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 - 흐른

밴드 '로로스'로 더 유명한 '튠테이블무브먼트(TuneTable Movement)'의 유일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흐른'의 1집 '흐른'.

홍대 클럽 '빵'을 중심으로 하던 '흐른'은 남성 그리고 밴드가 위주였던 레이블 'TuneTable Movement'에 합류하여 2006년 EP '몽유병'을 발표하고 늦은(?) 나이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귀국하여 약 2년 반이 지난 2009년 3월 정규 1집 '흐른을 발표했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진 잉크가 퍼지는 듯한 그림의 자켓으로 그녀의 음악활동의 이름인 '흐른'을 표현하고 있는 1집은 그 내용면에서도 일맥상통하여, 전작인 EP '몽유병'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일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EP와 1집 사이에 있었던 유학을 통해 느낌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첫곡 "Don't feel sorry"는 영어 가사의 곡으로 나름 유학파이자 페미니즘 성향의 그녀를 엿볼 수 있습니다. EP '몽유병'에 이어지는 그녀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반가울 따름입니다. 더불어 EP 수록곡 '몽유병'의 당돌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는 제목에서 유명한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힌트를 얻은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빵'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떤 '정치적 색'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쿠스틱의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예상외로 디스코풍의 전자음이 등장하면서, 흐른의 음악에 대한 선입견의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싱에 참여한 '누군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네요.

"다가와"는 EP의 '스물일곱'과 마찬가지로 가사에서 흐른의 소박하지만 솔직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트랙으로, 연주에서도 그녀다운 편안함이 지배합니다. 봄에 발매되었지만, 가사에서 여름 시즌을 노렸다고 생각되고, 요즘같은 여름밤에 듣기 좋네요. "어학연수"는 실제 어학연수를 다녀온 그녀가 타지에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Wake Up in the Morning"은 애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사가 재밌는 트랙입니다. 여름 시즌을 노렸다고 확신시켜주는 "You feel confused as I do(Summer Mix)"는 마지막 트랙인 "Autumn Mix"와 비교하며 들으면 재밌습니다. Summer Mix가 댄서블한 빠른 템포와 시원한 전자음으로 여름을 노렸다면, Autumn Mix는 느린 템포의 넉넉한 밴드 사운드로 가을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두 곡 "산책"과 "Global Citizen"은 삶과 세상에 대한 사색이 짙게 느껴지는 트랙들입니다. "산책"은 버려진 기타를 통해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Global Citizen"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순들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종족분쟁의 케냐와 캐냐산 커피, 기아의 잠비아와 옥수수를 먹여 키운 소고기 햄버거라는 잊고있던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직시하게 합니다. 적당히 댄서블한 사운드에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직설적이면서도 풍자적인 가사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아프게 와닿습니다. 앞선 두 곡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You feel confused as I do(Summer Mix)"와 같이 빠른 템포는 세 곡을 연작 같이 느껴지게 합니다.

이어지는 세 곡은 '빵'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공연하는 그녀를 느끼게 해주는 트랙들입니다. 가사에서 사랑과 배려, 그리고 하얀 거짓말이 떠오르는 곡 "할 수 없는 말"은 둘이어서 더욱 외로울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그녀의 울림 때문에 아름다운 트랙입니다. "그렇습니까"는 EP 수록곡 '거짓말'의 연장선 위에 있는 조심스러운 사랑 노래입니다. 아니, 그 조심스러움 때문인지, 솔직하지 못한 '그녀의 노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지만 결론은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것인가 봅니다. "Song for the Lonely"은 'Sarah McLachlan'의 'Angel' 조용하지만 굳건한 위로와 지지가 느껴지는 트랙입니다. 세 곡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울림은 아마도 가장 가장 '흐른'다운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숨겨진 야심작이었던 앨범 '흐른'은 그 야심만큼 곡 자체의 탁월함 뿐만아니라, 연주를 담당한 세션들에도 각자의 밴드 활동으로 실력을 입증받은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뮤지션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진이라고 치면 '후보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믹싱 및 마스터링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문외한인 저에게도 느껴지는 소리의 질은 아마도 튠테이블 무브먼트를 통해 발매된 음반들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소속사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음반 배포를 담당한 '파고뮤직'의 빈약한 홍보 능력 때문인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쩌면 비단 앨범 '흐른'과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디씬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인디씬에서도 요 몇년 사이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메인스트림과 마찬가지로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홍보력이 비중이 점점 커지는 듯하여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홍보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7/15 23:41 2009/07/15 23:41

노리플라이(No Reply) - Road

'제 17회 유재하 가요제' 수상으로 알려진 '노리플라이(No Reply)'의 데뷔앨범 'Road'.

2008년 3월 앨범에 앞서 싱글 '고백하는 날'을 발표하였지만, 큰 인상을 주기에는 힘든 '무난함'의 인상이 강한 곡이었습니다. 더구나 같은 무대에서 수상을 했던 '오지은'이, 가요제에서는 순위는 더 낮았지만(노리플라이는 은상, 오지은은 Heavenly라는 밴드로 동상) 더 큰 주목을 받으면서, 결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수 많은 밴드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싱글로부터 약 1년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에서 '타루'와 함께한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탁월한 감각을 들려줌으로서 발매될 데뷔앨범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데뷔앨범이 공개되었습니다. 첫 싱글 이후 약 15개월이라는 긴 간격을 두고 발매된 데뷔앨범이기에, 더구나 발매전부터 소속사의 광고가 대단한 편이었기에, 오히려 우려가 되었습니다. 홍대에서 공연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데뷔앨범을 발매하고 무너져버리는 밴드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죠. 과연 노리플라이도 그렇게 사라지려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맑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끝나지 않은 노래'는 첫 곡으로서 절묘함을 담고 있는 트랙입니다. 우선 제목부터 마지막 곡의 제목으로도 어울릴 법하지만, '끝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시작'을 연상시킵니다. 지금까지의 인디음악들을 뛰어넘겠다는 자신감(혹은 오만함)이 담긴 제목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깔끔한 팝락 사운드는 앨범 전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야'는 도입부의 두드러지는 베이스와 피아노 연주에서 'coldplay'의 곡을 연상시킵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트랙입니다. 타이틀 곡 '그대 걷던 길'은 노리플라이의 서정성이 잘 드러나는 트랙입니다. 스트링이 참여한 첫 트랙으로, 전반적인 무난함 때문에 타이틀 곡으로 아쉽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다른 트랙을 타이틀 곡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 더 좋은 트랙들이 있으니까요.

