'All this world'. 고요와 정적, 그리고 모두 멈춰버린 찰나의 세상. 결국 닳을 수 없음을 알았을 때의 싸늘한 허망과 영혼의 부분을 잃어버린 절망. 그리고 마지막 차가운 세상에 상처만 받았을지라도 꿈 속에서는 평온하기를 'Lullaby'.

비오는 날의 한적한 거리처럼, 우울하고 차분한 앨범 'Coming to terms'. 시종일관한 그 가라앉음은 조금은 지루하고 듣는 이를 우울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밴드가 의도한 앨범의 색이라면 '대단한 성공'이 아닐까? 'Arco'는 이탈리아어로 '현악기의 활'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 'Arco'는 청자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활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별점은 4점.

2008/05/05 01:41 2008/05/05 01:41

페퍼톤스(Peppertones) - New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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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달관하고 잊을 만하면 새로운 음반을 내는 점이 이 밴드의 매력일까요? 충격적이었던 EP 'A preview'를 발표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데뷔앨범 'Colorful express'가 발표되었던 것처럼, 잠시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던 페퍼톤스가 슬며시 두 번째 정규앨범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1집과 2집 사이의 간격은 지난 간격보다 더 길어졌네요.

'New standard'라는 평범하면서도 대범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새로운 표준'이라니. 그만큼 페퍼톤스의 두 멤버, '노쉘'과 '사요'는 자신이 있는 걸까요? 사실 그것 보다도 이 밴드가 해체되지 않고 다시 앨범을 들고 찾아왔다는 점만으로도 기쁠 뿐입니다.


'Now We Go'는 페퍼톤스만의 자기자기하고 상쾌한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오프닝 곡입니다. 슈퍼마리오같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배경음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매력, 바로 반짝이는 페퍼톤스의 매력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네요.


'Balance!'는 페퍼톤스의 팬들에게는 친근한 목소리, 바로 베이시스트 '노쉘'이 보컬을 들려주는 곡입니다. 공연에서는 베이스와 보컬을 같이하려면 손가락이 꼬인다고 했었던 그가 2집 발매 후 시작될 공연에서 이 곡을 어떻게 보여줄지 살짝 기대가 되네요.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balance라는 제목이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해안도로'라는 상쾌함과 질주감을 느끼게 하는 제목은, 1집의 'bike'나 컴필레이션 '강아지 이야기'에 수록되었던 'hotdog!'에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페퍼톤스'의 마스코트와 같았던 'deb'이나 보컬의 비중에서 그녀와 버금갔던 'WestWInd'가 아닌 목소리는, '아마추어'같으면서도 신선합니다. 뛰어난 가창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페퍼톤스의 상큼함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할까요?


'오후의 행진곡'에서는 다시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페퍼톤스와 EP때부터 함께한 대표 객원 멤버인 'WestWind'의 목소리입니다. 또각또각 튀는 듯한 보컬의 느낌은 1집의 '남반구'의 천진함에 이어집니다. 2분 30초라는 길지 않은 재생시간에서 '짧막한 한 낮의 여유'같은 아쉬움이 느껴지네요.


'We are mad about flumerides'는 마지막에 사정없이 하강하는 '후룸라이드'같이 정신 없이 흐리는 연주곡입니다.


'Diamond'는 '페퍼톤스다움'을 정의하는 곡입니다. 기타 리프와 적절한 스트링 그리고 변형된 '노쉘'의 목소리는 그 페퍼톤스다움의 '대표 양념'들이 아닐까 하네요. 어쩐지 이 듀오는 점점 일렉트로니카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목이 없는 트랙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 곡의 인트로 트랙입니다.

