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문 - 로버트 A. 하인라인

SF 장르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여름으로 가는 문(1957)'은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부터 시작해서 SF답지 않은 제목에 의아했던 작품이다. 혹시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나 했지만, 원래의 영문 제목도 'the Door into Summer'로 다를 바 없다. '스타쉽 트루퍼스(1959)'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기에 이 작품은 어떤 미래(혹은 과가의 작가가 꿈꾼 우리의 현재)를 그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0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활자가 커서일까? 아니면 작품이 너무 지지하지 않아서일까? 오랜만에 쉽게 쉽게 읽어나간 작품이었다.  SF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 시간 여행을 위한 왕복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냉동 수면'과 '타임머신'이라는 SF적인 재료로 쓰여진 이야기지만, 시간 여행이나 시간 여행으로 인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의 위한 중요한 '양념' 정도로 쓰일 뿐이다. 놀랍게도 SF 거장이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에 가까웠다. 사실 정통 로맨스라기 보다는, 고결한 사랑을 이룩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SF의 거장'에게 '전형적인 SF 작품'를 기대한 'SF 독자'라면 이 정도도 대단한 로맨스라고 할 만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문제와 관련되어 다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로리콘'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 미국은 요즘 이슈에 자주 등장하는 소위 '베이비붐' 시대이기에 그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도 어떠했을 지도 궁금하다. '시간을 초월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후대의 '조 홀드먼'이 '영원한 전쟁(1975)'에서 보여준 '시공을 초월한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영원한 전쟁 속 주인공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뤄낸 사랑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속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미국적 위트도 녹아있는 이 작품은 분명 정치적, 군사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고전 SF 작품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역시 미국인답게 장황한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은 이야기를 크게 부풀린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SF 형식을 빌린 기행문같은 '여름으로 가는 문'은 다른 장르의 소설 못지 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은 본문 속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다분히 중의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댄과 그의 고양이가 찼었던 진짜 여름의 날들은 결국 시간 여행을 통해 '찾은 아름다운 사랑의 날'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댄은 애완동물은 '고양이'로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평행우주에 관한 반전적인 부분이 등장하는데 혹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2014/01/13 17:32 2014/01/13 17:32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

독보적인 세계 최강국 '미합중국(미국)'와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을 들여다보면, 자주 발견되는 단체의 이름이 보이곤 한다. 바로 수 많은 비밀과 음모를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름의 '프리메이슨'이다. 그와 함께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이 '템플 기사단'이나 '일루미나티'다. '그레이엄 헨콕'과 '로버트 보발'이 함께 쓴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는 오랜 시간 전세계를 둘러싼 음모론의 배후로 지목되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템플 기사단'을 다루는 책이다. 그레이엄 헨콕은 '신의 지문'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저자이기도 하다.

제목인 '탤리즈먼'은 '종교적 염원 혹은 신념이 깃들어 현세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민속 신앙 속의 '부적'이나 '장승'도 탤리즈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박했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로 운을 띄운 긴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문명시대까지 조명한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승자'로서 문명의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를 강력하게 지배해온 '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역사만큼 혹은 더 오래 존재해온 이단 종파와 이교적 사상과 철학에 관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보다 더 순수하고 이상적으로 종교다우면서도 훨씬 '이성적인'이 이단과 이교의 사상이 많은 사람이 '기독교'과 '성경'에 품었을 의문들을, 이성적으로 더 잘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과 이교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속세에 의연한 종교인다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통 기독교에 의해 박해받았던 이단 종파의 수행자들의 모습이 도교의 '도사'들이나 불교의 '승려'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고대 헤르메스 주의와 유대교 신비주의 등과 자유롭게 사상을 공유하면 '철학적 사조'에 가까웠던 순수 기독교는 다분히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정통이하고 자부하는 한 종파'에 의해 현재에 이른다. 성서 직해주의적인 소위 '정통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들에 의해 받았던 박해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이단이었던 종파들과 이교를 '로마의 황제들처럼' 배척하고 박해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헤르메스 주의에 기반을 둔 이 이단 혹은 이교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고 마니교, 카타리파 등 시대에 따라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헤르메스주의적 사조'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그 반격들은 번번히 실패했고 비밀결사로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바로 '템플 기사단'이라도 한다. 역시 이단으로 몰려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비밀결사로 이어졌고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졌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비의적이고 열성적 계파 정도로 볼 수 있다.)