보컬 '권순관'의 가창법은 몇몇 면에서 '이승환'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는데, 바로 'World'에서 그 인상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가사에서부터 웅장한 스트링과 코러스의 편곡까지 매우 이승환의 곡들을 연상시킵니다. '뒤돌아 보다'는 화려헀던 앞 트랙과는 달리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하는 조용한 트랙입니다. 바로 유재하 가요제에서 노리플라이에게 은상을 안겨준 곡이기에, 탁월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와 조우한 'Fantasy Train'은 밴드 노리플라이의, 팝과 락에만 국한되지 않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흐릿해져'는 타이틀 곡보타 더 뛰어난 감성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소중한 기억들이 점점 흐려져가는 안타까움을 보컬의 울림과 적재적소의 스트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그 멜로디'는 본인의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오지은'의 또 다른 모습에 더 눈길이 가는 트랙입니다. 동상이었지만 은상보다 더 떠버린, 같은 소속사(해피로봇) 오지은의 지원사격은 노리플라이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재밌습니다. 째즈를 차용한 라운지는, 노리플라이에게나 오지은에게나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되는데, 두 보컬이 어우러지면서 상당히 괜찮은 하모니를 이끌어냅니다. 라이브로 들으면 또 어떨지 가장 기대되는 트랙이기도 합니다.

'Violet Suit'는 역시 같은 소속사 '나루'가 함께한 트랙입니다. 노리플라이보다 강한 음악을 들려주는 나루의 영향인지, 앨범 수록곡들 가운데 제목처럼 가장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앨범 제목과 같은 'Road'는 진중해진 보컬이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그 진중함 덕분에, 조금은 '마이언트메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마지막 '바람은 어둡고'는 앞서 언급한 '흐릿해져'와 함께 타이틀 곡보다 더 뛰어난 곡으로 꼽고 싶습니다.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제목은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쓸쓸함한 마음을 흔드는 스산한 바람은 분명 어두우니까요.
 
앨범은 전체적으로 한 곡 한 곡 건너뛰고 들을 일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같은 소속사로 선굵은 인상의 오지은이나 소속은 다르지만 해피로봇을 통해 앨범이 유통되는 '발랄함과 유쾌함의 대명사', '페퍼톤스'를 생각했을 때 밴드 고유의 색은 부족한 느낌입니다..(물론 오지은은 자체제작 1집의 성공으로 해피로봇에 입사했고, 페퍼톤스는 EP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요.) 90년대 거장들의 영향이 느껴지는 '웰메이드 가요'의 무난함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무난함 덕분에 이 앨범만으로는 이 밴드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노리플라이라는 이름을 강렬하게 오래도록 심어주기에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두 세 트랙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무난함을 유지하며 크게 다르지 않은 각 곡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하구요.

하지만 오지은, 한희정, 요조, 타루 등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홍대 앞을 벗어나 더 많은 대중을 향한 활약이 돋보이는 최근 언더그라운드씬에서, 깔끔하고 완성도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노리플라이'의 등장은, 메탈이나 펑크처럼 강한 음악을 즐겨듣지 않는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오랜만에 들을 만한 남성 보컬 밴드의 등장이기에 반갑습니다. '단지 팝(Just Pop)'이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승화시켰던 '마이언트메리'처럼 밴드 '노리플라이'만의 고유의 색을 찾아가는 것이 이 밴드에게 남은 과제라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6/21 22:47 2009/06/21 22:47

뎁(deb) - Parallel Moons

'페퍼톤스'의 마스코트 '뎁(deb)'의 홀로서기 1집 'Parallel Moons'.

2008년 3월에 발매된 '뎁'의 데뷔앨범은 여러모로 '묘한' 앨범이었습니다. 같은 소속사(카바레 사운드)이고,뎁과 함께 유명해진 '페퍼톤스'의 2집 'New Standard'도 같은 2008년 3월에 1주일 차이로 발매된 점이 그렇습니다. Parallel Moons가 2008년 3월 18일에 발매 되었고, 페퍼톤스 2집이 1주일 뒤인 3월 25일에 발매되었습니다. 또, 페퍼톤스의 EP와 1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뎁의 비중은 2집에서는 크게 줄어서 페퍼톤스 2집과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타이틀부터 독특한 'Parallel Moons', '평행하는 달들'은 평행우주를 떠올리게 하면서, 홈페이지를 통해 독특함을 보여준 그녀의 개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평행 달들처럼 그녀도 평행우주 다른 편에 존재하는 또다른 그녀와 교신중일지도 모르죠. 그 교신 내용들을 살펴보죠.

첫곡 'Scars into Stars'는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인상적인 앨범의 시작을 들려줍니다. 괴기스러울 정도로 독특한 가사는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었던 그녀의 정신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줍니다. 이상한 서커스가 펼쳐지는 놀이동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Golden Night'는 페퍼톤스의 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팝-락 넘버입니다. 흥겨운 베이스 라인에 키보디와 미디 사운드, 적당한 발랄함과 희망으로 가득찬 느낌은 역시 '페퍼톤스의 뎁'답구나 라는 느낌입니다. 한편으로는페퍼톤스 2집의 'Drama'와 비슷하게 와닿는 부분도 있습니다.

유쾌함으로 이어지는 'Astro Girl'은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그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독특한 정신세계를 'astral'하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astro는 바로 astral에서 왔을 것이라고, 그녀의 홈페이지를 통해, 추측해봅니다. '길거리의 불량소녀 뎁'하면 떠오르는 아코디언도 적재적소에서 빛이 납니다.