'New Hippie Generation'는 타이틀 곡이면서도 의외의 인물이 보컬을 들려줍니다. 바로 '페퍼톤스'의 두 남자 중 한 명 '사요'입니다. 지금까지 '페퍼톤스'의 대표 이미지가 된 명량 만화같은 상상력과 사운드를 탈피한, 보다 현실적인 느낌의 락 사운드가 중심된 또 다른 매력을 들려줍니다. 한국 가요에서는 듣기 힘든 '여유로움'이랄까요? 일본 인디씬의 음악을 들으며 부러웠던 그런 젊은 시절의 여유와 낭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유약한 패기'라고 표현할 만한 외침은 지금을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 대다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Galaxy tourist'는 제목에서 어떤 영화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물론 다른 분위기의 곡이지만, 1집의 'fake traveler'도 불현듯 떠오릅니다. 귀여운 '연진'의 목소리와 만난 '페퍼톤스'라는 전혀 상상도 못한, 어찌보면 '환상의 만남'이라고도 할 만한 조합입니다. 귀여운 보컬과 함께하는 편안한 사운드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아 은하수를 향해 간다'는 감미로운 가사도 음미해 볼 만 합니다.


'불면증의 버스', 페퍼톤스답지 않은 어쿠스틱한 느낌이 독특한 곡입니다. 성숙해진 페퍼톤스가 느껴집니다. 이제 천진난만한 느낌의 페퍼톤스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 되겠습니다.


'Drama', 강렬한 오프닝과 시작되는 이 곡에서 유일하게 'deb'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같은 목소리가 부르지만, 가사는 1집 타이틀 'Ready, get set, go!'와 다르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21세기의 마법(21st century magic)' 속에 살던 두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습니다. 변화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변화가 반갑습니다.


'비밀의 밤', 처음부터 질주하는 사운드가 시원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사요'의 메인보컬에 대한 야심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Arabian night'는 앞선 곡에 이어지는 '밤(night)'에 대한 곡으로 제목부터 특이하고 내용물 역시 그렇습니다. 앨범 전체에서 페퍼톤스의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느껴집니다.


앨범 제목과 같은 'New Standard'로 2집은 문을 닫습니다.


이번 앨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EP나 데뷔앨범과는 달리 바로 두 멤버가 보컬의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사가 있는 트랙 10곡 중 절반이 넘는 6 곡을 두 멤버가 나누어 부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머지 4곡의 보컬이나 코러스로 참여한 이름들을 보아도, 페퍼톤스의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다가왔던 'deb'이나 'WestWind'의 이름은 한 곡씨에서 밖에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페퍼톤스는 이 밴드의 진정한 balance를 찾은 것이 아닐까하네요. 너무나 짙은 '객원보컬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페퍼톤스'의 자아를 찾는 일, 바로 페퍼톤스의 '새로운 표준(New standard)'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길이 바로 이 전도유망한 밴드가 장수할 수 있는 바른 길이겠구요.

지난 음반들의 상큼한 감각에 푹 빠진 사람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변화하는 모습과 더욱더 진화할 '페퍼톤스표 음악'을 지켜볼 인내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밴드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억될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점점 더 성장해 갈 페퍼톤스를 응원합니다. '페퍼톤스다움'을 완전히 놓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점점하게 녹여 나간 두 번째 앨범 'New Standard', 별점은 4개입니다.

2008/04/05 23:31 2008/04/05 23:31

에쿠니 가오리 - 차가운 밤에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 여성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모음집 '차가운 밤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귄으로 발매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88년과 93년 즈음에 발매된 두 권의 단편 모음집을 모아 소개하는 책이다. 발표 년도로만 보아도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초기 작품 성격과 근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차가운 밤에'와 '따스한 접시'라는 두 개의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어떤 작품보다도 더 큰 만족을 선사한다.

유령, 전생과 환생, 변신 등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차가운 밤에'는 신비롭지만 가슴 한 켠을 찡하게 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코 끝이 찡해질 '듀크'부터 '호접지몽'을 떠오르게 하는 '여름이 오기 전', 눈시울을 뜨겁게하는 유령이야기 '쿠사노조 이야기'와 '마귀할멈', 그리고 머나먼 기억 이전의 기억을 찾아가는 '언젠가, 아주 오래전' 등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느껴볼 수 없었는 감동으로 가득 찬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기까지 하다.