프리메이슨은 아직도 비밀결사 조직이기 때문에 그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는 구성원이 아니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근대화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의 역사적 공헌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음모론에서 이야기하는 프리메이슨의 모습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 점차 지지 기반이 약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세한 승자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에 의해 악의적 왜곡이 의심되기도 한다.

종교와 비밀결사에 관한 내용을 방대한 고증과 적절한 추리로 풀어내는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달하는 분량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다만 인물사전처럼 수 많은 이름들, 특히 프랑스식 낯설고 긴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여 기억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다분히 원서를 직역한 듯한 번역체는 몰입을 방해하는 또 다른 단점이다.
2013/12/30 13:55 2013/12/30 13:55

이루마 - Stay in Memory (기억에 머무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뉴에이지(New Age)' 장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미 뉴에이지 음악이 폭넓게 자리 잡은 미국과 일본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소개되었고, 한국인 아티스트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열풍 속에서 데뷔한 '이루마'는 이제 한국 뉴에이지 음악을 대표할 만한 아티스트로 성장했습니다. 거의 매년 전국 투어를 성황리에 마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던 그는 2006년 돌연 군입대를 합니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서 공부했고 영국 국적을 취득하여 이중 국적이었던 그의 입대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했습니다. 이로서 앞으로 그의 활동에 국적 논란과 군입대 논란은 분명 사라지겠다는 점에서 안도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예민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작곡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2008년 10월,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바로 발표한 6번째 정규앨범으로 무뎌지지 않은 감수성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앨범과 함께 다시 입대 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후속 앨범의 소식은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데뷔 때부터 함께 했던 지난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3년의 시간이 흐른 2011년 11월 이루마는 다시 그의 이름을 건 앨범을 발표합니다. 바로 그의 첫 공식 베스트 앨범인 "The Best - Reminiscent 10th Anniversary"입니다. 이루마, 그가 직접 선곡하고 다시 녹음한 기존 발표곡들과 미발표곡, 신곡을 더해 총 17곡을 담은 이 베스트 앨범은, 법적 분쟁을 끝내고 새로운 소속사 '소니뮤직'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앨범이었습니다. 이 베스트 앨범은 제목처럼 지난 10년 동안의 그의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만큼의 시간 동안의 변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새롭게 녹음된 곡들은 원곡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마치 콘서트에서 직접 들었던 그의 연주처럼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새 소속사가 바꿔고 처음으로 발표하는 일곱 번째 정규앨범 "Stay in Memory"에서는 그런 변화들을 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앨범들에서도 물론 그의 곡들은 듣기 좋았지만 정해진 틀에 맞춰있는 느낌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그런 틀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던 그의 지난 대표곡들과는 달리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아기자기하기보다는 틀을 벗어난 자유와 여유는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감회와 세월이 녹아들었기 때문일까요?

'Nocturne no.1 in C'는 "Summer Nocturne"처럼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하는 여름날의 풍경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노을을 타고 불어오는 밤바람에 살짝 열린 창문의 커튼은 살포시 흔들리고 긴 하루도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Stay in Memory'는 '기억에 머무르다'라는 제목처럼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비교적 이루마다운 아기자기한 멜로디가 인상적인데, 그리움과 더불어 얼핏 회한이 어려있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어지는 'I Could See You'에서도 그런 그리움의 감정은 이어집니다.

'Nocturne no.2 in Eb'는 아늑하고 따뜻한 가족이 모습이 그려지는 곡입니다. 마치 이제는 결혼하고 가족을 이룬 그의 모습처럼 말이죠. 'Impromptu'는 '즉흥곡'을 의미합니다. 원래 슬픈 내용으로 썼던 곡을 바탕으로 즉흥으로 연주했다는데, 비오는 밤 빗소리를 들으며 감성에 빠져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의 도전 정신이 엿보였던 스페셜 앨범에 실렸던 'Happy Couple, Sad Couple 'n Happy Again'은 '이제서야' 피아노 버전으로 이번 앨범에서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이 곡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던 곡었지만, 피아노 버전으로는 어떤 앨범에도 수록된 적이 없었습니다. 보통 너무 긴 제목 때문에 '해피커플'이라고 줄여서 불리는 이 곡은 긴 영문 제목처럼 행복했던 커플이 시련을 커져 다시 행복을 찾게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Falling in Love'는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인 순간은 그려냅니다. 그 사랑은 격렬하기 보다는 평온하고 환희로 충분한 분위기로 들립니다.

