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왔습니다. '지은'으로 데뷔했지만, 거대 기획사에 밀려 '오지은'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두 번 째 앨범 '지은'.
앨범 타이틀이 1집과 마찬가지로 '지은'입니다. 이것도 그녀만의 identity라고 해야할까요? 앨범 자켓도 역시 본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난 '지은'과는 다르게 이번 '지은'은 컬러에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뇌쇄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그렇기에 같은 '지은'이지만 다른 '지은'입니다. 앨범 수록곡들의 방향에 대한 '복선'이랄까요? 야심차게(?) 전작과 같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2집을 살펴보죠.
'그대'는 앨범의 첫 곡이지만 마지막 곡이라고 해도 어울릴 분위기의 곡입니다. '그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그대'의 반복에서는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 절절함 때문에 가사에는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곡이 기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이별의 노래로 들립니다. 1집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에서 선보였던 곡으로 그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1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어필할 법합니다. '말주변'과 '요령'이 없는 '그대'가 그녀에게 한 '그런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진공의 밤'의 두드러지는 베이스와 드럼 연주의 어둡고 무거운, 퇴폐적인 분위기는 '오지은'이 아닌 '네스티요나'에게서나 들을 법한 곡입니다. 숨막히는 스릴러 영화같은 분위기는 그녀의 또 다른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약', '자빠트리면' 이런 묘한 상상을 하게 하는 단어들은 이 곡을 더 위험하게 합니다.
긴 제목의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는 경쾌한 분위기의 모던락 넘버입니다. 전작의 '부끄러워'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로 제목만으로는 다음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 니고'와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두 곡은 많이 다른 분위기이지만 가사를 살펴봐도 역시나 한 쌍 같습니다. '요즘 가끔 드는 생각'과 '잊으려했던 진실'은 바로 다음 곡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순정만화'의 수록곡 '이게 바로 사랑일까'까지 생각한다면 '사랑'에 관한 3색의 3부작이라고 하고 싶네요.
앨범 타이틀 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섬뜩한 사랑의 진실에 대해 노래합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발상을 뒤지는 충격적인 가사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가사와 더불어 짙은 호소력의 목소리는 이 곡의 흡인력을 절정에 다르게 합니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진실은 이 곡의 '잔인한 미덕'입니다. 풍성한 연주는 귀를 더욱 즐겁게 합니다. 무대에서 이 곡을 통해 본격적인 락커로서 보여줄 그녀의 모습이 기대가 되네요.
'인생론'과 '웨딩송'은 그녀의 어떤 인터뷰처럼 정말 멋대로 만들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곡입니다. '인생론'의 코믹스러운 보컬과 솔직한 가사는 앞선 트랙들에서 쌓아놓은 그녀의 분위기를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웨딩송'은 그 바톤을 이어받아 듣는 사람이 얼굴 빨개질 정도로 솔직한 가사를 들려줍니다. 또 그런 점들은 두 곡을 J-pop처럼 느껴지게도 합니다. 전작의 '그냥 그런 거에요'에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의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을 듣고 있으면 그 여유로움에 빠져듭니다. 수평선 넘어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서서 우크렐레 선율에 맞춰 '훌라 춤'이라도 느릿느릿 춰야할 분위기입니다.
앨범의 '화려한 그래서 낮선(?) 전반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익숙한 후반부'를 시작하는, '푸름'은 엄숙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다른 트랙들과는 이질적이며, 피아노와 현악은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제가사는 꼭 한 편의 시조를 듣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목은 '푸름'이지만 듣고 있으면 '주름'이 생길 법도 합니다. '잊었지 뭐야'는 몽롱한 기억같은 몽환적인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후반부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이 곡도 마찬가지로, 이별 후에 깨닳음에 대해 노래합니다. 곡 분위기는 마지막 곡 같지만 아직 네 곡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익숙한 새벽 3시'는 이별의 후유증을 노래합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막연한 누군가가 무작정 그리운 새벽 3시의 감정들은, 아픈 이별들 겪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법합니다. '두려워'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합니다.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기억의 상처 때문에 사람은 복잡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더 복잡한가 봅니다. 앨범 전반부가 서로 다른 개성의 곡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면, 잔잔한 후반부는 이 곡에서 클라이막스를 들려줍니다.