'일랑일랑'은 탱고풍으로 역시 아코디언이 멜로디의 주가 되는 트랙입니다. 흥겨운 리듬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애수가 느껴집니다. 민속음악에서 유래한 탱고, 많은 민속음악들에는 각 민족의 애수가 담겨져있는데, 그래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앞선 '일랑일랑'에서도 느껴지던 점이지만 '도파민'에서는 확연히 '성인 취향'으로 넘어갑니다. '페퍼톤스의 뎁'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당황할 수도 있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절절한 애수는 지속됩니다.

베이스가 인상적인 째즈풍의 '9세계'에서 길거리 소녀는 어느 째즈바의 보컬로 변신해있습니다. '치유서커스'에서는 아슬아슬한 곡예사가 됩니다. 흔들리는 느낌의 오르간 소리는 불안감을 더해줍니다. 제목만큼이나 화려하게 시작하는 '야간개장', 하지만 째즈풍으로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놀이동산의 두근거림을 표현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성인 취향에서 잠시 길거리로 빠져나오는 출구를 찾은 기분입니다.

다시 상쾌한 느낌의 '푸른 달 효과'를 지나 앨범의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꽃'이 이어집니다. '얼음성'의 화려함은 '야간개장'과 닮아있습니다. 동양적인 서정성이 느껴지는 멜로디와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미로 숲의 산책'은 마지막 곡답게 한적하고 무난하게 진행됩니다.

앨범을 살펴보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묘합니다. 처음 네 곡은 페퍼톤스의 뎁에서 솔로 뮤지션 뎁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반가운 트랙들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트랙들은 혼란에 빠뜨리며, '혹시 이런 음악이 진정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더불어 혼란스러운 트랙 구성은 한 곡 한 곡에 대한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앨범이라는 테두리 혹은 주제 안에서 모인 곡들이 아닌, 지금까지 뎁의 단독 작업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전반부의 트랙들이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은 작업중이라는 2집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게 합니다. 별점은 3.5개입니다.

2009/06/16 00:28 2009/06/16 00:28

Ephemera - Monolove

2004년에 발표되었고 2008년 파스텔뮤직을 통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Ephemera'의 세 번째 앨범 'Monolove'는 앨범의 완성도 면에서 분명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앨범입니다. 더구나 정식발매와 함께 이전 앨범 수록곡들 중 2006년 국내에 소개된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지 못했던 트랙들을 보너스로 포함한 2CD 사양으로 발매되었습니다.

'Ephemera', 사전적 의미는 '하루살이' 혹은 '순식간, 덧없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노르웨이의 여성 삼인조 밴드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혹시 몇몇 CF에 삽입된 그녀들의 음악을 들려준다면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작품 '상실의 시대'의 원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노르웨이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나라입니다.

실로폰 소리로 시작되는 'Chaos'는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어 제목처럼 혼란스러운 작은 마녀들의 실험실을 연상시킵니다. 이어지는 'On the surface'는 결국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후회가 담겨있지만 서글프지는 않습니다. 'City light'는 제목처럼 도시의 밤거리를 연상시킵니다. 붉은 신호등은 초록 신호등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지나갑니다. 도시의 불빛 아래서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Leave it at that'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소녀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정적으로 가득한 카페를 소란스럽게 혹은 즐겁게 뒤집어놓으려는 야심이 느껴진달까요. 'Thank you'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인도해주는 지난 사랑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왠지 서글픈 현악 연주와 더불어 'You left your footprints in the snow'라는 구절이 가슴에 절절히 닿습니다.

자신을 위해 웃어달라고 노래하는 'Put-om-smile'과 용기를 북돋는 조언같은 'Dos and don'ts'를 지나면 신나고 힘찬 발걸음같은 'Paint your sky'가 귀를 즐겁게 합니다. 역시 좌절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될 기사를 들려줍니다.
 
박수소리와 우쿨레레가 흥겨운 'Dead against plan'에 이어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Monolove'가 흐릅니다. monolove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monologue가 독백을 의미하듯 mono가 '홀로, 혼자'를 의미하기에 '혼자하는 사랑', '짝사랑'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통과 아름다움, 좋음과 나쁨같은 사랑의 모순된 감정들을 노래하는 가사에 공감합니다.

마지막 세 트랙은 '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트랙들입니다. 'Call me home'은 바람들이 주문처럼 들리는 곡이고, 'End'는 사랑의 끝에서도 그대를 믿는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like a tongue stuck on a frozen iron bar'같은 가사는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 만큼 공감이 갑니다. 철막대기는 아니더라도 여름날 아주 차가운 하드바에 혀가 붙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식하지 않을까요?  그대와 함께 '영원한 끝(forever end)'을 바라는 마음은 처절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long'은 사랑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밴드의 이름처럼 한순간 덧없이 지나가겠지만, 그럼에도 소중하고 공감할 만한 '소녀적 감수성'을 들려주는 앨범 'Monolove', 수록곡 한 곡 한 곡이 유리병에 든 형형색색 여러가지 맛의 알사탕만큼 달콤하고 소중합니다. 더불어 앨범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보너스 CD에 수록된 곡들도 Ephemera답게 흥미롭고 소소한 소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시련을 당한 친구에게 진실된 위로를 노래하는 'Air'는 강력 추천 트랙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6/06 15:32 2009/06/06 15:32

해오 - Lightgoldenrodyellow

오랜 기다림 후의 결실, '해오'의 데뷔앨범 'Lightgoldenrodyellow'.

