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최근 시리즈 영화들은 프리퀄(prequel)이 대세인데, 이 새로운 영화는 프리퀄인지 아니면 후속편(sequel)인지 불분명합니다. 처음에 프리퀄이라고 홍보해며 시작했던 '배트맨(Batman)' 시리즈의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가 '다크나이트(Dark night)'로 인해 완전히 다른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지만, 이 영화는 기존 터미네이터 3부작을 확실히 계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시간 상으로 는 분명 후속편이지만, 내용 상으로는 '터미네이터 1'이 시작되는 배경을 담고 있는 프리퀄이 되는, 원인과 결과가 자리를 바꾸며 돌아가는 '순환구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혹평을 받았던 3편에 이어, 야심차게 시작하는 이 새로운 영화에서는 드디어 터미네이터가 주인공이 아닌 인간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기존 3부작이 악역이든 영웅이든 주인공은 모두 '아놀드 슈왈제네거'였고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T-800'으로만 등장했기 때문이죠.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와 그 두 번째 작품 '다크나이트'의 역대 2위(1위는 '타이타닉')에 해당하는 흥행으로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오른 '크리스찬 베일'을 앞세운 '미래전쟁의 시작'은 제작부터 말도 많았습니다. ('타이타닉'으로 흥행 역대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터미네이터' 세계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역대 2위의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한다는 점도 재밌네요.) 하지만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크리스찬 베일의 카리스마와 화려한 특수효과로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Terminator Salvation'으로 'Terminator'는 '끝내는 사람, 종결자'의 의미이고 'Salvation'은 '구조, 구원자, 구세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 3부작이 그야말로 '존 코너를 끝내는(죽이는) 사람(것)' 즉 터미네이터들(기계들, 시리즈 별로, T-800, T-1000, T-X)을 의미한다면 이번 제목은 '기계들과의 전쟁을 끝내는 구원자', 즉 '존 코너'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존 코너 연대기'라는 말이죠.
'유일한 구원자'와 '기계들과의 전쟁'이라는 코드는 또 다른 유명한 3부작 '매트릭스'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존 코너'는 '네오'와, '스카이넷'은 '매트릭스 시스템'과 치환될 수 있습니다. 또 수직이착륙 전투기 '헌터킬러'와 거대로봇 '하베스터', 그리고 이 둘과 합체하는 멋진 수송선을 보면서 '트랜스포머'가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 전투씬을 재외한다면 특수효과나 전투장면은 상당히 볼 만합니다. 아쉬운 점은 예고편에서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는 점으로 상당히 중요한 반전을 눈치있는 사람들이라면 예고편으로 알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지만 모르고 경험했을 중반부의 반전에 비하면 가볍겠습니다.
'터미네이터1'의 시작, 미래에 오는 혹은 과거로 가는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카일 리스(1편에서는 '미이클 빈', 본편에서는 안톤 옐친')'의 모습이 궁금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18년의 이야기로, T-800과 카일리스가 과거로 가는 때는 2023년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새로운 3부작의 첫 번째입니다.
전편만한 속편은 없고, 이 영화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사상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볼거리와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 그리고 전작들과의 연관성을 깨지 않는 연결고리는 나쁘지 않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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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 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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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Neverland - Festa in Neverland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 달'의 두 프로젝트 밴드 '바드(Bard)'와 'Alice in Neverland'. 두 프로젝트 중 일반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길을 선택한 'Alice in Neverland'의 두 번째 앨범 'Festa in Neverland'.
'두번째 달 monologue project'라는 긴 머리를 붙이고 전작을 낸 'Alice in Neverland'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두번째 달 보다 먼저 2집을 발표헀습니다. 전작이 self-titled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의 제목은 전작과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앨범 표지는 전작의 고요한 느낌과는 다른 왁자지껄한 놀이동산으로 'Festa'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아쉽습니다.)
'두번째 달'의 일곱 명의 멤버 중 네 명이 결성한 'Alice in Neverland'는 전작에서 두번째 달의 4/7만큼이 아닌 두번째 달에 견줄 만큼이나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었기에 기대하기에 충분합니다. 서정성이 강했던 전작과는 달리 제목부터 상당히 흥겨울 것으로 예상되는 Festa in Neverland에 참가해 보죠.