'차가운 여름밤'은 앨범의 공식적인 마지막 곡으로 전작의 '작은 방'같은 분위기입니다. 보컬과 연주를 한 번에 녹음했는지, 라이브를 같은 거친 느낌이 앞의 12트랙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7분에 이르는 긴 트랙인데도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보너스 트랙 '작은 자유'는 앞선 사랑 이야기들의 잔잔한 에필로그같은 곡입니다. 아픔, 두려움, 고통 모두 사라지고 모난 마음이 둥근 조약돌이 되어 평온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 너무 멀리있지만 더 큰 사랑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분한 기타 연주는 그 평온함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마지막 허밍에서 마음의 평온과 여유가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소속사가 생기고 좀 더 넉넉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지난 앨범에 비해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지난 '지은'의 성공 덕분인지 이번 '지은'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뭔가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결과물이 조금 아쉬웠던 전작과는 달리, 어깨에 힘은 빠졌지만 좀 더 자신있는 목소리는, 좀 더 '지은답게' 들립니다. 더 멋진 지은이 되어 돌아온 '지은', 별점은 4.5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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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 지은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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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 꽃, 다시 첫번째
6년 만에 돌아온 그녀, 박지윤의 일곱 번째 앨범 '꽃, 다시 첫번째'
저와 동갑이고 제 10대의 아이돌이었던 그녀, 제 나이를 생각하니 상당히 많네요. 그 동안 무얼하며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앨범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다시 첫번째'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겠죠?
잡음과 함께 조근조근 들려오는 목소리의 '안녕'은 이어지는 '봄, 여름 그 사이'의 intro 성격의 트랙입니다. '봄, 여름 그 사이', 박지윤의 자작곡으로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제목처럼 봄과 여름의 사이, 아마도 만물이 살아숨쉬는 오뉴월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조로운 단어들의 나열로 감정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경쾌한 기타와는 담담히 읊조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바이올린만이 그 서글픈 감정을 은은히 들려줍니다. 마지막 '안녕'은 너무나 태연합니다.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용린이 작사 작곡한 '바래진 기억에'는 앞선 '봄, 여름 그 사이'의 철저한 감정의 절제와는 상반되는 곡입니다. 현악 세션은 '타이틀곡의 기본'이고, '과잉'까지 치닿지 않는 감정 표현은 인디씬에서 나온 곡다운 '미덕'입니다.
'4월 16일'은 밴드 'Nell'의 보컬 '김종완'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요. 잔인하다는 4월, 그 중간의 16일이 이 곡의 제목입니다. Nell의 감수성서첨 가사는 매우 쓸쓸합니다. 하지만, '쿵작짝'의 세 박자로 진행되는 멜로디는 이런 가사와 곡의 심상과는 다르게 나아갑니다. 가사 및 목소리는 슬픈 빛을 내지만 멜로디는 너무나 찬란한 밝은 빛을 낸다고 할까요? 세박자로 진행되는 멜로디는 바로 '봄'과 어울리는 '왈츠'을 떠올리게 합니다. 왈츠의 기쁨 속에서 그 슬픔은 더욱 빛이나게 됩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 찬란한 슬픔의 봄, 잔인한 4월에 느껴지는 아픈 이별의 감정들을 이보다 더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요.
'그대는 나무같아'는 박지윤의 자작곡으로 화창한 날의 산책같은 잔잔한 분위기입니다. 박지윤의 자작곡들은 모두 잔잔하며 묘사적인 분위기로 한 장의 사진을 연상시킵니다.이어지는 '잠꼬대'는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작사로 참여한 곡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사는 랩으로 만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느낌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 술에 취한 진심들은 아프기만 합니다. '봄눈'은 옛 연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작사 작곡은 '루시드 폴'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쿠스틱 기타 연주만 노래와 함께 한다고 해도 잔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연출될 법합니다.
'돌아오면 돼'는 기승전결이 뚜렸한, 가장 '가요다운' 곡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 '비'와 'GOD'를 위해 여러 곡을 작곡한 경력이 있네요. 마지막 곡 '괜찮아요'는 첫 곡과 마찬가지로 박지윤의 자작곡이고 이별 노래입니다. 첫 트랙이 '안녕'이었는데 '괜찮아요'와는, 마치 '마지막(이별) 두 마디'처럼 닿아있는 느낌입니다.