'Nocturne no.3 in A minor'는 단조의 야상곡이기 때문인지, 슬픔과 탄식이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소중한 것 혹은 사람을 읽은 밤의 감정을 그려냈으리라 생각되네요. 'Silver line'은 구름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을 뜻하는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듣고 있으면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린 뒤 활짝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밝고 희망적인 기분이 듭니다. 마치 최근 몇 년간 마음 고생을 하고 이제는 평온을 맞이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을 법합니다.

'Nocturne no.4 in Db'는 이 앨범의 마지막 야상곡으로, 세상 만물이 모두 깊이 잠든 평온한 밤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그 깊은 밤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는, 모두에게 아늑하고 편안한 밤이겠죠? 'The Days that'll never come'은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라는 의미처럼 좋았던 시절에 대한 슬픈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그의 곡들처럼 잔잔 슬픔의 잔물결이 아닌, 감정의 격류와 소용돌이가 느껴지는데, 그만큼 그는 지난 시간들 애타게 갈구하고 있나봅니다. 'Painted'는 우리말로 '그린', '색칠한' 혹은 '허식적인', '공허한'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입니다. 제목처럼 지금까지 그가 그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화려했던 순간을 지나 공허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낸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종종 자신을 "뉴에이지가 아닌 세미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습니다. 종교적 오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최종적인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었다고 생각됩니다.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고 발표된 이 앨범은, 지난 앨범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변화를 들려줍니다. 피아노로 들려주는 손끝의 표현은 마치 스스로의 구속을 깨고 나와 득도나 해탈한 사람처럼 정해진 형식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그의 음악들이 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처럼 들리게 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그의 음악 인생에서 앨범 "Stay in Memory"는 새로운 이정표로 기억되지 않을런지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3/11/22 17:56 2013/11/22 17:56

제주 버스 여행 : 뚜벅이들을 위한 맞춤 여행법

누구나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도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상황과 시간은 여의치 않고, 그렇게 먼 곳으로 가기에는 휴가가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이 제주도가 아닐까? 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한라산과 푸른 바다의 픙경은, 비록 그곳이 꿈꾸던 낯선 곳은 아닐지라도 일상에 찌든 마음에 위로와 상쾌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렌트카를 타고 도시와는 다르게 탁트인 도로에서 맑은 공기를 즐기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고,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빌려서 일주도로를 따라 수일에 걸쳐 섬을 한 바퀴도는 낭만은 분명 다른 관광지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제주도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이것은 아마 제주도 여행 계획에 있어서 첫 단추에 불과하다. 아직 여러가지 고민 사항들이 남아있고, 특히 '어디서 자고, 어떻게 식사를 해결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마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자 걱정일 것이다.

처음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던 10여년 전 학생시절의 제주도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제주도는 과거와는 다르게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훨씬 많아진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가 되었지만, 제주공항에 내리면서 보이는 풍광은 그 시절 목포발 배편으로 점점 가까워지던 섬의 모습만큼 설렘을 주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이 풍부해진 만큼 제주도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언론 기사 등의 정보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 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광고성 글도 많아지면서 그 많은 정보(information) 가운데 내게 필요한 자료(data)를 찾기란 쉽지만은 않다.

'제주 버스 여행 : 뚜벅이들을 위한 맞춤 여행법'은 그 고민에 대해 최고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지도 모르지만, 간편하고 적절한 해답이 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제목처럼 '버스 여행'을 기본으로 하기에, 제주도의 북쪽에 위치한 제주시에서 출발하는 버스 노선에 따라 권역별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버스의 동선을 따라 가볼만 한 관광지와 먹거리, 즐길거리를 모아서 설명하지만, 제주공항에서 제주여행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동선도 대부분 비슷하기에 버스 여행이 아니더라도 알찬 정보들이 많다. 어느덧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려, 버스 여행이나 자전거 일주는 엄두도 나지 않는 나에게도 꽤 알찬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부부로 결혼 후 2년동안 제주에 살면서 구석구석 누빈 경험으로 썼다고 하는데, 이미 몇 차례의 제주 여행에서 직접 경험했던 '좋았던 곳들'은 역시 이 책에도 여러 곳 소개되어 있기에 꽤 신뢰를 갖고 읽게 되었다. 또, 오랜 제주 여행의 경험이 묻어나는 내용들을 보면서, 이 책이 단순히 업체들과 뒷거래를 통한 광고성 혹은 그저 책을 팔기위한 상업성이 아닌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송악산 올레길, '카페 숑',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리고 월정리 해변 카페 거리는 가볼만 곳이었다. 더불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기자기한 특색의 게스트하우스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그곳들을 거쳐가는 여행도 하고 싶어졌다.