'Welcome to Festa'는 첫 곡다운 제목과 앨범 타이틀과 어울리는 경쾌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시계 초침이 놀아가는 느낌의 바이올린 소리와 똑딱거리는 소리는 놀이동산의 흥을 돋굽니다. 다채로운 악기의 사용으로 다양한 놀거리가 있는 놀이동산 분위기는 달아오릅니다. 퍼커션은 두근거리는 아이들의 마음, 트라이앵글 등 반짝 거리는 금속 악기들의 소리는 반짝 거리는 아이들의 눈빛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꿈 같습니다. 멜로디의 중심에 흐르는 바이올린 연주는 춤추듯 걷는 앨리스의 발거음이 아닌가합니다. 정작 이 곡을 쓴 베이시스트 '박진우(혹은 박연)'은 묵묵히 앨리스와 아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철든 피터팬'같습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바람을 타고 온 편지'는 1집 발매 후 합류한 새 멤버, 기타리스트 '염승재'의 곡입니다. 하지만 곡의 진행은 '두번째 달'에 수록된 '서쪽하늘에'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만큼 새 멤버가 이 밴드에 잘 융화되었다는 의미이겠죠? '서쪽하늘에'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여러모로 1집보다 '두번째 달'의 수록곡들, '서쪽하늘에', '바람구두', '바다를 꿈꾸다'를 생각납니다. 앨범 '두번째 달'이 민속음악을 기반으로한 '퓨전'이었다면, 1집은 서정성에 기반으로 한 '뉴에이지(혹은 크로스오버)'에 가까웠습니다. 두번째 달이 추구했던 '민속음악'은 개개인의 정서보다는 '민족'이라는 집단의 정서가 녹아있는 음악인데 반해, '뉴에이지(new age)'는 그 이름처럼 개개인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 담고 있는 진취적인 기상과 다수의 코러스와 아이리쉬 휘슬은 바로 '두번째 달'의 정서와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두번째 달'의 2집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트랙이구요.
'안녕! 하루'는 다시 개인의 서정성으로 돌아오는 트랙입니다. Alice in Neverland의 'CF의 여왕', '최진경'의 곡으로 역시 영화 한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좋을 정도로, 탁월한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안녕'은 아침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늦은 오후에 하는 인사같습니다. 노을질 무렵의 저녁 공기 냄새 같은 기타연주가 그렇고, 여유롭게 흐르는 베이스와 퍼커션이 그렇습니다. 피아노는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쾌한 발걸음입니다. 그 경쾌한 발걸음은 아코디언이 이어받아 하늘을 가르는 기쁜 마음이 됩니다. 반전처럼 마지막에 갑자기 빨리지는 연주는 밥시간에 늦은 주부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양탄자의 꿈'은 1집에서도 아라비안 스타일의 '인형사'를 작곡했던, 탱고 매니아 바이올리니스트 '조윤정'의 곡입니다.(그녀는 역시 탱고 매니아인 '캐스커'의 공연에 단골 세션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형사의 후속곡이라고 할 만한 이 곡으로 역시 중세의 아라비아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연주는 비좁고 혼잡한 아라비아의 시장을 가로질러 사막의 하늘 위로 신나게 날아오릅니다. 사실 이런 그녀의 스타일은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양탄자의 꿈'에서는 그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광대의 둘째 딸'은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만큼이나 독특하고 사연이 궁금한 제목으로 역시 박진우의 곡입니다. '두번째 달' 수록곡 중에서도 온전한 '뉴에이지'풍이었던 '얼음연못'을 재편곡한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 곡은 '째즈'풍입니다. 한 없이 슬픈 삶을 살았을 법한 '외눈박이 소녀'와는 다르게 '광대의 둘째 달'은 무대 위에서 우아한 묘기로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고 있나봅니다.
'Spartacus'는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한 커버곡으로 1960년대 동명 영화의 OST 수록곡입니다. 제목에서는 스파르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00'처럼 파괴적일법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도 스파르타와는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 곡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미국 서부의 황야를 질주하는 장면이 떠오를 만큼 자유롭고 낭만적입니다.
'Alice in Neverland판 놈놈놈', 'Neverland 횡단열차'는 앞선 Spartacus에 이어 광활한 서부를 연상시키는 트랙입니다. 흥겹고 진취적인 Neverland의 낮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Neverland의 밤이 교차하며 이 점은 이 곡이 두 작곡가(최진경, 염승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신나게 달리는 횡단열차의 저 먼 끝에는 낭떠러지 위 끊어진 철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밀이야기'는 여왕님(최진경)의 곡으로 잔잔한 피아노 선율 위로 조금 허스키한 보컬이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곡 또한 OST 분위기로 엔딩 테마로 어울릴 법합니다.