'데뷔앨범'이지만 사실 '해오'는 '중고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올드피쉬'(현재는 Soda 혼자 활동 중인)의 초창기 멤버로 올드피쉬가 가장 좋았던 시기의 음반들, EP '1-3(2004)'과 1집 'Room. Ing(2005)'에 참여하였습니다. 올드피쉬의 1집 제작을 끝으로 해체하였고 소식을 들을 수 없다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금은 사라진 '밀림닷컴'에서 '옐로우 마요네즈(yellow mayonaise)'라는 이름으로 올린 데모곡을 통해서 였습니다. 음반을 제작해도 될 정도로 많은 곡들이 올라와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  음반으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2009년 '해오'라는 낯선 이름의 뮤지션을 온라인 음반샵을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수록곡 리스트를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이었습니다. '바다로 간 금붕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제목은 밀림닷컴에 올라왔던 데모곡과 동일한 제목으로 그 독특함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본명이 '허준혁'인 '해오'는 아마도 성씨 '허'를 영어로 'Heo'로 표기하고 그 발음이 '해오'일 수 있기에, 지금의 '해오'라는 별명을 쓰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앨범 'Lightgoldenrodyellow'의 첫인상은 역시 '시티팝'입니다. 쓸쓸한 도시인의 감성이 절절히 담겨있다고 할까요? 길고 톡특한 제목의 첫 곡 '바다로 간 금붕어는 돌아오지 않았다'에서부터 그러한 감성은 뚜렷합니다. 특별한 클라이막스 없이 슬로우 템포로 흘러가는 잔잔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깜빡이며 점멸하는 가로등처럼 편안합니다. 제목은 일탈을 꿈꾸는 도시인의 허황된 꿈이야기 같습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하듯, 금붕어는 민물고기로 바다를 꿈꾼다고 하여도 바다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문명 속에서 지친 도시인이지만 도시라는 문명을 벗어나서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바다로간 금붕어는 어떻게 되었길레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나 죽지않고 용궁에서 용왕을 만나 호사를 누리고 있을까요? 일장춘몽(一場春夢)만 같습니다.

기계음처럼 변형된 목소리의 울림이 인상적인 'UFO'에서도 그런 일탈의 꿈은 계속됩니다. 결코 만날 수 없을 UFO가 그 덧없음을 이미 단정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가사 '나 여기 있어'에서 그 만큼의 간절함이 밝은 후광에 휩쌓인 뚜렷한 형체처럼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한 번 즈음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제목의 '오후 4시의 이별'은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의 수필같은 곡입니다. 익숙함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익숙함이 사라진 시간 또한 어쩐지 익숙합니다. 사랑도 이별도, 도시인에게는 모두 고독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도시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사랑은 '고독의 출구'가 아닌 '고독으로의 입구'이고, 이별은 그 가면을 벗고 익숙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도시의 고독이란 들판을 버리고 도시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원죄일까요?

'작은 새'는 시종일관 무거운 평정을 유지하는 이 앨범에서 몇 안되는 밝은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고, 사랑 이야기로서는 용기 없는 우회적인 고백입니다. 새의 날개를 빌어 꿈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작은 새'로 한정지음으로써 현실에도 타협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작은 존재일뿐이니까요.

담담한 이별을 노래하는 '작별'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심상이 담겨 있는 트랙입니다. 맑은 날 해질 무렵의 공기처럼 알 수 없는 그리움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갑니다. '비'에는 애써 쿨한 척하는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La Bas'는 프랑스어로 '그곳으로'라는 뜻으로, 프랑스어 제목은 익숙한 현실에서 이방인이 된듯한 낯선 기분을 표현한다고 생각됩니다. '기차 기나던 육교'는 한 편의 그림일기같은 트랙입니다. '건네지 못한 이야기'은 '작은 새'에 이어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긴 기다림의 끝에서 만나는 기쁨의 순간들은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눈 덮인 밤'은 보사노바 뮤지션 '소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고요한 밤 소복히 내리는 눈처럼 피아노 연주는 은은합니다. 해오와 소히, 두 사람의 화음은 잊혀진 이야기들을 떠오르게할 것만 같은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곡이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죽어서 나무가 되고 그리움이 되는 상당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과 그리움이 만나 노래가 됩니다.

'내 작은 방' 역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하던 잔잔함은 현악과 합세하면서 절정에 이르고, 그리움은 단순히 방구석의 지질한 감정이 아닌,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추억의 향연이 됩니다. '푸른 밤, 푸른 잠'은 시티팝다운 마지막 보컬 트랙입니다. 도시인의 하루를 마감하는 밤과 잠이지만 꿈을 통한 또 다른 일탈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소박한 사치인 꿈을 통해서라도 도시인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연주 트랙 '눈 내리다'는 올드피쉬의 EP '1-3'에 히든 트랙으로도 실렸던 곡입니다. '눈 덮인 밤'의 intro로 쓰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 13트랙으로 55분에 이를 정도로 짧지 않은 앨범이지만,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건너뛰는 트랙없이 끝까지 듣게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마도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과 탄탄한 완성도에서 그런 매력이 나오지 않나 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운 없는 해오의 보컬은 일상에 지친 도시인으로서의 공감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도시인의 꿈과 고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공명이 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6/06 10:46 2009/06/06 10:46

한희정 - 끈

'더더'와 '푸른새벽'의 히로인 '한희정', 솔로 1집 발표 후 약 10개월만에 EP '끈' 전격 발표.

'더더'와 '푸른새벽'이라는 경력으로 수식되었던 '한희정'은 작년 7월에 발매된 솔로 1집 '너의 다큐멘트'로 그녀의 경력들과는 다른 상큼한(?) 모습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녀의 1집이 결코 나쁘지 않은 음반이었지만, '푸른새벽'시절 공연때마다 비좁은 '빵'을 가득 메웠던 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였던 그녀에게 밴드 사운드와 샤방함은, 물론 공연장에서는 좋았지만 방에서 듣기에는, 명곡 '스무살'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이질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앨범의 키워드는 두 개입니다. 앨범의 타이틀 '끈'과 '어쿠스틱'입니다. 앨범 자켓에서 그녀가 잡고 있는 실뭉치, 바로 '끈'이며, 수록곡들을 들어보니 아마도 '인연의 끈'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쿠스틱'은 말 그대로, 기타와 함께하는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격의 앨범 '끈', 시작합니다.