다만 쉬운 점도 있어서,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기까지의 시간과 '지금의 여행'이주는 '시차'의 문제이다. 책이 출간된 때가 올해(2013년) 5월인데 벌써 책 내용과 다른 점이 있는 부분이다. '흑돼지돈까스'의 맛이 궁금해서 찾아간 두모악 근처의 카페 '오름'은 주방장의 사정으로 이제 식사 메뉴는 주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맛깔스러운 정식을 소개한 한 집은 최근에 사나운 인심으로 더 유명했다. 제주 여행 안내서로서 스테디 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일년에 한 두 차례 판올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페 숑'



2013/11/19 20:51 2013/11/19 20:51

스웨덴세탁소 - From, Paris (EP)

'스웨덴세탁소', '언니네 이발관'처럼 밴드의 이름으로는 독특한 이름입니다. 전혀 다른 나라이지만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통한 돈'세탁'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LA의 이민자 성공담에 한 번 정도는 등장할 만한 '세탁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 밴드 이름으로 이런 이름을 선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스웨덴세탁소'는 곡을 쓰고 노래하는 '최인영'과 주로 기타 치고 코러스를 부르는 '왕세윤'이 결성한 여성 듀오입니다. '스웨덴'이 들어간 밴드 이름에 첫 EP 제목은 "From, Paris"라서, 어쩐지 유럽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유럽풍(?)의 음악을 들려줄 법한 느낌이 듭니다.

첫곡 '입맛이 없어요'가 들려주는 첫인상은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처럼 조금 거칩니다. 인디씬에서 시니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몇몇 여성 솔로 뮤지션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첫곡의 거친 인상을 지나면 이어지는 곡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줍니다. 타이틀인 'From, Paris'는 여성 보컬 특유의 달달함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파리에 두고온, 고백하지 못한 남자친구의 연애 소식을 풀어낸 노래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여러 여성 듀오들이 지향하는 '달콤씁쓸함'이 역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의미하듯 '파리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소재로한 점은 소소하면서도 참신합니다. 'As for Me'는 역시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한 곡씩은 불러보는 분위기있는 보사노바풍의 곡입니다. 'Paradise'는 제목처럼 천국같이 행복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동행'은 어떤 곡보다도 이 여성 듀오의 진솔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보컬 최인영은 앞선 곡들에서 곡마다 다른 톤으로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다른 어떤 곡보다도 애교나 기교가 빠진 담백한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더불어 왕세윤과 함께 쌓은 코러스는 여성 듀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Happy birthday waltz'는 제목처럼 생일축하 왈츠곡입니다. 왈츠의 느린 세 박자는 듣는이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감정들을 전달하기에 좋은 선택입니다. 마지막 곡 '우리가 있던 시간'에서도 여성 듀오 '스웨덴세탁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 듀오 특유의 듣기 좋은 보컬/코러스는 당연하고, 두 사람이 쌓아낸 아름다운 화음은 다른 여성 듀오와 차별되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 EP를 관통하는 소재는 '사람이 머무는 혹은 머물던 자리'라고 생각되는데, 그 빈 자리에 대한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너무 과잉되지도 않고 너무 무덤덤하지도 않은, 적절하고 절절한 감정 표현은 이 듀오의 활동을 기대하게 합니다.

'스웨덴세탁소'의 첫 EP "From, Paris". 밴드 이름이나 앨범 제목처럼 유럽의 정취를 물씬 느껴지는 앨범은 아니더라도, '상상 속의 유럽'같은 낭만과 여유를 조금은 찾을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요? 인디씬의 '여성 듀오 붐'의 후발 주자로 등장해서 그 '붐'이 잠잠해진 요즘, 다른 여성 듀오들보다 더 빛나는 별이 될 '스웨덴세탁소'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2013/11/14 01:29 2013/11/14 01:29

그래비티(Gravity) -2013. 10. 26.