두 번째 부분인 '따스한 접시'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의 근간이 될 만한 단편들이 차지하고 있다. 연인, 결혼, 불륜과 이혼 등 '냉정과 열정 사이' 이후로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들의 주요 내용들을 군더더기 없는 단편들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그녀의 소설들이 '지리한 여름의 정오'같았다면 이 단편들은 180도 다르게 쉽고 명료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정확하게 남겨둔다.

전체적으로 정말 그녀의 작품 세계를 다시 살펴보고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고 그녀의 작품들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더 할 나위 없는 단편집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2008/02/27 22:56 2008/02/27 22:56

황금나침반3 - 호박색 망원경

'더스트 연대기' 삼부작의 마지막 이야기 '호박색 망원경(the Amber Spyglass)'.

책 앞쪽에 라이센스 내용에 관한 부분을 우연히 보다 알게 되었는데 이 삼부작의 원제는 'His dark materials'란다. 원제는 왠지 미스터리나 공포물일 법한 것이 판타지 소설의 제목으로는 '꽝'이라는 생각이 든다.

1편의 '황금나침반'이나 2편의 '마법의 검'처럼 '호박색 망원경'도 제목으로 선정된 아이템이나 상당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되었지만, 섣부른 추측이었다. 앞선 두 아이템의 무게감에 비하면 '호박생 망원경'이 제목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은 억지로 끼워맞춰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물건의 주인 '메리 말론'은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결론에 이르는 중요한 마지막 한 조각을 제공함에는 틀림 없다.

2편 마지막에 기대되었던 장엄한 전투는. 텍스트만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시 만난 '리라'와 '윌'의 모험과 다른 차원의 전혀 다른 지성체 '뮬레파'들과 생활하는 메리의 모습은 나름대로의 재미를 부여한다.

신화와 성경을 빌려 만들어낸 필립 풀먼의 세계는 생각하면 할 수록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한 상상력이라는 감탄이 나올 만하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신'과 '종교'에 대한 조롱 이 3권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수 많은 종교들이 약속한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후 세계와 죽어가는 늙은이인 '절대자'의 모습은 그 절정이라 하겠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르고 차원의 문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검이 '더스트'에 일어나는 혼란의 원인이었고 차원이 문이 열릴 때마다 반대 급부가 생기다는 진실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떠오르게 했다. 어른이 되면서 알레시오미터를 다룰 수 없게 되는 리라의 모습과 더스트의 이동은, 어른이 되면 상상력 혹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의 세상에서만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세계와 차원의 규칙, 그리고 결국 각자 자신들의 세계에서 이상 세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결론는 무자비하고 눈 먼 종교에 현혹되어 자신들의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2008/02/25 23:26 2008/02/25 23:26

로로스(Loro's) - P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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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single 'Scent of Orchid' 발표 후 다시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선보이는 '로로스(Loro's)'의 데뷔앨범 'Pax'.

'TuneTable Movement'의 2008년 첫 작품, '로로스'의 'Pax'가 드디어 발매되었습니다. 2006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고수'로 발탁된 후, 앨범 계획이 있었지만, sinlge로 축소되고 이후 차일피일 미뤄지던 정규앨범이 결국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는군요. 바람에 흩날리는 쓸쓸한 느낌의 디지팩 이미지는, 60분에 이르는 앨범 'Pax'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서 내용물을 살펴봅시다.

'첫 트랙 intro'는 다분히 (90년대 즈음에 유행했던) 트랙을 거꾸로 돌렸다는 생각이 드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거꾸로 흐르는 소리는, 기억 저편으로 향하는 이 앨범의 입구와도 같습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I say’의 ‘로로스’의 서정성을 잘 들려주는 곡입니다. 쓸쓸함을 담은 보컬은 먼지처럼 흩어지는 단어들 같고 그 잔영은 마음 속의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피아노와 첼로, 기타와 드럼의 충돌은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뿜어내는 것만 같습니다.