'어쿠스틱'을 표방하고 나섰기에 첫 곡의 제목은 'Acoustic Breath'입니다. 환경소음이 지나간 후 시작되는 기타 연주와 그녀의 목소리, 너무나도 기다렸던 신선한 어쿠스틱의 느낌입니다. 더불어 '끈', 그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기위해 그녀의 기타와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아침 공기처럼처럼 상쾌하지만, 무거운 한숨처럼 서글픔이 묻어있습니다. 과연 그녀가 기다리는 '너'는 그곳에 있을런지요.

이어지는 '러브레터'는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역시 그녀와 기타의 조합, 거기에 새로 합류한 첼로는 서글픈 심상을 대변합니다. 조근조근 키보드 소리는 눈앞을 흐리는 눈물처럼 아롱거립니다. 앞선 Acoustic Breath의 자신의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노래라면, 러브레터는 '너에 대한 바람'을 노래합니다. 결국 보내지 못할 편지는 놓쳐버린 끈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제가 '푸른새벽'이 아닌 '한희정'으로서 그녀에게 기대하던 모습, 바로 이곡에 담겨있습니다.

'끈', 제목 그대로 인연의 끈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마지막은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만'은 1분 30초 정도의 짧은 곡으로 공허한 어리광같은 곡입니다.

'솜사탕 손에 핀 아이'는 그녀의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던 곡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천진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천진하게 부르지만 가사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놓쳐버린 끈에 대한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흐드러지게 핀 꽃들처럼 환하게 웃을 수 밖에 없겠죠.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을 수 밖에 없겠죠. 추억은 추억으로. 그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추억이 소중한 그 만큼,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추억에 대한 예의일테니까요.

'멜로디로 남아'는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번에는 밴드 'Nell'의 '김종완'과 함께합니다. 이미 놓쳐버린 끈에 이제 미련은 남아있지 않나봅니다. 미련들은 모두 눈녹듯 사라지고, 인연에 초연해진 마음은 끈의 그림자를 멜로디로 승화시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귀에 거슬립니다. 차라리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버전으로 수록되었다면 더 좋았을 법하네요. (절대 질투하는 건 아닙니다.)

'끈'에서 받침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끝'이라는 아픈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어쩌면 '끈'의 양쪽을 잡고 있는 '두 사람(二)'에게는 결국 '끝(ㄴ + 二 = 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끈이 결국 '헛된 꿈'이었다고 새침하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이제서야 어떤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로 돌아온 그녀, 게다가 그녀에게 기대하던 아름다운 곡들과 함께하는 그녀,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1집이 세련되고 멋지지만 어딘가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어색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면, 드디어 이 앨범에서 두 어깨에 힘을 빼고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편안한 옷을 찾은 느낌입니다.

Acoustic Breath는 어쩌면 그녀의 이런 모습을 기다려온 팬들을 위한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러브레터는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기타와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언제까지나 귀기울이고 있을테니까. 언제까지나 음악과의 끈을 놓지말아주세요. 반대편에서 그 끈을 꼭 잡고 있을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09/05/28 20:56 2009/05/28 20:56

어른아이 - Dandelion

데뷔앨범 'B TL B TL' 이후 약 2년 반만에 새앨범 'Dandelion'으로 찾아온 '어른아이'.

2집의 타이틀 'Dandelion'의 의미는 '민들레'입니다. 자켓을 보면 여러 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수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자켓 디자인에 참여한 작가의 별명이 '꽃도둑'이라고 하니 재밌습니다. 1집 'B TL B TL'은 타이틀처럼 비틀비틀거리는 슬픔으로 가득찬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괜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비내리는 날 정도가 아니면 즐겨듣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2집에서도 과연 그럴지 살펴봅시다.

첫 곡 'Annabel Lee'는 파스텔뮤직 홈페이지에서 미리듣기로 짧게 공개되어 많은 기대를 모은 트랙입니다. 가사는 '우울과 몽상'으로 유명한 '애드거 앨런 포우'의 동명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1집의 첫곡 'B TL B TL'을 기억하시나요? 그 곡에서 시작과 함께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이 곡에서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사에  'a kingdom by the sea'가 등장하기 때문이겠죠. 해변을 거닐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느릿느릿 읊는 목소리는 세상 풍파에 초탈한 느낌입니다. 파도소리와 함께 끝날 것만 같았던 곡은 파도에 무서지는 물거품처럼 슬픔이 서려있는 목소리로 여운을 남깁니다.

'행복에게'는 지금까지의 '어른아이'의 곡답지 않게 밝은 제목과 그 만큼 밝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하니, 지긋이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오겠죠. 이 앨범을 관통하는, '어른아이의 변화'를 알리는 곡이 아닌가 하네요.

'민들레'는 이 앨범 타이틀 'Dandelion'과 같은 제목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을 노래합니다. 앞선 두 곡과는 보컬의 음색이 다릅니다. Annabel Lee가 두성의 느낌이었다면, '행복에게'는 가성이었습니다. 이 곡은 육성 정도가 되려나요? 그 토닥여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오보에(?) 소리도 인상적입니다.

음색이 또 다른 'Fool', 보고싶은 얼굴을 우연히 보았을 때 느낄 법한 감정들, 생각해두었던 말들은 사라지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쩔수 없다고 내게 말하지만, 어쩔수 없다면 내게 말하지마!'라는 상당히, 아니 너무나 긴 제목의 이 트랙은 상쾌하게 질주하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Miss'는 제목처럼 그리움에 대한 곡으로, 전작의 'Sad thing'처럼 간단한 가사의 반복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끝없이 울려퍼져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그리움'이라는 미로에요.

'아주 아주 슬픈꿈', 제목만으로는 상당히 슬픈 곡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멜로디는 슬프기보다는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밝아진 분위기이고, 1집의 슬픔이 주체할 수 없어 쓰러질 정도의 무게였다면 2집에서의 슬픔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여서 한 때의 감기처럼 지나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서성이네'는 groovy한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트랙입니다.