'Festa in Neverland'는 앨범 타이틀 곡으로 드럼 및 퍼커션을 담당하는 '백선열'의 유일한 곡입니다. 기존에 이 밴드가 사용하던 악기 외에도 북, 징, 꽹가리 등 우리민족의 악기들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Festa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줍니다. 놀이동산에서 볼 수있는 세계 여러나라의 민속의상을 입은 페레이드를 이 한 곡에 담아놓았습니다.
'잠수부의 운명'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진행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에메랄드 빛의 물과 색색의 물고기로 가득한 얕은 바다를 지나 더 깊이, 고요한 심해에서 잠수부는 한 없이 외로워집니다. 마치 우주에 홀로 남겨져 기약없는 구조를 기다리는 우주비행사처럼요. 하지만 바다의 바닥에서 잠수부가 만난 것은 아름다운 용궁일지도 모릅니다.
'토리의 춤'은 제목처럼 춤을 출 만큼 흥겨운 곡입니다. Festa에 한창 달아오른 열기와 뜨거워지는 밤에 춤이 빠질 수 없겠죠. '길'은 전작의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part 1'처럼 처량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한 때의 Festa가 끝나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꼭 그럴 법합니다. 사랑은 우리 가슴 속에 언젠가 피어나고 언젠가 지겠지만, 또 다시 피어나서 끝임 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한 번의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이라는 그 마음의 집합체는 끝없이 지속되겠죠. 그렇기에 '영원한 사랑'이 아닌 '끝없는 사랑'이 아닐까요?
'보너스트랙'같은 'Infinite love'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가수 '제이(J)'가 가사를 썼고 노래는 '잉거 마리'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울려퍼지는 사랑의 단어들은 '두번째 달'의 'Falling stars'만큼이나 낭만적인, 연인들을 위한 곡이 탄생했음을 알립니다.
마지막 곡 'Tale of Island'은 마지막답게 쓸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줍니다. 또 한바탕 신나게 여행했던 Neverland를 떠날 시간인가 봅니다.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면 Neverland는 이야기(tale)가 되겠죠.
'두번째 달'보다 앞선 2집을 발표하고 자신들만의 음악색을 만들어가는 'Alice in Neverland', 이제 이 밴드의 앞에 붙는 '두번째 달'이라는 수식어는 떼어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꾸준한 활동과 음반발표, 그리고 훌륭한 결과물까지 좋은 뮤지션의 요소를 갖춘 이 밴드는 점점 '진정한 아티스트'의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협소한 음반시장, 그리고 더더욱 협소한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연주음악계에서 단비와도 같았던 '두번째 달'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Alice in Neverland는 더 오래오래 남아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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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디(Ibadi) - Story of Us
2008년 4월 '호란'은 '이바디'라는 밴드로 앨범을 발표합니다. 밴드 '이바디'는 호란과 기타리스트 '거정(a.k.a Enock)'과 베이시스트 '저스틴 킴'이 결성한 밴드로 두 사람은 'The A.D'라는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고 한 장의 앨범을 낸 과거가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대표주자가 된 '클래지콰이'의 보컬 호란이 이런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하여 등장한 점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 밖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호란의 음악적 근간을 살펴본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푸른새벽'이 해체한 지금 홍대 인디씬 최고의 어쿠스틱 밴드라고 할 수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대표곡 'So good-bye'의 작사가가 바로 호란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클래지콰이 합류 이전의 행적은 바로 어쿠스틱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바디의 어쿠스틱 세계로 초대하는 '오후가 흐르는 숲'은 신선함과 상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어지는 'Hello Hollow'는 특이한 제목만큼이나 호란의 개성이 드러나는 호란 작사 작곡의 곡입니다.(앨범 수록곡 모두 세 멤버가 작사 작곡을 담당했고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두 남성 멤버 거정과 저스틴 킴이 작곡하고 호란이 작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란의 목소리는 너무나 자유롭게 들립니다.
타이틀 곡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어쩐지 연륜이 느껴지는 사랑 노래입니다. '너무 낡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이런 가사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막 시작되는 가슴 뛰는 첫사랑이 아니라, 여러 가슴 아픈 사랑이 지난 뒤 이제는 사랑이 사랑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무감각해져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차린 사랑이야기 말이죠. 어쩌면 그게 진짜 현실의,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겠구요.