실력파 뮤지션들과 조우하여 상당한 수준의 곡들을 여럿 들려주고, 자작곡의 비율 및 그 완성도도 나쁘지 않은, 박지윤의 discography에서 전환점이 될 만한 앨범입니다. intro 성격의 '안녕'과 히든 트랙을 제외하면 8곡 밖에 되는 않는 점은 온라인 음원이 아닌 CD를 구입하는 팬들에게는 이 앨범이 반가우면서도 분명 아쉬운 점이 될 것입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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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윤, 예스24 이주의 리뷰
대한민국 제조업은 음악과 조우 중
지난주 토요일 이마트에 갔다가, 새로운 맥주를 홍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카스 레드', '카스 라이트', '카스 레몬'으로 다분히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준 '카스맥주'에서 새로운 '카스2X'를 홍보 중이었습니다. '2X'하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이름이 있더군요. '꽃보다 남자'로 스타덤에 오른 '이민호'가 바로 그 얼굴이었죠. 요즘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이민호가 등장하는 티져 동영상이 한참 홍보 중인데, 바로 '2X'가 등장하는 동영상이었거든요.
제목처럼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음악과의 조우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하네요. 전통적으로(?) 뮤지션들과 연계하여 TV 광고 및 음원을 제작해온 삼성전자는 자사 브랜드 '애니콜'을 위해 '애니모션', '애니밴드' 등에 이어 작년에는 '소녀시대'와 조우하여 '햅틱모션'이라는 음원을 발표했었죠.
올해 LG전자에서는 '싸이언'의 새로운 제품인 '롤리팝'을 발표하면서 'YG패밀리'와 손잡고 '빅뱅'과 '2NE1'이 참여한 '롤리팝'이라는 음원과 뮤직비디오, TV 광고를 통한 '원 소스 멀티 유즈'릉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태희'가 등장하는 '쿠키폰'에는 광고 배경 음악을 시작으로 '쿠키폰'에만 탑재되는 벨소리 음원들을 '파스텔뮤직'과 손잡고 만들었구요. 이 벨소리들 가운데 '요조'의 '허니 허니 베이비'는 얼마전 온라인 음원 사이트들을 통해 공개되어 사랑받고 있습니다.
LGT 전용 브랜드인 '캔유'는 최근 'Bling Bling'이라는 폰을 발표하면서 역시 '파스텔뮤직'과 손잡고 'Bling Bling'이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환상의 짝궁'이라고 할 만한 'Sentimental Scenery(SS)'와 '타루'가 조우하여 만든 곡으로 타루 버전의 'Bling Bling'이 온라인 음원 사이트들을 통해 공개되었고 SS 버전도 공개 예정에 있습니다.
제조업과 음악이 조우하면서 나온 음원들,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좋은 점은 광고하려는 제품을 때고 음악만으로도 완성도가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품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만 들었을 때는 전혀 제품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제품과 음악을 같이 생각했을 때는 분명 제품에게 시너지 효과가 있을 법할 정도로 음악이 빛을 내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제조업계와 음반업계의 윈윈 전략이라고 할 만합니다.
침채의 길을 걷고 있는 음반시장에서 작지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음원의 발주주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계에 음반업계가 종속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가 생기기도 하네요. 서로 윈윈하며 그런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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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one Project - 긴 여행의 시작
파스텔뮤직은 2007년 말에 발매된 5주년 기념 앨범 'We will be together'를 통해 'Sentimental Scenery(이하 SS)알렸다면, 2008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을 통해 'Epitone Project(에피톤 프로젝트 ; 이하 에피톤)'의 합류를 알렸습니다. '사랑의 단상'의 리뷰에서와 마찬가지로 SS와 에피톤을 동시에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두 뮤지션이 바로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5년을 이끌어나갈 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느낌의 피아노와 퍼커션 연주와 시작하는 '긴 여행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 '앨범'이라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트랙입니다. 도입부가 길어서 연주곡이겠거니 하고 듣다가 보컬이 등장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여행의 준비와 마음가짐을 노래하는 가사는 나름대로 비장합니다. 자, 여행의 준비는 되셨나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을 '눈을 뜨면'은 '토이(유희열)'를 연상시키는 트랙입니다. 거의 모두 '다'로 끝나는 어체는 이별 앞에 담담하려는, '입술 꼭 다문 굳은 의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베어나는 슬픔을 들려주는 감수성은, 감정이 분출하다 못해 과잉하는 2000년대가 아닌, 분명 90년대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뉴웨이브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차마 뜰 수 없어 꼭 감은 눈'과 '눈물에 젖어가는 베갯잇'은 고등학교 시절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읽었던 연애소설의 향수로 이끕니다.