'방 안에서'는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동양적 정서가 녹아있는 곡입니다. 방 안에서 고요함 속에 움직이지 않는 화자이지만, 그의 가슴은 뛰고 그의 눈물은 흐르고 그의 마음은 소용돌이 칩니다. 첼로의 선율은 피아노를 보조하며 가슴 아린 서정성을 더하고 드럼은 가슴 치며 터질 듯한 격정을 표현합니다. 모든 파트가 폭발하는 절정에서 ‘제인’의 보컬은 마음을 위로하는 주문 같습니다.

'비행'은 하늘을 가르는 그 느낌처럼 젊은이의 기상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향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비행, 하지만 그 비행은 실제 비행이 아닌 명상을 통한 ‘마음의 비행’일지도 모릅니다. 보컬 없이 연주만 흐르는 곡으로, 시냇물이 강을 만나고 강이 바다를 만나듯,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은, 일본 밴드 ‘Mono’의 연주에서나 느껴보았을 찬란한 ‘포스트락’의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포스트락’은 밴드 ‘로로스’의 지향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It’s raining Pt.1’은 Pt.2의 ‘intro’ 같은 곡입니다. ‘It’s raining’은 앞선 ‘방 안에서’와 2006년 싱글로 공개되었던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와 더불어 로로스 초기의 서정성이 담겨있는 3대 인기곡이기도 합니다. 곧 쏟아질 법한 비를 머금고 밀려드는 먹구름과 천둥이 쳐도 이상할 것 없는 어두운 하늘, 그리고 잿빛 거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It’s raining Pt.2’는 키보드는 거리의 흐름을 첼로는 마음의 흐름을 그려냅니다. 간간히 들리는 드럼 심벌즈의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천둥이 연상됩니다. 비가 내리는 거리, 무관심한 사람들 속을 걷는 쓸쓸한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은 듯,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단지 그림자일 뿐이었을까요?

‘Doremi’는 앨범 수록곡들 중 독특한 느낌의 곡으로 홍일점 ‘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제인’은 ‘피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월드뮤직 같은 음악들을 많이 들려주어왔고, 이 곡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주문과도 같은 독특한 그녀의 보컬과 드럼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어떤 부족의 신비한 주술을 듣는 느낌입니다.

‘바람’, 피아노 연주에 드럼과 기타 연주가 곁들여진 크로스오버 형식의 곡입니다. 4분 정도되는 길이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로로스의 곡으로서는 짧게 느껴지네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점에서 크게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그런 자극적(?)이지 않은 점이 이 곡의 미덕이 아닌가 합니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의미합니다. 기도하는 듯한 남녀 두 보컬과 가사, 오르간처럼 들리는 평온한 연주는 고풍스러운 성당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Pax’의 사전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강국 등의 지배에 의한 국제적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와 함께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는 ‘로마’를 이야기할 때 듣게 되는 ‘Pax Romana’가 좋은 예가 되고, 현대에서는 ‘Pax Americana’라는 말이 종종 들을 수 있죠. 군사경제적인 폭력인 제국주의와 맞물려 그리스도교가 행한 문화종교적 폭력에 대한 반어일까요? 혹은 로로스가 꿈꾸고 있는 것은 대중음악계의 ‘Pax Lorosana’ 건설일까요?

이어지는 두 곡은 single에 수록되었던 곡들입니다.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나’라는 긴 제목의 곡에서 폭발할 듯한 로로스의 서정을 들려줍니다. 각 악기들이 자유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뤄내는 점이 로로스표 음악의 매력입니다.