'오후가 흐르는 숲'과 마찬가지로 리듬이 두드러지는 'She'와 'Party fantasy'는 모두 '거정(a.k.a Enock)'이 작곡한 트랙들로 그의 음악적 개성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나봅니다.
'그리움'은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와 호란의 목소리만가 담백한 시작을 알립니다. 곡의 진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촐하지만 여성 보컬과 피아노라는 대중가요의 치명적인 훌륭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종 악기의 연주들로 가득 차지 않은 그 공백들은 피아노의 울림과 보컬의 탁월함으로, 텅빈 공백이 아닌 의미 있는 여백으로 만들어갑니다. 감정의 절제와 호란의 가사 전달력은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어 나른한 오후, 벤치에 앉아 아련한 상념에 빠져드는 'Bench', 꽃놀이에서 얻은 사랑에 대한 깨닳음을 노래하는 '꽃놀이', 호란의 보컬리스트의 기교가 다시 한 번 빛나는 그녀의 작사 작곡 트랙 '마리오네트'가 이어집니다.
'비로 뒤덮인 세상'은 유일하게 '저스틴 킴'이 작사 및 작곡 모두 담당한 트랙으로, 빗속을 우산없이 달리는 두 연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나올 법한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화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제 추억이고 비는 그 추억으로 이끄는 매개물인가 봅니다.
'별'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분위기의 트랙이고 '초코캣'은 마지막 트랙답게도 지금까지의 이 앨범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로 뮤지컬을 연상시킵니다. 역시 호란의 곡이기에 그녀의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클래지콰이'와 '일렉트로니카'로 한정되어있던 호란의 영역은 '이바디'로 인해 확장됩니다. 클래지콰이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이고 이 앨범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진짜 그녀의 목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Story of Us',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이 앨범에 진정으로 세 사람이 하고 싶은 음악들이 담겨있을 법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노래들이 '사랑 타령'이지만 12곡이나 담고 있는 이 앨범에서 '사랑'이나 'love'를 직접 담고 있는 곡은 마지막 두 곡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짙게 느껴지는 그 감정들과 편안함에서 '이바디'가 단순히 실험적인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깊은 내공이 있는 밴드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클래지콰이가 해체(?)하더라도 밴드 이바디는 상당히 오래 지속될 느낌도 들게 하구요. 이제 두 장의 앨범이 나왔습니다. 가벼운 음악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좋은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길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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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주 - Dream
인기모델에서 뮤지션으로의 겸업을 선택한 장윤주, 배우에서 가수라거나 그 반대가 아닌 흔하지 않은 그녀의 길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모델로 성공했고 프랑스 샹송을 불러 뮤지션으로서도 성공을 거둔 '카를라 브루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실 그녀는 2005년 'CmKm'이라는 책과 함께 포함된 음반에서 두 곡을 발표하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데뷔앨범을 발표합니다. 발표 당시만해도 크게 홍보라던지 언론의 주목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 그녀가 음악 프로그램에 진행도 하고 음악 페스티벌 등에도 참여하면서 뮤지션으로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싱글 수록곡 'Fly away'에 빠져들어 그녀의 앨범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앨범 Dream은 첫 곡부터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29'는 제목 그대로 80년에 태어난 그녀의 2008년 앨범 발매 당시의 나이와 같습니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니지만, 영원히 소녀로 남고싶다."는 가사에서 그녀의 컴플렉스(?)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한 봄 날에 기지개 키는 고양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April'은 4월의 기분을 노래합니다. 어떤 기분이냐면 새로이 시작된 사랑에 대한 설레임과 기쁨입니다. CD 케이스에 함께 포함된 작은 부클릿을 보면 2006년 4월에 쓰여진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데.
'오늘, 고마운 하루',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면서 고마움을 알아가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Dream(piano version)'은 정재형이 피아노 연주자로 참여한 곡입니다. 장윤주는 정재형의 앨범에서 그와 듀엣곡을 부르기도 했죠.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봄햇살의 느낌인데 곡은 2007년 12월에 쓰여졌나봅니다. 그래서 '냉각된 꿈들'이라는 가사가 쓰였구요. 봄햇살의 따스함이 그 꿈들을 언제가 녹여주겠죠.