그리고 '눈'과 '모습'을 통해 이별의 모순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눈을 뜨면 네 모습 사라질까봐
두 번 다시 넬 볼 수 없게 될까봐
희미하게 내 이름 부르는 너의 목소리
끝이 날까 무서워서 나 눈을 계속 감아"
꿈 속에서는 꿈이 깰까 눈을 뜨지 못하고 '너'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기에 꿈에서라도 나타난 것일까요?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사라질까봐 볼 수 없다는 상황의 모순은 어찌해야 할까요? 점점 멀어지는 모습, 언제까지라도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지만, 사라져가는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눈물로 흐려지는 눈을 감아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찌해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는 연주곡으로 앞선 두 트랙과는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에피톤의 다양한 색깔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어지는 '그대는 어디에'는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한희정'의 참여로 더욱 빛나는 트랙입니다. 이별을 고하는 가사
"눈물은 보이지 말길
그저 웃으며 작게 안녕이라고
멋있게 영화처럼 담담히
우리도 그렇게 끝내자"
는 정말 '영화처럼', 영화 '봄날은 간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가사는 '눈을 뜨면'과 시리즈물(?) 정도되는 느낌으로 '눈을 뜨면'의 앞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한희정의 목소리는 synth와 어우러져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회상을 꿈결처럼 그려냅니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는 '가장 좋았던 순간'을 한 장의 사진 처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따뜻한 '봄날', 만개(滿開)한 '벚꽃'길을 가장 사랑하는 '너'와 함께 걷는 모습은 아마도 지상의 낙원이겠죠. 하지만, 역시 아마도 추억이라는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이 되겠지만요. '잡음'은 제목 그대로 잡음으로 시작합니다. 연달아 등장하는 피아노와 비트박스는 '혼돈'을 연상시킵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기억과 감정의 혼돈'이라고 해야할까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역시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을 통해 이미 발표된 트랙입니다. 아른한 타루의 코러스를 듣고 있으면 궁금해집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들은 또 왜 헤어져야 했을까요? 걱정하는 마음, 그 마지막 배려는 정말 배려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위한 위로일까요? '희망고문',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또 다른 트랙으로,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은 절망보다 아픔을 생각하게 합니다.
'꿈에 네가 보인다'는 그 세련된 도시적 느낌이 어느 곡보다도 '윤상'을 떠올리게 하는 트랙입니다. 피아노와 synth와 전자음들의 청명한, 감성적 조화는 '뮤지션 에피톤'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해보게 합니다. '간격은 허물어졌다'는 피아노 연주만으로 진행되는 뉴에이지풍의 트랙입니다. 이 앨범 수록곡들 중 가장 밝고 희망적인, 한 편의 동화가 생각날 법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앞선 트랙의 맑은 느낌의 피아노 연주와는 달리 '편린일지라도,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긴 제목의 연주곡은 무거운 피아노 연주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고독하기만 합니다. 그 여행 끝에 기다리는 것은 과연 어떤 기억들일지요? 마지막 '환절기'는 '간격은 허물어졌다'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연주만 함께합니다. 마지막 트랙답게 느껴지는 평온함, 긴 여행 끝에 결국 마음의 평화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듯, 사람 마음의 변화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였을까요?
피아노같은 멜로디가 강한 건반악기를 기초로 한 소리와 절제가 담겨있는 서정성의 조화는 분명 요즘의 감수성보다는 '토이'와 '윤상'이 활발히 활동했던 90년대의 감수성을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90년 대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그 시절 감수성을 기억하는 저에게는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지만 에피톤은 그 시절의 향수에만 머물지 않고, 에피톤만의 감수성을 구축해 가야할 것입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앨범 '긴 여행의 시작', 별점은 4.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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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al Scenery - Harp Song & Sentimentalism
'파스텔뮤직'의 새시대를 이끌어갈 'Sentimental Scenery(이하 SS)'의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발표하는 첫 앨범 'Harp Song & Sentimentalism'.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SS'가 'Harp Song & Sentimentalism'를 발표했습니다. 제목처럼 모음집 성격의 앨범입니다. 'Harp Song'은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한 첫 싱글이었고, 'Sentimentalism'은 국내에 온라인을 통해서만 공개되었던 그의 1집 앨범이었으니까요. 어찌보면 'Humming Urban Stereo(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1집 'Very Very Nice! & Short Cake'와 비슷한 컨셉이네요. 하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곡들이 위주인 허밍과 달리 SS의 곡들은 진중함이 강합니다.