첫 장면부터 '아이맥스(imax)'로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그래비티(Gravity)'.

제대로 등장해서 연기를 하는 배우는 단 두 명, '산드라 블록(라이언 스톤 역)'과 '조지 클루니(매트 코왈스키)'이고 사실 매우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감독과 배우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낸 '영상'만으로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첫 장면부터 우주공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그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적막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지상 600km 위에서 펼쳐지는 재난'이라는 매우 특별한 상황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중력(gravity)' 공간의 재난과는 매우 다른 상황들을 보여주고,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서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이 되어 몰입하게 만듭니다. 공기가 없어서 가장 기본적인 통신 수단인 '소리'가 전달되지도 않고 숨을 쉴 수도 없는 우주공간의 상황은 산드라 블록의 좋은 연기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롱테이크가 합쳐져서 갑갑함, 답답함 그리고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런 압도적인 '시각적 효과'로 단순한 상황을 그려내지만, 근본적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처럼 상당히 깊게 생각할 만한 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마침, 우주의 전파 통신이라는 상황이 '철학적인 문답법'처럼 대부분 문답의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인간인 물리적인 인식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인 '우주'이지만, 공기도 중력도 없는 그 낯선 환경을 실제로 맞닥뜨린 인간에는 그저 끝없이 넓기만 한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 끝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 안에 홀로 던져진 인간은 한 없이 무력하기에 밀폐된 감옥에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한하지만 감옥과 같아서 탈출해야한다는 모순에서 관객은 탁트인 쾌적함보다는 황량함이 동반된 갑갑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탁트인 우주에서는 폐쇄 공포증같은 감정을 느끼다가도, 밀폐된 우주선이나 우주기지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점도 모순적입니다.

각본에도 참여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점은 바로 그런 '모순에서 오는 공포'가 아닐까 합니다. 지구 위의 인간이들이 우주에 대해 느끼는 신비와 경외감을 넘어서, 실제 우주공간에 떨어졌을 때 말초까지 느껴지는 '낯선 공포'는 그 어떤 상황보다도 공포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쿠아론 감독은 '역시 어둡고 밀폐된 영화관 속'과 '스크린으로 한정된 시야'라는 영화속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관객들을 상황을 이용하여 영화 속 감각들을 더 실감나게 전달합니다.

CG인지 실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과 더불어 무중력 공간에서의 물리 법칙들을 스크린 위에 그려낸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은 이제 인간의 감각이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을 확실히 넘어섰나봅니다. 또,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우주의 속성처럼, 영화 전반에 작은 소리로 낮게 깔린 배경음악도 다른 비현실적인 SF 영화들과는 차별점을 확실하게 두고 사실성을 살리면서 관객의 감정 이입에 한 몫 합니다. 신디사이저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려진 음악은 우주의 아름다운 적막함과 주인공의 갑갑한 감정, 두 마리토끼 모두를 놓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구에 도착한 마지막 장면은 안도감과 더불어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감도 느껴졌습니다. 우주에서 떨어져서 물 속에서 빠져나와 땅 위에 올라 중력을 이겨내려는 모습은 어쩐지 일부 진화론적인 주장처럼 '외계에서 기원한 생명의 진화 과정'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더불어 마지막까지 구조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혹성탈출처럼 인류가 아닌 다른 종이 지구를 지배했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도 엄습하더군요. 감독은 어쩌면 아직도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안주며 살고 있는 있는 인류의 한계(혹은 아둔함)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인공은 우주공간에서 지구로 '탈출'했지만, 미래의 인류는 언젠가 지주에서 우주로 '진정한 탈출'을 해야할 테니까요.

라이언 스톤과 매트 코왈스키, 두 주인공 모두 지구에 아픈 기억을 갖고 있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지구를 '탈출'하고 싶은 이유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과 한 사람은 그 탈출을 성공(?), 다른 한 사람은 운좋게도 무사하게 실패(?)하는 상당도 재밌습니다. 과연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실패했다고 봐야할까요?

gravity,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뜻은 우리가 뼛속까지 느껴며 살고 있는 '중력'을 의미하지만, '중대함'과 '엄숙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중력, 중대함, 엄숙함 이 모두를 함축적으로 담은 제목이 'Gravity'가 아닐까 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3/10/27 16:46 2013/10/27 16:46

Lucia (심규선) - 꽃그늘 (EP)

새로운 봄과 함께 찾아온, 봄노래들 가득한 루시아(심규선)의 두 번째 EP "꽃그늘".