'11월', 듣기만 해도 쓸쓸함이 느껴지는 제목처럼 노래도 그렇습니다. 별 기교가 없는 장윤주의 목소리는 메말라가는 마음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양초가 타들어가면서 점점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희망도 사라져만 갑니다.
'Fly away', CmKm에 수록된 버전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입니다. 조근조근 부르는 목소리는 원곡과 비교했을 때, '무기교의 기교'처럼 느껴집니다.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에 부친 편지'는 제목처럼 '파리(Paris)'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모델인 그녀이기에 '패션의 도시'라는 파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를 법합니다.
'Martini Rosso'는 연주곡으로, 제목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명한 술의 이름과 같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장윤주 본인이 하였구요. 'Love song'은 다소 노골적인(?) 제목처럼 이 앨범에서 가장 가요 분위기가 나는 곡입니다. '29'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이 발표된 2008년에 쓰여진 곡이네요.
'옥탑방(demo version)'은 데모버전이기에 거친 느낌이 있고, 장윤주의 기타 연주에도 약간의 미숙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 가운데 가장 좋은 느낌의 곡으로 'Fly away'의 2005년 버전을 들었을 때처럼 솔직함이 느껴집니다. 'Dream(guitar version)'은 기타 연주로 인해 붉게 타오르며 사그라드는 저녁 노을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기에 피아노 버전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어쩌면 '카를라 브루니'를 롤모델로 삼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 '장윤주'.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카를라 브루니처럼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아니, 뮤지션이 되는 것이 이 앨범의 제목 'Dream'처럼 그녀의 진정한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클릿을 보면 수록곡들이 2004년 부터 2008년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쓰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록곡 모두를 직접 작사 작곡한 점은 모델 '장윤주'를 뮤지션 '장윤주'로 다시 보게합니다. 하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그녀만의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하고, 기술적으로도 미숙함이 느껴집니다. 그런 점이 그녀의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신선함에 의존한 매력은 쉽게 질리기 마련입니다. 다음 앨범도 나올 수 있다면, 그 앨범에서는 좀 더 모델답게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3.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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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스 in 5월 17일 SSAM
마지막은 '로로스'였습니다. 아마도 이 날 공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 밴드를 보러왔을겁니다. 얼마전에 발매된 EP 'Dream(s)'의 첫 두 곡으로 시작했습니다. '프렌지'의 기타리스트가 세션으로 참여하여, 기존 멤버 5명에 총 6명이 무대에 올라, 무대가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5명일 때도 그랬지만, 한 명이 늘어나니 더욱 더 그렇더군요.
1집 수록곡 'I say', 'Doremi', '방안에서', 'Pax',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나', 나머지 EP 수록곡 'Dream(s) 3'까지 숨 돌릴 틈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점점 거장(?)의 길로 가는듯한 '로로스', 앞으로 더 멋진 모습들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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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지 in 5월 17일 SSAM
두 번째는 '프렌지'였습니다. 보컬없이 연주만을 들려주는 '포스트락'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타 한 명이 탈퇴하여 그림자궁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종민'이 세션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가을을 목표로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좋은 곡들이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고 연주곡의 특성상 기억에 깊이 남는 곡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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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ub SSAM, TuneTable Movement, 프렌지
그림자궁전 in 5월 17일 SSAM
SSAM에서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숨은고수 스페셜 2009'라는 긴 제목의 특별기획 공연이 있었습니다. 5월 18일부터 시작하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고수 모집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이라고 하네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을 차지한 '로로스', '프렌지'와 우정출연한 '그림자궁전'의 공통점은 모두 '숨은고수'에 선발된 경력이 있다는 점이겠죠. 다른 공통점은 현재 'TuneTable Movement(튠테이블 무브먼트)' 소속이라는 점이구요.
첫 번째는 우정출연한 '그림자궁전'이었습니다.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무려 9개월만의 공연이었죠. 드러머는 다시 공석이 되었나봅니다. 다시 활발한 공연을 시작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오랜만에 한 번하는 공연이었습니다. 1집 수록곡들과 카피곡 '커피 한 잔', 신곡 '톱니 바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로로스'의 '종민'이 가타세션으로 '남규'가 드럼세션으로 참여하여, 예전보다 더욱 밀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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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번역서로서는 단편집 '차가운 밤에'의 다음으로 나온 중단편 모음집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다 읽었다. 최근 그녀의 소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재미있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사실은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가 실려있다는 점에 더 기대되었다.