첫곡 'Harp Song'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앨범 발매전 싱글로 선공개된 곡으로 제목처럼 하프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맑게 울리는 하프 소리는 생동감을, 키보드는 진취적 느낌을 더하고 멋진 SS의 보컬은 자신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곡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Miss you'는 SS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타루'의 미니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타루 버전과 비교하면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타루 버전의 가사로 따라부르는 엉뚱한 재미도 있구요. 타루 버전과 더불어 '커플 배경음악'
'Rebirth'는 온라인 싱글 'Birth'를 재편곡한 곡으로 뉴웨이브를 연상시키는 사운드가 인상적입 트랙입니다. 역시나 제목만큼이나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앞의 두 곡이 빠진다면 이 곡이 오프닝이 되지 않을까요? 'Harp Song' 파트가 끝나고 'Sentimentalism' 파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까요? 앞선 두 트랙이 일렉트로니카에 가깝다면, Rebirth는 일렉트로니카에서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니까요.
'Oriental Snow'은 동양적 피아노 연주가 인상적인 트랙으로, 개인적으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SS식 해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비트는 조화는 SS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 아닌, 뉴에이지 음악을 바탕으로 한 크로스오버 뮤지션에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들게 하네요. 은빛 눈발이 날리는 멋진 야경을 상상해 보세요.
'Where Does Love Go'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의 '시원한 질주'와 효과음이 재밌는 트랙입니다. SS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알듯말듯 행방을 알 수 없이 빠르게도 지나쳐가는 사랑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 답은 아무도 알 수 없겠죠. 모든 사람의 사랑이 다 다르듯, 모든 사랑은 다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을런지. 그렇기에 이 곡은 '꺄우뚱'으로 가득합니다.
'L.N.F'는 앞선 트랙과 더불어 크로스오버의 향기가 짙은 이 앨범에서, 그나마 일렉트로니카에 충실한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Love aNd Farewell'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시작과 끝이 땔 수 없듯이, L.N.F도 그러하니까요.
'Close to Me'는, 파스텔뮤직 5주년 기념 컴필레이션에 수록되었던 'True Romance'만큼이나, 준수한 SS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역시 어쿠스틱 기타 연주 위로 펼쳐지는 노래를 들으면, 언젠가 에그쉐이크를 흔들며 노래하는 SS의 어쿠스틱 공연을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네요.
'Sentimental Scene'는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있는 트랙입니다. 도입부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90년대 갱스터 음악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는 제목만큼이나 감성적이고 서정적입니다. 제목부터 SS의 타이틀 곡(?)이니 당연한 것일까요? SS의 음악적 방향을 이 한 곡으로 엿보는 기분입니다. 이 곡에 가득한 낭만적인 기운은, 당초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제목을 'Sentimentalism'이 아니라 'Romancitism'으로 지어야하지 않았나 하는 한탄(?)까지 듭니다.
'Solitude'는 앞선 SS의 주제가(?)때문에 상대적으로 귀에 덜 들어오지만 역시 좋은 트랙입니다. 클라이막스의 몰아치는 느낌은 제목처럼 고독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나합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에 고독이라는 고통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Lunar Eclipse'도 이 앨범의 킬링 트랙 중 하나입니다. 동양적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구름이 걷히고 서서히 진해행되는 '월식(月蝕)'의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달이 완전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까요? 가려진 달은 가려진 소망만큼이나 울쩍한 감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AM 11:11', 이 트랙 또한 매력 작렬의 트랙입니다. 오전 11시 11분, 평일이라면 도심 한 가운데는 한산할 시간이겠지만, 주말이라면 참으로 낭만적(?)인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늦잠에서 눈을 깰 시간 아닐까요? 잠자리에서 나와 브런치를 준비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즐거워집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 그렇겠죠?
'Time after Time', 앨범에서 가장 'sentimental'한, 완전한 어쿠스틱 트랙입니다. 매일 낮과 매일 밤을 그리워 한다는 가사는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와닿습니다.