'You' 화려한 현악 편곡으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트랙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 결국은 바로 '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확실히 느꼈겠죠? 어른아이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쿨한 멋에 취해있던 모던락 소녀가 봄 바람에 이끌려 어여쁘게 꾸밀줄 하는 숙녀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늦은 사춘기일까요?

마지막 곡이라고 할 수 있는 'I Wanna B'는 이제 'You'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트랙입니다. 간결하지만 뭔가 깜찍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1집에서 이런 상큼한 곡이 있었던가요? 'Annabel Lee(single version)'은 파도소리가 빠진 버전입니다.

'Dandelion'의 꽃말은 '신탁', '사랑의 사도',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 여러가지가 있답니다. '어른아이'에게 신탁이라도 내려졌을까요? 1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하고 상큼한 느낌들, 어떤 뮤지션들의 어떤 변화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을 수 있지만 어른아이의 이런 변화들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5/28 14:01 2009/05/28 14:01

Alice in Neverland - Festa in Neverland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 달'의 두 프로젝트 밴드 '바드(Bard)'와 'Alice in Neverland'. 두 프로젝트 중 일반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길을 선택한 'Alice in Neverland'의 두 번째 앨범 'Festa in Neverland'.

'두번째 달 monologue project'라는 긴 머리를 붙이고 전작을 낸 'Alice in Neverland'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두번째 달 보다 먼저 2집을 발표헀습니다. 전작이 self-titled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의 제목은 전작과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앨범 표지는 전작의 고요한 느낌과는 다른 왁자지껄한 놀이동산으로 'Festa'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아쉽습니다.)

'두번째 달'의 일곱 명의 멤버 중 네 명이 결성한 'Alice in Neverland'는 전작에서 두번째 달의 4/7만큼이 아닌 두번째 달에 견줄 만큼이나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었기에 기대하기에 충분합니다. 서정성이 강했던 전작과는 달리 제목부터 상당히 흥겨울 것으로 예상되는 Festa in Neverland에 참가해 보죠.

'Welcome to Festa'는 첫 곡다운 제목과 앨범 타이틀과 어울리는 경쾌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시계 초침이 놀아가는 느낌의 바이올린 소리와 똑딱거리는 소리는 놀이동산의 흥을 돋굽니다. 다채로운 악기의 사용으로 다양한 놀거리가 있는 놀이동산 분위기는 달아오릅니다. 퍼커션은 두근거리는 아이들의 마음, 트라이앵글 등 반짝 거리는 금속 악기들의 소리는 반짝 거리는 아이들의 눈빛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꿈 같습니다. 멜로디의 중심에 흐르는 바이올린 연주는 춤추듯 걷는 앨리스의 발거음이 아닌가합니다. 정작 이 곡을 쓴 베이시스트 '박진우(혹은 박연)'은 묵묵히 앨리스와 아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철든 피터팬'같습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바람을 타고 온 편지'는 1집 발매 후 합류한 새 멤버, 기타리스트 '염승재'의 곡입니다. 하지만 곡의 진행은 '두번째 달'에 수록된 '서쪽하늘에'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만큼 새 멤버가 이 밴드에 잘 융화되었다는 의미이겠죠? '서쪽하늘에'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여러모로 1집보다 '두번째 달'의 수록곡들, '서쪽하늘에', '바람구두', '바다를 꿈꾸다'를 생각납니다. 앨범 '두번째 달'이 민속음악을 기반으로한 '퓨전'이었다면, 1집은 서정성에 기반으로 한 '뉴에이지(혹은 크로스오버)'에 가까웠습니다. 두번째 달이 추구했던 '민속음악'은 개개인의 정서보다는 '민족'이라는 집단의 정서가 녹아있는 음악인데 반해, '뉴에이지(new age)'는 그 이름처럼 개개인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 담고 있는 진취적인 기상과 다수의 코러스와 아이리쉬 휘슬은 바로 '두번째 달'의 정서와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두번째 달'의 2집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트랙이구요.

'안녕! 하루'는 다시 개인의 서정성으로 돌아오는 트랙입니다. Alice in Neverland의 'CF의 여왕', '최진경'의 곡으로 역시 영화 한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좋을 정도로, 탁월한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안녕'은 아침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늦은 오후에 하는 인사같습니다. 노을질 무렵의 저녁 공기 냄새 같은 기타연주가 그렇고, 여유롭게 흐르는 베이스와 퍼커션이 그렇습니다. 피아노는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쾌한 발걸음입니다. 그 경쾌한 발걸음은 아코디언이 이어받아 하늘을 가르는 기쁜 마음이 됩니다. 반전처럼 마지막에 갑자기 빨리지는 연주는 밥시간에 늦은 주부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양탄자의 꿈'은 1집에서도 아라비안 스타일의 '인형사'를 작곡했던, 탱고 매니아 바이올리니스트 '조윤정'의 곡입니다.(그녀는 역시 탱고 매니아인 '캐스커'의 공연에 단골 세션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형사의 후속곡이라고 할 만한 이 곡으로 역시 중세의 아라비아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연주는 비좁고 혼잡한 아라비아의 시장을 가로질러 사막의 하늘 위로 신나게 날아오릅니다. 사실 이런 그녀의 스타일은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양탄자의 꿈'에서는 그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광대의 둘째 딸'은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만큼이나 독특하고 사연이 궁금한 제목으로 역시 박진우의 곡입니다. '두번째 달' 수록곡 중에서도 온전한 '뉴에이지'풍이었던 '얼음연못'을 재편곡한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 곡은 '째즈'풍입니다. 한 없이 슬픈 삶을 살았을 법한 '외눈박이 소녀'와는 다르게 '광대의 둘째 달'은 무대 위에서 우아한 묘기로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고 있나봅니다.