'러브 미 텐더'는 지금까지 그녀의 장편 소설들과는 다른 노부부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묘한 감동이 있다. '선잠'은 '한 여름밤의 꿈'같은 사랑이야기로 계절의 변화와 사랑의 변화를 그려낸다. 여주인공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케릭터이다. 유쾌한 세 친구들의 이야기 포물선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진득한 우정을 모임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냈다. '재난의 전말'은 역시 전형적인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진드기'라는 재난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파헤쳐간다. '오지은'의 노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가 떠오르는데, 주인공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 혹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에쿠니 가오리식 여주인공은, 작가거나 잡지사 등 출판관련업에 종사하고 목욕을 좋아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과 연애하는, 조금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느낌도 드는 케릭터이다.
'녹신녹신'은 속을 알 수 없는, 아니 어쩌면 비겁한 변명의 나쁜 여자 이야기이고, '밤과 아내와 세제'는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짧고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례식을 좋아하는 아주 독특한 부부의 이야기 '시미즈 부부'는 시미즈 부부와의 교류를 통한 여주인공의 정신적 성숙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 가장 궁금할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충격적 결말일 수도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줄이도록 하겠다. '마지막 기묘'한 장소는 같이 늙어가는, 노년기에 있는 세 모녀, 어머니와 두 딸의 이야기로 유쾌하고 활기차다.
지난 단편집 '차가운 밤에'와 마찬가지로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던 책으로, 역시나 장편들보다 재밌고 읽기가 편했다. 사놓고 읽지 못했던 그녀의 작품들, 밀린 책들을 이제부터 열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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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연못 <2>
얼음여왕이 큰 호수로 찾아오고
추위가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
그것이 끝나지 않을,
기나긴 겨울의 시작이라는 것을.
긴 추위가 시작되면서 호수와 숲의 선물이 줄었지만
아직도 낚시와 사냥과 열매는
사람들을 굶지않게 할 수 있었어.
소녀의 집과 소년의 집은
여느 북쪽 나라 사람들처럼 가난했어.
소녀의 집과 소년의 집은
서로 큰 호수의 반대편에 있었어.
호수는 소년과 친구들의 놀이터였어.
물장구, 물수제비, 고기잡기 같은 놀이들로
남자 아이들은 하루를 보냈지.
하지만 소녀와 여자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집에서 보내야했어.
어느 화창한 날이었어.
아마 일년 중 가장 따뜻한 시기였고
북쪽 나라에 마지막 여름이 지나가던 때였어.
여름이라고 했지만, 가장 더운 여름이어야하겠지만
얼음여왕이 찾아오고서 더위는 따뜻함으로 바뀌었지.
이 때만큼은 여자 아이들에게도 물놀이가 허락되었어.
그래서 소녀와 친구들도 물놀이를 나갔지.
천방지축이었던 소년과 친구들은
더 큰 아이들의 주먹과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서
호수 반대편 마을에 가까운 곳에서 종종 놀곤 했어.
그날도 소년과 친구들은 그랬어.
그리고 그곳에서 소녀와 여자 아이들을 만났지.
다른 마을의 아이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렸지만
아이들의 천진함은 곧 그들을 어울리게 만들었지.
그렇게 여느 아이들처럼 소년과 소녀는 가까워졌어.
사실, 소년과 소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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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블루 -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
2006년 1월에 발표된 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이후, 제목처럼 잠들어 약 40개월만에 동면에서 깨어난 '미스티 블루(Misty Blue)'.
약 40개월만이지만, '미스티 블루'가 완전히 동면만 한 것은 아닙니다. 소속사인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들을 통해 '여름궁전', 'Slow days', '한 쪽 뺨으로 웃는 여자'같이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또 'MBC 베스트극장'의 '동쪽 마녀의 첫번째 남자'의 배경음악에도 참여했구요. 그 동안 밴드에도 변화가 생겨서 원래 3인조 였지만, 기타리스트가 탈퇴하고 2인조를 유지하고 있지요. 미스티 블루의 멜로디메이커 '최경훈'은 2008년에 '벨 에포크(Belle Epoque)'라는 미스티 블루의 쌍둥이 여동생쯤 되는 팀을 결성해 앨범도 발표했지요.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라는 긴 제목은 지난 앨범, EP와 마찬가지로 여전합니다. 너무나 이쁜 앨범 커버 역시 '김지윤' 작가의 일러스트로 꾸며져 있어요. 또 얼굴을 가리고 있지요. 언제나 소녀는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controller'가 아니고 'Con.Troller'입니다. 'con'은 사전을 찾아보면 '반대하여'라는 뜻을 갖고 있네요. 'troller'는 사전에 없지만 'troll'은 '명랑하게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구요. '명랑한 노래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미스티 블루의 노래 가운데 명랑한 노래는 별로 없었잖아요. 이제, 가장 중요한 수록곡을 둘러보죠.