마지막은 'Falling in Love'로 제목부터 강한 여운이 남습니다. 여기까지 SS의 음악을 여행하면서 SS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셨는지? SS의 행보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행보를 정리하는 의미의 스페셜 앨범이지만 속은 꽉차있습니다. 파스텔뮤직 5주년 기념 컴필레이션에서 SS의 'True Romance'를 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이렜습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5년을 이끌어나갈 하나의 기둥'. 별점은 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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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치료, Placebo Effect
'믿음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플라시보(placebo)에 반응하는 환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1년차 시절(작년) 정형외과와 같은 병동을 쓰기에 TKRA(total knee replacement arthroplasty)나 THRA(total hip replacement arthroplasty)를 시술받은 할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차팅 및 퇴원정리 등으로 병동에서 새벽까지 앉아있기가 다반사인데, 밤이면 밤마다 수술 후 통증을 호소하는 할머니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주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상, 할머니들은 대부분 주사를 요구하신다. 그러면 많이 쓰는 주사제는 '죽은 인턴도 살아나게 한다'는 'Volta(diclofenac)'이다. (인턴시절 감기 몸살로 떨다가 맞아보았기에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그 할머니들은 통증 조절에 더 좋은 약들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주사 한 방이면 그 할머니들의 밤은 편해진다.
그런 할머니들은 대부분 매일 밤마다 주사를 요구하고, 한 번 즈음은 Volta 대신 NS(normal saline ; 생리식염수)를 Volta인양 주사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치료 효과는? 놀랍게도 Volta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밤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 세련된(?) 할머니들은 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pentanyl patch'를 붙이고 있기도 한다. 보통 이 patch는 약 3일간 효과가 유지되는데, 3일이 되기도 전에 효과가 없다며 새로운 patch를 요구하는 할머니들도 계시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수단이 있으니, 바로 제약회사에서 샘플로 나온 patch를 이용하는 것이다. 샘플 patch는 샘플답게 외양은 실물과 100% 동일하지만, pentanyl이 마약성 진통제이기에 샘플에는 들어갈 수 없어 효과는 0%이다. 하지만 이 patch를 붙이고 역시 편안하게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다.
얼마전의 일이다. 양측 하지의 이상 감각으로 입원하여 '말초신경병증'이 진단된 할머니는 주사치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어느밤, 1년차는 할머니의 통증을 위해 TPI(trigger point injection) 및 IM(intramuscular) Volta를 처방하였다. 다음날 환자에게 물어본 효과는 100%여서 통증 없이 잘 잤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었다, 말초신경병증에 TPI와 Volta는 큰 효과가 없을텐데.(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다음날 1년차에게 IM Volta 대신 IM NS 1cc를 처방하였다. 효과는? 역시나 Volta와 같았다.
믿음의 치료(?), Placebo effect. 물론 남용하면 안되겠지만, 거의 0에 가까운 비용에 좋은 약물들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이 신비함을 가끔 이용하는 것도 '유능한 의사'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의사'가 되는 비법(?)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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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커(Casker) - Polyester Heart
사실 '캐스커'가 '파스텔뮤직'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주로 말랑말랑하고 정말 파스텔 톤의 음악을 추구하는 파스텔뮤직에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있는 '캐스커'가 합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물론 파스텔뮤직에도 'Humming Urban Stereo'같은 비슷한 계열의 뮤지션이 있었지만, Humming Urban Stereo가 들려주는 말랑말랑함은 파스텔뮤직의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스커의 음악들은 좀더 성인의 취향(?)에 가깝고 좀더 세련된 이미지이니까요.
하지만 몇몇 컴필레이션 및 프로듀싱, 피쳐링 등으로 파스텔뮤직의 앨범들에 참여하면서 의외로 파스텔뮤직과 '코드의 일치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Polyester Heart'로 등장했습니다.
'점멸하는 등'과 '흐느낌'의 intro '역광'에 이어지는 '빛의 시간'은 오랜 갈증을 날려버릴 만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흩날리는 듯한 융진의 보컬은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를 산란시킨 두 사람의 빛을 안타깝게 들려줍니다.
'You'가 캐스커다운 도시적 느낌의 세련됨이 살아있는 트랙이라면 이어지는 '칫솔'은 많이 다른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칫솔'은 따뜻함과 사랑이 담겨있는 목소리를 통해 아스라한 추억들을 더욱 안타깝게 들려줍니다. '칫솔'이라는 정말 평범한 소재를 통해 소중했던 기억들을, 차마 다시 펼쳐보지 못하는 일기장처럼, 달콤쓸쓸하게 노래합니다.