2012년 10월 첫 EP "décalcomanie"를 발표했던 루시아는 겨우내 쉬지 않고 음반 작업을 했는지, 약 6개월 만인 올해 4월 두 번째 EP "꽃그늘"을 발표했습니다. 2011년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과 함께 작업한 데뷔 앨범 "자기만의 방"을 시작으로 3년 동안 매년 음반을 발표한 셈이 되는데, 그녀의 '음악적 욕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10트랙 모두 신곡이었던 첫 EP만큼은 아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는 들을 수 없는 보너스 트랙'이 포함된 CD의 8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면 6곡의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녀의 욕심만큼이나 '완성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곡 '사과꽃'은 EP "꽃그늘"을 시작하는 '서문'과 같은 트랙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봄날 한적한 공원을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 산책이 떠오습니다. 상쾌한 나무그늘 속을 달리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의 따뜻한 설렘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느린 산책처럼 느긋한 선율 위로 흐르는 우아한 노래는 듣는이의 주의를 그녀의 목소리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합니다. 음악적 효과를 주는 가사 '봄, 밤, 맘(마음)'은 이 곡의 심상을 압축하는 세 단어입니다. 그리고 '봄'과 '마음(맘)'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봄' 혹은 '봄이기에 어지러운 마음'을 노래하는 이 EP을 관통하는 주재(主材)입니다.

이 EP의 타이틀 '그런 계절'은 '잔인한 계절, 봄'을 노래합니다. 시조를 읊듯 노래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그녀의 감정들을 노랫말로 쓸 때 단어를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느꼈을 고민이 느껴집니다.  또 그 선택된 단어들이 그녀의 목소를 통해 노래로 불려질 때, 하나하나 단어를 발음하면서 그녀가 그 단어에 담아낸 감정과 노력도 그려집니다. 공 들인 가사만큼이나 선율도 빼어납니다. 간주 부분에서 3/4박자의 왈츠보다 빠른 6/8박자의 멜로디는 지는 꽃잎의 흩날리는 윤무를 그려냅니다. 확실히 왈츠보다는 '현대무용'으로 표현될 법한 선율인데, 놀랍게도 이 곡을 듣고 얼마 지나 찾아본 뮤직비디오에서도 '현대무용'으로 시각화하고 있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만개(滿開)한 그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라 하겠습니다. 어쿠스틱과 현악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점은 편곡자의 탁월한 능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편백나무'는 낯선 이름입니다. 편백나무는 영어로는 'Hinoki Cypress'이고 꽃말은 '기도'랍니다. 바로 이 곡은 그녀 자신을 위한 '기도'같은 곡입니다. 어쿠스틱의 가벼운 경쾌함은 지난 EP의 'What Should I Do'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사랑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5월의 당신은'은 제목처럼 5월의 나른하고 아련한 아지랑이 같은 감정을 노래합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그대'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는 그런 애잔함과 봄의 나른함을 더해줍니다. '담담하게'는 제목과는 다른,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실편백나무'와 제목을 바꾸었어도 어울렸을 법합니다.) 이 EP의 어떤 곡들보다도 고백적인 노래인데, CD를 구입할 경우 포함된 두툼한 부클릿의 '서문'을 모두 읽어야 이 곡 뿐만 아니라 이 EP를 통해 '루시아',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온라인 음원의 마지막 트랙은 '그런 계절'의 연주곡입니다. 하지만 CD에는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더 들어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꼭 CD를 구입합니다.) 한 곡은 '꽃 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의 early demo version으로, 배경음의 빗소리가 '봄비'를 연상시켜서 봄을 노래하는 이 EP에 어색하지 않은 감성을 전해줍니다. 다른 한 곡은 '오스카'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노래같지만, 그 고양이에 그녀의 '그대'와 '그대에 대한 감정'이 이입된 사랑노래입니다. 나긋하게 힘을 빼고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나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고양이'도 다분히 봄을 연상시키기에 다분히 '봄 노래'답습니다.