'Spartacus'는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한 커버곡으로 1960년대 동명 영화의 OST 수록곡입니다. 제목에서는 스파르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00'처럼 파괴적일법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도 스파르타와는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 곡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미국 서부의 황야를 질주하는 장면이 떠오를 만큼 자유롭고 낭만적입니다.

'Alice in Neverland판 놈놈놈', 'Neverland 횡단열차'는 앞선 Spartacus에 이어 광활한 서부를 연상시키는 트랙입니다. 흥겹고 진취적인 Neverland의 낮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Neverland의 밤이 교차하며 이 점은 이 곡이 두 작곡가(최진경, 염승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신나게 달리는 횡단열차의 저 먼 끝에는 낭떠러지 위 끊어진 철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밀이야기'는 여왕님(최진경)의 곡으로 잔잔한 피아노 선율 위로 조금 허스키한 보컬이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곡 또한 OST 분위기로 엔딩 테마로 어울릴 법합니다.

'Festa in Neverland'는 앨범 타이틀 곡으로 드럼 및 퍼커션을 담당하는 '백선열'의 유일한 곡입니다. 기존에 이 밴드가 사용하던 악기 외에도 북, 징, 꽹가리 등 우리민족의 악기들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Festa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줍니다. 놀이동산에서 볼 수있는 세계 여러나라의 민속의상을 입은 페레이드를 이 한 곡에 담아놓았습니다.

'잠수부의 운명'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진행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에메랄드 빛의 물과 색색의 물고기로 가득한 얕은 바다를 지나 더 깊이, 고요한 심해에서 잠수부는 한 없이 외로워집니다. 마치 우주에 홀로 남겨져 기약없는 구조를 기다리는 우주비행사처럼요. 하지만 바다의 바닥에서 잠수부가 만난 것은 아름다운 용궁일지도 모릅니다.

'토리의 춤'은 제목처럼 춤을 출 만큼 흥겨운 곡입니다. Festa에 한창 달아오른 열기와 뜨거워지는 밤에 춤이 빠질 수 없겠죠. '길'은 전작의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part 1'처럼 처량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한 때의 Festa가 끝나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꼭 그럴 법합니다. 사랑은 우리 가슴 속에 언젠가 피어나고 언젠가 지겠지만, 또 다시 피어나서 끝임 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한 번의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이라는 그 마음의 집합체는 끝없이 지속되겠죠. 그렇기에 '영원한 사랑'이 아닌 '끝없는 사랑'이 아닐까요?

'보너스트랙'같은 'Infinite love'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가수 '제이(J)'가 가사를 썼고 노래는 '잉거 마리'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울려퍼지는 사랑의 단어들은 '두번째 달'의 'Falling stars'만큼이나 낭만적인, 연인들을 위한 곡이 탄생했음을 알립니다.

마지막 곡 'Tale of Island'은 마지막답게 쓸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줍니다. 또 한바탕 신나게 여행했던 Neverland를 떠날 시간인가 봅니다.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면 Neverland는 이야기(tale)가 되겠죠.

'두번째 달'보다 앞선 2집을 발표하고 자신들만의 음악색을 만들어가는 'Alice in Neverland', 이제 이 밴드의 앞에 붙는 '두번째 달'이라는 수식어는 떼어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꾸준한 활동과 음반발표, 그리고 훌륭한 결과물까지 좋은 뮤지션의 요소를 갖춘 이 밴드는 점점 '진정한 아티스트'의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협소한 음반시장, 그리고 더더욱 협소한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연주음악계에서 단비와도 같았던 '두번째 달'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Alice in Neverland는 더 오래오래 남아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5/24 18:34 2009/05/24 18:34

이바디(Ibadi) - Story of Us

'클래지콰이 프로젝트(Clazziquai Project, 이하 클래지콰이)' 객원 보컬로 더 유명한 '호란'의 또 다른 프로젝트(?) '이바디(ibadi)'.

2008년 4월 '호란'은 '이바디'라는 밴드로 앨범을 발표합니다. 밴드 '이바디'는 호란과 기타리스트 '거정(a.k.a Enock)'과 베이시스트 '저스틴 킴'이 결성한 밴드로 두 사람은 'The A.D'라는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고 한 장의 앨범을 낸 과거가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대표주자가 된 '클래지콰이'의 보컬 호란이 이런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하여 등장한 점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 밖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호란의 음악적 근간을 살펴본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푸른새벽'이 해체한 지금 홍대 인디씬 최고의 어쿠스틱 밴드라고 할 수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대표곡 'So good-bye'의 작사가가 바로 호란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클래지콰이 합류 이전의 행적은 바로 어쿠스틱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바디의 어쿠스틱 세계로 초대하는 '오후가 흐르는 숲'은 신선함과 상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어지는 'Hello Hollow'는 특이한 제목만큼이나 호란의 개성이 드러나는 호란 작사 작곡의 곡입니다.(앨범 수록곡 모두 세 멤버가 작사 작곡을 담당했고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두 남성 멤버 거정과 저스틴 킴이 작곡하고 호란이 작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란의 목소리는 너무나 자유롭게 들립니다.

타이틀 곡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어쩐지 연륜이 느껴지는 사랑 노래입니다.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이런 가사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막 시작되는 가슴 뛰는 첫사랑이 아니라, 여러 가슴 아픈 사랑이 지난 뒤 이제는 사랑이 사랑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무감각해져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차린 사랑이야기 말이죠. 어쩌면 그게 진짜 현실의,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겠구요.

'오후가 흐르는 숲'과 마찬가지로 리듬이 두드러지는 'She'와 'Party fantasy'는 모두 '거정(a.k.a Enock)'이 작곡한 트랙들로 그의 음악적 개성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나봅니다.