intro라고 할 수 있는 '04:07:02'는 알쏭달쏭의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시간일지도 모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컷의 번호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거리 넘어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갑자기 클로즈 업되고 또각거리는 구두는 어디론가 급하게 걸어갑니다.
'봄'과 떼어놓기 힘든 '왈츠', '봄의 왈츠를 위한 시계'는 똑딱 똑딱 돌아가는 시계가 아니라 '쿵작짝 쿵작짝' 느리게 흐르는 시계입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꼭 '햇살 좋은 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잎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 테마같은 느낌입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곡의 제목이겠구요.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보컬 '은수'의 노래는 감정기복이 없기에 허전함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잔인한 '4월','4월의 후유증'은 큰 일교차때문에 감기 걸리기 쉬운 4월처럼 변덕스럽습니다. 투명한 느낌의 쟁글거리는 기타 연주는 '미스티 블루표'라고 알려줍니다. '이진우'라는 남자 보컬이 참여했는데 그 건조함은 촉촉하지 않은 은수의 목소리가 생기 넘치게 들리게 할 정도입니다. 건조한 명사와 동사의 나열은 결코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될 수 없어요. 진실한 관계나 추억이 될 수 없지요. 4월의 후유증은 어쩌면 4월의 그 건조함을 닮아서 건조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증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봄'과 '4월', 역시 계절과 달력에 민감한 미스티 블루랍니다.
'여름궁전'이나 '화요일의 실루엣'처럼 역시 미스티 블루다운 제목, '하늘 그네'는 그리움에 대해 노래합니다. 기타 초보처럼 막 치는 느낌의 기타 연주로 시작하여 차오르는 감정처럼 풍성해지는 연주가 이 곡의 심상을 대변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점이, 보컬의 기교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미스티 블루의 감정 표현법'일지도 모르죠. 몸도 마음도 이만큼 커져서, 진심보다는 이해타산이 앞서서 마음보다는 머리가 앞서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겠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지면 결국 땅으로 돌아오는 그네처럼, 좇아도 좇아도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기억은 언제나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도쿄(Tokyo)'가 아니에요. 하지만 '동경 센티멘탈 클럽'은 일본 순정 만화 제목같습니다. 그리고 순정 만화처럼 미스티 블루다운 '파스텔톤 소녀의 감수성'을 노래합니다. 소녀들의 비밀스런 대화같은 곡입니다.
독특한 제목의 '향기 알리섬'은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활기차고 밝습니다. '향기 알리섬'은 사실 꽃의 이름이고 꽃말이 '뛰어난 아름다움'이기에 그렇게나 밝은가 봅니다. 가사에 나오는 'Shirley Valentine'은 영화의 제목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난 EP에서 노래한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을 이제는 배웠나봅니다. 미스티 블루 속의 소녀도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려나봅니다.
앨범의 부제인 '봄의 언어'는 아쉽게도 마지막 곡입니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봄이 지나면 봄의 언어는 쓸 수 없겠죠. 봄의 언어는 끝나지만 이 EP의 제목 '1/4 Sentimental Con.Troller'에는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이번 EP는 큰 퍼즐의 1/4일뿐이고 나머지 3/4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한 4장의 연작 EP가 계획되어 '봄의 언어'가 첫번째 작품으로 앞으로 세 장의 EP가 남았다는 즐거운 이야기죠.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고, 꼭 줄줄이 나와주길 바랍니다.
컴필레이션에만 수록되었던 곡들도 수록되길 바랬었는데 그러지 않아 아쉽습니다. 혹시 '여름궁전'은 다음 EP에는 수록되려나요? 다음 EP들의 제목도 '언어 시리즈(여름의 언어...)'는 아니겠죠? 개인적으로는 '여름의 우울'을 예상해봅니다. 그럼 여름 EP에서 만나요.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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