EP "꽃그늘"은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8개의 트랙 가운데 기존 발표곡과 연주곡을 제외하더라도 6곡의 신곡을 담고 있기에 CD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음반입니다. 또, 소책자 형식으로 상당히 공을 들인 부클릿은 그 소장가치를 더합니다. CD에 담겨진 음악 뿐만 아니라, CD를 수납하는 부클릿과 부클릿에 담겨진 내용물들까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반시장이 내리막을 향해가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시도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파스텔뮤직'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시도이기에 그 고집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싱어송라이터로 성큼 성장한 그녀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앨범들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어려운 음반시장의 상황 속에서도 10주년을 넘어 한 걸음씩 성장해가는 파스텔뮤직의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2013/10/04 02:31 2013/10/04 02:31

엘리시움 (Elysium) - 2013. 9. 3.

'디스트릭트 9(District 9)' 한 편으로 SF 영화 매니아들을 사로잡은 '닐 블롬캠프' 감독의 신작 '엘리시움(Elysium)'.

닐 블롬캠프 감독의 헐리우드 데뷔작 '디스트릭스 9'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린 SF 영화로서, 근미래를 배경으로 꽤 잘 짜여진 사실성과 개연성으로 전세계 SF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고, 새로운 SF 거장의 탄생을 예감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결말에서는 후속편을 강하게 암시하였기에, '디스트릭트 10'을 기다리는 SF 매니아들은 상당히 많았을 듯합니다. 하지만 닐 블롬캠프는 '디스트릭트 9의 후속편은 없다'고 선언했고, 그의 차기작으로 밝힌 '엘리시움'이 국내에서도 개봉했습니다.

이번 엘리시움의 배경이 되는 가까운 미래의 미국 'LA'의 모습은 전작의 배경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외된 계층이 살아가는 빈민가, 슬럼가의 모습은 매우 닮아있어서 디스트릭트 9을 떠올리기에도 충분합니다. 이런 열악환 환경을 그려내면서 역시 전작처럼 계층간의 갈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 또한 비슷합니다. 다만 전작이 '가난한 난민 외계인과 부유한 지구인'사이에서의 갈등은 한 지구인이 겪는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류 계층사이의 갈등을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그려가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배경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hand-held camera의 시각으로 움직임을 쫓는 장면들이나, SF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첨단 무기와 장비들 역시 엘리시움이 디스트릭트 9과 땔 수 없는 연관성을 느끼게 합니다.

디스트릭트 9에서 지구인과 외계인의 갈등을 통해 인류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을 우회적으로 꼬집고 있다면, 엘리시움에서는 그런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더 나아가 그 격차에 따른 '건강와 의료'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을 포함해서 영화 속 LA의 빈민들이 엘리시움에 가고 싶은 이유도 바로 생명과 관련된 '의료 서비스' 문제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화된 몇몇 나라들에서 빈부 격차에 따라, 생명 유지의 기본이 되는 '의료 서비스'에서도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영화가 던지는 생명과 희생의 메시지는 그럴싸 하지만, 개연성에서는 부족합니다. 영화 속 복선들로 결말은 예상이 가능하지만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점도 아쉽습니다. 100여분이라는 조금 부족했는지, 막판에는 성급하게 결말로 달려가는 기분입니다. 엘리시움 내에서의 알력 싸움이나 등장 인물들의 갈등에 충분한 시간이 할애되지 않은 점은 뭔가 빠진 느낌이 들게 합니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샬토 코플리'가 악역으로 등장하면서 변신을 꽤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는 악당 두목보다는 두목의 끈질긴 수하('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스타스크림'정도)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액션 스타가 된 '맷 데이먼'은 무난했고,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나는 '조디 포스터'의 비중이나 분량은 '용두사미'가 되어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3.5개입니다.


*맥스(Max)와 프레이(Frey)가 어린시절, 프레이가 맥스의 손에 그려준 그림(?)에서 두 사람의 이니셜 F+M은 결국 Female과 male, '모든 인간' 의미한다고 생각되네요. 어린 맥스에게 뿌리를 잊지 말라고 말한 늙은 수녀의 모습은, 그들의 근원인 지구를 천대하며 살아가는 엘리시움의 거주자들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과학기술을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위해 사용하라는 충고와도 같이 들립니다.