‘Habracadabrah’이라는 제목은 주문의 한 구절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의미가 있답니다. 느슨한 주문 부분과 급격한 연주 부분의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주문 외에도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은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흑마술에 대항하는 선한 마술사의 이야기는 아닐까요? 비교적 뚜렷한 기승전결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마지막 곡 ‘She didn’t go to the party’은 어두운 방안에서 반짝이는 꼬마전구 같은 곡입니다. 파티에 가지 않은 그녀가 누워서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반짝반짝 꼬마전구가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슨 꿈을 꾸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로로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음악계에서 상당히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락 밴드의 기본적인 포멧에 키보드와 첼로의 전면으로 내세운 밴드 구성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뉴에이지의 서정성과 크로스오버의 양식에 포스트락과 월드뮤직을 첨가한,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듣는 입장에서 선택이 폭이 좁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연주는 좋았지만, 보컬의 역량은 조금 아쉽습니다. 공연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아쉬움이 앨범에서는 기술의 힘을 빌려 멋드러지게 나올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은 점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라이브와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더 멋진 앨범을 기다렸을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좀 더 클 법도 하지만, 앨범 발매의 즐거움을 넘을 수는 없겠죠.  라이브를 듣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장엄하고 서정적인 '로로스'의 음악들, 이제 더 큰 날개를 달고 널리 퍼져나갈 때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8/02/16 17:14 2008/02/16 17:14

We Will Be Together : Pastel Season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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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 5주년 기념 앨범 'We Will Be Together'의 첫번째 CD이자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선공개된 'Pastel Season Edition'.

 

파스텔뮤직의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이 컴필레이션 앨범의 첫번째 CD에는 새로운 5년을 책임질 뮤지션들의 곡들이 담겨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발매된 'Cracker'나 '12 Songs about you'도 좋았지만 이번 'Pastel Season Edition'은 국내 뮤지션들로만 채워진, '베스트 라인업'에 가까운 위용을 보여줍니다.

 

'미스티 블루'의 '이란성 쌍둥이 자매'인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첫모습을 보여준 'Cracker'의 수록곡 'May'처럼 월(月)이름인 'December'로 돌아왔습니다. '미스티 블루'의 '은수'와 비슷하지만 더 건조한 느낌의 보컬은, 차분히 쌓이는 눈처럼 담담하게 떠오르는 추억을 슬프지 않게 노래하는 가사와 잘 어울립니다. 더불어 '벨 에포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앨범'으로 결실을 맺길 기대해 봅니다.

 

3집을 통해 사운드의 미숙함을 벗어던지고 세련됨을 보여주면서 'Wanna be Casker'가 되고 있는 듯한 '허밍 어반 스테레오(Humming Urban Stereo)'는 '더 멜로디'의 '타루'와 만나 '스웨터'라는 곡을 들려줍니다. 제목으로는 뭔가 아기자기한 초기의 '허밍 어반 스테레오'같은 음악같으면서도 세련됨을 놓치지 않습니다. 여러 보컬들과 만나는 허밍은 어쩌면 'wanna be M-flo'인지도 모르겠네요.

 