'2월'은 '겨울의 끝'이듯, '사랑의 끝'에 노래합니다. 담담함으로 시작되어 점점 격양되어가는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짧은 동요를 부르듯 툭툭 던지는 보컬이 독특하며, 이어지는 '비밀'과 더불어 '의사소통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무려 '하동균'이 참여한 '너를 삭제'는 다분히 대중성을 노린 트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동균의 참여는 그다미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캐스커의 음악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든 사람은 저뿐인가요? 잔이 깨지는 효과음으로 시작되는 싱글로 선공개 되었던, '틈'은 '관계의 균열', 그 '틈'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명'은 캐스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라틴풍의 연주곡입니다.
'만약에, 혹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니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캐스커표 발라드' 트랙입니다. '만약에'와 '혹시'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두 단어는 가사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법을 통해 이야기하는 가사에 두 단어는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소망과 기다림의 자세는 평온하지만 너무나 깊게 느껴집니다.
'빙빙'은 재밌는 제목만큼이나 -결국 어느 부분에서는 슬픔과 어둠이 느껴지는 다른 트랙들과 다르게-모든 면에서 이 앨범 수록곡들 중 유일하게 밝은 트랙입니다. 'Adrenaline'은 제목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음악에 몸을 맏기고 가볍게 몸을 흔들만 한 트랙이구요.
'너와 나'는 '전주곡'을 의미하는 'prelude'라는 부제처럼 'Polyester Heart'를 위한 prologue입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Polyester Heart'의 어조는 '칫솔'의 어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이 재밌습니다. '칫솔'의 어조가 '추억만은 아름답도록'이라면, 이 곡은 몰아부치는 '분노의 역류'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앞의 두 단계라고 할까요?(칫솔은 '타협과 우울'의 어느 즈음이겠구요.)
이어지는 'hidden track'은 앞선 Polyester Heart의 'epilogue'격으로 본곡의 종반부에 이어지는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차분한 융진의 어조와 간결해진 사운드는 5단계 중 '우울과 수용'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합니다.
홀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여준 1집 '철갑혹성', 보컬 '융진'이 합류하며 새로운 스타일로 완성된 2집 'Skylab', 좀 더 세련되졌지만 아쉬웠던 3집 'Between'까지, 캐스커의 음악들은 언제나, 3집의 타이틀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캐스커의 탐구들은 4집 'Polyester Heart'에서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본인의 음악보다도 프로듀싱과 피쳐링으로 더 바빠보이는 '파스텔뮤직의 플레잉 코치(?)' '캐스커(이준오)'와 역시 피쳐링의 꾸준히 소식을 전하는 '융진', 두 사람의 끈끈한 파트너쉽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좋은 음악들 꾸준히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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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디(Ibadi) - Songs for Ophelia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보컬로 더 유명한 '호란'이 참여한 '이바디(Ibadi)'는 1집 'Story of Us'로 어쿠스틱 음악의 충분한 가능성과 보컬리스트로서 호란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클래지콰이 활동을 병행하는 호란이기에 이바디가 새로운 앨범을 이렇게나 빨리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바디는 부지런히 EP를 준비했네요.타이틀은 'Songs for Ophelia'로 바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를 모티프로 한 'conceptual album'이랍니다.
첫곡 'love letter'는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곡입니다.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love letter와 함께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세상을 보는 눈을 흐리고 연인들을 날아가게 합니다.
이어지는 'Secret Waltz'는 '호란'과 '이승열'의 듀엣곡으로 사랑의 절정에서 연인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서로 조금씩 다른 가사를 부르지만, 그럼에도 어우러지는 하모니는 타이틀로 손색이 없습니다.
'The day after'는 절정의 내리막이 시작되는 분위기의 곡으로 도입부부터 오필리어의 수심과 불안이 느껴집니다. 불안함에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하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은 남아있기에 곡의 분위기는 아직 밝습니다.
'탄야'로 들어서면서 희망은 사라지고 수심은 깊어져만 갑니다. 기타반주만 함께하는 오필리어의 노래는 처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어지는 '오필리어'는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정성을 기울였을 법한 곡으로, 정적인 서정과 함께 시작됩니다. 사랑의 슬픔과 기쁨 모두 함께 품안에 안고가는 마지막 오필리어의 모습, 죽음에 입맞추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쓸쓸합니다.