2013/09/05 15:48 2013/09/05 15:48

더 테러 라이브 - 2013. 8. 4.

방송국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안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테러' 영화 '더 테러 라이브(the Terror Live)'.

현재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고 할 만큼 성장한 '하정우'가 단독 주연으로 등장하고, 스튜디오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이 진행되는 영화이기에 상영시간의 절반 이상에서 그가 연기한 앵커 '윤영화' 모습만을 비춰줍니다. 하지만 영화는 지루하거나 느슨하기는 켜녕, 매우 긴박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앵커로서의 올바론 이미지와 적당히 불량하면서도 퇴폐적인 이미지가 섞여있는 '하정우'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연기들로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앵커 윤영화가 상대하는 폭파 테러범의 목소리 연기도 좋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일상에 지친 우리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이자, 국가에게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폭파 테러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영화는 국가를 위해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테러범이 바라는 고작 '한 마디 사과'이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음에도 '권위'를 내세워 거부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더 많은 희생이 발생하는 모습은, 선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현실의 정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사소한 과오를 이용한 언론 플레이로 무마시키려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고, 관객들을 '스톨홀름 신드롬'에 빠저들게 할 만한 충분합니다. 귄위적이고 부폐한 권력자들에 의해 국민 누구라도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피해자인)'폭파 테러범 박노규'가 될 수도 있고 '앵커 박노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앵커 윤영화는 재결합하려던 전부인을 잃고 목숨까지 위험하게 되면서, 폭파 테러범대신하여 결말을 내는 '새드 엔딩'이지만, 방송국 건물이 무너지면서 덮치는 건물의 모습을 확인하면 상당히 통쾌합니다. 평소 우리나라의 부폐한 정치판의 물갈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사당에 모여있는 국회의원들을 몰살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원작자 혹은 각본가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하정우의 뛰어난 영기와 더불어, 한정된 공간에서 긴박하고 팽팽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역량은 최근 국내 영화계에서 최고로 뽑을 만한 완성도의 영화를 만들었고, 장르적으로도 국내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3/08/18 02:43 2013/08/18 02:43

설국열차 (Snowpiercer) - 2013. 7. 31.

'박찬욱' 제작에 '봉준호' 감독으로 제작발표부터 기대를 모았던 "설국열차(Snowpiercer)".

한국을 대표할 만한 두 감독이 각각 제작자와 감독으로 뭉쳤고, 영화 '괴물'에서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영화속 부녀 '송강호', '고아성'과 이제는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어떤 영화에선가 보았을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에드 해리스' 등 준수한 캐스팅이 공개될 수록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기대는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영화이기에 봉준호 감독이 그려내는 미래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오랜만에 개봉 당일 심야 상영으로 보는 영화가 되었네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면서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이어지며 상승하는 신분 구조는 '설국열차'가 '국가' 혹은 '인류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 정도는 인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머리칸에 도착했을 때, 설국열차를 만든 '설국열차'의 '지도자'이자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윌포드'가 주인공 '커티스'를 회유하여 설국열차의 새로운 지도자로 만드려는 장면은,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지배구조를 비꼬고 있습니다. 더불어 윌포드가 말하는 꼬리칸의 폭동에 대한 진실과 반전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역시 많이 아쉽습니다.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가면서 점점 볼거리를 늘려갈 법했지만, 머리칸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고, 드디어 만난 윌포드는 이미 복선으로 예상이 가능했을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결말은 공허합니다. 열차가 폭파하고, 설원에 홀로 남겨진 두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99.9% 죽음 밖에 답이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북극곰을 '희망'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제 관점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오만에 대한 비웃음으로 보입니다. CW-7에 의해 찾아온 멸망인 인간 세계과 인류 대부분의 멸망일 뿐이지, 모든 생명체의 멸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도 북극곰처럼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들이 존재하니까요. 더불어 지구를 파괴하는 인류가 이렇게라도 사라짐으로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게는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인간은 무분별하고 무자비하게 지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바이러스'일 뿐이니까요.

400억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하는데, 제작비 대부분을 배우들의 출연료 등의 인건비로 사용했는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상영시간을 늘려서라도 설국열차에 대해 더 상세하게 묘사하고 볼거리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별점은 3개입니다.
2013/08/08 03:32 2013/08/08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