2005년에 EP 'Rock Doves'를 발표하고 영화 OST에도 참여하며 활발한 모습을 보이다가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짙은'은 파스텔뮤직에 새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합니다. 모던 락 밴드에서 여성 보컬 파워가 압도적이었던 파스텔뮤직으로서는 호소력 짙은 보컬의 '짙은'을 영입하면서 약점을 보완해가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영역에서 '허밍 어반 스테레오'라는 유망주를 영입해 3번 타자로 키우고 '캐스커(Casker)'라는 기량을 인정받은 4번 타자를 영입한 파스텔뮤직은 'Sentimental Scenary'라는 또 다른 유망주를 5번 타자로 세워 '클린업 트리오'를 완성합니다. 'True Romance'는 피아노와 일렉트로니카의 절묘한 만남 그리고 멋드러진 보컬의 featuring까지 '파스텔뮤직'의 'Next Big Thing'이 될 'Sentimental Scenary'의  잠재력을 100%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국형 IDM으로 디지털 싱글을 통해 입소문으로 알려지던 'Sentimental Scenary'의 풍부한 감성의 일렉트로닉을 CD로 만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티어라이너'의 프로젝트 밴드 'Low-End Project'는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전문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느낌이네요. 'Cracker'와 '커피향 설레임'에 이어 이번 컴필레이션까지 말이죠. '보고 싶어서, 안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라는 긴 제목은 이 프로젝트가 긴 제목 지향 프로젝트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미 발표한 두 곡의 제목이 '연애를 망친 건… 바로 나란 걸 알았다'와 'Love Is Weaken When It Comes Out Of Mouth'였으니까요. 어쩐지 '티어라이너'보다 정규앨범이 기대되는 'Low-End Project'의 이번 참여곡은 이 프로젝트다운 어설프면서도 진지한 첫사랑같은 느낌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타게 기다리던 '미스티 블루(Misty blue)'는 '한쪽 뺨으로 웃는 여자'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곡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컬 '은수'의 읊조리는 보컬 때문인지 가사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한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이제 '미스티 블루'는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여전히 '미스티 블루'답지만 그 속에서 어른의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만한 '요조'는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만을 걸고 참여한 첫 곡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걸까요? '하모니카 소리'에서는 지금까지의 새침했던 그녀와는 다른, 담백해진 그녀를 들려줍니다. 추운 겨울의 따뜻한 햇살과도 같은 목소리입니다.

 

데뷔앨범이 좀 아쉬웠던 'Donawhale'은 '눈 내리는 소리'로 쌓인 아쉬움을 남김 없이 날려버립니다. 고요한 새벽의 눈 내리는 모습과도 같은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 구석이 시려지고 누군가 그리워지는 기분입니다.

 

파스텔뮤직을 통해 얼마전 새 앨범을 발표한 '큰 형님' '스위트피'는 'Are You Ready?'라는 곡을 내놓았습니다. 보컬이 없는 연주곡이지만 '어린왕자'같은 그의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배다른 형제 'Instant Romantic Floor'의 'Lie'는 나쁘지 않지만 '허밍'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아쉽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멤버간의 궁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그런 언밸런스한 느낌이 이 밴드의 매력일까요?

 

파스텔뮤직에 합류한 거물 4번 타자 '캐스커'는 '달의 뒷면'으로 드디어 정식 파스텔뮤직 앨범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캐스커'다운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에 융진의 호소력 짙은 보컬도 여전합니다. 3집이 조금 아쉬웠지만, 새로운 레이블과 함께할 이들의 새 앨범은 역시 기대됩니다.

 

파스텔뮤직 소속답지 않은 느낌의 변방 밴드(?) '불싸조'는 이미 발표했던 '지랄이 풍년이네'로 참여했습니다. 거친 락 사운드를 들려주는' 불싸조'이지만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일렉트로니카와 닿아있다는 느낌입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여성 목소리의 샘플링도 참 재밌습니다.

 
참여 밴드들 가운데 가장 오래 파스텔뮤직 소속인 '티어라이너(Tearliner)'는 'Regretto'라는 연주곡으로 참여합니다. 그 동안 드라마 음악에 참여하면서 갈고 닦은 내공일까요? 그의 연주음악은 잘 만들어진 크로스오버 곡을 듣는 느낌이네요.

'파니핑크(Fanny Fink)'의 '좋은 사람'은 '캐스커'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원곡이 조금은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리믹스를 거치면서 '캐스커'다운 전자음들의 강렬함은 '주객전도'를 일으켜 마치 '캐스커'의 곡에 파니핑크의 '묘이'가 featuring으로 참여했다는 착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 만큼 '캐스커'의 센스는 대단합니다. 어둡고 무거운 발걸음은 '캐스커'라는 모퉁이를 돌면서 리드미컬하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바로 180도 기분 변화 같습니다.

'어른아이'의 보컬 '황보라'는 '별이 되어'로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어른아이'는 밴드 포맷을 벗어난 그녀의 목소리는 더 짙은 감성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파스텔뮤직'의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마지막 곡을 통해 드러나고 있을 법도 합니다.