마지막 'Curtain Call'은 클래지콰이의 앨범에서나 들어볼 법한 곡입니다. 오필리어의 비극, 인생의 비극에 대해 관조하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정말 기획의도(?)처럼 한 편의 사랑 이야기, 혹은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들을 수 있는 상당히 잘 만든 EP입니다. 한편으로는 호란의 욕심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곡의 작사를 직접하였다는데, 클래지과이에서 펼칠 수 없었던 호란의 야망(?) 혹은 로망(?)이 펼쳐진 앨범이 바로 이 EP가 아닐까요? 특히 'Secret Waltz'와 '오필리어'는 상당히 오래 즐겨듣게 될듯하네요. 호란과 이바디의 꾸준한 활동 기대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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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 2009.03.06.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관객의 가치관에 따라서 '거북한 영화' 혹은 '공감할 만한 영화'로 호불호(好不好)가 크게 나뉘겠네요. '300'의 '잭 스나이더' 감독답게 선정성을 골고루(?) 갖추었지만, 약 2시간 30분의 짧지않은 상영시간은 주요인물 6명의 과거를 보여주기에 어쩔 수 없이 산만해지는 부분은, 결국 톱니 바퀴처럼 돌아가는 히어로들의 관계과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너무 긴 지루함이 될 법합니다.
현대역사에 대한 '풍자'(베트남전의 미국 승리, 닉슨의 3선)를 담은 대안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왓치맨'은 초반 히어로들(코미디언, 로어셰크, 나이트 아울)의 현실적인(?) 능력이나 어두운 도시의 모습을 보이면서 '다크나이트'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히어로들 중에서도 우월한 두 존재, '오지맨디아스'와 '닥터 맨하튼'을 보면 역시 히어로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류를 지배하는 '공포'를 이용하는 정부와 언론은 분명 냉전시대에 대한 '풍자'이지만 오늘날의 현실과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파멸'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류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 그 '만들어진 공포'는 인류에게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충격적인 결말,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냐, 아니면 대의를 버리고 희생을 막느냐.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저는 소수를 희생해서라도 대의를 찾겠습니다. 그것이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라고 할지라도요.
'비난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지만 이해해'라는 모 등장인물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인간의 본질 중 하나는 '어리석음'이기에, 극한에 몰려야만 정신을 차리나 봅니다. 현재의 우리 인류는 극한의 상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언제쯤 정신을 차리려나요? 별점은 4.5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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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한국의 모럴 해저드
2007년 12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인턴의 막바지를 응급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평일에는 보통 100여명 주말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서, 병동이나 수술방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있다보면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바로 구급차(앰뷸런스)의 사이렌이었다. 언제나 응급실 환자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잠잠해질 때면 찾아와 인턴들을 괴롭힌다.
구급차에 응급실 문 앞에서면 응급실 입구의 문이 열리고 응급실용 베드가 입구로 끌려와 대기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준비가 필요하지는 앉은 법. 사실 구급차가 응급실 앞에 서는 모습만으로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다. 진짜 응급한 환자로 들것에 실려서 내릴 정도라면 구급차는 뒷문이 응급실 입구 바로 앞에 오도록 주차한다. 심각한 교통사고, 뇌출혈, 추락, 혹은 심근경색 같은 환자들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입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주차할 때면 '혹시나'는 '역시나' 그렇다. 들것에 실려오지만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아예 응급구조사들이 이용하는 옆문으로 내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오히려 앞서 이야기한 진짜 응급환자들 보다 더 많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배탈이 났다거나,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거나, 더 황당하게도 목에 가시가 걸렸다고 한다.(물론 그런 경우에도 진짜 응급한 경우가 드물게 있겠지만.)
생각해보자. 여러분의 가족이 갑자기 쓰려져 정신을 잃었다. 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이 의심된다고 하자. 누구나 당연히 119에 전화하겠고, 응급출동을 요청할 것이다. 그런데 구급차가 다른 응급구조로 출동할 수 없다면 기분이 어떨까? 더구나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 도착해서 한 가족이 생사의 경계에 있는데, 배탈이 났다고 구급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현재까지도 완벽한 치료가 불가능한 평범한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값비싼 갖가지 검사를 동원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배탈이 나서, 코피가 나서, 목에 가시가 걸려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는 동안, 우리의 이웃이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지는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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