'그리움'은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와 호란의 목소리만가 담백한 시작을 알립니다. 곡의 진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촐하지만 여성 보컬과 피아노라는 대중가요의 치명적인 훌륭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종 악기의 연주들로 가득 차지 않은 그 공백들은 피아노의 울림과 보컬의 탁월함으로, 텅빈 공백이 아닌 의미 있는 여백으로 만들어갑니다. 감정의 절제와 호란의 가사 전달력은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어 나른한 오후, 벤치에 앉아 아련한 상념에 빠져드는 'Bench', 꽃놀이에서 얻은 사랑에 대한 깨닳음을 노래하는 '꽃놀이', 호란의 보컬리스트의 기교가 다시 한 번 빛나는 그녀의 작사 작곡 트랙 '마리오네트'가 이어집니다.

'비로 뒤덮인 세상'은 유일하게 '저스틴 킴'이 작사 및 작곡 모두 담당한 트랙으로, 빗속을 우산없이 달리는 두 연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나올 법한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화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제 추억이고 비는 그 추억으로 이끄는 매개물인가 봅니다.

'별'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분위기의 트랙이고 '초코캣'은 마지막 트랙답게도 지금까지의 이 앨범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로 뮤지컬을 연상시킵니다. 역시 호란의 곡이기에 그녀의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클래지콰이'와 '일렉트로니카'로 한정되어있던 호란의 영역은 '이바디'로 인해 확장됩니다. 클래지콰이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이고 이 앨범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진짜 그녀의 목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Story of Us',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이 앨범에 진정으로 세 사람이 하고 싶은 음악들이 담겨있을 법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노래들이 '사랑 타령'이지만  12곡이나 담고 있는 이 앨범에서 '사랑'이나 'love'를 직접 담고 있는 곡은 마지막 두 곡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짙게 느껴지는 그 감정들과 편안함에서 '이바디'가 단순히 실험적인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깊은 내공이 있는 밴드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클래지콰이가 해체(?)하더라도 밴드 이바디는 상당히 오래 지속될 느낌도 들게 하구요. 이제 두 장의 앨범이 나왔습니다. 가벼운 음악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좋은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길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5/22 00:29 2009/05/22 00:29

장윤주 - Dream

2008년에 발표된 모델 '장윤주'의 데뷔앨범 'Dream'.

인기모델에서 뮤지션으로의 겸업을 선택한 장윤주, 배우에서 가수라거나 그 반대가 아닌 흔하지 않은 그녀의 길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모델로 성공했고 프랑스 샹송을 불러 뮤지션으로서도 성공을 거둔 '카를라 브루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실 그녀는 2005년 'CmKm'이라는 책과 함께 포함된 음반에서 두 곡을 발표하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데뷔앨범을 발표합니다. 발표 당시만해도 크게 홍보라던지 언론의 주목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 그녀가 음악 프로그램에 진행도 하고 음악 페스티벌 등에도 참여하면서 뮤지션으로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싱글 수록곡 'Fly away'에 빠져들어 그녀의 앨범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앨범 Dream은 첫 곡부터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29'는 제목 그대로 80년에 태어난 그녀의 2008년 앨범 발매 당시의 나이와 같습니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니지만, 영원히 소녀로 남고싶다."는 가사에서 그녀의 컴플렉스(?)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한 봄 날에 기지개 키는 고양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April'은 4월의 기분을 노래합니다. 어떤 기분이냐면 새로이 시작된 사랑에 대한 설레임과 기쁨입니다. CD 케이스에 함께 포함된 작은 부클릿을 보면 2006년 4월에 쓰여진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데.

'오늘, 고마운 하루',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면서 고마움을 알아가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Dream(piano version)'은 정재형이 피아노 연주자로 참여한 곡입니다. 장윤주는 정재형의 앨범에서 그와 듀엣곡을 부르기도 했죠.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봄햇살의 느낌인데 곡은 2007년 12월에 쓰여졌나봅니다. 그래서 '냉각된 꿈들'이라는 가사가 쓰였구요. 봄햇살의 따스함이 그 꿈들을 언제가 녹여주겠죠.

'11월', 듣기만 해도 쓸쓸함이 느껴지는 제목처럼 노래도 그렇습니다. 별 기교가 없는 장윤주의 목소리는 메말라가는 마음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양초가 타들어가면서 점점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희망도 사라져만 갑니다.

'Fly away', CmKm에 수록된 버전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입니다. 조근조근 부르는 목소리는 원곡과 비교했을 때, '무기교의 기교'처럼 느껴집니다.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에 부친 편지'는 제목처럼 '파리(Paris)'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모델인 그녀이기에 '패션의 도시'라는 파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를 법합니다.

'Martini Rosso'는 연주곡으로, 제목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명한 술의 이름과 같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장윤주 본인이 하였구요. 'Love song'은 다소 노골적인(?) 제목처럼 이 앨범에서 가장 가요 분위기가 나는 곡입니다. '29'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이 발표된 2008년에 쓰여진 곡이네요.

'옥탑방(demo version)'은 데모버전이기에 거친 느낌이 있고, 장윤주의 기타 연주에도 약간의 미숙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 가운데 가장 좋은 느낌의 곡으로 'Fly away'의 2005년 버전을 들었을 때처럼 솔직함이 느껴집니다. 'Dream(guitar version)'은 기타 연주로 인해 붉게 타오르며 사그라드는 저녁 노을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기에 피아노 버전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어쩌면 '카를라 브루니'를 롤모델로 삼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 '장윤주'.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카를라 브루니처럼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아니, 뮤지션이 되는 것이 이 앨범의 제목 'Dream'처럼 그녀의 진정한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클릿을 보면 수록곡들이 2004년 부터 2008년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쓰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록곡 모두를 직접 작사 작곡한 점은 모델 '장윤주'를 뮤지션 '장윤주'로 다시 보게합니다. 하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그녀만의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하고, 기술적으로도 미숙함이 느껴집니다. 그런 점이 그녀의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신선함에 의존한 매력은 쉽게 질리기 마련입니다. 다음 앨범도 나올 수 있다면, 그 앨범에서는 좀 더 모델답게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3.5개입니다.
2009/05/20 00:32 2009/05/20 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