이 앨범은 현재 파스텔뮤직을 대표할 만한 밴드의 대거 참여로 파스텔뮤직이 앞서 발매했던 컴필레이션 앨범들에 뒤지지 않는 내용물을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지난 5년을 함께 했던 밴드들과 2007년을 통해 새롭게 합류해 또 다른 5년을 꾸려나갈 밴드들이 함께 하면서 그 임팩트는 'Cracker'나 '12 songs about you'를 뛰어넘구요.

더구나 2004년 말부터 파스텔뮤직의 행보를 지켜본 저에게는 그 느낌이 남다릅니다. 홍대 라이브 클럽을 통해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다른 소속이었던 밴드들이 파스텔뮤직에 편입되고, 성장해 나가고, 또 해체되는 현장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 5주년 기념 앨범입니다. 튼튼한 종이케이스에 담겨진 5장의 디지팩은 눈을 즐겁고 소장 욕구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된 앨범을 여럿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느낌이 5장에 담긴 수 많은 곡들은 '적당함의 미덕'을 잃은 '과잉'이 아닌가 하네요. 수록곡들이 좋은 곡이지만 나머지 4장의 CD에는 소장 CD들과 겹치는 곡들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Pastel Season Edition' CD만 별도로 구매할 수 없는 점은 그래서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의 상징성'은 대단합니다. 메이저 음반사가 아닌 작은 레이블이 이렇게 방대한 음원 모음집을 발표할 수 있다는 점은 가뜩이나 어려운 현재의 음반시장에서, 게다가 더더욱 어려울 인디음악 시장에서 '대단한 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나라같이 '소수의 취향'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킬 만한 음원들을 찾기 어려운데, 파스텔뮤직은 그런 부분에서 꾸준한 생명줄과 같은 레이블 중 하나였으니까요. 파스텔뮤직이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이런 앨범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We Will Be Together'은 별점 4개입니다만 'Pastel Season Edition'만은 별점 5개를 주고 싶네요. 음악성과 대중성에서 한 인디 레이블 소속 밴드만을 모아서 이런 라인업의 음반을 냈다는 점은 한국에서 전무후무할 만한 일이 아닐까 하네요.

2008/01/31 21:38 2008/01/31 21:38

츠지 히토나리 - 안녕, 언젠가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소개되지만,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들 중 아마도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다음으로 유명하지 않을까 하는 작품이 바로 '안녕, 언젠가'이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 등 일본 여류작가들에 비해 번역된 작품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그이지만, 이 소설 속에 실린 시구는 츠지 히토나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한 번쯤은 읽어 보았으리라.

현대가 아닌 1975년 개발이 손이 닫기 전인 '태국 방콕'이라는 열대의 이국에서 펼쳐지는 사랑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유타카에게 매혹적인 여인 토우코의 등장은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일이었고, '꿈'이기에 깨어날 수 밖에 없다.

지루하고 위태로운 하지만 뜨겁고 매혹적인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젊은 혈기의 불장난으로 끝나고 소설은 25년을 뛰어넘는다. 25년이나 지났지만, 차마 잊지 못해 마음 한 쪽을 떼어놓고 살아온 두 사람의 모습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깊이과 감동을 전한다.

사실 즐겨 읽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의 가볍고 건조한 문체보다는 츠지 히토나리의 서정적이고 분명한 문체가 우리나라 사람의 감성에 더 잘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 TV드라마에서나 볼 만한 신파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적절한 시대와 장소 그리고 인물 배경 속에 그려지는 그의 이야기는 '신파'라기 보다는 '로맨틱'에 가깝다.

여러 그의 소설에서 그는 남성들만의 세계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거칠고 무뚝뚝한 세계가 아닌 남성이라는 딱딱함 속에 숨어있는 부드러움을 찾아 보여준다. 그렇기에 역시 남성인 나에게 그의 글들이 마음에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에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아니면 사랑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나는 전자가 되기를 바란다.
2008/01/29 02:02 2008/01/29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